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6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64화(164/325)
164. 내 요리산데?
집사는 혼란스러웠다.
이름도 외울 필요 없다고 생각한 천박한 놈이… 왕실 요리사라고? 그것도 평범한 왕실 요리사가 아니라 왕비의 전속 요리사?
무슨 소설도 아니고,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정말로… 왕비 전하의 요리사인가요?”
“지금 내 말도 의심하는 건가?”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에 위팅턴 백작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실수다.
저도 모르게 사절단까지 모욕하고 말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백작 각하.”
요리사의 목소리에 위팅턴 백작이 뒤를 돌아보았다.
“말릴 생각은 하지도 말게. 이 사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네.”
“말리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의심받는 상황이니 제 입으로 해명하게 해주십시오.”
요리사의 진중한 눈빛에 백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사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이건….”
“왕비 전하께서 신분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시에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손 위에 느껴지는 묵직함.
금목걸이다.
장미 문양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귀족들은 타 가문의 문장을 외우는 교육을 받는다. 영국은 타국이라 일개 귀족의 문장까지는 모르지만, 일국을 대표하는 국왕의 튜더 장미 문양은 집사도 알아보았다. 장미 펜던트에는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B’ 모양의 장식이 반짝이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불린 왕비의 요리사라면, 지금 한창 소문이 자자한 그 요리사 아닌가요? 제2의 메시부고라고 불리는 요리사?”
“그렇겠군요!”
“역시 혀는 정확하군요. 오늘 먹은 요리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소문의 요리사 작품이라니!”
흐릿한 의식 사이로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이 자는 평범한 왕실 요리사가 아니다.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요리사다.
그런 요리사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의심해서 미안하군. 몰랐네.”
집사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목걸이를 건네주며 사과를 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신분을 밝히지 않았으니 그건 제 잘못이지요.”
그런데…
예상외로 요리사의 태도가 공손하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희망이 보였다.
‘저놈이 멍청해서 다행이네.’
위팅턴 백작에게 맡겼다면 알아서 잘 처리해주었을 것을. 멍청한 놈은 스스로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요리사라고 해도 결국 평민이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평민은, 말하는 개돼지나 다름이 없다. 기본적인 논리의 흐름도 모를 거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였다.
왕비로부터 요리사를 분리한다. 요리사가 왕비의 신임을 얻은 것까지 계략인 것처럼, 신분을 숨기며 여기저기 잠입하는 놈으로 만든다. 아예 아랍에서 심은 심복으로…
계략을 짜는데, 요리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같은 미천한 하인의 신분에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편지의 진실이니까요.”
웅성거리던 손님들이 입을 다물었다. 모두의 관심이 요리사의 정체에서 편지의 위조 사태로 집중되었다. 요리사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스칼코는 편지를 전달받자마자 읽으셨습니까?”
“그, 그래.”
“그게 언제였죠?”
“금요일 오후…”
요리사는 거침없이 대주교에게도 질문했다.
“실례지만 예하께서는 편지를 언제 마지막으로 읽으셨습니까?”
“금요일 오전에 읽고 식사를 한 후, 오후에 집사에게 보냈지.”
“집사에게 보내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을 하셨습니까?”
“안 했네.”
이상하다.
저건 멍청한 평민이 아니다.
변호사라고 해도 믿을 거다.
“그렇다면 편지가 위조된 시간은 금요일 오전에서 오후 사이가 되겠군요. 장소는 예하의 방, 집사의 방, 혹은 이동하는 중간일 확률이 높습니다.”
순식간에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졌다.
감정을 모두 배제한 차가운 팩트의 나열은 반박할 틈을 주지 않았다.
‘설마, 배운 놈인가?’
평민도 부유하면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할 수 있지만, 그 정도로 부유한 인물이 요리사나 하고 있을 리 없다.
“금요일이라면, 저와 스카피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택을 나선 상태였습니다. 돌아와서는 예하의 식사를 준비하고, 그 후에는 바로 식솔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업무가 끝났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주방 누구 하나라도 자리를 비웠다면 식사가 지연되었을 테지만, 식사는 모두 제시간에 나갔습니다.”
순식간에 주방 모두가 용의 선상에서 배제되었다.
“실례지만 편지를 볼 수 있을까요?”
요리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주교에게 다가가 편지를 받아서 살폈다.
“잉크색이 굉장히 진하군요. 저는 스카피가 사용하는 필기도구만 봤습니다만, 스카피는 물을 탄 잉크나 참숯을 사용했습니다. 아마 가격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위조하려면 실력도 필요하지만, 도구도 필요하죠. 이 잉크에 접근 가능했던 사람들도 알아보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고급 잉크에 접근 가능한 사람은 저택에서 일하는 귀족, 혹은 귀족의 하인들이다.
집사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실비오에게로 돌렸다. 집사의 보조로, 편지를 배달하고 마테오를 불러온 장본인이다.
실비오는 덜덜 떨고 있었다.
누가 봐도 죄인의 모습이다.
“모라티.”
대주교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네는 오늘부로 백작가로 돌아가게. 아무래도 이곳의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일렀던 모양이네. 아버지에게 면목이 없다고 전해주게.”
판결이 내려졌다.
아버지에게 면목이 없다고 전하라.
앞으로 대주교가 직접 아버지와 직접 대화를 나눌 일이 없음을 의미한다. 백작가와 대주교의 연이 끊어진 거다.
‘그래도 다행이네.’
자신의 죄를 덮어주고 돌려보낸다는 뜻이니까.
후작 부인, 대주교, 영국 사절단까지 모욕한 죄치고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아버지는 아마도 자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거다. 그곳에서 몇 년만 버티면 다시 재기할 수 있다.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예하.”
이번에는 후작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하의 댁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제가 조사해도 될까요? 아무래도 저와 관여된 일이니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모라티는 더 이상 저의 식솔이 아니니 제 허가를 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집사의 얼굴에서 핏기가 씻겨나갔다.
설마…
대주교가 책임을 묻지 않고 해임만 한 건…
후작 부인에게 넘기기 위해서?
‘그래도 후작 부인과는 아는 사이니까…’
아니, 그런 인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후작 부인은 말이 귀부인이지, 사내대장부가 여자의 몸으로 잘못 태어났다고 불리는 인물이다.
남편이 베네치아의 포로로 붙잡힌 사이, 그녀는 만토바를 직접 다스렸었다. 군대까지 직접 지휘하며 프랑스의 침략을 막아낸 철의 여인이다.
아버지가 선처를 구한다면 험한 대우는 안 받겠지만, 사고를 저지른 아들을 아버지가 감싸려 할까? 자식이 일곱 명이나 더 있는데?
‘지금 상황은…’
지금 자신은 끈이 떨어진 귀족이다.
온몸을 죄어오는 공포에 숨이 멎었다.
뒷배가 없는 이들을 조사할 때는 보다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자신이 요리사에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끔찍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다.
“아, 편지를 운반한 하인도 잠시 빌려 갈 수 있을까요? 저기 저 아이인 것 같습니다만.”
“물론입니다.”
후작 부인은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실비오를 가리켰다.
끝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와중 영국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메디치 공작가에서도 주방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요리 대회 내내 주방에는 보초가 세워져 있었고, 대회가 끝난 후에는 집사가 안내해주었습니다.”
빌어먹을 요리사는 모두가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 상기시켰다. 집사는 메디치 공작까지 건드렸었다.
“후작 부인, 조사가 끝나면 저도 조사를 시작해도 됩니까?”
“무슨 조사를 말입니까.”
“저 이가 메디치가에서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암시를 해서, 혹시 모르니 확인을 해보고 싶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 메디치 가문에서 심문을 한다고?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 심문까지 살아남지도 못해.’
또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과연 자신이 심문을 받도록 내버려 둘까? 이런 망신을 주는 골칫덩어리 자식은, 심문받기 전에 사고로 죽어버리는 편이 도움이 된다. 설령 아버지가 봐준다고 해도 형제들이 자객을 보낼 거다.
‘도망가야 해.’
숨겨둔 비상금이 있다.
차라리 배를 타고 아무도 모르는 나라로…
“그러면 저는 바로 짐을 챙기고 오겠습니다.”
집사는 서둘러 몸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도주를 시작했다. 최대한 냉정하게, 알아서 순순히 따라가는 척을 해야…
“살비.”
후작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원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부인의 하인이 다가와 집사의 소매를 붙잡았다. 세차게 뿌리치자, 엄청난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순식간에 몸이 땅에 붙어버렸다.
더러운 흙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자결하지 않게 주의하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더러운 천 뭉치가 입안으로 사정없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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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된 건가?’
질질 끌려가는 집사를 보며 한길은 안도했다.
하마터면 자신도, 스카피도. 엄청난 일에 연루될 뻔했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
무죄를 입증할 방법이 있을까 했는데, 평소 요리사로 갈고닦은 관찰력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면목이 없습니다.”
“이렇게 된 건 안타깝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즐거운 연회였습니다.”
“예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대주교는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였고, 손님들은 애써 대주교를 위로하고 있었다. 모든 게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시간이 늦었으니 저는 이만 저희 요리사를 데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지라 할 말이 많거든요.”
위팅턴 백작은 한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전에 본적 없이 크게 웃었다. 이대로 승천할 것 같은 표정이다.
‘하긴, 많이 곤란했겠지.’
왕비의 연회를 열기 위해 먼 길을 왔는데, 왕비의 요리사가 사라졌으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다. 당연히 이 재회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을 떼기도 전에 대주교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백작, 가시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제 식솔을 허락 없이 데려가는 건 사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주교 로렌조 캄페지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뜬금없는 타이밍에 퀘스트 완료 창이 떴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대주교는 한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한길이 만든 요리는 맛있게 먹었지만, 그 음식을 만든 요리사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제2의 메시부고라고 불리는 왕비의 요리사라는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자신의 식솔이라 우기는 것이다.
“예하, 말씀드렸듯이 이 자는 영국 왕실 소속의 요리사입니다.”
“시제가 잘못되었군요. 과거에는 왕실 소속이었지만, 본인 발로 이 저택에 들어온 이상 저의 식솔이죠.”
“계약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저희 쪽에서 위약금을 드리지요.”
“계약을 해지할 생각이 없으니 위약금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약속된 기간 동안은 제가 제 저택에서 데리고 있겠습니다.”
공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백작은 웃고 있었지만, 한길의 어깨를 붙잡는 손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여러분, 그러면 요리사가 놀라지 않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
후작 부인이다.
“위팅턴 백작, 저 요리사는 노예인가요?”
“아닙니다.”
“노예가 아니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계약을 유지하거나 해지하려면, 그의 의사도 반영해야지 않겠습니까.”
논리정연한 후작 부인의 말에 백작과 대주교의 얼굴이 풀어졌다. 한결 누그러진 분위기에서 후작 부인이 말을 이어갔다.
“마크라고 했던가.”
“네.”
“100 플로린을 주겠네.”
“네?”
후작 부인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조만간 로마에서 중요한 연회를 열 생각이네. 그 연회를 한 번만 도와준다면, 100 플로린을 주지. 일반 하녀가 일 년에 10 플로린을 받는데, 연회 한 번으로 그 정도면 나쁘지 않잖은가.”
“부, 부인?”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왜들 그러십니까. 저는 그저 능력 있는 자유인 요리사에게 제안할 뿐입니다.”
황당한 표정의 백작과 대주교.
수상한 미소의 후작 부인.
그리고 또 한 사람.
“그렇다면 나는 500 플로린을 주지. 나 역시 하나의 연회만 맡아주어도 되네.”
“아니, 메디치 공작. 아무리 그래도 연회 한 번에 500 플로린이라니 너무 과합니다.”
메디치 공작까지 가세하자, 다시 한번 혼란이 찾아왔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요리사는 영국인입니다!”
“이 집에서 일하는 영국인 식솔이죠.”
“자유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택은 그의 몫입니다.”
“그렇죠. 선택하라고 하죠! 지금 확답을 주면 1,000 플로린을 주겠네.”
진행자 없는 경매장 같았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이 시대 최고의 권력자들이 한길을 데려가기 위해 체면까지 내려놓고 다투고 있었다.
“저는…”
한길이 입을 열자, 네 쌍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저는 왕비 전하의 연회를 열기 위해 이탈리아에 왔습니다. 그 책임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역시 자네…!”
“왕비 전하는 특별한 분을 위한 연회를 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이탈리아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한길은 활짝 웃는 백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발 백작이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기를 바라며.
영국의 파이널 퀘스트 미션은 왕비의 이름으로 황제를 위한 연회를 여는 것.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따른다.
사절단 아래에서 왕비의 소속으로 일해야 하고, 당연히 황제도 참석해야 한다. 과연 황제가 사절단의 초청을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위팅턴 백작은 한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서는 바로 등을 돌렸다.
“예하, 이런 건 어떻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이렇게 다투지 말고 저희가 함께 연회를 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연회에 대한 비용의 절반을 저희가 부담하고, 저희 요리사도 빌려드리겠습니다.”
“…”
대주교는 내키지 않는 듯했다.
아직도 한길은 자신의 식솔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조금 더 위기감을 줘야 한다.
선택은 한길의 몫이니까.
“예하께서 정 안된다고 하시면 후작 부인과 공작 저하께도 같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아까 엿들은 연회의 대화를 토대로 보면, 저 둘도 황제의 초청을 따낼 수 있는 입장이다.
호명 당한 인물들의 눈이 번뜩였다.
대주교의 눈빛도.
“하지만 오늘 일도 있었고, 저는 이왕이면 신뢰할 수 있는 자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예하께서 스카피를 집사로 임명하신다면, 제가 요리사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연회를 열어드리겠습니다. 선택은 예하의 몫입니다.”
“…”
스카피 쪽을 바라보니, 스카피는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일까지 답변을 주셨으면 합니다. 후작부인과 공작 저하께는 내일 예하의 답변을 받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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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절단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마차 안에서 한길은 위팅턴 백작에게 배 위에서 벌어진 일을 알려주었다.
“자네를 죽이려 했던 선원이 배후에 샤푸이 대사가 있다고 했던가.”
“네.”
사실, 선원은 샤푸이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샤푸이의 음모를 알게 된 건, 길버트가 훔쳐 온 편지 덕분이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순간, 길버트의 죄도 추궁받게 된다. 어차피 편지도 태워버렸고.
“미안하지만, 자네의 말로는 샤푸이를 추궁할 수 없네. 황제의 대사인 데다가, 국왕 전하의 신임이 두터워. 요리사의 말만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군.”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샤푸이 대사가 이렇게까지 적대적으로 나오는데 과연 황제 폐하가 왕비 전하의 연회를 받아주실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주교 예하께서 설득을 하셔도…”
“뭐,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의외로 백작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한길이 계속 답을 기다리자, 백작은 약간의 망설임 후에 말을 이어갔다.
“조금 어려운 얘기지만, 뭐, 자네라면 괜찮겠지. 최근에 밀라노의 영주가 후계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떴어. 그리고 황제 폐하는 그 땅이 자신의 소유라고 선언했고.”
그러고 보니 연회 중에 밀라노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몇 주 전, 프랑스 국왕이 밀라노를 침략했지. 그쪽에서는 이전부터 밀라노를 노리고 있었거든.”
“…”
“황제는 아랍 세력과의 전쟁에 집중하고 있는데, 서쪽에서 프랑스가 공격한다. 이러면 프랑스의 허리를 노려 줄 친구가 필요하겠지.”
복잡한 얘기지만, 한길이 이곳으로 오는 사이에 상황이 바뀐 거다.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
“물론, 황제는 직접 동맹을 제안할 순 없어. 자기 고모가 어떤 대우를 받았는데, 자존심이 있지. 헨리 국왕 전하도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시라 직접 손을 못 내밀어. 그 와중 왕비 전하가 손을 내민다면?”
“…!”
“운이 좋았지.”
갑자기 왕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어딘가 위태로우면서도, 묘하게 강인한 여성이었다. 엄마 옆에서 떨어지면 바로 울상을 짓는 엘리자베스 공주의 모습도 그려졌다.
불린 왕비는 사형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의 비극은 피해도 아직 안전한 건 아니었다. 후계자가 될 왕자를 낳지 못한 건 여전하니까.
그런데 왕비가 황제와 국왕 사이의 다리가 된다면? 아들이 없어도 왕비의 입지가 조금은 다져지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건 물론 퀘스트이지만…
단풍잎 같은 작은 손가락으로 손수건을 건네주며 자신의 무사 귀환을 기도해준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맡겨주세요. 연회 날짜만 잡아주시면 꼭 성공시켜 드릴테니까요.”
“그야 당연히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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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단이 로마에서 머무르는 저택은 꽤 호화로운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요리사는 하인들의 방에서 생활하지만, 백작은 한길에게 귀빈실을 내주었다. 문 앞에는 경비병 두 명을 배치했고.
‘피곤하네.’
연회가 끝난 시각은 새벽 다섯 시.
저택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루 동안의 피로가 급습하여 한길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
침대가 폭신했다.
이곳에 온 이후로 하인들이 그렇듯, 짚으로 엮은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잤었다. 그래서 깃털이 잔뜩 들어간 폭신한 침구가 낯설었다.
눈이 감기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마크!!”
눈물이 범벅이 되어 달려오는 이는 길버트였다.
“살.. 살아… 있었…”
길버트는 칙칙한 검은 옷을 입고, 옷의 여기저기에 로즈메리 줄기를 엮어놓은 이상한 차림새였다.
길버트와 함께 들어온 다른 요리사, 프레드는 고개를 좌우로 털며 웃고 있었다.
“마크, 미안.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이놈이 몇 주째 상복도 안 벗고 질질 짜서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거든. 옷이라도 갈아입으라고 한마디 해줄래?”
길버트를 달래주고. 방으로 찾아온 다른 사절단에게도 생존 신고를 하고. 밀린 휴식을 취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 후,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마크! 대주교가 받아들였네. 연회는 2주 후라는군.”
“집사 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자네가 말한 스카피? 그 사람을 집사로 올린다더군. 그쪽도 요리사가 부족해서 우리 요리사들을 모두 데려와 달라던데?”
“그러면 바로 가도 될까요?”
“그러도록. 예하도 경비를 세 배로 늘렸다고 하시니 저택 안은 안전하겠지만, 외출할 때는 무조건 호위와 함께 다니고.”
“네.”
한길은 바로 요리사들을 준비시키고 대주교의 저택으로 향했다. 일행에게는 앞뒤로 호위병이 지키는 마차가 주어졌다.
“오셨습니까!”
대주교의 저택 앞에서 문지기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것도 기분이 묘했다. 스카피를 불러 달라며 한길이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했던 게 불과 열흘 전의 일이니까.
“잠시만 마차 안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안내할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
기다리면서 한길은 스카피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스카피는 귀신에 홀린 얼굴이었다.
‘너무 경계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시간이 얼마 없다.
황제의 연회를 열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때까지는 최대한 스카피 옆에 있고 싶었다.
스카피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그 윤곽은 흐릿하지만…
분명 스카피로부터 배울 게 있다.
연회를 마치기 전에 모두 배워가야 한다.
스카피가 자신을 경계하거나 멀리한다면 그걸 얻지 못할 수도…
“왔나?”
마중을 나온 이는, 주방 보조가 아니었다.
“스칼코가 손님을 일일이 맞이하는 겁니까?”
“뭐 어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데. 뭐야, 기대했는데 요리사는 고작 둘만 데려온 건가?”
“저까지 포함하면 세 명입니다.”
“그게 그거지, 쓸모없는 놈.”
마중을 나온 스카피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