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6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69화(169/325)
169. 때마침 잘됐네
“사실, 어제 이런 기사가 터졌거든요.”
슬아는 총총걸음으로 한길과 노셰프를 사무실까지 끌고 간 후,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어제 일자로 나온 기사가 있었다.
.
.
[단독보도] 카키 탈세 의혹, 처음이 아니다?최근 탈세 논란에 휩싸인 래퍼 카키가 지난 2018년, 세금 탈루액과 가산세로 2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국세청에 납부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관계자에 의하면, 카키는 지난 2018년 활동 수익의 일부를 차명계좌로 받고 신고를 누락했다. 당시 카키 측은 회계상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 수정 신고를 하고 가산세를 비롯한 추징금을 납부했다. 국세청은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형사 고발하지 않았다.
한편, 카키는 고급 슈퍼카를 여러 대 소유하는 등 호화로운 생활로 대중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카키는 작년부터 외식업에 진출, ‘카키 먹방’ 영상과 유명 연예인을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초청해 촬영한 영상 등을 SNS에 올리며 적극적으로 홍보해 왔다. 해당 레스토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한남동 소재 빌딩이 카키의 개인 소유임이 밝혀지며 카키의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카키는 과시적 호화?사치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 세무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비난이 거세지자 카키는 지난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익명성 뒤에 숨어서 팩트 대신 심증을 증거로 대는” 대중을 역으로 비난했다. 또한, 국세청의 조사에 임하고 있으니 “죄인 취급은 결과가 나온 후로 보류해 두라”는 말을 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 당당한 태도와 달리, 과거 탈세 정황이 확인돼 충격을 전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카키 측의 해명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
.
“뭐야, 이거?”
노셰프는 귀가 아플 정도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기사를 읽은 한길 역시 한순간 의식이 멍해졌다.
“카키, 그놈 당당하다며? 이 기사는 뭔데?”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자, ‘대중’의 반응도 노셰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
.
┗ 한번 했는데 두 번 못하겠냐. 이러고서는 떳떳하다고 잘도 지껄여대네
┗ 꼭 있는 것들이 더하더라.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하고 세금 내는데, 놀면서 돈 버는 새끼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머리 쓰고
┗ 추징금이 억대인데 사건을 그냥 마무리해? 이러니까 무조건 발뺌부터 하지. 안 들키면 개꿀, 들키면 ‘실수였다’고 하면 되니까.
┗ 조용히 숨기고 사는 것도 아니고 탈세액으로 슈퍼카 모으고 있는데, 저걸 그냥 놔두는 국세청도 문제. 이것이 진정한 헬조선이지
.
.
단독보도 이후로 해당 기사를 인용한 기사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그 와중, 오늘 아침에 또 다른 소식이 터졌다.
.
.
[카키, 샤웃아웃 더 머니 하차! 탈세 아니라면서 왜?]탈세 논란에 휩싸인 카키가 샤웃아웃 더 머니에서 자진 하차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호기심을 자아냈다.
22일, 샤웃아웃 더 머니 제작진은 카키의 하차 소식을 알렸다. 제작진은 현재 카키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하여 “후속 보도와 대중의 우려를 고려하여 그의 방송 출연이 시기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하차 이유를 설명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이미 촬영을 마쳤으며, 카키의 분량은 최대한 편집하여 방송할 것으로 보인다.
.
.
이건 한길도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카키가 직접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에서 하차할 예정이라고 말을 했었으니까.
이미 일주일 전에 결정된 사안이었지만, 보도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단독 기사가 나간 직후의 하차는, 누가 봐도 죄를 인정하고 자숙하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 ‘카키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고르메 키친>이 직격타를 맞은 것은 당연했다.
“카키, 연락해봤어? 그 자식은 뭐래?”
“그게… 사장님이 지금 해외에 나가 계셔서 연락이 잘 안 되거든요.”
“해외는 뭐, 전화도 안 터진데?”
“지금 아직 이동 중이시라… 아마 비행기 안일 거예요.”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본인 입으로 뭐라도 말해야 할 것 아냐!”
노셰프는 벌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슬아는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표정으로 우물쭈물하고 있었고.
하지만 한길은…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느꼈던 그 감각이다.
한길은 우선 격분한 노셰프를 진정시켰다.
“형, 그러다 밖에까지 들려요.”
“넌 화도 안 나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잘 보면 최근 내용은 없으니까.”
단독 기사는 새로운 사실을 보도한 것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기사는 2년 전의 일을 다루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타격이 크기는 했다. 결백한 사람이 무죄를 주장하는 것과, 이미 한번 같은 일을 저질렀던 사람이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다르니까.
“그래도, 이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해줬어야지!”
“화를 내는 건 대화를 해본 이후에 하려고요. 슬아야, 카키는 언제 연락이 되지?”
“아마 한 시간 내로는 될 거예요.”
이미 사건은 터졌다.
지금은 자신의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상황 수습이 먼저다.
만약 카키가 무고한데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이라면?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정 보도를 요구하든 피해 보상을 요구하든, 그건 카키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동업자라고 해도, 한길은 제3자의 입장이니 직접 나설 수 없다.
만약 카키가 실제로 탈세를 하고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한길에게 숨겼다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동업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면 그에 따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것도 카키와 대화를 해야 진행할 수 있다.
유명인과 함께 사업을 하는 건 양날의 검이었다. 그만큼 주목을 받으니 홍보 효과는 좋다. 하지만 잘못될 경우, 그 피해 역시 크다.
중요한 건, 카키가 믿을만한 상대인가다.
슬아와 노셰프만 봐도, 직원들의 심리상태가 눈에 보였다. 모두 동요하고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한길만큼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절대로.
#
슬아의 말대로 약 한 시간 후, 카키와 연락이 닿았다.
– 셰프, 죄송해요. 이유가 어찌 되었건, 제 책임이니까 정리하길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하시면 다 받아들일게요. 이번 일로 인한 피해 보상도 원하시면 해드리고…
카키는 한길이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사과부터 했다. 변명을 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목소리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기사 내용은 사실인가요?”
– … 사실은 사실인데 100% 사실은 아닌 그런 거죠.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데요?”
– 예를 들면, 출발하기 직전에 기자한테 연락이 왔는데 비행기 타야 한다니까 통화가 길어질 것 같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비행기에 타는 동안 그 기자가 계속 연락을 했다면, 당연히 저는 연락이 안 닿았을 테니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은 게’ 사실은 사실이지만, 100%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지금은 카키가 연락이 닿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 비슷한 상황이라서요. 몇 년 전에 세금 신고가 잘못된 것도 맞고 가산세랑 추징금을 낸 것도 사실이지만, 한 마디가 빠져있거든요. 제가 실수를 알아차리고 자진신고한 거니까.
카키의 입에서 나온 사실은 기사와는 달랐다.
한창 바쁘게 활동하던 시기, 세금 신고를 누락한 부분이 있었다. 세무사에서 카키의 명의로 받지 않은 수익금을 추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있을 법한 실수였고, 카키는 스스로 실수를 알아차리고 자진신고를 했다. 덕분에 가산세 감면까지 받았다고 한다. 별문제 없이 넘어간 일이고, 본인도 기사가 터지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은 사실인데 사실이 아니다…’
그 말대로였다.
보도된 내용은 사실이었다.
중요한 단어 하나가 누락되었을 뿐.
‘의도된 거겠지?’
‘형사고발을 하지 않았다’는 문장만 봐도. 카키와 연락이 닿았는데도 일부러 통화를 미룬 사실만 봐도. 자극성을 노리고 기사를 작성하려는 의도가 눈에 보였다.
– 정정 보도를 요구하려고 하는데 기자가 전화를 안 받아서 아침에 다시 연락해보려고요.
“아니, 기다리죠.”
– 네?
“돌아와서 철저하게 준비한 후에 입장을 밝히죠. 지금 상황이라면 묻힐 테니까.”
문장의 나열, 단어의 누락, 전달하는 뉘앙스를 일일이 따지고 들어봐야 대중이 관심을 기울일 리 없다. 아니, 오히려 카키가 변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만으로는 레스토랑에 입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낼 수 없다.
‘사람들이 화난 이유는 그것도 아니고…’
대중이 분노하는 이유는 신고 절차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기사 안에 숨겨진 또 다른 교묘한 뉘앙스.
카키는 세금 신고를 잘못하여 가산세와 추징금을 냈다. 카키는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레스토랑을 과다하게 홍보했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사실이지만, 팩트의 나열만으로 전달하는 뉘앙스가 있었다. 카키가 의도적으로 세금을 빼돌리고 그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고.
그걸 단번에 뒤집어주는 대처가 필요하다.
임팩트 있는 반박이.
그렇다면 가장 큰 문제는…
“카키, 차명계좌는 왜 사용한 거죠?”
– 음, 그게… 조금 개인적인 일인데…
“호기심에 묻는 게 아닙니다.”
– 그건 그런데… 하아…
한참의 망설임 후, 카키의 입에서 나온 설명은 예상 밖이었다. 아마 이 정도면 임팩트는 충분할 거다.
“일단 돌아오자마자 레스토랑으로 오세요. 그때까지 괜히 기자한테 연락하지 말고, 이런 건 한 번에 터트리는 게 나으니까.”
#
“설마 카사장님이…”
“에이, 우리 사장님이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모르지. 다른 거면 몰라도 차명계좌라는 건 실수라고 하기는 뭐하잖아?”
“기사 터진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정도인데, 이러면…”
레스토랑을 마감하고 여는 전체 회의.
분위기는 한길의 예상대로였다.
항상 활기찬 요리사들은 힘이 빠져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던 주방이 갑자기 멈췄기 때문이다. 멈춰선 주방에 갇혀있는 사이, 요리사들의 불안감은 증폭되어 있었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저런 무력감과 불안감을 안고 있으면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올 리 없으니까.
손님이 발길을 끊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만큼은 일관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오늘 많이 한가했지?”
“…”
“…”
한길이 입을 열자,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 알겠지만, 한동안은 이 상태가 지속할 거야. 금방 해결되었으면 좋겠지만, 하루 이틀 안에 정리될 사안은 아니니까.”
“…”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지만, 일주일 안에는 해결될 테니 그때까지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에 집중해.”
한길의 말에도 침울한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곧 해결될 거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은 간혹 보였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한길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부족한 건가?’
어떻게 보면 이 상황에서 저들의 반응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길의 머릿속에는 확실한 비교 대상이 있었다. 아피키우스였다.
시민 만찬에서 근위병이 들이닥쳤을 때도, 통구이 만찬을 뛰어넘는 상차림을 차리라고 지시를 내렸을 때도. 아피키우스는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공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피키우스가 확신이 있었기에 한길도 믿고 따를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무언가 계획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한길도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한길이 그 역할을 맡을 차례다.
지금은 부족할지 몰라도, 앞으로는 부족해서는 안 된다.
‘설명을 해준다면…’
모든 상황을 공유하면 당장의 불안감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가 움직여야 하는데, 계획을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게 없다.
‘그런 선례를 남기고 싶지도 않고.’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일일이 상황과 계획을 공유하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행동이 굼떠진다.
식당은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모든 결정은 한길이 내려야 한다.
요리사들은 한길이 알아서 잘 처리할 거라 믿고 주방에만 집중해야 하고.
한길은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여유가 넘치는 웃음을.
“때마침 잘됐네. 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하고 있었거든. 이번 주는 꽤 한가할 것 같으니까 이때 해보지, 뭐.”
갑자기 요리사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올랐다.
“모두 알다시피, 2호점은 아직 수셰프가 없지. 그동안은 내가 수셰프의 역할을 겸해왔지만, 계속 이 상태로 운영할 수는 없으니까, 한가한 동안 수셰프를 뽑으려고 한다.”
요리사들이 불안감에 빠져있는 이유.
그건, 한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바쁘게 굴려주면 된다.
불안해할 틈이 없을 정도로.
어차피 월급은 월급대로 나가고 있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니, 이 기회에 훈련도 시키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내친김에 수셰프도 뽑고.
“자세한 방식에 대해서는 유셰프, 설명해 주시죠.”
호명 당하자,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소희도 묘하게 차분한 표정이었다.
“수셰프는 당연히 능력만을 보고 뽑을 거야. 때마침 2호점도 테이스팅메뉴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이 기회에 각자의 메뉴 개발 능력을 보려고.”
“설마…”
“예전에 1호점에서 했던 것 같은 건가요?”
“맞아, 요리대회야.”
1호점에서는 내부 경연대회를 진행하여 테이스팅메뉴를 정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번에는 2호점에서 내부 경연을 실시할 거다. 단, 걸려있는 보상은 수셰프 자리다.
“단, 1호점 때랑은 룰이 조금 다르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모차렐라, 모르타델라, 소고기, 캐비어, 라자냐, 샐러드 채소, 7개의 재료 중 하나를 골라서 요리해야 해. 그리고 주제도 정해져 있어. 재료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하지.”
“재료의 다양성이라면 정확히 어떤 거죠?”
“하나의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거나, 비슷한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거나. 방식은 상관없이 재료의 다양성이 돋보이면 돼.”
1호점은 자유롭게 요리를 만들었지만, 2호점에는 주제를 정했다. 이탈리아 요리의 정체성은 재료에 있으니까.
“앞으로 사흘간 진행할 거고, 우승한 사람은 수셰프 타이틀과 함께 테이스팅메뉴에 메뉴가 올라갈 거야. 한동안 주문이 별로 없을 테니까 한가할 때는 메뉴 개발에 집중해도 좋아.”
“예스, 셰프.”
평소라면 모처럼의 이벤트라고 소란스러웠을 텐데, 분위기는 아직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도 이해는 된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천천히 달궈주면 된다.
#
“셰프!”
“좋은 아침입니다, 셰프.”
다음날,
한길은 오랜만에 오픈 시간부터 주방에 섰다.
지금은 주방의 흔들림을 바로잡아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역시 분위기가 다르네.’
점심시간이 되자, 주방의 위기가 더더욱 피부에 와닿았다.
평소라면 정오가 되자마자 테이블이 가득 차고, 12시 반 경에 다시 한 번 주문이 몰려온다. 1시 이후에 직장인이 아닌 손님들이 찾아오며 마지막 주문이 몰려온다. 정신없이 세 차례의 주문을 처리하다 보면 브레이크 타임이 온다.
지금 시간은 12시 반.
그런데 들어온 주문은 테이블 네 개가 고작이다.
요리사들은 각자의 스테이션을 지키며 멍하니 서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고요함.
가동을 멈춘 공장처럼, 그 고요함이 위기를 암시하고 있었다.
역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피크 타임에도 이 정도면, 손님이 오더라도 한두 테이블 정도겠네요. 요리사 두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메뉴 개발을 하라고 하죠.”
한길의 말에 소희가 요리사들을 향해 외쳤다.
“경우랑 승환이를 제외하고는 각자 메뉴 개발을 하도록! 앞으로 두 시간 동안 자유시간이다.”
그래도 선뜻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전체적으로 의욕이 없다.
이것도 예상대로였다.
“유셰프, 저도 메뉴 좀 손보고 있을 테니 필요하면 불러주시죠.”
그 말과 함께 한길은 주방의 비어있는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주방을 가로질러 뚜벅뚜벅 걸어가는 동안, 모두의 시선이 한길에게 향하는 게 느껴졌다.
한길이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요리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이사한 이후로는 메뉴 개발을 집에서 해왔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요리하고 싶었다.
이 흐름을 바꿔야 한다.
한길이 앞장서서.
그때, 등 뒤에서 의외의 소리가 들려왔다.
“경우, 어차피 대기할 거면 패스에서 대기해도 되겠지? 망보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나 불러.”
소희도 패스를 떠넘기고 한길 옆의 스테이션으로 다가온 것이다. 의아해하는 한길에게 소희가 물었다.
“왜요, 저는 요리하면 안 돼요?”
“수셰프가 되고 싶은 건가요?”
“설마.”
“메뉴 개발은 안 한다면서요.”
“가만히 있기 심심해서 하는 거예요.”
“심심한 거면 재료 값은 유셰프가 내야 할 텐데요?”
“짠돌이.”
“레스토랑 재료는 심심풀이에 사용하라고 가져다 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청구하세요.”
한길의 장난에 소희가 입을 내밀며 조용히 투덜거렸고, 한길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소희 역시 알고 있는 거다.
이 흐름이 좋지 않다는 걸.
그래서 직접 나서려는 거고.
“그런데 셰프, 뭘 만드실 거예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활용할 메뉴요.”
“치즈라… 그러면 나도 치즈로 해볼까?”
소희는 생긋 웃으며 한길을 똑바로 보았다. 그 시선이 어딘가 도발적이었다.
“셰프, 그러면 대결은 어때요?”
“대결?”
“생각해보니 우리, 서로가 요리하는 것만 봤지 대결은 한 적 없잖아요? 정면승부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소희는 요리 대결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전에도 한길이 강제로 대결을 시키긴 했지만, 그 후로 둘이 있을 때 한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무슨 리얼리티 예능도 아니고, 이런 주방은 처음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하지만…
대결을 좋아하는 놈들이 있었다.
지나치게 단순한 놈들이.
소희의 대사는 그들을 향한 것이었고.
잠시 후,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지금 이거, 2호가 1호한테 결투 신청한 것 맞지?”
“이거 놓치면 1호점 애들 분명 한 소리 할 텐데, 찍어둬야 하나?”
몰래 핸드폰을 꺼내 드는 이들도 있었다.
효과는 있는 모양이었다.
“받아들이는 거죠?”
“후회해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