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7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70화(170/325)
170. 치즈 대결
한길이 만들 메뉴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의 다섯 가지 맛.’ 이름 그대로, 파르미지아노 치즈의 다섯 가지 맛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요리다.
‘원래는 계절을 다루고 싶었는데…’
욕심 같아서는 치즈의 계절별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제조된 치즈는 각기 다른 맛을 갖고 있으니까. 의미도 좋고, 몰랐던 사실이라 임팩트도 강할 것 같지만,
‘지금 상황에는 맞지 않지.’
계절의 맛은 예민해서 열을 가하는 순간 증발해 버린다. 그 맛의 차이를 부각하려면 조리를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
이번 테이스팅메뉴는 심사를 위한 메뉴니까.
최근 터진 사건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심사는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심사를 위해서라면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재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재료를 다루는 셰프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파르미지아노를 주재료로 사용하기로 했다. 파르미지아노는 풍미가 강해서 복잡한 조리법을 거쳐도 고유의 맛을 간직한다. 셰프의 실력을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변화무쌍한 재료다.
한길은 먼저 지하실로 내려가 다섯 종류의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들고 왔다.
연한 노란색부터 짙은 황금빛의 다섯 덩어리.
이는 서로 다른 치즈 휠에서 가져온 조각들이다. 각각 24개월, 30개월, 36개월, 40개월, 그리고 50개월의 숙성을 거친 치즈다.
36개월 숙성된 파르미지아노까지는 시중에도 많이 나오지만, 40개월과 50개월 숙성된 파르미지아노는 이탈리아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재료다. 소량만 만들기 때문에 치즈 제조업자와 직거래를 통해서만 구매 가능하다. 물론, 알레산드로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맛을 보고…’
한길은 시작하기에 앞서 채칼로 각 치즈를 얇게 썰어서 맛을 보았다.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치즈의 맛은 변한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맛이 다르다’는 것만 인지하고 ‘어떻게 다른지’는 살피지 않고 넘어간다.
한길은 그 차이를 확실하게 짚어주고 싶었다.
치즈는 우유로 만들기 때문에, 그 내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단백질 사슬이 얽혀있다.
발효가 진행될수록 단백질은 분해된다. 그리고 단백질 사슬 고리가 하나씩 깨질 때마다 새로운 맛이 해금된다. 그래서 오래 숙성된 치즈일수록 복잡하고도 다양한 맛이 겹쳐지게 되는 거다.
24개월 된 치즈에서는 아직 신선한 우유 향이 느껴진다. 우유에서 맛볼 수 있는 특유의 달달함. 파인애플과도 같은 옅은 산미가 섞여 있지만, 기본적으로 순한 맛이다.
30개월부터는 치즈 안에 있는 수분이 더욱 증발하며 우유의 맛이 버터 향으로 바뀐다. 단맛도 살구 같은 강한 단 향이 올라온다. 이때부터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풍미가 살아난다.
36개월부터는 고소함이 해금된다. 호두를 연상하는 독특한 고소함의 입혀지고, 찐득한 느낌의 단맛이 더해진다. 이때부터는 맛이 강렬해진다.
40개월 된 파르미지아노는 묵직함을 두른다. 진한 육수 같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의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향신료같이 톡톡 쏘는 듯한 새로운 맛도 더해진다. 보이지 않는 향이 입안 가득 차오르면서 구석구석에 끈덕지게 엉겨 붙는다.
50개월이 되면 모든 향이 몇 배로 증폭된다. 각기 다른 층의 단맛, 감칠맛. 여기에 훈제 향과 비슷한 향까지 입혀진다. 수많은 맛이 존재하지만, 서로 싸우지 않고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다양한 맛이 응축되어 있는 만큼, 밀도도 높다.
맛을 확인한 한길은, 다음으로는 사용할 치즈 부위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같은 치즈 안에서도, 어느 부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니까.
‘역시 크리스탈을 쓰는 게 좋겠지?’
한길은 하얀 점이 많이 박혀있는 부위만을 골라서 썰었다.
파르미지아노는 오래 숙성할수록, 하얀 점이 생긴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 하얀 점을 곰팡이로 오인하기도 하지만, 요리하는 사람들은 이 하얀 점은 ‘치즈 크리스탈’ 혹은 ‘풍미 크리스탈’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건조하게 ‘타이로신(tyrosine) 크리스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치즈 내의 타이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이 뭉치면서 생기는 하얀 점이다.
파르미지아노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다.
한길의 요리에는, 가장 맛있는 크리스탈 부위만을 사용한다.
‘시간이 되려나?’
한길은 다른 준비물을 정리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어제 미리 밑 작업을 해두었지만, 그럼에도 두 시간 안에 만들기 촉박한 요리다.
다섯 가지 맛 중 첫 번째는 가장 어린 치즈.
24개월 된 치즈는 그 앳된 느낌을 살려 치즈 수플레를 만들기로 했다.
수플레는 촉촉해야 맛있지만, 파르미지아노는 건조한 치즈다. 그래서 리코타 치즈를 섞어주어 촉촉함을 더한다.
리코타 치즈는 지나치게 신선한 맛이 특징이기 때문에 파르미지아노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훈향을 살짝 입혀준다.
미리 물에 적셔둔 벚나무 조각의 물기를 살짝 제거하고, 알루미늄 용기에 담아 오븐에서 구워주면 오븐 안에 벚나무의 훈향이 퍼진다. 그 안에 리코타 치즈를 3분간 가둬두면 된다. 치즈가 모두 준비되면,
지이이이잉!
거품기를 이용해 계란 흰자로 머랭을 만든다. 적당히 부풀어 오른 하얀 계란 거품 안에 파르미지아노, 리코타, 그리고 묵직한 질감을 더해줄 크림을 순서대로 넣어준다.
이 치즈 믹스를 찜기에 올리고 45분간 쪄내면, 계란찜과 거품의 중간쯤 되는 말랑말랑한 질감의 데미 수플레가 완성된다.
‘다음은 치즈 소스.’
두 번째 맛은 30개월 된 치즈로 만든 소스다.
치즈는 그냥 녹이면 식으면서 딱딱하게 굳는다. 그래서 닭육수를 넣어 유화시켜준다. 양파, 셀러리, 당근과 영계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닭육수는 파르미지아노 특유의 감칠맛과 잘 어우러질 거다.
위이이이잉!
한길은 치즈와 닭육수를 분량에 맞춰 넣고 믹서기에 갈아주었다.
이번에는 평소에 사용하는 믹서기와 달리, 2호점을 오픈하면서 구입한 고급 믹서기를 사용했다. 온도를 설정하면 열을 가하면서 내용물을 섞어주는 기능이 있다.
“너무 본격적인 거 아니에요?”
돌아보니, 소희가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한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불평은 믹서기 소음에 묻혀 한길에게만 들릴 거다.
“육수도 미리 만들어 둔 거예요? 언제?”
“어젯밤에 문배 형이랑 이것저것 좀 시도해봤거든요.”
이번 메뉴는 한길이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조리법을 시도했기 때문에 간밤에 노셰프의 도움을 받았다. 즉, 밤새 특훈을 마치고 개발한 따끈따끈한 신메뉴였다.
“나는 즉석에서 만드는데…”
소희의 스테이션을 보니, 그 위에는 모차렐라 치즈와 빵 부스러기가 있었다.
모차렐라는 좋은 치즈이지만, 비교적 간편하게 조리하는 재료다. 소희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긴장감을 풀어주려 했구나.’
주방 요리사들은 최근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머리가 잔뜩 굳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소희는 그들의 부담감을 줄여주려는 게 분명했다.
“잘됐네요. 유셰프는 애들 의욕을 챙겨주고 저는 앞으로의 방향성을 보여주면 되겠군요.”
한길의 말에 소희가 매서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왠지 모르게 뒷목이 서늘해져서 육수를 내밀었다.
“육수 필요하세요? 조금 남았는데.”
소희는 거칠게 숨을 내뱉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길은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다음은 거품.’
세 번째 맛은 쫀득한 치즈 거품이다.
이건 어제 미리 밑 작업을 해두었다.
치즈 거품은 36개월 된 파르마지아노 치즈로 만든다. 소스와 마찬가지로 치즈와 닭육수를 갈아준 액체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사이폰(siphon)을 사용한다.
사이폰은 바텐더들이 흔히 사용하는 도구로, 탄산을 주입하거나 생크림을 만들 때도 사용된다. 강한 공기의 압력을 통해 순식간에 내용물을 뽑아내기 때문에 짤주머니를 사용하는 것보다 보송보송하고 폭신한 거품을 만들 수 있다.
다음은 네 번째 맛.
40개월 된 파르미지아노로 만든 갈레트다.
이것도 어제 미리 만들어 두었다.
파르미지아노를 물에 끓여 녹여주고, 그 녹인 치즈를 짤주머니에 넣어 베이킹 시트 위에 낙서하듯 마구 그려준다. 이걸 실리콘 매트 위에 올리고 오븐에 구워주면, 얇은 과자가 만들어진다.
단단해 보이는 과자지만, 달고나처럼 한번 부서지면 산산이 조각이 난다. 구수한 치즈 맛이 나는 달고나와도 같다.
마지막, 다섯 번째 맛은 ‘치즈 공기’다.
진짜 공기는 아니고, 공기 거품이라고 불리는 가벼운 거품이다.
이것 역시 노셰프에게서 갓 배운 조리법인데, 의외로 간단하다. 50개월 된 치즈를 3시간 동안 뭉근하게 끓여서 치즈 죽을 만들어주고, 식으면 그 안에 대두로 만든 레시틴(lecithin) 가루를 넣어준다.
위이이이잉!
휴대용 믹서기로 치즈 액체를 마구 저어주면,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생크림 같은 쫀득한 거품이 아니라, 생맥주 위에 떠 오르는 가벼운 거품이다.
비눗방울처럼 오색 빛을 두르고 있는 거품은, 원래라면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레시틴을 넣어주면 그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다. 입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터지지 않는다.
‘이러면 얼추 마무리되었으니까…’
플레이팅을 할 차례.
다섯 가지 맛을 그릇 위에 담아낸다.
폭신폭신한 치즈 수플레를 타원형으로 만들어 올리고, 그 위에 진득한 노란 치즈 소스를 뿌려주었다. 사이폰을 들자,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생크림 같은 치즈 거품이 살포시 얹어졌다. 치즈 거품에 노란 치즈 과자를 꽂아주고, 방금 떠낸 치즈 공기 거품을 한 수저 올려준다.
“치사하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소희가 제법 살벌한 눈길로 한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유셰프, 언제 메뉴를 두 개나 준비했죠?”
“질로 안 되면 양으로 밀어붙여야죠.”
소희는 고개를 휙 돌리고 플레이팅을 계속했다. 목소리가 조금 냉랭하다.
“그나저나 셰프, 제가 시칠리아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말했었나요?”
“로마 아니었나요?”
“그건 졸업하고 나서고. 학생 때 이탈리아 지역 요리가 궁금해서 방학 동안 시칠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이 있었거든요.”
“몰랐습니다.”
“시칠리아는 관광도시로 유명한데, 사실은 마피아의 도시에요. 뉴욕으로 조직원을 수출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주방도 참 거칠어요. 제가 일하던 곳에는 ‘인간 라이터’라는 별명이 붙은 셰프가 있었는데, 왜 그런지 알아요?”
“글쎄요.”
“치사한 짓을 하는 요리사에게 그라파를 퍼붓고 토치로 불을 붙였거든요. 그라파가 좀 독해요? 진짜 불이 붙더라고요. 불이 붙은 요리사는 서둘러서 싱크대로 달려가서 불을 끄고…”
갑자기 딸깍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소희는 한 손에 조리용 토치를 들고 있었다.
“유셰프.”
“네?”
“지금 그 말을 하는 의도가 뭡니까.”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생각해보니 우리, 서로의 개인사에 대한 얘기를 거의 안 했잖아요? 저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주방에서 3개월 동안 살아남았다고요.”
소희는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토치로 모차렐라를 그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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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소희 나름대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한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졌다. 소희는 술렁이는 주방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요리사들은 사소한 실수를 반복했다.
부드럽게 타이르기도, 엄격하게 혼내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한길이 돌아오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조금 진정이 되었을 뿐. 공기 중을 가득 채운 불안감은 여전했다.
“메뉴 좀 손 보고 있을 테니 필요하면 불러주시죠.”
주방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으며 요리를 시작하는 한길의 모습을 보니, 왠지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이 숨 막히는 공기에 홀로 맞서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했고.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러면 대결은 어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희는 한길과 진짜 대결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분위기를 가볍게 풀어주고 싶었을 뿐.
‘가볍게, 가볍게…’
그렇게 생각한 소희는, ‘겉과 속이 뒤바뀐 모차렐라 피자’를 만들기로 했다. 꽤 오래전에 만든 창작 메뉴인데, 로마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맛도 컨셉도 좋지만, 조리법은 심플하다.
모차렐라를 살짝 녹여서 평평하게 펼쳐주고, 그 안에 바삭하게 토스팅한 빵조각을 넣어서 김밥처럼 돌돌 말아준다. 양 끝을 오므려서 동그란 도넛 모양을 만들어주고 그대로 굳힌다.
그 위에 피자토핑처럼 토마토소스와 바질소스를 올려주고, 토치로 모차렐라를 얼룩지게 태우면 완성이다.
피자 같지만, 밀가루 반죽 대신 모차렐라를 반죽처럼 쓴다. 조금만 발상을 바꿔 새로움을 추가했지만, 기본은 익숙한 맛이다.
즉, 만만해 보였다.
그런데…
슬그머니 한길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다섯 종류의 숙성 치즈를 가져오고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는 주방 도구까지 꺼내 들며 회심의 메뉴를 만들고 있었다.
그야, 진지하게 대결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영혼을 불살라 하나의 작품을 만들건 또 뭐람. 그것도 소희가 일부러 만만해 보이는 요리를 만들 때.
‘그렇게까지 할 거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라고!’
괜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이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지면 헤드 셰프가 우스워지잖아.
“육수 필요하세요? 조금 남았는데.”
태연한 얼굴로 육수를 건네는 한길의 모습은 얄밉기까지 했다. 낚아채듯 육수를 들고 온 소희는 급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너무 없어 보이는 대결은 사양이다.
결과는 비등비등했으면 했다.
한길은 치즈로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희 역시 최대한 질감의 변화를 보여주는 메뉴로 맞서는 게 좋다.
‘뭐로 하지?’
모차렐라를 녹여서 농축액을 만들면 보다 다양한 형태를 시도할 수 있겠지만, 그 방식은 최소 반나절이 필요하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조금 더 빠르게, 그러면서 특이한 질감을 만들 방법이…
‘아!’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삭함.
바삭한 모차렐라는 본 적이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인가, 모차렐라를 바삭하게 만들 방법도 바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다음은 이 바삭함과 대조되는 묵직하고 크리미한 맛이 필요한데…
‘그걸로 하자.’
소희가 만들기로 한 메뉴는 아란치니(arancini)였다.
아란치니는 시칠리아의 요리로, 쉽게 말하면 이탈리아식 주먹밥 튀김이다. 원래는 라구 소스나 토마토소스로 감칠맛을 더하지만, 소희는 오로지 모차렐라 향만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소희는 모차렐라를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주었다. 전자레인지는 파인다이닝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빠르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전자레인지에서 접시를 꺼내자, 접시 바닥에 뽀얀 액체가 고여있었다. 모차렐라의 치즈 향이 듬뿍 담겨 있는 모차렐라 즙이었다.
이걸 사용해서 쌀을 볶아준다.
마른 팬에서 쌀을 달달 볶다가 모차렐라 즙을 뿌려주고, 흡수되면 다시 달달 볶다가 모차렐라 즙을 뿌려주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모차렐라 진액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쌀이 익는다. 그 쌀로 주먹밥을 빚어낸다.
주먹밥만으로는 심심하니, 안에 바질 페스토와 모차렐라를 넣어주었다.
그러면 마지막은 이 요리의 핵심.
바삭한 모차렐라를 만들 차례.
모차렐라로 익힌 쌀을 믹서기에 갈아주고, 하얀 크림 같은 결과물을 짤 주머니에 넣었다. 베이킹 시트 위에 가느다란 하얀 선을 그어주고, 오븐에서 저온으로 10분간 굽는다.
이러면 반투명한 실이 만들어진다.
맛은 모차렐라와 쌀 맛.
쌀의 전분이 들어가서 말랑말랑하게, 찰흙처럼 유연하게 구부려진다.
이 모차렐라 실을 털 뭉치처럼 뭉치고, 그 안에 모차렐라 주먹밥을 넣어서 다시 한번 오븐에서 구워냈다.
완성된 요리는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바삭한 모차렐라는 쌀국수처럼 보이기도, 혹은 털실 뭉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식은 패스에서 할까요?”
한길의 말에 소희는 접시를 패스에 세팅했다.
한길의 요리는 여섯 접시. 소희는 두 개의 메뉴를 만들었으니 총 열두 접시가 차려졌다.
“바로 맛 봐도 되죠?”
요리사들은 세팅이 완료되자마자 각자 포크를 들고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접시가 더 많다 보니, 소희의 요리를 먼저 맛보는 이들이 많았다.
“이거 대박!”
“모차렐라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구나.”
“이거, 식감이 진짜 예술인데?”
평가는 꽤 좋다.
소희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포크를 들고 자신의 메뉴를 맛보았다.
모차렐라 피자는 소희가 아는 맛이었다.
표면을 살짝 태워서 구운 치즈의 구수함과 단맛을 살렸지만, 겉에만 그을렸기 때문에 내부는 신선한 모차렐라 맛 그대로다. 먹다 보면 모차렐라 안에서 바삭한 토스트 빵조각이 나왔다.
모차렐라, 바질, 토마토, 빵.
피자에 들어가는 기본 구성이지만, 살짝 비틀어서 재미도 추가했다.
‘이건… 상상 이상인데?’
한편, 즉석에서 만든 아란치니는 소희의 예상을 뛰어넘는 맛이었다.
입안에서 파사삭 부서지는 바삭한 모차렐라는, 은은한 모차렐라 향을 퍼트렸다. 강렬하게 한 번에 와닿는 맛은 아니고, 붓으로 덧칠하듯 먹을수록 미각을 적시는 맛이었다.
폭죽처럼 터지는 소리와 갈수록 진해지는 맛을 즐기다 보면, 가운데 크리미한 모차렐라 주먹밥이 나온다. 주먹밥 안에는 고소한 페스토가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꽤 훌륭하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 소희의 귀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이건…”
“어….”
한길의 요리를 맛본 요리사들의 목소리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분명 범상치 않은 맛일 거다. 한길은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은 것처럼 요리하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소희는 수플레와 거품, 치즈 과자를 야무지게 담아 입안에 넣었다.
“…”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수플레는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녹으면서 벨벳처럼 매끄럽게 혀 위에 미끄러졌다. 그 주위를 눅진한 치즈 소스가 감싸고 있었다.
여기에 치즈 과자가 더해졌다.
선명하게 깨지는 과자는 치즈 누룽지 같았다. 맛은 누룽지가 아니라 치즈 청국장 같기도 했고.
그리고 거품.
생크림처럼 생긴 치즈 거품은 진하면서도 고소했다. 무게감 있는 고소함이 가벼운 거품 형태를 하니, 그 대비에서 오는 맛이 신비로웠다.
거기에 공기까지.
공기 거품은 비눗방울처럼 입안에서 터졌고, 터질 때마다 치즈 맛 공기를 해방시켰다. 씹히지는 않지만 농축된 치즈의 향이 입안에 휘몰아쳤다. 그야말로 ‘공기’의 맛이었다.
파르미지아노로 낼 수 있는 모든 맛과 질감을 하나의 접시 위에 담아낸 요리다. 이 요리는 완성체였다.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는.
압도적으로 한길의 승리였지만, 이상하게 패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전기충격을 받듯, 잠들어있던 미각 신경까지 자극하는 그런 요리였다. 요리사의 본능이 깨어나며 무엇이든 만들고 싶어졌다. 다시 요리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경우, 넌 뭐 만들 거냐?”
“모르타델라를 한번 해볼까 해서요.”
“그래? 그러면 나도 모르타델라. 우리도 승부 한번 해볼까?”
주방 요리사들은 각자 재료를 고르며 서로에게 결투를 신청하기 바빴다.
소희의 목표는 달성했다.
드디어 요리사들이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소희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셰프.”
“네?”
“다음 메뉴는 무슨 재료를 쓰실 건가요?”
“철갑상어요.”
“재대결 요청해도 될까요? 원래 승부는 삼세판이니까.”
소희 역시 다음 요리를 떠올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 170화 관련 공지사항
170화에 등장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의 다섯 가지 맛’이 타 작품에 등장한 요리와 유사하다는 의견을 주신 독자님들이 계셔서 설명을 덧붙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은 아마 아시겠지만, 본 소설은 요리의 고증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퀘스트 속 요리도 과거 자료를 토대로 집필하고 있고, 현실 속 파인 다이닝 요리도 현실 자료를 토대로 집필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제기된 요리는 이탈리아의 유명 셰프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의 시그니처 메뉴, “다섯 가지 맛과 식감의 파르미지아노 (five ages and textures of parmigiano reggiano)”가 모티브입니다. 2011년, 이탈리아 미식협회가 선정한 “지난 10년간 나온 가장 우수한 요리”이며,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메뉴이기도 합니다. 타 작품에서 비중 있게 나온 줄 모르고 사용했지만,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을 다루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리이기에 동일하게 등장시켰을 것 같습니다.
즉, 같은 요리를 모티브로 하여 나온 유사성입니다.
또한,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리는 1차 자료만을 참고하며 100% 저의 문장으로 해석 및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말 등록이 가능한 타 플랫폼에 모티브로 사용된 요리의 출처를 공개하여 작중 등장하는 요리의 출처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점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