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7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74화(174/325)
174. 맡겨주세요
“무슨 얘기를 이리 오래 하십니까!”
“그래서, 합격 목걸이는 받으셨습니까?”
주방으로 돌아오자 요리사들이 앞다퉈 질문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 결과를 알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 그 모습을 보며 한길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어떻게 됐는지, 이미 다 알고 있잖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한길의 말에 몇 명이 흠칫했고, 나머지는 먼 산을 바라봤다.
“숨으려면 제대로 숨을 것이지.”
심사위원들이 식사한 룸은 평소라면 문을 닫아놓지만, 오늘은 다른 손님이 없는 만큼 문을 열어두었다. 손님들은 못 봤지만, 한길은 문틈으로 수시로 검은 머리와 하얀 요리사복이 스쳐 가는 걸 봤다. 몇 명이 숨어서 엿듣고 있었던 거다.
‘궁금하긴 했겠지.’
일주일간의 극기 훈련 끝에 나온 테이스팅 메뉴다. 심지어 이번에는 주방 요리사들이 직접 개발한 요리도 포함하고 있었고.
이해는 하지만. 손님이 식사하는 동안 요리사는 무조건 주방을 지켜야 한다. 만에 하나 그들의 모습을 들켰다면,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다.
“누구야? 솔직히 안 말하면 연대 책임이다.”
“수셰프, 석우, 승환입니다, 셰프!”
세 명이나 숨어있었나.
그것도 이제 수셰프가 된 경우까지.
한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소희가 나섰다.
“니들 세 명은 이번 주 스태프 밀이랑 후드 청소다.”
“후드 청소라면 주방 전체 후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알겠습니다, 셰프!”
후드 청소는 손이 닿지 않는 곳을 깨끗이 닦아야 하는 만큼 힘든 업무이지만, 벌을 받는 요리사들은 활기차게 대답했다.
손님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직접 들었으니까. 극찬이 이어질 때마다 느낀 감동. 한길이 주방의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라고 말했을 때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그걸 직접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대가로 청소쯤이야…
“너무 들떠 있지 말고 디너 타임 준비하자.”
“언제까지 놀고 있을 거야?”
한길의 말에 소희가 다그치기 시작했고, 요리사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물론, 조용히 일하지는 않았다.
“이 배신자!”
“배신자라니, 나는 처음부터 셰프에게만 충성을 맹세했거든?”
“숨겨도 소용없어. 거짓 탐지기능쯤은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있을걸?”
“그나저나, 무슨 책을 읽은 걸까?”
“난 유튜브가 더 궁금한데? 슬아라면 알지 않을까?”
“걘 너무 비싸.. 이번 달은 너무 뜯겨서…”
여전히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지만, 손은 움직이고 있으니 놔두기로 했다. 적당히 주방이 굴러가기 시작하자, 한길은 소희를 따로 사무실로 불러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죠?”
주방에서 엄격한 표정을 짓던 소희는, 단둘이 남게 되자 어린아이같이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 역시 상당히 들떠 있었다.
지이이잉!
그 순간, 한길의 전화가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
– 부에노세라. 에 퀘스토 일 텔레포노 디 한길? 소노 로씨. 치 씨아모 인콘트라티 프리마 오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탈리아어.
오늘 만났던 셰프다.
아까 명함을 교환하긴 했지만, 말도 안 통하는데 무작정 전화를 걸어서 어쩌자는 건지.
“유셰프, 통역 좀 부탁해요.”
한길이 전화기를 건네주자, 소희가 우렁찬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말투만 들으면 대화를 하는 건지 싸우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캐비어 양식장을 소개해 줄 수 있냐고 묻네요.”
“그쪽에 여쭤보고 괜찮다고 하시면 알려드리죠.”
“그리고 자기 호텔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데 셰프의 캐비어 페이스트를 소개하고 싶다는데요?”
“레시피를 알려줄 순 없죠.”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게 아니라 셰프가 직접 행사에 참여할 수 있냐고 묻는데요?”
호텔 행사에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나? 의외의 제안이었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할게요.”
소희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한길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물었다.
“고민도 안 하고 바로 오케이 하시네요?”
“거절할 이유가 없죠. 돈을 주고서라도 경험하고 싶은데.”
다음에 여는 레스토랑은 호텔에 입점할 계획이지만, 한길은 한 번도 호텔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호텔 행사를 내부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외부 일정이 생기면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점.
“레스토랑이 정상화하려면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그동안 애들이 너무 풀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렇죠?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면 몸이 망가지니까요. 안 그래도 몇 가지 훈련법을 생각해뒀는데…”
“바빠질 때를 대비해서 테이스팅 메뉴를 집중적으로 훈련 시키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셰프에게는 믿음직한 오른팔인 ‘헤드 셰프’가 있잖아요?”
소희의 말투가 이상하다. 묘하게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데다가, ‘헤드 셰프’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는 무언가에 도취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맡겨 주세요.”
사실 소희는 말로 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소희가 헤드 셰프가 된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만 보내왔다.
그런데 오늘은 한길 없이, 홀로 레스토랑 시설을 안내해주었다. 자신이 이 레스토랑을 이끌어가는 헤드 셰프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외부인이 헤드 셰프라고 불러줄 때마다 짜릿하기까지 했다.
“심사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도 알아봐 주시고요.”
“안 그래도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내일까지 꼭 알아보겠습니다. 헤드 셰프에게 맡겨주세요.”
#
심사 일정에 대해서는 얼마 안 있어 알게 되었다.
“뭘 두고 가셨나요?”
“아닙니다.”
슬아가 불러 홀로 나가니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상공회의소 소장이었다.
“그러면 심사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요, 서류는 이미 보냈습니다. 이탈리아 쪽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려야 하니 1-2주 걸리겠지만, 너무 걱정마시죠.”
“그러면 무슨 일로?”
그 말에 소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는 예약만 가능한가요? 다섯 명인데 일행은 잠시 후에 도착할 겁니다.”
손님으로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여기서 식사했건만. 머쓱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소장은 조심스레 한길에게 질문했다.
“메뉴에 라자냐가 따로 없던데, 별도로 주문이 안 되나요?”
“네, 테이스팅 메뉴에만 포함된 요리입니다.”
“비용은 낼 수 있는데…”
“레스토랑 방침이어서요.”
“아쉽네요…”
소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길은 단호했다.
가정식 메뉴는 든든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지만, 테이스팅 메뉴는 다르다. 단순하게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그 요리 하나하나에 들어간 생각과 맛을 음미하며 먹기를 바랐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 양껏, 질리도록 먹는 것보다는 약간의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 게 좋다. 그편이 재방문을 유도할 테니까.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그러면, 목요일에 30명 예약 가능한가요? 비즈니스 디너가 있는데,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하고 싶습니다. 테이스팅 메뉴로.”
“물론이죠.”
“가, 감사합니다.”
소장은 처음 봤었을 때와 달리, 방정맞을 정도로 풀어진 얼굴이었다.
“정말 이곳은 최고입니다! 한국 속의 작은 이탈리아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몰라서 못 먹었던 게 아쉬울 정도라니까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레스토랑이 비어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알려지기만 하면 금방 다시 찰 겁니다. 알리는 데는 자신이 있으니까, 그건 맡겨 주시죠.”
“그러면 감사하죠.”
인사치레라고 생각했지만, 소장은 진심이었다.
소장은 그 후로 매일같이 레스토랑을 찾아왔다. 업무상 식사를 할 때는 무조건 한길의 레스토랑에서 먹었고, 외부일정이 없는 날은 점심시간에 직원들을 끌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소장이 다녀간 다음 날부터 이탈리아인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의 소장은, 한국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기업인과 자영업자들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도, 소장이 찾아온 바로 다음 날부터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오기 시작했다. 레스토랑뿐 아니라, 살루미를 판매하는 지하 매장을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레스토랑이 한적하니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더욱 눈에 띄었다.
“저기는 뭐길래 저렇게 외국인들이 많지?”
“거기잖아, 거기. 카키 레스토랑.”
“그래? 그럼 저 사람들 다 이탈리아 사람들일까?”
“그러게? 저렇게까지 찾아가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건가?”
이탈리아인들이 찾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그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지나가던 행인들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전처럼 줄을 설 정도로 바쁘진 않았지만, 손님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한길은 큰일을 치룬 요리사들의 긴장이 풀어지는 걸 가장 우려했지만, 그럴 걱정은 필요 없었다. 레스토랑이 텅 비는 일은 없었고, 특히 소장은 올 때마다 대량으로 테이스팅 메뉴를 주문해서 실전 훈련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한길은 안도하며 로씨가 초청한 행사로 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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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 셰프! 그라치 페 에세르 베뉴토!”
“와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네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로씨가 한길을 오랜 친구처럼 맞이했고, 한길의 옆에 있는 데니가 통역을 해주었다.
호텔 행사에는 데니와 함께 참석했다. 어차피 기본적인 와인 메뉴와 설명은 매뉴얼로 만들었으니 하루쯤은 소믈리에가 없어도 된다.
무엇보다, 데니는 향후 호텔 지점을 열 때 꼭 필요한 직원인 만큼, 함께 이 행사를 경험하고 싶었다. 덤으로 통역까지 가능하고.
이번 행사는 ‘로씨 셰프와 함께하는 캐비어 피크닉’이라는 이름이었다. 소수의 손님을 초청하여 열리는 피크닉으로, 캐비어 시식, 캐비어 요리 데모, 캐비어 와인 페어링, 그리고 캐비어 만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피크닉이라는 이름답게 행사는 호텔의 정원에서 열렸다. 핑크색 수국과 장미로 수놓아진 정원은 퀘스트 속 정원을 떠올릴 정도로 화려했다.
“신경을 많이 썼네. 이건 호텔 사람들이 직접 한 건가?”
“인근 플로리스트를 따로 고용해서 맡겼다고 하네요. 데코는 총지배인이 맡고 있어서 자세한 건 모른다고 하고요.”
로씨 셰프는 바쁠 텐데도 한길의 옆에 찰싹 붙어서 안내를 해주었다.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걸까 싶을 정도의 질문에도 흔쾌히 답을 해주었고.
“오늘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미각을 제대로 만족시킬 수 있는, 세계 3대 진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피크닉을 준비해 봤습니다.”
잠시 후 손님들이 도착하자, 총지배인의 간단한 멘트 후에 행사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순서는 시식.
총 네 개의 테이블 위에 벨루가, 오세트라, 세부르가 등의 캐비어가 마련되어 있었다. 네 번째 테이블에는 한길의 캐비어 페이스트가 차려졌다.
“이런 건 처음 봐요! 완전 신기해!”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귀족들이 먹던 방식대로 만들어 본 겁니다.”
“귀족의 요리라니… 하나 더 먹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셰프님 레스토랑에서도 이 메뉴가 나오나요?”
“테이스팅 메뉴에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길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며 시식을 권했다. 한번 페이스트를 맛본 손님들이 또다시 찾아오는 바람에 한길의 테이블 앞에만 길게 줄이 서 있었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네.”
시식을 모두 마친 후 한길이 안도하자, 데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 진짜 페이스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오늘 행사에 참여한 손님의 대다수는 여성 손님이었고, 그들의 눈길은 캐비어보다 한길에게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막상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후우… 형은 인생을 즐길 줄 몰라. 진짜 나한테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무슨 재능?”
“아니에요. 그나저나, 저 셰프도 계속 형만 쳐다보는데?”
“그렇지?”
손님들 외에도 한길을 눈여겨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로씨 셰프.
이상하게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얼굴을 들면 어김없이 로씨와 눈이 마주쳤다. 감시 당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시선은 요리할 때 더욱 따가워졌다.
다음 순서는 캐비어를 활용한 간단한 요리 데모. 로씨는 한길에게 메뉴 하나를 보여줄 수 있는지 부탁했고, 한길은 흔쾌히 승낙했었다.
“오늘 보여드릴 요리는 에그 캐비어입니다.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요령만 알면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죠. 분위기 있는 브런치에도, 칵테일 파티에도 어울리는 메뉴입니다.”
에그 캐비어는 스크램블드에그, 생크림, 그리고 캐비어를 함께 먹는 요리다. 계란 껍데기 안에 스크램블드에그를 담고, 그 위에 생크림과 캐비어를 올려서 장식한다.
탁!
한길은 가장 먼저 특별 도구를 이용해서 계란을 깨트렸다. 단면을 깔끔하게 자를 때 사용하는 도구다. 계란 내용물은 스테인 냄비에 넣어주고, 껍데기는 깨끗하고 씻어준다.
“코팅된 프라이팬이나 냄비 말고 스테인 제품을 이용하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기스가 나거든요.”
이 요리의 핵심은 스크램블드에그와 생크림.
언뜻 보면 쉬울 것 같지만, 약간의 비법을 더해 특별함을 부여한다.
“스크램블드에그는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죠. 너무 익히면 고무 같은 식감이 되고 퍽퍽하니까요. 부드럽고 촉촉한 스크램블을 만드는 비결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버터.”
한길은 냄비 안에 넉넉하게 버터 한 스푼을 넣었다. 그리고 곧이어 거품기를 꺼내 들었다.
“두 번째는 공기입니다. 계속 저어주면 계란의 입자 안에 공기가 주입되어 뭉치지 않고 폭신해지거든요.”
촤락촤락!
설명을 마친 한길은 거품기로 계란을 마구 휘저었다.
“이 요리의 포인트는, 계란을 익히는 동안에도 저어주는 겁니다. 이러면 수플레에 가까운 질감이 되기도 하거든요.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어렵지는 않죠.”
그 말과 함께 한길은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불은 약하게. 손은 쉬지 않으면서. 피곤할 법도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행사 내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한길이었지만, 요리할 때의 미소는 전혀 달랐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얼굴.
“너무 바짝 익히면 안 됩니다. 불에서 내린 후에도 계란은 익거든요. 이 정도로, 되직한 수프 같은 질감이 되었을 때 내려주고 껍데기 안에 담아주시면 됩니다. 쉽죠?”
한길이 잠시 얼굴을 들며 작은 웃음을 흘리자,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한 목소리로 행복하다는 듯이 요리하는 한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었다.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지금 당장 요리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다음은 생크림입니다. 일반적인 생크림을 써도 되지만 조금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이걸 씁니다.”
한길이 꺼낸 비밀 재료는 보드카였다.
생크림 안에 보드카를 소주잔 한잔 정도. 그리고 레몬즙을 조금 뿌려주면 된다.
“캐비어를 오랫동안 먹어온 러시아에서는 보드카와 캐비어를 페어링하죠. 보드카는 와인보다 향이 약해서 캐비어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이 안에 있는 알코올이 입안을 깔끔하게 정돈해주어서 캐비어 맛을 더 도드라지게 합니다. 입안을 소독하고 순수하게 캐비어의 맛을 즐길 수 있죠.”
촤락촤락.
생크림도 거품기로 저어주어 필요한 조직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완성되면 짤주머니를 이용하여 스크램블드에그가 담긴 계란 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는 것이 캐비어 한 스푼.
인원수에 맞게 서른 개를 모두 완성하고 나눠주자, 손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와! 이거 정말 맛있네요. 진짜 집에서 만들어도 이 맛이 날까요?”
“물론이죠.”
“이것도 레스토랑에서 판매하시나요?”
“아뇨, 이건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드시라고 알려드리는 겁니다.”
버터 향을 품고 있는 스크램블드에그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열이 가해져 쭈글쭈글 뒤틀리고 메마른 계란이 아니었다. 따뜻한 크림 수프와도 같이, 온화하고 넉넉했다.
그 위에 얹어진 생크림은 청량감을 주었다. 보드카가 들어갔지만, 술맛은 거의 나지 않고 조금 쌉싸래한 정도.
무엇보다, 캐비어의 향이 훨씬 진했다. 아까 시식한 캐비어를 사용했지만, 그 몇 배나 됨직한 향. 약간의 미네랄 맛이 느껴지는 바다의 풍미와 감칠맛. 시중에 판매되는 캐비어를 사용하여 염도가 강했지만, 스크램블드에그와 생크림이 소금기를 충분히 중화시켜주어 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셰프님, 다음에 꼭 찾아갈게요.”
“다른 메뉴도 너무 궁금하네요.”
“언제든 오세요.”
손님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후, 한길은 퇴장했다. 이제부터는 나머지 행사를 구경만 해도 된다.
소믈리에의 와인 페어링 강의와 시식이 이어졌고, 별도로 마련된 피크닉 테이블에서 코스 요리가 차려졌다.
조용히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하고 있는 한길에게 로씨가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화려하네요. 단순히 맛만 보는 게 아니라 어딘가 교육적인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행사 참가비용은 30만 원이라고 들었다. 비싼 것 같지만, 손님은 고작 서른 명. 플로리스트를 고용해서 들인 데코 비용과 요리에 사용된 캐비어 비용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다. 하지만 이것까지 말하면 실례다.
“이런 행사를 자주 하시나요?”
“주기적으로 많이 하죠. 다음 주부터는 딸기 뷔페, 여름 메뉴로는 빙수를 준비하라는데 금액대는 6만 원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SNS에 퍼질만한 메뉴를 만들라고 하니 이런저런 고민이 많죠.”
“호텔은 조금 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군요.”
“호텔도 파인다이닝이 알려지지 않을 때나 호텔호텔 했죠. 지금은 해외에서 공부한 셰프들이 차린 레스토랑도 많고, 오히려 호텔이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있으니 트렌디 해지려면 노력해야죠. 특히 당신 레스토랑 같은 곳과 경쟁을 하려면 말이죠. 정말 전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한 끼였습니다. 요리로 감명을 받은 지도 참 오랜만인데 말이죠. 이것이 진짜 재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죠.”
무안해질 정도의 칭찬이 이어졌다. 정말 로씨 셰프가 그런 칭찬을 하는 건지, 아니면 소희의 통역과 데니의 통역이 뉘앙스가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경쟁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아닙니까?”
“일단은 파이를 키우는 게 먼저죠. 경쟁이라고 해도 쌈박질을 하는 게 아니니 말입니다. 셰프끼리 교류도 하고, 좋은 재료 정보도 공유하고. 식음료위원회에서도 제법 좋은 교류 행사를 많이 하니 앞으로 많이 뵙겠군요.”
사실상 심사에 합격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후에 로씨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당신은 스타쥬를 해볼 생각이 없습니까? 생각만 있다면 몇 군데 소개할 수 있는데요.”
노셰프도 그렇고 로씨도 그렇고. 계속해서 권유하는 걸 보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거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미 다른 분이 알아봐 주고 계셔서요. 레스토랑이 안정되면 다음 달 즈음에 가려고 합니다.”
“적어도 이탈리아 요리에 관해서라면 제가 더 좋은 자리를 소개할 수 있을 텐데. 어차피 스타쥬는 가기로 하고 캔슬해도 크게 실례되거나 무례한 건 아니니 저도 알아보는 게 어떻습니까? 들어보고 여러 선택지 중에서 결정을 내려도 될 텐데요.”
“그러면 부탁해도 될까요?”
“맡겨 주시죠.”
상대가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잠시 후, 로씨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떠나자 데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했다.
“형, 유럽 가요?”
“아직 레스토랑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 지금 그런 말이 나오면 더 불안해 질 테니까.”
“물론이죠. 그나저나 한 달 후라니, 이런 우연도 있네요?”
“왜, 너도 유럽 가?”
“… 아니, 그럴 리가요.”
“방금 대답에 공백이 있었는데?”
“아니에요, 하하. 제가 형에게 뭘 그리 숨기겠어요.”
데니는 얼굴과 말이 따로 놀고 있다. 아무리 봐도 당황하는 모습이었으니까. 한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데니가 사라지면 곤란하니 제대로 추궁하려 했지만,
지이이잉!
그 순간에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슬아였다. 오늘 행사가 있는 걸 알고 있으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않을 텐데.
“어, 슬아야. 레스토랑에 무슨 일 있어?”
“셰프! 왜 깨톡 확인 안 하세요?”
“뭐 보냈었어? 왜, 무슨 일인데?”
“카사장님이! 지금 기사 뜨고 난리에요! 그냥 링크 꼭 열어보세요! 저도 손님 받아야 하니까.”
한길은 전화를 끊고 깨톡을 열었다.
조만간 터질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날이 오늘이었나 보다.
슬아가 보낸 링크의 제목을 본 한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단독] 카키 최측근 단독 인터뷰, “탈세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