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7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75화(175/325)
175. 밝혀진 진실
슬아가 보낸 기사는 하나가 아니었다. 한길이 행사로 나와 있는 동안 여러 사건이 연달아 터진 것.
그 시작은, 카키의 지인과 진행한 인터뷰였다.
– 카키는 지금도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해명하기 시작하면 분명 차명계좌의 자금 사용처에 대해 궁금해할 테고, 그러면 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인터뷰한 지인은, 자신이 논란의 차명계좌 주인임을 밝혔다. 카키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처럼 지내온 사이로, 거리 시절부터 함께 해왔다고 했다. 카키는 대외적으로 자신이 가출청소년 출신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던 거다.
– 거리로 나온다는 게 집에 있을 환경이 못 돼서 그런 거잖아요? 결국 제 동생도 같은 이유로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동생만 찾아서 데려온다는 게 동생의 친구와 ‘가족’까지 데려오는 바람에… 결국 열두 명이나 데려오게 된 거죠. 제 벌이로는 식욕 왕성한 고등학생 열두 명의 밥값도 못 댑니다. 그걸 알게 된 카키가 생활비를 대주고 있는 거고요.
카키의 탈세가 문제시된 건, 세금을 빼돌리고 그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인은 카키가 해당 자금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고 밝혔다. 모든 금액은 아이들의 의식주에 사용했다며 영수증 더미를 증거로 내밀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의 학원비 영수증까지 있었다.
한길의 옆에서 함께 기사를 읽던 데니는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카키 형 이런 사람이었어요? 형은 알고 있었어요?”
“어.”
카키의 입을 통해 들었으니 한길은 알고 있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자고 카키를 설득한 이도 한길이었고.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었다.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카키가 이 사실은 숨기고 싶어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친구에 대한 걱정.
“그러다 형택이 감옥 가면? 저는 그냥 욕먹고 끝나겠지만, 걔는 그렇게 안 넘어가잖아요?”
괜한 우려는 아니었다. 이혼 후에 자녀가 전 배우자 집에 찾아가도 유괴당했다며 고소하는 부모도 있는 현실이다. 조용히 넘어갈 리 없다.
하지만 한길은 그럼에도 밝히는 게 현명하다는 입장이었다.
“2년 전 국세청의 비공식 기록도 밝혀낸 기자들인데, 이대로 끝까지 숨길 수 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어차피 들킬 사실이라면, 기자의 입을 통해 왜곡된 보도로 나가느니, 차라리 카키 측에서 입장을 먼저 밝히는 게 나아요.”
“그건 그렇지만, 하아…”
카키가 반대한 두 번째 이유는, 한길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이건 제 스타일이 아닌데… 멋이 없잖아요.”
“……”
“좋은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이런 게 알려지면 오글거려요. 졸지에 열두 명 애아빠가 된 친구 놈이 불쌍해서 밥값만 댄 건데. 잘못하면 이미지 관리하려고 브로를 팔아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카키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그 친구에게도 선택권을 주시죠. 카키가 의리를 중요시하듯, 그 친구도 분명 그럴 테니까.”
의리는 쌍방향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자신이 벌인 일로 카키가 돌을 맞는데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다행히, 친구는 스스로 책임지겠다며 나섰다. 그는 미리 법률 자문을 구하고 담당 관할 아동청소년과에 가서 자신의 상황을 밝혔다. 그리고 기자에게도 연락하여 단독 인터뷰를 낸 것이었다.
기사에 대한 댓글 반응은 갈렸다.
┗ 탈세가 아니라 애들 돌보고 있었다고? 너무 안 어울리는데 ㅋㅋㅋ 이 정도면 캐붕 아님?
┗ 같은 처지에 있던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던 것 아닐까요? 카키도 거리 시절 얘기는 자주 하니까요
┗ ㄴㄴ 정말 돕고 싶었다면 차라리 기부를 할 것이지. 애들을 낚아채서 돌본다? 저 친구가 이상 성욕자면 어쩌려고?
┗ 이걸 믿냐. 아무리 봐도 이미지 세탁하려는 건데. 애들도, 친구도 픽션.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딨음?
┗ 카하다 추키야
물론, 기사 하나로 여론이 바뀌지는 않았다. 평소에 건방진 이미지를 내세우고 마이웨이로 살아온 카키였으니, 이런 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와중,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사건 내내 조용히 있던 카키가 신곡을 발표한 것.
<기자가 기자 했네>라는 제목의 곡은, “2년 전 실수를 굳이 전 국민 앞에 까발려준 기자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그리고 기자들이 말하는 “연락은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은” 상황의 진실을 밝히는 곡이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디스 곡이었다. 카키 나름 머리를 굴려서 생각한, 자신다운 ‘멋있는 대응’이었다.
곡의 중간에는 녹취록이 담겨 있었다.
카키의 매니저와 기자가 나눈 통화내용이었다.
– 10분 후에 비행기 타야 하는데요. 무슨 용건이시죠?
– 바쁘시면 저녁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저녁에는 연락이 안 된다니까요? 다음 주까지 해외 일정이라 통화는 어렵고요
– 그러면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뚝!
카키는 신랄하게 기자를 공격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섞인 가사를 요약하자면, ‘너 사생활 침해 좋아하지? 똑같이 당해도 좋을까?’였다.
카키는 ‘고소하네 마네 귀찮게 굴지 말고 그냥 계좌번호 보내. 2천만 원쯤은 소스 사용료로 치고 그냥 줄 테니까’라며 곡을 마무리했다.
이 곡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엇갈렸다.
┗ 저거 독점 기사라 기자 누군지 빤히 다 아는데, 저놈 커리어 끝이네
┗ 기레기 새끼들 ㅋㅋ 내 속이 다 후련하네
┗ 저건 너무 가지 않았나? 카키 인성 ㅎㄷㄷ
┗ ㄴㄴ 자업자득
┗ 이래야 카키지! 응원해요, 형!
기자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카키의 행동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카키의 코어 팬층은 환호했다.
어떤 입장이든 간에, 양쪽 모두 이 자극적인 진흙탕 싸움에 열광했다. 카키의 신곡은 나오자마자 모든 음원 사이트의 1위로 등극했으니까.
그러던 중, 또 다른 기사가 터졌다.
[이탈리아 정부, “카키 레스토랑, 실력은 확실하다”] [교황의 셰프 로씨, “한국에서 이 정도의 이탈리안 요리가 나오다니 믿을 수 없어”]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인증 합격 소식이었다. 카키가 이슈화되자,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보도자료를 뿌린 것.
– … 교황의 인정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로씨 셰프는 “이한길 셰프는 이탈리아인보다 이탈리아 요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의 테이스팅 메뉴에 포함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의 다섯 가지 맛’은 이탈리아의 국보라고 불리는 파르미지아노 치즈가 품은 모든 맛을 선보이는 요리이며, ‘라자냐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모두 가진 추억과 감성까지 ….
모든 기사는 한길의 요리를 상세히 다뤘고, 카키 논란과 엮이며 해당 기사들은 더욱 널리 퍼져나갔다.
┗ 뭐야, 결국 실력은 있었다는 거잖아?
┗ 여기 이탈리아 사람들 우글우글거림. 적어도 본토 입맛에는 잘 맞는 듯
┗ 그런데 처음부터 카키 레스토랑에 문제 생겨서 걸린 거 아님?
┗ ㄴㄴ 식당 잘나가니까 세금은 잘 내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는 사람이 신고한 것임
┗ 에이, 설마 그 정도로?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겠냐는 태도로, 카키와 레스토랑을 공격하던 이들도 슬슬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정말 연기는 나지 않았는데 한 사람을 마녀사냥으로 몰아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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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왜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기다렸는데!”
“뒤풀이 가시죠, 뒤풀이!”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다들 이미 축하주를 몇 잔 걸쳤는지, 시뻘건 얼굴로 한길을 보자마자 연행했다. 뒤풀이 장소인 한길의 집으로.
테이스팅 메뉴의 심사가 있던 날, 요리사들은 당장 뒤풀이가 필요하다고 했었지만, 한길이 금지했었다. ‘결과가 나온 후에 하는 게 맞다’며. 이런 건 칼같이 챙기는 식당 식구들이었다.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할 텐데…’
당장 내일부터 다시 손님이 몰려올 테니 술을 마실 여유도 체력도 없다. 이왕이면 대충 식사만 하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내가.. 여기 문 닫…게 놔두겠냐고! 안 그래!”
헤드 셰프인 소희가 앞장서서 병나발을 불고 있는데 한길이 반대하기에도 뭐 했다. 요리사들 앞에서 그녀의 체면은 세워줘야 하니까.
“내 메뉴도 기사 나간 거 봤냐?”
“이러면 악플 달았던 새끼들 다 고소 때려도 되는 것임? 나 다 캡처했는데?”
“굳이? 그러면 너무 구질구질하잖아?”
“마, 사장님 스웨그를 보고 배우라고. 야, 누가 카사장님 신곡 좀 틀어라! 스피커!”
그동안 억울하게 당하기만 했던 요리사들은, 억압된 심정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이제야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게 마냥 좋은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하나같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난장판.
그 와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귀한 양주를 두 상자나 들고 나타난 카키였다.
“뒤풀이한다는 소식이 들려서 선물을 갖고 왔는데…”
“크흐! 카사장님, 충성! 막내야, 뭐해? 가서 사장님 짐 좀 덜어드려라!”
“카사장님, 오신 김에 신곡 라이브!”
“라이브!”
“일정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 하는데…”
요리사들은 카키를 붙잡아 라이브를 강제할 심산이었지만, 이미 거나하게 취한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이들의 허우적대는 손길을, 카키는 날쌘 몸놀림으로 피했다. 그 모습이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의 한 장면 같았다.
“셰프, 잠깐 얘기 좀 해도 될까요?”
카키가 한길을 부르자, 한길은 반색했다.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 잠을 자고 싶었지만, 좀비 늪에 갇혀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집 밖으로 나가 단둘이 남게 되자, 카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레스토랑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고 해요. 미리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요.”
“어차피 돈이 남게 되어서 그래요. 다른 사업 다 접었거든요. 그걸 한 곳에 몰아넣는 겁니다.”
카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카키는 한길의 레스토랑 외에도 각종 사업에 손을 대고 있었다. 대부분 한길의 계약과 비슷한 형식으로, 카키는 자금을 대고 직접 운영하는 파트너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한길처럼 대응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번 기사가 터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그간 잘 지내온 사업 파트너들은 하나같이 카키에게 연락을 하며 책임을 물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카키와의 연을 끊고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잘 나갈 때는 두 팔 벌려 환영하다가, 정말 필요할 때 돌아서는 사람들. 익숙한 일지만,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가장 늦게 한길에게 연락을 했을 때, 카키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피해 보상을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말부터 꺼냈었다.
– 기사 내용은 사실인가요?
하지만 한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지만, 다른 파트너들에게 듣지 못한 질문. 그들은 사실이고 말고를 떠나서, 피해를 보았으니 돈을 내놓으라는 입장이었다.
– 돌아와서 철저하게 준비한 후에 입장을 밝히죠. 지금 상황이라면 묻힐 테니까.
하지만 한길은 너무나 당연하게 카키의 편이 되어주었다. 딱히 카키에 대한 우정이나 의리 때문은 아니었다. ‘네가 잘못한게 없으니까’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으니까. 만약 카키가 정말 기사대로 행동했었다면 한길은 아마도 카키를 버렸을 테지.
하지만…
이상하게…
울컥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직접 전달하고 싶었지만, 직접 입 밖에 내는 건 역시 오글거렸다.
“어쨌든 알아두시라고요.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국 카키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못한 채 떠났다.
그리고 홀로 남게 된 한길은, 자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아련한 눈길로 침실을 보고 있었던 거다. 거실을 거치지 않고 침실까지 가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나중에 2층 전용 층계를 만들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네.’
요리를 시작하고 10년, 항상 혼자가 익숙했는데. 어느샌가 제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정도로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다. 고마운 일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저 침대가 그리웠다.
“셰프?”
여전히 집에 들어가길 망설이는 한길의 눈에, 현관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슬아가 보였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아니,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건데요? 셰프는 왜 그리 하늘만 봐요?”
“… 방에 가고 싶어서.”
“흐음….”
조용히 한길의 옆으로 다가온 슬아는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한참 후에 말을 꺼냈다.
“그런데 셰프, 이제 슬슬 다시 바빠질 거 같잖아요?”
“그렇지?”
“만약에 말이에요. 제가 한 달 후에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기 전에 직원들 훈련도 시키고, 저를 대신할 사람도 구한다면요?”
한길은 놀라서 슬아를 바라봤다.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몰려오는 손님을, 슬아가 없이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동안 홀은 온전히 슬아에게 맡겨왔으니 대신해줄 사람도 없다. 심지어 한 달 후라면, 한길이 잠시 가게를 비울 시기이다.
하지만 슬아는 생각 없이 이런 말을 꺼낼 사람도 아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일은 아니고 그냥 조금, 일이 맞기는 한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라서요. 그냥 그때 돼서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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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똑바로 안 차려?”
“셰프, 죽을 것 같아요…”
“소리 지르면 무언가 올라오는…”
“지금부터 숙취 불평하는 새끼들 다 1년간 금주령이다!”
“아니, 그건 너무…”
다음날,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요리사들은 하나같이 기어갈 듯한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왜 이리 한가해? 수셰프, 오늘 테이스팅 메뉴는 몇인분 준비해야 하지?”
“재료는 30인분 어치로 미리 주문해 두었습니다.”
“들었지? 디너 서비스 전에 30인분 다 준비해놔! 이제 런치타임에 밑 작업은 못하는 건 알고 있지?”
한길은 주방을 소희와 경우에게 맡기고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오늘부터 다시 바빠진다. 이제 막 수셰프가 된 경우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저 둘이 직접 이곳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의외로 신경 써주고 있네.’
소희는 오늘따라 요리사들을 더욱 윽박지르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에서 고의성이 느껴졌다.
그녀가 까다롭게 굴수록 요리사들은 경우에게 더 의지할 거다. 새로운 수셰프의 입지와 역할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반면, 경우는 힘이 한껏 들어간 모습이었는데…
“수셰프 서 있는 자세가 뭔가 셰프 같지 않아?”
“그렇지? 저 다리 벌리는 각도 하며 팔짱 끼는 각도까지… 트레이싱 한 거 같은데?”
“나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들었는데… 지령까지 똑같이 반복하더라니까. 나는 세계 제일 요리사다…라면서…”
한길이 봐도 경우의 자세는 자신과 너무 똑같았다. 무의식인 습관까지 따라 하는 걸 보니 소름까지 돋았다. 평소에 얼마나 유심히 관찰했으면 저게 가능한 건지…
“라구 간이 부족해, 소금 조금 더 넣고.”
“수비드 소고기 몇 개 남았지?”
“세 개입니다, 셰프.”
“수비드는 시간이 더 걸리니까 미리 네 개 더 넣어놔.”
하지만 경우가 따라 하는 건 단순히 서 있는 자세만이 아니었다. 간을 확인하고, 다음 주문까지 계산하고, 요리사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매의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허… 죽겠다.”
“원래 이게 이렇게 힘들었나?”
“그러게, 오랜만이니까 진짜 쓰러질 것 같네?”
예상대로. 점심부터 손님이 들이닥치며 예전의 정신없는 회전율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온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요리하던 요리사들은, 브레이크타임이 되자 쓰러졌다.
하지만 디너 서비스가 남아있었다.
디너 타임에는 열 개 이상의 복잡한 부품을 정교하게 조립해야 하는 테이스팅 메뉴가 나간다.
난이도는 더욱 올라갔지만, 소희와 경우의 호흡이 좋았다. 주방 모두의 팀워크도 좋았고. 한길은 하루종일 지켜보기만 할 뿐, 직접 나설 일이 없었다.
‘이 정도면…’
앞으로 한 달간 이대로 굴러가면 제대로 자리를 잡을 거다. 어느 정도 이곳을 맡기고 떠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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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먼저 숙소로….”
“내일도 열심히….”
마감 후에 요리사들은 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숙소’로 떠났고, 한길은 레스토랑에 남았다. 집이 너무 어수선해서 차라리 레스토랑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준비할 게 많았다.
난생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여권도 준비해야 하고, 현지 상황도 공부해야 한다. 차기 퀘스트 속에서는 황제의 연회도 벌여야 한다. 현대에서 쓸만한 정보는 최대한 다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정신없이 알아보다 보니 어느덧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한길은 펼쳐둔 책을 덮어두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데…
“간다?”
“잠깐! 마음의 준비 좀 하고…”
“대체 마음의 준비가 얼마나 더 필요한데?”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처음이니까 무섭단 말야…”
이 시간에 레스토랑의 홀에 불이 켜져 있었다.
게다가 말소리까지.
목소리의 주인은 데니와 슬아였다.
그 둘이 이 시간에 레스토랑에 남아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홀도 손님 전쟁을 치렀으니 저 둘도 피곤할 텐데.
“너희 둘, 지금 뭐 해?”
“아, 형!”
“셰프?”
한길이 말을 걸자,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들 앞에 있던 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트 위에는 휴대용 버너와 프라이팬이 올려져 있었다. 데니의 손에는 브랜디가 들려져 있었고. 그것만 봐도 둘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파악이 되었다.
플람베.
손님의 테이블 앞에서 도수가 높은 주류를 붓고 불을 입혀서 맛을 내는 요리다. 문제는…
“초보가 다루면 위험할 텐데?”
알코올은 휘발성이 강한 만큼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어 자칫하면 화재로 번질 수 있다. 숙련된 요리사라면 모를까, 요리 초보인 이 둘이 감당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다.
“레스토랑에서 밤늦게, 그것도 레스토랑 도구로 화재 위험이 있는 행위를 하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데?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형, 그게…”
친분을 떠나서 이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문제다. 한길의 얼굴이 차갑게 굳자, 데니가 슬아의 눈치를 살폈다. 이 행동을 주도한 게 슬아라는 뜻이다.
“슬아야, 설명 제대로 해볼래?”
“그게요… 후우…”
슬아는 슬아답지 않게 한동안 망설이면서 고집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한길이 대답을 듣기 전에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깨닫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 사실은 연습 중이었어요.”
“연습? 네가 플람베를 연습할 일이 뭐가 있지? 우리 메뉴에도 없는데?”
“레스토랑 때문이 아니라 그… 사실은 제가 조지 밥티스트 컵에 지원했거든요.”
“조지 밥티스트 컵?”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한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고, 슬아는 설명을 덧붙였다.
“웨이터를 위한 월드컵 같은 거예요. 다음 달에 유럽에서 열리거든요. 이참에 홀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