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7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78화(178/325)
178. 누굴 만나러 간다고?
“조금 쉬었다 할까요?”
“아니.. 필요.. 없네.”
도구를 챙겨서 돌아온 트린키안티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자신이 달려왔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숨 돌릴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본인이 저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바로 시작하죠.”
한길은 테이블로 다가가 닭고기 위에 덮어둔 얇은 천을 걷어냈다. 그러자, 오븐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닭고기가 그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황금빛에 가까운 바삭한 껍질이 눈을 아플 정도로 찔러왔다.
트린키안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와 닭고기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특이한 요리군. 로티세리(rotisserie)는 아닌 거로 보이는데.”
“네, 오븐구이입니다.”
“닭을 통째로 오븐에서 구운 건가.”
“그렇습니다.”
“신기하군, 이건 영국 요리인가?”
이 시대에는 대개 닭고기를 삶아 먹거나 스튜로 먹었다. 물론 구이도 먹었지만, 전기구이처럼 쇠꼬챙이에 꿰어 살살 돌려가며 익힌 구이가 대부분이었다. 오븐을 사용하는 닭요리도 있었지만, 고기를 토막내서 파이 안에 넣는 형식이다.
하지만 한길은 이 시대의 요리법이 아닌, 현대식으로 오븐 통구이를 만들었다.
‘그래야 현대에서 쓸 수 있으니까.’
카빙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현대에 있는 대회에서 써먹기 위해서다. 전기구이와 오븐구이는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그리고 한길은 현대의 조리법에 맞는 카빙을 배우고 싶었다.
트린키안티는 오븐구이가 낯선지, 닭고기를 손가락으로 찔러보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마구잡이로 찔러보는 게 아니라, 계산된 움직임이다. 마치 진맥을 하는 의사와도 같이, 껍질의 질감과 탄성을 살피고 있었다.
“문제가 있나요?”
“아니, 똑같이 해도 될 것 같군. 시작하지.”
트린키안티는 곧바로 몸을 돌리고 테이블 위에 도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두 갈래로 나뉜 포크가 길이별로 다섯 개.
칼도 각기 다른 길이로 네 개.
이상한 집게까지.
일전에 봤던 수술 도구와도 같은 카빙 도구다.
모든 준비를 마친 트린키안티는 짧은 포크로 닭을 고정한 후, 닭의 머리와 목을 톱질하듯 썰었다. 목을 분리한 후에는 자신의 팔 길이만 한 기다란 포크를 가져왔다.
푹!
포크는 닭을 세로로 관통했다. 이 모습만 보면, 현대에서도 한때 유행한 슈하스코. 즉, 브라질식 스테이크와도 비슷해 보였다.
포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한 트린키안티는 드디어 칼을 들었다. 그런데 칼을 쥐는 모습이 이상했다.
주먹을 쥐듯 꽉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엄지와 검지만 이용해 칼을 잡고, 나머지 손가락은 허공에 떠 있었다. 새끼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찻잔을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게 잡으면 힘이 안 들어갈 텐데요.”
“요리사와 트린키안티가 잡는 칼은 다르지.”
“이유가 있나요?”
“그걸 알려줘야 하나? 자네는 분명 내 기술을 ‘보여달라’고 했을 텐데?”
퉁명스러운 말투. 친절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나 보다. 따지고 보면 한길이 협박하다시피 불러낸 상황이니 이해는 갔지만, 계속 이렇게 나와서는 곤란하다.
‘일단 세 번만 지켜보고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다른 트린키안티를 찾아봐야겠네.’
한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으로 칼날이 닿은 건, 날개와 몸통이 이어지는 구간이다.
스윽.
생각보다 가벼운 칼질.
톱질하듯 써는 게 아니라 우아하게 선을 긋는 동작이다. 어떻게 보면 첼로를 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을 그은 후 손목을 살짝 비틀고, 다시 선을 덧대어서 그리고 손목을 비튼다.
몇 번 반복하자, 날개가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대롱대롱 매달릴 정도로 살점이 분리되면, 접시에 대고 마지막 칼질을 한다.
트린키안티는 침묵 속에서 작업했고, 한길 역시 질문을 하는 대신 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힘으로 자르는 게 아니라 날을 이용하는군요. 선은 연골이나 접합부에 긋는 거고…”
생각보다 과학적이다.
칼에 압력을 가하면, 육질에 엉겨 붙은 육즙이 흘러나와 버린다. 물기를 머금은 스펀지를 누르면 물이 잔뜩 뿜어져 나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날만 이용한다. 압력이 아닌, 칼날의 예리함만을 이용해 육즙을 보존하며 자르는 거다.
트린키안티는 닭 한 마리에 무려 스무 개의 선을 그었다. 날개와 다리를 먼저 잘라내고, 몸통은 엉덩이 부분을 먼저, 다음은 가슴살, 마지막은 날개와 연결된 겨드랑이 부분에 선을 그어주었다.
“저도 하나만 해볼 테니 알비치 경은 잠시 쉬고 계시죠.”
트린키안티가 작업을 마치자, 한길은 길버트가 가져온 새로운 닭고기로 방금 본 방식 그대로 카빙을 시도했다.
‘이래서였구나.’
직접 해보니, 트린키안티가 왜 이상하게 칼을 쥐었는지 알 수 있었다. 두 손가락으로 칼을 들면, 힘을 줄래야 줄 수 없다.
스윽. 스윽.
손끝에 신경을 집중하고 선을 긋자, 칼날이 살코기 안에 길을 내는 게 느껴졌다. 손목을 비틀자, 틈새가 벌어지며 길이 넓어졌다. 벌어진 틈새로 다시 한번 길을 냈다.
‘이건 금방 배우겠네.’
원리와 요령을 터득하니 예상외로 쉬웠다.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한길이 고개를 돌리자, 트린키안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다음 요리,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지.”
다음 요리는 양다리 구이.
옛날 만화에서 원시인들이 먹는 그런 고기처럼 생겼다.
이번에도 트린키안티는 말없이 작업했고, 한길은 그의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관찰했다.
양다리 역시 꼬챙이를 꿰듯, 포크를 세로로 관통한 후에 작업한다. 이번에는 닭고기와 다르게, 포크를 살살 돌려가며 불규칙한 선을 긋고 있었다. 한길은 접시 위에 올려진 양고기 살점을 들어 올려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고기 결과 반대 방향으로 써는군요. 하긴, 그래야 연하니까요.”
같은 고기도, 어떻게 써는지에 따라 식감이 달라진다. 이건 스테이크를 여러 방향으로 썰어서 먹어보면 알 수 있다.
고기는 근섬유로 이루어져 있고, 근섬유에는 결이 나 있다. 결을 따라 수평으로 썰면 장조림처럼 길게 찢어지는데, 이러면 씹는데 더 많은 힘이 들어간다. 반면, 근섬유의 길이가 짧으면 더 쉽게 씹히고 연하게 느껴진다.
“부위마다 결이 다르니 써는 방향도 다르겠네요. 이것도 공부가 필요하군요.”
뼈에 붙어있는 고기는 근섬유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있다. 그래서 포크를 돌려가며, 고기의 결을 살피며 잘라야 한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트린키안티는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한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굴을 추슬렀다.
양고기 이후에는 돼지 통 햄과 로티세리 소고기를 작업했다. 이것도 원리는 같았다.
“다음은 생선인가?”
“길버트, 바로 넙치를 준비해줘.”
“네, 마스터 쿡.”
“준비가 안 되었나 보지?”
한길이 명령을 내리자, 트린키안티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질문했다. 사실 생선까지 카빙을 하는지 몰라 준비가 미흡했던 것이지만, 그걸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생선은 나중에 할 겁니다. 여기까지 보여주셨으니, 이제 제가 말한 불타는 카빙을 한번 보여드리죠.”
#
‘스카피가 스칼코가 된 것도 어이가 없는데…’
트린키안티인 알비치 경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 연회의 총괄자는 집사다.
귀족 출신의 집사.
그런데 농부 출신인 스카피를 집사로 임명한 것도 모자라, 영국인 평민 요리사가 공동으로 연회 총괄권을 갖게 되다니!
두 명의 평민이 지시를 내리는 상황. 아무리 작위가 없다고는 해도 자신은 귀족인데! 이 이상의 굴욕은 없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장 그만두겠지만,
‘참아야지.’
황제의 연회를 앞두고 그만둘 수는 없다. 자존심 때문에 황제의 앞에 설 기회를 차버릴 만큼, 알비치는 어리석지 않았다.
‘카빙은 왜 배우려는 거지?’
평민 요리사가 카빙 기술을 알려달라고 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빙은 귀족의 문화.
귀족의 교양과 품격이 담겨있는, 오로지 귀족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다.
최근 들어 부유한 상인들이 많아지면서 너도나도 귀족을 따라 하는 게 유행이 되어 버렸다. 돈 많은 상인이 가난한 귀족보다 귀족 같은 삶을 누리기도 했다. 가난한 남작가 출신의 알비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천한 것들이 감히 귀족의 품격까지 돈으로 사려고 하다니!
‘원숭이처럼 흉내나 내라지.’
알비치는 요리사가 부탁한 대로 카빙을 ‘보여’주기만 할 생각이었다.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평민의 천박함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런 꼴사나운 카빙이 되도록. 그런데,
“힘으로 자르는 게 아니라 날을 이용하는군요.”
요리사의 중얼거림을 듣고 순간 너무 놀라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게 이 기술의 핵심이었으니까.
평민들은 무식하게 도끼로 내려찍듯 고기를 토막 내지만, 귀족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 그러면 닭고기의 소중한 진액이 사라지니 말이다.
“저도 하나만 해볼 테니 알비치 경은 잠시 쉬고 계시죠.”
요리사가 방금 본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는 소름까지 돋았다.
알비치는 이론을 공부한 상태에서, 무려 1년간 연습한 후에야 이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단 하루, 아니, 단 한 번만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고? 이게 가능한가?
“부위마다, 아니 고기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겠네요.”
심지어 이론까지 스스로 터득해버렸다. 괴물 같은 놈이다. 어떻게 무식한 평민이…
“제가 말한 불타는 카빙을 한번 보여드리죠.”
넋이 나간 알비치 앞에 요리사는 자신의 기술을 선보일 준비를 했다.
요리사는 이 기술이 황제까지 매혹시킬 기술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알바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찰스 5세가 누군가.
독일 일대와 스페인, 그리고 신대륙까지. 전 세계의 절반을 다스리는 군주 아닌가. 그런 황제를 사로잡을 기술이라니.
혹시 몰라 일단 요리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믿는 건 아니었다.
“사실 이건 카빙이라기보다는, 카빙과 요리를 결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알비치 경도 조금은 조리를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알비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보고 요리를 하라고?”
“싫으시면 안 해도 됩니다. 말했듯이, 다른 트린키안티를 찾으면 그만이니까요.”
“…”
일단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자, 요리사 앞에 작은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그 위에는 참숯 그릴과 프라이팬, 그리고 몇몇 재료가 담긴 그릇이 세팅되어 있었다.
잠시 후.
주방 보조가 커다란 고기 토막을 들고 나타나자, 요리사는 그 고기를 손가락 두께로 썰고 기름을 두른 팬에 올렸다.
치이이이익!
대단하다고 말한 것 치고는 평범한 요리였다. 고기를 앞뒤로 구워낼 뿐이니까.
킁킁!
그런데 절로 코를 씰룩이게 되었다.
‘원래 요리를 할 때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건가?’
귀족 출신인 알비치는, 요리하는 과정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요리는 천한 하인들이 땀을 흘리며 하는 노동이니까.
그런데…
눈앞의 요리사를 보면 이 행위가 천박하다는 말은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
요리사는 진중한 눈빛으로 고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의 주위로 공기의 흐름이 멈춘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 느낌은…
자신이 카빙을 할 때와 비슷하다.
“익은 고기는 잠시 옆에 내려놓습니다.”
요리사는 팬 안의 고기를 별도의 접시에 덜어놓았다.
“불타는 카빙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 것 치고는 불이 약하군.”
“이제부터 만들 겁니다. 소스를 불태울 거거든요.”
요리사는 아직 기름이 자작하게 고여있는 팬에 양파, 버섯, 마늘과 머스터드를 넣어서 볶아주었다. 그리고 작은 병을 들었다.
“이건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브레위진(bradwjin)입니다. 저는 브랜디라고 부르지만요.”
“브랜디?”
브랜디라는 말은 처음 듣지만, 브레위진은 아는 이름이었다. ‘태운 와인’이라고도 불리는, 와인을 끓여서 수분을 걷어낸 술이다.
요리사가 팬에 술을 넣고 손잡이를 잡자,
화르르륵!
“이런!”
사나운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너무 거센 불길이라 알비치는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섰다.
힘차게 펄럭이는 붉은 화염.
그 어떤 장작이라도 이렇게 위세 좋게 타지는 않을 거다.
‘이대로라면 화재가…’
알비치의 얼굴에서 핏기가 씻겨나갔다.
화재는 재앙이다. 순식간에 전 재산을 다 불태워버리고 유를 무로 돌려버리는 재앙. 그런데 대주교의 저택에 이런 화재를 일으키다니! 자신도 공범이 되는 건가?
뒷걸음질을 치며 달아날 생각을 하던 알비치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어?’
요리사가 침착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이 담긴 팬을 살살 흔들고 있었다.
‘…!’
우려와 달리, 불은 다른 곳으로 옮겨붙지 않았다. 오렌지빛과 푸르스름한 빛이 동시에 일어나는 신비한 불꽃은, 요리사의 말대로 잠시 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불이 사라지면 크림과 파슬리를 넣고 살짝 끓입니다. 그리고 점도가 생겨나면 고기를 다시 넣습니다.”
요리사는 태연하게 설명을 이어가며 소스를 만들고, 그 안에 방금 구운 고기를 넣었다.
“이대로는 먹기 힘들 테니, 마지막에 트린키안티가 적당히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주시면 됩니다.”
“다시…”
“다시?”
“다시 보여줄 수 있겠나?”
방금 목격한 불길이 현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으니까.
“후우… 딱 한 번뿐입니다.”
“부탁하네.”
요리사는 완성된 요리를 일단 접시에 덜어냈다.
접시 위에 담긴 연갈색 소스와 잘 익은 고기.
소고기의 육향과 소스의 향이 코끝을 찔러와 침샘을 자극했다.
“그… 기다리면서 먹어봐도 되겠나?”
“네, 맛은 보는 게 좋겠죠.”
“고맙네.”
어느새 알비치는 요리사에게 허가를 구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옆에 있는 포크로 고기를 찔러서 입안에 쑤셔 넣기 바빴으니까.
주르륵.
치아가 두툼한 고기를 파고들자, 엄청난 양의 육즙이 쏟아졌다. 소고기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한 에센스가 입안 가득 고였다.
평소에 먹는 스튜나 삶은 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향신료 없이, 흐려지거나 탁해지지 않는 순수한 육향.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소스는 또 어떻고!
크림이 들어간 소스는 고급스러운 벨벳처럼, 묵직하면서 매끄럽게 입안을 기름칠했다. 브랜디, 버섯과 양파로 감칠맛을 세 차례 두른 소스와 부드러운 크림의 만남. 평소 자주 먹는 와인 소스와 달리, 텁텁함이 하나도 없다. 왜 그런 걸까?
화르륵!
불길을 보며 알비치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 저 불길이 텁텁함을 단숨에 날려버린 것이리라. 모든 불순물을 정화하는 마법의 불길이니까.
눈 앞의 불쇼를 보며 먹으니, 이상하게 맛이 더 좋아졌다. 저 사나운 불을 거친 고기가, 지금 자신의 입안에서 탄력 있게 뒹굴고 있다.
“이번에 요리는 주방 요리사들에게 주겠습니다. 아직 식사를 못 해서요.”
“….아, 그렇군.”
알비치의 접시도 이미 비어있었지만, 차마 두 번째 접시도 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와 체면은 차려야 하니.
“이걸 쓰시지요.”
요리사가 갑자기 건넨 냅킨을 받고 어리둥절했지만, 막상 입가를 닦아보니 엄청난 양의 소스가 냅킨에 묻어났다.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으면 이렇게 추잡한 흔적이 남은 건지. 얼굴에 열기가 올라왔지만,
“크흠, 그러면 바로 시작할까?”
알비치는 최대한 창피함을 숨기고 그릴 앞에 섰다.
저 기술을 배우게 되다니!
두근거리다 못해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뇨, 이건 내일 알려드리겠습니다. 생선이 도착했네요.”
내일?
자신은 닭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소고기까지 보여줬는데! 맛보기만 보여주고 이걸로 끝이라고?
순간 따져 들고 싶었지만, 요리사의 표정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눈빛. 아까부터 자신이 도발할 때마다 보였던 그 눈빛이다.
‘만약에 기분이 상해서 저 기술을 다른 이에게 알려준다면?’
절대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황제의 앞에서 저 요리를 만든다면, 만든 이의 이름이 전 유럽에 퍼져나갈 거다. 저 기술은 이 세상에 본 적 없는, 하나뿐인 진귀한 기술이니까.
‘나는 아까부터 왜 그리 건방지게 굴었던 거지?’
알비치는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
생선 접시가 도착하자, 알비치는 최대한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생선은 말일세, 상단에 가시가 있는 놈들이 있고 없는 놈들이 있지.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과도한 힘은 좋지 않네. 그러면 살이 지저분하게 갈라지거든. 칼은 똑같이 잡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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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틀.
트린키안티는 이른 아침부터 주방에 찾아와 해가 질 때까지 열과 성을 다해 카빙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과일 카빙도 필요하지 않나?”
“감사하지만, 그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귀족의 냅킨을 접는 방법은 어떤가?”
“냅킨을 접는 방법이 따로 있군요.”
“이건 모르나 보군! 내일 내가 한번 들고 와 보도록 하지. 마음에 들면 말하게, 얼마든지 알려줄 테니까.”
한길이 이제 수업을 끝내도 되겠다는 말을 꺼내자, 트린키안티는 제발 더 가르치게 해달라며 사정하듯이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면 냅킨은 한번 보도록 하죠.”
“고맙네!”
“바쁘나 보군.”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주방 입구에 스카피가 서 있었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산발이던 머리는 깔끔하게 빗질 되어 있었고, 옷도 한껏 차려입은 모양새였다.
“아, 자네는 바쁜 사람이었지. 그러면 나는 내일 또 오겠네.”
트린키안티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스카피의 한쪽 입술이 올라갔다.
“뭐야, 귀족 펫이라고 만들고 있었나? 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알비치를 완벽하게 조련했는데?”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잠깐 나랑 외출 좀 하지.”
“그렇게 갑자기 말하면 어쩝니까.”
“왜?”
한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기에, 한길에게는 수시로 호위가 붙어 있었다. 저택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외출하게 되면 전혀 다르다.
집안일을 총괄하는 마에스트로에게 외출 사실을 알리자, 한참의 기다림 후에 으리으리한 마차와 우람한 체격의 호위 다섯 명이 준비되었다.
“우와, 마차라니! 내가 이런 걸 다 타는군! 시스티나 성당으로!”
스카피는 마부에게 목적지를 외친 후, 서둘러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출발한 후에도 처음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신이 나서 마차의 이곳저곳을 더듬느라 바빴다.
“그래서, 뭘 하러 가는 겁니까.”
“아, 그러고 보니 네놈,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있나?”
“기도라도 하러 가는 겁니까?”
“에이, 설마 그런 천벌을 받을 짓을 하겠나. 만날 사람이 있거든.”
스카피는 큰 숙제를 해결한 것처럼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연회 연출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거다. 대체 어떤 연출일지…
“테이블 장식으로 조각상을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하거든.”
“아, 전 또…”
한길의 기대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곳에서는 테이블 위에 장식을 꼭 올렸다. 대부분은 설탕을 틀에 넣어서 찍어낸 설탕 조각상이었다.
스카피라면 조금 더 새로운 연출을 할 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평범한 발상이라 한길의 입장에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조각상을 만들면서 성당에는 왜 가는 겁니까?”
“조각상을 만들려면 조각가를 찾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그걸 왜 성당에서…”
말을 하던 도중 한길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시스티나 성당.
조각가.
르네상스.
이 키워드의 조합으로 절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스카피, 의뢰한다는 조각가가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 사람인가요?”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스카피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각 하면 미켈란젤로지. 그놈은 천재니까 반 나절 만에 뚝딱 만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