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8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81화(181/325)
181. 장을 보러 가볼까?
다시 보여달라는 미켈란젤로의 말에 요리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반죽을 다시 만들어야 해서 조금 기다리셔야 합니다.”
“상관없네.”
미켈란젤로는 말없이 작업대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요리사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오히려 잘되었다.
혹여 속임수를 쓴 게 아닌지, 의심하던 참이었으니까.
‘아무에게나 내 이름을 빌려줄 수는 없지.’
미켈란젤로가 조각상을 만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 연회의 품격이 달라진다.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자신의 명성이 있으니 말이다. 순간의 호기심에 못 이겨 자신의 이름을 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평범하네.’
요리사는 밀가루에 소금과 물을 넣고 주물럭거리며 동그란 밀가루 덩어리를 만들었다. 재료는 모두 주방에 있는 재료. 반죽도 일반 빵 반죽과 비슷하다. 별다른 특이점은 없지만,
탕! 탕!
반죽을 쉬게 한 후, 요리사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반죽을 길게 뽑으며 작업대를 때리기 시작한 것.
‘반죽이 저런 모양으로 변할 수 있나?’
점토처럼 모양이 잡히지만, 물처럼 흐르기도 한다. 공중에서 휘리릭 감기는 모습은 그야말로 마법 같았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그대로 멈추고 가둬두었으니까.
점토로 모형을 자주 만드는 미켈란젤로에게 저 형태는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내가 직접 해봐도 되겠나?”
“반죽 치대기를요?”
“안 되나?”
“아니, 해보셔도 됩니다.”
미켈란젤로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요리사는 놀란 듯했지만, 이내 반죽을 건네주었다.
양손에 반죽을 쥐고 움직여봤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손재주로 전 유럽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미켈란젤로였지만, 반죽은 점토와는 전혀 다른, 처음 다뤄보는 질감이었다.
찐득거리면서도 무겁고, 경직되어 있으면서도 유연하다. 요리사의 움직임을 따라 해 봐도, 반죽은 툭 하고 끊어지거나 그대로 늘어져 작업대에 떨어졌다.
“왜 이리 안 되는 건가?”
“밀가루의 성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밀가루는 끈끈하게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성질과 유연하게 늘어나는 성질이 있습니다. 손끝으로 그 두 성질을 파악하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반죽을 다시 건네주자, 요리사는 눈앞에서 수많은 가느다란 실을 뽑아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두 손으로 만져보고도 믿기지 않은 광경이었다.
요리사는 면이 가닥으로 나뉘는 원리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지만, 직감적으로 와닿는 설명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어렵군.”
미켈란젤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서 줄곧 구경만 하던 집사가 입을 열었다.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같은 밀가루여도, 일반인이 다루는 것과 요리사가 다루는 건 전혀 다르니 말입니다.”
간신히 예의를 차린 말투. 그 안에는 자부심을 넘어선 오만함까지 느껴졌다. ‘요리가 이렇게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집사의 목소리에 미켈란젤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역시 저 집사는 마음에 안 들어.’
멀끔한 차림새와 잘생긴 외모.
즐거워 죽겠다는 그 묘한 분위기가 한없이 가벼워 보였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집사는 미켈란젤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무엇이 말인가?”
“같은 대리석이어도, 누구 손을 거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죠. 좋은 재료를 고르고, 그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다루는 게 중요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도 의뢰가 들어오면 직접 대리석을 구하러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요리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설명하니 납득이 되었다.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좋은 작품은 대리석에 대한 이해도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를 단숨에 유명인으로 만든 다비드상만 봐도 그렇다.
다비드상의 원재료인 대리석은 ‘거인’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돌이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다루기 워낙 까다로워 무려 세 명의 조각가들이 망치를 들었지만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40년 동안 잠들어있던 돌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아직 20대 청년인 미켈란젤로였다. 대리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루기 까다로워지지만, 미켈란젤로는 반백 년 가까이 고집을 부리던 대리석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대리석 안에도 혈관과 무늬가 있고, 강도가 달라 잘못 건드리면 보기 흉한 금이 간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망치질 몇 번만으로도 대리석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
그것이 그의 재능이었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읽듯이 요리사는 밀가루를 읽고 있다고. 집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지만…
“조각과 요리는 전혀 다르네. 그런 생각을 하니 얼음으로 조각을 만들라는 말을 하는 것이지.”
“다르지 않습니다.”
“대리석은 흠이 나지 않은 견고한 부위를 골라내는 게 핵심이지. 얼음처럼 수시로 변하고 녹아버리는 변덕스러운 재료로 조각을 만들 수는 없네.”
“하하하,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미켈란젤로의 짜증 섞인 답변에, 집사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상당히 거슬리는 웃음이었다.
“왜 웃는 거지?”
“실례합니다. 재밌는 말씀을 하셔서요. 얼음으로 조각을 만들어달라는 건, 대리석 조각을 얼음으로 만들어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얼음에 어울리는 조각을 만들어 달라는 거죠.”
“그리고 나는 얼음은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세.”
“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녹아서 안 된다고요. 하지만, 그러면 녹아야 더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
너무 가볍게 뱉어내듯 한 말이지만, 묘하게 충격적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얼음의 녹는 성질이 방해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집사는 오히려 그 성질을 이용하라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녹아야 더 아름다운 조각이라…
얼음이 아니라 물이 중심이 되는 조각이라면…
순간, 머릿속에 번뜩하고 무언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젊은 시절,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느꼈던 그런 두근거림이다.
조각만 만들던 그가 천장화를 처음 그렸을 때, 건축을 처음 시도했을 때 느꼈던, 그런 기분 좋은 긴장감과 기대감.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바쁜 사람이네. 그런 놀이에 시간을 할애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일감이 밀려있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일감이.
곤자가 가문의 주문은 시작도 못 했고, 몇몇 추기경들은 사흘에 한 번 꼴로 편지를 보내 재촉하고 있다. 그 와중 메디치 공작이 시험하듯 의뢰한 작업도 있고, 교황이 부탁한 ‘마지막 심판’도 아직 작업 중이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미켈란젤로가 가문을 이끄는 가장이 되었다. 아직 어린 조카들은 특출난 재능이 없다.
가문의 영광을 되찾을 이는, 미켈란젤로밖에 없다. 재밌어 보인다고 하찮은 놀이에 도전하기에는, 해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식사 전에 그런 무거운 얘기를 하시면 입맛이 달아납니다. 대화는 이쯤 하시고, 시식은 여기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
집사와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어느새 요리사는 파스타를 완성 시키고 그릇에 담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먹도록 하지.”
“저희도 함께 시식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게.”
주방에서 먹는 건 하인들이나 하는 행위이지만, 미켈란젤로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먹고 거절하자.’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가장은 흔들리면 안 되는 법이니까.
“뜨거울 테니 잘 식혀서 드세요.”
요리사가 움푹 파인 그릇을 미켈란젤로 앞으로 내밀자, 특이한 요리가 눈에 들어왔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국물 안에서 헤엄치는 기다란 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김에서 구수한 향이 퍼져 나와 갑자기 허기가 졌다.
소스와 함께 먹는 건조한 면이 아니었다.
국물에 풍덩 빠진 면.
포크를 들고 면발을 감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유난히 길고 미끈거리는 면발은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털 뭉치같이 엉켜있는 부위를 포크로 쿡 찌르니 덩어리가 통째로 올라왔다. 먹을만한 크기의 면발만 들어 올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포크의 틈새로 면이 미끄러져 다시 떨어져 버렸다.
“이건 어떻게 먹는 건가?”
“파스타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일부만 입에 넣고 흡입하듯 빨아서 드셔보시죠.”
요리사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포크로 면발 일부를 들어 올려서 그대로 입안에 물고,
후루루룩!
길게 늘어트린 가닥을 빨아들였다. 탄력 있게 튕기는 면발은 허공에서 춤을 춘 후, 그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특이하군.’
먹는 방식이 조금 요란했지만, 이상하게 저 소리가 귀에 박혔다.
미켈란젤로는 다시금 포크를 들었다. 요리사가 보여준 대로 면발을 적당히 집어서 끌어올리자, 하얀 수증기가 솟아오르며 다시금 구수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면발은 국물이 듬뿍 베어져 있어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후후 불어가며 면 가닥을 입에 물고,
후루루룩!
쭉쭉 끌어당기자 면발이 튕기며 올라왔다. 입안에서도 통통 튀는 면발을 씹어보려 했지만, 파스타와는 달리 제대로 씹히지 않았다. 뭔가 허전한 식감이다.
꿀꺽.
반쯤 씹다 만 면을 그대로 삼키자, 부드러운 국수는 흘러가듯이 목을 타고 술술 넘어갔다. 목구멍 끝에서 담백한 국물의 향이 올라왔다.
‘이건 뭐지?’
평소와 다른 묘한 맛.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재빨리 면을 건져내서 후후 불고 흡입하자,
후루룩! 후룩!
경쾌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너무 급하게 빨아들였는지, 춤추는 면발이 콧등을 치며 얼굴에도 국물이 튀겼지만.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쭉쭉 끌어당기고 거침없이 목구멍으로 넘기고. 목 안에서 터져 나오는 풍미를 만끽했다.
묘한 중독성.
한번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접시에 얼굴을 박고 다시 후루룩 면발을 끌어당기며 넘기자, 어느새 등이 축축해지면서 온몸에 따끈따끈한 열기가 퍼져나갔다.
한여름의 무더위 같은 불쾌한 열기가 아니다. 깊은 맛의 국물이 위에 스며들고, 온몸에 따뜻한 온기를 전달해 주고 있었다.
‘좋네.’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좋았다.
뱃속이, 마음이 든든했다.
‘저렇게도 먹는 건가?’
어느새 앞에 앉은 요리사는 국수를 먹다 말고 양손으로 그릇을 입가에 대며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숟가락을 쓰지 않고 와인을 마시듯, 국물을 홀짝거리며 마시는 모습이 이상했지만. 절로 입술을 할짝대게 되었다.
‘나도 한번.’
미켈란젤로 역시 두 손으로 그릇을 들어 올리고, 입가에 대며 살짝 기울였다. 깊은 맛과 담백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국물이 기분 좋게 몸 안에 흘러들어왔다.
“크!”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코끝이 찡해져서 시원하게 코를 풀고 싶어졌다.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생기면서도 후련한 기분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미식가가 아니었다.
고작 식탐에 할애할 시간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특이한 파스타는 달랐다.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온기가 가득했다. 혀만 자극하는 게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위로해주는 그런 음식이었다.
배배 꼬였던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한 번만…’
미켈란젤로는 지금껏 스스로를 채찍질해왔다. 잠을 줄이고 식사를 거르면서 일에만 몰두했다.
최근 들어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쫓기듯이 작품을 만들고, 그 와중 모든 작품이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수준이 되도록 신경을 쓰느라 위가 쓰렸으니까. 알 수 없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서 몸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건…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갑자기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이기심이 치고 올라왔다.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고…
‘어차피 2주인데.’
황제의 연회는 2주 후라고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다. 이 기회에 황제와 안면을 트게 되니 손해를 볼 것도 없다.
미켈란젤로가 하찮은 연회 조각상이나 만든다는 소문은 절대 피하고 싶지만,
‘그럴 리는 없을 테고.’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조각상은, 하찮은 연회의 잡동사니 따위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비웃지 못할 예술이었다.
“하겠네.”
“역시 그렇습니까.”
미켈란젤로의 결심에 집사가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웃음이었다.
“대신, 완성된 작품은 연회에서 내가 직접 소개하게 해주게.”
“물론입니다.”
“잠깐 떠오른 그림이 있는데, 완성되는 대로 사람을 보내겠네. 그때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예술이 태어날 거다. 그걸 세상에 선보일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손이 떨려왔다.
“그때는 미켈란젤로가 대주교 예하의 저택으로 직접 와주실 수 있을까요?”
갑자기 말을 꺼낸 이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경박하고 건방진 집사가 아니라, 겸손하고 착실해 보이는 요리사였다.
“나보고 찾아오라고?”
“물론 저희가 찾아오는 게 맞겠지만,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번은 얼음을 직접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것도 그렇군.”
‘착각인가?’
한순간 요리사의 얼굴에 집사와 닮은 표정이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다시 눈을 비비고 보니 요리사는 공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림이 완성되는 대로 사람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도록 하지.”
#
“와, 그 미켈란젤로를 진짜 설득했네? 사실 반 정도는 쫓겨날 각오도 했었는데 말이야.”
마차로 돌아온 스카피는 신이 나 있었다.
“쫓겨날 각오를 했었다고요? 계획이 있었던 것 아니었나요?”
“소문으로는 요즘 미켈란젤로가 슬럼프라고 하더라고. 그럴 때는 누가 강제로라도 자극을 줘야 움직여지거든. 네놈이 했듯이.”
“제가 뭘 했습니까.”
“나도 계속 막혀있는데, 네놈이 약 올리니까 번뜩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잖아?”
“그래도 너무 막무가내였습니다.”
“에이, 나름의 계산은 했다고. 잘 되면 미켈란젤로를 얻는 거고, 안 되면 미켈란젤로와 사이가 껄끄러워지겠지만… 딱히 내 요리 경력에는 방해되지 않으니까.”
스카피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지만, 한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 내내, 한길은 조마조마했었기 때문이었다.
‘껄끄러우면 안 된다고.’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조각가. 그리고 스카피는 미래에 교황의 요리사가 되는 인물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이 일하는 시기가 겹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로 잔소리를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한길도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연회의 장식을 도와주다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연회가 되겠네요.”
“그렇지? 게다가 그냥 미켈란젤로 조각상도 아니고 미켈란젤로의 얼음 조각상이라고!”
미켈란젤로의 얼음 조각상.
그건 역사상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그야말로 세상에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 될 거다.
“그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서 왜 말씀을 안 해주셨죠?”
“미켈란젤로를 만난 후에 말해주려 했었지. 이 조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미켈란젤로밖에 없는데, 네놈이 선수 치면 말짱 헛것이 되니까.”
“저를 못 믿는 겁니까.”
“네놈을 믿긴 왜 믿어? 그것보다, 미켈란젤로에게 저택으로 찾아오라고 한 건 왜 그런 거지? 네놈답지 않아서 놀랐는데?”
미켈란젤로나 되는 위인에게, 그림이 완성되면 컨펌 받으러 저택에 찾아오라고 말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한길이 말을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조각상을 하나만 맡길 생각은 없거든요.”
“그러면 뭘 맡기게?”
“글쎄요. 저도 보안을 위해 지금은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다음에 미켈란젤로가 오면 저를 꼭 불러주세요.”
“흐음…”
미켈란젤로에게 또 다른 영감을 준다면…
어쩌면 추가로 작품을 만들겠다고 스스로 나설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길이 조용히 미소를 짓자, 스카피가 한길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이제야 조금 사람다운 표정을 짓는군.”
“사람다운 표정이 대체 뭡니까.”
“뭐 하나라도 더 뜯어내겠다는 표정이지. 가끔 네놈을 보면 너무 여유가 넘치니까.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무방비하다고 해야 할까, 믿음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지옥이라는 곳은 평온한 곳 같았거든.”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스카피가 대답을 하기 전에 마차가 멈추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기도 전에 마차 밖에서 스카피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칼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이는, 집사 보조였다.
“스칼코! 왜 이리 늦게 돌아오시는 겁니까?”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집사 보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오늘 재료상들을 부르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잔뜩 불러놓고 시간을 안 맞추시면 어찌합니까. 지금 안뜰에도 공간이 부족해서 정원에서도 기다리고 있는데 눈치 보여 죽겠습니다.”
“재료상?”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분명 스카피는 이탈리아 전역에 내로라하는 재료상들을 불러들인다고 했었지. 지금껏 봐왔던 재료와 차원이 다른 재료를 보여주겠다고.
스카피는 한길을 돌아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러면 이제 슬슬 장을 보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