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8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84화(184/325)
184. 커피의 연금술
“설탕을 조금 갖고 올까? 아니, 버터랑 섞어서 빵으로 구워도 좋을 것 같은데?”
“필요 없습니다.”
“어?”
“커피로 빵을 만들 수도 있지만, 오늘은 음료만 만들 거거든요.”
한길의 말에 스카피가 놀란 눈을 떴다.
“이 콩 하나로 음료만, 그것도 다섯 종류나 만든다고?”
“네.”
“다른 재료는 하나도 쓰지 않고?”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유를 활용하면 라떼도 만들 수 있겠지만, 오늘은 커피콩 하나로 빚어내는 다양한 맛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로지 온도와 시간만 달리해서 나오는 로스팅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다섯 잔은 너무 많나?’
사실 커피 로스트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라이트, 미디움, 다크.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보다 다양한 로스트가 있지만, 한길은 임의로 다섯 종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커피 한 종류를 보여줄 때마다 스카피의 요리를 하나씩 배워갈 생각인데, 오늘 남은 시간과 체력을 생각하면 다섯 개가 딱 적당하기 때문이다.
“저는 도구를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길이 준비하는 사이, 스카피는 아직 볶지 않은 생두를 만지작거리며 킁킁거렸다.
“이건 향이 거의 없네?”
열을 가하지 않은 생두는 커피 특유의 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나마 감지되는 향은 잔디 향이나 짚 향에 가깝다.
“아직은 향미가 잠겨있으니까요.”
“잠겨 있다고?”
“네. 이 콩 안에는 수백 가지의 향과 맛이 가둬져 있거든요. 아직은 원료 형태인데, 열만 가해주면 다양한 맛을 제조해낼 수 있죠.”
“말만 들으면 무슨 연금술 같네.”
“아,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커피 로스팅은 연금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콩과 불만 있으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맛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
그 비결은 마이야르 반응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고기를 구울 때 나타나는 화학 작용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사실 당분과 단백질이 있는 모든 식재료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열이 가해지면 당분의 카보닐(carbonyl) 성분과 단백질의 아미노산 성분이 결합하는데, 그렇게 합체하면서 생겨나는 게 맛의 입자다.
어떻게 보면 블록 놀이와도 같다. 생두에는 수많은 블록이 있지만, 이 블록을 연결하고 제대로 활성화를 해야 맛이 태어난다. 그리고 연결할 때 필요한게 불이다.
“그러면 시작할게요.”
한길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숯 통에 숯을 넣고, 조금 특이하게 생긴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스카피의 주방에서 원래 사용하는 냄비로, 몸통은 통통하지만, 주둥이는 좁아서 항아리 같이 생겼다.
촤르르!
생두를 냄비 안에 부어준 후에는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쉴새 없이 저어주며 콩을 볶기 시작했다.
“꼭 그렇게 산만하게 움직여야 하나?”
“네, 고루 익혀야 하니까요. 그대로 두면 냄비 바닥에 닿은 부분은 타고 윗부분은 덜 익잖아요?”
로스팅 기계는 알아서 회전하니 가만히 놔둬도 콩이 골고루 익겠지만, 당연히 이 시대에는 로스팅 기계는 없다. 손으로 직접 저을 수밖에.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는 동안 한길은 주둥이 입구를 통해 커피콩의 색을 확인했다.
연두색이던 콩이 처음에는 빛바랜 노란색, 그다음에는 연한 갈색, 그리고 마지막에는 붉은빛을 머금은 시나몬 색으로 변했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은데···’
색을 확인한 한길은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이제 곧 첫 번째 신호가 올 테니까.
탁! 타탁!
잠시 후, 냄비 안에서 가볍게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팝콘이 터지는 것과 유사한 소리다.
이것이 로스팅의 첫 번째 신호.
커피 전문가들이 ‘첫 번째 크랙(crack)’이라고 부르는 단계다.
‘크랙’은 영어로 ‘갈라진다’는 뜻이다. 마이야르 반응이 시작되고 맛의 블록이 합체되면서 그 부산물로 물이 생겨나는데, 그 물이 열을 받아 기체가 되고 팽창하면 껍데기를 깨고 나온다.
이 소리가 들린다는 건, 마이야르 반응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굳이 소리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긴 하다. 냄비에서 풍겨오는 커피의 유혹적인 아로마가 온 주방에 진동하고 있으니까.
“지금쯤 꺼내는 게 좋지 않겠나? 너무 오래 두면 아까처럼 쓴맛이 날 것 같은데···”
“안 됩니다.”
“그러면 한 알만 꺼내서 맛만 보면···”
“기다리세요.”
한길이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스카피가 원망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사실 지금 상태에서도 먹어도 된다.
첫 번째 크랙이 들리기 시작하는 이 단계는 시나몬 (Cinnamon) 로스트라고도 불린다.
생두보다 먹을 만 하지만, 아직은 단맛을 지닌 맛의 입자가 생성되지 않고 산미만 강하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보다 풍부한 맛이 태어날 터.
탁······ 탁 ···.
터지는 소리는 그 후로도 약 1분간 이어졌다. 소리가 잠잠해질 때 즈음, 콩의 붉은 기운이 빠지면서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이때부터가 미디엄 로스트.
소리가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메리칸 (American) 로스트. 조금 더 기다리면 시티 (City) 로스트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는 단맛과 산미를 품은 맛의 입자가 활발하게 생성된다. 각 콩이 품고 있는 꽃향기나 과실 향도 도드라진다.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은 대부분 미디엄 로스트를 선호한다. 원두가 가진 개성적인 맛과 특성이 이 단계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그래서 원두의 품종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카피는 이걸 가장 좋아하겠지.’
미각이 예민한 스카피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맛을 감지하고 분류하는 걸 즐길 거다. 그래서 미디엄 로스트는 마지막으로 미루기로 했다.
“아직인가?”
“네, 기다리세요.”
갈수록 침착성을 잃어가는 스카피를 다그치며 한길은 콩을 계속 저어주었다. 두 번째 신호를 기다리면서.
탁! 타탁!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잠잠하던 콩이 다시 한번 터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두 번째 크랙.
이제부터는 다크 로스트다.
이 소리가 생기는 원리는 같지만, 원인은 다르다. 첫 번째 크랙에서는 수분이 빠져나갔다면, 두 번째 크랙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탁! 타다닥!
두 번째 크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단계가 풀 시티(Full City) 로스트. 이때부터는 산미를 품은 맛의 입자가 열에 분해되고, 커피 특유의 바디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탁··· 탁…
소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면 비엔나(Vienna) 로스트. 이때부터는 커피의 개성적인 맛이 사라지고 마이야르 특유의 캐러멜 향과 로스팅 맛의 입자가 강해진다.
··· 탁 ···
소리가 끝날 즈음이 프렌치(French) 로스트.
이 단계에서는 커피콩의 개성적인 과일 맛과 산미는 대부분 해체되고, 마이야르 반응으로 인한 스모키한 향과 초콜릿 같은 묵직한 바디감이 장악한다.
일반 커피 전문점에서는 대개 다크 로스트를 사용한다. 어떤 콩을 사용해도 비슷한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때 많이 만들어지는 맛의 입자는 멜라노이딘(melanoidin). 토스트 빵에서 맛깔나게 구워진 갈색 부위에서 나는 맛이다. 그리고 캐러멜 특유의 단맛도 강하게 난다.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가고 쉽게 즐길 수 있는 맛. 그래서 커피 초보들은 대개 다크 로스트부터 시작한다.
“이제 됐습니다.”
“됐나?”
“네.”
한길은 원두를 불에서 내리고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 탈탈 털어서 식혔다.
“탄 것 같은데··· 아까 먹은 건 엄청 쓰던데···”
완성된 콩은 아까 상인이 보여준 콩과 비슷한 생김새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 커피 내부에 있는 기름이 빠져나와서 표면도 반질반질 윤이 난다. 그래서인지, 스카피는 수상한 눈빛으로 콩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콩을 그대로 먹으면 써요. 이걸 추출해서 음료로 만들면 맛이 또 다를 겁니다.”
한길은 식힌 콩을 막자사발에 넣어서 으깨고 잘 갈아주었다. 입자의 크기에 따른 맛의 차이도 있지만, 그 설명은 생략하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모든 요령을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필터가 없는 것도 아쉽네.’
당연하지만 이 시대에는 커피 필터도 없기에, 최대한 구멍이 작은 체를 골라서 그 안에 갈아놓은 원두를 담았다.
체를 별도의 항아리 위에 얹고 물을 끓이면 이제는 마지막 단계. 커피 추출이다.
“지금부터 물을 따르겠습니다.”
“물만 따르면 되는 건가?”
“일단은요.”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데에도 여러 요령이 있다. 좋은 물을 사용해야 하고, 원두의 굵기와 물을 따르는 속도를 조절해서 물이 원두와 접촉하는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물이 원두를 너무 빨리 통과하면 중요한 맛이 충분히 우러나지 않고 쓴맛만 난다. 반면 너무 오래 머무르고 있어도 쓴맛이 나는 유기산이 과하게 들어가서 쓰다.
오래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사장님이 이 분야에 매우 열정적인 분이라 한길도 어느 정도 외우고 있었지만. 이 설명도 생략하기로 했다.
‘나중에 필요하면 써먹어야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카피가 그나마 한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이런 정보를 얻을 때다. 자진해서 미리 다 퍼주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다.
한길은 적절하게 시계방향으로 물을 따르며 커피를 추출했다. 그 과정 내내, 스카피의 시선은 갈색 액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기요.”
“···.”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커피 한잔을 건네자, 스카피는 얌전히 받아들였다. 스카피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코로 한번 향을 음미하고, 그대로 한 모금을 홀짝였다.
“후우···.”
어딘가 아련한 한숨 소리. 다시 눈을 뜬 스카피의 눈매가 평소와 달리 그윽했다.
“이건···”
말꼬리를 흐리고 그대로 한 모금 더.
그리고 다시 이어진 한숨.
한잔을 다 마시는 내내 스카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스카피와 함께 한 시간 내내,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한 적이 있던가.
잔을 모두 비운 후에야 스카피는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정말··· 악마의 맛이군. 그 쓴 콩이 어떻게 이런 맛을···”
“마음에 드시니 다행이네요.”
“이런 게 다섯 종류나 있다고? 좋긴 한데···”
스카피는 무언가 걱정된다는 듯 턱을 괴었지만,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다.
“하지만 음료라··· 난이도가 높네.”
“왜죠?”
“요리에 어울리지 않아.”
맞는 말이다.
누구든 커피를 스테이크나 샐러드와 함께 먹을 생각만 해도 눈살을 찌푸릴 테니까. 물론, 한길도 이 점은 생각해 두었다.
“이 음료는 가장 마지막 코스에 내놓을 겁니다. 어울리는 요리와 페어링해서요.”
“그 어울리는 요리가 뭐지?”
“아까 맛보셨던 초콜릿을 고체로 만들던가, 페이스트리도 만들려고요. 이 커피를 가루로 만들어서 빵에 넣어 구울 수도 있고요.”
한길은 식사를 마무리하는 가장 마지막 코스에 커피와 디저트를 낼 생각이었다. 이곳에서는 아직 디저트만 따로 먹는 문화가 없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그거 좋겠군! 마지막에 기분 좋은 달달함으로 마무리하고 이 향으로 입을 헹구면! 끝까지 완벽하겠는데?”
다행히 스카피의 반응은 좋았다.
고민을 해결한 스카피는 바로 고개를 들어 욕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그러면 다음 커피를 마셔볼까? 다섯 종류나 있으니 서둘러야겠는걸?”
“아직은 안 됩니다.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해요.”
“왜?”
“커피는 맛이 뛰어나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음료니까요. 욕심부리고 단시간에 너무 많은 양을 마시면 호흡이 가빠지고 위도 쓰립니다. 심할 경우 메스껍거나 구토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걸 손님 앞에 내도 되는 건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마시면 됩니다. 앞으로 남은 열흘간 스카피가 매일 드시면서 그 안전성을 확인하면 되죠.”
스카피는 허전한 듯 연신 입맛을 다셨고, 한길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남은 한 시간 동안 스카피는 쉬고 계세요. 저는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테니.”
“뭘 하려고?”
“아까 말씀드린 오르톨랑을 만들어보려고요. 직접 다뤄본 적은 없지만··· 뭐, 다양한 시도를 해야 배우겠죠?”
“어떻게 조리할 건데?”
“글쎄요. 우선은 열두 시간 정도 푹 삶아보려···”
“이런 미친놈!”
스카피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서 오르톨랑을! 나와! 앞으로 지상 요리 만들 때는 무조건 내 허가받고 만들어! 그것도 좋은 재료면 무조건! 알았어?”
스카피는 한길을 밀치며 조리대 앞에 섰고, 한길은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 귀한 새를 열두 시간이나 푹 삶을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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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피의 오르톨랑 요리는, 새의 눈을 멀게 하고 억지로 살찌우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를 와인에 넣어 익사시킨 건 마찬가지. 그 이후에 깃털을 뽑아내고 지방을 더해주는데, 조금 특이한 재료를 이용했다.
버터도 아니고 올리브유도 아닌, 하얀 그물. 레이스처럼 생긴 이 특이한 그물의 정체는···
“돼지 대망막이지. 돼지 위를 감싸는 지방인데, 사냥터에서 잡은 동물들은 다 이놈에 감싸서 구우면 맛이 몇 배는 좋아지거든.”
“돼지 대망막이라니··· 왜 프로슈토를 쓰진 않는 거죠?”
“고정하기 힘드니까. 대망막은 굳이 이쑤시개를 꼽지 않아도 고기에 찰싹 달라붙고, 굽는 동안 녹아서 고기 안으로 스며들거든. 물론 맛도 좋고.”
한길도 레스토랑에서 직접 도축한 돼지를 매일 사용하지만, 대망막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돼지를 잡으면 신선도가 중요한 내장은 제주도 농장의 사장님이 갖고, 돼지 등 지방과 살코기는 한길이 사용한다. 돼지 내장을 감싸는 지방은, 양쪽 모두가 버리는 부산물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꼭 돼지기름을 써야 하나요? 새고기 맛에 방해가 되지 않을지 걱정인데요?”
“동물 기름을 쓰지 않으면 겉돌아. 그리고 사냥터에서 잡는 새들은 무조건 기름을 둘러줘야 해. 집에서 키우는 새는 매일 꼬박꼬박 곡물을 먹여주니까 토실토실하고 기름진데, 똑같은 새가 야생에서 열매랑 벌레만 먹고 자라면 또 기름이 없거든. 아무리 통통한 놈을 잡아도 지방이 없어.”
묘하게 와 닿는 부분이었다.
사람만 해도, 비슷한 체격이라도 탄수화물을 먹는 사람과 열매를 먹는 사람의 지방은 다를 테니까.
스카피는 레이스같이 생긴 대망막을 펼쳐두고 그 안에 오르톨랑을 넣어 김밥을 말듯이 돌돌 말아주었다.
정말로 하얀 레이스는 랩이라도 씌운 것처럼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새를 다시 한번 포도 나뭇잎으로 감싼 후에 구워주면 끝이다.
숯에 올리고 살짝 구워주다가, 중간에 한번 나뭇잎을 벗겨내면 하얀 돼지 그물은 이미 녹아서 흡수된 상태. 이때 밀가루, 설탕, 펜넬 가루를 섞은 가루 믹스를 잔뜩 묻히고 새를 다시 한번 구워낸다.
“이래야 껍질이 바삭하고 모양이 살아있거든.”
오르톨랑은 손바닥 크기만한 작은 새인 만큼,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나씩 먹어보지.”
“소스는 안 뿌리나요?”
“이건 소스가 필요 없어. 다리부터 시작해서 끊지 말고 머리로 마무리해.”
그 말과 함께 스카피는 바로 새를 통으로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우적대는 소리와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길 역시 시도해 보려 했지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목과 머리를 씹을 생각을 하니 조금 꺼려졌다.
‘이것도 경험이니까···’
하지만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현대에 가면 아무리 돈을 줘도 먹을 수 없는 요리이니까.
와작!
다리 부분을 먼저 씹자, 생각보다 연약한 뼈가 치아의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 헤이즐넛?’
신기하게도,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견과류 향이 났다. 육향은 강하지 않고 매우 섬세한데, 오르톨랑의 지방 자체에서··· 그러니까, 육즙에서 견과 향이 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와자작!
뼈에서는 정어리 같은 짭조름한 맛이 났다. 소금간을 하는 것보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염분. 다리를 마치고 슬슬 새의 몸통을 타고 올라가자,
주르륵!
갑자기 살코기 사이로 입천장이 데일듯한 뜨거운 액체가 튀어나왔다. 이것이 바로 와인. 새를 익사할 때 사용되었던 와인은, 열 조리를 하는 동안 뜨겁게 달궈지고 오르톨랑의 헤이즐넛 향 육즙까지 품고 있었다.
이윽고 이어진 씁쓰름한 맛.
내장의 맛이다.
새를 통으로 씹어먹는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보면, 절묘한 맛이었다. 달면서 고소하고, 짭조름하면서 씁쓰레하고. 먹는 도중에 변하는 맛과 온도는 놀랍기 그지 없었다. 그저 굽기만 했는데 이런 맛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어때?”
“··· 맛있네요.”
“그렇지? 이건 요리사가 거의 손을 쓰지 않아도 돼. 하나님이 빚어낸 최고의 요리니까. 양념을 더해서 이 균형을 망치면 안 되거든.”
“크기가 작아서 그런 걸까요?”
“크기? 크기가 왜 중요한데?”
스카피는 입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며 만족스럽게 배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먹는 귀한 재료로 배를 채워서 기분이 좋은지, 웬일로 막힘없이 술술 설명을 이어갔다.
“새고기는 크기에 따라 조리하는 게 아냐. 굳이 말하면 먹이가 중요하려나? 곡물을 많이 먹는 놈들은 지방을 둘러주지 않아도 되는 놈들이 있지. 가끔 뭘 먹어서 이런 맛이 나나 싶을 정도로 내장 냄새가 지독한 놈들도 있는데, 그런 놈들은 속을 다 비워내고 그 안에 로즈메리나 쐐기풀을 넣어줘야 해. 반면, 플라밍고 같은 건 맛이 기가 막히거든. 새우를 먹는 놈이라서 그 새우 특유의 고소함이 있어. 연어도 새우를 먹으니까 살이 벌겋고 기름지고 고소하잖아? 그래서 새우가 잘 잡히는 계절과 지역에는 플라밍고랑 연어도 맛있어. 새우 철이 플라밍고 철이기도 하고. 제철 재료를 잘 구하는 게 중요하지.”
두서없이 이어지는 말이지만, 묘하게 마음을 흔드는 말들이 섞여 있었다.
제철 재료가 중요하다. 그건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떤 재료든, 제철일 때 먹는 것이 가장 맛있으니까.
한길은 제철 재료를 외울 때 공부하듯이 외우기만 했다. 1월에는 뭐가 제철인지, 2월에는 뭐가 제철인지 영어 단어를 외우듯 암기해야 했다.
그런데 스카피의 제철 재료는 어딘가 달랐다.
뭐라고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재료를 단독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재료가 나오게 된 환경과 생태계를 모두 보는 느낌.
생선을 주는 게 아니라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과도 같았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곳에 가서 몰랐던 재료를 보게 되어도, 그 재료가 온 환경을 어떻게 분석할지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아, 크기라고 하면 방금 같은 작은 새는 대체적으로 연하니까 연육 작용이 필요 없지만, 커다란 놈들은 다르거든. 종에 따라 사흘은 걸어놔야 연해지는 놈들도 있는가 하면, 바로 잡아먹어야 맛있는 놈들도 있지. 내장만 꺼내도 되는 놈이 있고, 내장을 꺼내고 양념까지 해야 하는 놈들도 있고···”
신이 나서 생각의 흐름대로 말하는 스카피를 보니, 녹음기가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한길은 이 많은 정보를 다 외울 자신이 없었다. 보다 확실하게 익히려면, 역시 직접 만드는 게 최고다.
“아까 피그 페커도 구매했는데, 그것도 한번 만들어봐도 될까요?”
“피크 페커는 이름 그대로 무화과를 먹는 새거든. 그러니까 무화과가 가장 맛있는 7월에서 10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아.”
“그것도 대망막을 두르고 구울까요?”
“아니··· 그것보다는··· 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정신없이 떠들면서도 시간은 확인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커피라는 걸 다시 맛본 후에 해보도록 하지.”
“네, 그러죠.”
“그런데 생각보다 커피라는 게 시간이 많이 걸려서 말이야. 중간에 한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면 오늘 중으로 다 맛보는 건 무리겠어. 적당히 잠이 올 시간이 되면 그만하고 내일 나머지를 하지.”
“아, 물론입니다. 잠이 오면 언제든지 들어가셔도 됩니다.”
한길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콩을 꺼내서 로스팅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비엔나 로스트를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이다.
물론, 커피의 또 다른 부작용은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