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8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86화(186/325)
186. 내가 굳이 왜?
황제 일행이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일주일.
준비는 순조로웠다.
“오늘은 살모 카피오로 시작해볼까? 로베르토, 가서 한 상자 들고 와!”
“네, 스칼코!”
스카피의 명령에 주방 보조가 잰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그 사이 스카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대를 정리하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어제 ‘놀이’ 관련 일을 마무리해서 이제부터는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
스카피는 연회의 전반적인 지휘를 맡는 만큼, 할 일이 많았다.
그중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엔터테인먼트.
연주나 연극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요리만 해온 스카피는 그런 ‘놀이’ 문화에 익숙지 않았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잘 해결이 된 모양이었다.
“다행입니다.”
“뭘 그리 웃나? 오늘부터는 주방에만 있을 거니까 각오해.”
누가 할 말인데··· 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 대신 한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나름 스카피를 배려해서 집사 업무를 보라며 잠시 풀어주고 있었는데, 더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시간도 충분하고.’
이번 퀘스트에서 한길의 목표는 크게 셋.
첫 번째는 슬아의 대회에 도움이 될 지식을 배워갈 것. 이미 트린키안티로부터 필요한 카빙 기술은 전수 받았고, 그 외에는 딱히 활용할만한 지식이 없었으니 이건 이미 해결했다.
두 번째 목표는 스카피의 재료 지식을 최대한 많이 배워갈 것. 커피의 도움으로 밤마다 특훈을 받은 덕분에 과채류와 향신료, 가금류와 야생동물 과정은 이미 수료했다. 이제 남은 건 수산물뿐인데, 앞으로 스카피가 밤낮으로 주방에 있겠다고 했으니 이것도 시간은 충분했다.
마지막 목표는 파이널 퀘스트를 클리어할 것.
첫 번째 스테이지에 시민 만찬과 신전 만찬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사냥 대회와 황제의 만찬이 있었다.
‘들떠 있지 말고 침착하게···’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로마 스테이지에서도, 마지막 퀘스트를 겪으며 자신의 한계를 깨트리는 경험을 얻었으니까. 분명 이번에도···
“스칼코, 살모 카피오입니다.”
주방 보조는 나무 상자를 작업대의 빈 공간에 올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것도 한국에는 없는 건가?’
수산물 중에는 유난히 자동번역 기능이 듣지 않는 재료가 많았다. 한국어로 이름이 없는 재료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대한한국에서 굳이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구하기 힘든 재료라는 뜻이었다.
상자 안을 가득 채운 녹색 이파리를 걷어내자, 노릇하게 튀긴 팔뚝만 한 생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조리가 되어서 온 거네요?”
한길이 사뭇 놀라서 질문했다.
이곳에는 냉장 시설이 없기 때문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어류는 식초나 기름에 재워둔 상태, 혹은 훈제된 상태로 도착했다. 살아있는 채로 운반이 가능한 물고기는 연못에 두었고. 이렇게 튀겨진 상태로 온 건 처음이었다.
“요놈만 이런 형태로 들여오지. 이건 가르다 호수에서만 잡히는 생선인데, 향을 워낙 잘 흡수해서 기름이나 식초에 너무 오래 재워두는 게 불가능하거든.”
스카피는 생선을 들어 올리며 꼼꼼히 살폈다. 입술을 달싹이는 게, 지금 당장이라도 삼키고 싶지만 간신히 참는 모습이었다.
“이놈이 얼마나 예민한지, 잡자마자 내장을 제거하지 않으면 비린내가 살점에 옮아버리거든. 그래서 잡자마자 내장을 제거하고 기름에 풍덩 빠트려서 튀기는데, 어떻게 보면 네놈이 만드는 튀김이랑 비슷하기도 하군. 반죽을 묻히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렇게 한번 튀겨낸 생선의 기름기를 약간 털어주고, 끓인 식초에 20분간 재워두었다가 월계수, 박스우드, 머틀 이파리를 넣고 포장해서 보내는 거지. 이건 딱 사흘 안에 먹어야 맛이 가장 좋은데··· 한번 먹어 볼까?”
스카피를 따라 한 입 베어 물자, 바로 반투명 창이 떴다.
[살모 카피오 (1등급)가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
품명: 살모 카피오 (salmo carpio)
등급: 1
원산지: 가르다 호수, 이탈리아
가격: 700 고르메 포인트
정보: 가르다 호수에만 서식하는 연어과 민물고기로, 현대에서는 ‘심각한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
멸종 위기종이라는 단어에 이제는 놀라지도 않았다.
스카피의 주방에서 마주친 어류 중에는 멸종 위기종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다.
‘별맛은 없는데?’
연어과 생선이라고는 하지만, 연어 특유의 고소함은 없고 오히려 밍밍했다. 비린내는커녕 아무 맛과 향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식감만큼은 기름지고 촉촉했다.
“어때?”
“아무 맛도 안 나는데요?”
“그래서 대단한 거라고! 잠깐 기다려봐.”
스카피는 신이 났는지, 폴짝폴짝 뛰면서 설탕과 장미 식초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튀긴 생선에 설탕을 솔솔 뿌리고, 그 위에 장미 식초를 듬뿍 뿌린 후에 다시 건네주었다.
“다시 먹어봐.”
이번에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장미 향이 향수처럼 입안에 퍼졌으니까. 오히려 식초의 날카로운 맛이 중화되어 장미의 향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어때, 향이 죽이지?”
“정말 강하네요.”
“그렇다니까?”
스카피는 게걸스럽게 장미 향 생선을 입안에 쑤셔 넣었지만, 한길의 입맛에는 이 요리가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고수를 처음 먹을 때와 비슷했다. 마치 비누를 먹는 듯한 맛. 학습해야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
‘역시 미각이 다르긴 다르구나···’
스카피와 입맛이 비슷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이렇게 확연히 다른 경우도 있었다.
가장 와 닿는 차이점은 ‘향’의 중요성.
스카피의 요리는 ‘맛’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맛보다도 더, ‘향’이 중요했다.
‘맛’은 혀를 통해 감지되는 다섯 종류의 감각. 즉,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이다. 그에 반해, ‘향’은 코를 통해 감지하는 아로마다.
예를 들면, 파슬리는 ‘맛’이 좋은 재료는 아니다. 은은하게 단맛이 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쓴맛이 강하니까. 하지만 파슬리 특유의 허브 ‘향’이 좋은 재료였다.
스카피가 중요시하는 허브도, 향신료도, 식초도. 모두 향이 중요한 재료였다. 채소도 향이 강한 종류를 선호했고.
이 입맛의 차이가 시대적인 차이인지, 아니면 민족적인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둬서 나쁠 건 없었다. 특히, 세계적인 셰프를 노리는 한길의 입장에서는.
“다음은 송어를 해볼까? 너무 이탈리아 요리만 하면 허전하니까 독일식 요리도 한 번 올려보지.”
“독일식 요리요?”
그러고 보니 스카피는 본인의 입으로 이 세상의 모든 요리를 다 배웠다고도 말했었지.
“독일 놈들은 송어를 구리 냄비에 넣어서 졸이거든. 소스는 간단하게 와인이랑 향신료, 버터만 들어가는데, 너무 오래 끓이면 구리 맛이 나니까 빨리 익히고 꺼내는 게 중요하지.”
“스카피, 혹시 프랑스 요리도 알고 있나요?”
이왕 타국의 요리를 맛볼 거면 유럽 요리 중 으뜸으로 여겨지는 프랑스 요리를 보고 싶었지만,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프랑스? 프랑스 요리는 왜? 그쪽은 별맛도 없는데.”
“프랑스 요리가 맛이 없다고요?”
“뭐, 영국보다는 낫겠지만 뒤떨어져 있으니까. 빵이랑 크림, 페이스트리는 나쁘지 않은데··· 생선 요리는··· 글쎄, 강꼬치 죽이 그나마 나쁘지 않지. 화이트와인에 버터랑 생강, 시나몬, 정향을 넣고 걸쭉하게 끓이는 죽인데, 사실 별로 추천은 안 해.”
의외로 이 시절 프랑스 요리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걔들은 맨날 전쟁하느라 바쁘잖아? 원래 뛰어난 요리는 돈과 시간이 남아도는 귀족분들이 많아야 탄생하거든. 그것보다, 오늘은 모처럼이니까 개구리랑 바다 거북이를 한번 조리해보지.”
“개구리랑 바다 거북이는 육류가 아닌가요?”
“물에 사니까 육류는 아니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수업을 이어갈 때, 갑자기 집사 보조가 주방으로 달려들어 왔다.
“스카피, 미켈란젤로가 도착했습니다!”
“집무실로 안내해 드려.”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분수대를 가져와서 주방에서 확인하셔야 한답니다.”
“··· 그러면 시간 좀 끌다가 10분 후에 이쪽으로 안내해.”
“네, 스칼코.”
집사 보조가 사라지자마자 스카피는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요리에 그리 관심이 많았다고. 지 주방이나 들어가라지, 왜 남의 집 주방을 그리 기웃거린데?”
지난 며칠.
한길은 미켈란젤로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
아니, 사실 미켈란젤로뿐 아니라 외부인은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가끔 외부인을 만날 일이 생기면 스카피가 자신이 대신 처리하겠다고 나섰으니까.
그래서 스카피와 미켈란젤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첫 만남부터도 그랬다.
스카피는 미켈란젤로 앞에서 가끔 무례하다고 여겨질 말투나 행동을 했고. 미켈란젤로 역시 한길을 바라볼 때는 손자를 보는 듯한 따스한 표정을 지었지만, 스카피와 대화할 때는 경직된 태도였다.
‘조금 더 친해지면 좋을 텐데.’
신경이 쓰였다. 이번 인연으로 스카피가 미켈란젤로와 친분을 쌓고 교황궁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니까.
“미켈란젤로를 직접 찾아간 건 스카피입니다. 왜 그리 싫어하시죠?”
“누가 싫어한대?”
“···”
한길이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스카피가 시선을 회피하며 구시렁댔다.
“이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지. 바쁜 양반이니까 조각 몇 개만 만들어주고 떠날 줄 알았는데, 이 양반이 연회를 강탈하려 들잖아?”
“미켈란젤로가 연회를 강탈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본인이 그럴 마음이 없어도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을걸? 이름에 실린 무게가 다르니까.”
“연회는 미켈란젤로의 전문 분야가 아니잖아요.”
“요리는 그럴지 몰라도, 집사는 다르지. 다빈치도 스포르차 가문에서 연회 기획을 맡았다고 하는데, 미켈란젤로라고 못 할까.”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었다. 집사는 귀족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도만 필요했으니까. 오히려, 이쪽 세상에서는 평민 출신에다가 하찮은 요리 기술직인 스카피가 집사로 임명된 게 이례적이었다.
과민 반응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스카피는 조심성이 많은 사내였다. 겉으로는 호탕한 척하지만, 주변을 항상 경계했다.
‘그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
스카피와 비교하면, 오히려 한길이 너무 방심하는 편이었다. 요리에 대해서는 진지했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지나치게 없었다. 덕분에 이곳에서 두 번이나 목숨의 위기도 겪었고.
“그 영감한테 절대 조리법은 알려주지 마. 조리법이 털리면 순식간에 우리를 갈아치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분수대를 들고 왔다면 초콜릿은 보여줘야죠.”
“뭐? 그걸 공개한다고?”
스카피가 눈을 크게 뜨며 펄쩍 뛰어오르자, 한길이 서둘러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걸 똑같이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모처럼 미켈란젤로라는 카드가 있는데, 제대로 활용해야죠.”
“그게 무슨···”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믿고 맡기세요. 안전장치는 있으니까.”
설명 도중에 말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자네, 오랜만이군!”
활짝 웃는 미켈란젤로가 이미 주방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
“어떤가, 쓸만한가?”
“쓰기 아까울 정도네요.”
미켈란젤로의 초콜릿 분수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항아리를 들고 있는 여신의 형상.
대리석은 주문하면 도착하기까지 한달 이상이 소요된다고 해서 목재로 만들었는데, 나무로 흐르는 듯한 옷의 질감을 표현한 게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그러면, 한번 넣어 보겠습니다.”
한길이 초콜릿을 분수 안에 따르자, 잠시 후에 쪼르르 하고 항아리에서 갈색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잘 작동하는군.”
“일단 두 시간 정도 두고, 문제없으면 이대로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두 시간?”
“원래 초콜릿은 걸쭉한 질감인데, 관이 막힐까 봐 기름을 섞어서 묽게 만들었거든요. 관이 막힌다면 점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커흠!”
한길의 설명에 스카피가 갑자기 목청을 다듬으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봤다. 기업 기밀을 유출하는 말단 직원을 바라보는 CEO의 눈빛이었다.
‘이걸 보여주면 화를 내려나?’
스카피의 태도를 보고 한길은 잠시 망설였지만. 원래의 계획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미켈란젤로라는 엄청난 조력자가 있는데, 그의 이름에 가려질까 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조심은 해야겠지만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오신 김에 의견을 구하고 싶은데 시간은 괜찮으십니까?”
“그야 얼마든지. 뭔데 그런가?”
“이걸 연회에 내고 싶은데요.”
그 말과 함께 한길이 꺼낸 건 미리 만들어둔 초콜릿.
동그란 공처럼 생긴 초콜릿도, 하트 모양이나 원형 돔 모양의 초콜릿도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초콜릿을 보자, 미켈란젤로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이것도 초콜릿인가! 이렇게 빚어낼 수도 있다니, 설탕 조각상과 비슷하군.”
이곳에서는 설탕과 아몬드 가루를 녹여서 하얀 반죽을 만들고, 틀로 찍어내서 설탕 조각상을 만들었다. 먹을 수도 있지만, 사실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값비싼 설탕을 자랑하기 위한 장식품에 가까웠고, 그래서 스카피는 설탕 조각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귀한 재료를 낭비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번 연회에는 설탕 조각상을 올리지 않을 겁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없으면 허전하지 않겠나. 하나 정도는 올려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스카피가 왜 그렇게 미켈란젤로를 경계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연회에 어떤 장식물을 올릴지는 집사가 결정할 사안인데, 선을 넘으면서도 자각이 없었으니까.
본인은 가볍게 의견을 낸다고 생각하겠지만, 만에 하나 다른 귀족이 듣고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말한 대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을지도 모른다.
“한번 맛을 보시겠어요?”
한길이 초콜릿을 하나씩 건네주자, 예상대로의 반응이 돌아왔다.
“이건 별미군!”
“설탕 조각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걸? 아니, 이건 코코아보다도 훨씬 맛있잖아?”
설탕과 가루화한 우유를 넣어 만든 초콜릿은, 현대에서 먹는 초콜릿과도 맛이 유사했다. 초콜릿 특유의 묵직한 단맛, 풍미,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급스러운 질감. 어느 모로 보나, 설탕 조각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맛도 맛이지만, 이 모양도 신기하군!”
“그 부분에 있어서 미켈란젤로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잠시만 봐주세요.”
한길은 미리 준비해둔 짤주머니를 들고 왔다. 그리고 초콜릿을 넣어둔 짤주머니를 펜처럼 들고 ‘마크’라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대로 굳히면 이 모양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틀을 쓰지 않아도, 조금 더 자유롭게 다양한 모양을 낼 수 있죠. 이걸로 깃털을 만들고 싶은데··· 보시다시피 제가 손재주가 없어서 잘 안 되더라고요.”
“내가 한번 해봐도 되겠나?”
예상대로 미켈란젤로는 관심을 보였고, 한길은 순순히 짤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잠시 눈을 감은 미켈란젤로는, 거침없는 손길로 짤주머니를 쥐고 움직였다. 기다란 선 하나. 그 위에 수많은 작은 선을 겹쳐 그린 후, 작은 손칼로 솜털까지 새겨넣으니. 순식간에 초콜릿 깃털이 완성되었다. 방금 날아간 새에서 떨어진 것처럼 사실적인 깃털이.
“역시 미켈란젤로의 실력은 볼수록 감탄하게 되네요.”
“다른 것도 한번 만들어봐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미켈란젤로는 크레파스를 든 아이처럼 신이 나 있었다. 주변 상황도 잊은 듯, 몰입해서 초콜릿 공예에 빠져들자, 스카피가 남몰래 한길의 소매를 붙잡고 주방 밖으로 끌고 갔다.
“저 기술, 정말 빼앗길 염려는 없겠지?”
“네, 설령 카카오를 구해서 녹여서 사용해도, 저렇게 굳지 않을 겁니다. 제가 만들어야 굳거든요.”
“네놈의 능력인가?”
“네?”
“마법이냐고.”
“뭐, 그런 거죠.”
사실 조금 더 복잡한 원리가 있었지만,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어 이번에는 그냥 마법으로 남기기로 했다.
초콜릿은 템퍼링(tempering) 과정을 거쳐야 형태를 유지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콜릿은 굳으면서 크리스털 같은 결정체를 만드는데, 그 결정체의 모양이 핵심이다.
결정체가 너무 크면 오돌토돌하고, 너무 고우면 모래성처럼 금방 무너져 내린다. 어떤 온도로 녹이고 식히는지에 따라 결정체의 모양이 결정되는데, 이론도 모르는 사람이 따라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켈란젤로라면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작품을 만들어줄 겁니다. 게다가, 초콜릿에 집중하면 연회의 다른 부분에 관여할 여력이 없겠죠.”
“그래도 네놈이 만드는 게 더 안전하지 않나?”
“저는 저렇게 만들지 못합니다.”
디저트는 한길의 특기가 아니다. 초콜릿의 원리는 알고 있으니 원재료는 만들 수 있지만··· 말하자면, 물감을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건 별개였다.
열심히 시간을 들여서 배우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제가 만들 필요도 있나요? 미켈란젤로가 있는데. 그리고 본인도 저렇게 원하잖아요.”
한길의 답변에 스카피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큭큭대며 웃기 시작했다.
“네놈, 얌전해 보이면서도 이럴 때 보면 약아 빠졌다니까?”
“설마요.”
“그렇게 정색하지 마, 칭찬이니까. 사람을 잘 이용하는 것도 능력이지.”
“이용이 아니라 활용입니다.”
“그게 그거지.”
한길의 성향상 사람을 이용하는 건 꺼려졌지만, 크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전 이 연회를 무조건 성공시킬 겁니다.”
“그건 당연하지.”
“단순히 성공만 시키는 게 아니라 온 유럽이, 아니 역사에 기록될만한 연회로 만들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