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8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87화(187/325)
187. 콜라보
“마크, 이건 어떤가?”
미켈란젤로는 새로 만든 초콜릿 작품을 한길 앞에 내밀었다.
지난 이틀간, 미켈란젤로는 해가 뜨자마자 주방으로 출근했다. 외부인의 주방 접근에 예민한 스카피지만, 초콜릿 공예를 하는 동안에는 마지못해 미켈란젤로의 출입을 허가해 주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잔뜩 곤두선 상태로 미켈란젤로를 주시하던 스카피는, 미켈란젤로가 초콜릿에만 열중하고 주변을 전혀 살피지 않자 어느 정도 경계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등을 돌리고 작업했지만 말이다.
“아름답네요…”
미켈란젤로가 이번에 만든 건 베일을 쓴 여인.
여인의 얼굴 위로 초콜릿 베일이 덮어져 있는데도, 신기하게 베일에 가려진 그녀의 이목구비와 슬픔까지 그대로 전달되었다.
“역시 미켈란젤로네요.”
“초콜릿이 찰흙이란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더군. 요령을 깨달으니 다루는 건 어렵지 않아. 물량을 더 구해오면 사람 크기의 형상도 여럿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내내 관심 없는 척하던 스카피가 갑자기 다가왔다. 초콜릿 모형을 본 스카피의 동공이 조금 확장되었다.
“멋지군요!”
스카피 역시 감탄사를 터트렸지만,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하지만 이건 쓸 수 없습니다.”
“왜지?”
“딱 봐도 성모 마리아 아닙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가?”
“이건 교회를 장식할 물건이 아니라 연회 테이블 위에 올라갈 음식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감히 성모마리아의 형상을 먹을 수 있습니까?”
“… 내가 생각이 짧았군. 역시 집사의 시각에서 보면 다른 모양이네.”
여전히 둘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흘렀지만, 의외로 미켈란젤로는 순순히 스카피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다른 걸 만들어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콜릿 마리아를 바라보는 미켈란젤로의 시선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길 역시 아쉬웠다.
정말 뛰어난 작품이었으니까.
“하나 정도는 대형 장식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미켈란젤로의 초코 마리아라니,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요.”
“먹는 재료를 낭비하는 건 피하고 싶은데.”
“초콜릿은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면 하나 정도는 나쁘지 않겠군. 카카오가 더 필요하다면 추가 물량은 내가 오늘 중으로 알아보지.”
“미켈란젤로, 들으셨죠?”
지난 이틀간, 한길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생겼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이상한 신경전이 감지되면 중재를 하고. 이렇게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대화 내용을 전달해줘야 했다.
스카피가 미켈란젤로를 싫어하는 이유는 알 고있다. 잠재적 라이벌로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왜 스카피를 싫어하는지…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생각해 보면, 한길 역시 스카피와 성격이 맞지 않았다. 제멋대로인 행동과 배려심이 부족한 모습에 거부감이 들 때도 많았고.
‘알고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
하지만 스카피의 요리에 대한 열정을 알게 되면, 사람이 달라 보였다. 미켈란젤로도 스카피의 진중한 모습을 한 번 본다면…
“스카피, 이 갑오징어는 얼마 동안 삶아야 한다고 했죠?”
한길은 미켈란젤로가 들을 수 있게, 일부러 큰 소리로 질문을 했다.
“적어도 두 시간 이상 조리해, 아니면 질겨서 먹을 게 못 되니까. 갑오징어는 불에 닿으면 처음 3-4분까지는 연하다가, 그 뒤로는 말도 못 하게 질겨지다가, 또 2시간이 넘어간 후에야 다시 연해지거든.”
“갑오징어 뼈는 어디에 두고요?”
“주방 보조 애들한테 나눠줘야 하니까 따로 빼놔. 금방에 갖다 팔면 한두 푼은 들어오거든. 반지 만들 때 쓴다나 봐. 그보다, 어제오늘 유난히 질문이 많은데?”
“갑오징어는 익숙지 않아서요. 문어도 그렇고, 이런 재료까지 먹는 줄 몰랐습니다.”
언젠가 유럽인들은 오징어와 문어를 먹지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서양에서는 바다 괴물로 여겨지고 있어 동양에서만 먹는 식재료라고.
섣부른 일반화였다.
스카피는 오징어, 갑오징어, 문어 레시피도 수없이 갖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지금 만드는 갑오징어 요리는 한길이 아는 요리와도 닮아 있었다.
삶은 오징어 속에 소를 채워 넣고 찐 음식.
오징어순대와 비슷했다.
물론, 조리하는 방식은 다르다.
손질한 갑오징어를 올리브유를 두른 냄비에 넣고 파, 후추, 시나몬, 사프란과 함께 살살 볶아주다가 화이트와인을 넣고 푹 끓인다. 오징어가 적당히 익으면 꺼내서 그 안에 소를 채워 넣고 다시 쪄낸다.
소의 구성도 한국과는 다르다.
다진 소고기, 채소, 당면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 대신 치즈, 계란, 빵가루, 건포도, 아몬드, 그리고 생선알을 넣고 허브로 향을 더해준다.
그래도 완성된 모습을 보니, 아무리 봐도 이탈리아식 오징어순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오징어 먹물은 절대 버리지 마. 다른 요리에 이걸로 색을 입히거든. 어딘가 해초 같은 맛이 나서 꽤 재밌지.”
“이 회색 숭어는 호스티아에서 가져온 거라 속에 이상한 진흙이 차 있을 때가 많아. 내부를 여러 번 씻어내고 속에 호두랑 빵가루, 후추, 건포도랑 마늘까지 넣어줘야 흙 맛이 안 나.”
“청어는 살아있을 때 알을 제거하면 항상 망가져. 입을 벌려서 내장을 꺼내주고, 알은 구운 후에 도려내지. 청어알은 밀가루를 묻혀서 구워주면 맛이 기가 막혀.”
재료 하나에 수십 개의 팁이 쏟아져 나왔다. 열심히 집중해서 그 지식을 새겨듣자,
“의외군.”
갑자기 미켈란젤로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느새 한길도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스카피와 요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미켈란젤로는 초콜릿을 뒷전으로 하고 둘을 지켜보고 있었고.
적당히 스카피의 요리 열정만 보여줄 속셈이었는데, 상세한 조리법과 팁까지 공유해 버렸다. 스카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미켈란젤로는 몰라도 되는, 천한 기술입니다. 그렇게 관심을 보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신기해서 말이네. 고작 요리에 그렇게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줄은 몰랐거든.”
꼬륵! 꼬르르르르르륵!
그 순간 정적을 깬 선명한 뱃고동 소리.
잠시 후, 미켈란젤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크흠, 좋은 냄새가 많이 나니 갑자기 허기가 지는구먼.”
꼬르르르… 꼬륵! 꼬륵! 꼬르르르르륵!
민망한 소리가 끊이지 않자, 스카피가 크게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요리사란, 배고픈 사람을 지나칠 수 없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식사 시간을 놓쳤군요. 메뉴 시식도 해야 하는데, 괜찮다면 미켈란젤로도 한번 드셔 보시죠.”
스카피는 곧바로 테이블 세팅을 시작했다.
반나절 동안 만든 요리를 한 상에 올리니, 거대한 작업대에도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상 위에 올라간 접시를 세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질문했다.
“이게 대체 몇 접시인가?”
“지금은 37접시죠. 본 연회에서는 여기에 샐러드나 채소류, 견과류나 과일도 올라갈 테니 약 55접시 정도 될 겁니다.”
“그게 최종 개수인가? 아무리 그래도 황제 폐하의 연회인데, 수가 너무 적지 않나?”
“그런가요? 한 코스에 55접시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 한 코스에?”
“네, 주방 요리는 코스당 50개에서 60개의 요리가 나갈 거고. 크레덴자는 한 코스에 80개의 요리가 나갈 겁니다.”
“… 총 몇 코스라고 했었지?”
“주방이 다섯 코스, 크레덴자가 일곱 코스죠.”
미켈란젤로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자네는 여기보다 치기의 저택에서 일하는 게 어울리겠군.”
“치기라면 로마의 제일가는 대부호, 아고스티노 치기(Agostino Chigi)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 사람도 적당히라는 걸 모르거든. 라파엘을 불러서 저택 안을 전부 벽화로 장식해놨는데, 시스티나 성당보다도 화려하더군. 스타일이 자네랑 비슷하지.”
“그렇습니까.”
“치기의 연회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레오 10세 교황 성하를 초청한 연회였거든. 한 마리에 250 더컷이나 하는 거대 철갑상어를 몇 마리나 내오던지… 심지어 모든 요리를 금으로 만든 접시에 담아오는데, 코스 하나를 마친 후에는 호쾌하게 웃으며 접시를 창문 밖으로 던지자고 하더군.”
“금 접시를 던진다고요?”
“치기의 저택은 티베르강 바로 옆에 있는데, 코스를 마칠 때마다 금 접시를 강에 버리더군. 나중에 듣고 보니 강 안에 그물을 설치해서 다 수거했다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놀랐었지.”
평소에는 미켈란젤로가 말을 할 때마다 건성으로 듣던 스카피였지만, 이번에는 열중해서 듣고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치기와도 친분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치기와는 친분이 없지만, 레오 10세 성하와는 어린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였지. 청소년기를 메디치궁전에서 보냈었거든.”
“그렇습니까. 메디치가의 연회는 어떻습니까.”
“치기와는 확실히 다르지. 소수의 손님만 불러서 제대로 대접하는 연회를 유행시킨 게 메디치 가문이니까. 내가 있을 때는 로렌조가 살아있을 때였으니까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미켈란젤로는 다른 유명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걸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스카피가 초롱초롱 눈까지 빛내며 호응해 주니, 어느새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졌다. 물론, 스카피는 미켈란젤로의 인맥이 아니라 귀족의 연회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지만.
“자네의 거북이 요리는 교황궁보다 맛있군. 그때는 너무 비려서 이걸 굳이 왜 먹나 싶었는데.”
“같은 재료여도,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요. 같은 대리석을 갖다줘도,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못 만들지 않습니까.”
“껄껄, 그것도 그렇군. 이 참치 소시지도 다른 데서는 전혀 보지 못한 맛이고.”
미켈란젤로는 모든 요리를 맛볼 때마다 극찬했다. 하지만 차려진 요리의 절반을 시식한 후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 맛있는데… 정말 아쉽군. 실제 연회에 참석하는 손님들은 이 맛을 다 보지 못할 테니까.”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손이 안 닿으니 전부 먹을 수 없잖은가. 차라리 그 존재를 모르면 상관없는데, 눈앞에 진수성찬을 두고 맛을 보지 못하니 더 괴롭겠어.”
이 시대의 코스 요리는, 한정식집의 상차림과도 비슷했다. 수십 개의 요리가 한꺼번에 상에 올려졌고, 손이 닿지 않는 요리도 많았다. 그런 요리는 하인들이 덜어서 가져다주었고.
“물론 하인 수를 늘릴 겁니다.”
“그래도 하인들에게 지시를 내려야지 않나.”
“귀족이 그런 거로 눈치를 보진 않을 텐데요.”
“하인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손님의 눈치를 보게 되지. 갑자기 대화를 끊고 ‘참치 소시지 좀 갖다주게’라고 하면 어떻게 보이겠나. 게다가 같은 요리를 여러 번 달라고 할 때도 신경 쓰이니 그냥 참고 넘어갈 때가 많거든.”
미켈란젤로의 말에 한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르군요.”
한길과 스카피는 요리를 만드는 입장에서만 상차림을 바라봤지만, 미켈란젤로는 연회에 참석하는 손님의 입장에서 보고 있었다.
한길의 말에,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던 스카피도 턱을 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인들을 더 훈련하면 어떻습니까. 하인 한 명당 손님 두어 명을 맡고, 담당 손님이 먹어보지 못한 요리나 손님이 즐기는 요리도 알아서 갖다준다면…”
“그러면 너무 어수선하지 않겠나. 앉아 있는 손님도 100명인데, 광대도 있고, 악사도 있고, 요리를 운반하는 하인에, 보틀리에에, 트린키안티에, 손님당 담당 하인이라니…”
“그것도 그렇네요.”
스카피와 미켈란젤로가 해결책을 찾는 사이, 한길은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분명 비슷한 게 뭔가 있었는데.’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아직 윤곽이 흐릿하다.
하인이 갖다주는 게 아니라, 수많은 요리를 내가 알아서 먹을 방법이…
‘아! 그거다!’
한길은 서둘러 종이와 깃펜을 들고 와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미켈란젤로, 혹시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나요?”
한길이 그린 그림은 기다란 테이블 위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 벨트가 이동하면 그 위에 올려진 접시도 따라서 이동하는 구조물.
회전초밥의 원리다.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세팅. 분명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접시만 따로 이동하는 건가?”
“이건 진귀하군! 어떻게 만드는 거지?”
“정확한 방법은 모릅니다. 미켈란젤로라면 알까 해서요.”
현대에서 회전초밥집을 가보긴 했지만, 접시와 초밥에만 신경을 쓰느라 회전하는 원리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마도 모터를 사용할 테지만, 이 시대에 그런 장치가 있을 리 없고…
“이 벨트는 하나의 벨트인가? 모서리를 돌 때는 어떻게 하는 거지?”
“…모릅니다.”
“유연한 재질을 쓰나? 아니, 그러면 접힐 텐데…”
“그것도 모릅니다.”
결국 미켈란젤로는 한길에게 답을 찾는 걸 포기하고 스스로 해결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스케치를 그린 후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대략적인 감은 오지만, 시간이 너무 없네. 회전까지 하려면 정교하게 연결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내가 만들면서 다듬어야 할 것 같거든. 그러면 초콜릿과 얼음조각상은 포기해야 하고.”
“그렇나요…”
좋은 아이디어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면 역시 하인 수를 늘리도록 하죠.”
“그래, 하인들의 동선만 정리하면 나쁘진 않을 테니.”
미켈란젤로와 스카피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했지만, 한길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시대에 회전 코스 요리가 나온다면 파격적일 텐데…
하지만 한길도 원리를 모르는 걸 만들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시대에는 기계라는 것이 없으니 제 아무리 미켈란젤로여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다.
‘기계 없이 회전하는 벨트를 만들 수도 없고….?’
다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어디선가 그런 걸 본 적이 있다.
아니, 직접 본 건 아니고 사진으로…
아마도 꽤 오래전, 학창 시절에…
“잠시만요! 미켈란제로,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한길은 서둘러 또 다른 그림을 그린 후, 설명을 덧붙였다.
“이 안에 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위에 접시가 떠다니는 구조죠…”
언젠가 교과서에서 봤던 사진.
포석정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 연회를 하던 정자.
굽이굽이 도는 물길을 만들고, 그 위에 술잔을 띄우는, 왕과 신하들이 놀이터. 그 수로에 술잔이 아니라 요리를 싣는다면?
“이건 재밌겠군.”
이번에는 미켈란젤로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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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다.
한길의 포석정 아이디어는 통과되었다.
돌 대신 목재로 물길을 만들고, 접시를 실은 나무배를 띄우기로 했다. 요리를 실은 접시는 물에 뜨지 않기 때문이다.
수로의 제작은 스카피가 담당했다.
한길은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이번 연회에 올라갈 요리는 총 900가지.
900개의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100명을 위한 900종류의 요리를 만드는 거다.
한 접시 한 접시에 올라갈 재료의 상태와 재고를 다시 확인하고, 사냥대회에 사용할 새고기도 미리 도축해서 걸어놔야 하고, 미리 양념장에 재워둘 재료도 처리해야 하고, 견과류 사탕 등은 당일에 만들 시간이 없으니 미리 작업해 두어야 한다.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 스카피가 찾아와서 의견을 물었다.
“배 위에 올라갈 접시는 이 크기가 최대라더군. 이것도 괜찮겠나?”
“오늘 중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나요?”
“접시가 모자라서 빌려와야 하거든. 오늘 중으로 물량을 확인해야 하니 당장 결정해야 하지.”
“그릇이 너무 작네요. 통으로 굽는 생선은 모두 토막으로 조리해 보죠. 문어는 차라리 빼는 게 낫겠네요. 대신할 메뉴는 제가 만들겠습니다.”
“그럼 접시는 이 사이즈로 구한다?”
“네.”
연회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스카피와 한길의 업무가 분리되었다. 스카피는 연회의 세팅을, 한길은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요리를 담당했으니까.
“아, 그리고 오늘 오후에 한번 최종 테스팅을 해보기로 했어.”
“몇시에요?”
“다섯 시 즈음? 미켈란젤로가 그때가 좋다고 했거든.”
“네, 알겠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본격적으로 얼음조각상과 초콜릿 공예를 마무리하고 있었지만, 회전 코스 요리의 기술적인 조언도 해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수로에서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방법. 적당한 속도로 모든 배가 순항하도록 인공적으로 해류를 만드는 장치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아티스트는 예술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는 화가이자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다. 심지어 전쟁 중에는 전쟁 무기의 디자인도 한 적이 있다고 말했고. 생각해 보면, 다빈치 역시 비행기 모형을 만들기도 했었다.
“마크, 오늘 중으로 초콜릿 날개를 100개 더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준비물을 마련해 주겠나.”
“몇 시까지요?”
“한두 시간 내로는 안 되겠지?”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빨라야 저녁 9시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주게.”
조금 특이한 경험이었다.
세 명이 모두 같은 연회를 준비하고 있지만, 서로 맡는 역할이 달랐다. 서로의 일에 너무 관여하지 않으면서, 겹치는 부분은 조율하고. 각자의 분야는 각자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헤드 셰프 밑에 수셰프, 그 밑에 라인 쿡이 있는 일반적인 주방과는 다른 협력관계.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이 연회는, 세 명이 모두 함께 만드는 연회였다.
“좋네요!”
“완벽해!”
“이거, 진짜 최고의 연회가 되겠는걸?”
최종 리허설을 마친 후, 한길은 뿌듯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스카피도, 미켈란젤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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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도착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올 때 오겠지. 저녁은 여기서 먹는다고 했으니까.”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손님들이 도착하는 날이.
새벽부터 주방에 나와 있던 한길은, 이상하게 오늘따라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번 연회는 기분이 달랐다.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아피키우스의 연회에 한길이 도움을 주었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기획한 연회였다. 물론, 혼자 한 것은 아니고 3인조 중 한 명이었지만.
그래도, 달랐다.
“오는 길에 사고가 생겨서 늦어지지는 않겠죠?”
“사고가 생기면, 황제 폐하랑 주요 신하들만 더 빨리 오겠지.”
“성문 밖에 사람을 보내면 어떨까요? 도착할 시간을 알아야 저녁 준비를 할 텐데.”
“그럴 필요 없어. 가만히 있어도 알게 될 테니까.”
의외로 스카피는 침착했다.
“아, 왔나 보군.”
스카피가 손을 입가에 갖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한길이 입을 다물었다.
“들리지?”
“네.”
황제의 식솔은 총 800명.
800명의 짐을 실은 마차까지 함께 오니, 그것만으로 땅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와와와와!!!”
“황제 폐하 만세!!!”
황제의 로마 입성을 환영하는 시민들의 함성.
쿠르르릉!
수백 마리나 되는 말의 발굽소리.
우레와 같은 함성.
처음에는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리기 시작했고, 한길의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다.
‘드디어.’
이번 스테이지의 최종막.
파이널 퀘스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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