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8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88화(188/325)
188. 사냥 대회
손님이 도착한 날.
첫 끼는 영국 요리를 선보이기로 했다. 물론, 정통 영국 요리는 아니고, 한길이 영국 왕궁에서 만든 메뉴들이다.
양갈비 왕관, 튜더 장미 샤부샤부, 채소 장미, 크렘 브륄레, 터키시 딜라이트, 라따뚜이…
이 메뉴를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유럽 중에 이미 이 요리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소문난 맛집의 요리를 직접 먹게 되는데 싫어할 손님은 없다. 성공이 보장된 메뉴.
더불어 ‘영국’이 대주교와 함께 여는 연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할 수도 있고. 한길과 함께 온 영국 요리사들에게 익숙한 요리이기도 하다.
“번거롭다고 한꺼번에 조리하려 하지 말고, 가지 무지개는 모든 재료를 다 따로따로 조리해.”
돌아가며 주방을 살피는 길버트는, 어느새 지시를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덕분에 한길도 주방을 맡기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손님에게 나가는 모든 요리가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는 둬야 한다. 평범한 저녁 식사에 힘을 쏟다가 다음날 있을 사냥대회에 소홀해지면 안 되니까.
“숯은 두 상자 더 챙기고, 닭 육수도 두 통 더 준비해.”
“네, 쿠오코.”
“마부에게 가서 말이랑 수레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네, 쿠오코!”
사냥대회라고 고기 요리만 나가는 건 아니다. 평소처럼 샐러드, 생선, 채소, 스튜 등을 곁들인 이탈리아 풀코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주방이 없다는 점.
야외에는 기본 시설물이 없으니 준비물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다행히, 디테일에 과할 정도로 집착하는 스카피가 주의사항을 모두 적어주고 갔으니 수고를 덜 수 있었다.
– 주방은 두 팀으로 나눠서 출발하고, 쿠오코는 첫 번째 팀과 함께 이동한다. 현장을 확인한 후, 추가 준비물이 필요할 시에는 말을 타고 사람을 보내 두 번째 팀이 부족한 물건을 가져오도록 한다.
– 첫 번째 팀은 도착하자마자 시설물부터 설치한다. 기본 조리공간은 물론, 고기를 다루는 동안 상하지 않게 그늘막도 넉넉하게 준비한다. 못, 망치, 실, 바늘, 밧줄도 여유분을 준비한다.
– 작업대는 주방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많이 챙겨간다. 야외는 먼지가 많으니, 평소에 바닥에서 하는 작업도 작업대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명서는 스무 페이지에 달했고, 필요한 냄비의 숫자부터 날이 저문 후에 사용할 양초의 개수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질릴 정도로 꼼꼼한 설명서였다.
“마크, 이제 슬슬 요리 나가야 하는데 확인 좀.”
“어, 잠깐만.”
준비물을 챙기다가 손님들의 식사를 점검하고, 또다시 준비물을 챙기고. 정신없이 작업을 하던 중,
“쿠오코, 손님이 오셨는데요?”
“누구?”
“영국 사절단입니다. 주방 출입은 어려워 정원에서 기다리시라고 안내했습니다.”
정원으로 가보니, 위팅턴 백작이 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크, 오랜만이군. 많이 바쁜가?”
“아니,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별일은 아니고. 저녁 식사에 대한 평가가 궁금할 것 같아서 불렀네.”
정신이 없어서 손님들이 식사를 마친 줄도 모르고 있었다. 평소라면 스카피가 와서 결과를 알려줬겠지만, 스카피는 식사가 끝나면 바로 사냥터로 이동한다고 했다.
“반응은 최고였네! 영국이 언제부터 이런 미식의 나라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다들 칭찬 일색이더군.”
“다행입니다.”
“하나같이 연회가 기대된다는 말을 했네. 황제 폐하는 그 무지개 가지를 세 접시나 드셨고, 데스테 후작 부인은 튜더 장미 요리를 두 번이나…”
입이 귀에 걸린 위팅턴은 주요 귀족들의 반응을 일일이 나열했다. 일부러 와서 알려주는 건 고맙지만,
“백작 각하, 사실은 제가 지금 시간에 많이 쫓기는 중입니다. 혹시 다른 중요한 얘기가 있으십니까?”
“그런가. 그… 괜히 부담감이나 불안감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걱정이 되어서 말이네.”
한길이 고개를 기울이자, 위팅턴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번 손님 일행 중에 적이 잠입해 있다고 생각해 주게.”
“샤푸이 대사 때문입니까?”
“샤푸이? 아, 그쪽은 신경 쓸 필요 없네. 그때랑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보다는 지금 프랑스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거든.”
이윽고 위팅턴 백작의 기나긴 설명이 이어졌다.
한길이 이탈리아에 오는 몇 달 사이, 국제 정세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이 밀라노 영지를 두고 대립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사보이를 참략했고, 게다가 최근에는…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하면, 동쪽에서 프랑스 상선에만 특혜를 준다더군. 프랑스와 오토만 제국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건데, 단순하게 상업적인 협력관계는 아닐 테고, 분명 동맹을 맺은 걸세.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나?”
“죄송하지만 제가 정치는 잘 모릅니다. 요리사는 요리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거든요.”
예의상 들어주고 있었지만, 한길은 현대에서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만약 동맹이라면, 프랑스가 사보이를 공격하는 사이에 오토만이 남쪽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남북으로 공격을 받으면 황제 폐하도 동맹국을 찾을 테고, 그러면 영국만큼 매력적인 나라는 없거든.”
돌고 돌아서 드디어 요점이 나왔다.
황제가 영국과의 동맹을 더욱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되었다는 것.
“그러면 저희에게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적들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동맹을 막으려 할 테고, 그러려면 이번 연회가 절호의 기회거든. 만에 하나 영국이 여는 연회에서 황제를 초청하고 독살 시도가 있었다고 하면 어찌 되겠나?”
이제야 위팅턴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왕이면 조금 더 짧게 치고 독살 시도를 조심하라는 말만 해줬으면 좋을 뻔했지만.
“지금 이 저택에는 800명이나 되는 인원이 와 있지. 그중 한 명이 적들이 심어놓은 심복일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는 일이네. 물론 우리 쪽에서도 수상한 사람을 걸러내고 있긴 하지만, 자네도 경계해야 하네.”
“독살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불가능하니까요.”
“… 너무 안 좋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그.. 자네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쪽으로는 영 불안해서 말이네.”
하긴. 적일지 모르는 사람을 800명 중에서 골라내고 대비하는 건, 한길이 생각해도 자신의 특기가 아니었다.
“제가 걱정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린 건, 그 사안은 다른 전문가에게 맡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경계하는데 있어서는, 제가 만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죠.”
“전문가?”
“이 저택의 집사입니다.”
“아, 그 사람?”
위팅턴 백작의 얼굴에서 불안이 조금 옅어졌다. 스카피는 연회 준비가 바쁘다는 핑계로 위팅턴 백작조차도 주방에 들여보내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한길과 직접 만나는 것도 2주 만이다.
“오늘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집사가 지금 자리를 비웠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 사람이라면 만만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자네도 알아둬서 나쁠 것 없으니 말일세.”
“네, 주의하겠습니다.”
“손님은 우리 쪽에서 주시하겠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하인들이 나설 것이네. 그러니 프랑스 사람이나 아랍인, 아니 수상해 보이는 외부인은 다 경계해 주게.”
#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다음날,
스카피에게 위팅턴 백작의 주의사항을 알려주었지만, 스카피는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난 이미 손님 중에 암살자 집단이 숨어있다는 가정하에 준비하고 있는데? 내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목숨이요?”
“쯧쯧, 그사이 잊었나? 집사가 시식 담당이잖아?”
손님들이 요리를 맛보기 전, 집사가 기미를 한다. 독이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절차. 만에 하나 독살 시도가 있다면, 가장 먼저 죽는 이는 스카피다.
“네놈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최악의 최악인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고 있었으니까.”
“이럴 때는 스카피의 의심증이 도움이 되는군요.”
“그것보다, 손님들이 식사할 공간 한번 구경해 볼래?”
스카피는 뿌듯한 얼굴로 한길을 안내했다. 어제 밤새도록 준비한 무대를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선은 여기가 입구인데, 순서마다 자리가 다르거든.”
이번 사냥대회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손님들이 도착하면 사냥터 입구의 공터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스카피 치고 의외로 평범하네요?”
“힘은 줘야 할 때만 줘야 하니까. 어차피 사냥 전에는 다들 사냥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거든. 대신 제일 경관이 좋은 장소로 골랐지. 가끔은 인공적인 미보다 자연미가 좋을 때도 있으니까.”
아침 식사 후에는 매사냥, 그다음에는 사슴 사냥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가 그날의 사냥감으로 차린 저녁 식사.
“여기가 오늘의 주 무대인 저녁 식사 공간이지.”
저녁 식사 공간은 사냥터 한가운데에 있는 호숫가에 마련되어 있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으로 꾸며진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호숫가에 정박해 있는 열몇 척의 배였다.
“크레덴자 코스 하나는 뱃놀이를 하면서 내려고 하거든. 호수 둘레에 횃불을 설치해뒀으니 밤이 되면 꽤 볼만할 거야. 어떤가?”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네요.”
요리사가 연회를 직접 볼 기회는 없다. 무대 백스테이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실제 무대를 볼 수 없듯이.
스카피는 한길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등짝을 세게 때렸다.
“자, 이제 나도 마무리해야 하니까 네놈도 가서 일 봐. 조치는 취해 놨으니까 이상한데 신경 쓰지 말고 요리에만 집중해. 사냥대회를 만만하게 보다 큰코다치니까.”
#
손님들은 동틀 무렵에 도착했다.
사냥에 참여하는 귀족 손님이 백여 명.
그들의 시종이 백여 명.
그 외에도 매사냥꾼, 동물의 흔적을 쫓는 추적꾼, 무기를 관리하는 하인 등. 사냥을 위한 추가 인력이 예상보다 많았다.
게다가 말도 백여 마리, 사냥견도 백여 마리.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저 중 적이 숨어 있는 걸까?’
신경은 쓰였지만, 한길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 생각을 떨쳐냈다. 스카피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경계는 하되, 요리에서 시선이 분산되면 안 된다.
‘주방에는 들어올 일은 없을 테고.’
사냥터에 세팅한 임시 주방에는 울타리가 쳐 있었고, 열 걸음 간격으로 보초가 세워져 있었다. 시야가 뻥 뚫린 공터에 자리 잡고 있어 나무 그늘에 숨었다가 몰래 다가올 수도 없다.
게다가, 임시 주방에 들어오려면 스카피가 오늘 새벽에 배분한 특이한 무늬의 옷을 입어야 하고, 소매 밑에 그려진 독특한 표식을 보여줘야 한다.
주방에도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대비했으니 손님들이 식사하는 장소도 마찬가지일 터.
역시, 별다른 일 없이 아침 식사가 마무리되었고. 이내 땅이 울릴 정도의 말굽 소리와 귀가 멎을 정도의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사냥대회의 두 번째 순서,
매사냥이 시작된 거다.
“요리사들은 주방보조를 도와서 설거지 마무리해! 사냥감이 오면 요리에만 집중해야 하니까.”
지시를 내린 후, 한길은 남몰래 호흡을 가다듬으며 빨라진 심장 박동을 안정시켰다.
사냥감은 모두 야생 짐승.
익숙지 않은 재료지만, 지난 2주간 스카피의 특훈을 받았으니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사냥대회의 가장 큰 까다로움은, 어떤 재료가 도착할지 모른다는 점.
어떻게 보면, 현대의 방송에 나오는 요리 예능과도 비슷하다. 갑자기 깜짝 재료가 던져지면, 그것으로 즉석에서 메뉴를 결정하고 요리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하지.’
굳이 비유하자면, 캠핑장에 가서 캠핑 장비로 깜짝 재료가 던져지면 그걸로 요리해야 하는 거다. 겹치지 않은 메뉴를 만들어 100명을 먹여야 하고. 심지어 재료도 손질된 재료가 아니라 직접 도축까지 해야 한다.
뿌우우우우!
멀리서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사냥감을 잡았다는 신호다.
“쿠오코! 재료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사냥감은 개똥지빠귀 다섯 마리, 종달새 열 마리, 참새 스물일곱 마리.
매사냥은 말 그대로 매를 이용한 사냥으로, 주로 작은 짐승이 잡힌다.
“털부터 제거해.”
“네, 쿠오코!”
주방 보조들이 삶은 물에 새를 넣고 깃털을 뽑는 사이, 한길은 요리사들에게 메뉴를 불러주었다.
“개똥지빠귀는 꼬챙이에 꿰어서 통으로 굽고 양파 소스. 종달새는 세이지 이파리 위에 굽고 펜넬 밀가루 크러스트. 참새는 돼지고기 육수에 넣어서 삶고 후추 소스.”
“네, 쿠오코.”
메뉴가 정했다고 당장 구우면 안 된다. 지금 조리하면 저녁 식사에 나갈 즈음에는 사막처럼 말라 있을 테니까.
요리사들은 소스를 만들고 각 메뉴에 필요한 밑 재료를 한데 모아놨다.
뿌우우우!
다음은 야생 꿩, 자고새, 황새.
이곳의 꿩은 까마귀와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잡은 후에 이틀간 걸어놓고 사용해야 한다.
“꿩은 미리 준비해온 재료로 대체하고 가슴에만 정향을 넣어서 통구이. 자고새는 가슴과 다리에 칼집을 내고 오렌지 주스와 장미수 양념장에 한 시간 재우고 졸여. 황새는 향신료랑 프로슈토를 넣은 육수에 삶고, 그 육수에 라자냐를 만들어.”
이것도 익숙해지니 어느 정도 할만했다.
물론, 아직은 시간이 여유 있으니 그런 것이지만.
“쿠오코! 사슴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새 집사 보조가 다음 순서를 알렸다.
“앞으로는 사냥감이 잡힐 때마다 보고해드릴 예정입니다. 스칼코가 새벽에 말하려다가 깜빡했다고 하십니다.”
“원래 이런 보고를 하나요?”
“아뇨, 처음이죠.”
스카피 나름의 배려다. 재료가 도착하기 전, 어떤 재료인지만 알아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
뿌우우우!
뿔 나팔 소리가 들려오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말이 사슴사냥이지, 어떤 짐승이 들어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사슴을 잡기 위해 숲에 들어가지만, 중간에 다른 동물이 발견되면 그대로 잡아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곰은 절대 안 잡히게 기도해. 예전에 곰고기를 요리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맛있다고 할 수는 없거든. 만에 하나 곰이 들어오면 어깨랑 다리 부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재워둬. 그걸 상에 내면 손님들 다 도망간다?
– 아, 고슴도치도 절대 잡히면 안 되지. 그놈들은 이상한 냄새가 나서 속에 마늘을 잔뜩 넣고 피부에 정향을 다 박고 구워야 그나마 먹을 만 하거든.
설령 맛이 없는 재료가 들어와도 어떻게든 조리해야 하니 그게 불안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굽 소리가 다가오고, 잠시 후에 집사 보조가 임시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멧돼지 한 마리입니다!”
“후우… 다행이네요. 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암컷입니다.”
멧돼지의 수컷은 안드로스테논이라는 페로몬을 분비하기 때문에 조리할 때 암모니아 향이 나기 쉽다. 첫 사냥감으로 멧돼지, 그것도 암컷이 걸렸으면 운이 상당히 좋은 거다.
“쿠오코, 지금 삽을 준비할까요?”
“아니, 기다려.”
“왜요?”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리거든. 숯이랑 장작도 떨어지면 다시 못 구해오니까 낭비하면 안 돼.”
커다란 짐승은 잡은 후에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일종의 의식을 치른다고 들었다. 사냥감을 적당한 공터에 옮기고 현장에서 도축한 후, 내장을 꺼내서 수고한 사냥견들에게 주는 의식이다.
“이제 슬슬 불 피우고 삽 준비해.”
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지시를 내리자, 주방 보조들이 장작을 피우고 그 불에 삽을 달궜다.
“쿠오코! 멧돼지 도착했습니다!”
“털 제거 먼저 시작해!”
멧돼지는 가장 먼저 불로 털을 지진다. 이러면 빳빳한 털은 없앨 수 있지만, 솜털 같은 자잘한 털은 없애기 힘들다.
“삽 가져오고.”
그래서 뜨겁게 달군 삽으로 가죽을 일일이 눌러주고, 칼로 표면을 긁어서 잔털을 제거해야 한다.
“몸통은 통구이, 앞다리는 죽, 다리는 다진 고기, 목은 완자. 목 부위는 피 냄새가 많이 나니까 화이트와인에 재워두고, 나머지는 찬물에 한 시간 담가서 핏물 제거해. 아, 머리는 지금 시작하고.”
멧돼지는 힘의 상징. 따라서 머리도 함께 상에 올린다. 털을 제거한 멧돼지 머리를, 코가 하늘로 향하게 냄비에 넣고 와인, 식초, 펜넬과 함께 끓여야 한다.
뿌우우우!
아직 멧돼지의 조리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또 소식이 들려왔다. 제발 곰은 아니기를…
“사슴입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군요.”
사슴은 손이 덜 간다. 머리와 가죽은 전리품으로 사용되니, 주방에는 이미 가죽이 벗겨진 상태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우선 거꾸로 걸어놔서 피부터 빼고 양념장 만들어.”
이 시대 사람들은 사슴의 피 맛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슴 피로 만든 양념장에 고기를 재워두고, 내부에 프로슈토, 돼지 지방, 자두, 말린 체리, 크림치즈를 넣고 구워준다.
뿌우우우!
“샤모아입니다.”
산양과 사슴의 혼혈처럼 생긴 샤모아 역시 가죽이 제거된 상태로 들어온다. 몸통만 통구이로 구워서 마늘소스를 곁들이고, 다리는 와인에 넣어서 졸여주고…
“멧돼지 머리는 지금 빼놔. 너무 오래 익히면 살점이 흐물흐물해져. 형태가 망가지면 안 되니까 꺼낼 때 조심하고.”
“네, 쿠오코.”
“사슴 구이도 잠깐 불에서 내리고 돼지기름 한 번 더 발라줘.아니면 퍽퍽해지니까.”
“네, 쿠오코.”
“황새도 지금…”
“쿠오코?”
연달아 지시를 내리던 한길이 갑자기 말을 멈추자, 요리사들이 고개를 들며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왜 그러십니까?”
“말굽 소리가 들려서.”
“그런데요?”
“이번에는 뿔 나팔 소리가 없었거든.”
사냥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저렇게 급하게 달려오다니,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방에 뛰쳐 들어온 집사 보조는 안색이 창백했다.
“쿠오코! 황제 폐하가… 말에서 넘어지셨답니다! 일단은 모든 요리를 중단하고 대기하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