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9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90화(190/325)
190. 한 묶음
“탐내실 만 하죠. 지금껏 수많은 지역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섬세한 맛을 빚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인물이죠.”
한번 물꼬를 트자, 대주교는 입이 마를 정도로 집사를 칭찬했다. 이윽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데스테 후작부인과 메디치 공작까지 거들었다.
“정말 대단한 인재입니다. 일전에 예하의 집에서 맛보았던 아티초크도 놀라웠죠. 잡초를 그렇게 요리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칠면조가 가장 인상 깊더군요. 그 거대한 새를 그렇게 촉촉하게 조리하다니…”
열띤 대화가 오갔지만, 황제는 시큰둥했다. 미식가로 알려진 그들과 달리, 찰스 5세는 미식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미식이 우선순위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전쟁 중에는 맛보다 체력에 좋은 요리를 먹었고, 이동할 때에는 휴대가 간편하고 속이 거북하지 않은 음식을 선호했다.
황제가 집사에게 관심을 보인 이유는, 단순하게 정치적 활용도가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아까의 오리 사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군주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냥.
화려한 배 위에 올라탄 귀족 궁수들.
뭍에서 봤다면 그림 같은 풍경이었을 터.
태피스트리로 만들어 대대로 남기고 싶을 정도다.
그 그림이 전 세계에 전파된다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사냥은 이런 모습이라고 보여줄 수 있다면?
“그런데 칠면조 요리는 영국 요리사의 작품 아니었던가요?”
“그랬던가요. 역시 소문의 요리사는 다릅니다. 제가 눈여겨보고 있던 인재인데, 설마 왕실 요리사일 줄이야.”
“영국에서는 마크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수많은 귀족이 왕비 전하의 초청장만을 기다리고 있죠. 헨리 전하께서도 매우 아끼는 요리사인데, 특별히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동행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만들지, 저도 궁금합니다.”
“기대되는군.”
적당히 말을 맞춰주는 사이, 하인들이 분주하게 테이블 위에 첫 번째 코스 요리를 차렸다. 음식이 모두 차려진 후에는, 집사가 다가와 시식한 후에 설명을 했다.
“식초와 후추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송아지 족편 샐러드, 설탕을 뿌린 운카타(giuncata) 치즈, 타글리아티 와인에 재워둔 살루미, 파로 콩으로 만든 피아도니 페이스트리, 아티초크 튀김, 수탉 소스를 곁들인 차가운 수탉 요리입니다.”
“사냥터에서 차린 요리치고는 많군.”
“특별한 손님이니 당연한 겁니다.”
사냥터에서 먹는 요리는 대체로 간소하다. 야외에서 본격적인 요리를 만들기에는 여러모로 까다롭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차림은, 요리의 개수로 보나 차림새로 보나, 저택에서 먹은 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군주의 품격을 생각할 줄 아는 집사다.
“이게 제가 아까 말씀드린 아티초크라는 채소입니다. 민트와도 비슷한 개운한 맛이 나는데, 크림처럼 부드러워서 정말 신기하죠.”
후작 부인이 극찬한 아티초크는, 과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 했다. 화사하게 피어있는 장미처럼 생겼으니까.
“맛도 좋군.”
듣던 대로 은은한 향과 식감이 도드라지는 맛이었다.
그뿐 아니라 샐러드는 향긋했으며, 수탉은 차갑게 식어있음에도 전혀 메마르지 않고 촉촉했다. 콩으로 만든 페이스트리는 목이 전혀 막히지 않으면서 고소하고 달달했다.
‘요리사 실력이 좋네.’
미식에 큰 관심이 없는 찰스조차 모처럼 혀가 즐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처음에는 영국 사절단이 왜 굳이 요리사를 데려왔을까 싶었지만, 맛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 코스에는 매사냥에 잡았던 메뉴들이 올라왔다.
“세이지에 구운 피그페커, 양파 소스를 곁들인 개똥지빠귀, 세이지와 펜넬 밀가루를 묻힌 종달새, 후추 소스를 곁들인 참새, 꿩 통구이, 오렌지 주스와 장미수 소스를 곁들인 자고새, 모둠 혀 튀김입니다.”
이번 요리도 하나같이 훌륭했다.
사냥터에서 먹는 새 구이는 잡내가 나거나 질기기 마련인데, 하나같이 깔끔한 맛에 보드라울 정도로 연한 식감이었다. 게다가 신기한 메뉴도 있었고.
“혀 튀김이면 새 혓바닥을 말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키프로스나 베네치아에서는 새 혓바닥이 별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갓 잡은 새를 사용해야 하는데, 오늘 폐하께서 좋은 재료를 많이 가져다주신 덕분에 실력을 발휘해 보았습니다.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들이라 고소할 겁니다.”
집사의 말대로, 새 혓바닥은 새우와도 비슷한 고소함이 일품이었다. 손톱만 한 크기이지만, 질기지 않고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도 신기했고.
“두 번째 크레덴자 요리입니다. 롬바르디식 허브 파이, 자두 토르트, 오렌지 주스를 곁들인 완두콩, 과일 소스를 뿌린 배, 봄 치즈와 리비에라 치즈, 우유 크림, 나폴리식으로 크림을 채운 치알디니 페이스트리입니다.”
다음 코스 역시 만족스러웠다.
맛도 맛이지만, 키프로스와 베네치아의 별미에 이어 밀라노, 이탈리아 남부의 요리까지 나오다니. 그 다양성에 사뭇 놀랐다.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위대한 제국, 신성 로마 제국의 밥상에 걸맞은 메뉴다.
그리고 또 다음 코스.
“멧돼지 머리 고기, 과일과 치즈를 넣고 구운 사슴, 와인에 졸인 샤모아 스튜, 베네치아식 멧돼지 구이, 포타쥬, 멧돼지 프리카세입니다.”
“폐하,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육류 요리가 나오자, 황제의 카빙을 담당하는 팔라체 백작이 펜싱을 하듯 깔끔한 솜씨로 고기를 썰어서 접시에 담아주었다.
사슴 고기는 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연했으며, 속에 채워진 말린 자두와 치즈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멧돼지 역시 운이 나쁘면 이상한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진한 풍미와 기름진 맛이 말로 할 수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샤모아 스튜도 와인의 깊은 단맛과 녹아내리는 살코기가 흠잡을 곳 없었지만,
‘왜 멧돼지랑 사슴이 먼저 나온 거지?’
괜히 아쉬워졌다.
일반적으로 커다란 사냥감은 식사의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정해진 순서는 없지만, 보통은 새고기를 먹은 후에 커다란 짐승을 먹는다.
‘오리가 먼저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저렇게 늠름한 멧돼지가 나온 후에 오리가 등장하면 너무 볼품없어 보이지 않은가. 저 멧돼지 역시 자신이 잡은 것이지만, 이왕이면 오리가 더 돋보였으면 했다.
그때, 집사가 다가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오늘은 조금 특별한 요리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이번 요리는 사전에 훈련을 받은 트린키안티가 준비해야 하는데,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허가가 떨어지자, 하인 몇 명이 다가와 작은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숯 통과 프라이팬까지 올리는 모습에 몇몇 귀족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여기서 조리하려는 걸까요?”
“요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요.”
귀족들은 주방에 들어갈 일이 많지 않다. 완성된 요리는 매일같이 먹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일은 거의 없다.
“알비치입니다. 오늘 폐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트린키안티가 자기소개를 마치자, 하인들이 커다란 쟁반에 맛깔나게 구워진 오리 한 마리를 들고나왔다.
“이것이 오늘 사냥한 오리인가!”
보기만 해도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오리다.
트린키안티는 능숙한 손길로 오리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팔라체 백작보다도 화려한 손놀림을 보니, 실력이 제법 좋은 트린키안티다.
이미 한번 구워서 나온 오리고기는 그대로 먹어도 좋을 것 같지만, 트린키안티는 오리 조각을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기름진 오리 향이 공기 중에 퍼져나갈 때 즈음, 그는 길쭉한 병을 꺼내 오리 위에 액체를 뿌렸다. 그리고 팬의 손잡이를 살짝 기울이자,
화르륵!
“어머!”
“이런!”
“이건!”
마법처럼 솟아오르는 불길.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신비로운 불꽃이 기세 좋게 타올랐다. 푸른색과 주황색이 공존하는 신기한 불기둥은, 춤을 추듯이 넘실거리다가 등장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사라졌다.
보고도 믿기지 않은 상황.
모두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떡하니 벌리는 와중, 트린키안티만이 침착하게 오리고기 위에 별도의 소스를 끼얹고 접시에 담아냈다.
“완성되었습니다. 불꽃을 입힌 오리구이입니다.”
“방금… 그건… 대체 어떻게 한 건가.”
“저희 쿠오코가 개발한 조리법입니다.”
“그 영국인 요리사 말인가.”
“그렇습니다.”
황급히 영국 사절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사절단 대표인 위팅턴 백작도 귀신에 홀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저희 마크가 마법 같은 요리가 특기입니다, 하하하.”
방금 무엇을 목격한 건지 궁금했지만, 그건 나중에 물어봐도 된다.
꿀꺽.
지금 당장은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그 거친 불길을 온몸으로 받아냈는데도, 오리 껍질에는 흉하게 얼룩지거나 그을린 흔적이 없다. 아름다운 적갈색이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그래, 크다고 다 좋은 게 아니지.’
크기만 보면 아까의 멧돼지가 더 늠름했지만. 이 오리는 마법 같은 불길에도 굴복하지 않은 강한 오리였다.
포크로 오리 한 점을 집어 올리자, 갑자기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찰스가 앉은 테이블은 물론, 불쇼를 목격한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까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 시선을 즐기며 입안에 살코기를 넣자, 눈이 절로 감겼다.
‘이건…’
오리 껍질이 바삭하다 못해 유리처럼 깨졌고, 그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몸을 관통했다.
불맛!
오리 특유의 향과 불맛의 조화.
오리 껍질 아래에는 촉촉한 살코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훈제 향과 타임 향이 오리고기 특유의 기름지면서도 진한 육향과 잘 어우러졌다.
육즙은 또 어떻고!
치아에 닿을 때마다 기름진 육즙이 쏟아 나왔다. 체리 소스의 은은한 산미가 기름의 느끼함을 잡아내고, 매끄러운 질감과 깊은 풍미를 더욱 부각시켰다.
먹고 있는데도 더 먹고 싶다.
분명 배가 부른데도, 배가 터질 때까지 이 음식을 꾸역꾸역 채워 넣고 싶어졌다.
한 점, 또 한 점.
식탐에 온전히 몸을 맡기며 바삐 입안으로 고기를 밀어 넣기를 여러 번.
“맛은 어떠십니까, 폐하.”
고개를 들어보니 후작 부인이 아니꼬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메디치 공작은 칠칠맞게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입 한쪽에 침이 고여 있었다.
“참으로 좋군. 한 접시 더 주겠나.”
추가 주문을 하자,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건, 살기…?
그제야 찰스는 눈치챘다.
아직 이 요리를 맛본 이는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들 한번 맛보도록.”
뒤늦게 덧붙이자 방금 느꼈던 살벌한 공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화르륵!
입안에 펼쳐지는 맛의 향연을 만끽하는 동안, 트린키안티는 불쇼로 눈을 호강 시켜 주었다.
“저쪽 테이블에도 가져다주도록.”
“예, 폐하.”
처음에는 불쇼에 홀려 있었지만, 갈수록 찰스는 주변 귀족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자신의 지시로 요리가 나갈 때마다 감격하는 귀족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오리는 처음입니다.”
“환상적인 맛이군요!”
“역시 폐하가 잡은 오리라 그런지, 맛이 전혀 다릅니다.”
저들에게 이 기억은 평생 각인될 터.
앞으로 저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갈 자신의 이야기가 기대되었다.
술에 취한 것처럼 도취되어 있던 그때,
“폐하, 내일 연회 전에 잠시 찾아가도 될련지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해보게.”
답을 먼저 하고 고개를 돌리니, 위팅턴 백작이 활짝 웃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만약 위팅턴이 간을 빼달라고 했어도 좋다고 말했을 테니까.
‘정말 악마의 요리군.’
머리가 차갑게 식으면서 찰스는 다시 냉정하게 이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미식에 관심이 없는 자신조차 홀릴 정도의 요리. 방금 느낀 황홀감은, 아까 사냥 도중 느꼈던 황홀감과도 매우 닮아 있었다.
만약 사냥 후에 평소에 먹는 사냥터의 요리가 나왔다면, 오히려 실망감이 두 배였을 거다.
저 집사와 요리사는 한 묶음이다.
“위팅턴 백작”
“네, 폐하.”
“헨리 왕이 요리사를 많이 아끼는가.”
“네?”
자신의 질문에 몇몇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니네.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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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대회는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손님들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떠났지만, 한길의 일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횃불에 의존하며 짐을 하나하나 다 챙겨야 하니까.
“작은 접시 열다섯 개가 모자라네.”
“설거지 할 때는 전부 있었는데요?”
“찾기 전에 못 떠나니까 다시 한번 찾아봐. 그래도 없으면 호위병을 불러서 모든 짐을 풀어서 확인할 거니까 그 전에 찾자.”
스카피에 의하면, 이런 대형 행사에서 사라지는 식기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하인들이 하나쯤은 슬쩍해도 모를 거라는 생각에 훔쳐 가기 때문이다.
“쿠오코, 찾았습니다!”
호위병을 풀어 수색한다는 은근한 협박 후에야 모든 접시가 발견되었다.
“마크!”
정신없이 일하던 중, 스카피가 다가왔다.
“아직 안 가셨습니까.”
“내가 네놈보다 할 일은 더 많거든? 그보다, 식사가 어찌 됐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스카피가 어련히 잘 알아서 했겠죠.”
“걱정도 안 되나 보지?”
“모든 요리는 완벽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스카피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죠. 저는 남의 일까지 챙겨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습니다.”
“네놈은 갈수록 인간다워지네.”
별일은 없었을 거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식사가 나가는 도중에 주방에도 알렸을 테니까.
그것보다, 한길이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그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글쎄? 바쁘신 분이 내 일에 왜 관심을 보이시는지 모르겠는걸?”
“스카피 일 말고 하인들 쪽이요.”
사냥대회 요리를 최우선으로 하긴 했지만, 한길은 이번 사고를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황제를 공격하는 사냥개를 풀어놓은 하인. 그대로 방치하면, 내일의 연회에도 분명 방해 공작을 시도할 거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위팅턴 공작이 준 힌트에 따르면 하인은 프랑스인 혹은 아랍인.
한길이 식사를 준비하는 중 스카피는 직접 모든 하인을 만나보았지만, 외국인은 찾아낼 수 없었다.
– 제대로 훈련을 받은 인간인가 본데? 눈으로 봐서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잠입한 인간들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어도 순순히 대답해줄 것도 아니고.
– 이탈리아 사람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킬 수도 있지 않나요?
– 그건 가능성이 낮지. 무려 황제나 되는 인물을 노리다가 잘못되면 고향에도 못 돌아갈 테고, 가족도 몰살될 텐데. 분명 치고 빠지려는 외국인일 거야.
정체를 숨기는 외국인을 추려내야 하는 상황.
별다른 방법이 없던 도중, 한길이 질문했었다.
– 스카피, 여기서도 아랍인은 이슬람교인가요?
– 그건 또 뭔 바보 같은 소리래?
– 돼지고기를 먹는지 궁금해서요.
– 아!
발음은 의식적으로 속일지 몰라도, 식성까지 속일 생각은 못 할 거다.
그래서 하인들의 저녁으로는 멧돼지 고기와 채소 구이를 냈다. 채소는 올리브유와 버터를 넣고 조리한 두 종류로 내고 뷔페 형식으로 차렸다. 그리고 스카피의 집사 보조가 하인들을 일일이 감시했다.
“버터 채소만 계속 가져다 먹는 인간이 다섯 명. 그 느끼한 걸 왜 그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이탈리아 요리는 버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버터를 좋아했다.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버터 요리를 지나치게 즐겨 먹는 사람은 의심 대상에 올릴 수 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인간은 세 명. 이건 정말 빼박이지.”
아랍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보다 더 정확하다. 그들은 종교상의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니까.
온종일 사낭터에서 뛰어다녀 지쳐있는 하인들이, 유일한 단백질인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면 수상하다.
“총 여덟 명이네요. 여기서 더 추려낼 수 있을까요?”
“그건 나한테 맡겨두고, 네놈은 네놈 일이나 해.”
“뭘 하시려고요?”
“글쎄? 아, 내일 하인들 아침은 죽으로 만들어줘. 이왕이면 향이 진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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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으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네 시.
한길과 스카피는 가장 먼저 얼음조각상을 확인하기 위해 얼음 창고로 향했다.
“미켈란젤로?”
창고의 입구에는 미켈란젤로가 바닥에 웅크려서 잠들어 있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들어가서 주무시지 않고.”
“아직 조금 손 볼 곳이 남아 있어서 눈만 붙이고 다시 작업하려 했지. 한번 확인해 보겠는가.”
얼음조각상은 하나하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작품들이었다. 이런 작품이 녹아 사라진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대단하군요.”
“그런데 어디가 미완성이라는 거죠?”
“그냥, 손은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말이네. 자네들은 안 들어가나?”
“저는 괜찮습니다.”
“왜?”
“잠이 별로 안 와서요. 혹시 모르니까 전 여기에 남아있겠습니다.”
한길은 잠을 잘 생각이 없었다.
오늘 이상한 시도도 있었던 마당에, 연회의 주요 소품을 놔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누군가가 이 작품들을 노린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
“그래? 그러면 난 잠깐만 들어갔다 오겠네.”
한길이 남는다는 말에, 미켈란젤로가 갑자기 크게 하품을 했다. 역시, 미켈란젤로도 할 일이 남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내일 손님 앞에 서야 하니 빨리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부탁하네.”
“그럼 수고해!”
미켈란젤로는 그렇다 치고.
스카피까지 후련한 얼굴로 떠나자, 한길은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스카피는 얼마 후에 다시 나타났다.
공책을 한 아름 들고서.
“이건 뭡니까?”
“사냥대회 식사, 까먹기 전에 기록해 놔야지. 네놈이 하도 즉흥 요리를 많이 만드니까 귀찮게 물어봐야 하잖아? 그 오리구이, 어떻게 만든다고 했지?”
스카피는 한길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새 공책을 펼쳤다. 한길이 설명을 마친 후에는, 손님상 차리기와 손님 반응에 대해 필기하기 시작했다.
“손님 반응을 이렇게 일일이 적어요?”
“시끄럽게 쫑알대지 말고, 네놈은 이거나 보고 있어.”
스카피는 손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낡은 공책 몇 권을 한길에게 건네줬다.
“이건 뭔데요?”
“보상.”
“보상?”
“네놈, 나한테 요리 배우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비법선데, 딱 한 시간만 빌려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