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9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93화(193/325)
193. 뒤풀이
‘욕심이 너무 과했나?’
주방에서 일하는 한길은, 잠깐이지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다.
르네상스식 포석정.
분명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실행에 있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플레이팅.
일반적인 연회에서는 한 접시에 3-4인분의 요리를 올리고, 트린키안티가 손님 앞에서 개인 접시에 나눠준다.
하지만 포석정의 플레이팅은 모두 1인분.
페이스트리는 1인분을 담으나 4인분을 담으나 큰 차이가 없지만, 생선은 다르다. 평소라면 한 마리를 통으로 올리면 될 것을, 1인분으로 나눠서 담아야 한다.
즉, 트린키안티가 연회장에서 하는 작업을 주방에서 맡게 된 것.
서두르다가 칼질을 잘못하면 생선이 너덜너덜해지기 때문에 최종 카빙은 한길이 도맡아 했다. 트린키안티가 도와주긴 했지만, 퍼포먼스에 특화된 그의 기술은 속도 면에서 많이 아쉬웠다.
‘죽을 것 같네.’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 속이 울렁거리고 그대로 쓰러져 기절할 지경이었지만,
[파이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눈앞의 창을 보니 모든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뒤늦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마크? 왜, 그래?”
“그냥 긴장이 풀려서.”
“하긴, 이걸 겪고도 제정신이면 인간이 아니지.”
길버트는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드디어 끝이네.’
이상하게 울컥했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는 없었다.
“쿠오코, 황제 폐하께서 쿠오코를 만나고 싶어하신다는 위팅턴 백작의 전갈입니다.”
한길은 서둘러 깨끗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손님용 의상으로 갈아입고 연회 장소로 나갔다.
“자네가 요리사인가?”
연회장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 인물은 길게 늘어진 매부리코와 돌출된 주걱턱이 도드라졌다.
나이는 많아 봐야 30대 중후반.
저 사람이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미대륙에 이르는 거대 제국의 황제, 찰스 5세다.
“이번 연회를 담당한 쿠오코, 마크입니다.”
한길은 예절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한길의 옆에는 이미 스카피가 동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에게서 들었네. 오늘 연회는 두 사람이 시작부터 기획했다더군. 지금껏 수많은 연회를 경험했지만, 이토록 진심을 담아 내 삶과 업적을 축복해준 연회는 처음이었지. 대주교와 영국 왕비는 물론, 자네들에게도 예를 표하고 싶었네.”
황제의 목소리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두 사람에게는 각자 500 더컷을 하사하도록 하지.”
500 더컷의 가치를 알 수 없었지만, 주변의 웅성거림으로 보면 상당한 금액인 듯했다.
이윽고, 황제의 시선이 스카피로 향했다.
“스카피, 자네를 궁정백으로 임명하겠네. 향후 내가 머무는 거처에서 나를 보필할 수 있겠나.”
“영광입니다.”
황제의 말에 주변의 웅성거림이 술렁임으로 바뀌었다.
‘궁정백이라면 분명…’
언젠가 들은 기억이 있다. 페라라 공작령의 집사, 메시부고가 황제의 인정을 받아 궁정백이 되었다고.
궁정백은 영지가 없고 세습되는 작위도 아니지만, 황제의 직속 관리여서 일반적인 백작보다 높은 지위라고 들은 것 같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자 신입 집사인 스카피에게 과분할 정도의 자리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말에 측근으로 보이는 한 귀족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폐하, 그런 결정은 조금 더 심사숙고한 후에 내리심이 어떠신지요. 아직 그자의 출신조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인으로 고용하시는 것까지는 막지 않겠으나, 작위를 하사하는 데 있어서는 신중해야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자가 맡을 업무를 생각하면, 그에 상응하는 지위가 필요한 걸 어쩌겠는가.”
말을 꺼낸 귀족이 어리둥절하자, 찰스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자를 내 마에스트로 델 세레모니 (maestro delle cerimonie)로 임명할 생각이네.”
“…!”
“아니, 그건…!”
연회장이 다시 한번 크게 술렁였다.
“마에스트로 델 세레모니는 나와 관련된 모든 행사와 의식을 총괄하는 인물. 요직에 앉을 인물이 평민일 수는 없으니 궁정백이라도 돼야지 않겠나.”
“폐하, 마에스트로는 폐하의 품격과 기품을 짊어지는 신하입니다. 그런 자리에…”
“오늘의 연회를 직접 보고도 이 자의 능력에 의심을 품는가.”
“그건…”
남자는 입을 뻥긋거렸지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길은 몰래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로써 스카피는 이탈리아를 벗어나게 되었다.
종교 개혁을 의식하며 검소한 식탁을 꾸미는 대신, 황제의 품격에 걸맞은 연회를 열게 될 거다.
신이 나서 일할 스카피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이쪽이 스카피에게는 더 어울렸다.
“그리고 마크. 자네도 내 개인 요리사가 되어 주겠는가.”
이것도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연회 직전, 위팅턴 백작으로부터 ‘가고 싶은 곳에 가도 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영광입니다.”
한길의 답변에 황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이렇게 좋은 신하를 둘이나 얻다니, 오늘은 좋은 날이군. 들어가서 일들 보게. 내 나중에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연회장을 벗어나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는 길.
스카피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나, 오늘부터 백작인 건가?”
“작위 수여식이 있지 않을까요.”
“내 수여식도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걸까?”
“글쎄요.”
“네놈은 왕궁에서 일했다는 놈이 아는 게 없냐.”
“저는 주방에만 있었으니까요. 그보다 앞으로는 말투를 좀 교정하셔야겠습니다, 백작 각하.”
“아직 그렇게 부르지 마, 오글거리니까.”
“동감입니다.”
가볍게 스카피를 놀리면서 다시 주방으로 향하던 그때,
“저기, 두 분!”
허둥지둥하며 달려오는 하인이 있었다.
복장을 보니 황제의 일행이다.
“폐하께서 끝나고 하실 얘기가 있다 하십니다. 따라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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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받은 방은 대주교의 저택에서도 가장 화려한 방. 귀빈실 옆에 붙어 있는 접견실이었다. 휘황찬란한 방에 주눅 들어 스카피조차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황제가 입장했다.
“예의를 차릴 필요 없네. 그보다는 시간이 늦었으니 본론부터 꺼내도록 하지.”
찰스는 무릎을 꿇은 스카피와 한길에게 어서 일어나라는 고갯짓을 한 후, 방 한가운데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아까는 보는 눈이 많아서 자세한 말을 할 수 없었지. 두 사람에게는 특별한 임무를 주고 싶네. 물론, 거절해도 되지만 이왕이면 받아주었으면 좋겠군.”
운을 떼는 것만 봐도, 평범한 요리나 연회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뽑아낼 그런 사람이 필요한데, 자네 둘이라면 걱정은 없을 것 같지만.”
“어떤 임무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스카피가 아직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어 한길이 대신 질문하자, 황제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페르시아로 사절단을 보내려 하네. 함께 가서 자네들의 연회를 열어주게. 사파비 왕조를 설득할만한 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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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의 대면 이후. 연회장을 치우고 숙소로 돌아온 한길은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이미 대낮.
한길은 남은 시간부터 확인했다.
[23:11:09]퀘스트가 끝났다고 스테이지가 끝나진 않는다.
아직 약 23시간이 남아있었다.
‘조금 더 잘까?’
마음 같아서는 몸에 누적된 피로를 풀어주고 싶었지만, 이번 스테이지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침대에서 보낼 수는 없다.
일어나서 옷부터 갈아입자, 첫 번째 손님인 위팅턴 백작이 찾아왔다.
“왕비 전하께서 연회를 무사히 마치면 이걸 전해달라고 하셨네.”
백작은 보석이 박힌 장신구를 여럿 건네주었다. 모두 왕비의 개인 물건이었다.
“우리는 내일 바로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네. 자네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마음 같아서는 다시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싶군. 왕비 전하는 적이 너무 많아. 신뢰할 수 있는 신하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으련만…”
“동정심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한길이 희미하게 웃었다.
“왕비 전하는 그렇게 약한 분이 아니십니다.”
한길이 본 불린 왕비는 사랑에 눈이 먼 여자가 아니었다. 야망이 가득하긴 했지만, 충동적이진 않았다. 과감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저하를 잘 부탁드립니다. 저하만 곁에 계신다면 별일은 없을 겁니다.”
위팅턴 백작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에게 이 이상을 해달라고하는 것도 욕심이지. 이미 자네는 일반 요리사가 해줄 수 있는 이상을 해주었으니까. 고맙네.”
위팅턴 백작은 한길의 두 손을 부여잡으며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위팅턴은 처음부터 불린 왕비의 측근이었던 만큼, 왕비의 몰락을 자신의 몰락으로 여기고 있었다. 출세로 이어지는 유일한 동아줄이 끊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나타나 그 줄을 다시 이어 붙여준 한길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나?”
“사실, 하나 있습니다.”
“뭐지?”
먼 길을 떠나기 전, 이곳의 상황도 정리해 두고 싶었다.
“영국에는 제 소유의 수도원이 있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길버트에게 관리인을 부탁하고 싶었는데, 절차를 몰라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군. 그건 내가 처리하겠네.”
수도원에는 재료뿐 아니라 귀한 역사자료도 보관되어 있었다. 언젠가 다시 이 스테이지에 재진입한다면, 시간을 내서 그 보물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다.
“마크!”
위팅턴을 보낸 후에는 두 번째 손님, 길버트가 찾아왔다. 길버트에게 수도원 관리를 부탁하자, 길버트가 불안한 얼굴을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히 사업한다고 일 키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유지만 시켜주면 돼. 길버트 이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부탁할게.”
“절대,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
한길이 죽었다고 여겨지던 몇 달 동안 상복도 벗지 않았던 길버트다. 딱 부러진 구석은 없지만, 어딘가 충성스러운 골든레트리버 같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으로 자기 생각만 했지만. 길버트는 아직 시골 청년 같은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스카피보다 더 신뢰가 갔다. 스카피에게 맡겨두면 바로 팔아버리고 ‘네놈이 멍청해서 대신해줬는데 뭘?’이라며 뻔뻔하게 나올 테니까.
길버트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마지막 손님인 스카피가 찾아왔다.
“네놈은 어째 쉬는 날에도 손님이 이리 많냐?”
“제 손님이 많은지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보다 나갈 테니까 준비해!”
“어딜 가려고요.”
“큰일 치렀으면 뒤풀이도 제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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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피가 한길을 끌고 향한 첫 번째 목적지는 미켈란젤로의 저택이었다.
“스카피! 마크!”
미켈란젤로는 20년은 젊어진 듯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둘을 맞이했다.
“안 그래도 어제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하는 바람에 오늘 찾아가려던 참이었네! 이 나이가 되어서, 자네 둘 덕분에 새로운 경험도 하고. 정말 고맙네.”
“말로만 고마우면 답니까.”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글쎄 마크 이놈이 아직 로마 시내 구경도 못 해봤다고 하지 않습니까. 같이 가시죠! 간 김에 뒤풀이 겸, 한잔하고요!”
스카피 답지 않은 기특한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퀘스트만 수행하느라 모처럼의 유럽 여행, 그것도 유럽 시간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아쉽던 한길이었으니까.
“저기, 저 건물 보이지? 저게 콜로세움. 멋지지?”
스카피는 거리를 걷다가 도시 중간중간에 있는 유적지를 가리켰다. 웅장하고 멋진 건물들이었지만, 너무 멀리 있어서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조금 가까이 가서 보면 안 되겠습니까.”
“그랬다간 오늘 일정을 소화 못 할 걸? 어차피 가까이서 보나, 멀리서 보나 똑같아. 여기가 이번 목적지, ‘돼지 소굴’! 로마 최고의 와인이 있는 술집이지.”
스카피의 투어는 조금 이상했다.
술집이 최종 목적지이고, 그 경유지에 유적을 잠깐 보여주는 형식이었으니까.
“어이, 주인장! 항상 먹는 거로 3인분!”
“스카피? 혹시 자네 옆에 계신 분은… 미켈란젤로?”
“말도 안 돼!”
“진짜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이 시대의 연예인과도 같았다.
등장만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미켈란젤로는 이 시대 최고의 선물입니다.”
“작은 그림 하나만 부탁하는 건.. 안 되겠죠? 그려주신다면 가보로 삼겠습니다.”
“이 사람들 이거, 좀 비켜봐! 우리 미켈란젤로 숨도 못 쉬겠네.”
스카피는 미켈란젤로의 옆에 찰싹 붙어서 매니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파리 쫓아내듯 인파를 쫓아내고 있지만, 은근 이 관심을 즐기고 있었다.
“맛이…”
스카피가 주문한 술과 음식이 나오자, 미켈란젤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와인은 스카피의 말대로 상당히 맛있었지만, 음식 맛은 끔찍했기 때문이다.
“자네 정도 수준의 요리사가 이런 음식이 넘어가는가.”
“뭐, 때와 장소에 맞는 음식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 음식이 뭐 별건가요.”
“잠시 천국에 갔다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홀한 음식이었지.”
“에이, 말씀이 과하십니다. 설마 천국 같았을까.”
“아니, 진심으로 어제의 연회는 천국이었네. 노을을 담은 수로 위에 황금 범선이 음식을 실어 나르는 연회라니!”
“저, 실례지만 혹시 무슨 연회를 말씀하시나요?”
“어제 있었던 찰스 5세 폐하의 연회네.”
잠시 거리를 두며 엿듣기만 하던 사람들은, 미켈란젤로가 연회 얘기를 꺼내자 질문을 쏟기 시작했다.
“정말 황제 폐하의 옆에 앉으셨나요?”
“그보다, 얼음 조각상이라니!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봐, 주인장! 여기 와인 한잔 더!”
술집 사람들은 너도나도 미켈란젤로에게 술잔을 건넸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미켈란젤로는 신이 나서 연회의 이야기를 이어갔고, 사람들은 단어 하나라도 놓칠까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 사이, 스카피가 다가와 한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미켈란젤로는 바쁜 것 같으니 우리는 카드 게임이나 할까?”
“스카피, 고의죠?”
“뭐가.”
“미켈란젤로 이용해서 로마 전체에 소문내는 것 아닙니까, 지금.”
스카피는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는걸? 저 영감이 워낙에 사람이랑 교류가 없으니까 조금 즐기라고 하는 거지. 봐봐, 좋아 죽으려고 하잖아?”
스카피의 말대로, 미켈란젤로는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그보다 네놈, 카드는 해본 적 있나?”
일일 이야기꾼이 된 미켈란젤로를 뒤로하고 스카피는 한길에게 이곳의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슬슬 술집 사람들의 질문이 잦아들 때 즈음,
“미켈란젤로, 얘기는 다 끝나셨습니까? 그럼 다음 목적지로 가시지요!”
“이번에는 어딘가?”
“우리 마크, 로마 구경 제대로 시켜줘야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황금 술병’입니다!”
스카피는 결국 하루 안에 스무 곳의 술집을 투어 시켜주었다. 미켈란젤로에게는 연회의 홍보를 맡기고, 한길에게는 이곳의 놀이 문화를 가르쳐 주면서.
대부분의 술집에서는 카드놀이와 주사위 놀이를 했다. 하지만 간혹 가다가는 술집의 뒷마당에 볼링을 치는 곳도 있었다. 현대에서처럼 볼링 레인이 있는 건 아니고 흙밭에서 해야 했지만, 핀을 세우고 공을 굴리는 건 비슷했다.
“그… 나는 이만… 겠네.”
“아이고, 아쉽네요. 미켈란젤로랑 더 놀고 싶었는데.”
“… 젊지 않…”
밤이 되자, 미켈란젤로는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고. 그제야 스카피는 미켈란젤로를 놓아주었다.
“우리는 자기 전에 옥상에서 한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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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스카피와 함께 올라왔던 대주교 저택의 옥상.
달빛 아래의 시내 정경은 여전히 운치 있었다.
시내에서 구매한 살루미를 안주 삼으니 와인 맛도 더 각별했다.
“스카피, 페르시아에 가본 적이 있나요?”
드디어 단둘이 남게 되자, 한길은 내내 하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내가 갔을 리가 있나. 전 유럽을 찾아봐도 페르시아 땅을 밟은 사람은 손에 꼽을걸?”
스카피와 한길은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즉, 사절단 일행이 되어 페르시아로 가기로 한 것.
“스카피가 받아들인 게 의외였습니다.”
“왜?”
“위험한 일인데, 스카피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자기보존 욕구가 강하니까요.”
“뭐, 그건 조금 신경 쓰이지만 페르시아를 놓칠 수 있나!”
“페르시아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나요?”
“아니. 하지만 장미수를 처음 먹은 게 페르시아라고 하더라고. 페르시아에서 오토만으로, 그리고 오토만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온 거라고 하던데? 아직 넘어오지 않은 재료도 얼마나 많겠어? 그걸 직접 보고 경험할 기회인데, 조금 위험해도 가볼 만 하지.”
페르시아 요리가 어떤 요리인지, 전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스카피의 말을 듣고 보니 기대되기도 했다.
‘직접 보는 건 한참 후겠지?’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에도 퀘스트 창이 따로 뜨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스테이지에 재진입할 때가 되어서야 가게 될 거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놈은 네놈 세계에서 요리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나?”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하는 정도죠.”
“뭐야, 조무래기였나?”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툴툴대는 스카피는, 마지막까지 밉상이었다. 스카피와 함께 페르시아까지, 그 먼길을 떠나야 한다니, 생각만으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사람 됨됨이와는 별개로, 요리사 스카피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스카피가 보기에 제 약점은 무엇인가요?”
“약점? 하도 많아서 하나만 말하긴 뭐한데?”
“몇 개나 있는데요?”
스카피는 손을 펼치더니,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손가락을 하나둘 접기 시작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접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멩이 하나를 발밑에 두고, 다시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는 게 더 기분 나쁘니까 그냥 말해 주시죠.”
“숫자를 알려달라며?”
“됐습니다.”
“그러면 그냥 말해도 되지? 우선, 인간이 재미가 없어. 고고한 척하는 것도 재수 없고, 가끔 혼자 음흉하게 웃는 것도 재수 없고, 그 와중에 실력은 또 좋아서 재수 없고, 무슨 요리를 한 번만 보고 따라 하는 게 인간미 없어서 재수 없고, 착한 척 해서 재수가 없고…”
“성격 말고 요리에 국한해서 얘기해 주면 좋겠네요.”
“크크, 왜, 정곡을 찔리니까 아픈가 보지?”
스카피는 들고 있던 와인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은 후,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있다가도 없다고 해야 하나. 이건 나아지고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강박증이 심해.”
“그건 스카피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왜?”
스카피야 말로 강박증의 대명사.
집착의 왕이었으니까.
“네놈은 무서울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여.”
“그냥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해주면 안 됩니까.”
“그게 아냐. 요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기면서 하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 그런데 네놈은 한창 즐거워하다가도, 갑자기 그 즐거움을 숙제로 만든다고 해야 하나. 꼭 요리를 즐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거든. 무슨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 의외로 예리하네요.”
“맞나?”
“글쎄요.”
“그러면 이번에는 내 차례, 내 장점은 뭔데?”
“저도 단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건 알고 싶지 않은데?”
한길은 스카피의 말을 무시하고 주변에 보이는 돌멩이를 모두 긁어모아 발밑에 두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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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다시 떠보니 현실이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 왕비의 연회를 성공리에 치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300,000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퀘스트 보상으로 다음 스테이지가 개방됩니다.
– 다음 퀘스트까지 남은 시간은 500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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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창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영국에서부터 이탈리아까지.
정말 긴 여정이었다.
처음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골목식당을 갓 졸업하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시기였는데. 그 사이 한길은 1호점은 물론 2호점도 성공리에 오픈했고, 조만간 3호점의 입점도 앞두고 있다.
단순하게 레스토랑 개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요리사로서의 자신도 전과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예전에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게 전부인 요리사였지만, 이제는 확실히 셰프로 발돋움한 기분이었다.
[두 번째 스테이지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눈앞의 메시지는 졸업장 같았다.
하지만 물론, 졸업장을 받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스테이지 완료로 인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