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9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99화(199/325)
199. 생각이 있으면…
‘언제 이렇게 많이 샀지?’
한길은 물건이 가득 담긴 네 개의 사과 상자를 내려다봤다. 무게도 무게지만, 이걸 들고 가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인파를 뚫고 가기 어려울 거다. 서둘러야 하는데…
결국 한길은 데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 형, 어느 부스 앞에 있어요?
– B132
– 오키! 금방 갈게요!
얼마 후, 데니가 카트 하나를 끌고 나타났다. 새장처럼 생긴 카트는, 어젯밤에 호텔 벨보이가 사용하던 것과 동일하게 생겼다.
“이건 어디서 났어?”
“당연히 빌렸죠. 그런데 자리가 모자랄 수도 있겠네…”
카트에는 이미 세 개의 와인 상자가 실려 있었다.
“이걸 어떻게 다 들고 가려고?”
“그래서 카트 빌려왔잖아요.”
“아니, 한국으로 돌아갈 때.”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형은 어쩌려고요?”
“나는 부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
“그런 방법이 있구나…가 아니라 와인은 배송하기 좀 그런데? 다 마시고 가야 하나?”
앞뒤 생각 안 하고 지르기부터 한 거다.
한길 역시 똑같은 행동을 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싣고 가자. 늦겠다.”
“윽, 45분 남았어!”
서둘러 짐을 카트에 싣고, 채 싣지 못한 상자 하나는 한길이 안은 채로 호텔 방으로 달려갔다.
서둘러 옷만 갈아입고 약속 시간에 간신히 맞춰 호텔 로비로 내려가니, 슬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진짜 둘 다 왜 이리 늦었어요? 전화도 안 받고! 나 혼자만 보내려는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아요?”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낸 슬아는,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한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나저나 셰프, 턱시도 입은 건 처음 보는데, 멋진데요?”
“그렇지? 이 형, 핏이 장난 아냐. 옛날에 수영했어요?”
“아니?”
“아… 그러시겠죠.”
이번 행사를 위해 한길은 난생처음으로 턱시도를 구매했다. 대회 참가자들의 일행도 블랙 타이 이벤트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슬아도 드레스 차림은 처음이네.”
그러는 슬아 역시 평소의 유니폼 대신, 한쪽 어깨가 훤히 드러난 까만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귀에서 길게 늘어진 귀걸이와 손목시계가 유일한 액세서리였는데, 과하지 않으면서 세련된 분위기였다.
“어때요?”
“예쁘네.”
“진짜 여신 강림!”
“다행이다. 이거, 월급을 반이나 털어서 산 거거든요. 한국에서는 입을 일 없긴 한데, 모처럼이니까!”
슬아의 월급 반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대회 참가를 위해 산 드레스면 보상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너무 고가의 드레스를 사는 바람에 비용처리가 애매해졌다.
“왜 나는 아무도 말을 안 해줘?”
데니는 짙은 와인색 턱시도에 보라색 명주실로 수를 놓은 양돈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 멋져, 멋져.”
슬아는 영혼 없는 칭찬을 하며 반짝이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바로 가야겠다. 칵테일 파티 먼저 하고 나서 저녁 식사래요. 가요!”
#
칵테일 파티 장소는 호텔 2층에 있는 연회장.
스탠딩 파티인지, 웨이터들이 쟁반에 샴페인 잔과 핑거푸드를 들고 손님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진짜로 이런 행사를 하네?’
최근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봤던 해외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들과 유사했다. 드라마니까 그런 장면들이 나오려니 싶었는데, 외국에서는 실제로 이런 행사가 많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연회장 앞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조지 밥티스트 대회는 1961년에 시작된 이래, 우수한 레스토랑 서비스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는 국제대회로 확장, 올해에는 새로운 스폰서들의 합류로 보다 규모 있는 행사로 거듭날 수 있었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대회의 스폰서이자, 내일 심사위원으로 당신들의 서비스를 평가할 분들입니다. 유럽 제일의 호텔 그룹, 아코르의 CEO 세바스찬 바장! 파인다이닝 케이터링서비스의 선구자, 샤봇 그룹의 CEO 프랑크 쟌텟…”
이름을 부르면 무대 위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어났고, 좌중이 박수를 보냈다.
“… 아직 도착 못 한 분들도 많으니 내일 대회에는 여기 보시는 것보다 심사위원들이 많을 겁니다. 너무 놀라지 마시기를! 그리고 샴페인과 와인은 무제한이지만, 숙취 핑계를 대도 감점은 감점입니다! 적당히 조절해서 드세요!”
진행자의 마무리 인사가 끝나자, 가벼운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고. 가만히 서서 무대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을 한번 훑어보니, 전부 외국인이었다.
동양인은 딱 두 팀.
한길의 일행과 출입구 쪽에 서 있는 다른 한팀뿐이었다.
“데니?”
“어, 브레드?”
“이런 곳에서 널 다 만나네? 살아 있었냐?”
“그러게! 넌 또 여기에 왜 있고?”
갑자기 금발의 남자가 다가와 데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데니는 인사를 나눠야 할 사람들이 또 있다면서 사라졌다.
“우와, 데니 인맥은 세계적이네요.”
떠나는 데니를 바라보는 슬아는, 평소보다 많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깐 정신없어서 못 물어봤네. 필기시험은 잘 봤어?”
“당연하죠, 얼마나 공부했는데! 생각보다 쉽더라고요. 그런데…”
“그런데?”
“아니, 여기 참가자들 대부분이 호텔리에 출신이더라고요. 저랑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은 다 호텔리에 전공이었고.”
“그래서?”
“4년 동안 대학에서 이런 공부를 해온 사람들인데, 고작 몇 달 벼락치기 한 제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락 말락 해서요.”
“이길 수 있어.”
“음.. 그럴까요?”
“나도 요리 교육은 못 받았지만, 멀쩡히 요리하잖아?”
한길의 말에 슬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때렸다.
“그래, 약한 소리 하면 안 되지! 저는 가서 정보 수집 좀 하고 올게요!”
“정보 수집?”
“아까 만난 사람이 있는데, 형이 이 대회에 나왔었다고 했거든요. 가서 팁 하나라도 건져와야죠! 셰프는…”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슬아는 씩씩하게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정보 수집이라…’
그러고 보니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이 호텔업계 종사자였다. 조만간 호텔 입점을 앞둔 한길 입장에서도 정보 수집은 좋은 생각이었다.
“일본에서 오셨습니까?”
“아니, 한국에서 왔습니다.”
“오, 코리아! 반갑습니다, 저는 리옹에서 온 쟝 조지라고 합니다. 브레들리 호텔이라는 곳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한길 셰프입니다. 레스토랑 두 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조만간 호텔에 입점하려고 하는데…”
한길은 궁금한 점을 서슴없이 질문했고, 의외로 사람들은 흔쾌히 답을 해주었다.
“… 메인 레스토랑은 피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특히 아침 뷔페 서비스는 절대 안 하시는 게 좋아요. 새벽 근무조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데다가, 아침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맛보다는 양을 중요시하게 되거든요. 돈은 나쁘지 않지만, 요리사들은 디너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불평하더군요…”
“… 가장 즐거울 때요? 가끔 해외 호텔끼리 경연을 하거나 자선 행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보람 있고 재미도 있지만, 사실 가장 힘들기도 하죠.”
“… 저희만의 특별한 점이요? 흠, 가을 시즌만 되면 레스토랑에서 인근 야산에 가서 밤을 주워옵니다. 시즌마다 직접 채집하는 재료로 계절 메뉴를 만드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정보도, 유용한 정보도 많았다. 적당히 정보 수집을 마친 한길은, 다시 슬아를 찾았다.
대회 전날인 만큼, 오늘은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아까 불안해하던 슬아의 모습이 괜히 신경 쓰였다.
‘저기 있네.’
슬아를 발견하고 다가가려는데, 한 동양인 남자가 일직선으로 슬아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에서 왔습니까? 아니면 한국?”
“한국인이에요.”
“저희는 일본에서 왔습니다. 동양인들이 저희밖에 없어서 왠지 반갑군요. 한국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울에서 왔어요.”
“서울은 저도 자주 가는데, 서울 어느 호텔에서 오셨습니까?”
“호텔은 아니고, 일반 레스토랑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학교는 어디를 나오셨습니까?”
“저는 호텔리어 공부를 한 건 아니고…”
슬아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 있는데, 남자의 말투가 거슬렸다.
“… 호텔리어 공부를 한 것도 아니라면 더 힘들 수도 있겠네요. 건투를 빕니다.”
그리고 남자가 선을 넘었다.
“슬아야, 괜찮아?”
한길이 다가가자 간신히 예의를 차리며 웃고 있던 슬아의 얼굴에 안도의 기운이 퍼졌다.
“아, 셰프!”
“슬아와 함께 온 이한길 셰프입니다.”
“아, 일행이 있었군요!”
남자는 한길의 시선을 피하고, 굳이 슬아와 눈을 맞추며 말하고 있었다. 남자의 말투도, 뉘앙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슬아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온 것도.
만만해 보인 거다.
아까, 대화 중간중간 슬아를 찾기 위해 연회장을 살필 때, 이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고 혼자 쭈뼛하게 서 있었는데.
“무슨 얘기 중이셨습니까?”
한길이 질문하자, 남자는 마지못해 한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양인이 있어서 반갑다고 말하던 참이었습니다.”
“파든?”
“네?”
“발음이 안 좋아서 못 알아들었습니다.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한길이 완벽한 영어로 되묻자, 남자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제가 긴장해서 그렇습니다. 저희도 2012년에 우승한 후로 첫 참가라… 그때, 일본인이 우승했다고 기사도 몇 번 나왔는데 말이죠. 이번에도 동양인 우승자가 나오면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우승하셨었다고요?”
“네, 2012년에…”
“이미 우승했는데 왜 또 나온 거죠?”
“아, 우승을 한 건 제가 아니고 저희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레스토랑 오너인가요?”
“네?”
“개인이 출전하는 대회인데 ‘저희’가 우승했다고 하니, 오너인가 싶어서요.”
“아니, 그건 아니고.. 저는 라부숑 레스토랑의 일본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라부숑의 이름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한길도 들어본 적이 있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다.
자신의 업적도 아니고, 레스토랑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허세를 떠는 모습이란. 너무 같잖아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 일본에는 라부숑 지점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있는 편에 속하죠. 물론,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입니다. 라부숑도 모두 3 스타는 아닌데…”
“전 라부숑이 프랑스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일본인이었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부숑 셰프.”
한길의 말에 주변의 외국인들 몇몇이 고개를 돌리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 전 라부숑이 아닙니다.”
“아, 죄송합니다. 알아듣기 어려워서 어림짐작했네요. 라부숑이라는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 본인이 라부숑이라고 한 줄 알았습니다.”
“… 매너가 없으시군요.”
“파든?”
“…”
한길은 원래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이래 봬도 남의 속을 긁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 옆에서 몇 달을 있어왔다. 이 순간 스카피가 무슨 행동을 할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말이 술술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하찮은 인간과 대화를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만 슬아를 데리고 이동하는 게 좋을 터. 그때,
“어, 이한길 셰프?”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여기에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외국인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저 사람은…
“페이튼?”
“와, 이런 곳에서 다 보네요! 안 그래도 셰프 음식 맛보려고 한국에 가야지, 가야지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때의 앨리스 밥상은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오거든요, 하하.”
“여기는 왜?”
“올해부터 이 대회의 공식 스폰서가 되었죠. 이런 곳에서 셰프를 만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저야말로 놀랐습니다!”
빌 페이튼이다.
언젠가 앨리스 코스를 차려준 대상이자, 한길이 입점하려는 페이튼 호텔 그룹의 후계자.
그의 등장으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페이튼은 호텔 기업인 중에서도 조금 특이한 존재였다. 고리타분한 기업인이 아닌, 호텔계의 괴짜이자 젊은 천재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갑작스러운 페이튼의 등장에 일본인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아, 빌. 인사하시죠. 이쪽은… 일본에 있는 가장 규모 있는 미슐랭 3스타 라부숑 레스토랑에서 일하지만 라부숑 셰프는 아닌, 이 대회의 2012년 우승자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
“하하, 재밌는 소개군요.”
“들은 게 그것밖에 없어서요.”
“그것보다, 셰프! 식사 같이하시죠!”
페이튼은 서둘러 페이튼의 뒤를 쫓아온 진행자를 향해 지시했다.
“디너 타임에 이분 자리를 내 옆으로 세팅해 줘요.”
“아, 그… 참가자들은 참가자들끼리만 먹는 규정인데…”
페이튼이 말없이 빤히 보기만 하자, 진행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나 예외는 있죠. 준비하겠습니다.”
이 대회 최고 스폰서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
“… 전 셰프가 영어를 할 수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저와 직접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으니까요.”
“아, 그런가요? 하긴, 그건 보통 레스토랑 식사가 아니었으니까요. 안 그래도 서울 호텔 리모델링 공사가 조만간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한국을 한번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셰프 레스토랑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한길은 요리만 차려줬을 뿐, 페이튼과는 간단한 인사만 나눈 사이였다. 하지만 페이튼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친근하게 한길을 대하고 있었다.
“한대표에게 언뜻 셰프의 근황을 듣긴 했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하셨다고요. 입점하게 된다면, 이탈리안 다이닝입니까?”
페이튼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이번 질문을 하면서는 눈매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저건…
사업가의 눈이다.
그동안 호텔 입점과 관련된 사항은 최셰프가 업데이트해 줬고, 주기적으로 한길에게 보고해 주었다.
최셰프의 정보에 의하면, 한국에 들어오는 페이튼 호텔은 페이튼과 한대훈의 공동사업이었다. 그렇다면 아마 페이튼 그룹도 레스토랑 입점 심사 과정에 관여할 터.
심사 결과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말은 피해야 한다.
“아직 어떤 컨셉을 할지 정해두진 않았습니다.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생각해 보고 싶어서요.”
“그런가요? 셰프의 페이튼 레스토랑은 어떤 레스토랑일지,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한편, 이건 페이튼을 떠볼 기회이기도 했다.
“이탈리안이 좋으신가요?”
“이탈리안도 나쁘지는 않죠.”
‘나쁘지 않다’는 ‘좋다’가 아니다.
이미 실망감이 내재된 단어다.
“안 그래도 저도 이탈리안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 무난한 느낌이 들어서 보다 특색있는 방향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특색이라… 어떤 특색을 말씀하시는 거죠?”
“예를 들면, 이곳에 와 보니 실내재배나 수경재배와 관련된 설비들이 꽤 많더군요. 그걸 활용하여 레스토랑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볼까도 생각해 봤고…”
도심 속에서 텃밭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오늘 본 몇몇 회사의 제품을 활용하면 불가능도 아니었다.
“팜 투 테이블입니까? 조금 평이하군요. 하지만 도시 텃밭은 마음에 듭니다. 안 그래도 서울 지점은 도심 속 작은 정원을 컨셉으로 하고 싶었거든요.”
“그 외에도 최근에 한국에서 멸종 위기에 있던 천연기념물 돼지를 발견했었습니다. 자연적으로 도태된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도태된 재료더군요. 수익성이 떨어져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니, 그 돼지를 키우는 농장들이 없어지면서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일도 있었습니까? 그건 몰랐네요.”
“그런 식으로 사라져 가는 재료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멸종 위기종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안 먹으니까 멸종 위기가 된 겁니다. 그런 재료를 다루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물론, 이건 생각뿐이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건 리스크가 있지만, 어차피 누가 이걸 엿듣는다고 해도 따라할 수는 없다.
“오직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멸종 직전 요리인가요? 팜 투 테이블을 한 단계 진화시킨 거군요! 아니, 여기서 먹으면 멸종에서 구해줄 수 있다는 사회적 매시지도 있어서 좋네요!”
반응이 좋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페이튼은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한길은 조금 씁쓰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뿐이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아이디어와 실행은 다르니까요.”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무조건 시도는 해 봐야죠!”
“하지만 레스토랑은 사업이니까요. 멸종 위기 재료는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듭니다. 그래서 직접 실내 재배로 농작물이라도 제가 키울 수 있을까 해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게 쉽지 않네요.”
“흠, 그건 그렇겠군요.”
“품종마다 재배법이 다르고, 멸종 위기이니 까다롭기도 하고, 그 까다로운 작물을 실내 재배하려면 그만한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니까요. 의미는 있지만 투자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또 투자 대비 수익성을 장담할 수 없어서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할지, 고민 중이었습니다.”
페이튼은 조용히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길의 말은, 물론 페이튼의 투자를 의식하고 한 말이었다. 젊은 괴짜 기업인으로 알려진 만큼 즉흥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신중한 남자였다.
“그나저나, 제 직원이 이 대회에 나오는데, 페이튼이 심사위원이면 공정성을 해치지 않나요?”
“저는 그 직원의 얼굴도 모르는데요?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여기 다른 심사위원들의 절반이 대회 참가자의 학교 동문인데, 전부 제외해야죠, 하하하.”
한길이 대화 주제를 돌리자, 페이튼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굳이 억지로 밀어붙여서 좋을 건 없다.
밑밥은 깔아뒀으니, 생각이 있으면 연락이 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