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0화(20/325)
< 20. 스타의 맛집 >
“형, 진짜 꼭 가야겠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냐?”
이런 분위기에서 논란이 되는 가게에 직접 가겠다니. 매니저인 경훈의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카키는 1인 기획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유일한 소속 아티스트이자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이 하겠다면 그냥 닥치고 해야지, 어쩌겠나.
용산구청에 주차하고 골목을 걸어가는 도중에 유난히 따가운 시선이 많이 느껴졌다.
‘어, 연예인?’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아니었다. ‘쟤가 대체 왜 여기에?’ 하고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은, 뉴욕 브런치에 도착할 때 즈음 극에 달해 있었다.
대문짝하게 걸린 현수막.
<카키의 선택, 카키 버거>라고 적힌 문구 아래에 서 있는 카키의 모습은, 어딘가 코믹하기까지 했다.
식당 앞에는 기다란 줄이 있었다.
밥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그나마 한가할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카키 씨, 팬이에요! 혹시 같이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되나요?”
“저도, 사인 좀!”
몇 명이 줄을 이탈해서 다가오자, 순식간에 카키 주위에 사람이 몰려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달려오는 인물이 있었다.
“하하, 카키 님이 직접 방문하실 줄이야. 매장에서는 처음 드시죠?”
허둥지둥 나온 남자는 굽신거리며 카키를 반겼고,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서둘러 자리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대체 뭔 생각으로 여길 왔대?”
“아예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는 거 아냐? 내가 돈 받겠다는데 어쩔래, 이런 식으로? 카키답잖아?”
“그나저나, 좋겠네, 연예인은. 평민은 40분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은 오자마자 바로 입장인가?”
카키가 멀어지자마자,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여기저기, 핸드폰을 드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고.
‘제발 별일 없었으면…..’
긴장하는 경훈이었지만, 긴장되기는 호승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본인이, 그것도 이런 대낮에 식당을 찾아올 줄이야.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맛이 다르다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
최대한 한스키친의 버거 맛을 재현하긴 했지만, 아직 똑같지는 않았다. 호승의 입맛에도 미묘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니까.
‘왜 이렇게 다르냐고 물으면 오늘은 재료 수급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더 물러설 수도 없다. 게다가, 잘만 하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다.
버거 하나를 들고 카키와 어깨동무하는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두면, 지금 한창 떠도는 악소문을 잠재울 수도 있고. 홍보 효과도 있다.
호승은 직접 주문을 받고 주방에 가서 오더를 내렸다.
“최셰프, 치킨버거 두 개. VIP니까 특별히 신경 써. 그리고 사진용으로 두툼한 버거도 하나 만들어 놓고.”
#
카키는 한번 꽂히면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버거에 꽂혀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다시 그 맛을 보고 싶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치킨버거 나왔습니다.”
버거가 나오자마자, 카키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일전에는 종이 포장지에 감싸진 모습이었는데, 제대로 플레이팅 된 버거는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가장 위에 얹어져 있던 빵이 옆에 비스듬히 세워져서 안에 내용물을 더욱 자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두툼하면서도 노릇노릇한 튀김옷.
까만 올리브 과육이 박혀있는 하얀 소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입안에 침이 고여왔다.
하지만, 한 입을 맛본 후, 저절로 고개가 기울여졌다.
‘이게 아닌데?’
실망감.
기억과는 너무 달랐다.
혹시 몰라 다시 한입을 먹어보았지만, 오히려 확인 사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맛은 나쁘진 않지만, 먹을수록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니, 오히려 비슷하니까 더더욱 그 차이가 강하게 와닿았다.
마치 감자튀김을 먹으러 왔는데, 감자칩이 나온 그런 기분이었다.
“왜, 형?”
“가자.”
카키는 미련 없이 일어서서 성큼성큼 계산대로 향했고, 옆에서 대기하던 호승은 당황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계산이요.”
망설임 없이 카드를 내미는 카키를 보니, 호승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면서 준비해둔 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의아해하는 카키가 물어보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이 버거의 재료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얼마나 구하기 힘든지 어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저, 그…. 입맛에 안 맞으세요? 저 오늘은 재료가 몇 개 수급이….”
“제가 좀 바빠서요.”
호승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지만, 카키는 듣지도 않고 말을 끊어버렸다.
이윽고, 카키의 시선이 계산대 옆에 붙어 있는 홍보 포스터로 향했다.
거대한 폰트로 적혀 있는 자신의 이름으로.
“장사 잘되세요?”
“네?”
“아니, 내 이름 팔아서 돈 좀 벌었나 해서요.”
“아… 아니, 저, 그게…”
“나도 똑같이 해도 되죠?”
“그게 무슨?”
호승이 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카키는 카드를 받아들고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그 매몰찬 태도는, 식당 안팎에 있는 수많은 스마트폰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
“대기 시간 20분이에요.”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두 번째로 찾아간 가게의 알바생은 카키를 보자마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가게 안으로 달려가더니, 다시 나올 때는 단호한 태도로 대기시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굳이 따져들 생각은 없었다.
카키는 스스로 특별대우를 해달라고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자신의 얼굴을 보면 사람들이 알아서 차별했을 뿐.
‘줄 서는 것도 오랜만이네?’
거리의 사람들 틈에 끼어서 서 있자니, 이것도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그냥 갈까? 아니면 차에 가 있으면 내가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갈 수 있는데….”
“어차피 테이크아웃도 똑같이 20분이라며?”
“그건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갈증이 너무 극심했다.
차에서 기다리면 못해도 5분은 기다림이 늘어난다.
“내가 무슨 대통령이냐. 줄 서는 게 뭐 어때서?”
카키는 아무렇지 않게 대기 줄 끝으로 가서 섰지만, 경훈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키는 차림새가 요란한 편이었다.
목에는 커다란 금목걸이를 두르고 있었고, 얼굴 반을 차지하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사람들 틈에 끼어서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진을 부르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한참을 밖에서 포토타임을 보낸 후에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이 따로 분리되었던 첫 번째 가게와 달리, 아담한 두 번째 식당은 공기 중에 치킨 냄새가 배 있었다.
느끼하게 묵직한 향이 아니라, 냄새까지 가볍고 선명했다.
입안에 다시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치킨버거 두 개.”
앉기도 전에 주문을 넣고 기다리니, 주위에 떠다니는 향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버거가 도착했다.
방금 본 것과 똑같은 비주얼.
‘이번에는 제발.’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카키는, 바로 빵 뚜껑을 올리고 버거를 크게 베어 물었다.
그리고……
먹는 순간 알았다.
찾았다고.
이상하게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감각.
버거를 물고 있는 이빨이, 층을 하나하나 공략해가는 게 보이는 듯했다.
처음으로 나타난 빵은 한쪽 단면이 살짝 토스트처럼 구워져 있어 작게 바삭 소리를 냈다.
그 바로 아래에 단단한 튀김옷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야무지게 치킨을 에워싸고 있는 튀김옷은, 기분 좋게 깨지며 작은 폭죽 같은 바사삭 소리를 터트렸다.
그리고 주인공이 등장했다.
담백하면서도 기름지고, 어딘가 달곰하기까지한 닭고기의 육향. 그 육향을 간직한 육즙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오물거리며 입안의 버거를 씹자, 다른 맛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부드러우면서 살짝 새콤한 하얀 소스.
그 안에 있는 올리브의 과육이 으드득하고 터지며 향긋한 기름을 뿜어냈고, 어딘가에 숨어있던 쌉싸래한 허브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며 개운함을 주었다.
이렇게 복잡한 맛들이 하나하나 순서대로 튀어나오고 있는데 조화로웠다.
어느새 카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
그리고 자신이 왜 이 맛에 현혹되었는지 깨달았다.
이 버거는 자신의 음악과 비슷한 곳이 있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듯하면서도, 지루하기 전에 잘게 쪼개지며 황홀한 변주를 주었다.
그래서 절로 몸이 움직이게 되었다.
“형, 여기 맞아?”
앞에 앉은 경훈이 불안한 눈으로 묻고 있었지만, 카키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우적대며 숨 쉴 틈도 없이 먹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답이 되었으니까.
카키의 먹방을 실제로 보게 된 다른 손님들은 신기해서 계속 촬영을 했지만, 카키의 눈에는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최근 들어 온몸을 짓누르던 그 꿉꿉함과 답답함이 말끔히 사라졌다.
‘맛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에, 만족감에, 행복감에 몸을 맡기며 먹기만을 했다.
그리고 다 먹었을 때, 마음속까지 정화되는 상쾌함을 느꼈다.
추가 주문을 할까 싶어 두리번거리는 카키의 눈에, 주방에서 걸어 나오는 제법 키가 큰 남자가 보였다.
손님을 살피기 위해 나온 한길이었다.
“사장님이세요?”
“아, 네.”
“사장님, 여기 버거 진짜 최고.”
“감사합니다.”
흐뭇하게 웃는 한길을 보며, 카키가 머릿속에 방금 생각난 질문을 즉흥적으로 던졌다.
“사장님, 여기 통으로 빌리는데 얼마에요?”
“네?”
“한 시간 동안 빌리는데 얼마에요? 한 시간이 안되면 하루 동안 빌려도 되고요.”
그 질문을 듣던 한길은 잠시 무슨 말인지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손님을 받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시죠? 죄송하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어서. 기다리는 게 불편하시면, 전화로 예약하시고 테이크아웃으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그 모습도, 수많은 손님의 스마트폰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주변에서 조용히 키득대는 소리도 들려왔지만, 카키는 이상하게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
카키의 이태원 방문 이후.
일주일간, 온갖 영상이 인터넷과 SNS를 범람했다.
증인이 너무 많았다.
콘텐츠도 너무 좋았고.
카키가 자신의 이름을 멋대로 사용한 사장에게 일침을 놓는 모습도, 그리고 고작 골목식당 사장에게 ‘굴욕’을 당하는 모습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카키는 새로운 음원을 발매했다. <치킨 장사>라는 제목의 디스곡.
카키의 의혹 기사를 냈던 기자들은, 태세 전환을 하며 뉴욕 브런치의 양심 없는 행동에 대한 단독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뉴욕 브런치를 찾았다.
그리고 화제의 사장 모습을 몰래 촬영하여 아는 사람들에게 공유했다.
‘식당 들어갔는데 이 얼굴 있으면 무조건 나올 것.’
며칠 내로, 뉴욕 브런치는 파리만 날리는 가게가 되었다. 버거를 메뉴에서 빼고, 현수막을 전부 치워도 이제 와서 소용없는 일.
“후우…..”
텅 빈 가게를 바라보는 호승은 눈앞이 막막해졌다.
사람이 안 온다고 해서, 재료를 준비 안 해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고지식한 최셰프는 이 와중에도 매일 신선한 소스를 만들겠다고 고집 부리고 있었고.
월세는 안 나가도, 관리비와 직원들의 월급은 매달 나간다.
지난 몇 주간 팔아온 버거는 원가율이 80프로를 넘어서고 있어서 이번 달 수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버틸 수는 있었다.
희망이 있다면.
호승은 울자 겨자 먹기로 전화를 걸었다. 푸드 컨설턴트였던 태준에게.
“저…. 형, 나야. 잘 지내?”
―……
“형, 그때는 진짜 미안…. 내가 미쳤었나 봐….”
전화를 받아주긴 했지만, 태준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끊지 않고 들어주고 있었다.
침묵을 유지하는 태준에게 호승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가게 상황부터 지금의 막막한 심정까지.
“형, 듣고 있어?”
―하아….. 호승아, 그냥 접어라.
“어? 아니, 자리를 변경하든지. 형의 전문적인 의견으로…”
―지금 말하는 게 내 전문 의견이야. 그 자리에서는 아무리 업종 변경 해도 안 돼. 그리고 얼굴도 팔렸는데, 한동안 몇 년간은 네가 표면적으로 식당에 나서지 않는 게 좋아. 내가 항상 말해왔지? 가게에 사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형 나 아직 자금은 충분해. 모아둔 돈도 꽤 되고.”
―그러면 그 자금 갖고 딴 장사를 하던지 사업을 해. 요식업은 포기하고. 굳이 할 필요 없잖아? 이게 내 마지막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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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길의 가게는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가게가 오픈할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줄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의 반은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음식 수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길이 만들 수 있는 버거와 샌드위치에는 한계가 있었다.
냉장고에 재료를 보관할 자리가 없었으니까.
추가로 냉장고를 구입하려 해도, 놔둘 공간이 없었다.
‘역시 이 가게만으로는 안 돼.’
테이블 여덟 개인 가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요가 아니었다.
새로운 가게가 필요했다.
보다 큰 곳이.
오랜만에 한길은 자신이 꿈꾸던 단계를 떠올렸다.
골목에서 시작해서 큰길로……
그 첫 단계가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 20. 스타의 맛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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