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0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02화(202/325)
202. 이상한 참가자
가상 레스토랑 시험장에는, 20분 간격으로 두 명씩 입장했다.
“슬아 림 그리고 다비드 수크레 맞죠?”
“네.”
“영어 참가자는 하늘색, 프랑스어 참가자는 하얀색 테이블입니다. 기다렸다가 안에서 사람이 나오면 들어가세요.”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안에서 두 명의 남자가 나왔다. 그중 한 명은 낮은 목소리로 불만스레 구시렁대고 있었다.
“… 괜히 트집만 잡고…”
문장 전체를 듣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심사위원이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이제 들어가세요.”
스텝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는 여느 레스토랑처럼 꾸며져 있었다. 시험장이라 삭막할 줄 알았는데, 각종 액자와 소품이 어우러져 있어 평범한 모던 레스토랑의 분위기였다.
테이블은 총 여덟.
각 테이블당 손님은 둘.
슬아의 테이블에는 산타클로스 같은 인상의 남자와 눈매가 날카로운 여자가 앉아 있었다.
지금부터가 이번 대회의 가장 중요한 서비스 부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기시험보다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레스토랑 홀이라면 매일같이 서 왔으니까.
“안녕하세요. 조지 밥티스트 레스토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 메뉴가 있으니 한번 보시고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질문해 주세요.”
메뉴판을 건네주고 물을 따라주는 동안, 심사위원들은 메뉴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리고 바로 첫 질문이 이어졌다.
“추천 메뉴가 뭐죠?”
일반적인 레스토랑이라면 시그니처 메뉴나 유난히 잘 나가는 메뉴가 있으니 그런 메뉴를 추천하면 된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은 오늘만 영업하는 가상 레스토랑. 잘 나가는 메뉴나 시그니처 메뉴가 있을 리 없다.
물론 슬아는 모든 메뉴를 맛보았지만, 자신의 입맛에 맛있는 메뉴를 추천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니까.
“알레르기는 없으신가요?”
“없어요.”
“다행이네요. 저희 레스토랑 메뉴는 모두 맛있으니 무얼 선택하셔도 만족하실 겁니다.”
이럴 때는 정보를 주고, 손님이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게 좋다. 슬아의 역할은, 손님이 가장 먹고 싶은 요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
“조금 가볍게 시작하고 싶으시다면 수프를 권해드립니다. 양파 수프와 소렐 수프가 동시에 나가는데, 부담 없이 위장을 깨우기 좋은 메뉴죠. 무이예뜨도 함께 나가니 든든하기도 하고요. 조금 더 기름진 메뉴를 원하신다면 치즈 굴구이 혹은 개구리 다리 튀김을 추천해 드립니다. 굴구이는 치즈의 풍미가 살아있는 메뉴인데, 타르틴이 함께 나와 달달하게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개구리 다리 튀김은 워터크레스 플랜과 함께 나와 상큼하게 마무리할 수 있고요.”
모든 메뉴를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는 걸까 싶었는데, 앙트레 소개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남자 손님이 질문했다.
“생트 므누(Sainte Menehould) 돼지는 뭐죠?”
“프랑스의 생트 므누라는 마을의 명물 요리입니다. 15세기부터 명맥을 이어오는, 역사가 깊은 요리죠. 돼지 족발을 허브 채수와 와인과 함께 충분히 삶은 후, 빵가루를 묻혀서 오븐에 구운 요리입니다.”
“음, 족발이라…”
대회를 심사하는 심사위원이 족발에 거부감을 느낄 리 없다. 족발에 익숙지 않은 손님에게 영업해보라는 말이겠지.
“처음 드셔도 부담스러운 맛은 아닐 겁니다. 겉은 빵가루와 함께 구워서 바삭한데, 그 안에는 쫀득한 돼지 껍질이 있고, 또 그 안에는 부드러운 살코기가 있죠. 허브를 넣고 하루 이상 삶았기 때문에 돼지의 거북한 냄새는 없고 향긋합니다. 육즙도 살아있고, 푹 삶아냈기 때문에 뼈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요. 루이 16세가 프랑스를 탈출하려다가, 이 족발 찜을 지나치지 못하고 먹고 가는 바람에 혁명군에 잡혀갔다는 말도 전해지죠.”
“신기하네요. 하지만 오늘은 루앙 오리로 하겠습니다.”
홍보는 했지만, 주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예상했다. 시험에는 테이블사이드 요리가 필요하니까.
추가 질문 없이 손님들은 곧바로 주문했고, 슬아는 주방으로 향했다.
패스에는 중년의 남자가 셰프복장을 입고 느긋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7번 테이블을 맡은 슬아예요. 여기, 주문이요.”
주문표를 건네주자, 셰프는 바로 주방을 향해 외쳤다.
“수프 둘, 쏨뱅이목 둘, 루앙 오리 하나, 치즈 플래터. 크레프 마드모아젤, 마카롱!”
“위, 셰프!”
패스 너머로 보이는 주방에는 다섯 명의 요리사가 있었다. 여덟 테이블에 다섯 명의 요리사라면 엄청 여유로운 주방이다.
“왜 아직 있지?”
슬아가 떠나지 않고 머무르자, 셰프가 의아한 눈빛으로 질문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요.”
“테이블에 안 가봐도 되나?”
“몇 분 정도는 괜찮아요. 과한 서비스는 손님 입장에서도 불편하니까.”
수발드는 것처럼 손님 주위를 서성거리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알차게 시간을 쓰는 편이 좋고.
“그래서, 질문이 뭔가?”
“세 번째 코스로 나가는 루앙 오리요. 주방에서 재조리하고 다시 홀에 나가죠?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시간?”
“요리사마다 시간이 다르니까요. 레어로 할지, 미디엄 레어로 할지, 미디엄으로 할지에 따라서 시간이 다르고, 휴지 시간도 다르더라고요.”
이번 평가에서는 테이블사이드 서비스가 가장 큰 점수를 차지할 거다.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루앙 오리는 슬아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주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야 하는 요리였다.
슬아의 질문에 셰프의 한쪽 눈썹이 휘어졌지만, 이내 답을 해줬다.
“15 분.”
“네, 알겠어요. 제가 맞출게요.”
슬아는 생긋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니, 손님은 이미 스푼을 내려둔 상태였다. 아직 요리는 반도 먹지 않았는데.
<고르메 키친>에서는 저렇게 음식이 많이 남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저 정도 수준이면, 셰프가 손님이 남긴 음식을 직접 먹어보기도 한다. 맛에 불만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손님도 간혹 있으니까.
“혹시 요리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슬아가 조심스레 묻자, 내내 미간을 찌푸리던 여자 심사위원의 얼굴이 조금 느슨해졌다.
“아니, 맛은 정말 좋았어요. 다만 오늘 심사를 해야 하는 테이블이 아직 네 팀이나 더 남아서…”
“그렇군요.”
접시를 그대로 들고 주방으로 돌아왔지만, 남은 음식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들은 시험용 요리라고 대충 만들지 않았다. 수프는 소담하게 담겨 있었고, 기다란 빵 토스트도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저렇게 정성을 들였는데…
음식을 수거대에 내려놓으면서 슬아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손님이 정말 맛있다고 하셨어요. 시험이 아직 많이 남아서 어쩔 수 없이 남긴 거라고 하니까 너무 신경은…”
“크큭.”
슬아의 말이 끝나기도 셰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셀라라고 했었나?”
“슬아에요.”
“그래, 셀라.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익숙하니까. 우리는 오늘 내내 주방에 있었거든. 그보다 두 번째 코스 준비됐으니 부탁해.”
두 번째 코스인 생선 요리를 서빙 한 슬아는, 바로 패스로 돌아왔다.
다음 코스인 테이블사이드 메뉴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나가기 직전에 허둥대며 늦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조금씩 준비해두는 게 좋다.
어느새 셰프는 재밌다는 듯이 슬아를 관찰하고 있었다.
“왜요?”
“아니, 쪼그마한 게 참 바쁘다 싶어서.”
“당연히 바쁘죠. 그런데 프레스 기기가 없네요?”
“씻고 있어.”
“지금?”
“기기는 하나밖에 없거든. 모든 테이블이 나눠 쓰니까.”
“아, 그래서 20분 간격 입장이군요?”
“…?”
“주방 인원이 이 정도나 있으면 동시에 스무 테이블도 소화 가능한데, 왜 시차를 두고 시험을 치르나 싶었거든요.”
슬아의 말에 셰프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셀라, 그렇게 우리를 쉴 틈 없이 굴리고 싶었어?”
“당연하죠. 진짜 레스토랑이라면 이렇게 굴러가다간 한 달 내로 문 닫아요.”
“풋.”
지나치게 재밌어하는 셰프의 웃음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셰프의 말투가 친근하다. 그렇다면…
“그런데 왜 프레스 기기는 하나밖에 없어요? 여러 개 갖다 두면 시간도 절약되고 좋을 텐데.”
“뚜르 다르정(Tour D’Argent)에서도 레스토랑 전체가 기기 하나를 나눠 쓰거든?”
“뚜르라면 파리에 있는 거기요?”
시험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이다.
“그래. 원래 우리가 쓰려던 기기가 있었는데, 며칠 전에 보니까 망가져 있더라고. 대회 회장님이 뚜르 다르정 사장과 아는 사이라 전화해서 빌려달라니까 절대 안 된다고 하대? 자기네도 레스토랑에서 쓰는 건 하나. 망가질 때를 대비해서 예비로 딱 하나만 더 두고 있다고. 그래서 사방을 수소문하다가…”
조금 친해진 후에 물어보니 이런저런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역시, 조금 기다렸다가 말을 건 게 정답이었다. 첫 만남에서 질문했다면 사무적인 대답만 돌아왔을 테니까.
그때, 다른 테이블을 서빙하던 대회 참가자가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역시 남겨진 음식물이 한가득이었다.
“설마 루앙 오리도 진짜 루앙 오리를 쓰는 건가요? 버리면 아까운데…”
“당연히 루앙 오리를 쓰지. 어디 그뿐인가, 뚜르 다르정에서 쓰는 오리를 그대로 받아왔다니까? 기기 안 빌려줬다고 회장님이 삐지는 바람에 그쪽에서 대신 오리라도 가져가라고 한 거지.”
“그렇군요. 아, 전 다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잠깐 수다를 떠는 사이, 어느새 손님들이 요리를 다 먹은 것 같았다.
접시를 수거하고 돌아오니, 카트 앞에는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프레스 기기 사용을 도와드릴 가브리엘입니다.”
“슬아에요. 잘 부탁드려요!”
분주하게 준비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하자, 뒤에서 셰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굿럭!”
“운은 필요 없어요,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보다, 15분, 잊지 마세요!”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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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들지?”
심사위원인 셀레스트는 기다리는 동안 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렇게 빳빳한 자세로 눈을 부라리니까 힘든 거지. 자네는 동종 업계 사람인데 왜 그리 엄격한가?”
같은 테이블의 심사위원인 다니엘은 사람 좋게 웃었지만, 셀레스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동종 업계이니까 엄격한 거지. 다니엘, 당신은 너무 유한데?”
“그래?”
다니엘은 식기 회사의 임원으로, 손님의 입장에서만 레스토랑을 이용해봤다.
하지만 셀레스트는 달랐다. 비록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때 그녀는 레스토랑 업계에 보기 드문 존재, 여자 메트로 디였기 때문이었다.
흔히 주방 일은 고되어서 여자 셰프가 많지 않다고 하지만, 여자 셰프보다 더 보기 힘든 존재가 여자 메트로 디다.
셀레스트만 해도 손님은 여성 메트로 디를 신뢰 안 한다느니, 숫자나 기계적인 일을 다루는 매니저라면 모를까 메트로 디를 여성이 맡기는 힘들다느니. 별의별 말도 안 되는 편견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올라갔었으니까.
“이렇게 시험 항목을 다 알려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가장 중요한 게 상황 대처 능력인데, 이렇게 다 알려주면 대사를 외우고 연극을 시키는 거나 다름없잖아?”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았지만, 참가자가 다가오는 게 보여 입을 꾹 다물었다.
셀레스트는 이 대회의 절차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 업무에 필요한 역량보다는, 지식을 외우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다들 너무 어려.’
이 대회에는 연령 제한이 있다. 35세 미만의 참가자만, 그것도 대회 경력이 필요한 참가자들만 참석하니, 셀레스트의 눈에는 모두 미숙한 병아리 같아 보였다. 그와 동시에, ‘고작 이 정도로 메트로 디가 되겠다고?’ 하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이번 요리는 루앙 오리입니다.”
오리가 등장했지만, 셀레스트는 시큰둥했다. 루앙 오리도 한두 번 봐야 재밌지, 이미 오늘 몇 번이나 봤는데.
‘생각보다 카빙을 잘 하네?’
그래도 이번 참가자의 깔끔한 카빙 솜씨에는 조금 집중하게 되었다. 이미 죽은 오리를 다시 한번 도륙하는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예리한 손길로 깔끔하게 살코기를 분리했기 때문이다.
“오리는 주방에서 다시 한번 익혀서 나올 겁니다. 그동안 저는 소스를 만들어 드리죠. 소스에는 여기 있는 이 프레스 기기를 사용할 겁니다.”
“저도 루앙 오리가 뭔지는 압니다. 알고 있니까 시켰죠.”
셀레스트는 오늘 내내 그래왔듯, 일부러 삐딱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참가자는 당황하지 않고 활짝 웃었다.
“그러시군요. 요즘 들어서는 보기 힘든 요리라 모르실 거로 어림짐작했네요. 이제는 기기도 찾기 힘들어져서 여기 있는 이 기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이건 저희 셰프가 수소문해서 노르망디 지인의 시골 할머니 집 창고에 잠들어있는 걸 구해왔다고 해요. 디자인이 오리발처럼 되어 있는 게 재밌죠?”
다른 참가자들은 이쯤이면 백과사전을 읊기 시작했고, 셀레스트는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라며 딴죽을 걸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 기기만의 이야기를 풀고 있었으니까.
“…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사용했던 물건이라고 하니, 적어도 100년은 이상 된 물건이에요. 걱정 마세요, 깨끗하게 닦고 소독도 잘 했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참가자는 미소를 지으며 기기 안에 오리의 잔해와 내장을 넣고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번 오리는 뚜르 다르장의 전용 농장에서 가져온 루앙 오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뚜르 다르장?”
“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깊은 레스토랑이죠. 루앙 오리 요리로 유명한 곳인데, 오늘 행사를 위해 특별히 저희에게도 오리를 제공해 줬다고 해요.”
분명 방금 전에 시험장에 들어왔을 텐데, 이런 정보는 언제 어디서 수집한 건지.
‘지어낸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면 금방 들통날 텐데, 그렇게 멍청한 참가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리 나왔습니다.”
잠시 후,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오리를 들고 나왔다.
지금까지 나왔던 서버들과 다르다.
복장을 보면… 설마… 셰프?
셰프로 추정되는 남자는 일개 서버처럼 오리를 내려놓기만 하고 떠났다. 하지만 떠나기 전, 참가자를 향해 가볍게 윙크를 하는 게 보였다.
‘원래 아는 사이인가?’
그럴 리 없다. 이번 참가자는 동양인, 그것도 한국에서 온 참가자니까.
결국 아무 문제 없이 수월하게 테이블사이드 서비스가 마무리되었다. 단 한 번의 덜컹거림도, 단 한 번의 어색한 침묵도 없이.
‘한 번만 더 확인해 보자.’
그리고 셀레스트는 두 번째 테이블사이드 순서를 기다렸다.
두 번째 테이블사이드 서비스는 크레프 마드모아젤.
플람베 기법으로 크레프를 만들고, 그 위에 질소 아이스크림을 곁들이는 요리다.
“저는 락토오스 불내증이라서 아이스크림은 못 먹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셀레스트는 다시 한번 돌발 상황을 던졌다.
다른 참가자들은 여기서 조금 당황하고 메뉴판을 들고 왔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할지…
잠깐의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참가자는 함께 나온 보조에게 다가가 잠시 소곤거리며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생긋 웃었다.
“그러면 소르베는 어떤가요, 손님?”
“소르베?”
“아이스크림에는 유제품이 들어가지만, 소르베는 유제품 없이 과일로 만들거든요. 크리미한 맛은 부족하지만, 상큼하게 드시기 좋을 겁니다. 모처럼 기대하고 주문하셨는데, 다른 걸 드시면 섭섭해하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하죠.”
이렇게 해결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참가자는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 알고 있었다는 듯이 능숙하게 대처하며 요리를 이어갔다.
그녀는 크레프를 만들고 팬에 불을 붙였다.
그동안 옆에 있는 보조는 액체질소를 이용해서 소르베를 만들었다.
액체질소를 쓰면 드라이아이스처럼 짙은 안개가 생긴다. 그 와중 옆에서는 플람베로 불까지 붙이니 정말 화려한 요리다. 이것만큼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조용하네?’
그러고 보니, 이번 요리에서는 참가자가 말을 아끼고 있었다. 침묵이 두려운 듯, 기관총처럼 정신 사납게 떠드는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랐다.
퍼포먼스에 집중할 수 있게 뒤로 물러선 것.
그 침착함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디저트를 먹고 나면 식사는 끝. 이제부터는 면접관이 될 차례다.
“레스토랑 일은 얼마나 했죠?”
“1년 반 정도 됐습니다.”
“경력이 짧은데도 익숙하네요.”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그 질문에 참가자는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닌데, 몇 개나 필요하시죠?”
“원하는 만큼요.”
“흠, 예전에 ‘소 한 마리’ 만찬을 열었던 적이 있었는데, 음식을 퍼레이드처럼 나르는 연출을 했었어요. 연결되는 방에 요리를 차리고 CCTV로 손님을 확인하면서 입장하기 직전에 테이블 세팅하는 일도 했었고…”
지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경험담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이상한 곳에서 일하는군요.”
“네!”
참가자는 ‘이상하다’는 게 칭찬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레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셀레스트 입가에도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됐습니다.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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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일정은 자유 시간입니다. 내일 1시에 클로징 세리머니가 있고 그때 결과 발표가 있으니 늦지 않게 오세요.”
시험장 밖에 작은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대기실 안에는 다른 참가자들의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고.
하지만 한길과 데니는 없었다.
‘이거, 꼭 그거 같은데?’
오랜만에 귀국해서 공항을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 마중 나왔는데 혼자만 캐리어 끌고 전철 타러 가는 그런 기분.
하지만 이유는 대략 짐작이 갔다.
‘분명 또 거기 가 있겠지.’
어제도 박람회에 가서 정신줄을 놓던 두 사람이다. 전화를 몇 번 걸어도 받지 않자, 슬아는 방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박람회로 향했다.
인파가 많아서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들어간 지 5분도 안되어 데니를 발견했다.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거대한 카트를 끌고 있었으니까.
“어, 누나? 벌써 끝났어요?”
“셰프는?”
“글쎄, 여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한길을 찾는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쪽 역시 카트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둘 다 벨보이 카트 끌고 다니면 호텔에 남는 게 있대요?”
“있대.”
“뭐야, 이게. 나 응원하러 왔다는 건 핑계죠?”
입술을 삐죽 내밀며 삐진척했지만, 사실은 그렇게까지 서운하진 않았다. 아니, 이미 내려놓았다는 편이 맞을 수도 있다.
이 레스토랑은 처음부터 각자 자기 할 일만 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곳이니까. 심지어 한길과 데니는 미안한 기색조차 없었다.
“슬아야, 넌 피곤하면 방에 가 있어. 우리는 3시간 후에 갈게.”
“3시간이나요?”
“3시간 후에 알레산드로 사촌이랑 만나기로 했거든.”
한길은 대략적인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2호점에 납품을 하는 알레산드로의 재료상은 가업이다. 말하자면, 알레산드로가 한국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본점은 유럽에 있다. 이 박람회는 제법 인지도 있는 식재료 박람회다 보니, 유럽 본점 사람들도 와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중으로 물건 전달하면 다음 주문 보내줄 때 같이 보내주겠다고 하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이 보내면 어떻게 들고 가요?”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에휴, 뭐 도와줄 건 없어요?”
슬아의 말에 한길은 품에서 작은 브로슈어를 꺼냈다. 박람회 부스의 배치와 각 부스 안에 들어간 업체의 정보가 적힌 브로슈어다.
부스를 나타내는 작은 상자 위에는 지저분하게 메모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깨끗한 구역도 있었다.
“여긴 왜 안 갔어요?”
“별게 없어서.”
브로슈어를 다시 살펴보니, 메모가 전혀 없는 부스들은 한길이 관심 없을 법한 업체들이었다. 온라인 푸드 리뷰 플랫폼, 고객 관리 시스템, 포스 기계, 식기 등등.
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둘 다. 레스토랑에 와인창고랑 냉장고만 채울 거예요? 손님 안 받아요, 손님?”
이윽고 슬아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 구역은 내가 맡을게요. 그리고 셰프!”
슬아는 한길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카드 주셔야죠. 레스토랑을 위해선데, 사비로 구매하라는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