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0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03화(203/325)
203. 알아서 하겠지
밤늦은 시각.
콘퍼런스 룸 E에는 23명의 심사위원이 모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프로젝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 재생되는 영상을 주의해서 보는 이는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같은 영상을 돌려봤기 때문이다.
“… 그러면 최종 후보는 두 명이군요.”
진행을 하는 회장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이번 대회의 수상자는 셋.
각각 금, 은, 동메달을 받을 우승자를 선정해야 한다.
동메달을 받을 후보를 결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두 자리.
“역시 다니엘이 뛰어나죠. 제가 본 중 가장 완성도 높은 테이블사이드 서비스였습니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품격도 그렇고, 우승은 당연히 이쪽이죠.”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너무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였는데요. 손님을 배려하고, 레스토랑을 돋보이게 한 건 슬아가 더 뛰어납니다.”
“그 참가자는 너무 격식이 없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패스트푸드 레스토랑도 아니고…”
“메트로 디는 나 잘났다고 콧대를 세우는 직업이 아닙니다. 마치 내 집으로 초청하는 듯한, 호스트의 태도가 필요하죠. 그뿐 아니라,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는 슬아가 압도적으로 뛰어났습니다.”
심사위원 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른 심사위원들도 한마디씩 의견을 보탰지만, 한 시간도 넘게 계속되는 논의에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크흠. 언제까지고 이렇게 토론만 할 수는 없으니, 깔끔하게 투표로 결정하죠.”
회장의 말에 여기저기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밤 10시가 다 되어 간다. 모두 빨리 마무리하고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11 대 11, 동점이군요.”
“…”
“하아…”
투표 결과가 공개되자, 심사위원들의 얼굴에 다시금 그늘이 졌다. 겨우 끝이 보이는가 했는데 또 반복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반면, 회장은 고개를 기울였다.
“누가 투표를 안 했습니까?”
심사위원은 총 23명.
일부러 동점이 나올 수 없는 숫자로 맞춰두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올 리 없었다.
모두가 두리번거리는 와중,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테이블의 상석에서, 마치 선베드에 눕는 듯한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있는 인물. 페이튼이었다.
“왜 투표를 안 한 겁니까?”
“이쪽을 잘 몰라서, 이왕이면 잘 아는 분들이 결정을 내리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빌, 당신에게도 자격이 있습니다. 아니, 자격은 넘칠 정도지요.”
페이튼은 호텔 제국의 후계자. 심지어 자신의 이름으로 론칭한 럭셔리 호텔 브랜드도 있다. 그런 페이튼이 자격이 없다면,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도 모두 내보내야 한다.
“진짜 이 결정을 내가 내려도 됩니까?”
“당신만 투표하면 끝납니다.”
회장은 반협박, 반 애걸하는 눈길로 페이튼을 바라봤다. 그러자 페이튼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 표정은,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소년의 얼굴이었다.
“나는 교양도, 정통도, 미식의 룰도, 역사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식사를 할 때는 음식이 맛있고 내가 좋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죠.”
페이튼이 입을 열자, 열띤 토론을 펼치던 두 명의 심사위원이 침을 꼴깍 삼켰다. 페이튼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예측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후보 1인 다니엘은 정통 느낌의 서비스, 후보 2인 슬아는 조금 더 친숙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페이튼은 유서 깊은 명문가 출신이니 정통파에 더 가깝겠지만, 동시에 그는 명문가의 돌연변이였으니 어디로 튈지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사업뿐이죠. 그러니 나에게 결정을 내리라고 한다면, 사업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떤 방법입니까?”
“호텔에서 일할 주요 인물을 뽑을 때, 내가 꼭 요구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레퍼런스죠.”
레퍼런스(reference)는 외국의 입사 지원서에 자주 등장하는 항목. 지원자가 어떤 인물인지 증언해 줄 사람의 연락처와 인적 사항을 기재하는데, 대부분의 입사 지원자는 이 칸에 전에 일하던 직장의 상사 연락처를 적는다.
“레퍼런스라니, 그건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되기 어렵죠. 지원자들의 지인은 다 자기 직원들이 우승하길 원할 텐데, 의미가 있습니까?”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하자, 페이튼의 짓궂은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쪽 레스토랑 말고 이쪽 레스토랑 말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양쪽 참가자 모두, 오늘은 같은 레스토랑에서 일했지 않습니까. 그쪽 스텝들에게 물어보죠, 누가 메트로 디에 어울리는지.”
페이튼의 말에 몇 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 명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심사 결과를, 요리사와 웨이터에게 맡긴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심사위원을 부른 의미가 없죠.”
“일부러 메트로 디가 갖춰야 할 덕목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을 골랐는데, 이렇게 되면 인기투표 아닙니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오늘 대회에 도움을 준 스텝들은 모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적어도 나보다는 잘 알겠죠.”
“하지만…”
“싫으면 기권입니다. 알아서 하시죠.”
페이튼의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던 찰나,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페이튼의 방식대로 하겠습니다. 제 비서에게 연락을 돌리라고 하죠.”
회장의 말에 방 한쪽에서 대기하던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 약 20분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냥 얘기해 주게.”
원래라면 비서가 회장에게 알리고 회장이 최종 결정을 발표해야 하지만, 회장도 피곤했다.
비서가 레스토랑 스텝의 결정을 알리자, 아까부터 특정 후보를 밀고 있던 심사위원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몇 대 몇이었습니까?”
“네?”
“한두 표 차이로, 그것도 스텝의 한두 표 차이로 결과가 나오는 건 납득이 안 되니까요. 게다가 생각해 보니, 주방에 있던 요리사보다는 홀에서 직접 상황을 지켜본 홀 스텝이 지원자들의 행동을 잘 알 텐데, 투표의 무게를 같이 두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게…”
비서는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지만,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답을 해주었다.
“8 대 0이었습니다.”
#
같은 시각.
한길은 호텔 바에서 슬아와 데니와 함께 단출한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아니, 락토스 불내증이면 처음부터 말해야지, 메뉴판에는 아이스크림이 같이 나온다고 적혀 있는데, 보통은 그러면 주문할 때 물어보잖아요. 안 그래요? 알레르기 있는지도 물어봤었는데.”
“응응, 그렇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슬아는 대회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중이었고, 그 옆에서 데니가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안 되면 소르베! 라고 해줬지!”
“소르베에는 우유가 안 들어가?”
“그렇다더라. 그리고 샤베트는 우유가 들어가긴 하는데 아이스크림보다는 적게 들어가고.”
“그래? 그럼 젤라토는?”
“젤라토는 크림이 덜 들어가서 아이스크림보다는 유지방이 없는데.. 뭐였더라? 아, 만들 때 천천히 저어서 공기가 덜 들어간대. 그래서 밀도가 더 높다고.”
“그건 어떻게 다 알았어?”
“기현 오빠한테 들은 거였는데? 그때 데니 넌 없었나? 그런데 신기하지 않아요? 이건 시험 범위도 아니고, 그냥 언젠가 궁금해서 물어봤던 건데 이걸 써먹었다니까요? 운이 좋았어, 운이!”
슬아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테킬라 샷 두 잔을 연달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독한 술인데도, 인상 한 번 안 쓰고 물 마시듯 마시는 게 신기했다.
“운이 아니라 네가 평소에 공부를 해뒀으니까 잘 풀린 거지.”
“바로 그거에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많더라니까요? 그리고 할 수 있는 요리도 다섯 개로 늘었고. 계란 후라이, 김치볶음밥, 참치마요, 크레프 마드모아젤, 그리고 루앙 오리 소스!”
“요리에 실수가 없었으면 다행이네.”
“진짜 그래요! 원래는 계란 후라이도 성공률 50%였는데, 이제는 저도 요리하는 여자라니까요?”
“누나, 어떻게 하면 계란 후라이가 성공률 50%야?”
“그런 게 있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슬아의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조금 높았다. 한길이 기특한 눈으로 슬아를 바라보자, 슬아가 생긋 웃었다.
“셰프, 더 마셔도 되죠?”
“그래서 내일 일어날 수 있겠어?”
“에이, 이 정도 가지고. 여기! 테킬라 샷 세 개만 더 주세요!”
말려야 하는 걸까 고민하는 사이, 슬아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셰프! 저 아까 본 것 중에 조금 재밌는 게 있는데, 우리도 멤버십 만들어도 돼요?”
“멤버십?”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회원이 되면 생일 때 무료 케이크 쿠폰 보내주거나 하는 거요.”
“누나, 우린 지금도 손님 넘치는데? 굳이 무료 나눔까지 해야 하나?”
데니의 질문에 슬아가 어딘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뭐라도 줘야 가입하지, 아니면 귀찮아서 멤버십은 잘 안 만들잖아? 이건 정보비 같은 거야, 뭐라도 줘야 개인 정보를 오픈할 테니까.”
“누나, 스파이야? 그런 정보 모아서 뭐 하게?”
“회원 등록을 하면, 회원마다 과거 주문 내역을 저장할 수 있더라고. 괜찮지 않아요? 그러면 손님한테 안 먹어본 메뉴를 추천할 수도 있고, 입맛에 더 맞는 메뉴를 추천할 수도 있고!”
슬아는 세기의 발명인 것처럼 팔짝 뛰며 기뻐했다.
그러고 보니 스카피도 유사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었다. 연회마다 어떤 요리를 만들었는지, 손님 반응은 어땠는지 기록하면서.
‘주문 기록이라…’
손님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활용도는 있어 보였다.
재주문 요리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신메뉴에 대한 손님 반응을 보기 위해 매출을 확인하고 있는데, 호기심으로 시키는 경우와 재주문 하는 경우를 구별하지 못해 곤란하던 참이었다.
이런 데이터를 모으면, 앞으로의 메뉴 개발에 유용하게 쓰일 터. 하지만 동시에, 잡일이 많아진다.
“관리할 수 있겠어?”
“요즘은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괜찮더라고요.”
“그래, 네가 할 수 있으면 해봐.”
“진짜요?”
“대신 예상되는 비용도 계산해서 최셰프에게 알려주고. 1호점, 2호점 모두 주기적으로 잘나가는 메뉴나 재주문이 많은 메뉴도 정리해서 최셰프에게 보고해야 해.”
“최셰프님한테요?”
한길이 맡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1호점과 2호점 업무는 최셰프에게 일임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굳이 내가 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번 스테이지에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 한 명이 문어발식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업무를 나눠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를 맡는 편이 좋다.
레스토랑의 일상적인 운영과 관리는 최셰프의 특기였다. 한길은 그 시간에 3호점의 준비와 컨셉을 다듬는 편이 좋다.
“그런데 2호점도 최셰프님한테 보고해요?”
“그래.”
소희는 서류라면 진저리를 치는 인물이었다.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걸 선호했다. 시키면 마지못해서 하겠지만, 꼼꼼하게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유셰프가 1호점 업무를 조금 맡아야 부담이 덜 한가? 슬아도 월급을 올려줘야 할 것 같고…’
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 일이 떠올라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한길은 고개를 털며 그 생각을 모두 떨쳐냈다.
이런 건 최셰프의 특기다.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누나, 괜찮겠어? 손님 취향 확인해서 추천까지 하고, 보고서도 쓰고, 일이 엄청 많아질 것 같은데?”
“억, 그렇네?”
“홀은 슬아의 영역이니 슬아가 책임져야지. 싫으면 안 해도 돼.”
“… 홀은 내 영역..”
한길의 말에 슬아는 입술을 깨물며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 데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슬아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누나, 속으면 안 돼! 최셰프님을 떠올려봐!”
“하지만…”
띠리리!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저장이 안 된 번호.
한밤중에 갑자기 연락 올 사람이 없을 텐데…
– 셰프, 빌 페이튼입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드린 건 아닐지 모르겠네요.
“아니,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 셰프와 조금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제가 내일은 클로징 세레머니 이후에 바로 떠나는 일정이더군요. 갑작스럽지만 내일, 조찬 어떠신가요.
“좋습니다.”
– 그러면 제 비서가 시간과 장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니, 데니와 슬아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길을 보고 있었다.
“뭐예요, 이 시간에?”
“아무것도 아냐. 내일 아침은 일정이 있을 것 같아서 너희 둘이 따로 챙겨 먹어야겠네.”
“뭐 좋은 일이에요?”
“아마도?”
페이튼이 한길에게 연락할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관심이 있으면 연락이 올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도 반응이 빨랐다.
#
다음 날 아침 7시.
호텔 레스토랑에는 페이튼의 이름으로 프라이빗 룸이 예약되어 있었다.
“셰프! 너무 이른 시간에 불러낸 건 아니죠?”
“원래 이것보다 더 일찍 활동하는데요. 그것보다, 아직 심사 결과가 안 나왔는데 저와 이렇게 만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하하, 걱정 마시죠. 셰프가 뭘 물어봐도 저는 답해주지 않을 테니까요. 어차피 결과도 이미 나왔고. 그나저나, 아침 메뉴치고는 조금 무거운 음식을 시키긴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잠시 후, 웨이터가 특이한 냄비를 들고 나타났다. 동그란 조개처럼 생긴 냄비였는데, 뚜껑과 몸체가 모두 구리 소재로 되어 있었다. 뚜껑이 분리되지 않고 경첩으로 연결되어 더 조개 같았다.
“이게 알가르베 지역의 전통요리라고 하더군요. 카타플라나(cataplana)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한번 맛봐야죠.”
냄비의 내용물은 각종 조개와 새우, 대구가 들어간 해물 스튜였는데, 각 재료의 맛이 살아있었다. 구리는 열전도가 고루 되는 데다가, 냄비 자체가 증기를 가둬두도록 설계되어 그런 것 같았다.
‘나중에 갈 때 몇 개 사갈까?’
한길이 속으로 감탄하며 냄비를 유심히 살피자, 페이튼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맛이 괜찮죠? 일부러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요리를 갖다 달라고 한 겁니다.”
“호텔 요리가 아니었군요.”
“호텔도 나쁘진 않겠지만, 한 번뿐인 끼니인데 이왕이면 최고를 먹는 게 좋겠죠. 그리고 아무래도, 레퍼런스가 좋으면 신뢰할 수 있으니까요. 직접 보고 직접 먹어본 사람들이 인정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페이튼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입가심을 할 때가 되어서야 페이튼의 비서가 커다란 서류 봉투를 들고 다가왔다.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는, 이걸 전달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
서류에는 몇몇 회사와 단체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박람회에서 본 것과 유사한 품종 개량을 하는 회사, 종자 은행, 그리고…
“아프리카 작물을 연구하는 곳도 있군요.”
“이건 제 비서인 파올로가 찾은 건데, 꽤 재밌더군요. 미국 국립 연구 회의에서 발행한 자료인데, 아프리카의 사라진 작물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사라졌다기보다는, 지금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잊혀졌다는 게 맞지만요.”
“연구 장소가 아프리카라는 게 의외네요.”
“기후상 농업이 비교적 발달하지 않은 곳이라 그런가 봅니다. 품종 개량이 거의 되지 않는 과일이나 곡물, 채소류가 꽤 많다고 하더라고요. 셰프의 컨셉과 맞는 것 같아서 한번 연락해 봤습니다. 그 안에 연구 책임자의 연락처도 들어있고, 도움을 달라고 얘기를 해뒀으니 언제든 연락하셔도 됩니다.”
투자에 대한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수확이었다. 한길이 이 컨셉을 알려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페이튼은 이쪽이 특기인가?’
“이런 건 저희 파올로가 잘 찾더라고요. 어제 연락드린 번호가 파올로 번호입니다.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세요.”
페이튼의 옆에 서 있는 비서는 눈 밑이 어두웠다. 하긴, 이 자료를 다 찾고 각 기관 책임자들에게 도움을 달라고 얘기까지 해둔 거다. 단 하루 만에.
한길은 비서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이한길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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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튼과 헤어진 이후, 한길은 인근 시장에 들러 카타플라나 냄비 다섯 개를 구매했다. 택시가 잘 안 잡혀서 아슬아슬한 시각에 호텔에 도착했지만, 그래도 지각은 면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데니와 함께 호텔 로비로 내려가자, 슬아가 입을 벌리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데니, 너…”
“왜?”
“옷이…”
“누나의 우승을 기원해서 오늘은 특별히 신경을 썼지.”
데니는 황금빛 수트를 입고 있었다. 황금빛이라기 보다는 밝은 노랑에 가까웠지만. 반짝이는 소재가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거, 한국에서는 잘 못 입거든. 왜, 이상해?”
“아니, 안 이상한 게 이상해. 하지만 내 옆자리는 앉지 말아줘. 눈부시니까.”
“그러면 의미가 없지. 누나한테 황금의 기운을 나눠주려고 일부러 갖고 온 건데.”
데니의 의상은 연회장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외국인들도 놀라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으니까. 저 멀리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지 밥티스트 대회에 도움을 주신 분들과 참가해주신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에는 예년보다 더 뛰어난 지원자들이 많이 참가하여….”
클로징 세레머니는 오프닝 세레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행자는 기나긴 인사말 후, 후원사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회장의 말이 이어졌고, 그 후에는 지금껏 열렸던 조지 밥티스트 대회의 영상과 자료 소개…
한참 후에야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그러면 드디어! 올해 조지 밥티스트 대회의 우승자 발표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