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0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06화(206/325)
206. 오길 잘했네
상임 직원들은 아침 9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스타주 몇 명이 힘찬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그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뒤늦게 나타난 안토니오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트장이나 상임 직원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건 자중해주세요. 특히 페르난도에게 먼저 말을 거는 행위는 절대 금지입니다. 그쪽에서 먼저 질문을 한다면, 대답하는 건 괜찮습니다.”
안토니오의 태도는, 마치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니저와도 같았다. 인사를 했던 스타주들은 괜히 무안해져서 어깨를 움츠렸다.
“우선 홀로 들어가죠.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까요.”
모두 안토니오의 뒤를 따라 홀로 들어갔고, 지시에 따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섰다.
“앞으로 여러분 모두를 실습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올해의 실습생은 총 35명. 개중에는 시즌 내내 함께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단기로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죠. 단기 실습생이 떠나면, 새로운 실습생이 그 자리를 채울 겁니다.”
한길은 단기 실습생이었다.
이왕이면 한 시즌을 전부 경험해 보고 싶었지만, 한 시즌이 6개월에 달한다는 말을 듣고 포기해야 했다. 반년이나 레스토랑을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미 인사를 나눴지만, 나는 안토니오. 실습생 관리와 미즈 앙 플라스 (mise-en-place: 밑 작업)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돌아가며 각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죠.”
안토니오의 말에, 그의 왼쪽 옆에 서 있는 실습생이 입을 열었다.
“앤서니 그랜트. 뉴욕에 있는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에서 생선 스테이션을 담당하다 왔습니다.”
앤서니의 태도는, 한길의 룸메이트인 크리스토프와 비슷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을 발음할 때 얼굴이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랭 뒤카스는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별을 보유하고 있는 셰프. 세계 각지에 3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총 20개의 별을 획득한 인물이다. 그런 셰프 밑에서 일하다 온 것이다.
“케이트 맨챗, 팻 덕에서 왔습니다.”
“폴 브라운, 퍼 세에서 육류 스테이션을 담당했습니다.”
팻 덕은 분자요리의 대가로 알려진 헤스턴 블루멘털 셰프의 레스토랑. 퍼 세는 ‘미국 최고의 셰프’ 상을 받은 토마스 켈러 셰프의 대표 레스토랑이다.
그 외에도 알리니아, 블루힐, 아틀리에 크렌 등등. 세계 순위권에 오른 레스토랑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이건 꼭 그거 같네.’
레스토랑 이름을 말할 때의 태도도, 힐끔거리는 주변인들의 반응도. 명문대 졸업생이 모교 이름을 입에 담을 때와 비슷했다.
물론, 실습생 전부가 명문 레스토랑 출신은 아니었다.
“프릿폴 아차리아, 인도에서 왔습니다.”
“엘레나 로드리게스, 아르헨티나에서 왔습니다.”
“하타이 세탕, 태국에서 왔습니다.”
“호세 디아즈, 에스쿠엘라 요리학교를 갓 졸업했습니다.”
서유럽권과 북미권이 아닌 외국에서 온 요리사도, 스페인에 소재한 요리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도 있었다.
“행크 리,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길의 차례가 되자, 말없이 듣기만 하던 안토니오가 질문했다.
“행크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죠?”
“그렇습니다.”
딱히 숨길 내용도 아니기에 순순히 답하면서도, 한길은 다른 실습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무반응.
이들에게는 한국의 어느 레스토랑 셰프보다, 명문 레스토랑 출신의 라인 쿡이 더 우위에 있었다.
“여러분은 모두 이곳에 배움을 얻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동기인 만큼, 서로에게 의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필요한 준비물을 마련해두었으니 하나씩 챙기세요.”
자기소개 이후에는 하얀 조리복과 파란 앞치마, 그리고 수건이 하나씩 주어졌다.
“조리복 세탁은 각자 알아서 합니다. 평소에 앞치마는 목에 걸지만, 영업시간에는 손님들 눈에 보이지 않게 허리춤에만 걸칩니다. 수건은 항상 앞치마에 묶어두세요. 손을 씻고 물기를 그냥 털어내는 행동은 절대 금지입니다. 무조건 휴대하는 수건에 닦아주세요.”
세세한 지시사항 이후에는, 의외의 물건이 배포되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공책과 볼펜.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일절 금지됩니다. 발각 시에는 실습생 자격을 잃게 되니 꼭 기억해주세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주방 내에서의 핸드폰 사용은 금지입니다. 메모할 게 있다면 이 공책에 필기해 주세요. 이 공책이 여러분의 자산이 될 겁니다.”
‘의외네.’
어제도 느꼈지만,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주방치고는, 분위기도 엄격하고 룰이 지나치게 많았다.
설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국적이 다양한 만큼, 주방에서는 영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페르난도를 비롯하여 각 파트장이 스페인 사람이니,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죠. 스페인어를 익혀두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배우겠지만, 지금 당장 알아둬야 할 단어 두 개가 있습니다.”
안토니오는 갑자기 말을 끊고, 불만이 가득한 눈초리로 실습생들을 바라봤다.
“아무도 적지 않는군요.”
뒤늦게 모두가 공책을 펼치며 볼펜을 들었고, 그제야 안토니오는 말을 이어갔다.
“첫 번째 단어는 케모(quemo)입니다. ‘뜨겁다’는 뜻이지만, 뜨거운 요리를 들고 이동할 때만 사용되는 건 아닙니다. 모퉁이를 돌 때, 날카로운 기구를 들고 다닐 때, 이동할 때, 주의가 필요할 때. 모든 상황에서 ‘케모’를 외치며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주세요.”
몇몇 사람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안토니오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왜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 싶겠죠. 하지만 이곳은 당신들이 지금껏 일해온 주방과 다릅니다. 보통 주방은 열댓 명의 사람이 있겠지만, 보시다시피 여기는 실습생만 35명, 상임 직원까지 포함하면 50명이 가까운 인원이 있습니다. 심지어 모두 움직이고 있죠.”
“….”
“어디에 누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예전에도 ‘케모’를 외치지 않은 한 사람 때문에 여기 온 지 1주일 만에 고도 화상을 입은 실습생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그럼에도 계속 남겠다고 했지만, 부상을 입은 사람은 쓸모가 없죠. 결국 반년간 주방 구석에 서서 구경만 하다 갔는데, 하나뿐인 인생의 반년을 그렇게 보내는 게 과연 옳았는지는 모르겠네요.”
‘냉정하네.’
‘케모’를 외치지 않고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안토니오의 불만과 경멸은 다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누구 탓인지는 중요치 않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 하고, 그걸 하지 않는 사람은 주방에 설 자격이 없다. 직접 말로 하지 않았지만, 한길이 받은 뉘앙스는 그러했다.
“두 번째 단어는 오이도(oido), ‘알아들었다’는 뜻입니다. 지시를 들었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면, 무조건 오이도라고 답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예스, 셰프.”
안토니오의 눈매가 다시 날카로워졌고, 몇 명이 뒤늦게 답을 수정했다.
“오이도.”
“오이도, 셰프.”
하지만 안토니오는 구겨진 미간을 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셰프라는 호칭을 쓰지 않습니다. 나는 물론, 페르난도를 보게 되더라도 셰프 대신 이름으로 부릅니다.”
“… 오이도.”
“오이도.”
이것 역시 의외였다.
이렇게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서열이 없는 것처럼 이름으로 부르라니.
“그 외에도 룰은 많지만, 그건 일하면서 차근차근 알려주도록 하죠. 더 불독의 오픈 날짜는 일주일 후입니다. 손발을 맞출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으니, 모두 분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주방으로 들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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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불독의 주방은 다이닝 홀만큼이나 넓은 공간이었다. 여기저기 그릴과 화구, 특이한 기기들이 있었지만, 안토니오가 실습생들을 안내한 곳은 주방 한가운데에 자리한 거대한 아일랜드 식탁이었다.
“이곳이 메사 센트랄, 중앙 작업대입니다. 실습생 대부분은 여기서 작업합니다. 미즈 앙 플라스를 준비할 때는 여기서 재료 손질을, 영업 중에는 여기서 플레이팅을 하죠. 또한, 쉬는 시간에는 이곳에서 식사합니다. 식사할 때는…”
주방에 들어온 이후로도 설명은 계속되었다.
쓰레기통은 작업대의 양 끝에 두고 절대 치워서는 안 된다. 설거지할 그릇을 옮길 때는 작업대의 뒤쪽으로 걸어야 한다. 일하는 도중에 음료수를 마시는 건 금지. 물만 마시되, 물병 채로 마시지 않고 플라스틱 컵에 따라 마셔야 한다…
그 외에도 재료 창고, 각종 기계, 냉장고, 팬트리 등의 설명을 듣는 데에만 또 한 시간이 지났다.
한길의 공책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요리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러면 세뇨레스, 시작하죠. 거기 다섯 명은 나를 따라오세요.”
드디어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모두가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안토니오는 다섯 명의 실습생을 데리고 창고로 향했다. 돌아왔을 때는, 모두 커다란 바구니를 안고 있었다.
“오늘은 당근부터 시작하죠. 이건 직원 식사로 먹을 라구에 사용할 당근입니다. 브뤼누아즈(brunoise)로 부탁드립니다. 우선, 시범을 보여주죠.”
안토니오는 능숙한 손길로 당근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채칼로 껍질을 제거하고, 기다랗게 썬 후, 다시 주사위 모양으로 다졌다. 시범까지 보여준다고 해서 특별한 기술이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이 정도 인원이면 15분이면 완성하겠죠? 부탁드립니다.”
안토니오는 뒤로 물러섰고, 실습생들은 산처럼 쌓여 있는 당근 더미를 향해 달려갔다.
“아야, 밀치지 마!”
“이봐, 발을 밟았으면 사과를 해야지?”
“순서를 지킵시다!”
난장판이었다.
서로를 밀치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미션과도 같았다.
한편, 한길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실습생이 아닌, 안토니오를 관찰하면서.
“달리지 마세요. 실렌시오! 조용히 합시다!”
안토니오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실습생들이 엄청난 스피드로 작업을 시작하자, 미간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하긴, 나 같아도 비슷한 반응이겠지.’
실습생들에게는 지금이 일생의 기회다. 어떻게든 잘 보여서 세계적인 셰프에게 인정을 받을 기회.
하지만 안토니오에게 오늘은 평범한 레스토랑의 하루일 뿐이었다.
실습생들은 밑 작업을 하는 요리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평범한 레스토랑에서는, 셰프가 요리사들을 일일이 살피며 누가 더 당근을 잘 써는지 평가하지 않는다.
‘안토니오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면…’
최셰프처럼 행동하는 게 좋다.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고, 질문하는 대신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한다. 상사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행동까지 예측하며 손발을 맞춰준다.
열정만 보여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열정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잘못된 열정은 불안감만 안겨줄 뿐이다.
예를 들면, 그림을 배우러 오는 학생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몇 시간째 데생에만 집중한다면,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열정을 보여주겠답시고 무서운 기세로 연필을 깎는다면, 오히려 인상을 쓰게 될 터였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봐야 하나?’
한길은 다른 실습생들과 달리, 차분하게 밑 작업을 시작했다.
탕탕탕!
딱히 서두르지도 않았다.
밑 작업은 밑 작업일 뿐이니까.
‘그러고 보니 이것도 오랜만이네.’
한길이 마지막으로 밑 작업을 한 것은, 혼자 골목 식당을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레시피 개발을 할 때는 스스로 재료를 손질하지만, 레스토랑 서비스를 위해 대량으로 재료를 손질하는 건 다르다. 감회가 남달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소리도, 손안에 느껴지는 당근의 단단함도. 어딘가 평온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런데, 켈러는 실제로 보면 어때?”
실습생들이 하나둘씩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작업이라면 모를까, 단순한 당근 썰기에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는 없으니까.
“앤서니라고 했지? 그러면 알랭 뒤카스를 직접 만난 거야?”
“그렇지.”
“실제로는 어때?”
익숙한 목소리에 한길은 잠시 칼을 내려놓았다.
끈질기게 앤서니의 옆에서 질문하는 이는, 역시나 한길의 룸메이트인 매튜였다. 매튜의 눈빛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묻는 열성 팬과도 같았다.
‘시선을 떼면 안 좋은데.’
잡담을 하는 것까지는 뭐라고 할 수 없으나,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재료를 보지 않고 칼질을 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한길이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안토니오가 불쑥 나타나 매튜의 도마 위에 있는 당근을 들어 올렸다.
“당신, 이름이 뭐였죠?”
“매튜입니다.”
“매튜, 브뤼누아즈가 뭔지 알고 있습니까?”
“네.”
“뭐죠?”
“정육면체로 써는 컷입니다. 각각 3밀리 크기로요.”
‘그렇구나.’
조리 용어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정확한 규격까지 정해져 있었다. 한길은 그저 안토니오가 시범을 보여준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었는데, 아무래도 모두가 저 용어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건 딱 봐도 5 밀리 정도 되겠군요. 이러면 다이스에 가깝죠. 이건 2 밀리, 파인 브뤼누아즈네요.”
“죄송합니다.”
“직원 식사용 당근도 못 맡기는데, 손님을 위한 요리를 맡기겠습니까?”
“….”
안토니오의 지적에 주방에 정적이 감돌았다.
탕탕탕!
그리고 침묵 속에서 도마에 부딪히는 칼날의 소리만 울려 퍼졌다.
“다음은 마늘입니다. 이걸 다져주세요.”
“셀러리입니다. 이 역시 브뤼누아즈로 부탁합니다.”
“양파입니다. 이건 다이스로 하죠.”
산더미 같은 재료를 손질하면, 또 다른 산더미가 나타났다. 안토니오는 지시만 내리고 사라졌지만, 갑자기 불쑥 나타나 실습생들의 결과물을 살피고 지적을 했다.
처음에는 재료의 크기에 대한 지적이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지적도 줄어들었다. 실습생 모두가 기계에서 뽑아낸 듯, 정확하게 같은 크기로 썰고 있었으니까.
“크기는 좋네요.”
안토니오는 마지막으로 작업한 양파를 보며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모처럼의 칭찬인가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35분이나 걸렸군요. 이 정도는 15분 안에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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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습니다. 앞으로 한 시간은 점심시간입니다.”
기계처럼 일하는 실습생들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하루 한 끼, 6시에 먹는 저녁 식사 뿐이다. 점심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차 키가 어디 있더라?”
“이 근처에 뭐가 있으려나?”
여유롭게 주방을 나서는 실습생들의 등을 향해 안토니오가 외쳤다.
“지각이 두 번 누적되면 실습생 자격을 잃게 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참고로, 올해 실습생으로 지원한 사람들이 5천 명이 넘습니다.”
해석.
당신을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말에 대부분의 실습생은 고민에 빠졌다.
더 불독은 외진 산길에 자리하고 있다. 편도로 약 20분, 왕복이면 40분. 만에 하나 길을 잃게 되면 지각을 면할 수 없다.
몇몇 사람들은 잰걸음으로 레스토랑을 벗어났지만, 대다수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테라스로 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당근이라도 조금 주워 먹는 건데…”
한길의 옆자리에는 매튜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한길이 샌드위치가 담긴 봉투를 열자, 매튜가 입술을 적시면서 물었다.
“그건 무슨 샌드위치야?”
“보카디요 세라니토라던데? 나도 처음 먹어봐.”
매튜뿐 아니라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조금 불편했지만, 한길은 거침없이 포장을 뜯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바게트 안에는 돼지고기 안심, 세라노 하몽, 구운 피망과 상큼한 토마토가 아낌없이 들어있었다.
한입에 먹기도 힘든 크기인데, 바삭한 재료까지 들어 있어 먹을 때마다 큰 소리가 났다.
꼬르륵!
꼬르륵!
여기저기서 배꼽시계 소리가 들렸다. 매튜뿐 아니라 대부분의 실습생이 아침조차 먹지 못했으니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 뻔했지만, 한길은 애써 그 마음을 다스렸다.
이건 인과응보다.
점심을 포기하면서 남들보다 눈에 띄려고 했던 건, 저들이다. 지금 이 상황은 저들의 선택에 대한 결과이고. 그리고 만약 오늘 상임 직원들이 일찍 나왔다면, 한길은 게으른 실습생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매튜는 불쌍한 강아지 같은 눈으로 한길을 바라봤지만, 이내 포기하고 크리스토프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습생은 이렇게 많은데 일류 셰프는 몇 안 나오잖아? 이 중에서 누가 차기 레드제피가 될까?”
“글쎄?”
“프랑스 사람이 없는 건 조금 의외지 않아?”
“레드제피 말로는 여기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을 싫어한다더라. 태도가 안 좋다고.”
“흠, 그래? 하긴, 페르난도는 프랑스 요리랑 안 어울리긴 하지.”
“꼭 그렇지도 않아. 더 불독은 8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 레스토랑이었으니까. 페르난도도 처음 시작할 때는 프랑스 요리가 전문이었고.”
“그래? 페르난도랑 프랑스 요리는 진짜 안 어울리는데?”
크리스토프는 한눈에 봐도 매튜를 좋아하지 않았다. 백색에 가까운 창백한 속눈썹 사이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파란 눈동자가 매튜를 쏘아봤다.
“모든 요리의 기본은 프랑스 요리지. 프랑스 전문이 아니어도, 프랑스에서 훈련받은 셰프들은 많아. 댄 바버만 해도 프랑스에서 수련했고, 2년간 당근만 썰었다고 했으니까.”
“….”
“기본기를 다지기에는 프랑스만 한 곳이 없지. 프랑스 요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대개 기본기가 부족하더라.”
크리스토프의 말에 매튜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건 나보고 하는 말이냐? 내가 기본기가 없다고?”
“당근 하나 제대로 못 써는 건 솔직히 놀라웠지.”
“1밀리 차이였거든? 어차피 소스에 들어가면 형체도 안 보이는 거고,”
“그렇게 치면 소금은? 한 줌과 두 줌이 차이가 없나? 정밀함도 습관이고 집중력도 습관이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기본기가 없는 거고. 그리고, 컷 하나로 맛이 달라질 수도 있어. 닿는 면적이 다르면 열기와 반응하는 정도도 다를 테고, 그런 미세한 차이까지 컨트롤하는 게 일류 주방이고.”
“뭐야?”
언제라도 주먹이 날아갈 듯한 험악한 분위기. 그 와중, 한길은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공책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넌 뭐 하냐?”
매튜는 그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길의 공책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매튜는 한글을 읽을 줄 몰랐다.
한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둘 다 하던 얘기 계속해. 그냥 뭐가 생각나서 그런 거니까.”
두 사람 사이에 또 날카로운 대화가 오갔지만, 한길은 모든 신경을 공책에 집중했다.
「컷에 따라 맛이 다르다. 닿는 면적에 따라 화학 반응이 미세하게 다르니까. 정말 3 밀리와 5 밀리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나중에 실험해볼 것! 이왕이면 블라인드 시식도 하고.」
한길도 비교적 디테일한 요리를 만들어 봤지만, 1밀리 단위로 정밀하게 만들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역시 일류 주방은 다르다는 건가?’
단 1밀리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
단순하게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요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됐다, 말을 말자.”
“그래, 제발 조용히 좀 하자.”
한길이 다시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을 때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리며 앉고 있었다. 한 방을 나눠쓰는 사람들끼리 이러면 불편할 것 같긴 했지만, 딱히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도 전염된 건가?’
이렇게 과열된 공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한길은 지금껏 남과 경쟁을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식당을 운영할 때는 손님을 만족시킬 생각만 했었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한길이 돌봐야 하는 대상이었으니까.
퀘스트 속에서 경쟁하긴 했지만, 한길에게는 현대인의 미래 지식이 있었다. 정정당당한 대결이 성립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한길에게는 주방을 이끄는 셰프의 경험이 있지만, 서양 레스토랑 문화는 아직 생소했다. 반면, 이들은 한길이 모르는 조리 용어까지 터득하고 일류 주방까지 겪었으니, 이 정도면 비슷한 출발선 아닐까?
여기 모인 35명은 모두 같은 꿈을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었다. 모두 언젠가는 세계 제일의 셰프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들과 나란히 경쟁하면, 한길이 세계 무대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터였다.
‘역시 오길 잘했네.’
고작 반나절뿐인데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