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0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07화(207/325)
207. 3문 3답
점심시간 후 주방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재료의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손질할 재료는 굴입니다. 이건 갈리시아의 캄바도스 지역에서 들여온 굴인데, 포르투갈 굴이라고도 부르죠. 이래 봬도 꽤 귀한 굴입니다.”
안토니오는 보석을 다루는 듯한 손길로 굴의 표면을 쓰다듬었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와 이베리아반도 전역에서 많이 양식되던 굴인데, 갑작스레 질병이 돌면서 생산량이 90%나 감소했죠. 지금은 대량 생산이 거의 되지 않아 어렵게 구해온 굴입니다. 요즘 양식되는 태평양산 미야기 굴과는 달리, 하나하나 개성이 살아 있죠. 그러면, 이것도 시범을 보여주겠습니다.”
안토니오는 도톰한 수건으로 굴을 감싼 후, 과도같이 생긴 작은 칼을 꺼냈다.
“보통은 굴을 딸 때, 뒤에 있는 이음새에 칼을 찔러 넣고 지렛대처럼 압력을 가하죠. 하지만 이 굴은 껍데기가 얇은 편이라 그렇게 하다가는 부서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쪽에 틈새를 만들어서 열어줘야 합니다.”
안토니오는 위아래가 맞물려서 입을 꾹 다물어 있는 굴 껍데기 사이로 조심스레 칼날을 비집어 넣었다.
첫 틈새를 만들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 후로는 일반적으로 굴을 따는 방식과 똑같았다.
조금씩 손목을 비틀어 틈새를 키운 후, 칼을 더 깊숙이 찔러 넣고 폐각근을 절단한다. 폐각근은 조개를 닫기 위해 사용되는 한 쌍의 근육. 이걸 먼저 잘라내야 깔끔하게 굴을 꺼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즙을 따로 보관하는 겁니다. 살점은 그대로 두고, 고여있는 즙은 이곳에 따라줍니다.”
안토니오는 굴 껍데기에 고여 있는 즙을 별도의 용기에 따랐다. 많은 양이 나오진 않았다. ‘주룩’ 한 번이면 끝.
즙을 모두 따라낸 굴은, 껍데기 채로 얼음이 담긴 트레이 위에 올려놓았다.
“이대로 하면 됩니다. 이해했습니까?”
“오이도.”
“오이도.”
실습생들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배가 고파서인지, 아침에 보였던 의욕이 한풀 꺾여 있었다.
“원래라면 세척도 실습생이 해야 하지만, 오늘은 미리 세척을 해두었습니다.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오이도.”
“오이도.”
실습생들은 일렬로 서서 작업을 시작했다.
잡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너무 고요한 나머지, 통 안에 굴 즙을 따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 침묵을 깨고 안토니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 이름이 뭐죠?”
“라엘라입니다.”
안토니오의 손끝이 가리키는 실습생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긴 여자였다.
“시식은 안 됩니다.”
이어지는 말에, 작업에 열중하던 실습생까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라엘라를 쳐다봤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닙니다. 당신이 시식한다면, 여기 있는 35명 모두 시식을 하는 게 공평하겠죠. 그렇게 되면 손님께 내드릴 게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간을 봐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시식하는 건 금지입니다. 하나라도 아껴야 하는 재료들이 많으니까요. 앞으로 조심하세요.”
“오이도.”
라엘라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불만이 있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딱히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다시 침묵 속에서 작업이 이어졌고, 이번에는 한 시간 안에 모든 굴을 처리할 수 있었다.
굴이 담긴 트레이는 작업대의 한쪽에 일렬로 배치하고. 굴 즙을 하나의 용기에 통합해서 담자, 다음 지시가 내려졌다.
“이건 스타터 1에, 이쪽은 콜드 스테이션에 갖다주세요. 매튜, 케이트, 부탁합니다.”
더 불독의 주방은 크게 일곱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콜드 스테이션, 스타터 1, 스타터 2, 육류, 생선, 스몰 키친, 그리고 페이스트리.
굴의 본체는 스타터 1구역으로, 즙은 콜드 스테이션 구역으로 보내졌다.
“그러면 다음 재료를 가져와야겠군요. 거기 다섯 명은 따라오세요.”
안토니오는 실습생 몇 명을 데리고 주방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한꺼번에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억지로 가둬둔 의문이 동시에 터진 것이다.
“시식이 안 된다고?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몇몇 재료만 그런 거겠지. 비싼 재료만.”
“비싼 재료도, 맛을 모르면 어떻게 요리해? 설마…”
“설마…?”
“… 요리를 안 시키는 걸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밑 작업만 하고 요리는 다른 스테이션에서 맡는 걸 수도 있잖아?”
“에이, 첫날이니까 그런 거겠지. 설마 실습 내내 이럴까.”
“그, 그렇겠지?”
실습생들 사이에 퍼지는 불만과 불안.
요리사라면 당연히 느낄 감정이었다.
한길 역시 그랬으니까.
밑 작업은 중요하다.
어떤 레스토랑에서도, 밑 작업을 소홀히 하면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밑 작업은 요리하기 위한 준비 작업. 요리를 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다.
한길의 레스토랑에서는, 각 스테이션의 요리사가 자신이 사용할 재료의 밑 작업을 맡았다. 주방 보조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사용할 재료는 내가 알아서 준비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분업화인가?’
이곳에서는 밑 작업은 실습생이, 조리는 각 스테이션의 요리사가 맡도록 분업화되어 있었다. 적어도 오늘만 놓고 본다면.
이렇게 되면, 실습생은 재료만 손질하는 노예가 되는 셈이다.
웅성거림은 안토니오가 돌아오자마자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이번에는 조금 특이한 재료입니다.”
그 말대로, 안토니오 뒤에 서 있는 실습생들은 생소한 재료를 안고 있었다.
아직 빨간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생선 뼈. 사람 키만 한 거대한 생선 뼈다.
“참치 등뼈입니다. 저희는 참치 등뼈 안에 있는 골수를 사용하죠. 이번에도 시범을 보여드리죠.”
짧은 설명 후에 안토니오가 다시 움직였다.
우선 커다란 뼈를 다루기 쉬운 크기로 절단하고. 뼈에 붙어 있는 빨간 살점과 하얀 막을 깨끗하게 걷어냈다.
“이렇게 기본 손질을 한 후, 흐르는 물에서 수세미로 문지르며 세척합니다.”
보조로 보이는 사람이 뼈를 들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안토니오가 세척하는 모습까지는 시범을 보여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다리는 사이, 안토니오는 설명을 이어갔다.
“골수는 날 것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확하는 과정에서 오염되면 안 되죠. 오염 요소를 미리 제거한 후에 수확합니다. 이건 몇 년 전, 페르난도가 일본에 가서 찾은 재료인데, 일본에서는 이걸 구워서 먹는다는군요. 저희는 생으로 사용합니다. 달리 궁금한 게 있나요?”
처음으로 안토니오가 질문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알겠나?’ ‘이해했나?’ 등 ‘예스, 노’로 답할 수 있는 질문만 했는데.
“골수는 어떤 요리에 사용되죠?”
“참치 뱃살과 함께 나갑니다. 참치 뱃살은 참치 중에서도 가장 풍미가 진한 부위인데, 지방이 많아서 그런 거죠. 저희는 일부러 지방 함유량이 비교적 적은 뱃살을 골라서 사시미를 만들고, 골수와 함께 곁들여 냅니다.”
말만 들어서는 무슨 요리인지 알 수 없었다. 몇 개의 질문이 이어지는 사이, 세척이 완료된 등뼈가 도착했다.
“그러면 계속해 보죠.”
골수를 수확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참치 등뼈는 척추처럼, 여러 마디가 연결되어 있다. 그 마디에 칼집을 길게 낸 후, 양손으로 뼈를 잡는다.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듯이 압력을 가하면, ‘똑’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졌다.
갈라진 등뼈의 내부는 동그란 컵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 탁한 하얀색의 젤리가 들어있었다.
안토니오는 하얀 골수 젤리를 숟가락으로 덜어서 계란판처럼 생긴 용기에 담았다.
“이대로 하면 됩니다. 이해했습니까?”
“오이도.”
“오이도.”
이번에도 노예들은 말없이 손을 움직였지만, 침묵을 꿰뚫고 모두의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시식해도 되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준비된 재료의 양을 보면, 여기 있는 인원이 한 명씩 시식하다가는 남는 게 없을 테니까.
‘어떻게 할까?’
한길은 작업하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맛을 보고 싶다.
참치 골수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그 맛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천재라고 불리는 셰프가 아시아에서 찾은 맛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하지만 아까의 사건이 없었다면 모를까. 이미 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까지 했는데 시식을 하면 백 퍼센트 찍힌다.
몰래 맛보고 싶었지만…
채소 손질 때는 자리를 수시로 비운 안토니오가, 이번에는 감시하듯이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포기해야 하나?’
설마.
한길은 소리 없이 피식 웃으며 바로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등뼈에는 적당히 깊은 칼집을 내야 작업하기 쉽지만, 한길은 일부러 얕은 칼집을 냈다. 양손으로 뼈를 잡고 구부려 보니, 거센 저항감이 느껴졌다. 위태로울 정도의 저항감을 무릅쓰고 힘을 주자,
똑!
등뼈는 갈라졌지만, 하얀 골수 젤리가 날아가며 바닥에 철퍼덕하고 떨어졌다.
“행크, 귀한 재료입니다. 재료를 소중히 여겨주세요.”
“죄송합니다.”
“떨어진 건 바로 치우고 쓰레기통 안에 넣습니다. 주방에서 청결은 그 무엇 보다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오이도.”
한길은 젤리를 줍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역시, 젤리는 비교적 도톰해서 바닥과 접촉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한길은 깨끗한 부위만 손으로 뜯어내어 몰래 입안에 넣었다.
‘이런 맛이구나.’
연한 바다 향이 입안에 퍼졌다. 굴 맛과도 비슷하지만, 씹히지 않고 물컹거린다. 굴보다는 훨씬 상쾌하고 가벼우면서도 희미한 맛. 어떻게 보면, 바닷물로 만든 젤리 같기도 했다.
‘너무 오래 끌면 안 되겠지?’
한길은 서둘러 남은 골수를 손에 주워 담고 작업대 끝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버렸다. 안토니오가 빤히 노려보았지만, 시치미를 뚝 떼며 미안하다는 표시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최상의 방법은 아니지만…’
반항하는 것보다는 실수하는 편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한두 번쯤은 하니까.
하지만 실수에도 최대 허용치가 있으니, 이러면 앞으로는 절대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건 스타터 2로 보냅니다.”
골수 손질이 마무리되자, 안토니오가 다시 실습생들을 훑어보았다. 운반자를 지정하기 전에, 한길이 먼저 손을 들었다.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안토니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길은 골수가 담긴 용기를 들고 주방의 한쪽 끝에 있는 스타터 2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참치 골수입니다.”
“거기 놔둬.”
“오이도.”
스타터 스테이션에는 하얀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준비물을 점검하고 있었다. 참치 뱃살, 노란 액체가 들어 있는 용기, 그리고 짙은 자주색 소스…
“왜 안 가지?”
“잠깐 봐도 됩니까?”
“시식은 안 돼.”
“오이도.”
남자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고, 한길은 옆에 서서 플레이팅 과정을 지켜봤다. 움푹한 그릇에 골수를 한 스푼 얹고, 노란 액체를 따르고, 그 위에 참치 뱃살과 소스가 올라갔다.
“이 소스랑 액체는 쓰고 나면 버리시는 거죠?”
“그렇지. 당일 만들고 당일 사용해야 하니까.”
“제가 버려도 될까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요청에,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뭐, 상관은 없어. 하지만 내가 갖다주진 않을 거니까 알아서 가져가.”
“오이도.”
한길은 그제야 중앙 작업대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안토니오는 다음 재료를 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 한길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퇴근 후에야 먹어볼 수 있겠네.’
골수의 맛은 알아냈고, 참치 뱃살의 맛은 이미 알고 있다. 저 소스와 액체의 맛만 보면, 퍼즐을 끼워 맞추듯이 전체적인 요리의 윤곽이 잡힐 거다.
‘내일 새벽에 수산 시장을 한번 가볼까?’
수산 시장은 대개 일찍 문을 여니, 출근 시간 전에 다녀올 수 있을 거다. 직접 참치를 구해와서 요리를 재현해 보는 게 좋기는 한데…
요리 하나 맛보는데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뭐, 항상 이래 왔으니까.’
지금껏 수많은 주방에 갑자기 던져진 한길이었다. 그중에서 처음부터 한길이 일하기 편한 주방은 하나도 없었고.
이번에도 적응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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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이군요. 메사 센트랄 정돈을 시작합니다. 5분 내로 치우는 걸 목표로 하죠.”
“오이도!”
“오이도!”
굶주린 실습생들은, 저녁 식사를 알리는 소리에 활기를 되찾았다.
“달리면 안 됩니다.”
“오이도!”
안토니오의 상세한 지시 없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테이블 세팅을 시작했다. 준비 과정에 대한 건, 오늘 아침에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몇 명이 서둘러 작업대의 테이블보를 걷어냈다. 테이블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돌 말아서 묶어두고, 새로이 식사용 테이블보를 깔았다.
나머지 실습생들은 창고에서 접이식 플라스틱 의자 50개를 들고 와 세팅했다. 누군가는 자리마다 빵을 한 덩이씩 놓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플라스틱 컵을 세팅하고 물을 따랐다.
“9분 걸렸군요. 5분으로 맞춰야 합니다.”
“오이도!”
“순서대로 스몰 키친에서 식사를 받아오도록 하죠.”
“오이도!”
스몰 키친은 주방 옆에 붙어있는 작은 창고 크기의 조리공간. 급식소처럼, 입구에 있는 식판을 들고 들어가면, 직원이 식사를 담아주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라구 파스타.
더 불독의 식사치고는 평범한 메뉴지만, 실망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각자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자, 안토니오가 돌아다니며 공책에 무언가를 메모했다.
“실습 기간 동안 식사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합니다.”
“오이도!”
“오이도!”
정말 숨 막힐 정도로 규율이 많은 주방이었다.
흔히 레스토랑의 주방을 키친 브리게이드(brigade)라고 부른다. 브리게이드는 군대의 여단을 의미하고.
한길 역시 주방을 이끄는 셰프이니, 이런 시스템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서비스가 시작되면, 셰프가 전체 주문을 보고 군대를 지휘하듯이 주방을 운영해야 하니까.
하지만 한길의 레스토랑에서는, 요리사가 군인이 되는 건 서비스 시간뿐이었다.
영업이 종료되면 모두가 군복을 벗었고, 군함은 해적선으로 탈바꿈했다. 한길과 소희를 제외하면, 위아래 없이 모두 어깨동무를 하며 병나발을 부는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여기는 평소때도 훈련을 하는구나. 하긴, 군대에서도 그러니까.’
이해는 하지만…
한길은 자신의 시스템이 더 좋았다. 적당히 풀어줄 때 풀어줘야, 달릴 때도 제대로 달릴 테니까.
이렇게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도 실습생들이 열심인 건, 페르난도의 이름값 때문이겠지. 다른 레스토랑이라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먹는 사이,
“어, 저녁이네?”
“배고프다.”
비어있는 의자에 한 명씩, 하얀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이 앉았다.
하얀 앞치마는 상임 직원. 실습생은 모두 파란 앞치마다. 아무래도 저녁 식사만큼은 모두 함께 먹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페르난도, 오셨군요.”
안토니오의 목소리에 실습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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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페르난도.’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요리사.
살아있는 전설.
잡지나 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했는데, 이제는 완연한 백발이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주름이 거의 없었다.
어딘가 독수리를 닮은 인상.
조금 엄격해 보이는 얼굴이다.
페르난도는 모두와 똑같은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은 후, 주위를 둘러보며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실습생들이군. 어제오늘은 일이 있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했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밥 먹으면서 할 얘기는 아니니까 나중에 하겠네. 일단 돌아가면서 소개 한번 해볼까?”
“오, 오이도!”
“오이도!”
다시 한번,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타임. 실습생들은 한눈에 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노마에서 온 크리스토프입니다!”
“레드제피랑 일을 하는군. 이번에는 또 어딜 갔나?”
“네?”
“레드제피 말이네. 저번에는 호주에 가서 꿀개미를 가져오던데, 이번에는 또 어디로 여행 갔나 해서.”
“멕시코에 다녀오셨습니다.”
“그래? 거기서 뭐 좀 찾아왔고?”
페르난도는 의외로 실습생들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 모습에 감격에 겨워하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의 패턴이 나왔다.
‘3문 3답이네.’
페르난도는 실습생 한 명당 정확하게 세 개의 질문만 했다.
명문 레스토랑 출신의 실습생의 경우, 실습생 본인보다는 레스토랑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명문 레스토랑 출신이 아닌 실습생들의 경우, 질문 형식이 조금 달랐다.
“인도 어느 지역에서 왔지?”
“케랄라주입니다. 남쪽 지역이죠.”
“예전에 스타주로 왔던 인도 친구가 있었는데, 신기한 향신료를 많이 가져오더군. 자네 고향에서는 주로 뭘 해 먹지?”
“카레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카레’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페르난도의 눈동자에 있던 흥미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자네는 어디서 왔나?”
“중국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 없이 바로 다음 사람의 순서로 넘어갔다. 불쾌해하거나 실망한 기색은 없었다. 단지 이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판단했을 뿐.
인도 출신 실습생은 뒤늦게 창백한 얼굴이 되었지만, 감히 페르난도의 말을 끊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두바이에서 온 라엘라입니다.”
“두바이에서는 어떤 레스토랑에서 근무했지?”
“스테이라고, 야닉 알레노 셰프가 운영하는 두바이 레스토랑입니다.”
반 바퀴를 도는 동안, 3문 3답을 통과한 이는 12명. 실패한 이는 5명이었다.
꿀꺽.
한길의 옆에 앉은 실습생이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나는 대로 답해서는 안 된다. 세 번의 질문이 진행되는 동안, 페르난도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조용히 머릿속으로 전략을 짜고 있었다.
“자네는 어디서 왔나?”
그리고 한길의 차례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