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0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09화(209/325)
209. 9개의 선택지
방으로 돌아온 한길은 밀린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많기도 많네.’
미확인 메시지는 총 999개.
차마 클릭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미뤄뒀지만,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확인 매시지는 하나의 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데니가 일전에 만든 단톡방으로, 고르메 키친의 임직원이 모두 모여 있는 방이었다.
┗ 셰프, 왜 연락이 없으신 거죠
┗ 살아 계시죠?
┗ 저희를 두고 가지 마세요… 제발…
┗ 여기서 그러지 마라, 빅 브라더가 보고 있다
┗ 브라더가 아니라..
┗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 직원 안전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 암흑의 군주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모두 명심하시길
┗ 살았다 ㅜ 데니 압도적 감사!
스크롤을 쓱쓱 내리며 훑어봤지만, 쓸모없는 이야기와 시시콜콜한 농담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관심이 가는 내용은 하나.
┗ 오늘의 고르메 키친
┗ (사진)
┗ (사진)
┗ 영광의 시상식 현장.jpg
┗ 금도끼 은도끼 실물.jpg
┗ 우리 레스토랑 클래스.jpg
데니와 슬아가 벌써 출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벤트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이런 대경사를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다.
정성 들여 레스토랑 내부를 꾸며놓고 자체적으로 메달 수여식을 연 것.
사진을 보니, 카키가 직접 슬아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상까지 건네주고 있었다. 슬아는 금상자, 은상자, 동상자를 품에 안은 채 시상식 때 보다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 셰프, 상자 내용물 궁금하지 않으셈
┗ 수셰프 자리 주심 지금 당장 갠톡으로 보내드림
┗ 안 보시는데?
┗ 시차 때문일 수도
┗ 밤에 재도전 ㄱㄱ
┗ (사진)
┗ (사진)
┗ (사진)
┗ 카사장님! 그걸 올리시면 어쩝니까 ㅜ
┗ 내 출셋길이..ㅜ
┗ 셰프가 궁금하다며
┗ (사진)
┗ (사진)
┗ (사진)
┗ 사진 폭탄 ㄴㄴ 묶음으로 올려주세요
카키가 보낸 사진은 무려 50장에 달했다.
금, 은, 동 상자를 각자 개별적으로 촬영하고, 상자 안에 담긴 내용물도 촬영했다. 확대 혹은 축소해서, 위에서 내려다본 앵글, 밑에서 올려다본 앵글, 개별 컷과 단체 컷까지.
정말 지극정성으로 촬영했다.
금상자 안에는 순금으로 만든 배지가 들어 있었다. 귀족 가문의 휘장처럼 생긴 문양 위아래로 [best gourmet]와 [maitre d’]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어때요? 제가 디자인함
┗ (사진)
┗ 이건 시안
┗ 나중에 직책별로 만드는 건 어때요?
은상자 안에는 같은 문양의 은반지가 들어 있었고, 동상자 안에는 같은 문양의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 근데 카사장님 3등 상품은 왜 동이 아니라 로즈골드입니까
┗ 동 따위 안 키움
┗ 따위라니…
┗ 은도 컨셉 맞추려고 넣은 거임
‘잘 노네.’
군데군데 신경 쓰이는 내용이 조금 있었지만, 큰일은 없는 것 같았다.
한길은 살아있다는 안부 인사만 남기고 메일을 열어 최셰프와 유셰프가 보낸 보고서를 읽었다.
이번에는 안건이 꽤 많았다.
1호점은 슬아가 이번 대회에서 배운 크레프 마드모아젤을 메뉴에 올리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한동안 슬아가 1호점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슬아의 역할을 대신 수행할 직원을 훈련 시켜야 하기에 3주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길이 이번 박람회에서 구입한 재료들은 사흘 후에 도착하고, 3호점이 입점할 호텔은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2호점에는 의외의 의뢰가 들어와 있었다. 재료상인 알레산드로의 소개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행사의 케이터링을 의뢰한 것.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입장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지만,
‘괜찮으려나?’
「지금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시겠지만, 그 부분은 문제없습니다. 주방 식구들 모두 여느 때보다 기대하고 있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유셰프의 보고내용은 아까 단톡방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분위기와 일치하지 않았다. 이건 최셰프에게 의견을 묻고 진행하는 게 좋겠지.
보고서 내용을 모두 확인한 한길은 최셰프에게 보이스톡을 걸었지만,
―잠시만요, 셰프. 제가 금방 다시 걸겠습니다.
뚝!
최셰프는 받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영상 통화 요청을 해왔다.
―셰프, 잘 지내시죠? 얼굴이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저야 뭐,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영상 통화는 왜…”
문장을 채 끝내기도 전에, 화면 속에 얼굴을 빼꼼 내미는 인물이 있었다.
―어? 진짜 멀쩡하시네요? 아직 자아를 갈아 넣는 톱니바퀴 훈련은 안 들어간 건가요?
“다 들립니다.”
―아, 그게 아니라… 페르난도 주방이라고 해서 더 빡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널널한가봐요?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다만?
“유셰프의 성향을 조금 이해할 것 같긴 합니다.”
이런 숨 막히는 주방에서 3년 동안 경쟁하면서 일해왔다면, 소희의 이상한 집착과 싸움꾼 기질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그것보다는 우선 회의를 하죠. 보고서 읽어봤는데…”
회의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슬슬 마무리하려는 찰나, 최셰프가 반짝이는 눈으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셰프, 페르난도의 주방은 어떻습니까?
―페르난도 성격은요? 실물은 어때요? 아니, 오늘은 어떤 요리를 만드셨나요?
기대가 가득 담긴 두 쌍의 눈.
떠나기 전에 두 사람이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스타주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달라고.
두 사람 모두, 간접적으로나마 페르난도의 주방을 경험하고 싶은 거다.
한길은 약속대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알려주었다. 재료 손질만 했기 때문에 별로 할 말도 없었지만.
“… 실습 기간 내내 재료 손질만 시킬까 봐 조금 걱정이긴 합니다.”
―아까 총 7 파트가 있다고 하셨죠?
“네.”
―내일은 파트장마다 보조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스타주가 35명이나 된다면, 파트마다 적어도 한두 명씩은 보조를 붙일 겁니다. 뽑히지 못한 사람만 중앙에서 잡일을 하겠죠.
“그렇군요.”
―페르난도의 조리법은 꽤 복잡하니, 오픈 사흘 전에는 자리를 확정하지 않을까요? 시간이 얼마 없군요. 앞으로 2-3일간은 절대, 그 어떤 실수도 하시면 안 됩니다.
최셰프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고, 옆에서 소희도 거들었다.
―제가 듣기로 페르난도는 시즌마다 ‘올해는 100개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 거다’ 발표하고 시작한다더라고요. 초반에 목표 수치를 발표하고, 영업하면서 신메뉴를 추가한대요.
“반년 동안 100개의 신메뉴를 만든다고요?”
―100개는 그냥 예시고, 120개일 때도 있고 더 만들 때도 있고 그런가 봐요.
“그렇군요.”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신메뉴 개발 부서로 가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만약에 그런 부서가 없다면 그나마 스타터 스테이션이 메뉴 개발을 많이 할 것 같은데…
두 명의 원격 코치를 둔 기분.
세 명이 머리를 맞대며 전략을 짜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에 있었던 페르난도의 3문 3답 이야기를 하자,
―와! 역시 셰프! 첫인상 제대로 남겼네요!
―…
환호하는 소희와 달리, 최셰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셰프, 혹시 한국에 있다는 지인은…
“아, 그 얘기를 깜빡할 뻔했네요. 나물은 최대한 종류별로 넉넉하게, 들기름도, 도롭도 가능하다면 부탁드립니다. 특급 배송으로 한다면 며칠이 걸릴까요?”
―… 알아… 보겠…습니다.
“혹시 인터넷에 문제가 있습니까?”
―… 아니…요.
“그러면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최셰프는 힘없이 웃으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행크, 일찍 와 있었네?”
타이밍 좋게 룸메이트인 크리스토프가 들어왔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왔거든. 매튜는?”
“탈의실에서 잠들어 있던데? 깨워도 못 일어나길래 그냥 두고 왔어. 왜, 매튜한테 볼일 있어?”
“아니.”
볼일이 있는 건 크리스토프의 쪽이었다.
크리스토프는 분명 노마 출신.
노마는 세계 랭킹 1위에 네 번이나 올라간 명문 중의 명문 레스토랑이다.
자격은 충분하다.
#
“얘는 왜 여기에 있어?”
다음날,
주방에서 크리스토프와 마주친 라엘라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길은 크리스토프에게도 라엘라와 비슷한 거래를 제안했고, 크리스토프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너무 흔쾌히 받아들이는 바람에 조건도 하나 더 붙였다. 수산시장에 가는 라이드를 해달라고. 냄새가 많이 나는 해산물을 싣고 택시를 타기에는 미안했던 까닭이었다.
참치 등뼈는 판매용 부위가 아니었지만, 상인에게 부탁하여 적당량을 얻어오고 배운 방법으로 골수를 수확했다.
참치 뱃살은 최대한 지방이 없어 보이는 부위를 골라서 도톰하게 편 썰었다.
그 외에는 단순 조립.
접시 위에 액체를 조금 뿌리고, 투명한 골수 젤리를 한 스푼. 그 위에 참치 뱃살을 올리고, 노란 소스와 어두운 소스를 올린다.
“한 사람당 한 접시씩. 알지?”
그리고 드디어 시식의 시간.
한길은 물론, 라엘라와 크리스토프까지. 세 명은 서둘러 달려드는 대신, 시간을 들여 요리를 찬찬히 관찰했다.
비록 모조품이긴 하지만, 페르난도의 요리.
허겁지겁 먹을 순 없으니까.
우선 외관을 살피고, 향을 맡아보고, 숟가락에 소스를 조금씩 묻혀 각 요소를 맛보았다.
투명한 액체는 다시 국물이었고, 어두운 소스는 간장과 와사비 소스였다. 평소에 먹는 다시, 간장, 와사비와는 맛이 살짝 다르긴 했지만.
물로 입을 한번 헹군 후에는, 평범하게 손님이 먹듯이 맛을 봤다.
참치의 맛은 평범했다. 최대한 기름기가 없어 보이는 뱃살 부위를 골라왔기에 그렇게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골수 한 스푼을 곁들여서 먹으니, 맛이 변했다.
뒤늦게 차오르는 기름진 맛.
아니, 이건 기름진 것도 아니었다.
바다 향이 희미하게 퍼졌고, 무언가 미끌미끌하면서도 입안이 꽉 차오르는 감각.
골수의 질감이 더해지니, 밍밍하던 참치 뱃살의 맛이 진하고 풍부해졌다.
“우와!”
“흐음…”
함께 시식을 한 두 사람의 반응은 갈렸다.
크리스토프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반면, 라엘라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진짜 짜릿한데? 이건… 와, 역시 페르난도는 천재야!”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행크, 너는 어때?”
“신기하네.”
이건 페르난도가 재해석한 일식 요리였다.
일식집에서 나올법한 참치 뱃살과 비슷하다. 어딘가 익숙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달랐다.
“모자이크 같네.”
“모자이크?”
“붓으로 그린 그림을 모자이크로 만든 느낌? 타일 하나하나에 각자의 색이 살아있고 그걸 끼워 맞췄다고 해야 하나? 멀리서 보면 같은 요리인데 가까이서 보면 달라서.”
“그것도 말이 되네. 페르난도는 디컨스트럭션의 아버지니까.”
조금 생소한 단어가 나왔지만, 자동 번역 기능 덕분에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디컨스트럭션 (deconstruction).
탈구축이라는 뜻이다.
요리를 요소별로 분해하고, 각 요소의 정수를 추출하고, 그걸 다시 재조립한 느낌.
‘이게 페르난도의 요리인가?’
즉각적으로 미각을 적시는 맛이 아니다. 이게 대체 뭔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맛. 확실히, 한길이 지금까지 접한 요리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더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벌써 9시네, 빨리 설거지해야겠다.”
“행크, 오늘도 같이 타고 가도 돼? 택시비 반값은 지불할게.”
#
레스토랑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반.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오늘도 당근 손질로 아침을 열고, 그 후로는 양파와 마늘을 손질했다.
“시간이 많이 줄었군요. 내일은 5분만 더 줄이도록 합시다.”
“오이도!”
“오이도!”
“다음은 코코넛입니다. 코코넛 주스와 코코넛 밀크를 만들 겁니다. 이것도 시범을 보여드리죠.”
“오이도!”
“오이도!”
실습생들은 고작 하루 만에 이 주방에 적응하고 있었다. 어제보다 안토니오의 잔소리가 확연히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모두가 재료 손질만 했다.
손이 조금 많이 가는 재료라는 게 달랐지만.
코코넛을 일일이 손으로 열고, 액체와 과육을 분리. 코코넛 주스는 이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5번 체에 내리고 냉장고에 보관한다.
과육은 따로 믹서기에 갈아서 채에 내려 코코넛 밀크로 만들고 콜드 스테이션에 전달한다.
“아직 반도 못 했군요. 점심 식사 후에 나머지를 합니다.”
“오이도.”
“오이도.”
코코넛은 손이 많이 가는 것에 비해 수확량이 많지 않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실습생들은 준비된 물량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쉴 겨를은 없었다.
안토니오가 노란 장미가 담긴 상자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아티초크 로즈’를 만들 때 사용되는 장미입니다. 일반적인 장미는 위장에 좋지 않다고 하여 일부러 에콰도르에서만 재배되는 소화가 잘되는 유기농 장미를 구해온 겁니다. 재료를 아껴주세요.”
“오이도.”
“오이도.”
이번에는 약간의 조리가 들어간 재료 손질이었다.
줄기에서 장미 꽃잎을 한 장씩 분리하고, 끓는 물에 꽃잎을 데친다. 살짝 데친 꽃잎은 건져내서 바로 얼음물에 넣는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해야 합니다. 꼭 세 번을 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질겨서 못 먹으니까요.”
“오이도.”
“오이도.”
세 번 데친 장미 잎이 마지막 얼음 목욕을 마쳤을 때, 안토니오가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꽃잎을 꺼내서 말려야 합니다. 주름이 하나도 없게 펼쳐야 하는데, 가장자리는 살짝 말려 올라가 있어야 합니다. 이 꽃잎은 아티초크 모양으로 담을 거니까요. 알겠습니까?”
“오이도.”
“오이도.”
차가운 얼음물에서 꽃잎을 건져서 빨래 널 듯이 망 위에 올린다. 그리고 모양을 예쁘게 잡아주고 압력 조리기에 넣어준다.
‘정말 손이 많이 가네.’
커다란 기술을 필요로 하진 않았지만, 무료로 부려먹을 수 있는 노예 실습생들이 있기에 만들 수 있는 요리다. 들어가는 품을 생각하면, 일반 레스토랑에서는 시도도 못 할 거다.
“꽃잎은 스타터 2로 보냅니다.”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네, 행크. 부탁드립니다.”
“오이도.”
스타터 2 스테이션에는, 어제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 아마도 이 사람이 파트장.
“어제 뒷정리는 잘해 줬나?”
“오이도.”
“오늘도 정리 도와주는 건가?”
“필요하시다면요.”
남자는 여전히 한길을 재밌어하는 태도였다. 스타터 스테이션의 파트장이 좋게 봐준다면, 나쁘지 않다. 적어도 중앙 조리대의 노예 공장을 벗어나게 되는 거니까.
“이번 요리도 한 번만 봐도 되겠습니까?”
“이번 건 별것 없어. 아티초크 소스랑 로즈 오일을 뿌리는 것뿐이거든. 한 접시만 보고 가.”
“오이도.”
남자는 장미 꽃잎을 하나씩 겹쳐서 동그란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소스와 오일을 뿌렸다.
‘이 요리 이름이 아티초크 로즈라고 했었나?’
아티초크는 원래 만개한 장미처럼 생긴 채소다. 그런데 이 요리는, 장미 꽃잎을 이용해서 아티초크처럼 모양을 잡고 있었다.
장미처럼 생긴 아티초크를 장미로 만든 요리.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은 요리로, 나름의 위트가 도드라졌다.
‘이건 시식은 힘들겠네.’
저 장미를 구해와야 하고, 압력조리기도 필요하다.
“하나 다 봤으니까 자리로 돌아가.”
“오이도.”
다시 중앙 작업대로 걸어가는 동안, 한길은 주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제 최셰프에게 들은 대로 주방의 인원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역시, 파트장마다 보조는 없었다.
그렇다면 보조로 갈 수 있는 자리는 최소 7개, 최대 14개.
그런데 그때, 갑자기 카트를 끌고 주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리복이 아닌, 하얀 가운을 걸친 사람들이.
‘저 사람들도 상임 직원인가? 어제도 있었나?’
기억에는 없지만, 어제는 한길도 눈앞의 작업에만 몰두하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들고 온 카트에 요리를 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놓치고 있던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지금, 레스토랑은 영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실습생들은 매일같이 재료 손질을 하고 있고, 파트장들은 요리를 만들고 있다.
그 요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가끔 파트장들과 안토니오가 시식하는 게 보이긴 했지만, 나머지는 저 하얀 가운의 사람들이 들고 간 거다.
어디로?
중앙 작업대로 돌아오니, 실습생들은 새로이 배달온 코코넛을 손질하고 있었다. 한편, 하얀 가운의 남자들은 카트를 끌고 주방을 나가고 있었다.
“뭐죠, 행크?”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오이도.”
이곳에서는 화장실을 갈 때도 안토니오에게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방을 벗어난 한길은, 복도로 나오자마자 파란 앞치마를 벗어서 접은 후,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파란 앞치마는 실습생의 표시.
이것만 없다면, 멀리서 누가 한길을 발견해도 상임 직원으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한길은 적당히 거리를 두며 하얀 가운의 사람들을 미행하듯이 따라갔다.
‘들키면?’
만에 하나 들키게 되면, 길을 잃었다고 잡아뗄 생각이었다. 아직 출근 이틀째이니, 건물 안에서 길을 잃었다고 해도 믿어줄 거다.
안전하게 행동하려면 그냥 얌전히 자리에 있는 게 좋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의 사람들은, 레스토랑 홀을 지나쳐 기나긴 복도를 걸어갔다.
이곳은 한길도 아는 장소다.
처음 도착했을 때, 청소했던 곳이니까.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통유리로 된 방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한길이 있는 자리에서도 내부는 보였다.
각종 특이한 장비와 비커 등이 있는 방.
레스토랑보다는 연구실이나 실험실에 가까웠다.
그곳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요리를 시식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도구를 들고 와 요리를 분해하고 시험관 안에 넣고 있었고.
‘실험인가?’
그러고 보니, 페르난도는 요리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었다. 이번에 더 불독을 재오픈할 때는, 일반 레스토랑이 아니라 전시장 겸 연구소 겸 레스토랑이 될 거라고 했었고.
궁금하긴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한길은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는 안토니오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 걸렸군요, 행크.”
“죄송합니다. 배가 조금 아파서…”
“그런 건 자리를 비우기 전에 미리 말하도록 합니다.”
“오이도.”
안토니오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한길에게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주변을 보니, 다른 실습생들도 고개를 숙이며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오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슬슬 각자의 파트를 정하려고 하는데, 희망 파트를 적으면 결정에 참고하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참고만 할 뿐이지, 그곳에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이도.”
한길은 종이를 받고 중앙 조리대로 향했다.
[이름] [희망 파트]1 콜드 스테이션
2 스타터 1
3 스타터 2
….
최셰프가 말해준 파트 배정이, 조금 더 빨리 이뤄지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지만, 예상치 못한 것도 있었다.
‘이건 뭐지?’
이 주방에는 총 7개의 스테이션이 있다.
하지만 종이에는, 총 9개의 선택지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