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1화(21/325)
< 21. 혼자가 아닌 둘이서 >
“언니, 이거 봤어요?”
“뭔데?”
“카키 굴욕 영상! 요즘 완전 핫한데, 몰라요?”
핸드폰 속에는 카키의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한 너튜브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한껏 멋을 부린 카키가 일반인 틈에 섞여 줄을 서며 기다리는 모습. 이어지는 “얼마면 돼“ 발언과 거절. 그리고 분노의 버거 먹방까지.
“크크, 재밌네.”
“그쵸?”
영상을 보며 키득거리는 두 명의 여성은 pbs 방송국에 근무하는 방송작가들.
명절에 방영 예정인 파일럿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모인 제작진이었다.
“뭘 그리 재밌게 봐?”
“아, 언니! 이거 요즘 유행하는 카키 굴욕 영상! 못 보셨어요?”
“카키 굴욕영상?”
작가들은 뒤늦게 들어온 메인 작가, 이채은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입을 있는 대로 쩍 벌리면서 버거를 흡입하는 카키의 모습을 보고 채은은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얘가 이렇게 먹는 애였나?”
“아, 언니는 모르시는구나. 요즘 짤도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런 거 있으면 좀 보내줘.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트렌드가 뭔지도 모르겠다.”
“흐흐,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래. 그리고 섭외는 어떻게 됐어?”
곧바로 이어진 질문에 두 작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말도 마요. 오늘만 스무 군데 전화 돌렸는데 다 까인 것 같아요.”
“그래?”
“레귤러 될 가능성 있냐고 묻더니 스케줄 확인해야 한다나 뭐라나. 파일럿이라 싫은 거죠.”
파일럿 프로그램은 짧게는 한두 편, 길게는 서너 편 방송된다. 그리고 시청자 반응이 좋으면 고정 프로그램으로 정식 출범한다.
연예인들은 불안정한 파일럿 보다, 오랫동안 출연이 보장되는 고정 프로, 즉 레귤러 프로그램을 선호했다.
“흠…. 섭외도 일이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이번 주까지 리스트업 더 해보자.”
“부장님이 저번에 올린 리스트는 싫으시대요? 그쪽은 다 섭외된 사람들인데….”
“인지도가 부족하고 캐미가 별로일 것 같단다, 에휴.”
“인지도는 출연료랑 비례하는데….”
“말도 마라. 왜 이런 애들밖에 없냐면서 나용석이랑 비교하시더라.”
“헐랭.”
“제작비는 십 분의 일인데 퀄리티는 강호식당이나 윤여식당을 원해요. 미치겠네. 어쨌든, 금요일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으니까 리스트업 더 해보자.”
채은의 시선이 막내 작가가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향했다.
“일단 카키도 출연료 얼만지 한번 알아보고.”
#
“빈 가게가 많아졌네?”
브레이크타임을 틈타 이태원을 걸어 다니던 한길은, 생각보다 한산한 거리에 놀랐다.
지난 2년간 이태원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가게 안에만 있어 거리의 상황은 알지 못했다.
‘임대 문의’가 붙어있는 점포들.
유명 연예인이 운영하던 식당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던 활기 넘치던 이태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상권.
하지만……
‘그래도 이태원이 좋은데.’
한길은 한스키친 2호점을 낼 계획이었다.
장소 이전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다간 지금 위치를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놓칠 위험이 있었다.
아직 두 개의 가게를 운영하는 건 솔직히 부담되었지만, 조금 욕심을 내서 도전하고 싶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보고 싶었으니까.
지금의 한스키친에서는 신메뉴를 선보일 수 없었다.
재료를 보관할 장소도 없을뿐더러,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 위한 주방 시설도 부족했다.
게다가, 찾아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버거와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오는 손님들.
다른 메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인근에 새로운 가게를 내고, 오가며 양쪽을 다 운영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고.
‘이번에는 준비를 제대로 해야지.’
한스키친을 열 때는 너무 섣불리 움직였다.
전국적으로 창업 열풍이 불고 있었고, 그 열기에 휩쓸린 부분도 없잖았다.
그리고……
그때는 음식이 맛있으면 어떻게든 성공할 거라 생각했었다.
안일했다.
지난 2년간. 매달,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입을 보면서 느꼈던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차라리 한 푼도 못 벌었으면 바로 장사를 접고 다른 식당에 일자리를 알아봤을 거다.
하지만 근근이 살아갈 정도의 수입이 생기니, 오히려 포기하기가 더 힘들었다.
간신히 생활만 유지하면서, 손님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 살아왔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제대로 준비된 상태에서 도전할 생각이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네.’
새로운 가게 위치도 알아봐야 하고.
자금도 모아야 하고.
한스키친의 주방에서 일할 직원도 구해야 한다.
새 가게의 메뉴도 개발해야 하고.
그러려면 재료도 구해야 하고, 포인트도 모아둬서 나쁠 것 없다.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퀘스트 #4 ? 3,000명의 선택!>.
목표: 제한 시간 내에 3,000인분의 요리를 판매하세요.
제한 시간: 96시간
보상: 30,000 고르메 포인트
실패 시: 상점에 등록된 아이템 10개를 회수합니다.
+
이번에는 퀘스트 기간이 더 길었지만, 해야 할 일에 비해서는 짧은 시간이었다.
“마르쿠스! 굿모닝!”
식당 홀로 나가자, 역시나 루시아가 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아, 젓가락질 연습은 했어요?”
“뭔 소리야, 아침부터?”
“밤에 혼자 연습한다면서요.”
“아, 그게…..”
눈알을 굴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니 대충 답이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실력을 확인하기로 했다.
한길은 테이블 위에 병아리콩 몇 개를 올려놓고 나무젓가락을 루시아에게 건넸다.
루시아는 마지못해 젓가락을 집어 들었지만, 어린아이들이 하듯 두 개의 나무 막대기를 x자로 꼬면서 잡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
“연습하면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지렛대처럼 손가락을 이렇게…..”
한길이 시범을 보여주자, 루시아는 마법이라도 본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시도 해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하루 만에는 무리인 것 같은데?”
“그건 그렇네요.”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아니, 한 달을 줘도 무리.
한길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로마의 퀘스트는 요리를 많이 팔수록 포인트를 많이 벌 수 있다.
문제는, 지금 판매하는 튀김과 파전 모두 한길이 혼자서, 그것도 즉석에서 조리하는 메뉴라는 것.
그래서 남는 인력인 루시아를 활용하고 싶었으나……
파전은 만들 때마다 태워 먹었고, 튀김은 젓가락질도 못 하니 건져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국자를 써서라도 튀김을 건져낼까? 아니, 그러면 기름기를 털어낼 수 없는데……“
한길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틀었다. 즉석조리가 아닌, 이미 조리된 요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조리된 음식을 서빙하는 것쯤은 루시아도 가능할 테니.
‘그러면 뭘 만들지?’
판매량을 생각하면, 로마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드는 게 유리하다.
로마 시민들이 가장 많이 먹는 건 빵이었지만, 한길에게 제빵은 무리였다. 오븐도 없을뿐더러, 로마에는 제빵사들이 너무 많아 경쟁력도 떨어졌다.
에우리사케스만큼의 명장은 아니지만, 동네 제빵사들 모두 한길보다는 경험이 많았다.
빵 다음으로 많이 먹는 주식은 죽.
렌틸콩이나 병아리콩 등을 삶은 콩죽으로, 펄스(puls)라고 불렸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든든하긴 했지만, 맛은 밋밋했다. 비싼 향신료를 넣을 수 없으니, 그야말로 배만 채우기 위한 용도였다.
‘죽처럼 매일 먹을 수 있는 요리. 저렴하면서 든든하고, 새로운 맛까지 갖추면 더 좋고……’
한길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일단은 장부터 봐 올까요?”
#
“뭘 만들게? 이런 것도 먹을 수 있어?”
평소와 조금 다른 재료를 사 오자, 루시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한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번에 구매한 재료는 소뼈.
든든하면서 오래 끓일수록 맛이 진해지는 요리. 사골탕을 만들 계획이었다.
소뼈는 생각보다 구하기 힘들었다.
비용을 떠나서 소고기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돼지고기나 양고기, 염소 고기 등은 동네 정육점에도 있었지만, 로마 사람들은 소고기를 자주 먹지 않았다.
소는 밭을 갈 때 유용한 짐승이기도 했고.
우유나 치즈를 얻을 수 있고.
잡아먹기에는 아까워서 식용으로는 잘 판매하지 않는 거다.
하지만 신전에서는 제물로 소를 바치기도 했다.
루시아가 알려준 대로, 신전 인근의 정육점에 가보니 헐값에 뼈를 구해올 수 있었다.
‘색이 좋네.’
정육점에서 도끼로 찍어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 뼈는, 선홍빛과 하얀 얼룩이 선명하게 보였다.
스펀지같이 생긴 하얀 부분이 소의 골수.
골수는 지방이 많아 부드럽고 기름진 향을 낼 수 있다.
‘로마인 입맛에도 맞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서양인들은 입맛에는 수프가 더 잘 맞을 것 같았지만, 수프를 만들려면 우유를 사용해야 한다.
우유는 장시간 끓이면 몽글몽글하게 뭉치고, 또 잘못하면 산미가 올라와 맛을 해친다.
요리 초보인 루시아에게 맡기기에는 부담되는 메뉴다.
반면, 사골국은 오래 끓일수록 진하면서 구수한 맛이 난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들긴 하지만, 따로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건 비교적 쉬우니까 잘 봐둬요.”
“응!”
“진짜로요. 요리 배운다면서요.”
“젓가락질은 요리가 아니잖아? 요리는 제대로 배운다고.”
루시아는 소매까지 걷으면서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한길은 일단 펄펄 끓는 물에 소뼈를 넣고 초벌로 한번 삶아냈다. 뼈 안에 남아있는 혈액과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혈액이 남아있으면 비릿한 맛이 나니까.
삶아낸 소뼈는 반으로 나누었다.
혹시나 외국인들 입맛에 안 맞을 경우를 대비해 두 종류의 사골국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나는 한국식 사골, 그리고 하나는 서양식 사골.
한국식 사골은 소뼈만을 오랜 시간, 뭉근한 불에 끓여서 담백한 국물을 낸다.
반면, 서양식 사골은 뼈를 한번 구워서 사용해 기름지다.
치이이이!
그릴 위에 소뼈를 올리고 중불에서 서서히, 굽기 시작했다. 태우지 않게 조심하면서.
타기 직전, 맛깔난 갈색으로 구우면 단백질과 당분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캐러멜화된 것처럼 달달하면서도 고소하고, 깊은 맛을 줄 수 있다.
가장자리에 살짝 크러스트가 생길 때까지 굽자, 주방은 대창을 구울 때 나는 군침도는 기름진 향으로 가득 채워졌다.
냄새뿐 아니라, 실제로 골수 부분은 잘 구워진 대창처럼 반들반들 윤이 났다.
“냄비는 준비 됐죠?”
“당연하지!”
루시아는 미리 시킨 대로, 거대한 냄비와 참숯 그릴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하나의 냄비에는 하얀 소뼈를, 또 남은 냄비에는 갈색 소뼈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적당히 끓어오르자, 서양식 사골국에는 셀러리와 양파, 순무를 썰어 넣었다.
한국식 사골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오로지 담백함 하나로 승부할 예정이니까.
“자, 이제부터 잘 봐요. 이게 루시아가 할 일이니까.”
“내 일?”
“여기 표면에 떠 있는 기름 보이죠? 이걸 국자로 살살 걷어내 주세요. 불이 너무 세면 안 되니까 잘 봐주시고요.”
“빨리 끓으면 더 좋지 않아?”
“그러면 제일 맛있는 골수가 빠져 나와버리고, 기름 걷어내면서 다 버리게 되거든요.”
“흠….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맡겨둬!”
루시아는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종일 장사를 하면서 루시아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주방을 드나들었다.
횟수로만 보면, 과연 남아있는 국물이 있을까 걱정될 정도로.
그리고 저녁이 될 때가 되자, 사골은 완성이 되었다.
오랜 시간 고아낸 국물은, 투명하면서도 맑은 우윳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구수하면서도 은은한 단 향이 났다.
“한 그릇 먹어볼까요?”
한길의 말에 루시아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무로 만든 국그릇을 들고 왔다.
뽀얀 국물은 폭포처럼 졸졸 흘러 그릇을 가득 채웠다.
루시아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그릇이 채워지기가 무섭게 입을 갔다댔다.
“아, 뜨거워!”
“당연하죠, 종일 끓이고 있었는데.”
하지만 루시아는 포기하지 않고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국을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우와!”
“맛이 괜찮나요?”
“괜찮기는!”
오랜 시간 끓인 소뼈는, 깊숙이 숨겨둔 맛을 아낌없이 육수에 양보했다.
놀랄 만큼 진하고 농후한 맛.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액체가 목구멍 안으로 부드럽게, 스르륵 흘러갔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뜨끈뜨끈하게 채워주었다.
담백하면서도 든든하고, 정갈하면서도 기름졌다.
정신없이 후루륵 먹다 보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왔다.
‘다행히 잘 먹네.’
한길은 루시아가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을 본 후, 맛을 보았다.
잡내 하나 없이, 텁텁하지 않으면서 속이 개운해지는 맛이었다. 하지만……
‘밥 한 숟가락 넣고 말아먹으면 딱인데!’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밥.
로마에는 쌀이 없었다.
하지만 설렁탕에는 향이 강한 렌틸콩과 병아리콩이 어울리지 않았다.
국만 먹으면 먹는 순간은 든든해도, 다 먹고 나면 속이 허전할 것 같기도 하고.
쌀밥 대신 넣을 만한 게……
“루시아, 여기 혹시 국수도 팔아요?”
“국수? 그게 뭐야?”
루시아는 모르는 게 있으면 되묻곤 했다.
그렇다면 아마 아직 국수는 없다는 뜻.
직접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얀 밀가루는 제법 비싼 식재료였다.
소량으로 사용하면 모를까, 밀가루만으로 국수를 만들면 저렴하게 판매할 수 없다.
그러면 판매량이 줄어들 테고.
밀가루를 소량만 사용하면서 든든함을 줄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을까……
한길은 다시 한번 골똘히 생각한 후에 루시아에게 질문했다.
“루시아, 혹시 만두라는 것도 알아요?”
< 21. 혼자가 아닌 둘이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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