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1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14화(214/325)
214. 족집게 과외
하비에르의 사무실은 가정집 수준의 조리시설만 갖춘 파코의 주방과 달리, 전문적인 레스토랑 주방 같았다. 어느 모로 보나,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주방이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렸다.
‘바쁜가 보네.’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그 누구도 한길이 들어온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길은 주방을 가로질러 하비에르 앞으로 다가갔다.
“실습생 행크입니다.”
“파코의 보조인가?”
“네.”
하비에르는 한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워크인에서 수박과 피코이드 글라시알을 갖고 와서 손질하도록. 수박은 브뤼누아즈, 피코이드는 시포나드로.”
“오이도.”
하비에르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바로 지시를 내렸다. 그 모습이, 용건만 보고 사라지던 페르난도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한길은 사무실을 벗어나 워크인 냉장고가 있는 메인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가는 도중, 남몰래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하비에르의 지시사항 중 생소한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박은 브뤼누아즈로, 피코이드는 쉬포나드로.
브뤼누아즈(brunoise)는 알고 있다.
매일 아침, 당근을 손질할 때 들은 단어였으니까. 03 x 03 x 03 cm 규격의 주사위 모양으로 재료를 손질하는 것을 뜻했다.
시포나드 역시 그런 조리용어일 것으로 예상했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쉬포나드(chiffonade): 이파리 채소나 허브를 가느다랗고 긴 리본처럼 써는 방식」
일전에도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조리용어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었다.
‘다 외워두는 게 좋겠네.’
하비에르는 안토니오처럼 일일이 시범을 보여주지 않을 듯했다. 이 정도는 외워두는 게 좋을 터. 한길은 “요리 기초 – 서양 조리용어”라는 제목의 포스트에 나와 있는 용어들을 최대한 빨리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이번에도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수박과 피코이드 손질을 마치자, 하비에르의 입에서 익숙한 단어들이 연달아 나왔기 때문이다.
“래디시는 쥴리엔느으로, 당근은 바토네로.”
“오이도.”
“감자는 샤토로.”
“오이도.”
쥴리엔느(julienne)는 채소를 0.2 x 0.2 x 0.7 cm 규격으로 가늘고 길게 써는 방식. 바토네는(batonnet) 04 x 04 x 4cm 규격의 막대기 모양. 샤토(chateau)는 4~6cm 크기의 오크통처럼 생긴 타원형.
‘일부러 이러는 건가?’
아까 읽은 포스트 내용을 토대로 실기시험을 내는 듯한 지시가 이어졌고, 벼락치기 공부가 빛을 발했다.
“로즈 워터로 얼음을 만들어놔.”
“오이도.”
“동결건조된 시소를 가져와서 가루로 만들도록.”
“오이도.”
하나의 작업을 마치면 하비에르가 다가와 무뚝뚝한 얼굴로 확인했고, 바로 다음 작업 명령을 내렸다. 쉴 틈 없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메사 센트랄 같은 건가?’
한길에게 주어진 업무는 재료 손질, 블렌더를 이용해 가루 만들기, 얼음 얼리기 등등. 메인 주방으로 치면, 중앙 작업대에서 할 법한 단순 작업이었다.
한편, 다른 실습생들은 조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소스를 조리하는 중이었고, 라엘라는 체리모야로 커스터드를 만들어 갖은 모양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소스 질감이 부족해. 버터를 조금 더 몬테해.”
“오이도.”
“이것 말고 퀴넬로 담아.”
“오이도.”
하비에르가 다른 실습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한길을 대하는 태도와 별다르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용건만 말했다.
“모두 완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시받은 시소 가루를 보여주자, 하비에르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베샤멜은 만들 줄 아나?”
“네.”
“저쪽에 비어있는 스테이션을 사용하도록.”
“오이도.”
베샤멜은 루(roux)에 우유를 더해서 만드는 화이트소스. 양식의 기본소스 중 하나이며, 크로크 무슈, 라자냐, 그라탕 등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이 주방에 들어온 지 두 시간 만에 처음으로 주어진 조리 업무였다.
‘실수하면 안 돼.’
한길은 다소 긴장한 상태로 스테이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 업무의 결과에 따라 조리 업무로 승격될지, 단순 업무를 계속할지 결정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유는 스칼딩을 하는 게 좋겠지?’
베샤멜에 사용하는 우유는 스칼딩(scalding)된 우유를 사용하기로 했다.
스칼딩 우유는 우유에 열을 가해 약 81도로 데우는 작업. 냄비 가장자리에 비눗방울 같은 거품이 생겨나는 시점까지 열을 가하면 된다.
베샤멜 소스는 일반 우유로도 만들 수 있지만, 스칼딩된 우유를 사용하는 편이 덩어리가 덜 생기고 밀가루 특유의 향이 빨리 사라진다고 한다.
페르난도의 주방은, 손이 많이 가더라도 맛을 향상하는 조리법을 사용했다. 이런 부분도 신경을 쓰는 게 좋을 터였다.
한길은 작은 소스 팬 안에 우유를 넣고 불에 올린 후, 우유가 데워지는 동안 화이트 루를 만들었다.
루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별도의 소스 팬 안에 버터를 넣고, 버터가 녹으면 밀가루를 투입하고 저어주면 된다.
약 5분간 조리하면 화이트 루. 15분가량 조리하면 캐러멜색을 띄는 블론드 루. 30분 정도 조리하면 짙은 갈색의 브라운 루다.
색이 짙어질수록 고소한 향이 더해지고 풍미가 강해지지만, 반대로 걸쭉한 질감은 약해진다. 화이트소스에 들어가는 루는 소스의 질감을 위해 넣는 만큼, 화이트 루를 사용해야 한다.
루가 준비되어 우유를 넣으려는 찰나,
“양파를 안 넣었네. 우유를 스칼딩할 때는 양파 피케(onion pique)를 넣도록.”
등 뒤에서 하비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길이 만들어온 베샤멜 소스에는 양파가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양파나 마늘이 들어가는 레시피를 보긴 했으니 양파를 추가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하비에르가 말한 양파가 일반 양파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비에르는 가만히 서서 한길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몰래 핸드폰을 꺼내 검색할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지만, 양파 피케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길의 답변에 하비에르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한길의 옆 스테이션에 있는 크리스토프에게 지시를 내렸다.
“크리스토프, 행크에게 양파 피케 하나 가져다주도록.”
“오이도.”
잠시 후, 크리스토프가 가져다준 양파는 처음 보는 모양새였다.
재료는 양파, 월계수 잎, 그리고 정향. 정향을 압정처럼 사용하여 월계수 잎을 양파에 고정하는 게 신기했다.
‘건져낼 때 편하게 하려는 거구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러면 우유 안에 동동 떠다니는 월계수 잎과 정향을 일일이 찾아서 건져내는 대신, 눈에 띄는 양파만 찾아 꺼내면 될 테니까.
크리스토프가 건네준 양파 피케를 우유에 넣어 다시 데우는 사이, 루의 색이 조금 변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팬을 꺼내 처음부터 다시 루를 만들고, 양파의 풍미를 더한 우유를 조금씩 저어 넣으며 소스를 만들었다. 소금, 후추, 너트맥으로 조금씩 간을 하면 완성.
“식혀두었다가 이걸로 거품을 만들도록. 사이펀을 사용해.”
“오이도.”
한길이 만든 소스를 맛본 하비에르가 다음 지시를 내렸다. 다시 만들라는 말은 없었으니 맛은 합격인듯했지만, 미션에는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워크인에 가서 칼라마타로 퓌레로 만들도록.”
“오이도.”
“페이스트리 섹션에 가서 퍼프 페이스트리 하나 얻어오고.”
“오이도.”
“페르난도의 사무실에 가서 시식 준비 완료되었다고 전달해.”
“오이도.”
아니나 다를까, 메뉴 시식을 할 때까지 한길에게 다시 조리 업무가 주어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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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가?”
“그렇습니다.”
“바로 시작하지.”
주방에 들어온 페르난도는, 작업대 위에 세팅된 요리를 보고 바로 시식을 시작했다. 전부 오늘 아침에 선보인 10개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신메뉴 후보들이었다.
“이건 모양을 조금 더 작게 만들어야겠군. 금방 질릴 것 같아.”
“오이도.”
“질감이 마음에 안 드네. 소스를 조금 더 묵직하게 해봐도 좋겠군.”
“오이도.”
“이건 견과 베이스를 아몬드 말고 피스타치오로 한번 해보지.”
페르난도는 한입 맛을 본 후, 바로 수정사항을 말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하비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이도’를 반복했고, 기록 업무를 맡은 앤서니는 열심히 페르난도가 말한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수정 사항은 요리마다 달랐다. 외형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특정 재료를 빼거나 대체하라는 지시를 내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메뉴는 달랐다.
“이건 영 아니군. 처음부터 다시.”
페르난도가 인상을 쓰며 보고 있는 것은 ‘얼음 샐러드.’
금색 그릇 안에 깨진 얼음이 들어가 있고, 길게 썬 채소와 주사위 모양의 수박, 발사믹 구슬, 보라색 꽃이 소담하게 담겨있었다.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페르난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너무 노골적이야. 떠벌린다고 해야 하나, 위트는 없고 과시하는 느낌인데.”
잘못된 요리는 아니었다. 화려한 감이 없잖았지만, 여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법한 비주얼이었으니까. 어딘가 노셰프의 요리가 생각나기도 했고.
하지만 페르난도가 말한 ‘위트’는 확실히 없었다. 참치의 골수를 이용해 기름진 맛을 더하거나, 시간제한 내에 먹지 않으면 사라지는 라비올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요리였다.
“이게 끝인가?”
“아뇨. ‘얼음 샐러드’ 얘기가 나온 김에 저번 달에 보류했었던 메뉴를 다시 한번 다듬어봤습니다. 샐러드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한번 맛보시겠습니까.”
“들고 와 봐.”
페르난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엘라가 새로운 요리를 들고 나타났다. 아까 시식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사라졌다 했는데, 이 요리를 플레이팅하고 있었나 보다.
“이건 괜찮네.”
새로운 요리를 보자마자 페르난도가 활짝 웃었다.
이번 요리는 하얀 눈 속에 피어난 새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복하게 쌓여 있는 얼음 위에 짙은 갈색의 흙이 ㅤㅎㅜㅌ뿌려져 있었고, 그 흙 사이로 새싹 채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음은 레몬 소르베, 흙은 감초와 커피 스펀지, 안에는 요거트 젤라틴을 더했습니다.”
하비에르의 설명에 페르난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맛을 보았다.
“다 좋은데 설탕을 조금 뿌려도 좋을 것 같군. 그냥 설탕 말고 조금 향을 입힌 거로.”
“장미 설탕은 어떨까요.”
“좋아. 딱 그 정도만 수정하고 바로 메뉴에 올리도록 하지.”
“오이도.”
“다음은 이름인데….”
페르난도는 턱을 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시식을 할 때보다, 오히려 이름 짓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느낌이었다.
“녹는다? 멜팅? 봄? 아니, 이건 아닌데…”
한참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페르난도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눈을 빛냈다.
“이름은 ‘해동 (thaw)’으로 하지.”
“오이도.”
절묘한 이름이었다.
이름 없는 요리로 봤을 때도 매력이 있었지만, 이름이 주어진 순간 갑자기 요리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듯했다.
「이름이 요리의 완성? 심리학적인 요소가 있는 듯? 이름이 주는 맛이 있다?」
조용히 공책을 꺼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을 필기하는 사이, 페르난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이 올해 크리에이티브 파트에 들어온 실습생들인가?”
“한 명은 파코의 보조입니다.”
“아, 그래. 올해는 그러기로 했지.”
아침에 이미 한번 만난 사이였지만, 페르난도는 마치 모두를 처음 만난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푸근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어 어딘가 낯설었다.
“자네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고 창의적인 일을 맡고 있지. 오늘 통과된 메뉴가 하나뿐이라고 실망하지 말도록. 원래 메뉴가 완성되기까지는 1주일이 걸릴 수도, 1달이 걸릴 수도 있거든. 500번 이상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기록에만 남겨둔 메뉴도 있고.”
페르난도의 말에 하비에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행착오 과정은 더불독에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오이도.”
“오이도.”
“그럼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페르난도는 따뜻한 눈길로 모두를 바라본 후, 다시 평소대로 시간에 쫓기듯이 방을 나갔다. 그리고 페르난도가 퇴장하자마자 하비에르가 엄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페르난도의 말대로 우리가 하는 일은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지. 그래서 가장 뛰어난 실습생만 선별한 거고.”
순간 하비에르의 시선이 한길로 향했다.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이 조금 싸늘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업무를 분담하도록 하지. 앤서니, 오늘의 기록을 아침에 보여준 프로그램에 입력하도록.”
“오이도.”
“크리스토프는 장어 소스, 라엘라는 체리모야 퀴넬, 클레어는 마토 치즈 크림을 수정하도록. 페르난도가 말한 부분은 기억하겠지?”
“오이도.”
마지막으로 하비에르의 시선이 한길에게 향했다.
“행크는 이제부터 파코에게 가야 하나?”
“네.”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그 전에 한마디만 하자면, 기본은 조금 더 배워오도록. 말이 통하지 않으면 작업 속도에 차질이 생기니.”
굳이 하비에르가 말하지 않아도 한길 역시 느끼고 있었다. 생소한 조리 용어가 너무 많아 외국어를 듣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으니까.
“페르난도가 요리계의 피카소라고 불린다는 걸 알고 있나?”
“네.”
“그림을 한 번도 안 그려본 사람들은, 피카소의 추상화를 보고 ‘나도 저 정도는 그리겠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피카소가 다른 그림을 못 그리는 건 아냐.”
“….”
“기본을 다져야 창의도 할 수 있는 거다. 기본 없이 특이한 시도만 하면, 추상화가 아니라 낙서라고 부르는 게 맞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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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코의 사무실로 돌아온 한길은, 내일 시식할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출근하자마자 손질하기 편하게 어느 정도 세팅해 놓는 작업이다.
그 후에는 오늘 시장에서 들은 각 재료의 일정을 정리하여 이번 주와 다음 주에 선보일 재료 목록을 만들어두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비슷하네.’
메뉴 개발 방식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10개의 재료를 선보이고, 그것으로 10개의 요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선보일 신메뉴를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
얼핏 들으면 즉흥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업무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상은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둔 것이었다.
재료는 구매하기 몇 주 전부터 이미 목록을 만들어두었고, 오늘 통과된 신메뉴도 몇 달 전에 미리 작업해둔 메뉴를 수정한 것이었다.
창의력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묘하게 사무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또 그 녀석이 어떤 말을 했는데?”
파코는 업무 얘기보다는, 오늘 하루 한길이 크리에이티브 주방에서 겪었던 일을 더 궁금해하고 있었다.
“기본이 없다고 했습니다. 피카소와 비유하면서 창의력은 기본을 다진 후에야 발휘하는 것이라고 했고요.”
“아, 또 그 소리를 했나 보네? 혹시 ‘베샤멜 소스를 만들지 못하는 놈은 베샤멜 거품도 못 만들지’라는 말은 안 했나?”
“그건 안 했습니다.”
“그래? 제대로 만들긴 만들었나 보네? 맛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분명 그런 소리를 했을 텐데.”
“베샤멜은 제가 만든 걸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한길의 말에 파코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아이고, 그걸 또 제대로 만들어버리면 어쩌냐. 그러면 그 녀석 성격상 내일부터 작정하고 달려들 텐데.”
“그런가요?”
“걔는 항상 그렇거든. 차라리 못 만들었으면 무시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런 식으로 만들어버리면… 글쎄. 내일부터는 눈에 불을 켜고 트집 잡으려고 할걸? 그렇다고 너무 마음 상해하진 말고… 왜 그리 웃는 건데?”
“웃은 적 없습니다.”
“방금 분명 웃었는데.”
“하품 참는 걸 잘못 보신 겁니다.”
간신히 표정을 추슬렀지만, 사실 절로 웃음이 나오긴 했다.
배움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정답을 익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내가 틀린 부분을 지적당하면서 배우는 방법도 있다.
전자는 혼자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최셰프의 경우, 설령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하더라도 한길의 체면을 생각해서 일일이 지적하진 않을 거다.
‘유셰프라면…’
아마 열 개까지는 말하겠지만, 그녀 역시 어느 정도 선을 지킬 터. 한길의 잘못된 습관이나 부족한 상식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진 않을 거다.
그런데 정말 하비에르가 작정하고 한길의 허점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면…
‘족집게 과외 아닌가?’
부족한 부분이나 개선해야 할 점을 맞춤형으로 알려주는 전문가가 등판했다고 보는 편이 좋았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전문가가 아니라, 세계 일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최고 경력의 셰프가.
그리고 그 전문가가 지적한 첫 번째 문제점은 ‘기본이 없다’였다. 그건 한길 역시 느끼고 있었고.
쥴리엔느, 바토네, 어니언 피크…
오늘 처음 듣는 생소한 조리용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모두 프랑스어였다.
“파코.”
“왜?”
“이곳에서는 프랑스 요리가 필수인가요?”
“흐음… 애매하네. 우리는 프랑스 요리는 만들지 않아. 하지만 클래식 훈련을 받은(classically trained) 실습생을 선호하지.”
“클래식 훈련이 뭐죠?”
한길의 질문에 파코가 많이 놀랐는지, 토끼 눈을 떴다.
“행크 너, 클래식 훈련이 뭔지 모르나?”
아니, 이건 놀란 표정이 아니라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요리하는 사람이 이 정도 기본 상식도 모르냐는 그런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