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1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16화(216/325)
216. 파리 (1745 AD)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듯한 익숙한 감각 후에 두 발이 땅을 디뎠다. 아직 눈은 떠지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 이런 촌놈들!”
“딱 3년만 두고 보라고! 3년 후에는 우리도 어엿한 파리지앵이 되어있을 테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촌놈이라는 거지! 파리에서 3년은 30년이나 다름없거든?”
“30년은 무슨, 300년이지! 그보다, 자네 친구는 괜찮냐?”
“그러게? 마르셀! 어이, 마르셀!”
누군가 몸을 거칠게 흔들자 눈이 떠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사내들이 한길을 내려보고 있었다.
“와, 형씨 대단한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잠들 수 있지?”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한길은 시끌벅적한 술집의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한길을 깨운 남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마르셀, 괜찮냐?”
이번에 빙의한 인물의 이름은 마르셀.
이곳은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
그리고 한길을 챙겨주는 이 남자는, 마르셀의 일행으로 보였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혼자서 괜찮겠어?”
“멀쩡해.”
“음, 멀리 가진 말고. 그 상태에서 길 잃으면 정말 답이 없으니까.”
일단 이 어수선한 곳에서 벗어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번잡한 술집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오니, 낯선 풍경이 시야에 비쳤다.
‘이곳이 파리인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지저분한 골목.
곳곳에 랜턴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사방에 높은 건물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어 보기만 해도 답답했다.
어차피 도시 풍경을 감상하러 나온 것은 아니니 상관없지만.
한길은 시야 한 켠에 접어둔 반투명 창을 열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스페셜 퀘스트>
목표: 루이 15세의 인정을 받으세요.
제한 시간: 최대 1년
보상: 스테이지 체험권 (1)장
실패 시: 향후 프랑스 스테이지 재진입이 불가능합니다.
※ 본 체험 스테이지는 (1)개의 퀘스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퀘스트 클리어 혹은 제한 시간 만료 전에는 스테이지를 종료할 수 없습니다.
※ 퀘스트 클리어 시, 잔여 시간과 관계없이 24시간 후에 스테이지가 자동 종료됩니다.
+
이번 퀘스트의 최종 목표는 국왕인 루이 15세의 인정을 받는 것.
이건 예상했었다.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스테이지의 피날레에는 최고 권력자가 등장했으니까.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점은…
‘기간이 꽤 기네?’
어차피 스테이지에 머무는 동안에는 현실의 시간이 멈춰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지금까지와 비교하면 체류 기간이 눈에 띄게 길었다.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에는 현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도 일반 스테이지와는 달랐다.
실패하면 프랑스에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안내 문구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실패를 안 하면 되니까.’
한길은 시스템 창을 닫고 머릿속으로 당장 해야 할 일의 목록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자신이 온 시대와 자신이 빙의한 인물의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이 1789년이었나?’
스테이지에 진입하기 전, 벼락치기로 외운 상식 중 하나다.
이번 스테이지는 1745년.
그렇다면 혁명이 일어나기 44년 전이라는 말이 된다.
역사는 잘 알지 못하지만, 프랑스 혁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왕비.
이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동안 왕족과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상류계층은 굶주림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백성들의 삶에 무지했다는 것.
극심한 빈부 격차의 계급사회.
그런 시대로 온 거다.
‘마르셀은 굶주린 쪽에 더 가까우려나.’
한길이 입고 있는 옷은 허름했다. 아까 술집에서 본 남자들이 한길을 ‘촌놈’으로 부르기도 했고. 추측건대 마르셀은 농촌에서 파리로 갓 상경한 평민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혁명 전의 절대왕정 시대에, 시골 출신의 평민 요리사가 국왕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것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요리사는 요리만 잘하면 되니까.’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다. 어느 시대든, 요리사는 신분이나 출신과 관계없이 오로지 요리만으로 평가를 받았다. 실력만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로드맵 정도는 그려놓는 게 좋겠지?’
국왕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국왕에게 요리를 선보일 수 있는 자리로 가야 하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베르사유 궁전에 취직하는 것. 설령 궁전에 들어갈 수 없다 하더라도, 스카피와의 경험에서 그랬듯이 국왕을 접대할만한 귀족의 주방에 들어가면 된다.
‘그곳에서 프랑스 요리도 제대로 배우고.’
한길이 이곳에 온 이유는 호기심 때문도, 퀘스트 보상 때문도 아니다.
프랑스 요리가 왜 서양요리의 중심에 있다는 건지, 클래식 훈련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 이 스테이지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해아 할 게 많네.’
쉽지 않겠지만, 부담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콧노래가 나올 것 같아 들뜬 기분을 억지로 가라앉혀야 했다.
한길은 다시 북적이는 술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선은 취직을 해야 한다.
국왕을 만날 수 있는 주방에.
그러려면 정보를 모아야 하고, 정보를 모으기에는 술집만 한 곳이 없었다.
#
“어이, 마르셀! 여기!”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오자, 아까의 일행이 일어서서 한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좀 괜찮냐?”
“아마도?”
“그러게 작작 마셨어야지.”
술기운은 없었지만, 한길은 취기가 올라온 것처럼 몸을 조금 비틀거렸다. 만에 하나 일행이 곤란한 질문을 한다면, 술 핑계를 대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욤! 친구는 안 죽고 잘 돌아왔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해! 파리에서는 조금만 얼빵하면 입고 있는 옷까지 벗겨간다니까?”
기욤이라는 남자는 오래전부터 마르셀과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함께 자리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술집에서 만난 현지인들로 보였고.
“지갑은 잘 있는지 확인해봐!”
“에이, 괜찮겠지. 딱 봐도 쥐뿔도 없어 보이는데.”
“그러게, 둘 다 형편이 되면 옷부터 어떻게 해야겠는걸? 차림새가 영.. 같이 앉아 있기도 민망할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합석한 남자 두 명은 멀끔한 차림새였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단의 옷. 가죽 신발을 신고 있는 데다가, 한 명은 허리춤에 검까지 차고 있었다.
너무 뚫어지게 본 건가.
한길의 시선을 눈치챈 남자 한 명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옷이 마음에 드나?”
“멋진 옷이네요.”
“크, 형씨! 보는 눈은 있네! 이거 어제 막 구입한 옷이거든. 파리에서는 패션이 생명이니까. 나 같은 대장장이가 이렇게 차려입고 다닐 수 있는 곳은 파리밖에 없을걸?”
남자의 신분이 대장장이라는 말에는 조금 놀랐다. 옷차림만 보면, 귀족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부유한 상인처럼 보였으니까.
“형씨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런 옷은 쉽게 구할 수 있어. 이곳에서는 귀족들이랑 부르주아들이 입던 옷이 수시로 중고시장에 나오거든. 윗분들은 옷을 몇 번만 입고 휙휙 바꿔버리는데,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그냥 팔아버리는 거지.”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뭐, 저렴한 건 아니지만 못 살 것도 아니지. 기술만 있으면 파리만큼 먹고살기 좋은 곳은 없거든. 자네도 요리사라고 하지 않았나?”
한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대장장이가 옆에 앉은 남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여기 파비앙도 옷차림새만 보면 누가 요리사라고 하겠어, 안 그래? 자네도 운만 따라주면 이 정도는 가능하다고!”
대장장이의 말에 한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술집에서 만난 일행이 요리사라니, 운이 좋다.
“그나저나, 자네는 무슨 일을 찾으려는 거지?”
“목공이나 가구 쪽으로 찾아보려 했는데 만만치 않아.”
대장장이는 한길에게 관심을 떼고 기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한길은 조용히 요리사에게 다가갔다.
“어떤 요리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자네 정말 취했나? 말했잖아, 로스트 전문이라고. 여기서 두 골목 떨어진 곳에 있는 가게에서 직인으로 일하고 있지. 자네는 어떤 요리가 전문이지?”
“이것저것 다 합니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견습인가? 아니면 직인?”
한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요리사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 내 정신 좀 봐. 그래, 시골에서 사흘 전에 올라온 촌뜨기가 알 리가 없지. 그쪽에는 요리사 길드가 없지?”
“요리사 길드?”
“파리에서는 요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요리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가요?”
“혼자 먹을 음식을 만드는 거면 상관없지만, 남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지. 파리에서는 길드원이 아니면 요리를 할 수 없어. 가끔 길거리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들키면 경찰이 와서 다 압수해가거든.”
요리하려면 길드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니.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었다.
“길드원이 되려면 대략 얼마나 걸리나요?”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파리에서는 꽤 시간이 걸려. 우선은 길드 소속의 장인(master) 밑에서 3년간 견습 생활을 해야 해. 아, 로스트는 예외적으로 견습 기간이 5년이고. 견습 생활을 마치면 그때부터는 직인(journeymen)이 되어 다양한 장인들 밑에서 수련을 하지. 이건 사람마다 다른데 최소 1년, 길게는 5년이나 10년까지 걸릴 수 있어.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길드 소속의 장인이 되기 위한 정식 절차를 밟아. 입단 연회를 열고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선보여야 하는데, 합격하면 정식으로 길드 소속의 장인이 될 자격을 얻게 돼. 거기까지 갔으면 세금이랑 입단비, 길드 간부들에게 사례비만 내면 장인으로 인정받고 자기 이름을 걸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거고.”
생소한 시스템이었다.
남자의 말대로라면,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요리를 하려면 최소 4년이 필요했다. 견습 기간 3년과 직인으로 수습하는 기간 1년을 거쳐야 했으니까. 비용도 만만치 않아 보였고.
“귀족 집안에서 일하는 것도 길드원만 가능한가요?”
“아니 그쪽은 예외야. 귀족 집안이나 왕궁, 수도원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길드 소속이 아니거든. 자네, 귀족 집안에서 일하고 싶은 건가?”
“네.”
“그쪽에 아는 사람은 있고?”
“아뇨.”
“푸하하하하!”
한길의 답변에 남자는 기분 나쁠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귀족 주방은 어떻게 들어가려고?”
“어려울까요?”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저택에서 일하던 고용인들의 자녀나 지인만 받아주거든. 뭐, 실력이 있다면 길드원도 받아주긴 하지만,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까지 받아주는 건 아니지. 소개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요리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해줄 수 있기는 한데… 이게 잘못하면 나도 난감한 입장에 놓일 수 있거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도둑질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그나마 출신이 확실하다면 가족이라도 찾아내 받아낼 수 있겠지만,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잡아? 자네가 도둑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말이지.”
“그렇군요.”
“내 소개로 자네가 들어갔다가 은접시 하나 사라졌다고 쳐. 그러면 그들이 나한테 와서 물어내라고 할 것 아닌가. 그러면 결국은 내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올 텐데, 그런 위험을 안고 소개해주기는 조금… 못 할 건 아닌데, 금전적 손해를 볼 각오로 하기에는 좀 그렇고, 뭐, 글쎄올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수고비를 드린다면요?”
“하하하, 뭐야 이 친구! 그 사이 파리지앵이 다 ㅤㄷㅚㅆ네! 수고비는 아니고, 보증금이라고 생각해. 자네가 무사히 자리를 잡고 신뢰를 쌓으면 돌려줄 거니까.”
어느 시대이든,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사기를 치려는 사기꾼의 표정.
그제야 왜 멀끔한 차림새의 파리 현지인들이 한길의 일행과 술잔을 부딪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쓸만하네.’
한길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사기꾼들은 대개 말이 많다.
그리고 말은 곧 정보다.
물론 이 남자가 하는 말을 전부 신뢰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다. 우선 남자의 말을 모두 들어놓은 후, 잘못된 정보는 소거법으로 하나하나 제거하는 게 좋아 보였다.
“모아둔 돈이 얼마 없는데…”
한길이 어리숙한 시골 청년을 연기하자, 요리사는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이건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파리는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미식 도시잖아? 여기서 성공하면 투자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부를 모을 수 있다니까? 내 모습을 봐!”
“그건 그렇네요.”
“최단기간에 성공하려면 귀족 집안이 가장 좋지. 인맥도 쌓이니까 내 가게 차릴 때도 도움이 되고.”
“그런데 정말 상황이 넉넉지 않아서요.”
“뭐, 길드 장인의 밑에서 수습 생활을 해도 되긴 하지. 그게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고. 그런데 그래 봐야 푼돈 받고 노예처럼 일한다니까? 그리고 수습 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 길드 규정상 장인들은 정식으로 한 번에 두 명의 수습생만 둘 수 있어. 인수인계할 때는 몇 명이 겹쳐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두 명이야. 파리에 요리사 장인이 500명 남짓인데, 그중에서 수습생이 없는 요리사를 일일이 찾으러 다녀야 한다니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길이 한마디를 하면, 남자는 30마디를 했다. 적당히 길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한길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혹시 귀족 집안이 아니라 베르사유에도 인맥이 있나요?”
“음, 베르사유?”
남자는 살짝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표정을 추슬렀다. 억지웃음을 보니, 왕궁에는 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베르사유도 옛말이지, 요즘 누가 촌스럽게 베르사유에서 일하나? 미식의 중심은 파리지! 베르사유에서도 주요 행사나 중요한 자리에는 파리의 길드 장인들을 부르잖아? 패션은 베르사유가 시초일지 몰라도, 요리는 절대적으로 파리가 우수하다고!”
한길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요리사가 다가와 어깨동무까지 해왔다.
“선택은 자네 몫이지만, 베르사유는 정말 추천하지 않아. 길드원이 되는 건, 뭐, 자네 마음이겠지만, 보다 쉬운 길도 있으니까. 나도 소개해주는 건 사실 내키지 않지만, 이것도 인연이라는 거잖아?”
‘다음은 어떤 질문을 하는 게 좋을까…’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등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셀한테 떨어져, 이 사기꾼 새끼야!”
목소리의 주인은 한길의 일행인 기욤이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기욤의 얼굴은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대장장이는 떨떠름한 표정.
“마르셀, 가자! 재수 없게 이딴 놈들한테 걸려서는.”
기욤은 매서운 눈길로 사기꾼 요리사를 노려봤지만, 요리사는 태평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 친구랑 중요한 얘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필요 없어.”
“친구의 앞날을 막으려 하다니, 쯧쯧.”
요리사의 말에 기욤이 눈알을 돌리며 코웃음을 쳤다.
“필요 없어. 저 친구는 이미 견습생 자리도 구했고 내일부터 일할 예정이거든.”
“자리도 자리 나름이지. 더 좋은 길이 있어서 안내해주려는데 왜 이리 열을 올리나?”
“무티에르의 견습생 자리라는데?”
기욤의 말에 요리사가 일순 굳어버렸다.
기욤은 한쪽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파리의 요리사라면 무티에르를 모르진 않겠지? 당신이 소개해주는 자리가 그보다 더 좋은 자린가?”
“….”
요리사는 침묵했고, 기욤은 그 틈에 한길을 일으켜 세웠다.
“가자.”
술집을 나와 거리를 걷는 중에도, 기욤은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대며 대장장이의 욕을 했다.
“사람을 얼마나 바보로 본 건지. 무슨, 견습생이 되려면 자기가 아는 하숙집에서 하숙비까지 내면서 일해야 한다는데 그게 말이 돼? 설마 우리가 그 정도도 안 알아보고 왔을 까봐?”
“그러게.”
대장장이도 기욤에게 비슷한 제안을 한 모양이었다. 한길은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주며 말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기욤이 조금 진정되었을 때 즈음, 하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내가 이미 견습생 자리를 찾은 거야?”
어눌한 말투로 혀를 꼬며 말하자, 기욤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냐? 정신 차려, 내일부터 첫날이니까.”
“무티에르가 누군데?”
“나도 몰라. 네가 말해준 것만 알지.”
“내가, 하하… 음, 무슨 말을 했더라?”
헤실헤실 웃고 있는 한길을 보며 기욤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네가 그랬잖아? 무티에르는 ‘파리 제일의 요리사’ 길드에 소속된 장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