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1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17화(217/325)
217.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
파리 제일의 요리사 길드.
제법 기대가 되는 이름의 길드였지만, 기욤은 그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기욤 역시 파리에 온 지 며칠 안 된 데다가, 요리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은 건 다음 날 아침. 여관 주인의 입을 통해서였다.
“파리 제일의 요리사 길드? 그런 이름의 길드는 없어.”
“없다고요?”
“그냥 ‘파리 제일의 요리사’라고 부르는 거지, 길드 이름은 아냐. 왜, 궁금해?”
아직 한가한 시간이라 그런지, 여관 주인은 주문한 스튜를 가져다준 후,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요리사(cuisinier)가 아니라 트레퇴르(traiteur)라고 불러. 대부분 연회 요리 길드(guilde queux, cuisiniere, porte chappes) 소속인데, 결혼식 연회나 귀족들의 연회 요리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지.”
“귀족은 전속 요리사를 두는 게 아니었나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진짜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들은 한 곳에만 묶여있지 않거든. 혼자 작업실을 차리고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받아.”
‘파리 제일의 요리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비용만 지불하면 연회를 차려주는 프리랜서 요리사들이었다. 설명만 들으면, 현대의 케이터링 업체와도 비슷했다.
“나도 아직은 못 먹어봤는데, 맛이 진짜 기가 막힌다더라. 뒤프레니(Dufresny) 알지? 그 유명한 희극 작가 있잖아? 그 양반이 죽기 전에 ‘파리 제일의 요리사’ 요리를 먹어봤는데, 그렇게 극찬을 했거든. 그때 나온 요리가 달랑 두 개였는데, 계란으로 만든 수프랑 송아지 어깨살 요리였나? 작품 완성하고 받은 대금을 몽땅 한 끼에 쏟아부었는데도 전혀 후회 없다 했었거든. 이건 먹고 죽어도 후회가 없는 요리라고. 실제로 먹다 죽은 사람도 있고.”
“먹다 죽었다고요?”
“어, 소문으로는 보르봉에서 온 부유한 상인이 그랬다더라고. 트레퇴르가 만들어준 잉어 혓바닥 요리를 먹고 너무 맛있어서 계속 추가 주문을 했는데, 그러다 결국 과식으로 죽었다나 봐. 그때 사용된 잉어 혓바닥을 세어보니 2천 개였나, 3천 개였나 그랬다더라고. 죽은 후에 계산서를 보니까 1,200 리브르(2017년 기준 약 $24,000)나 나왔다고 하던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금액이지. 그 큰돈을 내고 먹다 죽었는데, 죽은 사람 얼굴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더라는 거야. 얼마나 맛있었으면…”
물론 여관 주인의 이야기에는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그래도 알 수 있는 사실이 몇 있었다.
이 시대 파리에는 맛있는 요리를 위해 거금을 지불하는 미식가들이 있다는 것. 일반인들의 입에도 오르내릴 정도로 명성을 떨치는 요리사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정도 실력이면 베르사유에서도 부르겠네요?”
“그렇지? 아무래도 파리 요리가 베르사유보다는 뛰어나니까. 전 세계에서 으뜸이잖아?”
파리 제일의 요리사 밑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베르사유에도 들어갈 기회가 올 거다.
‘처음부터 유명 요리사의 견습생이라니…’
생각보다 친절한 안배였다.
이탈리아로 치면, 스카피의 주방에서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거리에서 한참을 헤매야 했던 다른 스테이지와는 달랐다.
‘이대로 가서 배우면 끝인가?’
앞으로의 로드맵도 바로 그려졌다.
프랑스 스승 밑에서 견습 생활을 하며 차근차근 요리를 배우고, 때가 되면 베르사유의 의뢰를 받아 국왕에게 요리를 선보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자, 여관 주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파리 제일의 요리사들은 왜?”
“오늘부터 그쪽 견습생이 되거든요.”
한길의 말에 여관 주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네?”
“견습생이면 그쪽에서 숙식할 거 아냐? 어제까지만 해도 일주일 더 묵는다더니, 오늘부터 방 빼는 거야?”
“제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그래.”
어제라면 이미 일자리를 구한 후였을 텐데. 마르셀이 일주일 더 머무른다고 말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방은 일주일 더 빌릴게요. 비용도 제대로 지불할 거고요.”
“그래?”
여관 주인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다시금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난 또 괜한 오해를 했네. 무티에르의 작업실이 어딘지는 알고 있나? 파리는 아직 익숙지 않아서 모르지? 여기서 나가서 왼쪽으로 꺾다 보면 큰길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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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파리의 거리는 북적였다.
거리의 모습은 두 번째 스테이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스카피가 살던 시대로부터 무려 200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했다.
여관이 자리한 허름한 골목을 벗어나니,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가 나왔다. 궁전같이 으리으리한 저택들도 보였고, 간혹 뚜껑이 없는 마차를 탄 귀부인들도 지나갔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풍성한 공주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쯤에 무티에르의 작업실이 있지 않나요?”
“무티에르? 바로 저 건물이야. 하얀 거 보이지?”
무티에르의 작업실은 꽤 멋들어진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신경 써서 꾸민 공간이 나왔다. 벽면에 액자가 장식되어 있고,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타원형 식탁이 놓인 공간.
‘다이닝룸인가?’
이것도 생소했다. 스카피가 살던 시대에는 다이닝룸이 없었으니까.
그 시절에는 커다란 다용도 방이 있었고, 식사 때마다 테이블을 세팅해야 했다. 이렇게 식탁을 고정적으로 두는 식사 전용 공간은 없었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 같네.’
평범한 가정집의 다이닝룸보다는, 손님을 접대하는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
하지만 레스토랑은 아닐 거다. 한길이 사전에 공부한 상식에 의하면, 파리에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이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였으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다이닝룸에 들어온 중년 남자는 바로 한길을 알아보았다.
“마르셀, 일찍 왔군.”
어딘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과 당당한 풍채.
온몸에서 풍기는 자신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사람이 파리 제일의 요리사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무티에르 같았다.
“견습이네.”
“뭐야, 한 명밖에 없어?”
무티에르의 뒤를 따라 네 명의 남자들이 더 내려왔다. 연령대로 보면, 무티에르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직 한 명 더 와야 하니 자기소개는 그때 하도록 하지. 그동안 두 사람은 나랑 일정 정리 좀 하고.”
무티에르는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식탁에 앉은 후, 종이를 꺼내고 무언가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좋은 아침입니다! 파비앙입니다!”
활기찬 에너지의 젊은 청년이 입장하자, 무티에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모였군. 새로 온 두 명은 각자 자기소개를 하도록.”
“마르셀입니다.”
“파비앙입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했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까딱이기만 했다. 결국 입을 연 이는 무티에르였다.
“이쪽은 라올, 니콜라. 여기서 직인(journeyman)으로 일하는 자들이지.”
무티에르가 가리킨 두 명은 방금 전까지 함께 회의하던 남자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다음으로 무티에르는 앳된 두 남자를 향해 고갯짓했다.
“이쪽은 견습생인 알랭과 테오. 테오는 이제 막 견습 생활을 마쳤고, 다음 주면 떠날 거다. 그 자리를 자네들이 채울 거고. 어제도 말했다시피 둘 다 고용하는 건 어렵고, 1주일 동안 경과를 보고 한 명만 견습생으로 받아줄 거다.”
‘제대로 합격한 건 아니었나.’
그제야 마르셀이 여관방을 빼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직 채용이 결정된 건 아니었으니까. 현대로 치면, 두 명의 인턴을 뽑고 일정 기간 후에 한 명만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야 워낙 일손이 달리니 둘 다 와주면 좋지만, 알다시피 선택권이 없어서. 견습생은 두 명만 둘 수 있거든. 이 망할 길드 새끼들이 멍청해서 말야…”
무티에르는 욕설을 섞어가며 한참 동안 길드 욕을 했다.
‘사기꾼이 말한 내용 중에 사실도 있었네.’
어제 술집에서 듣긴 했었다.
길드의 장인은 단 두 명의 견습생만 둘 수 있다고. 설령 무티에르가 한길과 파비앙을 모두 마음에 들어 한다 해도, 길드 규정 때문에 둘다 고용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일주일 후에는 한길 아니면 파비앙.
둘 중 한 명에게만 견습생의 자격이 주어질 거다.
“이쪽은 내일 주문으로 바쁘니 알랭과 테오가 신입들을 봐주도록. 장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것은 알려주고, 오후까지 기본 베이스는 만들어놓고.”
짧게 지시를 내린 무티에르는, 다시금 직인들과 함께 회의를 시작했다.
‘저쪽은 상임 직원 같은 건가.’
페르난도의 레스토랑에 비유하면, 무티에르는 셰프, 직인들은 상임 직원, 그리고 견습생들은 실습생의 위치에 있었다. 테오와 알랭은 선배 실습생으로 여기는 게 좋을 듯했다.
“어떻게, 내가 장을 보러 갈까?”
“아니, 내가 갈게. 테오 너는 주방일 먼저 보고 있어. 어차피 나중에 추가설명도 해줘야 하니까 떠나는 사람보다는 남는 사람이 맡는 게 좋지.”
“그래? 그럼 부탁한다.”
테오가 주방으로 향하자, 알랭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비앙은 다른 곳에서 견습 생활을 조금 했으니 시장은 다 알 테고, 너는 이름이 뭐였더라?”
“마르셀.”
“그래, 마르셀. 파리에 있는 큰 시장은 알고 있나?”
알랭은 한길을 볼 때마다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비앙을 대하는 태도와는 확연히 온도 차가 있었다.
“파리는 이제 막 와서 잘 몰라.”
“그래도 레알(Les Halles)은 알겠지?”
“몰라.”
“뭐? 요리한다는 사람이 레알도 모른다고?”
알랭은 고함을 치듯이, 과장될 정도로 큰소리를 냈다. 일부러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이. 실제로, 무티에르와 직인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보였다.
‘아는 사이도 아닐 텐데…’
아까 셰프가 자기소개를 시킨 것으로 보아, 마르셀과 알랭은 처음 만난 사이일 것이다. 원한 관계가 있을 리는 없는데, 알랭은 한길에게 대놓고 적대적이었다.
“이거, 장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파리 관광시켜주게 생겼네, 요리한다는 사람이 시장이 어딨는지도 모르고, 참나.”
보아하니 윗사람들 앞에서 한길을 내리깎으려 하고 있었고.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딱히 화는 나지 않았다.
‘많이 어리네.’
갓 성년이 된듯한 상대가 삐딱하게 나온다고 진지하게 화를 내는 것도 우스웠으니까. 게다가 한길은 알랭의 공격이 아무 효과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제 갓 뽑은 직원이 인근 지리를 모르는 건 단점이 아니다. 처음 오는 도시, 처음 오는 주방이면 누구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까.
무티에르가 1주일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한 건, 적응을 모두 마친 후의 두 사람을 비교하겠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지금이 아니라 1주일 후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어느 세월에 다 둘러보고 오냐. 진짜 귀찮은 인간이 들어왔네.”
“그래도 내가 길눈은 좋아서, 한 번만 보여주면 다 외워.”
한길이 모든 도발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자, 알랭의 입가가 경련하듯이 꿈틀거렸다.
“아, 자루도 내가 들게. 나 때문에 수고하는데, 짐꾼이라도 해야지. 마음 편하게 짐은 이쪽에 맡겨.”
한길은 그런 알랭에게 더욱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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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는 건 기본적으로 견습생이 맡아. 대부분의 재료는 레알에서 구해. 육류는 메지세리 부두 근처에서 받아오고, 버터는 백랍 세공인 길드홀 앞에서 구해. 그 앞에 가면 매일 아침 9시에 방브(Vanves)에서 온 농민들이 직접 만든 버터를 팔거든. 그게 제일 품질이 좋다더라.”
알랭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필요한 설명은 모두 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비앙에게 설명하는 것을 옆에 있는 한길이 주워듣는 형식이었지만.
“너한테는 미안하네, 파비앙. 내 말만 듣고 원래 다니던 데도 때려치우고 왔는데, 나라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나? 어디서 굴러온 지 모르는 촌뜨기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 애걸하는데, 설마 무티에르가 넘어갈 줄은 몰랐거든.”
“아니, 네 잘못이 아니지. 마르셀 잘못도 아니고, 결국 무티에르가 결정할 일이니까.”
“그래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어서.”
대화를 들어보니, 저들이 왜 한길을 못마땅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파비앙은 알랭의 소개로 들어온 듯했으니까.
확실하게 내정된 자리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갑자기 마르셀이 끼어들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미운털이 박힐 만도 했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저들의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를 양보할 생각은 추후에도 없었으니까.
한길은 이곳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빨리 배울 것만 배우고 현대로 돌아가야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유리하긴 한데…’
파비앙의 요리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3년은 안 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3년을 채우면 견습생을 졸업하니까. 10년 동안 요리를 해온 한길과는 체급이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곳을 너무 모르니까.’
한길은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떤 요리를 먹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프랑스 요리도 몇몇 레시피는 알고 있었지만, 특기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런 면에서 시장에 온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재료를 보면 요리가 보일 테니까.
“마르셀, 짐꾼 한다고 했지? 이것도 네가 들어.”
알랭은 시장에서 구입한 모든 재료를 한길에게 떠넘겼다.
괴롭힐 생각이었을지는 몰라도, 재료를 상세히 살펴보고 싶은 한길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알랭의 장바구니를 보니, 몇몇 특색이 도드라졌다. 우선은,
‘향신료가 없네.’
후추를 제외하고는 향신료를 아예 구매하지 않았다. 향신료를 판매하는 상인의 가판대를 봐도, 카르다몸이나, 사프란, 롱페퍼, 메이스, 그레인 오브 파라다이스 등. 스카피의 주방에서 자주 보던 향신료들이 아예 없었다.
스카피의 시대에는 향신료가 귀족 요리의 필수품이었다. 향신료는 자물쇠를 걸어 잠그며 보관할 정도로 귀한 재료였으니까. 하지만 알랭은 향신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른 재료도 다 평범해 보이고.’
버섯, 양파, 당근, 셀러리, 허브 등등.
물론 신선하고 좋은 재료들이지만, 귀족 요리치고는 소박하다고 여겨졌다. 심지어 프랑스 각지에서 온 특산물도 아니고, 대부분이 파리 근교에서 수확된 작물들이라고 했으니까.
육류 역시 마찬가지.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송아지 고기…
좋은 재료긴 했지만, 백조나 공작새 같은 화려한 가금류는 시장에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차별화하는 거지?’
이 장바구니를 보니,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지난 스테이지의 경험을 토대로 보면, 귀족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차별화된 요리를 선호했다.
아피키우스의 경우, 클레오파트라가 먹었다는 무화과, 시저가 먹었다는 와인,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기린 등. 이국적인 재료나 스토리가 있는 귀한 재료를 강조했었다.
스카피의 경우도 비슷했다. 값비싼 향신료를 사용했고, 유럽 각지에서 구해온 특산물로 엄청난 다양성을 자랑했다. 한 끼에 무려 380 접시나 차리는 압도적인 스케일도 특징이었다.
시대는 달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귀족이 아니면 차릴 엄두가 나지 않는 밥상이라는 점.
그런 면에서 알랭의 장바구니는 이상했다.
분명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고르긴 하지만, 귀족들이 먹는 요리의 재료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귀족들이 소박한 요리를 좋아할 리 없다.
화려한 옷을 입고 웅장한 저택에 사는 귀족들이, 요리만큼은 간소하게 먹는 게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이 시대는 귀족의 사치가 극에 달하는 시대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아침에 들은 얘기에서도 그랬지.’
유명 극작가가 몇 달 치 임금을 모아서 주문한 요리가 계란 수프와 송아지 어깨살이라고 했던가.
과식으로 죽은 사람이 먹은 메뉴도 잉어의 혓바닥이었다. 특이한 것 같지만, 사실 잉어 자체는 이곳에서 매우 흔한 생선이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
이 시대의 고급 요리는 희귀한 재료도, 값비싼 재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비교적 흔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사람들은 거금을 선뜻 지불하고 그 요리를 먹는다.
고급 요리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말이 된다.
이곳 귀족들은, 재료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요리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게 핵심이겠네.’
그걸 빨리 알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