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1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18화(218/325)
218. 진짜 레스토랑은?
시장에서 장을 본 후.
알랭은 작업실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골목을 순회했다. 자주 이용하는 납품처들의 위치를 알려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페이스트리는 거의 이곳만 이용해. 가끔 문을 닫거나 물건이 떨어지면 가는 곳이 있긴 한데,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서. 오늘은 바쁘니까 다음에 알려줄게.”
알랭은 여전히 한길을 투명인간 취급했지만, 파비앙에게는 한없이 친절했다.
제과점, 빵집, 샤퀴테리 전문점, 와인 전문점, 정육점 등을 차례차례 들른 후,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조금 의외의 장소였다.
“로티세리(rotisserie)는 여기 한 곳만 이용해.”
로티세리는 구이를 파는 곳.
가게 내부에는 닭고기 통구이와 양다리, 소갈비 등등. 종류별로 다양한 육류가 조리된 상태로 진열되어 있었다.
‘이런 것도 납품받는다고?’
빵이나 제과를 받아오는 건 어느 정도 이해되었지만, 이미 조리가 된 육류까지 받아오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육류도 받아와?”
“길드 규정이 있으니까.”
“무슨 규정?”
알랭은 답해줄 가치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후 걸음을 서둘렀다.
‘또 길드인가.’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였다.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거의 듣지 못했는데…
‘그때는 길드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걸까?’
확실치는 않았다.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 한길은 영국의 궁전과 이탈리아의 귀족 주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리고 왕궁과 귀족의 주방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길드의 영역이 아니었다.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니, 또 다른 견습생인 테오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었어? 일이 얼마나 많이 밀려있는데.”
“누군 뭐 좋아서 이러나. 초짜가 섞여 있는데 어쩔 수 없잖아? 덕분에 바빠 죽겠는데 파리 관광 한번 시켜주고 왔지.”
알랭은 초짜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이 모든 걸 한길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모르는 게 많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 늦은 건 한길의 탓이 아니다.
오늘부터 일하게 된 곳의 납품처를 모르는 건 옆에 있는 파비앙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고마워, 알랭. 우리 때문에 고생이 많네. 그래도 길 안내는 오늘로 전부 끝내서 다행이야, 그치?”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하자, 알랭이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알아듣기 힘든 알랭의 불평불만을 해석하는 대신, 한길은 주방을 둘러봤다.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르네.’
이번 스테이지에 진입하고 처음으로 들어오는 주방이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주방의 모습이 조금씩 다른 게 나름 재밌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스카피의 시대와 비슷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화로가 허리 높이에 있네.’
스카피의 주방에서는 벽난로처럼 생긴 곳에서 장작을 태우고, 바닥 높이에서 열 조리를 했다. 허리 높이의 작업대도 있었지만, 단 두 개뿐이었다.
어차피 스카피의 메뉴는 찜이나 스튜, 오븐 요리가 많으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요리를 만들 때는 구부정하게 앉아서 조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마치 캠핑장에서 요리하듯이, 바닥에 앉아서 작업하는 게 조금 불편했는데. 이번 주방에는 바닥 높이의 화로와 허리 높이의 화로가 반반 비율로 마련되어 있었다.
‘몸은 더 편하겠네.’
그 외에도 눈에 띄는 점은 냄비가 엄청 많다는 것. 지금 당장 사용하기 위해 꺼내놓은 냄비만 족히 서른 개가 넘었다.
한길이 주방 구경을 하는 동안, 알랭과 테오는 업무 분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쿨리 만드는데 어제 만든 부용을 다 써버려서. 신입들은 부용이랑 레스토랑을 먼저 시키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각자 한 명씩 맡을까?”
“아냐, 내가 다 할게.”
“괜찮겠어?”
“너는 남은 쿨리나 만들어. 다 하고 나서 다시 분배하든지 하고.”
“그러면 나야 고맙지.”
신입 교육 담당을 자처한 알랭은, 한쪽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다가왔다.
“둘 다, 부용은 뭘 만들 수 있지?”
질문에 먼저 답한 이는 파비앙이었다.
“기본 부용이랑 루메스테, 부용 알라트, 부용 오 방마리… 라프레시송, 프렝타니에도 가능하고 콩소메랑 파나드도 할 수 있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알랭은, 이윽고 싸늘한 시선으로 한길을 바라봤다.
“마르셀, 너는?”
부용(bouillon)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안다. 고기를 이용해서 만든 육수다. 한길 역시 몇몇 부용 레시피를 알고 있었지만, 안다고 말하기에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이 시대 레시피는 아니니까.’
한국으로 치면, 현대에서 김치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김치의 원형인 침채나 딤치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못 들었어? 만들 수 있는 부용이 뭔지 물었잖아?”
“없어.”
“단 하나도?”
알랭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 파비앙이 루메스테와 부용 알라트, 프렝타니에를 맡으면 되겠네. 나머지는 내가 만들고. 마르셀, 너는 그냥 우리가 필요한 채소랑 고기 좀 손질해.”
익숙한 시스템이었다.
페르난도의 레스토랑에서 진절머리 나도록 경험했던 시스템이었으니까.
알랭은 업무를 단순 작업과 조리 작업으로 분리해서 역할을 정해주고 있었다.
“일단 양파 서른 개만 까서 갖고 와.”
지시가 내려졌지만, 한길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순순히 저 역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안 되니까.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한 법이다.
처음부터 밑 작업 역할을 받아들이면, 앞으로도 밑 작업만 하게 될 거다.
‘그러면 무티에르가 결정을 내리기는 쉽겠지.’
밑 작업만 하는 견습생과 조리를 하는 견습생. 누구를 채용할지는 굳이 볼 필요도 없다.
“왜 안 움직여? 양파 어딨는지 몰라?”
“나도 부용을 만들고 싶은데.”
“만드는 법을 모른다며?”
“한 번만 보여주면 바로 만들 수 있어.”
한길의 말에 알랭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황당함은 곧 경멸로 바뀌었다.
“내가 왜 보여줘야 하는데? 너,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너도, 나도 돈 받고 일하는 직원이야. 마스터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맞지만. 마스터가 하는 걸 보고 알아서 배우는 거지, 가르쳐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는 없어. 돈 받고 일하는 거잖아?”
맞는 말이었다.
현대에서도 요리사는 재료 손질부터 시작. 선배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후, 하나하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석대로 해서는 안 된다.
정석대로라면, 1년 안에 초보 요리사인 한길이 국왕을 위해 요리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정해진 룰을 따르면, 이번 스테이지는 무조건 실패하게 되어 있다.
알랭의 말이 백번 옳았지만, 한길은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살다 보면, 가끔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였다.
“시끄럽고, 빨리 가서 양파나 까.”
“나랑 내기 안 할래?”
“뭐?”
이번에는 미친 사람을 보는 눈빛이 돌아왔지만, 한길은 꿋꿋했다. 여기서 절대 물러서면 안 된다.
“내기하자고. 내 앞에서 요리를 만들면, 내가 한 번만 보고 따라해 볼게. 제대로 만들면 내가 이긴 거고, 못 만들거나 실수 하나라도 하면 네가 이긴 거고. 1주일 동안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그런 병신같은 내기를 할 이유가 없잖아?”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레시피도 모르는 한길에게, 굳이 요리를 가르쳐주면서까지 이런 내기를 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한쪽 입꼬리가 절로 당겨졌다. 아마 알랭이 본다면 꽤 얄미운 표정일 거다.
‘진짜 별의별 걸 다 배워왔네.’
한길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 목적을 위해서라면 양심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사람 속을 박박 긁으면서 어떻게든 원하는 걸 손에 넣는 인물.
스카피라면 이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몸이 움직였다.
한길은 알랭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잘 생각해 봐. 아무 경력도 없는 나를, 무티에르가 왜 뽑았을까?”
어제 술집에서 만난 사기꾼은, 돈을 주면 주방 자리를 알선해준다고 했다. 즉, 이곳에서 좋은 자리는 얼마든지 매수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내가 견습생으로 뽑힌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아? 파리 제일의 요리사가 갓 상경한 시골 촌놈에게 기회를 주다니,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
거짓말을 할 때는 암시만 해야 한다. 나중에 불리해질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여차하면 ‘네가 착각한 거 아냐?’하고 뻔뻔하게 받아칠 수 있게, 모호하면서도 구체적인 암시를 해야 한다.
“1주일 후에 과연 내가 떨어질까? 실력만으로 보면 사실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
“네가 원하든 말든, 난 1주일 후에도 여기 남아있을걸? 내 꼴이 보기 싫다면, 내가 자진해서 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어. 물론 내가 내 발로 나갈 일은 없을 거고.”
“….”
“하지만 이 내기에서 진다면, 1주일 후에 내가 알아서 그만둘게. 갑자기 고향에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떠나면 되니까. 어때?”
알랭의 얼굴에 비친 건 혐오감이었다.
지금까지도 한길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말하자면 알랭의 태도는 못마땅함에 가까웠다. ‘저런 초짜가 어떻게 감히 주제도 모르고 이런 주방에 들어왔지?’하는 심정.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알랭의 눈에 한길은, 아무 실력도 없는 주제에 돈으로 자리를 매수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모두가 선망하는 ‘파리 제일의 요리사’ 견습생 자리를.
한마디로 쓰레기였다.
그것도 알랭의 손으로 제거할 수 없는 쓰레기.
거슬린다고 치울 수도 없었다. 이 자리를 매수했다면, 윗사람이 관여되어 있을 테니까.
말하자면, 쓰레기에 낙하산이었다.
그런 쓰레기 낙하산이….
“내기에서 지면 진짜 알아서 나간다고?”
“그래.”
“반대로 내가 지면 어떻게 되는데?”
“딱히? 별 피해는 없어. 그냥 내기가 진행되는 동안 귀찮은 정도? 사실 이건 압도적으로 나한테 불리한 내기야. 이겨봐야 본전이고, 지면 고향행이니까.”
“그렇게 불리한 내기를 왜 하는데?”
“글쎄? 그냥 요리라는 것도 한번 제대로 배워볼까 해서.”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경박한 말투가 낯설었지만, 알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분노에 차서 지금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네 발로 나가는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증인이니까, 맹세해.”
역시나 넘어왔다.
원래 분노는 판단력을 흐리게 하니까.
비교적 인내심이 강한 한길도 스카피의 도발에는 흔들렸었는데. 아직 앳된 알랭이 이 도발을 덤덤하게 넘길 리 없었다.
“맹세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 전에 조건이 있어.”
“뭐?”
“그렇게 노려보진 말고. 그냥 기본 룰을 정하자는 거니까. 일단, 네가 알려주는 요리는 실제로 여기서 만드는 요리여야 해. 이상한 요리를 발명하고 알려준 후, 나중에 이딴 요리 없다고 하면 안 되니까. 안 그래?”
알랭은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상식 수준의 요구였으니까.
“그리고 네가 처음부터 잘못된 조리법을 알려줄 위험도 있으니까. 제대로 된 조리법인지, 다른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확인해줬으면 좋겠는데. 이건 테오한테 부탁하고 싶어.”
“쟤가 그리 한가한 줄 아냐?”
“괜찮은데?”
약간의 설득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테오는 선뜻 응했다. 테오의 얼굴에는 굉장히 익숙한 표정이 그려있었다.
‘닮았네.’
한길의 요리사들과 똑같은 표정이다.
주방 일은 매일 바쁘지만, 동시에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그래서 단조로운 일상을 깨는 이벤트가 열리면 환호하게 된다. 업무량이 조금 늘어도, 즐거움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인데, 내가 레시피에 대해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답해줘야 해.”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어느 누가 요리를 가르칠 때 그렇게 친절하게 가르쳐?”
“이건 양보 못 해. 이 내기에서 지면 난 다시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고. 모처럼 파리에 상경까지 했는데, 투자금도 회수 못 하고 가는 거잖아? 이 정도는 당연해.”
“….”
“조건을 다 받아들인다면, 이 내기에서 질 시에 군소리 없이 그만둘게. 맹세해.”
“맹세한 거다.”
알랭은 이 말도 안 되는 내기를 받아들였다. 그의 두 눈은 증오심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의욕은 있어 보이네.’
한길을 제거하려는 의욕이라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기본 룰을 정해두었으니 비겁한 수는 쓰지 못할 거다.
수를 쓴다면 일부러 한길이 따라 하기 어려운 요리를 만드는 정도?
‘그러면 오히려 고맙지.’
어려운 요리는 고급 요리일 확률이 높다. 알랭이 알아서 고급 요리를 선보인다면, 환영할 일이었다.
만약 이 내기에서 진다면 베르사유로 향하는 길이 끊기겠지만, 솔직히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래 봬도 요리 경력 10년이다.
모르는 레시피는 만들 수 없지만, 한 번 보여준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쯤은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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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리부터 시작하지. 여왕 쿨리를…”
“아까 레스토랑이랑 부용을 맡기기로 했잖아?”
알랭이 입을 열기가 무섭게 테오가 끼어들었다.
“내기는 내기고, 일에는 지장이 없어야지.”
“미안, 깜빡했어. 레스토랑부터 시작하지.”
알랭이 썩은 표정으로 준비물을 준비하는 동안, 한길은 방금 들은 단어를 곱씹었다.
한길의 귀에 들린 단어는 분명 ‘레스토랑.’
레스토랑은 프랑스 혁명 이후로 생겨났다고 했는데, 그 전부터 이미 이 단어는 사용되고 있었다.
단, ‘식당’이라는 뜻은 아니고, 메뉴의 이름이었다.
“레스토랑은 매일 10통씩 만들어서 인근 여관에 납품하고 있어. 하나만 내가 만들 거니까 나머지 9개는 네가 해.”
“여관에서는 왜 직접 안 만들고 납품을 받아?”
알랭은 한길을 무시하고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레시피에 대한 질문은 아니니, 대답해줄 의무가 없긴 하다.
어쩔 수 없나 싶어 그냥 넘어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테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드 규정이야. 여관에서는 수프나 스튜만 만들 수 있거든. 가끔 몰래 레스토랑을 만드는 여관도 있는데, 그러다 경찰에 들키면 벌금을 내야 해.”
“길드 규정에 여관은 레스토랑을 만들면 안 된다고 정해져 있는 거야?”
“음, 비슷한데 조금 달라. 다른 사람이 만들면 안 된다고 적힌 게 아니라, 연회 요리 길드만 만들 수 있다고 되어 있거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먹으려고 만드는 건 자유지만, 판매는 안 돼.”
“왜?”
“당연하잖아? 길드원 입장에서는 비싼 돈 내고 이걸 판매할 권리를 얻었는데, 돈도 안 낸 사람이 똑같은 메뉴를 만들어 팔면 불공평하니까.”
알랭은 테오의 친절한 답변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자, 테오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거였나?’
덕분에 아까 갖고 있던 의문이 해결되었다.
파리 제일의 요리사가 로티세리에서 육류를 받아오는 이유.
‘레스토랑’에 대한 판매권이 연회 요리 길드에만 있듯이, 육류 구이의 판매권은 로티세리의 길드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구조면 레스토랑이 생길 수가 없겠네.’
한 장소에서 다양한 요리를 판매하려면, 한 사람이 수많은 길드에 들어가야 한다.
한 길드당 견습 생활 3년, 직인 생활 최소 1년이니 꽤 많은 세월이 소요될 거다. 길드원 자격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도 있고, 한 명이 여러 길드에 소속될 수 있는지도 불명하다.
“안 봐도 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알랭이 밑 작업을 마쳤다.
“기본 재료는 소고기, 양고기, 송아지 고기, 거세 수탉, 비둘기 고기, 자고새. 채소는 양파와 파스닙, 파슬리와 허브.”
“이 반죽은 뭔데?”
한길은 하얀 밀가루 반죽을 가리켰지만, 알랭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 뿐이었다.
“전분을 더 할 용도인가?”
“요리에는 안 들어가.”
“그러면?”
“질문은 다 보고 나서 하는 게 어때?”
알랭은 신경질적인 태도로 움직였다.
냄비 안에 채소와 육류를 모두 넣은 후, 뚜껑을 닫았다.
“물은 안 넣어?”
“어.”
단답형으로 답한 알랭은, 냄비 뚜껑의 가장자리에 반죽을 꼼꼼하게 붙였다. 수증기가 탈출 못 하게 밀봉하는 작업이다.
‘압력밥솥 같은 건가? 아니, 압력 냄비네.’
현대에서는 고무 패킹을 넣어 수증기가 탈출할 수 없게 막는데. 알랭은 고무 대신 밀가루 반죽을 이용해서 수증기를 가두고 있었다.
“이건 왜 하는 건데?”
“그냥 이렇게 하는 거니까.”
압력 냄비를 사용하면 조리 시간이 줄어들고, 평소라면 잘 익지 않는 재료도 흐드러질 정도로 부드럽게 푹 익힐 수 있다.
이 정도는 알랭도 알겠지만, 그 원리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걸까?’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압력밥솥의 조리 시간이 짧은 이유는, 기압 때문이다.
수증기를 안에 가둬두면, 냄비 안의 압력이 올라간다. 그리고 압력이 높아지면, 물의 끓는 점도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물의 끓는 점은 100도로 알려졌지만, 이건 1기압에서의 경우다. 2기압에서는 물의 끓는 점이 120도까지 치솟는다. 즉, 더 높은 온도에서 조리를 할 수 있는 거다.
‘물을 넣지 않는 것도 이것 때문인가.’
열을 가하면, 양파와 고기에서 채즙과 육즙이 나온다. 일반적인 냄비를 사용하면 그 즙이 수증기가 되어 탈출하겠지만, 제대로 밀봉하면 수분의 손실이 없다.
하지만 압력 냄비 기술에도 단점은 있다.
수분 없이 조리하면, 내용물이 탈 가능성이 높다. 일반 냄비라면 수시로 뚜껑을 열어서 확인할 텐데, 압력 냄비는 뚜껑을 여는 순간 수증기가 탈출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즉, 타이밍을 잡기가 까다롭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법도 있었다.
“냄비는 이중으로 사용해.”
알랭은 더 큰 냄비의 바닥에 짚을 깔아두고 그 위에 작은 냄비를 얹었다. 냄비 안에 냄비를 가둬둔 구조. 가운데 빈 공간에는 끓는 물을 부었다.
압력 냄비에서 음식물이 타는 이유는, 바닥에만 열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끓는 물 안에 냄비를 두면서 간접적으로 열을 가하면 음식물을 태울 걱정이 없다.
“이대로 5-6시간 끓이면 끝이야. 나머지는 네가 해.”
“9개만 더 만들면 되지?”
한길이 움직이는 동안, 알랭은 팔짱을 끼며 유심히 지켜보기만 했다.
처음에는 ‘어디 한번 해봐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한길의 능숙한 칼질을 본 후로는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라고 생각했는데, 누가 봐도 한길의 솜씨는 초보의 솜씨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레스토랑을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음은 또 뭘 보여줄 거야?”
“하아….”
한길이 해맑게 묻자, 알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막심한 표정이었지만, 지금 와서 내기는 물릴 수 없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는 바람에 1주일간 한길의 개인 교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본인도 인지한 모양이었다.
‘진짜 미안하네.’
안됐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길은 이 주방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