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1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19화(219/325)
219. 수프와 레스토랑
다음 레슨은 일반 부용(bouillon general).
기본 육수였다.
조리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소 우둔살과 양지머리를 푹 삶은 후,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표면에 생긴 거품을 걷어낸다. 그 후에는 마른 허브를 넣고 다시 한소끔 끓여준다.
“이대로 두 개 더 만들어.”
알랭은 지시를 내린 후 바로 떠났지만, 거품을 걷어낼 때가 되자 다시 나타나 팔짱을 끼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거품을 걷어낼 때는, 최대한 표면에 있는 거품만을 국자에 담아야 한다. 귀찮다고 국자를 푹푹 담그면, 모처럼 얻은 귀한 육수까지 버리게 되니까.
알랭은 한길이 설렁설렁할 거라 확신하는 듯했지만, 깔끔하게 거품만을 걷어내는 것을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 했어. 다음은?”
“… 포타주(potage: 진한 수프의 일종)랑 소스용 부용.”
포타주와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육수는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포타주와 소스용 부용은, 기본 육수에 채소의 감칠맛을 더한다. 고기 외에도 당근, 파스닙, 셀러리, 리크, 양파 피케, 그리고 마른 허브가 들어갔다.
물론, 이번에도 실수는 없었다.
“다음은?”
“부용 알라트(bouillon a la hate).”
생소한 표현이지만, 자동 번역 기능 덕분에 의미는 바로 와 닿았다. ‘서둘러 만든 부용’이라는 뜻이다.
이번 육수는 조리법이 많이 달랐다.
냄비에 돼지비계를 두른 후, 송아지 고기와 소고기, 당근, 양파, 셀러리를 넣고 굽는다. 그리고 맛깔난 갈색이 보이면, 끓는 물을 넣고 약 30분간 삶은 후 거품을 걷어낸다.
짧은 시간 안에 만드는 육수인 만큼 감칠맛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부족한 부분을 마이야르 반응으로 채우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마이야르 반응을 모를 텐데…’
이름은 몰라도,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갈색 그을림이 부족한 맛을 채워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건 한 개만 더 만들어.”
이번에는 알랭이 자리를 뜨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한길이 고기를 굽고 끓는 물을 부으려는 순간,
“잠깐!”
알랭이 다가와 검사를 했다. ‘제발 태워라’하고 속으로 되뇌는 게 빤히 보여 괜히 웃음이 나왔지만, 고기는 완벽했다.
“왜?”
“크흠, 아냐. 계속해.”
처음에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던 알랭이었지만, 지금은 어딘가 허탈한 얼굴. 함정을 파놓은 사냥꾼처럼 ‘걸려라’하고 기다리는데, 확인할 때마다 수확이 없으니 기운이 빠질 만도 했다.
“다음은?”
“지금까지 만든 부용의 기름을 전부 걷어내.”
알랭은 다시금 시범을 보여주었다.
육수는 하나같이 표면에 기름층이 생겨나 있었다. 국자를 이용해서 위에 뜬 기름만을 떠내야 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여기 있는 거 전부 다 해.”
이어지는 말에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알랭이 가리키는 냄비는 스무 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내기는 내기고, 주방 일은 주방 일이지. 이 업무는 원래 주방 막내가 하는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테오를 보니, 이건 사실인 모양. 딱히 이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매일 이 작업을 하면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이런 단순 업무에 묶여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시간에 새로운 레시피를 익히는 편이 도움이 되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길은,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육수, 오늘 중으로 쓸 거야?”
“그건 왜?”
“기름을 걷어내는 방법이 있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거든.”
“얼마나?”
“저녁에는 다 될 거야.”
“뭐, 저녁?”
알랭은 반사적으로 신경질을 냈지만, 곧 표정을 다시 추슬렀다. 그리고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방법을 알려줬다. 네가 그걸 거부하고 네 방식대로 한다고 한 거고.”
“그래.”
“나중에 윗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책임 못 져. 네가 해명해.”
드디어 사냥감을 잡았다고 좋아하는 모습.
하지만 허가는 떨어졌다.
한길은 바닥에 있는 커다란 육수 통을 주방과 연결된 내뜰로 옮기기 시작했다.
주방은 열기로 가득했지만, 밖은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웠다. 잠시 나가 있는 동안에도 손이 얼얼해질 정도였으니까.
‘겨울이어서 다행이네.’
이 시대에는 냉장고가 없지만, 이 정도면 자연이 냉장고 역할을 해줄 거다.
처음에는 한심하다는 듯이 코웃음만 치던 알랭도, 궁금했는지 어느새 내뜰로 나와 한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건데?”
“식혀 뒀다가 저녁에 하게.”
“참나. 너, 주방에서 제일 해서는 안 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게으름피우는 거. 미뤄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다 하기 전에는 집에 안 보낼 거니까.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놓고 가야지.”
“그럴 일은 없어.”
“뭐, 마음대로 하시던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알랭은, 걸음을 멈추고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밖에 둘 거면 반대쪽 벽면에 세워. 이쪽은 자주 이용하는 통로라 실수로 엎을 수 있으니까.”
한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소중한 육수가 잘못되는 건 볼 수 없는 모양.
상황이 이래서 그렇지, 알랭 자체만 보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요리사로서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는 꽤 마음에 들었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오자, 알랭이 오전에 조리한 레스토랑을 확인하고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떼어낸 후 뚜껑을 열자, 내부에 가둬진 김이 한꺼번에 쏟아 나와 자옥한 안개를 이루었다. 강렬한 육향이 코를 찔렀다.
냄비 안에는 잘 삶아진 고기와 채소, 그리고 진한 수프가 고여 있었다.
알랭은 고기를 별도의 작은 냄비에 옮겨 담고, 수프는 기름을 제거한 후 소금 간을 해주었다.
“간은 이 정도가 딱 좋아. 나머지도 이렇게 맞춰.”
한길은 국자를 건네받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으로 맛보는 ‘파리 제일의 요리사’ 요리였으니까.
후후 불어가며 수프를 홀짝이자, 농후한 육향이 입안에 휘몰아쳤다.
밀도 높은 액체가 미끄러지듯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고, 위장 안에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동시에 온몸에 후끈할 정도의 온기가 퍼져나갔다.
굉장히 묵직한 맛.
한 입만 먹어도 속이 든든했다.
‘이건 수프가 아니라 진액인데?’
물 한 스푼 넣지 않고 만든 수프다.
오로지 육즙과 양파즙만으로 만든 수프.
그만큼 향이 진했지만,
‘많이는 못 먹겠네.’
현대인의 입맛에는 너무 과했다.
이 묵직함을 상쇄시켜줄 산미가 전혀 없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양념 하나 없는 갈비찜을 블렌더로 갈아서 주스로 먹는 느낌. 맛은 있지만, 더 먹으려면 쌈 채소가 필요했다.
흔히 프랑스 요리는 느끼하다는 평을 받는데, 이 수프는 느끼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기름기가 많아서 니글거리지는 않았다.
느끼함보다는 무게감.
한 그릇에 소, 양, 닭 한 마리를 통째로 갈아 넣은 듯한 묵직함이 특징이었다.
나머지 냄비의 내용물을 처리하자, 알랭이 다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대강 그린 약도가 쥐어져 있었다.
“납품하는 여관 위치. 한 곳에 한 통씩이니까 갔다 와.”
#
‘배달은 오랜만이네.’
아마 10년 만인 것 같다.
각종 배달 알바를 섭렵한 한길이지만, 이번 배달은 조금 낯설었다. 냄비를 든 채로 걸어서 이동해야 했으니까.
무게도 무게지만, 북적이는 거리를 이동하는 게 더 고역이었다.
여관이 있는 골목길은 1차선 도로 정도의 너비. 사방에서 인력거와 짐꾼들, 행인들이 부딪혀왔고, 그럴 때마다 냄비 속 내용물을 쏟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결국 여관에 도착할 때는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레스토랑 배달왔습니다.”
“못 보던 얼굴이네? 새로운 견습생?”
“네.”
“들어가봐.”
주방에는 한 명의 요리사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견습생을 새로 뽑은 건가?”
“아직 예비입니다.”
“그래? 그건 이쪽에다 옮겨줘.”
요리사는 장작불 위에 걸려있는 냄비를 가리켰다. 냄비에 내용물을 옮긴 후, 한길은 빈 통을 들고 다시 무티에르의 작업실로 향했다.
이 작업을 9번 더 해야 한다.
‘이것도 몇 시간은 잡아먹겠네.’
여관은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지만, 하루에 10통을 배달하려니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둘이 나눠서 하면 조금 부담이 줄겠지만, 한길과 같은 견습생 후보인 파비앙은 다른 메뉴를 만들고 있었다. 파비앙은 레시피를 알고 있었으니까.
‘빨리 레시피를 익혀야겠네.’
모르는 게 많을수록 요리와 관련 없는 노동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자칫하면 일주일 동안 이런 잡일과 심부름만 하게 될 가능성도 높았고.
‘그래도 모처럼 나왔으니까 제대로 보고 가야지.’
납품을 마친 한길은, 다시 첫 번째 여관으로 향했다. 배달 업무를 맡았다고 해서, 정말 배달만 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왜 또 왔어?”
“주방에 냄비 뚜껑을 놔두고 온 것 같아서요.”
“쯧쯧, 정신이 없기는.”
첫 방문 시 한길은 주방 작업대 밑에 뚜껑을 숨겨뒀었다. 다시 찾아갈 구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뚜껑을 놔두고 왔는데, 잠시 찾아도 되겠습니까?”
“아씨, 바쁜 시간에! 방해 안 되게 찾아! 다른 건 일절 건드리지 말고!”
한길은 작업대를 기웃거리며 뚜껑을 찾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곁눈질로 요리사가 작업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곳에 다시 돌아온 이유.
레스토랑이 손님들에게 나갈 때 어떻게 플레이팅 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동그란 빵에 칼집을 내서 내부를 비워냈다. 그리고 그 안에 잘게 다진 고기를 채워 넣은 후, 수프를 한 국자 담았다.
‘비슷하네.’
외관만 보면, 빵 안에 하얀 크림 수프를 넣는 빠네 수프와 상당히 유사했다. 하얀 크림 수프 대신, 묵직한 고깃덩어리와 고기 진액이 들어갔지만 말이다.
“찾았어?”
“네, 방해해서 죄송했습니다.”
주방을 나온 한길은, 이번에는 식사공간을 가로지르면서 천천히 손님들을 관찰했다.
여관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은 대개 스튜나 레스토랑, 둘 중 하나를 먹고 있었다. 옷차림을 보니 스튜는 저렴한 메뉴, 레스토랑은 조금 더 비싼 메뉴였다.
‘스튜도 고기 스튜네.’
한길이 머무는 여관에는 야채 스튜밖에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커다란 고깃 조각이 듬뿍 담긴 스튜를 먹고 있었다.
‘역시 재료가 중요한 건 아냐…’
문득 아까 시장에서 품었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이곳의 고급 요리는 비교적 평범한 재료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비싼 값을 지불하는 이유. 수프와 레스토랑의 차이가 아닐까.
‘둘 다 고기를 쓰지만…’
스튜는 물로 희석된 맛이다. 물만 넣고 끓이니 조리도 더 간편하다. 반면, 레스토랑은 압력 냄비 기술을 이용해서 진한 농축액을 만든다.
차이점은 맛의 농도.
그리고 기술.
확실치는 않았지만, 일단 그렇게 가설을 세워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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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니, 주방이 북적이고 있었다. 낮 동안 외출했던 직인 두 명, 니콜라와 라올이 돌아가며 견습생들의 작업물을 확인하고 있던 탓이다.
“육수는 다 어디 갔어?”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아직 기름 제거를 안 해서요.”
“이 시간까지? 왜?”
“신입이 해보고 싶은 게 있답니다.”
알랭 기다렸다는 듯이 일러바치자, 니콜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렇다고 그걸 가만히 놔뒀어?”
“본인이 하겠다고 했으니까요. 못 하면 밤새워서라도 시킬 겁니다.”
“쯧쯧.”
알랭은 ‘내가 뭐랬냐’하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미운 초등학생 같았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10분이면 충분합니다.”
“10분?”
“통을 옮겨야 하니 조금 더 걸릴 수 있겠네요.”
한길은 바로 내뜰로 향한 후, 육수통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육수 위에 떠 있는 기름이 노랗게 굳어 있었다. 뭉쳐있는 기름 덩어리를 꺼내는 데에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 지방은 추우면 고체화되지. 이걸 이렇게 활용할 줄은 몰랐는데?”
니콜라는 한길이 작업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별것 아닌 소소한 요령이지만, 이 시대는 냉장고가 없으니 잘 모를 수도 있다.
한 번이라도 한겨울에 육수를 밖에 내놓았다면 알겠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이곳 요리사들의 특성상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는 듯했다.
“시간도 절약되고, 기름도 더 꼼꼼하게 걷어낼 수 있고 좋네. 응용력이 좋은걸?”
“운이 좋아서 발견한 요령이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재능이 운이지! 그러고 보니 이 시기에 와서 견습생 후보가 된 것도 운이 좋네.”
니콜라는 한길이 보여준 방법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앞으로 겨울에는 육수 기름을 이렇게 걷어내. 남는 시간에 레스토랑 하나를 더 만들어도 되겠는걸? 아, 그리고 오늘 마스터는 늦으시니 저녁은 우리끼리 먹으라는데, 지금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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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1층에 마련된 다이닝룸에서 먹었다.
메뉴는 ‘프랑스식 부이(french bouilli).’
육수를 만들 때 사용한 고기에 소금 간만 한 요리로, 소고기 수육에 가까웠다.
“그런데 알랭이랑 파비앙은 어떻게 아는 사이였더라?”
직인인 니콜라와 라올은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제법 왁자지껄했다.
“제 처남이에요.”
“아, 그랬지? 이거, 파비앙이 안 뽑히면 마누라한테 혼나겠는데? 특훈이라도 해줄까?”
“그러면 고맙죠, 하하.”
알랭이 기혼자라는 소리에 하마터면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갈 뻔했다. 아무리 봐도 이제 막 성인이 될 듯 말 듯 한 나이로 보였으니까.
“파비앙은 이전에 어디 일했는데?”
“로티세리요.”
“좋은 처형 뒀네! 그래, 로티세리는 이제 미래가 없어. 그에 반해 트레퇴르는 한번 터지면 크게 터지잖아? 잘 옮겼어!”
“그런가요?”
“당연하지! 다른데 볼 것도 없이 우리 마스터를 봐! 지금 이 건물이 마스터 거거든. 우리 마스터가 워낙 소박해서 그러지, 이것 말고도 부동산으로 번 돈이 어마어마할걸?”
“그래요?”
“20년 전에 파리 인근에 땅을 샀다고 들었거든. 지금 귀족들 별장이 들어선 그 동네, 있잖아. 아마 엄청 벌었을걸? 진짜 나도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곳에 투자할 텐데…”
“이왕 돌아갈 거면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미시시피 회사 지분을 샀어야지! 폭락하기 직전에 팔았으면 지금쯤 으리으리한 저택 생활하고 있겠지.”
절로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화였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판교와 분당의 땅을 사거나 특정 회사의 주식을 살 거라고 꿈꾸는 현대인들과 똑같았으니 말이다.
한길의 웃음이 눈에 띈 건지, 니콜라가 이번에는 이쪽에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마르셀은 첫날인데 어땠어?”
“의미 있은 하루였습니다.”
“뭐 궁금한 건 없고?”
있긴 했다. 어차피 알랭은 답해주지 않을 테니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늘 내내 육수만 만들어서요. 그나마 판매한 요리는 레스토랑뿐이고…”
“그래서?”
“이대로 유지가 될까,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하하하!”
한길의 말에 니콜라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맞아. 마르셀은 파리가 처음이라고 했지? 파리는 유럽 그 어느 도시와도 달라. 여기는 프랑스 전역의 귀족들이 모이는 곳이거든.”
“귀족?”
“베르사유에 방이 있는 분들도 파리 시내에 타운하우스를 하나씩 두고 있어. 베르사유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예 파리에 진을 치고 초청장이 오길 기다리고 있고. 듣자 하니 다른 나라에서는 귀족들이 각자의 영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던데, 파리는 다르거든. 영지로 돌아가는 걸 귀양 간다고 생각하니까. ”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그럼! 돈을 벌려면 귀족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하잖아? 연회 한번 열어주면 얼만데! 연회가 아니라 수시로 디너파티도 여니까, 백날 고생하느니 귀족 고객 하나 잡는 게 훨씬 좋지. 우리도 무슈 네베르와 계약이 되어 있어서 일주일에 두 번, 연회나 디너를 차려주거든. 남는 시간에 부업으로 레스토랑 납품을 하거나 다른 손님을 받는 거고.”
“그렇군요.”
연회 요리사들은 프리랜서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귀족들의 개인 요리사와 프리랜서의 중간쯤. 일상식은 만들지 않지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한 명의 요리사를 지정해서 고용하는 듯했다.
“그나저나, 마르셀 너는 결혼 안 했냐?”
“아직 안 했습니다.”
“마음에 둔 사람은 없고?”
니콜라는 업무 얘기가 싫은지,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기던 그때,
“마스터?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무티에르가 들어왔다.
“저녁은 드셨습니까? 차려드릴까요?”
“아니, 입맛이 없어서 오늘은 건너뛰도록 하지.”
무티에르는 모자를 벗은 후, 식탁의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일은 있지. 있는데… 아니, 이건 식사를 마친 후에 얘기하도록 하지.”
누가 봐도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