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2화(22/325)
< 22. 이제 졸업 해야지? (수정) >
“만두? 만두 알지.”
그 말과 함께 루시아는 손을 입술에 갖다 대고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그런데 하얀 수프랑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루시아가 말하는 만두는, 물론 한국식 만두는 아닐 거다. 한길 역시 그런 의도로 질문을 한 게 아니었고.
이탈리아식 만두라고 불리는 요리.
뇨끼(gnocchi)가 있는지 궁금했었다.
뇨끼는 감자로 만든 파스타의 일종이다.
감자는 미대륙이 발견된 이후에 유럽으로 넘어온 작물이니, 고대 로마에는 당연히 없겠지만.
감자가 들어오기 전, 비슷한 원형 요리가 있는지 궁금했다.
특히 밀 농사를 짓는 로마에서라면……
“이렇게 밀가루로 동그랗게 빚은 만두 말하는 거 맞죠?”
“아니, 납작한 만두 말하는 거 아냐? 버터랑 우유 넣고 만든 거. 가끔 명절 때 먹는데?”
루시아가 손발을 섞어가며 설명하는 로마의 뇨끼는, 현대의 뇨끼와는 다른 모양새였다.
그리고.
한길이 잘 아는 요리와 매우 닮아 있었다.
‘다행이네….’
절로 미소가 번졌다.
한길이 로마에서 요리를 할 때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너무 생소한 요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국적만 달라도 입맛이 달라지는데.
시대까지 다른 사람들의 입맛이 어떨지 모르니까.
예를 들면, 아무리 맛있어도 로마 사람들에게 활어회를 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기하다며 맛있게 먹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래서 최대한 로마에서 본 음식과 비슷하되, 호기심을 줄 정도로 살짝 비튼 요리를 만들어왔다.
파전은 처음 와서 먹었던 오믈렛 같은 전을 보고 만든 것이었고, 튀김도 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밀가루 반죽을 두른 전을 보고 만들어봤었다.
‘뇨끼가 익숙하다면…..’
아마 이것도 먹히겠지.
외국인들은 뇨끼를 이탈리아식 만두라고 부르지만, 한국인들은 다른 표현을 쓴다.
이탈리아식 수제비.
실제로, 루시아가 묘사하는 외형은 수제비에 더 가까웠다.
“왜, 뭘 더 만들려고?”
“네, 수프에 넣을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이건 루시아가 해야 하니까 옆에서 같이 해요.”
수제비는 아마추어가 만들기에 나쁘지 않다. 모양이 조금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매력이 있고.
조금만 가르쳐줘도 혼자 할 수 있을 거다.
이제 슬슬 루시아도 한길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한길은 조리대를 기웃거리며 두 개의 가루를 찾아왔다.
밀가루와 보리가루.
마음 같아서는 밀가루만 쓰고 싶었지만, 밀가루는 보리가루의 두 배 가까운 가격이었다.
서민들이 드나드는 루시아네 식당에서 사용하기에는 비용이 부담된다.
보리가루는 찰기가 많아 쫀득한 식감을 더할 수 있는데다가 고소한 향까지 입힐 수 있다.
게다가, 로마인들에게 친숙한 가루이기도 하다. 든든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운동선수나 군인, 검투사들의 주식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특히 검투사는 “보리를 먹는 사람들(hordearii)”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다.
한길은 밀가루와 보리가루를 반반 섞어준 후,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것도 중요해요. 반죽할 때 물은 찬물 말고 꼭 뜨거운 물을 쓰세요.”
“흠…. 왜?”
“찬물만 쓰면 안 뭉쳐져서 힘 다 빠져요. 그리고 이래야 쫀득하거든요.”
뜨거운 물을 사용해서 익반죽하면, 호화 현상을 통해 전분이 더 많은 물을 흡수한다.
적당히 반죽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 이제는 글루텐을 만들 차례.
치대기 과정이다.
“이렇게 반죽을 밀고 접고 돌려요.”
“이렇게?”
“중요한 건, 계속 새로운 면이 접촉되어야 해요.”
반죽의 쫀쫀함을 담당하는 글루텐은 모든 면을 주물러줘야 고루 생성된다. 내부에 있는 반죽까지 글루텐이 제대로 형성되도록 펴주고 접어주는 과정을 반복해야 식감이 좋아진다.
루시아는 제법 야무진 손길로 반죽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조물조물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차올랐다.
“나도 꽤 하지 않아?”
“이제 슬슬 조수는 졸업해야 하니까요.”
“그래? 그렇지? 하얀 수프는 거의 다 내가 했으니까. 반죽까지 만들면 내가 혼자 다 만드는 요리잖아?”
“맞아요, 재능 있어요.”
“정말?”
요리는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과정을 즐길 줄 안다면 그게 재능이다.
실제로, 루시아는 사골국의 기름 걷어내는 작업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정을 갖고 임했었다.
“진심이에요. 루시아는 조금만 배우면 곧잘 할 거예요.”
완성된 반죽을 잠시 상온에 발효시키고 살짝 부풀어 오른 반죽을 들어 올렸다.
“자, 이게 제일 중요한 마지막 단계에요.”
한길은 아직 끓고 있는 사골국 위에서 반죽을 주욱 늘려서 잡아 뜯은 후, 국물 안으로 퐁당 빠트렸다.
“뭉친 부분이 있으면 안 되고, 두께가 똑같아야 해요.”
반죽은 손에 끈끈하게 달라붙어서 뜯어내는데도 요령이 필요했지만, 서너 번 반복하니 루시아도 곧잘 따라 하기 시작했다.
넓적하게 퍼진 한길의 수제비와 달리, 루시아의 수제비는 조금 더 작고 몽톡한 편이었지만, 그건 그대로 귀여운 맛이 있었다.
보글보글 끓는 국 안에서 수제비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시식의 시간.
“어때요?”
“흠….”
루시아는 수제비를 맛본 후,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마르쿠스, 미안한데. 내가 만든 게 더 맛있는 것 같은데?”
#
‘아이고 머리야.’
목수인 가이우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공방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제는 모처럼 커다란 거래가 들어와서 기쁜 나머지, 과음하고 말았다.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위액이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발걸음은 루시아의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삶의 낙이 되어버린 튀김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향긋하다고 생각했던 튀김의 기름 향이 오늘따라 니글니글하게 다가왔다.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오늘은 무리인가?’
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코끝에 처음 맡는 향이 다가왔다.
그 냄새를 쫓아 시선을 돌려보니, 카운터 위에는 처음 보는 메뉴가 두 개나 있었다.
‘우유?’
뽀야면서도 맑은 액체는 얼핏 보면 우유 같았지만, 새하얀 우유보다는 투명한 빛이 감돌았다.
그 옆에는 갈색의, 채소가 잔뜩 들어 있는 수프도 있었고.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루시아가 생글거리며 다가오자, 가이우스가 곧바로 질문했다.
“이 하얀 건 뭐죠?”
“사골국이라는 거에요.”
“일단 하나 주세요.”
다른 메뉴의 이름이 뭔지 물어보려다가 포기했다. 아직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세상이 팽글팽글 도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혼란을 뚫고 사골국의 구수한 향만이 또렷하게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메스꺼운 속을 달래며 테이블에 앉자, 잠시 후 그릇 한가득 하얀 사골국이 담겨서 나왔다.
어딘가 윤택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액체였다.
고급진 벨벳처럼.
습! 스습!
숟가락에 담긴 국물을 흡입하자, 뜨끈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스르르 움직였다. 입에서부터 시작된 온기는 부드럽게 흘러내려 배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쓰린 위장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스습!
다시 한 숟가락 목구멍으로 넘기자, 위에 얇은 보호막이 생긴 것 같은 감각과 함께 술에 빼앗겼던 생기가 다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후후 불어가면서 사발째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 마셨다.
매끄러운 기름처럼 따스한 온기가 온몸에 퍼져나갔다.
“크으~ 좋다!”
저도 모르게 걸걸한 소리가 나왔다.
아까부터 위벽을 긁어대던 날카로운 감각이 사라지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릇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수저를 들고 그 안에 있는 건더기를 건져냈다.
울퉁불퉁, 투박한 모양의 덩어리는 국물을 머금고 있어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
쩝쩝!
덩어리는 씹히자마자 입안에 찰싹 달라붙었다.
처음 맛보는 쫀득함.
씹으면 씹을수록 반죽에 스며들었던 국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며 입안에서 잘바닥거렸다.
후루룩!
쩝쩝!
국물과 건더기를 번갈아 가며 먹자, 쪼잔하게 토라져 있던 위가 다시 부풀어 올랐다.
이마에 땀이 조금씩 맺히면서, 손끝에 다시 활력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느새 혼탁했던 시야와 우중충한 정신도 맑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릇은 비어 있었다.
‘하나 더….. 는 무리겠지?’
아쉬움이 남았지만, 포만감이 상당해서 당장 한 그릇을 더 먹는 건 무리였다.
새로운 수프도 먹어보고 싶고, 매일 먹던 튀김도 먹고 싶었지만 당장은 배 안에 남는 공간이 없었다.
‘그래, 하루에 한 끼만 있는 건 아니니까.’
저녁에 온다면……
그쯤 되니 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골라 먹을 메뉴가 네 개나 되는데, 뭘 먹어야 하지?
끄응.
공방에 도착할 때까지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어두운 안색의 가이우스를 보고 동료인 파비우스가 다가왔다.
“왜 좋은 일 있었는데 얼굴이 그리 어두워?”
“아니, 루시아네에 새로운 메뉴가 생겨서.”
“새로운 메뉴?”
파비우스의 눈이 번쩍 빛났다.
가이우스와 파비우스는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파비우스는 허세가 심한 가이우스를 불편해했었고, 가이우스 역시 떨떠름한 표정의 파비우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아의 튀김을 계기로 둘 사이에는 이상한 친밀감이 돌고 있었다.
“이번에 신메뉴로 수프가 나오더군. 이게 숙취에는 아주 그냥 예술이야.”
“그래? 오늘 저녁은 루시아네로 해야겠군.”
“마침 나도 다시 가려고 했는데.”
그 순간, 가이우스 머리에 번뜩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왜 지금껏 이 생각을 못 했지?
“신메뉴가 두 개던데, 같이 가서 반반씩 나눠 먹을까?”
“나눠 먹는다고?”
“혼자 먹기에는 배가 너무 부르더라고. 내 아내도 부르면 튀김이랑 파전도 같이 먹을 수 있을 텐데.”
#
‘이 정도면 포인트는 걱정 없겠네?’
다행히 새로운 메뉴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루시아의 식당 앞에는 어느새 메뉴별로 네 개의 줄이 생겨 있었다.
평상시에는 포장 손님만 많았는데, 먹고 가겠다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한상차림을 주문하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일단 포인트는 벌었고, 이제는 그다음인가?’
지난번 퀘스트에서 에우리사케스를 만난 후, 한길은 로마의 인물들에 대해 더욱 많은 조사를 했었다.
그리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에 몰랐던 한 인물을 알게 되었다.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왜 히든 스테이지가 자신을 로마로 보낸 건지 알 것 같았다.
분명 이 사람을 만나라고 보낸 거다.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
(Marcus Gavius Apicius).
아피키우스는 희대의 미식가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로마 제국 전체를 누비며 최상의 식재료를 찾아다녔고, 수많은 조리법을 개발해 냈었다.
아프리카 연안에 가재가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단숨에 배를 끌고 아프리카까지 찾아갔다는 일화도 있다.
황제의 아들에게 미식 조언을 해주는가 하면, 그가 여는 연회는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항상 화제를 몰고 왔었다.
미식에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전 재산을 요리에 탕진하고 만 그는, 현재 기준으로 약 50만 불 정도 되는 재산만 남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전해진다.
앞으로 자신의 혀를 만족시킬 요리를 먹을 수 없음에 좌절하며 최후의 만찬을 연 것.
최고의 요리만을 곁들인 연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미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남자.
그가 발명한 수백 개에 달하는 레시피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며 그의 이름을 딴 조리서로 엮어졌다.
10권에 달하는 조리서는 로마제국이 멸망 이후에도 살아남았으며, 서양 요리 역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유럽 곳곳에 발견하는 요리에서 아피키우스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할 정도.
문제는, 그는 로마에 거주하지 않았다.
그리고 워낙 부유한 인물이라 평범한 서민 식당 조리사인 한길이 막무가내로 찾아갈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차근차근 식당을 키워나가면 언젠가 찾아올까?’
이 당시 로마의 문서들을 보면, 귀족들 사이에서도 서민 식당을 드나드는 귀족들을 비아냥거리는 글들이 발견되었다.
즉, 맛만 있으면 귀족들도 서민 식당에 찾아왔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현재로서 떠오르는 방법은 그뿐이었다.
마음을 다시 잡고 요리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던 그때,
“오랜만이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들어보니, 한길의 눈 앞에 긴 백발의 정정한 노인이 서 있었다.
일전 퀘스트에서 만났던 에우리사케스였다.
“진짜 오셨네요?”
“저번에 초청하지 않았던가? 한번 와 봐도 된다고 하길래 와보았지.”
“아, 네…. 그게….”
한길은 일순 답을 잊고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에우리사케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자물쇠.
그의 머리 위에 또 한 번 자물쇠가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전의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한 이후에 사라졌던 자물쇠가, 다시 생성되어 있었다.
[히든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히든 퀘스트 ? 소개장>.
목표: 에우리사케스가 만족할만한 요리를 만드세요.
제한 시간: 1시간
보상: 소개장.
+
퍼즐처럼 모든 조각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에우리사케스는 황실에도 빵을 납품하는 부유한 제빵사.
아피키우스는 황제의 아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미식 전문가.
그리고……
소개장.
< 22. 이제 졸업 해야지?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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