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2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20화(220/325)
220. 새로운 고객
“무슈 네베르가 대사로 임명되셨다. 다음 주에 로마로 가신다더군.”
“축하할 일이네요. 출세하신 거니까…”
“저희 연회가 효과가 좋긴 좋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무슈 네베르는 무티에르의 고정 고객.
일주일에 두 번 연회를 의뢰하는 귀족이다.
그런 고객이 있었기에 여유롭게 주방을 운영할 수 있었는데…
말하자면, 가게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주요 고객을 갑자기 잃게 된 셈이다.
“상임 대사로 발령받으신 건가요?”
“그렇다더군.”
“그러면 한두 달 후에 돌아오시는 건 아니겠네요.”
“오신다면 몇 년 후겠지.”
“….”
“….”
한동안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 알겠지만 시기가 좋지 않아. 앞으로 한동안 연회 철이지만, 대부분의 귀족은 이미 요리사를 정해두었지. 지금 와서 갑자기 바꾸지는 않을 거다.”
“….”
“3월 즈음에 무슈 네베르의 사촌이 파리로 온다더군. 소개해준다 하셨지만, 그것도 확실한 건 아냐. 그때까지 마냥 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석 달이나 쉬면 파리에서는 은퇴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여전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무티에르는 덤덤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한동안 자리를 비울 거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발로 뛰어다녀야 하니까. 그동안 니콜라가 책임지고 이곳을 운영하도록.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받고, 레스토랑 납품도 늘리고, 장소 대관도 매일 한다고 생각해.”
“네, 마스터.”
이윽고 무티에르의 시선이 한길과 파비앙에게로 향했다.
“신입들에게는 미안하군. 한동안은 전쟁이 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주리라 믿겠네. 난 이만 들어가도록 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무티에르는 다이닝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남은 인원들은 주섬주섬 상 위에 차려진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다.
“전쟁….”
한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바로 옆에서 니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연회 요리 쪽은 경쟁이 하도 과열돼서 전쟁이라고 부르거든. 갑자기 길드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말이야. 우리야 고정 고객이 있으니 멀찍이서 구경만 했는데, 오늘부터는 참전하게 된 거지.”
“그래도 ‘파리 제일의 요리사’인데 괜찮지 않을까요?”
“‘파리 제일의 요리사’는 무티에르만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름값이 있으면 이상한 날파리도 더 많이 꼬이는 법이고. 후우…”
니콜라는 땅이 꺼질세라 한숨을 내쉰 후, 힘없이 한길과 파비앙을 바라봤다.
“뭐, 그건 이쪽에서 고민해야 할 일이니까. 둘은 이만 들어가 봐.”
#
그 후로 며칠.
전쟁이라고 했지만, 별일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티에르가 고객 확보를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지 몰라도, 견습생들에게는 매일 똑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한길은 출근하자마자 장을 봤고, 여관에 납품할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납품 물량이 10통에서 20통으로 두 배나 늘었지만, 파비앙과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업무량은 첫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 업무가 끝나면 다음은 알랭의 개인 교습 시간.
연회 의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주방이 멈춘 건 아니었다. 인근 상인들이 소규모로 요리 주문을 했으니까.
그뿐 아니라 작업실 1층에 있는 다이닝룸에서 식사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집에서 연회를 열 수 없는 손님들을 위해 장소를 대관해 주는 서비스였다.
‘이게 레스토랑 아닌가?’
메뉴판이 없고 손님은 한 번에 한 팀만 받았지만. 어떻게 보면 셰프의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원테이블 레스토랑 같았다.
파리에는 이런 장소가 여럿 있다고 했다.
무티에르는 평소에 이런 대관 의뢰는 받지 않았지만, 지금은 손님을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 대부분은 ‘쁘띠 부르조아.’ 파리에서 유명한 가발 장인, 보석 세공인, 상인 등의 중산층 사람들이었다.
‘귀족 요리를 보고 싶었는데…’
무슈 네베르가 대사 임명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한길은 귀족 요리를 경험하고 있을 터였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차라리 잘 된 거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설령 귀족 요리를 만든다 해도, 지금의 한길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으니까. 아직 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첫인상은 중요하다.
처음으로 무티에르와 함께 하는 귀족 연회에서는, 최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게 좋고.
아직 프랑스 요리의 특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 틈에 확실히 배워두는 게 좋을 터.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온 놈이 쿨리도 모르다니, 진짜 기본이 안 되어 있네.”
이제 슬슬 질릴 만도 하건만, 알랭은 여전히 불만투성이였다.
– 기본이 없다.
이 말은 현대에서도 하비에르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하비에르가 어떤 의미로 말한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알랭이 말하는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알랭의 ‘기본’은 칼을 사용하는 법, 재료 손질, 불 조절, 재료 조리하기 등의 기본이 아니었다.
프랑스 요리의 기초.
‘퐁 드 퀴진(fond de cuisine)’을 모른다는 말이었다.
이 주방에서는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만들어야 하는 기본 준비물이 있었고, 이를 통틀어 ‘퐁’이라고 불렀다.
첫날 만들었던 부용(bouillon)을 비롯한 쿨리(coulis), 쥐(jus), 미르포아(mirepoix), 콩소메(consomme) 등이다.
부용만 해도 그 종류가 어마어마했다.
소고기만 사용하는 육수, 송아지 고기만 사용하는 육수, 닭고기만 사용하는 육수, 소고기, 송아지 고기, 가금류를 함께 사용하는 육수. 여기에 생선으로 만든 밑 국물, 갑각류로 만든 밑 국물, 채소만 사용하는 채수까지.
익혀야 하는 레시피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열성적인 선생님을 둔 덕에 부용 과정은 사흘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다음 과정은 쥐(jus).
현대에서 글레이즈(glaze) 혹은 그레이비(gravy)로 불리는 걸쭉한 소스다.
소고기 쥐(jus de boeuf)는 팬 위에 돼지기름을 두르고 고기와 양파를 굽다가, 갈색으로 그을리면 고기를 빼내고 육수를 넣어 갈색 소스를 만든다.
송아지 고기 쥐(jus de veau)는 고기, 양파, 당근, 파스닙, 셀러리를 넣고 동일한 과정. 마무리에 버섯을 추가하는 게 조금 달랐다.
쥐 과정 다음은 쿨리(coulis).
‘이것도 용어가 다르네.’
크리스토프가 빌려준 백과사전에 의하면, 쿨리는 과일이나 야채를 갈아서 걸쭉하게 만든 퓌레였지만. 이 시대의 쿨리에는 고기가 들어갔다.
“이건 일반 쿨리(coulis general). 만드는 건 알아서 보고.”
알랭은 팬 안에 송아지 안심, 햄, 당근, 파스닙, 양파를 넣고 기본 부용 한 국자를 뿌렸다. 바닥에 육수가 자작하게 고이도록.
저온에서 이대로 달궈주다가, 고기의 색이 조금씩 변하면 화력을 키워준다.
치이이이익!
육수가 증발하고 고기가 맛깔난 소리를 내며 구워지면, 한번 뒤집어준다. 팬의 바닥에 갈색 풍미 덩어리가 생기면 고기를 빼내고 밀가루와 버터를 넣은 후, 숟가락으로 저어준다.
“다음에는 소고기 쥐랑 기본 육수를 넣어. 정확한 양이 있는 건 아니고, 색깔이랑 농도를 보면서 맞춰.”
알랭이 말하는 질감과 농도는 소스와 육수의 중간 즈음. 소스라고 하기에는 묽고, 육수라고 하기에는 탁한 연갈색의 걸쭉한 액체였다.
이 액체가 완성되면, 다시 이 안에 고기를 넣고 익혀준다. 다 익으면 고기는 건져내고 남은 액체를 체에 걸러낸다.
“이건 어디에 사용되는데?”
“어디긴 어디야. 소스 만들 때도 쓰고 요리할 때도 쓰는 거지. 퐁이라고 했잖아?”
처음에는 일부러 한길을 곤란하게 하려고 복잡한 레시피만 골라서 알려주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테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걸 보면.
‘역시 프랑스 요리는 어렵네.’
게임으로 치면 최종 보스였다.
과정이 복잡한 건 물론이거니와, 재료나 조리법을 약간만 변형하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걸 일일이 암기해야 했다.
‘다양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것도 아닌데…’
스카피의 다양성과는 달랐다.
스카피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무역이 활발한 이탈리아에는 각 지역의 재료들이 모였고, 스카피는 모든 지역의 특산물을 고루 사용했다.
콩을 써도 각기 맛이 다른 10가지의 콩을 사용했고, 비슷하지만 풍미가 살짝 다른 아티초크와 카르둔을 구분해서 사용했다.
이곳에서는 소고기, 송아지 고기, 닭고기 등의 기본 육류. 당근, 양파, 파스닙 등의 기본 채소를 사용했지만, 다양한 조합으로 수십 가지 ‘퐁’을 만들었다.
‘재료가 다양한 게 아니라 조미료가 다양하다고 보는 게 맞으려나.’
한식으로 치면, 요리하기 전에 수십 가지의 간장, 식초, 된장, 고추장 등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곳의 ‘퐁’은 된장이나 식초처럼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 전에 미리 만들어두어야 했고, 그게 견습생의 주 업무였다.
“다음은 가재 쿨리. 이것도 모르지?”
“몰라.”
“후우…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알랭이 다시 투덜거리자,
“악!!! 그만 그만! 나야말로 말이 안 나온다. 넌 입도 안 아프냐? 난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
참다못한 니콜라가 폭발했다.
“에휴, 방해해서 미안한데 알랭, 너는 완두콩 쿨리 좀 만들고 마르셀은 부용 라프레시송이랑 부용 프렝타니에 좀 더 만들어. 곧 떨어질 것 같으니까.”
“네.”
부용 라프레시송은 ‘생기를 채워주는 부용’이라는 의미다. 양상추, 리크, 보라지, 소렐, 엔다이브, 민들레, 비트 등을 송아지 육수에 삶은 육수다.
부용 프렝타니에는 ‘봄 채수’라는 뜻으로, 버터에 비트와 소렐, 양상추, 파 등을 볶다가 물을 넣고 삶아서 걸쭉하게 졸인 채수다.
한길이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등 뒤에서 니콜라와 테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애 맞아? 연기하는 거 아냐?”
“인제 와서 그런 말씀 하셔도 내기는 못 물립니다.”
며칠 전, 니콜라는 한길과 알랭의 내기에 대한 내용을 전해 들었다. 한길이 실수하면 자진해서 이 주방을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판돈을 걸었다. 테오는 한길이 이긴다는 쪽에, 니콜라는 한길이 진다는 쪽에.
“아니, 고작 며칠 안에 어떻게 저걸 다 익혀? 심지어 실수 한번 없다고? 이게 말이 돼?”
“그래도 못 물립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냐고. 남들은 족히 반년은 걸리는 걸, 일주일도 안 돼서 다 한다고? 그게 가능하면 괴물이지.”
둘이 들으라는 듯이 계속 대화를 이어가자, 한길이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선생님이 좋았으니까요. 전부 알랭이 열심히 가르쳐준 덕분입니다.”
“참나, 순진하긴. 쟤가 하루에 10개씩, 15개씩 시키는 게 너를 위해서겠냐. 그나저나, 이 정도 속도면 이틀 후에 퐁은 졸업하겠는데?”
한길이 지켜본 바로는, 파비앙 역시 기초만 익히고 있었다. 이틀 후면, 한길은 파비앙을 따라잡게 되는 거다.
‘그런데 견습생 뽑는 건 원래 일정대로 진행되려나.’
무티에르는 일주일 후에 둘 중 한 명만 견습생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쪽에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견습생을 뽑을지는 알지 못한다. 퐁을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한길에게도 승산이 있지만.
‘요리를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그러면 조금 곤란하다.
아직 한길은 이곳의 요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조미료를 만드는 건 거의 익혔지만, 실제 요리 과정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벌써 시간이 이리됐네. 마르셀! 파비앙! 뒷일은 맡겨두고 일단 배달 좀 갔다 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니콜라와 라올이 본격적으로 요리하는 건 손님들이 찾아오기 직전. 그 시간에 한길은 항상 여관에 납품하러 가야 했다.
‘오늘은 어제 발견한 지름길로 가봐야겠네.’
동선을 다시 짜고 지름길을 알아내면서 조금씩 배달 시간을 줄이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조리 시간에 맞춰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한길이 양손에 커다란 통을 들고 달리듯이 나가자, 등 뒤로 니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달을 저렇게 열성적으로 하는 애는 또 처음이네, 참나. 별 이상한 놈이 다 들어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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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왔네?”
한길이 돌아왔을 때, 니콜라는 이제 막 플레이팅을 마친 참이었다. 결국 오늘도 요리 과정은 보지 못했다.
“뭘 그리 땀 흘리면서까지 뛰어다니냐. 어차피 돌아오면 할 일도 없는데.”
손님들이 식사하는 동안에 주방은 멈춰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코스 요리가 한꺼번에 차려지기 때문이다.
조리 업무는 없지만 알랭과 테오는 웨이터 역할을, 한길과 파비앙은 밀린 설거지를 한다.
“손님들 가셨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떠나면 상을 치운다.
니콜라는 한길이 가져온 접시를 보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앵무새들! 저런 인간들은 혓바닥을 다 잘라내야 해, 젠장.”
손님들이 요리를 남겼기 때문이다.
커다란 수프용 터린(tureen) 안에는 가재 수프가 반 이상, 또 다른 접시에는 양고기가 두 조각 남아있었다.
“이건 제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뭘 또 새삼 묻고 그러냐.”
니콜라는 잔반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한길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이곳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진하네.’
가재 수프는 바다의 풍미가 가득했다.
은은하게 버섯 향도 느껴졌는데, 버섯의 감칠맛과 묵직함이 가재의 향을 몇 배나 증폭시키고 있었다. 가재 엑기스라고 불러도 될 터였다.
양고기는 빵가루를 묻혀서 튀기듯이 구워낸 요리로, 위에 잘게 썬 파슬리가 듬뿍 올려져 있었다. 소금간 외에는 별도의 소스가 없었다. 이건 입에 착 감기면서도 맛있었다.
“원래 양고기에는 빵가루를 쓰면 안 돼. 빵이 육즙을 다 빨아들여서 건조해지거든. 파슬리를 이렇게 듬뿍 얹는 것도 앵무새 전용 요리여서 그런 거지, 쪽팔려서 원…”
‘앵무새’는 니콜라가 부르주아를 비하할 때 쓰는 표현이었다. 돈은 있지만 교양은 없고, 겉으로만 귀족을 따라 하려는 이들을 앵무새라고 불렀다.
“앵무새들은 섬세함이라는 걸 몰라! 재료 본연의 맛보다는 그냥 있는 대로 다 때려 넣는 걸 좋아하니까. 파슬리를 이렇게 얹으면 양고기 맛을 다 가리잖아. 안 그래?”
사실, 한길의 입맛에는 양고기가 더 맞았다.
파슬리의 쌉싸래하면서도 신선한 향이 양고기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었으니까. 빵가루의 바삭함이 식감에 변주도 주었고.
하지만 니콜라는 양고기보다 가재 수프를 더 고급 요리로 여기고 있었다.
‘역시 가설이 맞는 건가?’
이곳에서 중요한 건 맛의 농도와 기술이라는 가설을 세웠었다.
맛의 농도를 보면, 가재 수프의 맛이 훨씬 더 묵직하고 농밀했다.
기술적으로 봐도, 단순하게 빵가루를 묻혀서 굽는 양고기보다 가재 수프가 손이 많이 갔다. 가재의 껍질을 굽고 속살과 함께 빻아서 만든 밑 국물이 들어갔으니까.
“무식한 인간들이나 고기 타령하지. 저 인간들은 돈만 있으면 온갖 희귀 고기를 가져와서 장식해놓고, 그것도 몇백인분이나 호화롭게 차려놓고 좋다고 시시덕거릴걸? 진짜 중요한 건 밸런스와 기술인데 말이야. 무식한 앵무새들한테 고급 요리를 주는 건 재료 낭비, 재능 낭비지. 안 그래? 촌스러운 새끼들.”
“하하, 그렇네요.”
한길은 적당히 웃으며 말을 맞춰주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아피키우스 밑에서 기린 통구이를 만들고, 스카피와 함께 몇백 코스나 되는 호화로운 연회를 벌린 장본인이니 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게 맞긴 하지…’
200년 전, 1700년 전 스타일이었으니 그런 평가를 받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물론 그 요리에도 각자의 장점이 있었지만, 열을 올리는 니콜라에게 말해봐야 얻을 건 없었다.
“네, 촌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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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이후, 한길은 무티에르를 보지 못했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한길이 퇴근한 후에야 귀가했기 때문이다.
무티에르를 다시 본 건 5일이 지난 후였다.
“오늘은 나도 저녁을 들도록 하지.”
직원들이 식사하는 도중에 무티에르가 다이닝룸으로 들어온 것. 발걸음이 가볍고 표정도 좋은 걸 보니,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리를 내오자마자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무티에르가 입을 열었다.
“의뢰가 들어왔네.”
“정말입니까!”
“드디어!”
여기저기서 안도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니콜라가 기뻐하고 있었다. 그토록 혐오하는 앵무새 요리에서 벗어나게 됐으니까.
“어떤 분이십니까?”
“무슈 르 노르망 드 투르네엠 (Le Normant de Tournehem)이 조카 부부를 위한 저녁 식사를 의뢰하셨지.”
“인도 회사의 이사인 투르네엠 맞습니까?”
“아니, 페미에 제네럴 아니었나?”
“동시에 하고 있을걸? 준 귀족 아닙니까.”
자동 번역 기능 덕분에 의미는 와닿았다.
페미에 제네럴(fermier general)은 국왕을 대신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높은 직책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반응을 보니 매우 부유한 모양이었다.
“단출한 저녁 식사라 했지만, 비용은 연회에 걸맞은 금액을 제시하더군. 조카 부부의 입맛이 영 까다로우니 꼭 신경 써달라고 하면서 말이야. 귀족 연회 수준으로 생각하면 될 거다.”
“뭐든 맞춰드려야죠!”
“잘만 하면 고정 업무가 될 것 같은데,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니까. 일단 주방은 두 팀으로 나눠서 진행하도록 하지. 이번 의뢰는 나와 니콜라, 그리고 견습생 한 명만 붙고, 나머지는 평소 업무대로 한다. 견습생은 테오로 할까 하는데…”
무티에르의 말에 테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니콜라가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마스터, 정말 정신이 없으신가 봅니다. 테오는 내일이 마지막 날인데요.”
“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던가.”
“신입도 둘 중 한 명만 남겨야 합니다.”
“아, 그랬지. 그 결정은 며칠만 더 미뤄야 할 것 같군. 지금 당장은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없으니 말이야. 그래도 괜찮겠나.”
무티에르가 형식적인 질문을 했고, 한길과 파비앙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니콜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알랭이 저희 쪽에 오면 저희야 편하겠지만, 저쪽은 신입 두 명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으니, 차라리 저희 쪽에 신입을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입을 데리고 일할 수 있겠나.”
“연회 메뉴야 사전에 정해진 대로 하면 되니까 오히려 변수는 적지 않습니까. 그리고… 큭!”
니콜라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평범한 신입은 버겁겠지만, 조금 괴물 같은 놈이 있어서 말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