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2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21화(221/325)
221. 덧셈과 곱셈의 차이
다음날.
알랭과 파비앙은 여느 때처럼 장을 보기 위해 외출했지만, 한길은 함께 나가지 않았다. 오늘 내일은 무티에르의 보조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놀고 있을 순 없어 어질러진 주방 도구를 정돈하고 있자니,
“마르셀, 여기서 뭐 해? 빨리 나와.”
니콜라가 한길을 다이닝룸으로 불렀다. 다이닝룸 테이블 위에는 깃펜 여러 개가 굴러다니고 종이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글은 쓸 줄 아나?”
“네.”
“그럼 오늘 회의 내용은 네가 기록해.”
“회의요?”
“메뉴 기획해야지.”
견습생은 메뉴 기획에 참여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난 며칠간, 그 업무를 담당했던 건 직인인 니콜라와 라올 뿐이었다.
한길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을 읽은 건가. 니콜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앵무새 요리와는 차원이 다르니까.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거든. 정리할 것도 많고.”
한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깃펜을 들고 종이 위에 ‘오늘의 회의’라고 적어보니, 반듯한 프랑스어로 필기가 되었다.
“필체가 나쁘지 않네? 나는 마스터와 대화하느라 바쁠 테니 놓치지 말고 다 기록해.”
“네.”
“그게 그렇게 좋냐?”
“뭐가요?”
“그렇게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좋냐고.”
니콜라의 말을 듣고 보니, 한길의 입꼬리가 지나칠 정도로 당겨져 있었다. 그야, 메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여간, 이상한 놈이네.”
니콜라는 그런 한길을 보고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사이,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시작해 볼까?”
“예, 마스터.”
다이닝룸에 들어온 무티에르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태도로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인원은 총 4명. 무슈 투르네엠 내외와 조카인 에티올 부부뿐이고 다른 손님은 없다더군.”
“4명이라… 조금 애매하네요. 1코스로 하기에는 인원에 비해 요리가 너무 많고, 2코스로 하면 앙트르메(entremet)를 넣을 수 없고요.”
“아직 무슈 투르네엠의 성향을 알 수 없으니 안전한 게 좋겠지. 2코스로 하도록.”
“마지막 코스도 저희가 해야 할까요?”
“아니, 세 번째 코스는 페이스트리 길드에 의뢰했다더군.”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2코스로, 각각 메인 앙트레(grosse entree) 하나와 앙트레(entree) 4개로 결정하지.”
“네.”
언어는 알지만, 대화의 내용은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질문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한길은 묵묵히 종이 위에 들은 내용을 그대로 필기했다. 그러자 옆에서 한길의 메모를 힐끔거린 니콜라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마스터! 우리 신입이 촌뜨기라 설명이 조금 필요한 것 같네요, 하핫.”
니콜라는 한길의 깃펜을 앗아간 후, 종이에 동그라미를 여러 개 그렸다.
“메뉴는 이렇게 표시하는 게 좋아. 그래야 한눈에 들어오고 대칭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이건 기본이니 익혀둬,”
“네.”
니콜라가 그린 동그라미는 총 10개.
코스별로 등장하는 요리를 동그라미로 표시한 거다.
한 코스당 동그라미는 5개.
한가운데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있고, 그 주위에 동서남북으로 작은 동그라미 4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큰 동그라미는 메인 앙트레.
작은 동그라미는 일반 앙트레.
‘자리가 정해진 건가?’
이 시대의 테이블 세팅은 현대와 달랐다.
현대의 레스토랑에서는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등이 순서대로 한 접시씩 나온다. 이런 형식의 서비스를 러시아식 서비스 (service a la russe)라고 부른다.
스테이지 진입 전 벼락치기로 공부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식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1860년대 이후다.
그전에는 모든 요리가 한꺼번에 상에 올라가는 프랑스식 서비스 (service a la francaise)가 대세였다.
스카피의 시대에도 한꺼번에 여러 요리가 올라갔지만, 딱히 순서나 자리가 정해진 건 아니었다. 가장 화려한 요리를 중요한 손님 앞에 배치하는 정도.
하지만 니콜라가 그린 도면에는, 각 요리의 지정석이 있었다. 한식으로 치면, 가까운 곳에 밥그릇과 국그릇을 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반찬을 두는 것처럼.
“를르베(releve)는 메인 앙트레 따로, 앙트레도 딱 4개씩이니까 큰 문제는 없겠네요. 테린(terrine)은 닭고기가 좋겠죠? 닭은 로스트 보다는 브레이즈(braise)가 좋으니까요.”
“두 번째 메인 앙트레는 양갈비로 하지. 기본 로스트에 소스는 오렌지를 데글라쎄(deglacer) 하고.”
“첫 앙트레는 토르트(tourte)도 하나 넣어야 할 텐데. 이건 소고기로 할까요, 누른도요로 할까요?”
프랑스 요리는 조리 용어가 많다. 현대에서도 백과사전이 나올 정도였는데, 그건 이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소고기는 조금 고민되는 군. 전통 퀴진으로 할지, 누벨 퀴진으로 할지.”
“들으신 건 없으십니까?”
“알아서 해달라는데, 무슈 투르네엠은 요리에 관심이 없어 보였거든. 중요한 건 조카 부부, 그것도 마담 에티올 쪽인 것 같은데, 내가 직접 만난 것도 아니니…”
“에티올 부부면 젊고 재력도 있으니 아무래도 누벨 쪽이지 않을까요? 출신도 출신이니…”
“그러면 반반으로 하도록 하지. 소고기는 누벨로 알라 글라스로 하고.”
“네.”
암호 같은 대화 중간중간에 가끔 신기한 단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요리’라는 뜻으로, 1970년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존의 무겁고 복잡한 프랑스 요리에서 탈피하는 요리로 아는데…
‘이 시대에도 이 표현을 썼었나?’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한길은 질문하는 대신 손을 놀렸다. 이해하는 내용과 이해하지 못한 내용, 가리지 않고 들리는 것은 모두 기록했다.
비록 지금은 알지 못해도, 언젠가는 이 대화를 이해할 때가 올 거다. 그때는 이 자료가 분명 도움이 될 거고.
“얼추 된 것 같네요. 마스터는 잠시 쉬고 계시죠. 나머지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부탁하네.”
10개의 메뉴를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두 시간.
무티에르는 지친 얼굴로 퇴장했고, 다이닝룸에는 니콜라와 한길만이 남게 되었다.
“장 볼 목록을 만들어야지. 일단 레시피 불러줄 테니까 정리할 수 있지?”
“네.”
“그럼 테린은 닭고기와 비둘기 한 마리씩, 가벼운 부용(maigre bouillon)을 쓰는 브레이즈로 하고 라구는 닭 볏을 쓸 거야. 슈 알라 생 클라우드는 양상추, 파르스(farce)는 송아지 안심과 햄, 소스는 스페인 소스로 하고. 소고기 알라 글라스(boeuf a la glace)는 누벨퀴진 식으로…”
“죄송하지만 니콜라…”
“왜?”
“그렇게 말해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요.”
니콜라가 알려주는 건 레시피가 아니었다. 적어도, 프랑스 요리 초보가 알아들을 수준의 레시피는 아니다.
한식으로 비교하자면, “김치찌개 만들 건데 신김치랑 참치를 넣고 물 대신 쌀뜨물을 쓰자”로 요약하는 것과 비슷했다.
김치찌개를 수없이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히 알아듣겠지만, 처음 만들어보는 외국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다른 시대에서 넘어온 외국인이라면.
“참나,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이걸 일일이 알려주는 것도, 하아…”
항상 웃는 얼굴의 니콜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길의 입장에서도 미안한 일이긴 했다.
10개의 레시피를 준비물과 조리법까지 일일이 설명해주는 일은, 못할 일은 아니어도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18세기의 ‘누벨 퀴진 식으로 만든 소고기 알라 글라스’가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아, 그 방법이 있었지!”
니콜라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돌아왔을 때는 그의 손에 작은 책 하나가 들려 있었다.
<궁중 요리와 부르주아 요리>라는 제목의 조리서였다.
“여기서 메뉴 좀 찾아보고 있어. 그동안 나도 볼일 좀 보고 올 테니까.”
스카피의 시대에도 조리서가 있었지만, 수도원이나 왕족 혹은 귀족의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일반 요리사도 구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하나 구매해두는 게 좋아 보였다. 이 시대의 요리를 파악하기에는 이만한 자료가 없으니까.
한길이 마지막 레시피를 옮겨 적었을 때, 타이밍 좋게 니콜라가 나타났다.
“다 됐지? 바꾸는 부분 알려줄 테니까 표시해. 여기 이건 소고기 부용 말고 가벼운 부용으로 바꿔. 여긴 쿨리 대신 콩소메로, 이쪽은 소고기 쥬(jus)로 하고…”
한길은 얌전히, 시키는 대로 변경사항을 표시했다. 여러 번 반복되니, 이것도 나름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퐁만 바꾸네?’
기본적인 조리법은 유지하되, ‘퐁’만 달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현대로 치면 설탕 대신 흑설탕, 간장 대신 진간장, 일반 김치 대신 신김치를 넣으라는 식의 수정사항이었다.
‘이래서 견습생들에게 퐁을 먼저 익히게 하는 건가.’
무언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요리에는 조리 용어가 많다.
브레이즈, 로스트, 데글라쎄 등의 조리기법을 뜻하는 용어. 퐁만 해도 그냥 육수가 아니라 부용, 쥬, 쿨리, 콩소메 등등.
외워야 하는 게 많아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눈에 익으니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유셰프가 프랑스 요리는 구구단이라고 했었나.’
스카피의 레시피는 용어가 많지 않았다. “토르트 팬 안에 시금치를 마늘과 볶다가 기본 향신료 조합을 넣고 육수와 졸여라” 정도의 지시여서 배우기는 편했다.
이와 비슷한 요리를 프랑스식으로 표현한다면, “가벼운 부용과 마늘로 브레이즈를 한 시금치 토르트” 같은 느낌이 아닐까.
말하자면, 스카피의 레시피는 덧셈과도 같았다. 어느 정도 과정을 풀어주는 레시피였고. 기본 요리 상식만 갖고 있으면 쉽게 따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는 곱셈이었다.
소고기 부용이 뭔지, 데글라쎄가 뭔지 사전에 알아둬야 한다. 곱셈을 하기 전에 구구단을 외워야 하는 것처럼.
단기적으로 보면 암기할 게 많지만, 일단 외우기만 하면…
보다 복잡한 곱셈이 가능해진다.
무한의 조합을 만들 수도 있고.
‘그 외에도…’
무언가 보일 것 같지만, 아직 윤곽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걸 곱씹을 여유가 없었다. 눈앞에 놓인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니까.
“휴~ 이제 다 끝났네!”
니콜라는 해방된 전쟁 포로와도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메뉴 기획과 준비물 정리에만 반나절이 걸렸으니 지칠 만도 했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일단 나가서 장부터 봐와. 돌아와서 파르스랑 라구, 부용을 만들면 딱 해가 지겠네.”
“알겠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재료를 모아서 무슈 투르네엠의 주방으로 갈 거야. 요리는 그곳에서 할 거거든. 그 전에 필요한 준비물은 다 챙기고. 재료는 물론, 조금 특수한 조리도구는 여기서 챙겨가야 할 거야.”
출장 요리 서비스였다.
조리 도구까지 챙겨야 한다면,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릴 거다.
“내일 아침에는 짐 나르는 걸 도와준 후에 파티시에랑 로티세리에 좀 다녀오고.”
“네?”
“왜 그리 놀라? 두 번째 코스에 체리 토르트랑 양갈비 로스트가 있잖아? 가져와야지.”
니콜라가 방금 내린 지시는, 니콜라와 무티에르가 조리하는 동안 심부름을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푸핫!”
한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실망감과 당혹감이 재밌는지, 니콜라가 폭소를 터트렸다.
“심부름 가는 게 그리 싫냐?”
“그건 아닙니다.”
“에이, 아닌 얼굴이 아닌데?”
“심부름가기 싫은 게 아니라, 요리 과정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게 그거잖아? 요리를 보려면 심부름을 못 가니까.”
한길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견습생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시키는 대로 심부름만 하는 건 싫었다.
이미 이 주방에서 보낸 시간도 1주일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요리하는 과정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시간을 조율하는 건 불가능합니까?”
“시간?”
“토르트와 로스트를 미리 받아오면 안 되나 해서요.”
“뭐, 체리 토르트는 수분이 많은 게 아니라 미리 받아와도 되지만, 로스트는 안 돼. 하루가 지난 로스트를 손님에게 내는 건 길드 규정 위반이니까. 내일 아침에 받아오는 방법도 있지만, 글쎄? 10시 전에 받아오려면 9시에는 찾아와야 할 테고, 그러면 로티시에는 새벽에 일어나 작업해야 하잖아? 한다는 사람이 없을걸?”
가능성은 작지만, 불가능은 아니었다.
가게가 오픈하기 전에 물건을 내주겠다는 로티세리를 찾으면 되는 거니까.
“해준다는 사람만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거죠?”
“그렇긴 한데…”
“허락하신 겁니다!”
“그, 그래… 뭐, 할 수 있으면 해봐.”
#
한길은 시장까지 달려갔다.
서둘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파티세리에 들려서 토르트도 구해왔다.
‘퐁은 밤을 새워서 만들어도 되니까… 그러면 아직 세 시간 정도는 있는 건가?’
잠만 포기한다면,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다.
한길은 가장 먼저 무티에르의 작업실에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로티세리를 찾아갔다.
“뭐? 9시까지 필요하다고?”
“네.”
“그건 힘들어. 새벽부터 일어나서 작업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내일은 특히나 예약된 작업량이 많아서 아예 다른 작업이 어렵거든.”
“아예 어렵다고요?”
“어, 내일은 추가 주문을 못 받게 되었네? 미안해서 어쩌냐.”
물건을 일찍 받기는커녕, 로스트 구매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일주일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운이 나쁜 건가?’
하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한길은 바로 예비 로티세리를 향해 질주했다.
“미안. 내일은 좀 큰 주문이 여러 개 들어와 있어서 말이야. 어려울 것 같은데?”
알랭이 알려준 납품처는 단 두 곳이었다.
항상 이용하는 납품처, 그리고 예기치 못한 일이 있을 때 이용하는 납품처.
두 곳이 한꺼번에 불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일이 오늘 터진 거다.
‘새로운 곳을 뚫어야 하나.’
한길은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평판이 좋은 로티세리를 찾아다녔다.
“이야! 무티에르네서 왔다고? 그, 파리 제일의 요리사?”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쩌지? 우리도 무티에르 씨와는 연을 맺고 싶지만, 내일은 진짜 안 되거든.”
그 후로 들린 두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게 우연이라고?’
내일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기를 먹는 명절도 아니고, 평범한 하루다. 갑자기 작업실 인근의 로티세리가 모두 바쁘다는 건 분명 이상했다.
하지만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려면, 한 번 더 확인이 필요했다.
다섯 번째로 들어간 가게에서 한길은 행동을 조금 달리했다. 서둘러 들어가 용건만 말하는 대신, 지나가는 손님처럼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손님, 무엇을 찾으시나?”
“내일 쓸 로스트가 필요한데요.”
“그래, 뭐로 드릴까?”
“기본 양갈비요.”
“몇 시에 필요하지?”
“혹시 아침에도 되나요?”
“몇시?”
“9시면 가장 좋은데…”
중년의 남자는 한길의 말을 듣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9시는 힘들어도 11시는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나?”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람 좋게 웃는 남자는, 주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새로운 단골을 뚫으려는 여느 상인처럼, 소소한 잡담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직접 드실 것 같진 않고. 어디 집에서 일하시나? 하녀가 아닌 하인이 장을 보러 오는 건 좀 신기한데?”
“하인은 아니고 견습생입니다.”
“견습생? 혹시… 트레퇴르 밑에서?”
“네.”
“누구?”
“무티에르입니다.”
한길은 자신의 소속을 밝히면서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분명 반응이 올 테니까.
“아! 그 유명한 양반? 파리 제일의 요리사 중 하나 아닌가! 하하하, 이런 인연이 또…”
남자는 분명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삼류 배우와도 같은 몸놀림으로, 괜히 장부를 들추며 어색한 연기를 펼쳤다.
“아니,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내일 중요한 예약이 있었네? 내 나이가 되면 계속 이리 깜빡깜빡한다니까, 하하하.”
“역시 그렇군요.”
“미안하네, 내일 말고 언제든 다시 찾아와 주게.”
로티세리를 나온 한길은 더 이상 다른 곳을 들리지 않았다. 이 근방의 로티세리를 돌아다녀 봐야 소용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