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2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28화(228/325)
228. 맛의 혁명
‘마음에 드나 보네.’
한길의 입꼬리가 절로 당겨졌다.
현대식 플레이팅이 어느 정도 먹힐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항상 근엄한 표정을 짓던 무티에르가 무방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목소리에는 조급함까지 묻어있었고.
“이런 요리를 몇 개나 더 만들 수 있지? 니콜라와 라올의 요리도 한번 담아보겠나?”
“죄송하지만, 그건 못 하겠습니다.”
“…?”
“마스터께서 저는 요리하면 안 된다고 하셨으니까요.”
첫 번째 접시는 무티에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말 플레이팅만 했지만, 두 번째 접시까지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무티에르는 한길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가 플레이팅을 맡겨달라고 하지 않았나. 요리가 아니라 장식하는 일을 하겠다고.”
“그랬죠. 하지만 막상 해보니 요리를 전혀 하지 않고 장식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요리까지는 아니어도, 기본적인 조리를 해야 장식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마스터의 요리에도 색감을 살리기 위해 당근이나 비트를 올리고 싶었는데, 그걸 하려면 조리를 해야 하죠.”
“….”
“메인 요리를 만들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장식에 한해서는 기본적인 조리를 허가해주셔야 저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한 요리사가 하나의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았지만, 현대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메인요리 옆에 곁들일 채소나 장식 등을 담당하는 스테이션이 별도로 있었고, 이를 가니쉬 (garnish) 스테이션이라고 불렀다.
한길이 원하는 건 플레이팅 담당이 아니라 가니쉬 담당이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본적인 요리를 할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그,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알랭이 창백한 얼굴로 외치고 있었다.
“이, 이제 주방에 들어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견습생이 요, 요리라니요! 그것도 의뢰인 앞에 낼 요리를…”
알랭의 옆에 서 있는 라올과 니콜라도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도 그건 좀….”
“너무 빠르지 않나요? 그야 마르셀은 재능이 있는 편이지만, 퐁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르니까요.”
다른 이들의 반발에 무티에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한길에게로 향했다.
“요리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네. 옆에서 봤을 때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수많은 기술이 담겨 있지. 오랜 세월과 경험을 통해 익히는 감각도 필요로 하고, 자네에게는 아직 이르네.”
이곳에서 견습생은 퐁 이외의 요리를 만들지 않았다. 우선은 그 불문율부터 깨트려야 했다.
한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물러섰다.
“마스터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방금 보여준 것처럼, 조리가 필요 없는 플레이팅은 없나?”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사실 방법이야 많았지만, 그걸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한길이 플레이팅을 하면 퐁파두르의 의뢰는 성공리에 마칠 수 있을 거다. 심플하면서도 소문날 요리로는 이만한 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만한 공을 세운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줘야 했다.
‘이제 견습생은 졸업해야지.’
현대에서도, 페르난도의 레스토랑에서 실습생 생활만 했었다. 프랑스 스테이지에 와서도 잡일만 해왔고.
한길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요리에 목말라 있었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쉽네요. 생각나는 그림이 있어서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여기 룰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이 요리는 어떻게 담는 게 좋겠나.”
“그냥 예쁜 그릇에 담아야죠. 그래서는 소문이 날지 모르겠지만요.”
“….”
“그러면 저는 적당한 그릇 좀 찾아오겠습니다.”
“잠깐.”
한길이 몸을 돌리자, 무티에르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그의 눈동자에는 고민이 서려 있었다.
주방의 불문율을 깨고 의뢰를 성공시킬 것인가. 아니면 룰을 고수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자네가 말하는 조리가 필요한 플레이팅이라는 걸 한번 보도록 하지. 보고 난 후에 결정해도 늦지는 않을 테니. 라올의 메뉴부터 시작하겠나.”
“네.”
그제야 한길은 활짝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
이번 플레이팅은 처음 선보인 플레이팅과는 달랐다.
첫 번째 접시는 오로지 비주얼적인 요소만 고려했다면, 이번에는 한길의 요리 실력도 제대로 보여줘야 했으니까.
한길은 가볍게 웃으며 라올의 냄비 앞으로 다가갔다. 냄비 안에는 어여쁜 연둣빛의 완두콩 수프가 들어 있었다.
‘일단 맛을 봐야지.’
수프를 국자로 떠서 그릇에 옮겨 담으면서 한길은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매끄러우면서도 걸쭉한 연둣빛 액체는 덩어리 하나 없는 고운 질감이었다. 믹서기가 없는 이곳에서 이런 질감의 수프를 만들려면, 못해도 열 번은 체에 내렸을 터. 손이 상당히 많이 가는 요리였다.
‘맛있네.’
맛 역시 한길의 예상 이상이었다.
완두콩과 크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이었으니까.
완두콩 특유의 풋내를 크림이 지그시 눌러주었으며, 크림의 느끼함을 완두콩이 잡아주고 있었다.
크림의 부드러움이 기품있게 입안을 채웠고, 완두콩의 묵직한 질감이 든든한 포만감을 주었다.
‘이게 여기서 말하는 누벨 퀴진인가?’
완두콩도, 크림도 이곳에서는 귀한 재료가 아니었다. 수프 역시 귀한 요리는 아니었고.
하지만 그 평범한 재료가 장인의 손을 거쳐 완벽한 화음을 내고 있었다. 전문가의 기술이 빚어낸 섬세한 화음이었다.
‘채소를 올리는 건 안 되겠네.’
처음에는 수프의 파릇한 색상을 살리기 위해 꽃과 각종 채소를 올려 장식할 생각이었지만, 채소의 청량감과 아삭함은 이 화음을 방해하는 잡음이 될 터였다.
이 수프에 한해서는, 빵이나 감자처럼 묻어가는 재료가 좋다.
‘중간에 살짝 변주를 줘도 좋을 것 같고.’
맛있는 수프임에는 분명했지만, 맛의 지속성이 있는 요리는 아니었다. 한 그릇을 모두 비울 때 즈음이면 슬슬 물릴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한동안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겨있던 한길은,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재료를 모아둔 팬트리로 향했지만, 원하는 물건은 찾을 수 없었다.
“니콜라, 저희, 감자는 안 쓰나요?”
“감자? 그건 뱃사람들이나 먹는 거 아닌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거 독성이 있어서 잘못 먹으면 문둥병 걸린다던데?”
이 시대에 감자는 아직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모양. 한길은 어쩔 수 없이 그나마 감자와 유사한 맛과 질감을 가진 순무를 들고 왔다.
한길이 생각한 가니쉬는 감자칩.
물론 편의점에서 파는 감자칩이 아니라, 파인 다이닝 형식으로 모양을 다듬은 감자칩이었다.
하지만 순무칩도 나쁘지 않겠지.
순무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순무를 최대한 얇게 썰어야 했다. 평범하게 도마 위에 올리고 썰어도 되겠지만,
‘그건 너무 임팩트가 없지.’
모처럼 칼질을 한다면, 기술을 선보이는 게 좋았다. 그리고 한길에게는 칼 실력을 마음껏 뽐낼 화려한 기술이 있었다.
돌려 깎기.
사과 껍질을 깎듯, 공중에서 재료를 돌려가며 얇게 깎아내는 기술이다.
돌려 깎기의 비결은 힘 조절.
순무를 잡은 왼손에는 최대한 힘을 빼야 한다. 왼손은 거들 뿐이니까. 칼을 쥔 오른손은 칼날의 전체 면적에 걸쳐 힘이 고루 분배되도록,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사각사각.
왼손으로 순무를 살살 돌리자, 오른손에 있는 칼날이 순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둥그런 순무 토막이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얇은 순무 리본으로 변모했다.
“아니…”
“이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는 걸 보면, 이 시대에는 아직 돌려 깎기가 없는 모양.
그러면 상당히 놀랄 거다.
돌려 깎기가 익숙한 한길조차도, 프로의 돌려 깎기 기술을 처음 봤을 때는 믿기지 않았으니까.
한길은 완성된 순무 리본을 도마 위에 올린 후,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다듬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소금도 충분히 뿌려준 후 오븐에서 약 30분간 구워냈다.
완성된 것은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순무칩.
노릇노릇하게, 튀기듯이 구워낸 순무칩은 가장자리가 짙은 갈색으로 그을려 있어 한길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이, 이건 무엇이지?”
“순무칩입니다.”
“순무칩?”
아무래도 이 시대에는 아직 칩도 없는 모양.
그렇다면 칩이 가진 중독성과 바삭함도 처음 접하게 되는 거겠지.
한길은 조용히 웃음을 흘리며 마무리 단계인 플레이팅을 시작했다.
움푹한 하얀 그릇 안에 수프를 담고, 기다란 순무칩을 그릇의 가장자리에 걸쳤다. 그러자, 연두빛 호수 위로 순무칩 다리가 놓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한길은 미리 봐둔 캐비어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작은 티스푼을 이용하여 캐비어를 순무 칩 위에 올렸다.
작은 덩어리로 뭉쳐서 올린 캐비어는, 얼핏 보면 산딸기나 오디 열매 같아 보였다. 캐비어 위에 새싹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얹어주자, 산에서 갓 따온 열매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나쁘진 않네.’
연둣빛 호수 위에 바삭한 순무칩.
그 위에 소담하게 올려있는 산딸기 캐비어.
“다 됐습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보니, 모두가 입을 벌린 상태로 말없이 그릇을 보고 있었다.
마술사 앞에 선 어린아이 같은 모습.
아까도 한길의 특이한 플레이팅을 목격했지만, 놀라움이 무뎌지기는커녕 오히려 아까보다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이것도 이해는 했다.
원래 마술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법이니까.
색감도 좋고, 자연미도 있었으며, 흥미로웠다. 한길의 조리 기술도 선보였고, 이제 남은 건…
“맛을 보시죠.”
#
‘이건 대체 뭐지?’
한길이 작업하는 내내, 무티에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9살에 시작해서 주방에서 보낸 세월이 40여 년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한 기술이 눈앞에 펼쳐졌다. 허공에서 칼을 다루는 기술이.
‘원래 목공이나 조각 쪽 일을 했었나?’
그렇다면 목공보다는 조각 쪽일 확률이 높았다. 마르셀이 내놓은 요리는 예술품에 가까웠으니까.
“다 됐습니다.”
이번에도 마르셀은 식재료만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려냈다.
수프는 완두콩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색상이 살아있었다. 그 위에 놓인 순무칩이라는 것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정도로 식욕을 자극하는 생김새였고, 산딸기 모양으로 빚어낸 캐비어에는 마르셀의 위트가 숨어있었다.
“맛을 보시죠.”
“크흠, 그러도록 하지.”
마르셀의 말에 무티에르는 얼굴 근육을 다시 긴장시키고 스푼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스푼 따위 집어던지고 당장 저 순무칩을 입안에 밀어 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체면이라는 게 뭔지.’
무티에르는 간신히 충동을 다스리고 스푼 가득 수프를 담은 후, 입안에 넣었다. 그러자 은은하면서도 세련된 완두콩의 맛이 입안에 서서히 퍼졌다.
“라올, 실력이 늘었군.”
“감사합니다, 마스터.”
“지적할 게 하나도 없군. 완벽하네.”
무티에르는 제자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준 후, 손을 내뻗었다. 아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저 순무칩이라는 물건으로.
‘생각보다 단단하군.’
순무로 이런 견고한 질감을 만든다는 게 신기했다. 일반적으로 순무를 오븐에 구우면, 겉은 단단했지만 내부는 폭신했으니까.
하지만 마르셀은 순무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서 폭신한 부위를 제거하고 견고함만을 남겼다. 간단한 발상이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관찰을 마쳤으면 이제는 맛을 볼 차례.
‘한입에 다 들어가려나?’
캐비어가 올려진 부위까지 먹어보고 싶었지만, 한입에는 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무티에르는 어쩔 수 없이 순무칩만 있는 부분을 크게 베어 물었다.
와자작!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고소함이. 기름진 향이, 바삭함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순무칩은 치아에 닿을수록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며 입안 구석구석을 자극했다. 그 조각에 묻어있는 고소함과 짭조름함이 미뢰를 덮쳤고, 혀에 엉겨붙어 침샘을 자극했다.
치명적인 맛.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한 입만 더…’
와자작!
한 번 더 순무칩을 입안에 담자, 진한 쾌감이 온몸을 덮쳤다.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무티에르는 처음 느껴보는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수프와의 조화를 봐야하는데…’
무티에르는 몸 안에 있는 모든 의지력을 쥐어짜며 순무칩을 내려놓고, 다시금 수프를 입안에 넣었다.
‘좋군.’
입안의 염분을 수프가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짭조름한 맛이 추가되어 완두콩 특유의 풍미도 더 살아났고.
바싹 메마른 칩과 반대로, 완두콩 수프는 융단처럼 윤기가 흐르는 부드러운 질감이었다. 이 두 가지 맛이 입안에서 동시에 느껴지며 서로의 장점을 더욱 부각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캐비어가 얹어있는 부분까지 크게 베어 물었다.
와자작!
다시금 울리는 화려한 폭죽 소리.
몸 전체에 퍼지는 진한 만족감.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바다의 향이 퍼졌다. 소금의 거친 염분이 아닌, 캐비어 특유의 은은한 풍미가 입안에 휘몰아쳤다.
다시 한번 수프와 함께…
후루룹!
수프를 흡입하는 무티에르의 손길에는 더 이상 조심스러움이 남아있지 않았다.
요리사로서 이성적으로 요리를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순수하게 식탐에 몸을 맡기는 모습.
완두콩의 싱그러움, 크림의 부드러움, 캐비어의 바다 향, 순무칩의 식감과 고소함.
그 완벽한 조합에 눈이 절로 감겨왔다.
굳이 눈을 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이 맛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었으니까.
와작!
후루룹!
와자작!
후루룹!
이 절묘함.
멈출 수 없는 중독성.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행복.
“마스터?”
니콜라의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수프 그릇은 텅 비어 있었고 순무칩도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영혼의 일부가 사라진 것처럼, 어마어마한 상실감이 찾아왔다.
무티에르는 무심코 마르셀을 바라봤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첫 번째 접시를 볼 때만 해도, 반 정도는 눈속임이라고 생각했다. 개인 접시로 나간다는 발상이 독특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눈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요리라고.
하지만 마르셀의 요리는 본질부터 달랐다.
시각으로 사람을 홀렸고, 세심하게 맛의 균형을 잡았으며, 입안에 처음으로 느끼는 감촉을 주었다.
가려운 줄도 몰랐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다가 갑자기 멈춘 기분. 제발 더 긁어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겨우였다.
‘이건 진화가 아냐.’
아까까지만 해도, 마르셀의 방식은 식문화를 개선하고 진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티에르는 틀렸었다.
이건 진화가 아닌 혁명이었다.
뉴턴 이후로 세상이 중력을 처음 깨달은 것처럼, 마르셀의 요리는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맛의 균형을, 식감을, 정서를 안겨주고 있었다.
놀라운 요리가 아닌, 파격적인 요리.
“만약 조리를 할 수 있다면, 이런 플레이팅은 몇 개까지 가능한가.”
“원하시는 만큼 얼마든지요.”
“20개까지 가능한가.”
“30개도 가능합니다.”
고작 며칠 사이에 이런 수준의 요리를 몇십 개나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지, 무티에르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마르셀의 말에 의심을 품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르셀이 가능하다면 가능한 거다. 저자는 무티에르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으니까.
그렇다면 결정할 것은 하나.
이 혁명을 천천히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한번에 휘몰아칠 것인가.
손님이 놀라지 않게, 적당히 익숙함과 섞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고삐를 풀어놓고 힘껏 달릴 것인가.
그 결정은 무티에르가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잠깐 외출하고 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