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2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29화(229/325)
229. 보면 알아
“마스터는 어딜 가신 걸까요? 설명도 안 해주시고 저렇게 급하게….”
“의뢰인한테 가신 거겠지.”
“왜요?”
“사전에 밑밥도 안 깔아두고 저런 걸 내밀면 감당이 되겠냐?”
니콜라의 말에 라올과 알랭의 시선이 테이블 위의 빈 접시로 향했다. 무티에르가 깨끗하게 비워버린 접시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니콜라.”
“왜, 우리 복덩이도 뭐 궁금한 게 있나?”
한길이 입을 열자, 니콜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과장된 미소가 심히 부담스러웠다.
“니콜라가 보기에는 제 요리가 어땠나요?”
“당연히 천재적이지! 소름이 다 돋았다니까? 소문이 나는 건 당연히 보장된 거고! 다만…”
“다만?”
“너무 새로운 시도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있거든. 파리라는 곳이 그래. 잘 되면 빵 터지는데 안 되면 쫄딱 망해. 귀족이라도 예외는 없고. 아니, 오히려 귀족은 망하면 조용히 망하진 않으니까 더 위험하지.”
니콜라는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혼자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거든. 바크빌 백작(Count de Baqueville)이 자기가 무슨 발명품을 만들었다고, 파리 시민들 앞에서 그걸 선보이겠다고 한 거야.”
“발명품?”
“어, 하늘을 나는 비행 장치를 만들었는데, 자기 집 창문에서 루브르까지 날아가겠다고 한 거지. 그러려면 센 강을 건너야 하니까 파리 시민들이 강가에 모여서 구경했거든. 그런데 어떻게 된 줄 알아?”
“모르죠.”
“센 강에 그대로 추락한 거로 모자라 지나가던 화물선이랑 충돌해서 다리까지 부러졌지. 본인은 끙끙대며 앓고 있는데, 구경꾼들은 야유하고, 쓰레기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거든. 그 백작은 파리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자기 영지로 돌아갔고, 아직도 파리에 돌아오지 않고 있어. 추방 당한 거나 마찬가지지.”
“그렇군요.”
신기한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경직된 느낌이 있었다. 특정 길드에 있는 요리사들만 특정 음식을 만들 수 있었고, 주방에서 고용할 수 있는 견습생의 수도 정해져 있었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경찰까지 불렀으니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명을 하고, 전통을 거부하는 필로소프들이 활약하고, 파리 시민들이 귀족에게 쓰레기도 던질 수 있는 시대였다.
“…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그런데 또 한번은 어떤 귀족이 물 위를 걷는 부츠를 발명했는데 환호성을 받았거든.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라올, 기억나?”
니콜라의 질문에 라올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길이 쓴웃음을 지었다.
“웃기네요.”
“뭐가?”
“성공은 기억 못 하는데, 실패는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원래 남의 일은 성공보다 실패가 더 재밌잖아?”
니콜라는 당당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은 이내 지워졌다.
“그래서 걱정인 거지. 에티올 부인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왜죠?”
“출신이 출신이니까. 귀족들은 당연히 부르주아를 싫어해. 귀족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귀족 놀이를 하니까 아니꼬운 거지. 그렇다고 파리 시민들이 부르주아를 좋게 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 귀족이야 핏줄이 다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나랑 비슷하게 태어난 사람이 귀족처럼 살면 배 아프잖아? 그런데 심지어 에티올 부인은 부르주아도 아니고…”
한길은 술집에서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에티올 부인의 아버지인 푸아송은 한 금융인의 밑에서 일하는 평민이었다. 그녀의 법정후견인인 무슈 투르네엠은 부르주아였지만, 그녀와는 혈연관계가 아니었고.
즉, 에티올 부인은 부르주아 출신도 아니었다. 부르주아의 평민 애인이 초혼에서 데려온,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평민 자식이었지.
그런 평민 여인이 무슈 투르네엠의 조카와 결혼했을 때, 경악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투르네엠의 조카는 비록 작위는 없을지언정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즉, 에티올 부인은 평민에서 귀족까지 신분 상승을 한 여인이었다.
부유한 부르주아가 귀족과 결혼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 하나 없는 평민이 귀족이 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런 신데렐라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이지. 이 요리는 새로워도 너무 새롭잖아? 잃을 게 많은 분인데, 굳이 이런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논란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거든.”
“하실 겁니다.”
“넌 어떻게 그리 확신해?”
“그냥 그런 예감이 들어서요. 니콜라가 그랬잖아요? 전 복덩이라고.”
한길은 그녀가 이 요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에티올 부인은 미래의 퐁파두르였으니까.
퐁파두르 여후작은 프랑스 예술과 문화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했던 그녀가, 20년 동안 베르사유 최정점에 섰던 그녀가, 이 정도 논란을 두려워해 몸을 사릴 리가 없었다.
“뭐, 정확한 건 마스터가 돌아오시면 알겠지.”
“그렇네요.”
무티에르는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의뢰인이 당장 내일 시식하자더군.”
“내일요? 준비된 메뉴가 없는데…”
“방향성을 보여드리는 게 목적이니 오늘 마르셀이 만든 요리로도 충분해. 내일은 나와 니콜라, 마르셀이 다녀오도록 하지.”
“네, 마스터.”
“그러면 나는 이만 올라가겠네.”
“들어가십시오!”
무티에르는 피곤한 얼굴로 주방을 나섰지만,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났다.
“깜빡할 뻔했군. 니콜라, 조리대에 마르셀 전용 자리를 하나 만들어주도록. 그리고 3층에 침대가 남아 있나?”
“하나 있긴 한데요.”
”그러면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주도록.”
이곳에서 견습생은 4층에서 생활했다.
3층은 직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었고.
무티에르의 지시를 들은 니콜라가 씨익 웃으며 한길에게 어깨동무를 걸쳤다.
“황금알 낳는 오리가 감기에 걸려 뒈지면 그만큼 억울할 일도 없겠죠. 걱정 마십시오, 마스터! 제가 알아서 잘 챙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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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투르네엠의 저택.
“르넷 아가씨, 무티에르가 도착했습니다.”
하녀의 목소리에 서재에 있던 귀부인이 고개를 들었다.
“에스텔, 난 이제 아가씨가 아니잖아? 결혼한 지 올해로 벌써 5년인데.”
“제 눈에는 언제나 아가씨인걸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제대로 불러야 해. 알고 있지?”
“네, 에티올 부인.”
하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자, 에티올 부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단둘이 있을 때는 르넷 아가씨라고 불러줘. 나도 에스텔이 그렇게 불러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좋으니까.”
“네, 르넷 아가씨!”
활기를 되찾은 하녀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에티올 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은 정말 쉬워.’
사람은 누구나 숨은 욕망이 있었고, 에티올 부인은 그 욕망을 찾아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예를 들면 눈앞의 하녀, 에스텔.
그녀는 이 저택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하녀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시중을 들었다.
‘르넷 아가씨’라는 호칭을 고집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다른 하인들 앞에서 자신과의 친분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뭐, 이 정도는 허락해줘도 괜찮겠지. 딱히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며 탁상시계로 시선을 돌리니, 시간은 이미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퐁타뉴는 몇 시에 온다고 했지?”
“4시입니다.”
“겹칠 수도 있겠네…”
퐁타뉴는 에티올 부인이 고용한 또 다른 요리사였다.
그녀는 이번 살롱 데뷔를 위해 총 여덟 명의 요리사를 고용했다. 중요한 일을 단 한 사람에게 맡기는 건 어리석었으니까. 똑같은 의뢰를 주고,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를 선택할 계획이었다.
“만에 하나 퐁타뉴가 일찍 도착하면 내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전하고 응접실로 안내해. 짐꾼이나 다른 일행이 있으면 다 같이 안내하고. 절대 주방에는 들이지 마.”
“왜요?”
“무티에르 일행과 마주치면 안 되잖아?”
“어차피 요리를 안 써도 비용은 지불하실 거라면서요.”
“그래도 굳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 건 없지. 말로 전달받는 것과 눈으로 보는 건 또 다르니까.”
“역시 우리 아가씨는 배려심이 넘치세요! 일개 요리사의 기분까지 그렇게 챙겨주시다니!”
배려심보다는 효율의 문제였다.
굳이 이런 사소한 일로 적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에티올 부인은 굳이 하녀의 오해를 정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 이만 가봐.”
“요리가 완성되면 다시 불러드릴게요, 르넷 아가씨!”
“그래.”
하녀가 퇴장한 후, 에티올 부인은 다시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무티에르가 했던 말이 신경 쓰였던 탓이다.
―저희가 차릴 요리는 분명 소문이 날 겁니다. 다만, 부인이 감당하실 수 있는 소문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무티에르는 자신만만했지만, 그건 다른 요리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으로만 떠들고 결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지.
‘무티에르는 다르려나?’
파리 제일의 요리사라고 불리는 만큼, 조금은 기대해도 좋을 터였다. 게다가 무티에르는 에티올 부인이 낸 수수께끼의 답을 맞힌 유일한 요리사였으니까.
―소문이 날 요리가 필요하시군요.
정확히 말하면, 정답을 맞힌 이는 무티에르가 아니라 그의 견습생이었다. 곱상한 외모의,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만듯한 젊은 요리사.
‘그것도 특이해.’
자신의 앞에 견습생을 데리고 나타난 요리사는 무티에르가 유일했다. 그런데 병풍처럼 서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견습생이…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에티올 부인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은 집중이 필요한 때다.
이번 살롱에는 그녀의 미래가, 그녀의 운명이 걸려 있으니까.
‘분명 기억하실 거야.’
에티올 부인은 국왕인 루이 15세와 면식이 있었다.
투르네엠 삼촌이 에티올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준 에티올 성이 국왕의 사냥터인 세나르 숲(Senart)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사냥터 인근에 사는 귀족들은 국왕의 사냥에 먼발치에서 동행할 수 있었고, 에티올 부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냥 대열에 합류할 때마다 그녀는 눈에 띄는 행색을 했다. 분홍 드레스를 입고 파란 마차를 모는가 하면, 파란 드레스를 입고 분홍색 마차를 모는 날도 있었다.
한 번은 국왕이 다가와 그녀를 사냥과 숲의 여신, 다이에나에 비유한 적도 있었다.
그게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그 후로 그녀는 숲에 가지 못했으니까.
국왕 전하와 대화를 나눈 다음 날, 베르사유에서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숲에 가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냥터라는 곳은 언제 어떤 사고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협박에 가까운 말투로 얘기를 꺼낸 남자는, 자신을 샤토루 여공작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샤토루 여공작 (duchesse de chateauroux)은 ‘마이 자매’라고 불리는 다섯 자매 중 막내이자, 국왕의 정부였다.
국왕은 이상할 정도로 마이 자매에게 관심이 많았다. 다섯 자매 중 네 명을 정부로 삼을 정도였으니까.
샤토루 여공작은 그중에서도 가장 야망이 많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언니가 정부로 지내는 동안 국왕을 유혹했으며, 국왕의 정부가 되기 전에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자신을 여공작으로 만들 것, 언니를 궁에서 내칠 것, 그리고 향후 언니들과 모든 연락을 끊고 지낼 것 등등.
사랑에 빠진 국왕이 모든 조건을 들어준 후에야 그녀는 국왕을 품 안에 받아들였고, 베르사유의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섰다.
권력을 위해 친자매까지 추방하는 여인이니, 에티올 부인으로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그녀뿐 아니라 투르네엠 삼촌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샤토루 여공작은 한 달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국왕의 옆자리에 공석이 생겼다.
지금이 기회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에티올 부인만이 아니었다. 베르사유는 물론, 파리에 있는 모든 귀족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내 이름만 들으면…’
에티올 부인은 확신했다.
자신의 이름을 듣기만 한다면, 국왕이 그녀를 궁으로 초청할 거라고.
문제는 국왕의 귀가 베르사유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에티올 부인은 베르사유에 갈 수 없었다. 서류상으로 귀족이 되었지만, 남편은 베르사유를 드나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귀족이 아니었으니까.
‘역시 답은 살롱밖에 없어.’
그래서 그녀의 이름으로 살롱을 열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베르사유에 거주하는 귀족 중에는 궁 생활에 싫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시로 파리 시내를 찾았고, 특히나 살롱을 드나드는 걸 즐겼다.
엄격한 예절을 따라야 하는 궁과 달리, 살롱은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니까. 신분과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공간. 대범하고 위험한 발언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
파리 최고의 살롱을 차린다면, 에티올 부인의 이름은 베르사유에 퍼질 것이다. 그 소문을 들은 국왕은 그녀를 기억할 것이고.
‘하지만…’
여기서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파리에는 이미 자리 잡은 살롱이 너무 많았으니까. 후발주자인 그녀가 눈에 띄려면, 그만큼의 전략이 필요했다.
에티올 부인의 차별화 전략은 요리였다.
대부분의 살롱은 대화가 끝난 후, 소수의 손님만을 초청하여 디너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살로니에르들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요리만을 대접했고, 살롱 요리는 형편없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그녀들의 생각은 이해가 갔다. 요리가 너무 눈에 띄면 대화에 방해가 될 거라 여겼기 때문에 과한 요리는 삼갔던 거겠지.
하지만 에티올 부인은 생각이 달랐다.
‘요리에 대해 대화를 하면 되는 거지.’
최근 들어 요리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이 커졌지만, 아직 살롱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고 있었다.
아직 그 누구도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은 주제.
그걸 선점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신이 대접하는 요리에 그만한 임팩트가 있어야 할 텐데…
‘하아…’
다시금 한숨이 나왔다.
지금까지 본 요리들은 너무나도 평이했으니까.
‘차라리 설명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지시를 내리면 좋을 텐데, 그걸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녀는 뛰어난 그림을 알아볼 수는 있지만, 직접 그릴 수는 없었다. 뛰어난 보석을 구매할 수는 있지만, 직접 세공할 수는 없었고.
세상은 그걸 안목이라고 불렀다.
그 안목을 요리에도 적용하고 싶었을 뿐인데…
“르넷 아가씨, 요리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하녀의 말에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에티올 부인은 곧바로 서재를 벗어나 다이닝룸으로 향했고,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무티에르가 들어왔다.
무티에르의 옆에는 일전에 봤던 두 명의 직원들이 함께 있었다.
에티올 부인은 여느 때와 같이 가면을 쓰고 입을 열었다. 친근하지만 사랑스러운 여인의 가면을.
“안녕하세요, 무슈 무티에르.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체 어떤 요리를 보여주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계속 생각하다가 잠도 설쳤지 뭐예요.”
“저도 설명해 드리고 싶었지만, 이건 말로 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직접 보시면 무슨 얘기인지 아실 텐데, 갑작스럽지만 당장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견습생이 접시 하나를 들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접시 위에는 동그란 뚜껑이 덮여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기시는군요.”
“하하….”
무티에르가 어색한 웃음을 짓자, 접시를 자신의 앞에 내려둔 견습생이 입을 열었다.
“서프라이즈는 미리 공개하면 김이 빠지니까요.”
견습생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두려움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미소.
실패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의 미소.
저 나이에 저런 자신감을 가진 이가 있다는 게 이상했다.
“처음으로 보여드릴 요리는 완두콩 수프입니다.”
견습생의 설명에 에티올 부인은 본심을 숨기기 위해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연기하기 힘들겠네.’
완두콩 수프 같은 평이한 요리를 앞에 두고 어떤 표정을 연기해야 하는 걸까. 적당히 놀라면서도 아쉬워하는 듯한 얼굴, 그러면서도 격려하는 눈빛이 좋겠지.
하지만 뚜껑이 열리는 순간. 그녀의 모든 생각이 날아갔다.
“아.”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탄성.
절로 벌어지는 입.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찾았다.’
표정을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가면이 벗겨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25년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