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3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31화(231/325)
231. 살롱 개시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에 마차 안에 있던 샤티용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혹여나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고개를 푹 숙이며 잰걸음으로 건물을 향해 걸어가던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슈 샤티용 아니십니까.”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무슈 보그 아니십니까. 이런 곳에서 다 뵙는군요.”
“에티올 부인이 여는 살롱에 초청받아서…”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만 온 게 아니었구나.’
자신이 유일한 귀족일까 걱정했는데, 적어도 귀족이 한 명은 더 있었으니까.
심지어 무슈 보그는 보그 가문의 차남. 보그 가문은 12세기부터 대를 이어온 귀족 가문으로, 샤티용에 비하면 명문가였다.
‘보그도 돈이 궁한가?’
이곳에 왔다면 샤티용과 비슷한 처지.
반강제적으로 참석하는 거겠지.
샤티용이 이곳에 온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며칠 전, 무슈 투르네엠이 조카 부부의 살롱에 한 번만 들러 달라는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돌려서 거절했지만, 투르네엠은 끈질겼다. 조만간 그로부터 돈을 빌릴 일이 있었는데, 계속 거절하다가는 향후 거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아 마지못해 수락한 것이었다.
‘분명 그 여자가 불러 달라고 한 거겠지.’
천박한 여인의 어리석은 행동에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억지로 끌고 와도 예의상 딱 한 번만 참석하고 말 텐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쪽입니다.”
하인의 안내를 받고 입장한 응접실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샤티용은 떫은 표정으로 그 화려함을 감상했다.
진짜 귀족인 자신은 부르주아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형편인데, 출신도 모르는 여인은…
조상님들이 본다면 기겁할 일이었다.
비록 지금은 몰락했지만, 샤티용은 유서 깊은 가문. 흔히 대검귀족(noblesse d’epee)라고 불리는 혈통이었다. 기사 계급에서 유래한 진짜 귀족이자 고귀한 핏줄이었다.
국왕에게 임명받아 최근에야 귀족이 된 법복귀족(noblesse de robe)과는 질이 달랐다. 그들은 대개가 부르주아 출신으로, 그래 봐야 100년, 200년 사이에 귀족이 된 이들이었으니까.
그런 신흥귀족들이 부를 누리고 권력을 휘어잡는 모습만 봐도 한탄스러운데.
‘이제는 생선 장수의 딸까지 귀족 행세를 하네.’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에티올 부인의 결혼 전 성은 푸아송(Poisson). 생선이라는 뜻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생선 장수가 아니지만, 그 아비의 아비로 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생선 장수가 나올 거다. 저 이름이 괜히 나온 게 아닐 테니까.
생선 장수의 딸이 여는 살롱의 첫 손님이 되다니.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무슈 데콤브도 있군.’
또 다른 귀족의 얼굴을 보고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단 세 명뿐이었지만, 어쨌든 귀족이 있었다. 아마 자신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참석하는 것이겠지만.
그 외의 참석자들은 모두 부르주아였다.
볼테르나 디드로 같은 유명한 필로소프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도 많았다.
‘뭐, 생선 장수의 살롱이 뻔하지.’
살롱의 격은 손님에서 온다.
살롱은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지식인이 모여 교류하는 자리라고는 하나, 귀족이 없는 살롱은 사실상 거리에 있는 카페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하찮은 모임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생각을 하니 돌덩이를 삼킨 기분이었지만, 애써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대부분의 귀족은 에티올 부인이 살롱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참석할 생각은 없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궁금할 터. 샤티용은 그들에게 에티올 부인의 살롱 데뷔 현장을 전해줄 수 있었다.
―하도 얘기가 많아서 호기심에 찾아갔는데 말이죠…
이런 식으로 서두를 열면, 호기심 많은 귀족이 한가한 김에 유희 삼아 방문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때,
“무슈 샤티용, 와주셨군요!”
해맑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여쁜 여인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얼굴로 귀족이 될만하네.’
동글동글한 이목구비와 반짝이는 눈.
작은 요정을 연상하는 외모.
에티올 부인은 성숙한 여인보다는 소녀에 가까웠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미인임에는 분명했다.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외모도 외모지만, 움직임과 말투가 제법 우아했다. 어릴 적부터 예절교육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모르고 봤다면 진짜 귀족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기품있는 자태였다.
‘쯧.’
그래서 더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면 시작할까요? 오늘은 무슈 볼테르가 작업 중인 글을 가지고 오셨답니다.”
살롱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볼테르의 자유 낭송을 시작으로 토론이 이어졌고, 필로소프들이 대거 참여해서 대화도 흥미로웠다.
주제는 여느 살롱과 다르지 않았다.
전통과 진화. 인류의 발전에 대한 내용이었다.
“고대가 우월하다는 것도 옛말이죠. 중세시대만 해도 워낙 뒤처졌기 때문에 문학도, 예술도, 철학도, 정치도 고대 로마나 그리스를 참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고대인을 앞서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문학만 봐도 그렇죠.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는 극문학을 희극과 비극, 두 종류로만 분류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저희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겪는 경험을 보다 세분화해서 무려 20종류로 분류하고 있죠.”
“인류의 진화가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과학과 기술입니다. 농업을 보면, 생산량이나 다양성에 있어 고대 로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죠. 그뿐 아니라 저희는 현미경을 통해 고대인들이 상상도 못 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도 있고, 과학을 통해 인체의 원리도 파악하고 있죠.”
“인체의 원리라면 무슈 셰인의 전문분야죠. 제가 초청한 분으로, 의사 선생님이십니다.”
에티올 부인의 말에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름도, 얼굴도 낯선 남자였다.
“의학만큼 인류의 진화를 보기 좋은 분야는 없습니다. 고대인들도, 중세인들도. 사체액설을 따랐죠.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4 종류 체액의 균형이 무너지면 질병이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제가 이쪽 분야는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 의학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습니까.”
“질병에 영향을 주는 건 두 가지입니다.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튜브와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주스가 작용하는 거죠. 혈관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혈관은 튜브, 그 안에 흐르는 피는 주스죠. 혈관이 막히거나 무너지면 병이 생기고, 반대로 피가 응고되어도 병이 생깁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치료할 때 피를 뽑아내는 거죠. 그래야 혈관 안에 피가 자유로이 흐를 테니까요.”
“건강해지려면 피를 뽑는 방법밖에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먹는 것만 조심해도 건강은 챙길 수 있죠. 너무 기름진 요리를 먹거나 고기를 과다 섭취하면 혈액이 응고됩니다. 향신료가 과다하게 들어간 음식에는 부패성 소금이 있어 튜브가 손상되죠. 고기를 적당량만 섭취하고, 채소를 많이 먹고, 물을 자주 마시면 건강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요리는 너무 기름집니다. 요리를 단순한 미식이 아니라 건강적인 측면에서 봐야 할 텐데, 항상 안타깝더군요.”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얘기네.’
똑같이 인류의 진화에 대한 얘기였지만, 의학과 식이요법을 다루는 건 처음 들어봤다.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무슈 셰인은 누벨 퀴진을 모르시나 보군요.”
“누벨 퀴진?”
“최근에는 보다 가벼운 요리를 추구하는데, 아마 무슈 셰인이 말하는 건강식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쪽은 무슈 켈롱. 본업은 사서이고, 가제트 드 프랑스 주간지의 편집장을 맡고 계시는데 역사에 있어서는 전문가시죠.”
아까의 의사도, 지금의 사서도. 샤티용은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고 긁어모은 건지.
“요리야말로 인류의 발전이 가장 명백히 드러나는 분야입니다. 고대 로마의 요리가 다양하다고는 하나, 세계 각국에서 긁어모은 이국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데에 그쳤죠. 전쟁으로 모두를 굴복시키고 무력으로 일궈낸 다양성입니다. 그게 아니면 무식하게 숫자로, 규모로, 혹은 돈으로 요리를 만들었죠.”
“하긴, 클레오파트라의 연회에서 안토니우스가 요리사에게 도시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는 일화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죠. 깊이가 없는 요리입니다. 그에 반해 지금 저희는 어떻습니까. 프랑스는 그 지역에서 난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무력 대신 지성으로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창의성과 기술을 통해 다양성을 일궈내고 있죠. 그래서 프랑스 요리가 세계 으뜸이라는 평을 받는 거고요.”
“하지만 프랑스 요리도 결국 이탈리아에서 온 것 아닙니까. 어느 정도 고대 로마의 영향도 받았을 텐데요.”
“16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켰죠. 프랑스 요리는 이탈리아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추출하고, 그 맛을 조화롭게 융화시키는 기술은 오히려 화학에 가깝죠. 굉장히 과학적인 조리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샤티용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추가할 내용은 없었다.
원래 살롱이라는 게 그렇다.
고리타분하게 학문에 몰두하는 이들은 대개가 부르주아였으니까.
학문에 관심이 있는 귀족도 더러 있었지만, 샤티용은 그렇게 한가한 부류가 아니었다. 적당히 살롱에서 들은 내용으로 지식을 얻었고, 그걸 또 다른 사교모임에서 반복하며 교양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대화는 상당히 유익했다.
다른 살롱에서 아직 제대로 다루지 않는 주제였으니까. 활용도가 상당히 높았다.
“모두 열정을 보여주시는 건 좋지만, 잠시 휴식을 해도 좋지 않을까요?”
“역시 에티올 부인은 적당한 때를 기가 막히게 맞추시는군요.”
“잠시 목을 축이시는 동안, 한곡 연주하겠습니다.”
하인이 음료를 나눠주는 동안, 에티올 부인은 클라비코드를 연주했다. 그 어느 귀부인보다 뛰어난 솜씨였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에티올 부인은 어릴 때부터 유명 예술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들었다.
악기도 악기지만, 연기 역시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었다. 프랑스 유일의 극단, 코메디 프랑세스로부터 연기와 발성 수업까지 받았으니까. 심지어 별장으로 이용하는 에티올 성에 작은 극장을 차려놓고 연습한다는 소문도 있었고.
다시 입안에 쓴맛이 감돌았다.
기사의 후예인 자신은 매일 허리띠를 졸라매며 사는데, 생선 장수의 딸이 별장에 극장까지 갖고 있다니…
‘뭔가 실수를 할 테지. 결국 본질은 앵무새 아닌가.’
에티올 부인은 앵무새의 대명사였다.
귀족이 되고 싶어 앵무새처럼 귀족을 따라 하는 자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아무리 돈으로 그 격차를 좁히려 해도, 천한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법.
제발 그녀의 본성이 드러나기를. 눈에 불을 켜고 기다렸지만,
“시장하지 않으신가요? 먼 걸음 해주신 여러분을 위해 식사를 마련했는데,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별다른 일 없이 살롱이 마무리되었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완벽한 대화, 쾌적한 환경,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살로니에르. 흠잡을 구석은 없었다.
“편하신 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다이닝룸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로, 정교하게 세공된 굴곡진 가구가 눈에 띄었다.
진짜 귀족인 자신은 딱딱한 라인의 구닥다리 식탁을 쓰고 있는데…
짜증을 간신히 억누르며 자리에 앉던 그때, 문이 열리면서 스무 명은 족히 되는 하인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뭐지?’
하인들은 하나같이 뚜껑이 덮인 이상한 접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상한 접시를 손님들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이상한 구성이네.’
원래 식사는 테이블 한가운데에 요리를 올리고 나눠 먹는 게 원칙이다. 어떤 요리가 어디에 배치되는지, 모든 접시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지에 대한 룰도 있었고.
의아한 건 자신만이 아닌지,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이건 무엇입니까?”
“오늘은 조금 특이한 식사를 준비해봤습니다. 중앙에 메인 요리를 놓는 대신, 각자의 앞에 있는 개인 접시에서 드시는 방식이에요.”
‘역시 출신은 못 속이지!’
샤티용은 이곳에 온 이래, 처음으로 흡족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드디어 천한 여인의 바닥이 드러났으니 말이다.
어떻게 지적해야 좋을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특이한 시도군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무슈 보그.
보그는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기쁨에 가득했다. 저건, 사냥감의 목에 이빨을 박아넣고 기뻐하는 맹수의 눈이었다.
‘하긴.’
샤티용도 오늘 내내 불편함을 느꼈는데. 명문가 출신인 보그는 오죽하겠는가.
“에티올 부인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 세상에는 식탁 예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룰과 규칙이죠.”
“물론,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규칙에 벗어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여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뿐이랍니다.”
에티올 부인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흔들림 하나 없이 차분한 모습이 참으로 거슬렸다.
“에티올 부인은 모르시겠지만, 예절이 존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절은 야만인과 문명인을 구분하는 척도입니다. 마음이 내킬 때마다 규칙을 깬다면, 배가 고플 때 남의 음식을 앗아가고, 화가 나면 사람을 죽이고, 틈만 나면 이웃을 약탈하는, 무력이 판을 치는 무질서한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회악을 막고자 규칙을 만드는 것이죠. 예절은 사회와의 약속입니다. 적어도 문명인은, 재밌겠다는 이유로 함부로 약속을 깨지 않습니다.”
‘잘하네.’
보그의 말을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졌다. 그는 지금 에티올 부인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야만인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반응할까. 무례하다고 화를 내면 제일인데.’
자기 의견을 말하는 손님에게 얼굴을 붉히는 살로니에르만큼 재밌는 게 없을 테니까.
살롱은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하는 자리.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소리를 들었다 해도, 예의를 잊고 화를 내면 본인만 우스워질 뿐이다.
그것도 대화를 중재해야 하는 살로니에르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샤티용은 기대를 가득 품으며 에티올 부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는 속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재밌는 견해네요. 예절을 생활화하지 않으면, 무질서에 빠져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식탁의 룰을 깨는 것이 보기에는 작은 규칙 위반 같지만, 이를 어기면 무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알아들으셨다면 앞으로 이런 행동에 주의하심이 좋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에티올 부인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너무 멍청해서 못 알아들은 걸까.’
하긴,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교묘한 모욕은 천박한 상대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준을 맞추기 위해 드잡이질을 할 수도 없고.
맥이 빠져서 아쉬움에 쓴웃음을 짓던 그때,
“그런데 무슈 보그의 말씀을 듣다 보니 얼마 전에 나눈 대화가 생각나네요.”
에티올 부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미소의 온도가 확연히 달랐다.
“안 그런가요, 무슈 볼테르?”
그리고 그녀는 발언권을 볼테르에게로 넘겼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필로소프의 우두머리. 프랑스에서 가장 날카로운 혓바닥을 가진 비평가인 볼테르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