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3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32화(232/325)
232. 샐러드를 좋아하시나요?
“다름이 아니라 며칠 전, 무슈 볼테르와 함께 역사 얘기를 하다가 식문화의 진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었거든요. 그때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나서요.”
“가르침은 이쪽이 받았죠. 저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에티올 부인을 보면 저도 항상 감탄하게 됩니다.”
“과찬이십니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로 보건대, 볼테르는 에티올 부인과 교류가 있는 듯했다. 볼테르는 그녀를 좋게 보고 있었고.
그런 에티올 부인이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고, 볼테르를 소환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샤티용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볼테르가 조용히 넘어갈 리는 없다. 그는 상대가 귀족이라고 해서 말을 아끼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볼테르와 한 귀족 사이에서 벌어진 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약 20년 전, 볼테르는 극장에서 슈발리에 로한-샤보(Chevalier de Rohan-Chabot)와 마주친 일이 있었다.
로한 가문은 프린스 에트랑제 (prince etranger). 브리타뉴 지역을 군림하던 군주의 후예. 신분으로 치면 대검귀족 위에 있는 귀족으로, 준왕족 대우를 받는 대귀족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그 대귀족의 후예가 한 여배우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녀는 평민에 불과한 볼테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기분이 상한 대귀족은 볼테르에게 한마디를 했다.
―이제야 자네도 사람답게 이름이 생겼나 보군.
당시 볼테르는 본명인 ‘아루에’를 버리고 필명 ‘볼테르’로 활동을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변변한 이름 하나 없는 볼테르의 미천한 신분을 비웃는 말이기도 했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겠지만, 볼테르는 달랐다.
―내 이름은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당신의 이름은 당신으로 끝이 날 수도 있죠.
뼈아픈 말이었다. 슈발리에 로한-샤보는 로한 가문의 차남으로,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처지였으니까.
그로부터 며칠 후, 볼테르는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이쯤이면 몸을 사릴 만도 하건만, 볼테르는 대귀족이 괴한을 고용해 자신을 폭행했다며 결투를 신청했다.
물론, 대귀족이 평민과의 결투에 응할 리가 없었다.
로한-샤보 공작은 그의 권력을 이용하여 체포 영장을 발부했고, 볼테르는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바스티유 감옥에 가둬졌다.
무기한으로 감옥에 갇힐 것을 두려워한 볼테르는 국외 추방으로 형을 바꿔 달라고 청했고, 결국 그는 프랑스를 떠나 2년 반 동안 영국에서 생활해야 했다.
볼테르가 권력을 불신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데에는, 이런 경험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거다.
‘상성이 너무 안 좋네.’
샤티용은 속으로 혀를 찼다.
보그는 자신이 대검귀족인 것을 훈장처럼 여기는 인물. 볼테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었으니까.
‘그래도 재미는 있겠어.’
샤티용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볼테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모두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볼테르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식탁의 규칙을 위반하면 무질서와 무력이 난무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참 재밌는 견해군요.”
“그러면 무슈 볼테르는 이 식탁이 옳다고 보십니까. 예로부터 상 위에 로스트 하나 정도는 올리지 않았습니까. 손님을 대접하는 이가 보여줄 수 있는 기본 성의이자 예의인데, 그걸 지키지 않은 것 아닙니까.”
“무슈 보그는 로스트가 식탁의 필수 요리가 된 게 언제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야 물론…”
말꼬리를 흐리는 걸 보니 모르는 모양. 하긴, 그딴 걸 알아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였습니다.”
여기 있었다.
“로마인들도 물론 고기를 먹었지만, 고기보다는 오히려 숭어 같은 생선을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하더군요. 상 위에 로스트가 본격적으로 올라간 건 게르만족의 영향이죠.”
“….”
“게르만족은 펜보다 검을 중요시하는 이들이었고, 그들은 야생에서 사냥한 동물을 차려놓고 잔치를 벌이는 걸 즐겼죠. 그때부터 로스트가 상차림의 기본이 된 겁니다. 게르만족은 강하고 용맹한 전사를 우상시했고, 사람을 많이 죽인 전사를 우러러보듯이 고기를 많이 먹는 전사를 으뜸으로 여겼죠. 샤를마뉴와 관련된 기록을 읽다 보니 이런 일화도 나오더군요. 통구이 하나를 들고 통째로 뼈까지 아작내며 골수를 빨아먹는 전사를 보며 샤를마뉴가 ‘저자가 롱바르드 왕족의 후예군. 저렇게 먹을 수 있는 자는 진정한 왕족 후예밖에 없다’고 감탄했다고 말입니다. 설마 그 문화를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 시절이야말로 무슈 보그가 말하는, 무력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시대 아닙니까.”
“….”
볼테르는 철저하게 기록과 논리만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오히려 반박하기 어려웠다.
“물론 우리의 식문화에는 그 시절의 풍습이 아직 남아 있지만, 그것도 바뀌는 중 아닙니까. 루이 14세 전하도 그런 문화를 야만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식탁 위에 날카로운 나이프를 올리는 것을 금지 했고 뭉툭한 나이프를 사용하게 한 것이고요.”
“….”
“무질서와 무력을 경계하고 교양과 소양을 중요시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정말 교양과 소양을 중요시한다면, 생각 없이 관습을 따르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관습이 어디서 어떻게 온 건지. 과연 이 시대와 맞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야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논리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얼굴이 새빨개진 보그를 보며, 볼테르가 마지막 공격을 가했다.
“충고를 하나 드리자면, 모르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현명합니다. 실제로 많이 아는 자일수록 말수가 적죠.”
‘여기서 끝인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상대가 반격 한번 하지 못한 것도 아쉬웠고.
그런 생각을 할 때,
“많이 아는 자일수록 말수가 적다니, 무슈 볼테르가 할 말은 아니군요. 프랑스에서 가장 말이 많은 분 아니십니까.”
보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꺼진 불씨를 살리려는 노력이 가상했지만, 볼테르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제가 말이 많긴 하죠. 그건 제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식을 얻으면 얻을수록,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한지 알게 되니까요.”
“무지한 당신이 말을 해도 된다면, 저에게도 말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무슈와 저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고, 무슈는 진실에 도달했다고 착각하고 있죠. 저는 질문을 던지고 있고, 무슈 보그는 정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보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나 기대하던 그때, 살랑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슈 볼테르, 제 손님을 너무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아 주세요. 무슈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자유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원인 제공을 한 에티올 부인이 보그의 편을 들고 나섰다. 조금 황당한 일이었다.
“의견이라는 건, 앞뒤 논리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만 해당하죠. 논리도 없이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견을 표하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떼를 쓰는 거죠.”
“그렇다면 무슈 볼테르는 지금 이 식탁이 저희 시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끼어든 이는 데콤브.
평소 보그와 친분이 있는 귀족이니, 어느 정도 편을 들어주려는 모습이었다.
볼테르는 뚜껑 덮인 접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이것이 옳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경험하기도 전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말자는 말을 한 거죠.”
“….”
“하지만, 철저하게 합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나쁘진 않군요. 내 앞에 그릇이 있으니 손이 안 닿을 리도 없고, 번거롭게 남에게 저 요리 좀 덜어달라고 부탁할 일도 없고, 초청받은 손님 모두가 평등하게 같은 요리를 먹으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한 접시씩 나오면 제가 싫어하는 요리가 나와도 예의상 억지로 먹어야 할 테니 조금 두렵군요.”
볼테르의 말에 에티올 부인이 웃음을 흘렸다.
“무슈 볼테르,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담스러워서 식사를 권하기 무서워지지 않습니까.”
“저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뿐입니다.”
“혹시 무슈 볼테르는 샐러드를 좋아하시나요?”
“샐러드?”
“첫 번째 메뉴로는 제가 가꾸는 온실 정원의 재료로 샐러드를 준비했거든요.”
‘샐러드?’
샤티용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샐러드가 무엇인가!
단순하게 풀떼기를 뜯어서 데친 요리 아닌가!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음식. 원래의 상차림이라면, 중앙에서 한참 벗어난 변방에 올리는 비루한 요리다.
‘아니, 이것도 나쁘진 않지.’
샤티용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야깃거리로는 완벽하다.
남들 하는 대로만 했다면 중간은 갔을 텐데, 에티올 부인은 앵무새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해괴한 상차림을 냈다.
그로 인해 논란이 불거졌고, 볼테르가 기껏 나서서 변호해줬지만. 앵무새가 자신 있게 내민 요리는 고작 샐러드였다.
이 얼마나 재밌는 얘기란 말인가!
당장 내일 찾아갈 살롱에서 이 얘기를 한다면, 샤티용은 순식간에 인기인이 될 터였다.
내일 일어날 일을 그리며 공상에 빠져있던 그때, 샤티용의 귓가에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건 무슨…”
하인들이 뚜껑을 제거하면서 샐러드가 공개된 것.
‘아차, 다른 손님들의 반응도 봐야지.’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라면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샤티용은 서둘러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하나같이 입을 느슨하게 벌리는 모습.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리는 게 우스꽝스러웠다.
하긴,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저런 멍청한 얼굴을 할 만도 하지.
사람들 반응을 꼼꼼하게 살핀 샤티용은 뒤늦게 자신의 앞에 있는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샐러드를 마주하는 순간,
“아!”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버렸다.
동시에 저들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샐러드라고?’
샐러드가 맞긴 하다.
채소가 잔뜩 올라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샐러드는 샤티용이 봐온 그 어떤 샐러드와 달랐다.
정원을 그대로 접시 위에 옮겨 담은 모습.
접시 위에는 수십 종류의 채소와 꽃이 흐트러져 있었다.
매끈한 녹색 이파리, 야들야들한 노란 꽃잎, 단단한 주황색 당근, 손톱 크기의 연두색 새싹, 까슬까슬한 허브 잎, 앙증맞은 보라색 꽃.
불규칙하게 얽힌 재료가 각자의 색감과 자태를 뽐내며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고운 색감의 보석을 수확해서 흩뿌린 것처럼.
압도당할 정도의 화려함이었지만, 휘황찬란한 보석을 치렁치렁 매달고 있는 졸부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지고 넋을 놓고 감상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화려함.
“이런 샐러드는 처음 봅니다, 허허. 이건 요리보다는 예술에 가깝군요.”
“먹기 아까워서 손을 못 대겠습니다.”
“참 심플하면서도 아름답군요.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오늘 내내 프랑스 요리가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많은 진화를 해왔는지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정말 딱 오늘의 주제에 어울리는 요리군요. 이것이야말로 프랑스 요리의 최정점을 찍는 한 접시 아닙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손님들이 앞다퉈 찬양을 시작했다. 샤티용이 그 말을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오늘 살롱에서 다룬 요리와는 거리가 멀죠.”
목소리의 주인은 역시나 보그.
그는 여전히 부루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프랑스 요리는 기술과 창의성, 맛의 조합이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예쁘긴 합니다만, 사실상 풀떼기 몇 개 뽑아서 올린 것 아닙니까. 제 다섯 살짜리 아들도 할 수 있는걸 요리라고 부를 수는 없죠.”
“쯧쯧, 무슈 보그는 젊은 사람이 기억력은 좋지 않군요. 정답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질문을 먼저 하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질문이고 뭐고, 보면 딱 알지 않습니까.”
볼테르와 보그의 2차전이 시작되려는 찰나,
“그러면 제가 대신 질문을 해보죠. 마르셀?”
에티올 부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이제 막 다이닝룸을 빠져나가던 한 청년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르셀은 이 요리를 만든 요리사의 견습생이랍니다. 오늘은 일손이 조금 모자라서 서빙도 도와주고 있었죠. 이 샐러드가 무슈 보그의 말대로 풀때기를 뜯어서 예쁘게 올린 요리인가요?”
곱상하게 생긴 청년은 갑자기 주어진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조리 과정을 알려드리면 되는 겁니까.”
“그래 주면 고맙죠.”
“이 샐러드에는 온실에서 재배한 50종류의 채소와 허브, 꽃을 이용했습니다. 모두 오늘 오후에 수확한 것으로, 각자 다른 조리과정을 거쳤죠. 아스파라거스는 소금물에 한 번 데쳐서 올렸고, 카르둔은 고수 씨와 오렌지 껍질, 샬럿이 들어간 육수에 데쳤습니다. 비트와 시금치는 버터에 한 번 볶아주었고, 양배추는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서 살짝 볶았습니다. 마늘을 타임과 월계수 잎을 넣고 오븐에서 로스팅했으며, 파슬리 뿌리와 순무는 삶아서 체에 내려 퓌레로 만들었습니다. 콩은 로즈메리를 넣어 볶았고, 꽃잎은 생으로 그대로 올렸습니다. 파슬리는 올리브유와 함께 갈아서 파슬리 오일로 만들었고, 나머지 재료는 소금물에 데쳤습니다. 재료마다 간이 달라 소금물 농도를 달리했지만요. 그리고 햄을 팬 위에서 볶아주고, 이를 디글레이징한 쥬를 만들어 이 모든 재료를 버무리고 접시에 플레이팅 했습니다.”
보기와 다르게, 어마어마하게 손이 많이 간 요리였다.
“몇 개 빼먹은 것도 있지만, 이런 기술적인 것까지 손님들이 아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맛이니까요. 빨리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청년은,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
“첫 번째 요리가 식지 않는 요리라 다행이군요.”
기껏 만들어둔 요리를 앞에 두고 먹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듯한 말투였다. 요리사는 고개를 숙인 후, 그대로 퇴장했다.
“하하, 그렇죠. 요리가 나왔으면 먹어야죠.”
“아깝지 않습니까.”
“그래도 먹기 위해 만든 것 아닙니까. 손도 대지 않으면 이대로 시들어서 버려질 운명입니다. 빨리 먹어보죠.”
그제야 모두가 포크를 들어 올렸다.
샤티용 역시도.
싱그러운 채소를 한가득 포크에 얹어 입안에 넣자, 예상치도 못한 맛들이 터졌다.
아삭한 양상추가 쪼개지면서 수분을 터트렸고, 까슬까슬한 딜이 입안을 간지럽히며 향긋한 허브향을 퍼트렸다.
맛깔나게 구워낸 버섯이 씹힐 때마다 감칠맛 넘치는 즙을 뿜어냈고, 아스파라거스의 싱그러움이 청량감을 주었으며, 오븐에 넣어 말린 허브가 입안에서 유리처럼 산산조각 깨지며 향긋함을 더해주었다.
입안에서 각기 다른 식감, 각기 다른 맛을 가진 수많은 재료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맛.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하고, 아삭하면서도 농밀하고, 온화하면서도 알싸하고, 싱그러우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이렇게 많은 재료가 날뛰면 난잡할 수도 있건만, 모든 재료가 구수한 햄의 향기를 두르고 있어 통일성 있게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이건… 최고군요.”
“그렇군요.”
긴말을 하는 손님은 없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단어 따위는 없었으니까.
평범한 재료로 최고의 맛을 끌어내는 게 프랑스 요리라고 했던가.
그 말대로였다.
하찮은 풀떼기가 요리사의 손을 거쳐 다채로운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고작 샐러드 하나로 미각의 폭이 달라지는 생소한 경험.
눈으로 매혹하고, 맛으로 놀라움을 주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로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요리였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혹시 이런 요리가 몇 개나 나오나요?”
누군가가 질문했고, 모두의 시선이 에티올 부인에게로 향했다.
“총 9개의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안도와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아직 8개의 요리가 남아서 안도했지만, 이미 하나의 요리를 먹어 치워서 아쉽기도 했다.
그때,
“두 번째 코스 요리입니다.”
다음 요리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