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3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38화(238/325)
238. 익숙한 고민
‘뭐가 있으려나?’
한길은 들뜬 마음으로 다음 응접실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테이블 위에 무화과, 복숭아, 배, 사과 등. 각종 과일이 도자기 그릇 안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진짜처럼 보이지만, 설탕 반죽이나 아몬드 반죽으로 만든 가짜 과일이다.
하지만 장식용이 아니라 시식용이었다. 손님들의 손이 닿는 곳에 놓여 있는 데다가, 다른 손님들이 먹고 있는 모습까지 보였으니까.
‘이걸 아직도 만드는구나.’
가짜 과일은 한길에게는 익숙한 메뉴였다. 영국의 햄프턴 궁전에도 가짜 과일이 유행했으니 말이다. 영국에서는 설탕 과일 뿐 아니라 고기로 만든 과일까지 있었더랬지.
꽤 오래전이지만, 한길은 헨리 8세를 위해 거위 간으로 ‘고기 사과’를 만든 적도 있었다. 이에 영감을 얻어 현대에서도 귤처럼 생겼지만, 내용물은 거위 간인 메뉴를 개발하기도 했고.
‘똑같지는 않네.’
베르사유의 가짜 과일은 영국보다 진화한 형태였다.
우선은 외형이 훨씬 더 사실적이었다.
무화과는 너무 익어서 살짝 터진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잘 익은 무화과 특유의 주름이 살아있었다. 벌어진 껍질 사이로 보이는 탐스러운 과육에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복숭아 역시 마찬가지.
통통한 복숭아는 침샘을 자극하는 먹음직스러운 분홍색이었는데, 전분을 살짝 뿌려서 복숭아 껍질 특유의 보슬보슬한 촉감까지 살리고 있었다.
‘맛도 다른데?’
아까 먹었던 설탕 장식물은 설탕 외에는 별맛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진한 복숭아 향이 입안에 휘몰아쳤다.
조금 건조한 복숭아 잼을 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메마른 감이 있지만, 향과 맛만큼은 복숭아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었다.
‘나쁘진 않네.’
물론, 실제 복숭아만큼 맛있지는 않다. 과육을 깨물자마자 주르륵 흘러나오면서 입안을 흥건하게 적시는 과즙이 없으니까.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과육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달달하면서도 촉촉한 과즙은 복숭아 맛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그게 없으니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복숭아 철이 아닐 때 대용으로 먹기에는 나쁘지 않겠지.
‘식감도 생각보다 좋고.’
설탕이나 아몬드 가루는 딱딱할 정도로 단단한데, 베르사유의 가짜 복숭아는 말랑말랑했다.
이것이 프랑스의 기술 아닐까.
“니콜라, 복숭아가 이렇게 말랑말랑한 이유를 아나요?”
“글쎄? 검 드래곤을 쓴 게 아닐까?”
“검 드래곤?”
“어, 아랍 지역에서 나는 덤불 뿌리를 말린 건데, 그걸로 젤리도 만들거든.”
검 드래곤 (gum dragon).
자동 번역 기능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나왔다. 아무래도 이 시대에서 젤라틴 대용으로 사용하는 재료인 모양이다.
“그거, 저희도 구할 수 있나요?”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 있지. 우리야 페이스트리나 디저트를 만들 일이 거의 없으니까 평소에는 쓰지 않지만.”
프랑스라고 해서 붓만 팔지는 않는다.
이곳에도 한길이 모르는 물감이 있었다.
‘나중에 시장에 가서 한번 찾아봐야겠네.’
한길은 상상 속의 쇼핑 카트에 검 드래곤을 담고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
다음 방에도 가짜 음식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가짜 과일뿐 아니라 가짜 채소도 있다는 것.
영국에서는, 채소를 천한 음식으로 여겨서 가짜 채소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바구니 안에 설탕으로 만든 가짜 배추와 가짜 오이가 진열된 모습은 어딘가 낯설었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는 조금 특이한 아스파라거스도 있었다. 탱글탱글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은…
“젤리?”
아스파라거스 모양의 젤리였다.
‘맛도 아스파라거스 맛이려나?’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조금 맛을 보았는데, 다행히(?) 아스파라거스 맛은 아니었다. 평범한 포도 젤리를 아스파라거스 모양의 틀 안에 넣어서 굳힌 것이었다.
“다음 방으로 가시죠.”
다음 방은 세팅이 확연히 달랐다.
테이블 위에 거대한 통이 여럿 있었고, 하인들이 그 통 안에서 무언가를 덜어서 손님들에게 건네주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본 니콜라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오오! 이것도 있네!”
“뭔데요?”
“마르셀은 아직 먹어본 적이 없나? 글라쎄라는 건데, 요즘 꽤 인기가 많은 메뉴거든!”
니콜라가 글라세(glacee)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 아이스크림이었다.
거대한 통마다 각기 다른 맛의 아이스크림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원하는 맛을 고르면, 하인들이 그것을 어여쁜 찻잔에 담아주고 있었다.
18세기 바스켓 로빈스라고 해야 하나.
베르사유 궁전에서, 콘이나 컵 대신 찻잔에 아이스크림을 담아주는 모습은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아몬드, 커피, 딸기, 체리, 피스타치오 맛 아이스크림은 뭔가 익숙한 맛이었지만, 시나몬이나 꽃향기가 나는 특이한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유제품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젤라토와 유사했고, 레몬이나 꽃향기가 나는 아이스크림은 셔벳에 더 가까웠다.
한길의 입맛에는 딸기나 체리 등 과일 맛 아이스크림이 가장 맛있었다.
과일을 응축한 맛이라고 해야 하나. 연금술을 이용해서 과일의 에센스만 뽑아내고 얼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인공적인 향이 아니라, 잘 익은 과일을 졸여서 그대로 얼음으로 만든 느낌이 강했다.
‘이건 쓸만하겠는데?’
이런 기술이 있다면, 배워가서 나쁠 게 없다.
“니콜라. 글라세를 만들 때, 과일 향을 더 끌어내는 비법이 있나요?”
“글쎄? 난 글라세를 만든 적이 없어서.”
“마스터는 만들 줄 알까요?”
“그건 잘 모르겠네. 하지만 마스터가 만들어도 이런 맛은 안 날걸? 나도 파리에서 유명하다는 글라세 맛집은 다 가봤는데 이렇게 맛있는 건 없었거든. 그냥 여기 재료가 좋은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너무 기술에만 신경 쓰느라 기본을 잊고 있었다.
원재료가 좋으면, 똑같은 기술을 사용해도 맛이 확연히 다르다.
아까 맛보았던 가짜 과일과 젤리, 지금의 이 아이스크림도. 맛의 비결은 뛰어난 과일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혹시 베르사유에 납품하는 업체들을 알고 있나요?”
궁전에 납품하는 상인을 안다면, 그 상점에 직접 찾아가서 이 과일의 원형을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조리나 가공을 겪지 않은 순수한 원형의 과일을.
그런데 니콜라의 입에서 예상외의 답이 나왔다.
“납품? 베르사유는 그냥 정원에서 직접 가꾸는 거 아냐?”
“그래요?”
“잘은 모르는데, 베르사유는 정원이랑 텃밭이 워낙에 유명하잖아? 궁전에서 쓰는 재료를 전부 자급자족하지는 않겠지만, 꽤 많은 부분을 직접 재배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영국의 궁전은 인근 농부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납품을 받았는데, 베르사유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모양.
‘온 김에 확인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그건 그만두기로 했다. 이런 야밤중에, 어둠 속에서 궁전 정원을 어슬렁거리면 위험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어차피 조만간 에티올 부인은 베르사유에 들어올 테고, 그때가 되면 한길은 밝은 대낮에 베르사유의 정원을 마음껏 볼 수 있을 터였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지
“그나저나! 한 바퀴 다 돌았는데, 이제 슬슬 거울의 방으로 가 볼까? 더 늦으면 왕족이 입장하는 것도 못 본다고!”
니콜라가 눈이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니콜라는 기본적으로 노는 걸 좋아했다. 평소에도 업무가 끝나면 파리의 유명 술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시내에 있는 댄스홀을 찾기도 했으니까.
그런 니콜라가, 베르사유의 가면무도회에 왔다. 그것도 파리의 유명 댄스 마스터로부터 댄스 교습을 받은 후에.
기대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중에 가죠.”
“왜?”
“아까 한 바퀴 돌고 다시 첫 번째 방으로 간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갔을 때 비어있는 접시도 많았는데, 다시 한 바퀴 돌면서 먹어봐야죠.”
한길의 말에 니콜라의 얼굴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그걸 꼭 지금 해야 해? 솔직히 뭘 더 먹으려고 해도 들어갈 공간도 없잖아?”
“그렇게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놓친 요리는 11개뿐이니까.”
“그걸 또 세고 있었냐?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린 무도회에 온 거잖아! 넌 무도회가 뭔지 모르냐?”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놀더라도, 할 일을 하고 놀아야죠.”
니콜라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이건 양보할 수 없었다.
응접실을 한 바퀴 돌아보니, 어느 정도 베르사유의 특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길은 이 감각이 살아있을 때, 복습도 할 겸 모든 요리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이제 좀 알 것 같으니까.’
베르사유 요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하나, 눈에 띄어야 한다.
요란하게 금 접시를 진열하든, 화려한 설탕 조각상으로 꾸미든. 어떤 방식으로든지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 테이블 데코를 마련해야 했다.
그 이유는 뻔했다.
‘궁전이니까.’
베르사유는 프랑스 문화의 정점을 대표하는 곳이었고, 가끔 들려오는 외국어로 보아 외국의 대사들도 자주 드나드는 장소였다.
한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체면을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 웅장함과 화려함이 필요했다. 궁전에서 초라한 메뉴를 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둘.
이건 조금 의외인데, 베르사유는 파리의 트렌드를 거부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자주 거론되는 유행 키워드들이 보였으니까.
설탕 모래 정원.
가짜 과일과 가짜 채소.
에티올 부인의 살롱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는 ‘정원’과 ‘재료 본연의 맛과 모습’이었다.
200년 전에는 향신료로 재료의 맛을 덮어버리고, 인공적인 형태로 재료를 가공하는 요리가 많았다. 그에 반해, 1745년 파리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료를 사용하는 걸 선호했다.
그런 면에서 베르사유의 요리는 어떤가.
아스파라거스 형태의 요리가 있지만, 포도로 만든 젤리였다. 배추, 오이, 복숭아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설탕으로 만든 것이었다.
1536년과 1745년의 정 가운데.
어딘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한길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익숙한 고민의 흔적이 보였으니 말이다.
―섬세하지만 소문날 요리를 만들어라.
한길이 처음 에티올 부인을 만났을 때, 주어진 미션이었다.
파리에서 유행하는 키워드로는, 소문날 요리를 만들기 어려웠다. 자연 모습 그대로의 재료를 그대로 올리는 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였으니까.
베르사유도 같은 고민을 한 게 아닐까?
아직 가설이었지만, 만약에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생각보다도 쉽겠는데?’
한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어떻게 보면, 한길의 요리는 베르사유가 찾고 있는 요리 그 자체였으니까.
한길의 살롱 요리는 재료 본연의 형태를 살리면서, 파리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만큼 놀라움을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베르사유에서는 우리 요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거지?’
그래서 궁금해졌다.
베르사유에서는 에티올 부인의 요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에티올 부인의 살롱에는, 베르사유에 거주하는 귀족들도 자주 찾아왔다. 한길의 기억에 의하면 약 20명 정도.
하지만 예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베르사유에 매일같이 드나드는 귀족들은 약 1만 명이었다. 1만 명 중 20명이라면, 0,002%만 관심을 보이고 찾아왔다는 것을 뜻했다.
아직 베르사유에 소문이 충분히 퍼지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에티올 부인의 살롱 요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니콜라.”
“왜?”
“거울의 방으로 가서…”
“오오?”
“베르사유 귀족들 사이에 저희 살롱 평판이 어떤지 알아봐 주실래요?”
“…. 지금?”
“지금밖에 없죠.”
알아내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한길과 니콜라는 지금 가면무도회에 와 있었으니까.
무도회에 참석하는 손님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으니, 서로의 신분을 알 수가 없었다. 가면을 벗으면 일개 요리사가 귀족의 속마음을 편하게 물어볼 방법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신분과 관계없이 귀족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오늘은 쉬는 날이잖아? 모처럼 온 무도회고…”
니콜라는 거의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한길은 단호했다.
“지난 몇 주간 계속 쉬었잖아요? 이번 결혼식 때문에 살롱은 계속 취소되었으니까.”
“그래도…”
“물론, 이해는 해요. 쉬는 날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저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하루쯤은 일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니.콜.라.는. 그동안 즐거운 댄스 레슨도 많이 받았으니까요.”
해석.
나도 쉬는 날에 내가 싫어하는 댄스 레슨을 받았는데. 그것도 누군가의 장난 때문에.
일단은 살짝 돌려서 말했는데, 눈치 빠른 니콜라는 한길의 말을 알아듣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았어, 우리 살롱 평판만 알아보면 되는 거지?”
“네, 이건 니콜라가 적임자니까요. 정보 알아내는 건 특기잖아요?”
“…. 그래.”
#
니콜라를 보낸 후, 한길은 홀로 첫 번째 응접실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에 봤던, 무대 위에 세팅된 제사상 같은 테이블을 관찰했다.
‘역시 있네.’
무대 위에는 과일 탑이 세워져 있었다.
진짜 과일이다.
설탕이나 젤리가 아닌, 자연에서 수확한 모습 그대로의 과일.
베르사유에서 먹어본 인상 깊은 디저트들은, 모두 과일이 들어가 있었다. 조리 기술이 뛰어나서 맛이 뛰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원재료가 좋아서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은 먹어보는 게 좋겠지.’
한길은 아무런 조리 과정을 겪지 않는 베르사유의 과일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야 확신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꺼내기 힘들겠는데?’
과일 탑은 공략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한길은 은행을 털 계획을 짜는 도둑처럼, 테이블 주위를 배회하며 염탐을 시작했다.
탑의 가장 아래층에는 배가 있었다. 그 위에 은접시를 올리고 사과를 쌓고. 또다시 은 접시를 올리고 밤을 올린 구조였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배와 사과에는 찐득한 시럽이 가득 뿌려져 있었다.
‘풀 대용으로 사용했나 보네.’
과일만 쌓으면 넘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설탕 시럽을 풀처럼 사용해서 과일을 고정해놓은 것.
시럽을 뿌린 과일이라면, 아마 고구마 맛탕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 차갑게 굳어버린 맛탕은, 쉽게 부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많으면 상관은 없는데….’
아마 한길이 움직이는 순간, 응접실에 있는 하인들이 달려올 거다.
잡힌 후의 일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모처럼 온 국민이 모여서 왕세자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손님 한 명이 진열된 과일을 집어 먹었다고 감옥에 넣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문제는, 한길이 과일을 맛보기 전에 붙잡혀서 쫓겨날 확률 있다는 것. 과일 맛을 보지도 않고 쫓겨나는 건 억울했다.
하인들이 한길을 막기 전에, 시럽에 묻혀있는 과일을 꺼내서 입에 넣으면 그만이다. 이미 먹은 걸 뱉어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도구가 필요하겠네.’
맨손보다는 무엇이라도 연장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길은 아이스크림이 있는 응접실에 다시 들러서, 아이스크림 전용 스푼을 몰래 가져왔다. 시럽의 틈새에 스푼을 넣고 두드리면 조금은 빨리 작업할 수 있을 테니까.
‘다음은 타이밍인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 게 효율적인지, 하인들은 몇 명이나 있으며 그들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언제인지. 열심히 관찰하며 계산하고 있던 그때,
“그만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낮게 깔린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길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