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3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39화(239/325)
239. 과일도 다 같은 과일이 아냐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남자임은 분명했다.
남자는 조금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각종 과일과 채소를 엮은 목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으니까. 정원사로 분장한 모양이다.
“그만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남자는 한길에게 극존칭을 썼다.
‘왜?’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한길의 얼굴은 가면에 가려져 있고, 의상은 상당히 화려한 축에 속했으니까.
한길을 신분 높은 귀족으로 오해한 모양.
그렇다면 그 역할에 맞춰주는 게 좋겠지.
“내가 뭘 했지?”
“저 과일 상을 노리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티가 났나.’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 눈앞의 남자는 궁중에서 일하는 하인이 아니었다. 일반 손님, 그것도 한길을 중요한 귀족으로 알고 조심하는 손님이었다.
‘그걸 해야 하나?’
조금 이르지만, 한길은 아까부터 머릿속에 세워둔 계획을 실행이 옮기기로 했다.
별 대단한 계획은 아니다.
들키면 망나니 취객 흉내를 내자는 것뿐이었으니까.
쉬는 날마다 니콜라가 술집에 끌고 다녔기에, 술꾼들의 행동거지나 말투는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한길은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불량하게 팔을 걸쳤다.
“뭐를? 난 그냥 보고 있었을 뿐인데?”
“….”
“저기에 산이 있잖아? 그것도 끝내주게 멋진 산이. 안 보는 게 이상하지 않아?”
‘진짜 별의별 걸 다 배웠네.’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한길이 느끼기에도 자신의 행동이나 말투는 망나니 귀족 그 자체였으니까.
어느새 연기력이 눈에 띄게 향상한 거다. 스테이지 안에서 연기를 하는 게 처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게 이미 몸에 배 버렸다고 해야 하나. 거짓말에 협박, 진상짓도 했는데, 망나니 도련님 흉내쯤이야.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다 압니다.”
“무슨 생각?”
“저건 드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먹을 생각은 없다고 우기려 했지만, 남자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터.
‘그것도 그거지만…’
얌전히 물러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한길이 대충 거짓말을 둘러대도, 졸졸 따라다니면서 감시를 할 것 같은 귀찮은 예감이 들었다.
‘떨쳐낼 수 없으면, 차라리 공범으로 만드는 게 나으려나?’
깍듯한 태도로 보아하니, 신분 높은 귀족이 강요하면 마지못해 하면서도 움직일 것 같았다.
자고로 저렇게 딱딱하게 행동하는 사람일수록, 옆에 진상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휘말리기 마련이다.
그건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한길 역시 스카피를 따라 별의별 짓을 다 하지 않았나.
역할 역전만 하면 된다.
중요한 건, 정신이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거다.
“남자라면 말이야! 산이 있으면 오르고, 어? 과일이 있으면 먹어야지! 그런데 과일 산이 눈앞에 있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지나쳐, 안 그래?”
“후회하실 겁니다.”
“저 과일도, 저렇게 장식으로 끝나느니 내 위장에 들어가는 게 훨씬 더 행복할걸?”
“….”
“과일은 보라고 만든 게 아냐. 과일의 운명은 먹히는 거지!”
“….”
‘뭐지?’
남자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가면에 가려져 표정은 읽을 수 없지만, 방금 한길이 한 말이 효과가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망 좀 보고 있어.”
“네?”
“누가 이쪽을 본다 싶으면 알려달라고.”
남자의 동기부여를 위해 각종 협박과 거짓말을 목구멍에 장착했지만, 그것을 꺼내기도 전에 의외의 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한 것.
“단, 들키면 저는 모른다고 할 겁니다.”
#
뜻하지 않은 조력자 덕분에 한길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과일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무도회장에 들어온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지금 와서 무대를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방 안에는 하인이 한 명 있었지만, 하인과 무대 사이에 정원사를 세워두면 사각지대가 생겼다.
한길은 사각지대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연장을 이용해서 과일 탑에 묶여있는 과일을 구출해냈다.
하인이 움직이면 정원사 역시 몸을 움직여 새로운 사각지대를 만들어줬고, 그럴 때마다 휘파람으로 한길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
덕분에 한길은 사과와 배를 하나씩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걸 소매 속에 숨긴 후, 조용한 구석으로 이동하여 한 입 베어 물자,
“윽.”
끔찍한 맛이 입안에 흘러들어왔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없는 과일은 처음이었다.
배는 설익어서 이빨이 파고들지 못할 정도로 딱딱했다. 온몸으로 먹히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사과는 퍼석퍼석했고, 기분 나쁠 정도로 시큼한 즙이 흘러나와 목구멍을 불태웠다.
‘이런 과일로 저런 디저트를 만들었다고?’
그렇다면, 프랑스 요리사들의 기술은 한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인 거다.
“그래서 제가 말했잖습니까. 드시면 후회하실 거라고요.”
“이런 맛일 줄은 몰랐지. 유럽 최고의 궁전에서 난 과일이, 시장 바닥에 떨어진 사과보다 맛이 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한길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진짜 베르사유의 과일이 아닙니다.”
“그래?”
“그 과일은 식용이 아니라 전시용으로 개량된 거니까요. 일부러 맛이 없게 만든 과일입니다.”
“그런 짓을 왜 하지?”
“맛있는 과일은 과일 탑을 쌓는데 적합하지 않으니까요. 너무 말랑말랑해서 쌓으면 무너질 위험이 있고, 과즙이 너무 많으면 흘러나와서 테이블보를 망치죠. 진짜 베르사유의 과일은 저런 맛이 아닙니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덕분에 한길은 남자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래? 그러면 들고 와봐, 진짜 베르사유 과일이라는 것을.”
“네?”
“응접실에는 과일이 없더라고.”
“그걸 제가 어떻게 가져옵니까.”
“여기서 일하는 정원사잖아, 안 그래?”
“….”
남자가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목울대를 여러 번 크게 꿀렁거린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정원사라니… 정원사 분장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진짜 베르사유의 정원사는 아니잖습니까.”
“아니, 진짜 맞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숨겨도 소용없어, 다 티 나니까.”
“무슨 티가 난다고…”
“그 피부색은, 누가 봐도 종일 땡볕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잖아?”
“….”
“그리고 귀족인지 아닌지는 손만 보면 알 수 있어. 굳은살도 그렇고, 손톱 안까지 파고든 흙은 가면으로 가려지지 않으니까.”
일하는 사람은 그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현대에서도, 한길의 손은 누가 봐도 주방에서 일하는 자의 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빙의한 마르셀의 손은 보송보송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주방 일을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봐봐, 안 그래?”
한길이 자신의 손을 정원사의 손 옆에 대고 비교하자,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정원사는 몰래 멋진 옷을 차려입고 무도회에 놀러 온 모양이었다. 한길과 니콜라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정원사는 베르사유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한길이나 니콜라는 들키면 주의를 받거나 쫓겨나고 말겠지만, 저 정원사는 상사에게 찍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어쨌든, 저는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가면 벗고 여기 일하는 하인들한테 가서 물어볼까? 딱 50명만 붙잡고 물어보고, 다 모른다고 하면 믿어주지.”
“….”
잠시 후, 정원사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꺼냈다.
“… 비밀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공짜로?”
“제가… 무엇을 드리면 됩니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한길은 주로 정원사의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길은 이 스테이지에 친구를 만들러 온 게 아니니까.
“말했잖아? 베르사유의 진짜 과일을 먹어보고 싶다고. 이왕이면 복숭아였으면 하는데?”
“… 복숭아가 아니라 배는 안 되겠습니까?”
“왜?”
“복숭아는 여름과 가을에만 수확하니까요. 술에 절인 복숭아는 있지만, 그걸 구하려면 주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건 저도 하기 어려워서….”
“그러면 지금 수확할 수 있는 건 뭔데?”
“이겁니다.”
남자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수많은 목걸이 중 하나를 꺼내 한길에게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모형이 아니라 진짜 과일인 모양이었다.
“쇼몬텔 배입니다.”
정원사가 준 것은, 배만 볼록 나온 오뚜기 모양의 서양배였다. 전체적으로 연두색이었지만, 껍질의 일부는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관찰을 마친 한길은 배를 그대로 한입 베어 물었다.
‘…!’
방금 먹은 배와는 전혀 달랐다.
껍질이 약간 질긴 감이 있었지만, 껍질 아래에 있는 과육은 보드라웠다. 과즙은 진득할 정도로 달았고, 입안에 맴도는 향과 별개로, 향수를 뿌린 것처럼 코끝에서도 배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종이 다른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외관상으로 봤을 때는, 시장에서 봤던 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맛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그냥 기본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개량한 건가?”
“아닙니다.”
“거름을 특별한 걸 썼거나?”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리 다른 건데?”
“같은 과일이라도, 누가 심고 가꿨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니까요.”
남자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서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요리랑 같은 건가?’
같은 재료도,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전혀 달라진다. 그리고 눈앞의 정원사는, 작물도 누가 키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땅속에서부터 맛을 디자인합니다.
언젠가 박람회에서 봤던 문구가 떠올랐다.
분명, 그런 셰프도 있었다. 작물이 토양에서 자라나는 순간부터 맛을 다듬는다고 한 셰프가.
‘이건 꼭 배워가야겠는데?’
한길은 앞으로 열릴 3호점을 팜투 테이블로 구상하고 있었다. 직접 다양한 식재료를 수확하고, 그것으로 요리를 해볼까 하고.
같은 씨앗으로 더 맛있는 과일을, 더 맛있는 채소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꼭 알아가야 한다.
‘운이 좋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 스테이지는 평소보다 유난히 고생을 많이 한 기분이었다. 그런 만큼, 골수까지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잠깐.”
한길은 뒷걸음치는 정원사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이대로 도망치게 둘 수는 없으니까.
“그러지 말고, 나랑 한잔 어때? 안 그래도 혼자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아니, 저는 정말로…”
“진짜 괜찮겠어?”
“네?”
솔직히 진짜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대로 가버리면 궁금해 죽을 것 같거든. 내일 베르사유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고 다닐 수도 있어. 어제 무도회에 왔던, 과일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정원사를 알고 있냐고.”
“….”
“한 500명한테만 물어보면 그중 누구는 알지 않을까?”
“….”
“지금 나랑 어울려줄래, 아니면 내일부터 베르사유에서 숨바꼭질할까?”
“… 그러면 잠시만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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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에는 요리 외에도 수많은 와인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길은 와인을 홀짝이며, 안주 삼아 당근 하나를 베어먹었다. 정원사의 목걸이에서 뜯어낸 베르사유의 당근이었다.
와작!
당근은 청량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당근은 어느 정도 떫은맛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 이 당근은 과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달았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은 또 어떻고.
“여기 당근은 항상 이런 맛인가?”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계절마다 다른 종의 당근을 수확하니까요.”
“그래?”
한길은 당근을 마저 먹고 정원사의 목걸이를 다시 훑어보았다. 솔직히, 응접실에 차려진 뷔페보다 더 만족스러운 뷔페였다.
“… 이제 그만 드십시오. 제 의상이 벌써 반이나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미안, 미안. 진짜 멈추기 힘들 정도로 맛있어서. 비결이 뭐지?”
“정말 특별한 건 없습니다.”
“흠, 그래?”
“정말입니다.”
“뭐, 알았어. 한잔 더 해!”
‘경계심이 너무 심하네.’
몇 번이나 질문했지만, 정원사는 필사적으로 영업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차라리 잠깐 주제를 돌렸다가, 방심한 틈을 노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네는, 여기서 오래 일했나?”
“15년 가까이 되었죠.”
“그러면 궁중에 대한 것도 잘 알겠네?”
“궁전 내부에는 들어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정원을 가꾸기에도 바빠서요.”
주제가 바뀌니 정원사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래, 일단은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게 좋겠지.
“여기 밥은 맛있나?”
“저는 간단하게 빵이나 스튜만 먹어서…”
“그래? 베르사유 요리는 어떤가 궁금해서 물어보려 했는데.”
“그랑 쿠베르라면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 쿠베르가 아니라 지나가는 모습이었지만 말이죠.”
그랑 쿠베르 (grand couvert).
자동 번역에 의하면 ‘거대한 상차림’이라는 뜻이었다. 뉘앙스상 국왕의 식사를 말하는 듯했다.
“요즘 그랑 쿠베르는 조금 달라졌나? 내가 최근에 외국에 오래 있어서 말이지.”
“여전히 화려하죠. 일하다가 절로 손을 멈추게 되는 행렬이니까요. 15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정원사에 의하면, 궁중 주방은 본관과 떨어진 곳에 있었고. 국왕의 끼니때가 되면 요리의 행렬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행렬의 가장 앞에는 경비병 둘. 그 뒤로 문지기, 메트로 도텔, 음식을 운반하는 서버들, 재료 창고 관리인, 재료 감사, 디저트 재료 감사, 책임 요리사, 접시 관리인, 그리고 경비병 둘이 더 뒤따라간다고 한다.
이동 경로에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경비병이 “국왕 전하의 고기가 지나간다 (c’est le viande de roi)”고 알리고, 그 소리를 들으면 모두가 모자를 벗고 마치 국왕을 알현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이것도 닮았네.’
영국의 궁전에서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국왕의 요리 행렬이 지나갔었다. 베르사유의 행렬은 그보다 훨씬 거창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국왕 전하께서는 화려한 걸 좋아하시나 보네?”
“꼭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그래?”
“전대 국왕인 루이 14세 전하께서는 매일같이 그랑 쿠베르를 여셨는데, 전하께서는 그렇게 자주 하지 않으시니까요. 오히려 방에서 조용히, 혼자 드시는 프티 쿠베르를 선호하시죠. 워낙에 조용하신 분이라, 소란스러운 건 꺼리시는 것 같습니다.”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이 나라 최고 권력잔데.”
“글쎄요. 루이 14세 전하가 만든 룰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정원사는 생각보다 베르사유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었다. 작물에 대한 것만 아니면 말도 술술 했고.
“쿠셰(coucher)도 지정된 방이 있는데, 전하께서는 그 방도 불편하다고 잘 안 쓰십니다. 그래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침대에 들어가고, 사람들이 떠나면 별도의 침실로 가서 주무시죠. 그리고 아침이 되면 레베(lever) 시간에 맞춰서 다시 공식 침실로 들어가서 기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시죠.”
“그래?”
“들리는 말로는 전하께서는 파리에 나들이 가시는 걸 좋아하시는데, 쿠셰를 치르고 몰래 나가신다더군요.”
뭔가 통금을 피하고자 꾀를 쓰는 청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의왼데?’
국왕은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몰래 파리 나들이를 할 정도라면, 취향은 파리의 귀족들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렇다면 한길의 살롱 요리도 마음에 들어 할 터.
“그러면 저는 이만… 정말 이 이상은…”
정원사는 눈에 띄게 비틀거리면서 다시 뒷걸음질을 했다.
“도움은 필요 없나?”
“아니,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말라고.”
한길은 한사코 사양하는 정원사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데려다주면서 가는 길에 정원이 있다면, 다른 작물을 살펴보거나 비법을 조금 캐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한길이 빙의한 마르셀은 몸집이 작은 편이라 정원사를 부축하는 것도 제법 힘이 들었다. 응접실을 빠져나가고 복도에 걸어가는 데만 해도 등에 땀이 축축하게 배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후, 이를 악물고 걷던 한길이 걸음을 멈췄다.
“말도 안 돼요! 에티올 부인이라면 그 에티올 부인이요?”
바로 옆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