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4화(24/325)
< 24. 또 다른 시작 >
에우리사케스가 떠난 후, 이틀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퀘스트 완료 창이 떴으니 소개장을 얻은 건 알았지만, 그 후로 연락이 없으니 오히려 더 답답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퀘스트 종료 여섯 시간을 앞두고 이상한 손님이 찾아왔다.
저녁 장사를 마감할 무렵 찾아온 손님은,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했다.
‘가비우스’의 빌라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처음에는 ‘가비우스?‘ 하고 갸웃했지만, 로마 이름은 가문의 성이 중간에 왔다.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
기다리던 초대였다.
임금은 하루에 30 데나리온.
루시아네에서 받은 임금이 2 데나리온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후한 금액이었다.
“저녁에 마차를 보낼 테니 생각 있으시면 타고 오시죠.”
남자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전혀 아쉬울 게 없다는 태도로.
말릴 줄 알았던 루시아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역시 마르쿠스는 대단해! 아피키우스의 요리사로 가다니!”
상기된 얼굴로 방방 뛰는 루시아를 보고 오히려 한길이 물을 정도였다.
“곤란하지 않겠어요?”
“곤란해? 뭐가?”
“식당 요리사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없으면 구하면 되지. 아피키우스가 데려간 요리사가 일하던 식당인데! 엄청 몰려올걸? 손님도, 요리사도.”
지나치게 덤덤한 태도였다.
한길은 루시아를 대할 때 적당히 선을 그어왔다.
이곳은 퀘스트 속 세상.
다른 세상의 사람이니, 이별이 예견되어 있었다. 너무 깊게 엮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이 보낸 시간이 있는데…..’
너무 산뜻한 태도로 등을 떠미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아, 그래도 지금까지 만든 요리는 제대로 알려주고 가야지! 시간 없으니까 빨리하자!”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시아는 한길을 주방으로 끌고 가더니, 튀김과 파전, 사골의 조리법을 꼼꼼히 물어보기 시작했다.
“밀가루랑 물을 적당히…”
“적당히 라면 모른다니까? 가루 3컵이면 물은 몇 컵?”
“글쎄요.”
“지금 한번 만들어봐. 컵으로 재보면서.”
루시아는 그렇게 얻어낸 레시피를 왁스 태블릿에 받아 적었다.
언뜻 보니, 글자를 적는 건 아니었다.
밀가루는 점을 일곱 개 찍었고, 물은 물결 표시. 그 옆에 작대기로 숫자 표시를 했다.
글자라기보다는 암호였다.
“왜?”
“아니, 루시아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좋지. 다른 사람이 읽으면 따라 할 것 아냐?”
제법 야무진 모습을 보니, 한길이 떠난 후에도 알아서 잘해나갈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자신이 떠난 후, 루시아가 곤란해지면 괜히 마음만 무거워질 테니까.
짜낼 수 있는 정보라는 정보는 모두 쥐어짠 루시아는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후, 크게 하품을 했다.
“마차는 한밤중에나 오나 보네? 난 졸려서 그냥 들어가야겠다. 마르쿠스가 없으면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아니, 가는 모습도 안 보겠다고?’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 순간 루시아가 팔을 크게 벌리며 한길을 가볍게 포옹했다.
“마르쿠스, 가서 잘해야 해.”
“네, 루시아도 건강하고요.”
“……”
건강하라는 말에 한길의 목을 감싸는 루시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저기, 실은 고백할 게 있는데…..”
“고백이요?”
“화내지 말고 들어. 그게… 마르쿠스가 처음 왔을 때… 신전에 가서 매일 배탈 나라고 기도했던 적이 있었거든?”
“네?”
“너무 게을러서 속 터져 죽는 줄 알았으니까! 홧김이었는데! 그거 내일 당장 가서 취소해달라고 할 거니까….. 아프진 마.”
“아, 네….”
그렇게 신경 쓰일 일인가 싶어서 등을 조금 토닥여 주니, 루시아가 갑자기 한길을 밀쳐내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잘 가!”
후다닥 자신의 방을 향해 달려가는 루시아를 보내고 뒤늦게 내려다보니, 한길의 가슴팍에 있는 천이 약간 젖어 있었다.
따라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마르쿠스 맞나요?”
처음 보는 남자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가비우스 가에서 나왔습니다.”
괜히 루시아를 부르기도 애매해서 한길은 그대로 마차에 올라탔다.
딱히 챙길 짐이 없어서 몸만 싣자, 마차는 바로 출발했다.
달그락. 달그락.
승차감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세차게 흔들렸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길은 새삼 처음 베스트 고르메에 접속했을 때 봤던 문구를 떠올렸다.
– ‘이한길’은 기본기가 탄탄하지만, 경험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그때만 해도 9년의 경험을 무시하는 것 같아 울컥하는 기분도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정말 경험이 부족했었다.
예전에는 요리할 때, 레시피를 먼저 찾고 그에 맞는 재료를 준비했었다. 조금 변형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짜놓은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재료를 보며 레시피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로마의 작은 서민 식당에서 얻은 경험만으로도 이 정도로 성장했는데……
이다음은 역사적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 밑에서 어떤 경험을 얻을지……
그리고……
– 히든 스테이지를 전부 클리어할 시, 세계적인 셰프가 될 확률은 99%입니다.
앞으로 자신이 어디까지 나갈 수 있는지.
그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
“사장님, 또 뭐 하시는 거에요?”
아침에 가게로 들어온 슬아는 한길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기저기 뒹구는 계량컵과 저울.
주방이라기보다는 실험실을 방불케 했다.
“슬아야, 너 요리할 줄 아니?”
“김치볶음밥 정도는 만들죠. 설마, 저한테 주방에 들어가라는 건 아니죠?”
“그건 아니고. 이대로 한 번만 만들어줄래?”
한길은 건넨 종이 위에는 손글씨로 작성한 레시피가 적혀 있었다.
루시아에게 메뉴를 전수하면서 한스키친에도 같은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주방 인원을 충원하게 되었을 때, 맛이 변하면 안 되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난 김에 해두고 싶었다.
앞으로 얼마나 바빠질지 모르니.
“이거, 제대로 하는 거 맞아요?”
“묻지 말고 그냥 해봐, 일단.”
슬아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래도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은 거죠?”
“음…..”
슬아가 만든 버거는 한눈에 봐도 입에 넣기 싫어지는 외관이었다.
빵과 채소, 소스는 그렇다 치고.
치킨이 문제였다.
겉은 새까맣게 탄 부분이 많았는데 속은 덜 익었었다.
‘튀김기를 하나 사야겠네.’
튀김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
업소용 튀김기에는 실시간으로 온도가 표시되어 있어 이런 실수가 나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치킨보다도 심각한 건 수란이었다.
슬아는 무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네 개의 계란탕과 단 하나의 수란을 만들어냈다.
유일한 수란은 속이 완전히 익어 있었다.
‘이건 문제네.’
새로 주방 인력을 뽑는다고 해도, 초보가 올 확률이 높았다.
요식업 자영업자 커뮤니티만 봐도, 작은 식당에는 사람을 구하는 게 일이라는 한탄 글이 넘쳤다.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거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커다란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의 직장을 선호했다.
작은 골목식당에 지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한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종이에 끄적끄적 메모한 후에 다시 슬아에게 건네주었다.
“슬아야, 이번에는 이대로 한번 해볼래?”
“이렇게 수란을 만들 수 있어요?”
“한번 해보면 알지 않을까?”
슬아는 시키는 대로 냄비에 물을 올리고 끓을 때까지 기다린 후, 불을 끄고 식혔다.
온도계를 넣고 63도에 이르자, 계란을 껍질째로 넣었다.
“이러면 그냥 삶은 계란 아니에요?”
“나중에 확인해봐.”
그렇게 한 시간 동안 63도 온도를 유지한 후, 삶은 계란을 꺼내서 껍질을 까니,
스르륵!
흐물거리는 하얀 덩어리가 나왔다.
불규칙하게 흰자가 엉겨있는 수란과 달리, 공장에서 만든 것처럼 매끈한 동그란 모양의 계란이.
“우와! 신기해! 진짜 수란이네요?”
“수란은 아니고.”
“그럼 뭔데요?”
“수비드 계란.”
서양에서는 수비드 계란, 일본에서는 온천 계란이라고 불리는 요리다.
계란 흰자는 약 60도부터 응고되기 시작한다. 이 조리법은 서서히, 껍질 안에서 노른자만 가둘 정도로 흰자를 응고시키는 조리법이다.
수란보다는 흰자 강도가 조금 약하고 물기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다.
포크로 푹 찌르니, 노른자가 주르륵하고 흘러나왔다. 보기에는 한길이 평소 만드는 수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 이쪽이 더 취향에 맞는데요?”
“그래?”
“이거 완전히 연두부 같아요! 아니, 커스터드? 아니… 그거 뭐였더라? 프랑스 디저트, 위에 설탕 굳은 거요.”
“크림 뷔릴레?”
“맞아요! 딱 그거 식감인데? 예술이다! 집에서 해 먹어야지!”
레시피를 대략 정리한 후 한길은 다시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찰칵! 찰칵!
그런데 평소에는 홀 정리를 하는 슬아가 오늘은 한길을 보며 연신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뭐해? 도촬?”
“도촬은 무슨!”
슬아는 혼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잠시 후 한길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별스타 게시글이 있었다.
– 한스키친은 오늘도 영업 중! 사장님이 일 중독자면 손님 분들은 기쁘실지 몰라도 알바생은 힘듭니다, 에휴.
“이건 뭔데?”
“한스키친 공식 계정이 없어서 멋대로 한번 만들어봤어요.”
“그거 관리는 어떻게 하라고?”
“제가 할게요. 월급루팡 소리 안 들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괜히 이상한거 올리는 거 아냐?”
“에이~ 이래 봬도 마케팅 전공이거든요? 이런 건 잘해요.”
키득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만지는 슬아를 보니, 불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맙기도 했다.
스스로 알아서 가게 홍보를 해주겠다는 알바생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슬아야, 이건 별스타에 올리지 말고.”
“뭔데요?”
“사실, 조만간 한스키친 2호점을 낼까 생각 중이거든.”
“2호점? 대박!”
예상대로, 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우와’를 외쳐대며 기뻐했다. 거의 십 분간 그런 흥분 상태를 이어간 후에야 대화가 가능했다.
“사장님 식당은, 뭔가 게임 같아요.”
“게임?”
“아니, 제가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이제 막 밖에 열 명 정도 줄을 서고 있었잖아요? 그것도 점심시간에만. 그런데 지금은 문만 열면 줄을 서고 있으니까.”
“그런가?”
“무슨 치트키 쓰는 거 아니에요? 이 정도 레벨업은 진짜 말도 안 되는데?”
슬아의 말에 조금 뜨끔하긴 했지만, 슬아는 혼자 들떠서 떠드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되겠죠? 우와! 대박! 부럽다~~~”
“만약에 제대로 자리 잡으면……”
하지만 한길은 그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솔직히, 슬아는 알바생보다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었다.
요리에만 열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알바생을 계속 새로 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사람을 구하더라도 믿을만한 사람인지 검증하고 교육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직원을 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게 되는 거다.
확장해서 성공을 하면 더할 나위 없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혼자라면, 실패해도 좋은 도전이었다고 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슬아의 인생까지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눈치 빠른 슬아는 한길의 망설임을 금방 읽어냈다.
“김칫국 마시지 말고 일단 자리부터 잡아야죠! 뭐, 사장님은 잘 하시겠지만.”
“그건 해봐야 알지.”
“아니, 내가 또 이런 감 하나는 엄청 뛰어나다니까요. 사장님 2호점도 대박 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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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2억에 월세 2,000만 원이에요.”
차가운 현실을 깨닫기에는 부동산 만한 게 없다.
“여기 보시면 알겠지만, 위치가 대박이죠. 역에서 가깝고 1층, 거기에 주차장까지 갖추고 있다니까요. 이태원에서 주차장 있는 건물이 얼마나 귀한지 아세요? 전에 장사하시던 분이 참 관리를 잘해서 주방도 주방기구만 들여오면 되고, 공사가 따로 필요 없어요. 그런데 권리금도 없다니까요. 거저에요, 거저.”
입에 침을 바른 부동산 중개업자는 억 소리 나는 금액을 거저라고 부르고 있었다.
보증금, 약 6개월 치의 월세, 인테리어 공사비. 대충 합치면 억 소리가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나오는 데도.
대로변 가게는 대로변 가게였다.
이 정도 금액대면, 권리금이 없다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한번 살펴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막연한 꿈이었지만, 이제는 조금만 노력하면 손에 닿을 목표로 여겨졌으니까.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두고 달려가고 싶었다.
“전에 장사할 때는 좌석이 80개 정도는 나왔어요. 조금 빡빡하게 테이블을 두면 더 많이 나올 수 있고요.”
한스키친은 여덟 테이블.
4인석 두 개에 나머지는 2인석이다.
만석이 되어도 한 번에 20명의 손님만 받을 수 있다.
이 점포는 그 네 배의 규모였다.
“주방에 들어가 봐도 되나요?”
“네, 편히 보세요.”
주방 역시 규모가 달랐다.
사람 한두 명이 간신히 들어가는 한스키친 주방의 최소 세 배는 되어 보였다.
‘이 정도면 요리사는 몇 명이 필요하지?’
최소 네 명이라고 가정하고 한 달에 월급을 250만원 준다고 해도 천 만원이다.
홀에 서빙할 인원도 구해야 하고.
혼자 일해서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주방 인원만 네 명이라…..’
한길이 요리해 온 기간은 9년이었지만, 그동안 이 정도 규모의 식당에서 일해본 적은 없었다.
처음 시작도 동네에 있는 작은 식당이었고, 그 후로도 큰 식당으로는 옮기지 못했다.
흔히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곳들은 경쟁이 너무 심했고, 일반 음식점은 주방 이모들을 더 선호했으니까.
이렇게 직접 와서 보니, 확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해 보였다.
단순히 메뉴를 늘리고 돈을 모으는 것 외에도…..
‘그 준비는 차근차근히 하고.’
지금은 브레이크타임이 끝나기 전에 가서 남은 재료 밑 작업을 해두어야 했다.
걸음을 서둘러 가게로 향하자, 웬일로 슬아가 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수시로 두리번거리면서.
“넌 왜 밖에서 그러고 있어?”
“아, 사장님! 왜 깨톡 안 보세요?”
“톡 보냈었어?”
“전화를 해야 할까 하다가 전화는 너무 오버인가 싶기도 하고…..”
슬아는 주변에 사람이 있나 없나 눈치를 살피더니, 한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가게에 카키가 와 있어요.”
< 24. 또 다른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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