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4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40화(240/325)
240. 설마…
“이젠 정말 혼자 갈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조심히 가.”
“네?”
“혼자 간다며?”
끈질기게 따라오던 한길이 순순히 물러서자, 정원사는 수상하다는 듯이 한길을 위아래로 흘겨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갈 길을 서둘렀다.
‘아깝네.’
한길은 몸을 간신히 가누며 사라지는 정원사를 아쉬운 눈으로 지켜보다가 몸을 돌렸다.
에티올 부인의 이름을 언급한 귀족 무리는 복도를 지나 무도회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길은 조심스레 그 뒤를 따라갔다.
너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에티올 부인이라면 그 살로니에르 맞습니까? 그녀가 왜요?”
“아, 무슈 퐁타뉴는 어제 볼 파레에 못 오셨군요. 어제, 국왕 전하께서 에티올 부인과 꽤 친근해 보이시더라고요. 한 시간이 넘게 붙어서 대화를 나누시더라니까요?”
“저는 에티올 부인이 그런 자리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데요?”
에티올 부인은 어제, 귀빈들만 초청받은 무도회에 참가했다. 한길이 없는 세상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국왕과 만난 모양이다. 만난 것으로 모자라, 귀족들이 이렇게 수다를 떨 정도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잘 됐네.’
좋은 소식이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 이들이 하나같이 잔뜩 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자, 부르주아 아닙니까?”
“차라리 부르주아면 다행이죠. 제가 듣기로는 그것도 아니라던데요? 부르주아의 평민 애인이 데려온 자식인데, 귀족이랑 결혼해서 서류상으로만 귀족이라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아비가 누구인지 모른다던데요?”
“맙소사! 그런 여자가 볼 파레에 초청을 받았다고요? 정말 세상 말세로군요.”
에티올 부인의 복잡한 가정사는 한길도 알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니콜라와 함께 술집에서 뒷조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귀족들의 태도는 술집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술집 사람들은 단순하게 호기심만 보였다면, 귀족들의 태도는 경멸에 가까웠다. 무슨 바퀴벌레라도 본 마냥,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까지 있었고.
“설마, 전하께서 그런 천한 여자를 정부로 삼으시는 건 아니겠죠?”
“하하하, 설마요! 그렇게 된다면, 저희는 부르주아도 아닌 천한 여인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베르사유 역사상, 귀족이 아닌 정부는 없었죠. 고작 천한 여자 하나 곁에 두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못마땅해하거나 질투하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에티올 부인은 베르사유에 들어오면 아니 되었다. 저들에게 있어서, 이건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다.
“설마, 오늘도 그 여자와 붙어계시는 건 아니겠죠?”
“하하하, 그거 재밌겠네요. 지금 프랑스에 있는 모든 귀부인과 귀족 영애들이 전하를 뵙기 위해 이 자리에 왔는데, 그걸 전부 물리치고 천한 부르주아를 선택한다면 말이죠.”
“무슈 퐁타뉴는 남의 일이니까 그걸 재밌다고 보시는 겁니다.”
“꼭 남의 일도 아닙니다. 저도 오늘 이곳에 제 조카를 데려왔으니까요. 그 아이가 제2의 샤토루 여공작이 되어준다면, 더는 바랄 게 없죠.”
“무슈 퐁타뉴의 조카라니! 꼭 만나보고 싶군요. 그 아이는 어디에 있죠?”
“이런 중요한 날에, 그런 중요한 아이를, 이런 변방에 둘리는 없잖습니까. 저기, 가장 길목이 좋은 곳에 있겠죠.”
그렇게 말하는 귀족은 고갯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잔뜩 몰려있는 곳은, 국왕의 방문 앞이었다.
“먼저 말을 거는 자가 임자죠. 예쁜 아이니까 잘 해낼 겁니다.”
“저 안에 에티올 부인도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런 천한 여자가 베르사유의 예법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마 전하께서 자신을 찾아와 주실 거라 생각하고, 부푼 가슴으로 무도회장 어딘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을까요.”
“후후, 그러겠네요. 그러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깨닫겠죠.”
#
‘어디에 있지?’
한길은 무도회장을 돌아다니며 에티올 부인을 찾았다. 방금 들은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함이다.
한길이 들은 바에 의하면, 베르사유의 예법에 따라 국왕은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해줘야 했다.
국왕의 방문 앞에는 이미 수많은 여인이 줄을 서며 대기 중이었다. 그곳에 가지 않으면, 오늘은 국왕과 말을 섞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저기 있네.’
에티올 부인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그리스풍 의상을 입은 사람은 손에 꼽은 데다가, 표범 가죽 망토를 두른 ‘사냥의 여신’은 에티올 부인 하나뿐이었으니까.
“어, 마르셀?”
한길이 다가가자,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에티올 부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시죠?”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무슨 얘기요?”
한길은 고갯짓으로 조용한 곳에 가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얘기라면 이곳에서 하셔도 돼요.”
“….”
“왜 그렇게 노려보는데요? 무슨 일이에요?”
무도회의 열기에 들떠 있는 걸까.
평소의 눈치 빠른 에티올 부인이 아니었다.
“어제 만난 ‘반가운 분’과 오늘도 만나셨나 해서요.”
“모든 만남은 항상 반가운 법이죠.”
“그게 아니라. 저기에 ‘만남의 장소’가 있다는 것 같습니다.”
“네?”
“‘반가운 분’과 만날 ‘만남의 장소’가 있다고요.”
“마르셀, 취했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루이 15세와 대화를 나누려면 방 앞에서 줄을 서야 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름 암호를 섞어가며 말했는데, 그녀는 한길의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네요! 마르셀은 너무 즐기는 걸 모른다니까요? 오늘만큼은 이 순간을 즐기세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억지로 끌고 갈까.’
답답한 마음에 그런 생각까지 하던 그때,
“어머!”
“저건 뭐죠?”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보니, 국왕의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저건 뭐지?’
그 안에서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저 분장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놀이동산에서 볼법한 인형 탈과 비슷한데, 폭신폭신한 솜 대신 두툼한 잔디로 만든 인형 탈이었다.
그런 커다란 잔디 인형이 8개.
“저 중에 전하가 계시려나요?”
“그렇지 않을까요? 전하와 전하의 시중을 드는 분들이 모두 같은 분장을 한 것 같은데….”
“저래서는 누가 전하인지 전혀 알 수 없잖아요?”
8개의 잔디 인형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얼굴은커녕 몸의 윤곽도 알아볼 수 없는 터라, 저 중에서 누가 국왕인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장 당황한 건, 만남의 장소에 있는 여인들이었다.
상대와 눈만 마주치면 예법에 따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텐데, 잔디 인형은 상대의 눈을 보기 힘든 구조였다.
어떻게든 눈을 찾으려는 사이에 말을 걸 타이밍을 놓쳤고, 잔디 인형은 순식간에 그녀들을 지나쳐 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몇몇 영애들이 잔디 인형을 쫓아가려 했지만, 8개의 인형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찢어졌다.
어느 쪽이 국왕인지 알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여인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에티올 부인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면으로 눈이 가려져 있어 입 모양만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어떤 미소를 짓는지 알 수 있었다.
니콜라가 ‘흑막의 미소’라고 부르는 미소. 그녀가 살롱 손님들 사이에 몰래 싸움을 붙일 때 항상 짓는 그 미소였으니까.
잠시 후,
잔디 인형 하나가 에티올 부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다시 뵙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잔디 인형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가면을 벗었다. 상대도 잔디로 만든 인형 탈을 벗었다.
“전하!”
“저쪽이 진짜?”
루이 15세였다.
조금 슬픈 눈을 하고 있지만, 제법 잘생긴 남자였다. 나이는 30대쯤 되려나.
루이 15세와 에티올 부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끼어들 수는 없었다.
한길이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국왕이 누군가와 대화 하는 중에 제3자가 끼어드는 건 예법이 어긋났으니까.
즉, 국왕이 에티올 부인과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다가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국왕은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 에티올 부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다음날.
”마르셀!“
창백한 얼굴의 니콜라가 한길의 방을 찾아왔다. 상당히 숙취가 심해 보이는 모습으로.
”커, 커피.. 커피가 필요해!“
”어디로 갈까요?“
”프로코프로 가자. 빈속이라, 뭐 좀 먹으면서 정신 차리고 싶으니까.“
파리지앵들은 이때부터 이미 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거대한 커피포트에 담긴 커피를 판매하는 상인들도 있고, 커피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카페들도 있었다.
프로코프는 그중에서도 왜 유명한 카페였다. 주로 부르주아나 계몽 사상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다.
요리사가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대였으나, 에티올 저택에서 일한 이후로는 니콜라도 프로코프의 단골이 되었다.
카페에 도착한 니콜라는, 커피 한 잔을 쭉 들이켜 마신 후에야 정신을 조금 차린 듯했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네.“
”그러게 누가 그리 마시래요?“
”공짜 술은 거절하는 게 아니지! 여기, 커피 한잔 더요!“
니콜라가 두 번째 커피를 쭉 들이켜 마시는 동안, 옆자리에서 다른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티올 부인?“
”그렇다니까? 어제 국왕 전하께서 에티올 부인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더라고!“
”콜록! 콜록!“
놀란 니콜라는 입안에 든 커피를 그대로 뿜어냈고, 미친 듯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길은 태연하게 냅킨을 건네주었다.
”벌써 소문이 났나 보네요.“
”뭐야, 넌 왜 그리 멀쩡해?“
”니콜라도 어제 봤을 거 아니에요.“
”아니, 보긴 했는데… 취해서 꿈꾼 거라고 생각했지. 에티올 부인이 국왕 전하랑 함께 있었다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왕 전하랑?“
”알아요.“
”뭐야, 왜 그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건데?“
그야 한길은 에티올 부인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루이 15세의 정부가 될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어제 그녀가 국왕과 춤추는 모습을 봐도,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것보다 니콜라, 어제는 뭘 좀 알아냈나요?“
”그것보다라니! 넌 진짜 아무렇지 않아? 일생일대의 대사건이 일어났는데, 진짜 그렇게 넘어가는 거야?“
”못 알아낸 거예요?“
어제, 한길은 니콜라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베르사유 귀족들 사이에서 에티올 부인의 살롱 요리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아보라고.
”그걸 물어볼 틈도 없었어. 살롱이고 뭐고, 다들 에티올 부인의 출신으로 왈가왈부하기 바빴으니까…“
니콜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니콜라는 에티올 부인과 유난히 친했으니까.
“참, 별의별 악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역시 그런가요.”
“출신 때문에 그러는 것도 있지만…”
니콜라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의자를 당겨 한길의 바로 옆으로 다가오더니,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험담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더라고.”
“그게 누군데요?”
“리슐리에 공작이랑 모레파 백작.”
한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러자 니콜라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긴, 네가 알 리가 없나?”
“유명인인 건 알겠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국왕 전하가 가장 아끼는 신하들이니까.”
“그렇군요.”
니콜라의 말에 의하면, 리슐리에 공작(Duc de Richelieu)은 국왕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평소에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데다가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귀족인데, 그럼에도 루이 15세가 매우 아낀다고 했다.
“베르사유 귀족들도 의아해하더라고. 아니, 나라를 배신했는데도 용서해 줬다니까?”
“나라를 배신했다고요?”
“리슐리에 공작을 무슨 대령으로 임명해서 어떤 마을을 수비하라고 보냈는데, 스페인 군대에 마을을 넘기겠다는 편지를 몇 개나 썼다는 거야.”
“보통 그러면 처형 아닌가요?”
“그렇지. 그런데 그게 발각되었는데도, 바스티유 감옥에 며칠만 있다가 나왔다고 하더라고. 완전 솜방망이 처벌이지.”
나라를 팔아먹어도 벌을 주지 않았다는 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에티올 부인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다는 거죠?”
“들리는 말로는, 국왕 전하의 이전 정부인 샤토루 여공작도 리슐리에가 소개해줬다더라고. 이번에도 정부 자리가 탐나면 자기한테 오라고, 여러 귀부인들한테 농담처럼 말하던데?”
“그렇군요.”
리슐리에 공작은 자신의 사람을 국왕의 새로운 정부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에티올 부인이 등장하니,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누군데요?”
“아, 모레파 백작(Compte de Maurepas)? 해군 장관으로 있는 사람인데, 리슐리에 공작 다음으로 국왕이 아끼는 신하래.”
“그 사람은 왜 에티올 부인이 마음에 안 드는 건데요?”
“몰라.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르주아 정부는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런 천한 사람이 베르사유에 들어오면 종말이나 다름없다고.”
한길은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국왕이 제일 아끼는 신하 두 명이 에티올 부인을 적대시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원래도 그랬으려나?’
한길이 없는 세상에서, 에티올 부인은 그저 이름 없는 하급귀족의 아내였다. 하지만 한길이 온 이후로 그녀는 파리에서 내로라하는 살로니에르가 되었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된 것.
그만큼 국왕과 만남도 빨리 이뤄졌지만, 동시에 그녀를 아니꼽게 보는 적들도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 찮겠지?”
니콜라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괜찮지 않을까요? 누가 수작을 부린다 해도,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하긴, 그건 그래?”
에티올 부인은 상당히 영악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고야 말았다.
놀라운 건, 본인의 흔적이 남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오죽하면 니콜라가 그녀에게 붙인 별명이 ‘흑막’이었을까.
그렇다고 사람이 모난 건 아니었다.
‘내 사람은 내가 챙긴다’는 게 그녀의 입버릇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주변 하인들은 물론, 요리사들까지 살뜰하게 잘 챙겨주었다.
“그러게, 우리 에티올 부인은 현명하니까. 괜찮겠지?”
“일단은 지켜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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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과 에티올 부인에 대한 소문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퍼져나갔다.
베르사유의 무도회가 막을 내린 후, 파리 시청에서 왕세자의 결혼을 기념하는 무도회가 열렸다.
국왕은 그 자리에 참석했고, 무도회 내내 에티올 부인과 춤을 추었다. 파리 시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며칠 후,
에티올 부인은 베르사유에서 열리는 오페라에 초청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국왕과 마주 보는 가장 좋은 박스를 배정받았다.
그 후로도 에티올 부인의 마차가 베르사유에 수시로 드나드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요즘 전하께서 기분이 좋으신 것 같죠?”
“그러게요. 저렇게 웃으시는 분이 아닌데…”
“그 여자 때문일까요? 설마, 두 사람이 심각한 관계인 것은…”
“그럴 리가요. 그냥 특이한 장난감이 생겨서 즐기시는 거겠죠.”
누가 봐도 루이 15세는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파리 전체가 알고 있었고.
그리고 얼마 후,
“그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요?”
“예전에 샤토루 여공작이 썼던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대요!”
“전하의 방과 계단으로 연결된 그 방이요?”
“그렇다니까요?”
“설마… 그 여자를 부르려는 걸까요?”
“고작 하급 귀족의 아내가 베르사유 입주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베르사유에 드나드는 귀족은 1만여 명이었지만, 방은 700개가 고작이었다. 따라서 방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국정에 꼭 필요한 관리, 혹은 영향력 있는 귀족만이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에티올 부인에게 방을 준다면, 그녀보다 신분이 높은 귀족들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국왕의 애인이라고 해도, 베르사유의 규율을 무시하면서 그녀에게 방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죠. 예를 들면, 그녀의 남편에게 작위를 주면 그녀 역시 신분이 올라가는 거니까요.”
“에이, 설마요…”
“그런 경우는 많았잖아요? 정말 심각한 관계라면, 무슈 에티올이 조만간 출세하겠죠.”
에티올 부인이 공식적으로 베르사유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남편이 주요 귀족이 되어야 했다.
국왕이 정녕 그녀를 정부로 들일 계획이라면, 무슈 에티올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러는 와중, 예상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들었어요? 에티올 부인이 남편과 이혼했대요!”
“정말요?”
“그러면 이제 에티올 부인이 아니라 푸아송 부인이네요?”
“뭐야, 그러면 이제 귀족도 아니잖아요?”
에티올 부인의 이혼 소식이 들려온 것.
에티올 부인이 서류상으로나마 귀족이었던 것은, 모두 남편 덕분이었다. 남편을 잃은 그녀는 일개 평민에 지나지 않았고, 베르사유를 드나들 자격조차 없었다.
그녀의 마차는 더 이상 베르사유에서 목격되지 않았고, 소문은 더욱 무성해졌다.
“역시, 전하께서 그 여자한테 질리신 거겠죠?”
“그래서 강제로 이혼을 시켰다고요?”
“아예 얼굴도 보기 싫으니까 베르사유 출입을 못 하게 신분을 박탈한 거죠.”
“하긴, 주변에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진짜 귀족들이 많은데, 가짜에 진심으로 빠져들 리가 없죠.”
베르사유 귀족들은 새로운 소식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푸아송 부인의 저택에 매일같이 베르사유의 마차가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을.
마차에는 국왕의 전령이 타고 있었고,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국왕의 서신을 들고 나타났다. 봉투에 ‘친애하는 푸아송 부인에게’라고 적힌 서신을.
그러던 어느 날,
조금 이상한 봉투가 도착했다.
‘친애하는 퐁파두르 여후작에게.’
낯선 호칭이 적힌 봉투.
그 안에는 토지 문서와 함께, 대가 끊겨 사라진 ‘퐁파두르 후작가’의 문장이 들어있었다.
귀족에서 평민이 된 푸아송 부인은,
이제 퐁파두르 여후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