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4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42화(242/325)
242. 입궁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길에게도 수험생 시절이 있었다.
갑자기 집안 형편이 기우는 바람에 학원에 다닐 수는 없었지만. 한길은 자학자습으로 수능을 준비했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등록하지는 못했지만, 원하는 대학에는 붙었으니 말이다.
그 비결이 바로 암기법이었다.
‘별의별 게 다 쓸모 있네.’
어른이 되면 전혀 쓸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기술을, 지금에 와서 이렇게 사용하는 게 웃기기도 했다.
“정말… 가능할까요?”
퐁파두르는 기대 반, 의심 반의 눈빛으로 한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 요령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일단, 지금까지 필기한 걸 보여주세요.”
한길은 퐁파두르가 건네준 필기 노트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역시….’
베르니 신부의 수업 방식은 엉망진창이었다. 그 순간순간에 떠오르는 상식들은 마구잡이로 늘여놓을 뿐이었으니까.
한길은 공책을 덮은 후, 진단을 내리는 의사와도 같은 태도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퐁파두르 후작이 한 달 내에 베르사유 귀족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네? 하지만 방금 마르셀이 보장한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배운 예절입니다. 한 달 안에 똑같이 하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죠. 조금 더 현실성 있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역시… 그런가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퐁파두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지만, 한길은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다.
“굳이 그들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우리는 시험만 통과하면 되니까요.”
사용할지 말지 모르는 언어나 표현 따위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기출문제 위주로 공략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족집게 강의였다.
“베르사유의 언어를 전부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에 50개씩, 한 달에 1,500개의 단어와 표현만 익히도록 하죠. 자주 사용하는 걸로요.”
“그러다가 대화 중에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어떻게 해요?”
“대충 웃으면서 넘기세요. 아니면 대화 주제를 돌리던지요. 그런 건 잘하시잖아요?”
“… 아!”
퐁파두르는 왜 이런 간단한 걸 이제야 깨달았을까, 하며 놀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 목록은 고토 후작에게 정리해달라고 부탁하죠.”
채찍 역할을 맡은 베르니 신부는 항상 바빠 보였지만, 당근을 주는 고토 후작은 지나치게 한가해 보였다. 그게 거슬리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들의 인적사항도 마찬가지입니다. 1만 명의 정보를 모두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절대 실수해서는 안 되는 상대, 꼭 필요한 사람들 위주로 정리해달라고 하세요. 대략 천 명이라고 가정한다면, 하루에 34명의 정보만 외우면 되겠네요.”
“그러네요!”
“이것도 고토 후작에게 정리를 부탁하죠.”
순식간에 시험 범위가 좁혀졌다.
어느새 한길을 바라보는 퐁파두르의 눈동자에는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범위가 정해졌다면 다음은…
“가장 중요한 것은 복습입니다.”
“그건 저도 동의해요! 안 그래도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필기한 내용을 세 번씩 다시 읽어보고 있답니다.”
그녀는 칭찬해달라는 듯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한길의 입장에서는 코웃음만 나왔다.
수능을 한 달 앞둔 수험생이, 저런 안일한 태도로 공부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앞으로는 수업이 끝나면, 그날의 수업 내용을 10번씩 옮겨 적습니다.”
“네?”
퐁파두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한길의 표정은 단호했다.
“매일매일, 수업 내용을 10번씩 옮겨적습니다.”
“그게 의미가 있나요?”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손으로 쓰면서 읽는 게 잘 외워집니다. 머리가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할 테니까요.”
“….”
“제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녀의 안색이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주방 식구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그녀도 먼발치에서 봤을 텐데. 왜 새삼 저러는지, 오히려 한길이 되묻고 싶어졌다.
‘알면서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었나?’
뭐,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퐁파두르는 자기가 한 약속만큼은 꼭 지키는 인물이었니, 도망을 치거나 중간에 그만두지는 않을 거다.
“한 달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베르사유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 그렇죠.”
“그러면 지금 당장 시작하죠.”
“… 네.”
그녀는 순순히 책상이 앉아 새로운 공책을 펼치고 얌전히 필기를 시작했다. 가끔 멈춰서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한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시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불평불만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녀가 필기하는 동안, 한길은 다음으로 필요한 소품을 제작했다.
“와! 드디어 끝났어요!”
숙제를 마친 퐁파두르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한길이 바로 다음 소품을 내밀었다.
명함 크기의 종이가 한 무더기.
종이의 앞면과 뒷면에는, 그녀의 필기 노트에서 발췌한 주요 정보가 적혀 있었다.
플래시 카드였다.
“이건 또 뭐에요?”
“앞면에는 베르사유에 드나드는 귀족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뒷면에는 그들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죠. 지금부터 제가 들어 올린 종이 반대편에 있는 내용을 맞히셔야 합니다.”
“좋은 방법이네요! 저녁 먹은 후에 바로 시작하죠!”
한길이 어이없다는 시선을 던졌다.
지금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왜요?”
“연달아 20개를 맞추시면, 저녁을 차려드리겠습니다.”
“네?”
“보상과 벌이 있으면 보다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식사 전에 무조건 플래시 카드로 공부할 겁니다. 연달아 20개 정답을 맞혀야지만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무슨 강아지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그녀도 툴툴거렸지만, 안 하겠다고 떼를 쓰는 등 적극적으로 반항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식사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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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후,
“마, 마르셀… 이, 이번에는 또 뭐죠?”
한길이 니콜라와 함께 다이닝룸에 들어오자, 퐁파두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실기 연습 시간입니다.”
“실기 연습?”
“걸음걸이를 연습해야 하니까요. 전신거울이 없으니, 옆에서 누가 보면서 평해주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건 저보다 니콜라가 잘할 것 같아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실습 시간.
걸음걸이 연습은 서재가 아닌 응접실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가구를 한쪽으로 치워두면 꽤 널찍한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방금은 조금 통통 튀는 느낌이었어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렇게요?”
“아니, 속도가 너무 느린 것 같아요. 진짜 귀족들은 그렇게 안 걸어요! 조금 더 빠르게 걸어주세요!”
니콜라는 베르사유의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던 귀부인들의 걸음걸이를 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걸 대체 언제 본 건지 놀라웠지만, 어쨌든 큰 도움이 되었다.
걸음걸이 연습이 끝나면, 그다음은 실기 항목 중에 가장 난도가 높은 항목. 뒷걸음질이다.
“이건 옷을 갈아입고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왜요?”
“입궁식에만 입는 의상이 있거든요. 그걸 입고 연습해야 의미가 있어서…”
잠시 후,
퐁파두르는 새로운 드레스를 입고 다시 응접실에 나타났다.
“우와! 너무.. 우와! 진짜.. 우와!”
“괜찮나요?”
“우와…. 그게.. 하아…”
저 니콜라를 벙어리로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새틴으로 만든 연분홍색 드레스는 정교한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동그란 어깨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매. 드레스의 목 부위는 네모나게 파여 있어 눈부시게 하얀 피부와 반듯한 쇄골이 드러났고, 가슴팍에 화려한 리본이 잔뜩 매달려 있어 사랑스러움을 더했으며, 풍성한 스커트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여 여성미를 부각하고 있었다.
절로 멍하게 쳐다 보게 되는 비주얼.
하지만 한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녀의 드레스 디자인을 살펴보았다.
‘웨딩드레스 같네.’
웨딩드레스처럼, 뒷자락이 길게 늘어져서 땅에 질질 끌리는 디자인. 이런 드레스는 이 시대에 온 이래로 처음이었다.
“이걸 입고 뒷걸음질을 한다고요?”
“네. 전하 앞에서 등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요.”
한길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뒷걸음질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힘들 텐데.’
저 기나긴 드레스 자락은, 잘못 밟으면 분명 넘어질 거다. 설령 넘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중심을 잃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그걸 아무 실수 없이, 우아하게 해내야 했다.
“이것도 나름의 방법이 있어요. 인사를 하는 동안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드레스 자락을 한쪽으로 치워놔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티가 나면 안 되는 거라.. 티 나는지 한 번만 봐주세요.”
‘진짜 백조 같네.’
비유가 아니라 그 말 그대로였다.
드레스 위에서는 우아하게 인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드레스 밑에서는 발길질로 열심히 길을 터야 했으니까.
‘웨딩드레스라….’
퐁파두르의 드레스 차림을 보니, 이 시대의 예절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현대에서도, 결혼식은 특별한 날이었고, 평소와 달리 이것저것 세세한 룰이 있었다.
초를 밝히고,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입장하고, 케이크를 자르고 등등의 순서가 정해져 있었고. 그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어쩌면…
이 시대 귀족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결혼식이 아닐까.
신부 입장을 보듯 국왕의 식사 행렬이 지나가는 걸 보았고, 주례사 대신 국왕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현대인에게는 일생에 한 번 뿐인 행사가, 이들에게는 일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퐁파두르가 지친 얼굴로 의자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이건 연습이 조금 많이 필요해 보였다.
내일부터 아침, 점심 후에 한 시간씩 연습 시간을 확보하는 게 좋을 터.
그렇게 머릿속으로 일정을 수정하고 있을 때, 퐁파두르가 다가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마르셀! 오늘은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하루뿐이지만, 뭔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지 뭐예요?”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인사.
한길이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은 자정이 되지 않았다.
“다시 서재로 가시죠.”
“네?”
“쪽지 시험을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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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두르가 니콜라와 함께 실기 연습을 하는 동안, 한길은 간단한 쪽지 시험을 만들고 있었다.
“얼마 안 걸릴 겁니다. 총 30문제밖에 없으니까요.”
“….”
퐁파두르는 잠시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 하지 않고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시험을 전부 완료한 후에는, 한길이 즉석에서 채점했다.
“총 12 문제를 틀리셨네요. 점수로 계산하면 60점이 되겠군요.”
“… 미안해요.”
“첫날치고는 나쁘지 않습니다. 한 달 후에는 90점으로 올리도록 하죠.”
“그러면 오늘은 이제 진짜 마무리하는 건가요?”
“네, 물론입…”
한길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퐁파두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니다. 틀린 문제를 각각 10번씩만 필기한 후에, 빨리 쉬시면 되겠네요.”
“또?”
이번에는 원망이 가득한 눈초리가 한길을 마구 찔렀다.
‘화난 건가?’
퐁파두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녀는 처음 보는 표정을 지으며 한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는 모습이, 빗속에 벌벌 떨고 있는 강아지를 떠올리게 했다.
“마르셀, 나 오늘은 손목이 너무 아픈데…”
그녀가 어떻게 20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국왕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그녀는 절로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연약하고 사랑스러워 보였으니까.
이런 모습으로 부탁을 하면, 거절할 남자는 없을 거다.
‘빨리 보내야겠네.’
그녀가 베르사유에 들어만 가면, 바로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아픈 건 좋은 겁니다. 아픈 만큼 몸이 확실히 기억할 테니까요.”
“….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렇게 해도 내일이 되면 까먹을 것 같은데?”
“그러겠죠. 그게 주입식 교육의 폐해니까요.”
“주입식 교육은 또 뭐에요?”
“거대한 병 안에 물을 채워넣는다고 생각하세요. 손바닥으로 조금씩 옮긴다 해도, 매일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병이 채워질 겁니다. 쉬지 않고 반복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적당히 해야 하지 않을까? 무리하면 병에 금이 가서 모처럼 넣은 물이 줄줄 새어 나가잖아?”
퐁파두르는 평소답지 않은 퉁명스러운 말투를 하고 있었다. 한길은 그런 그녀를 향해 산뜻하게 웃어주었다.
“물이 새어 나가도 괜찮습니다.”
“뭐?”
“새어 나간 물도 다시 주워 담으면 되니까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
그녀는 한동안 창백한 얼굴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마르셀. 복수하는 건 아니죠?”
“무슨 복수요?”
“예전에 강제로 댄스 레슨을 시켜서…”
“아, 그런 적도 있었네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조금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정말?
“네. 하지만 그런 말이 떠오르긴 하네요. ‘뿌린 대로 거둔다’였나요?”
“….”
“빨리 들어가서 쉬세요. 수면은 꼬박꼬박 챙기는 게 중요합니다.”
한길이 서재를 나가자, 열린 문 사이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 은근 뒤끝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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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여정은 아니었지만, 퐁파두르는 한길의 일정에 비교적 잘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놀랍군요! 한 달 만에 이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다니! 솔직히 초반에는 걱정을 조금 많이 하긴 했는데, 정말 놀라운 성장이군요!”
“퐁파두르 후작이 명석하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그리지 못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 빈말이 아니라 정말 단기간에 이렇게 완벽하게 예절을 익히는 분은 뵌 적이 없습니다!”
퐁파두르는 베르사유에서 보내온 두 명의 예절 선생님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신 것 같군요.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요. 뭐든 적당히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죠.”
“어쨌든, 이 정도면 입궁식 일정을 바로 잡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요?”
“물론이죠!”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정식으로 베르사유에 입궁하는 날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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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궁식 당일.
‘사람이 많네….’
창밖을 내다본 퐁파두르가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베르사유의 초입에서부터 유난히 마차가 많았던 탓이다.
가면무도회와 비슷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차의 행렬. 파리에 있는 귀족들은 물론, 프랑스 전역에서 모두가 구경하러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긴, 놓칠 수 없는 이벤트니까.’
입궁식은 베르사유에서도 특수한 행사였다.
베르사유에 들어가는 모든 귀족이 입궁식을 치르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입궁식을 치르는 건 두 가지 경우에 한해서다.
입궁하는 인물이 400년간 대를 이어온 명문가 출신일 경우. 혹은 뛰어난 업적을 이루며 국왕에게 충성심을 보인 경우.
퐁파두르는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평민 출신인 그녀에게 후작위를 주고, 베르사유에 들어오기 전에 입궁식을 치른다는 건, 왕실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걸 구경하러 온 거다.
구경꾼은 1만 명을 훌쩍 넘을 테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실수 없이 국왕과 왕비, 그리고 왕세자 부부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잘 할 수 있겠지?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지난 한 달간, 그녀는 지옥을 맛보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한 건 처음이었다.
자신은 있었지만, 정문에 다가갈수록 손발이 차게 식으면서 온몸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에 그녀는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마차에서 내렸다.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지 걱정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매끄러웠다. 가벼우면서도 빠른 발걸음으로 미끄러지는 몸이 신기하기만 했다.
‘거짓말은 안 했네.’
‘머리가 기억 못 해도 몸이 기억한다’는 그 누군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퐁파두르 후작.”
“네.”
“다이엔 백작 부인입니다. 마중 나왔습니다.”
정문 앞에는, 그녀보다 훨씬 신분이 높은.. 아니, 높았던 귀부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구경꾼들도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다.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늑대 소굴 속으로 들어가는 양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녀는 콧대를 세우며 고개를 들었다.
“안쪽에서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오시죠.”
“그러죠.”
퐁파두르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자신의 집이 되어줄 베르사유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