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4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45화(245/325)
245. 푸아송을 선점하죠
살롱 요리 회의는 항상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우선, 퐁파두르가 주요 안건을 상정하고 살롱의 주제를 정했다.
그러면 한길이 컨셉을 구체화해서 플레이팅의 초안을 그렸고, 무티에르가 프랑스의 기술을 더해 그것을 다듬었다.
니콜라는 주로 실행에 필요한 일정 관리를 담당했으며, 필요시에 정보를 구해와 주었다.
이번에도 퐁파두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국왕 전하를 초청하는 거네요.”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이자, 지금까지 살롱 데뷔를 미뤄온 이유였다.
대외적으로 퐁파두르는 국왕의 무한한 총애를 받는 것으로 보였지만,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본 자가 있다면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거다.
국왕은 퐁파두르의 요리를 먹어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둘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주로 퐁파두르가 국왕의 방에 찾아가는 형식이었다.
“몇 번이나 자연스럽게 식사를 권했는데, 극구 사양하시더라고요. 왠지 제가 그 얘기를 꺼내는 것도 싫어하시는 느낌이고… 왜 그러시는지, 저도 알 수가 없어서 더 당황스러워요.”
퐁파두르의 다른 부탁은 모두 들어주었는데, 유독 식사에만 민감하다는 뜻이었다.
아직 퐁파두르는 국왕에게 자신의 살롱에 와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설령 부탁해도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그녀의 살롱 데뷔에, 국왕은 빠질 수 없는 손님이니까.
“추측이 가는 구석이 조금 있기는 한데요…”
“니콜라, 뭐 들은 게 있어요?”
“하하, 그냥 조금요.”
니콜라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을 무방비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고, 본인도 그걸 자각하고 있었다.
베르사유에 온 후, 니콜라는 친구 만들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 사이 여거저기서 들은 얘기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조금 불쾌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뭔데요?”
“그게 그, 샤토루 공작의 얘기라…”
샤토루 공작은 퐁파두르 직전에 국왕의 정부였던 여인이다. 그것도, 국왕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갑작스레 사망하는 바람에 국왕의 옆자리에 공석이 생겼고, 퐁파두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래서인지 니콜라는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퐁파두르는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뭐야, 제가 그렇게 연약해 보였어요?”
“그건 아니지만…”
“이미 떠난 사람을 신경 쓸 만큼, 저는 한가하지 않아요. 지금 제 주위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챙기기에도 바쁜걸요? 편하게 말해주세요.”
“그러면… 뭐, 크흠!”
니콜라는 목청을 크게 다듬은 후 말을 이어갔다.
“이건 테이블보 빨래를 맡는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 샤토루 공작이 정부가 되기 전에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워낙에 유명한 얘기니까요.”
“공작위를 주고, 자신의 언니들을 전부 궁에서 내치고, 왕비보다 호화로운 마차를 준비하고… 이런 건 다 아시겠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조건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뭐, 소문이니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게 뭔데요?”
“그녀의 방에서 하루에 일정 시간을 보내고, 식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대요.”
니콜라는 ‘어때, 나 잘했지?’하며 칭찬을 갈망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돌아오는 건 모두의 ‘그래서 어쩌라고’ 반응이었다.
베르사유는 한쪽 문을 여느냐, 양쪽 문을 여느냐에 따라 신분이 달라지는 곳이다. 국왕이 정부의 방에 오래 머무른다면, 사실상 그녀가 궁전의 실세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욕심 많은 샤토루 공작이, 그런 조건을 내민 건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음, 끊는 지점이 잘못됐나?”
“니콜라,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크흠! 어쨌든! 국왕 전하는 샤토루 공작의 모든 조건을 들어주었죠. 하지만 단 하나, 들어주지 않은 게 있어요. 아니, 사실은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거죠.“
“그냥 용건만 말해주세요… 제발…”
“샤토루 공작의 방에는 주방이 없었어요.”
“네?”
“주방이 달린 방이 남아있지 않다면서, 방이 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만 하셨죠.”
베르사유에는 주방이 귀했다.
궁중 요리사들이 사용하는 별도의 주방 건물은 있었지만, 귀족들이 개인 요리사를 두고 사용할 개인 주방은 몇 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방 하나 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국왕에게는 말이다.
“핑계를 대신 거죠! 주방이 없으니 결국 샤토루 공작은 국왕 전하의 방에서 식사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샤토루 공작 성깔에 그걸 가만히 넘어가진 않았고요. 궁중 요리사들의 요리를 거부하고 매번 연회 요리사한테 주문해서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시녀들이 잠드는 방에 화로를 두고 수프를 끓여 먹었다고도 하고요. 이상하지 않나요? 전쟁터에도 데려가는 정부인데 주방 하나 안 주다니…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희한테는 주방을 줬잖아요? 같은 문제가 아닌가?”
국왕은 퐁파두르에게 주방을 주었다.
퐁파두르가 있는 방으로부터 약 5분 거리에 떨어진 주방이지만 말이다.
원래 그 주방의 주인은 버위크 공작부인이라고 들었다. 주방을 빼앗긴 공작부인은 화가 난 나머지, 베르사유에 있는 자신의 방을 포기하고 파리로 돌아갔다고도 했고.
공작 부인에게 무안을 주면서까지 주방을 주었는데, 정작 퐁파두르가 만든 요리만큼은 먹지 않았다.
’대체 왜?‘
한길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그동안 퐁파두르는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정부는 어땠나요? 샤토루 공작 말고 다른 사람들이요.”
“다른 정부라… 잠시만요… 아, 주방 얘기는 아닌데, 마이 네슬 백작부인한테는 서재를 선물했었는데, 그 서재에서는 자주 식사하셨다고도 들었어요. 음, 뭐지?”
“이유를 알 것 같네요.”
“그래요?”
퐁파두르는 드디어 답을 찾았다는 듯,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련함 뒤에 찾아온 것은 근심이었다.
“마이 네슬 백작부인은 존재감이 거의 없는 분이셨죠. 샤토루 공작은 가장 권력이 많은 분이셨고요.”
“그래서요?”
“전하는 여인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는 걸 경계하시는 거예요.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분이라….”
한 마디로, 존재감 없는 정부의 방에서는 별다른 위험이 없으니 식사했지만, 존재감이 너무 강한 정부의 방에서는 먹지 않았다.
그리고 퐁파두르는 후자였다.
설명을 듣고도, 니콜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왜 요리만 갖고 그러신대요?”
“식사는 중요한 의식이니까요. 니콜라도 그랑 쿠베르를 봤잖아요?”
베르사유에는 국왕의 일상을 공개하는 주요 의식이 몇 개 있었다.
국왕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레베, 국왕이 잠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쿠셰, 그리고 국왕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랑 쿠베르.
“아무래도 전하의 식사에는 여러 의미가 부여되니까 조심하시는 거겠죠. 아직 저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몇 달 안 되었잖아요? 1-2년 동안 쌓아온 신뢰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이르다고 판단하신 거겠죠. 의심하는 것보다는 조심하는 거라고 보는 게 좋겠네요.”
문제의 원인은 파악했다.
이제부터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할텐데… 라고 한길이 생각하는 순간, 퐁파두르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하네요?”
“네?”
“명분만 있으면 되잖아요?”
그녀는 베르사유에 온 이래로 가장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제 살롱에 참석할 명분을 만들어드리면 되죠. 이번 살롱은 식탐을 위한 자리여서는 안 돼요. 물론, 저를 위한 자리여서도 안 되고요. 조금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죠.”
“그게 뭔데요?”
“그건!”
“…?”
“앞으로 생각해볼게요! 그런 대단한 명분이 당장 떠오를 리 없잖아요? 어쨌든, 이건 제 일이니까 제가 할게요.”
살롱 요리의 주제를 정하는 건 퐁파두르의 역할이었다.
지금까지 열렸던 살롱에는 항상 테마가 있었다. 전통 요리와 현대 요리의 차이, 루소의 자연주의 식탁, 최근 의학 연구에 따라 만든 건강 밥상 등등.
요리사들이 접시에 맛을 입혔다면, 그녀는 요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먹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요리.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는 요리.
포장 하나로 새로운 의미를 입혔고, 살롱 요리다운 면모를 부각했다.
손님을 반으로 나누고 서로 싸움을 붙이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설마 국왕을 초청하는 자리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을 거다.
“그러면 내일 다시 얘기해 볼까요? 시간이 있으니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완벽하게 준비하도록 하죠.”
국왕은 출정 중이라 돌아오려면 최소 두어 달은 걸릴 터였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었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니콜라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살롱이랑 연관은 없지만,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요…”
아까 샤토루 공작의 얘기를 꺼낼 때보다, 몇 배는 더 곤란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일은 일인데,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니콜라가 저한테 못 하는 말도 있어요?”
“으으으으… 음… 후우…”
니콜라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고 손을 꼼지락거린 후에야 말을 이어갔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요… 혹시 푸아소나드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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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는 밤놀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파리에서 일할 때도, 밤잠을 줄여가며 새벽까지 수많은 술집과 카바레, 무도회장을 드나들었다.
베르사유에 온 이후에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허가를 받고 파리에 놀러 갔으니까.
“… 그래서 어제는 오랜만에 그, 시장 앞에 있는 카바레를 갔는데 말이죠. 술집에 있는 악사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그 노래를 푸아소나드라고 불렀는데… 최근 일주일 사이에 조금씩 유행처럼 번지는 모양이더라고요.”
“푸아소나드?”
“… 네.”
”저에 대한 노래군요.“
“그게… 아무래도 그렇죠?”
퐁파두르의 결혼하기 전 성은 푸아송 (Poisson). 프랑스어로 ’생선‘이라는 뜻이다.
’푸아소나드(Poissonade)‘는 직역하면 ’생선에 대한 노래.‘ 그 노래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후우… 이건 제가 구한 건데요…”
니콜라는 조금 더 망설이다가, 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얼마 전부터 파리 곳곳에 이런 가사가 적힌 종이가 뿌려졌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노래로 만든 건데… 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또 모르고 계시면 안 될 것 같아서…”
“니콜라, 말했잖아요? 저는 그렇게 연약하지 않답니다. 베르사유에서도 매일같이 욕먹고 있잖아요?”
퐁파두르가 종이를 가져가자, 니콜라는 눈을 질끈 감으며 움찔거렸다.
퐁파두르는 한 장, 한 장. 가사가 적힌 종이를 읽어내렸다. 머지않아 그녀의 환한 미소는 사라졌고,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만 남아 버렸다.
퐁파두르는 항상 가면을 쓰는 여인이었다.
즐겁게 웃고 있는 여인을 가면을.
하지만 그녀가 읽은 것은 가면에 흠집을 내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가면을 무참하게 뜯어버렸다. 상처받은 눈동자가 무방비하게 노출되도록.
“저도 봐도 될까요?”
한길이 종이를 가져가는데도, 퐁파두르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한길 역시 가사를 읽어내렸다.
「예전에는 베르사유가
안목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잡다함만이 남았네.
궁의 명성은 땅으로 떨어졌고,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하네.
원래 생선은 시장에서 구하는 게 아니었나?」
「가장 고귀한 군주가 더럽혀졌다네!
부르주아는 갈수록 부유해지고,
생선들은 몸집을 더욱 부풀리고 있지!
잡동사니는 쌓여만 가는데,
국고는 텅텅 비어가네.
건물을 지으랴, 사치품을 모으랴!
나라가 추락하는데도,
국왕은 그 무엇도 지킬 수 없구나」
「추하게 자란 작은 부르주아 하나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네.
궁전은 순식간에 사창가가 되었고,
국왕은 의미 없는 열정을 불태우네
이 웃기지도 않는 화재에
파리 전체가 웃는다 하하하」
「잡종 매춘부 하나가
궁중에서 활개 치고
루이는 매일같이
쉬운 승리만을 추구하네
그게 사랑 때문일까,
와인 때문일까?」
그 외에도 너무 외설스럽고 추잡하여 차마 읽지 못하는 노래들이 많았다.
“괜찮으신가요?”
한길이 시선을 퐁파두르로 돌리자, 힘없이 억지웃음을 짓는 여인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눈물은 없었지만, 그녀는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니콜라가 뒤늦게, 변명하듯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파리 시민 전체가 이걸 부르는 건 아니에요! 특정 악사들만 부르는 거고… 아직은 유행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불안해서…”
끄덕끄덕.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에티올 부인을 좋아해요! 아무래도 살롱 요리로 워낙에 인지도가 좋았으니까요.”
끄덕끄덕.
“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단순해서.. 계속 이런 노래를 듣다 보면 선동이 된다고 해야 하나…”
끄덕끄덕.
“이걸 국왕 전하도 아시려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셔야 할 것 같으면서도, 아시면 안 될 것 같아서….”
“절대 안 돼요!”
’국왕‘이라는 말에 퐁파두르가 갑자기 다급하게 외쳤다.
“전하의 힘을 빌리면 절대 안 돼요. 그분은 체면을 중요시하는 분이라… 파리에 이런 노래가 유행한다는 걸 알면… ”
국왕은 아직 퐁파두르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주방은 주었지만, 아직 그녀의 요리를 맛보지 않았으니까.
이런 노래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살롱에 초청은커녕 퐁파두르가 궁에서 쫓겨날 확률이 높아 보였다.
“전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중단시켜야 해요.”
“그, 그래서 저도 이거 출처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다 익명이더라고요. 어느 날 갑자기 거리에 뿌려져 있었다고…”
“출처는 알아요.”
“네?”
“궁전에서 나온 거예요. 아직 파리 시민들이 알 수 없는 내용이 있잖아요?”
일반 시민들은 베르사유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노래 가사에는 ’잡동사니,‘ ’건물을 짓는다,‘ ’사치품을 모은다‘ 등의 단어가 있었다.
퐁파두르는 매일같이 국왕에게 보여줄 잡동사니를 수집했고, 최근에 그녀로 인해 국왕은 건축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사실을 아는 건 궁중 사람들뿐이고.
“궁중에 있는 누군가가, 익명으로 파리에 뿌린 게…”
“그냥 국왕 전하께 말씀드리고 그 사람을 처벌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한두 명이 아닐걸요. 그리고 국왕 전하께서는 아시면 안 돼요.”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한길도 퐁파두르와 같은 입장이었다.
한길이 이곳에 와서 놀란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루이 15세가 사랑받는 국왕이라는 것.
10개월 전, 국왕은 열병으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무사히 회복했을 때, 파리에 축제가 열렸다고도 했고.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
루이는 ’사랑받는 루이 (Louis, le Bien Aimé)‘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10개월 후,
그는 나라를 몰락으로 이끌고 있다며 조롱받고 있었다. ‘생선’ 하나로 인해.
‘조금 이상한데?’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길이 스테이지 진입 전에 암기했던 프랑스 상식에 의하면, 퐁파두르는 국민에게 가장 미움받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건 7년 전쟁 후가 아니었나?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그렇다면 짐작가는 이유는 하나.
‘나 때문인가?’
이 세상에서 한길은 유일한 변수였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퐁파두르는 이름 없는 하급 귀족의 아내다. 하지만 한길이 온 이래로, 퐁파두르는 파리 시민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살로니에르가 되었다.
만약 그녀가 하급 귀족의 아내였다면, 그녀의 적들도 방심했을 거다. 그들이 방심하는 사이, 퐁파두르는 국왕과 신뢰를 쌓아 나갔을 테고. 악성 소문이 퍼졌을 때, 국왕은 확실하게 그녀의 편에 섰을 거다.
하지만 한길로 인해 그녀는 너무 눈에 띄는 정부가 되어버렸고, 그녀의 적들도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우선 푸아소나드를 막아야 합니다. 절대 소문으로 번지지 않게요. 니콜라, 아직 유행이 시작하는 단계라고 했죠?”
“그렇긴 한데… 소문을 무슨 수로 막아?”
익명으로 퍼지는 소문을 막을 방법은 없다.
강제로 진압하면, 오히려 더 거세게 불타오를 거다. 그렇다고 수많은 악사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사라지는 게 제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떠오르는 답은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다.
지금까지 모든 경험이 그랬으니까.
위기는 항상 새로운 기회였다.
이번 위기도 분명…
푸아소나드.
푸아송의 노래.
악소문은 그녀의 이름을 이용해서, 천한 신분을 강조하고 있었다.
“니콜라, 생선이 그렇게 안 좋은 건가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비싸서 일반인들도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
“그런데 왜 굳이 이 노래를 푸아소나드라고 부르는 건가요?”
“냄새나니까. 비싼데 막상 오래가지는 않고, 냄새도 지독하고.”
하긴, 현대에서도 생선은 비린내 때문에 꺼리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냉장고가 없는 이 시대에서는 오죽할까.
‘이름 한번 잘 지었네.’
생선이 가진 불쾌한 이미지를 활용한 노래.
게다가. 소문을 이용했다.
퐁파두르는 소문으로 명성을 얻은 여인이었다. 똑같은 소문을 이용해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악의가 느껴졌다.
역시 이건 일반 시민들이 시작한 게 아니라 귀족들의 짓이었다.
‘하필이면 무대가 파리이고….’
파리는 유행의 도시였다.
모두가 새로운 것에 열광했고, 새로운 유행이 생기면 우르르 앞다퉈 따라 했다. 선동하기에는 최적의 무리라는 말이 된다.
상대의 교활함에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되었지만, 그 외에도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왜 하필이면 생선이냐고.’
요리사의 입장에서는 심히 불쾌한 발언이었다.
생선은 좋은 식재료다.
본인들이 제대로 관리를 못 해서 냄새나는 것을, 생선 탓으로 돌리다니…
제대로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 노래에 선동당해 생선은 천하다고 외치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
갑자기 뜬금없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만…
“니콜라, 파리에는 아직도 에티올 살롱 요리가 유행하고 있나요?”
“뭐, 아직은? 조금 있으면 사이클이 지나겠지만, 마스터가 출판하는 조리서가 조만간 나올 테니까 다시 불타오르지 않을까? 왜? 무슨 생각이 있어?”
아직 ’에티올 살롱 요리‘의 화력은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승산은 있다.
“소문에는 소문으로 맞서야죠.”
“어?”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죠.”
한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한길은 그들을 향해 자신 있게 웃어주었다.
“푸아송을, 우리가 선점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