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5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50화(250/325)
250. 문과 문지기
국왕의 하루는 바빴다.
우선, 파리에 입성하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렸다. 시민들이 국왕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적당한 속도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리에 있는 튈르리(Tuileries) 궁에서 부재중 있었던 일들에 대해 보고를 받고, 저녁에는 파리에서 개최하는 불꽃놀이 축제에도 얼굴을 비쳐야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니 시각은 이미 밤 10시.
“바로 베르사유로 가지.”
갑작스러운 국왕의 말에, 옆에 있던 리슐리에 공작이 흠칫거렸다.
“전하, 오늘은 피로하실 텐데 튈르리 궁에서 쉬시는 건 어떠실지요.”
“아니, 베르사유로 돌아가겠네.”
“이미 시간도 늦었습니다.”
설득하려던 리슐리에 공작은, 국왕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단호한 표정.
분명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리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덕분에 튈르리 궁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연히 국왕이 튈르리 궁에 묵을 줄로만 알고, 국왕의 쿠셰(coucher: 취침 의식)에 참여하는 귀족들 역시 튈르리 궁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왕은 서둘러 마차를 준비 시켜 베르사유로 떠났고, 귀족들도 허둥지둥 그 뒤를 따랐다.
베르사유에 도착한 국왕은 다시금 리슐리에 공작에게 한마디만을 남겼다.
“왕비에게 인사하고 오지. 도착하는 즉시 쿠셰를 준비해주게.”
“네, 전하.”
국왕은 정확히 30분 후에 공식 침실에 입장했다.
침대 옆에 있는 기도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 후 다시 일어서자, 침실 담당 발레(Valet de Chambre)가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앙트레를 들여도 되겠습니까.”
앙트레(entrée)는 ‘입장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국왕의 취침 의식을 보기 위해 입장하는 관객들을 의미했다.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이 열렸고, 화려한 의상의 귀족들이 입장했다.
가장 앞에 있는 이들은 국왕의 친척뻘인 프린스 뒤 생(prince du sang). 그 뒤로는 대귀족인 그랑 앙트레(grand entrée), 국왕과 친분이 있는 프레미에르 젠틸옴므(première gentilhomme), 의상을 관리하는 총괄 마스터, 국왕의 모든 거주 구역을 총괄하는 시종장…
주요 인사들이 입장한 후에는 일반 구경꾼들도 들어왔다. 일반 귀족들에게도 국왕의 취침 장면 일부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왕은 가슴팍에 달린 프랑스 왕조의 상징인 성령 훈장(L’Ordre du Saint-Esprit)을 떼어낸 후, 코트와 함께 시종장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발레가 촛대를 들고 다가왔다.
오늘의 촛대 담당자를 정해달라는 뜻이었다.
국왕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나마 조용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을 지목했다.
“듀라스 백작에게 맡기지.”
“네, 전하.”
“내일은 11시에 기상하겠네. 피곤하군.”
“물론입니다.”
이윽고 시종 한 명이 의자를 가져왔다.
다른 시종은 신발을 벗겨주고 슬리퍼를 신겨주었다.
국왕이 의자에 앉자, 발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실 분들은 나가시죠.”
일반 구경꾼들이 허용된 건 여기까지.
가장 뒷줄에 서 있던 일반 귀족들이 퇴장했다.
이제부터는 세면 시간.
가발을 벗기고 얼굴을 닦아주면, 다음은 옷을 갈아입을 차례다.
“나가실 분들은 나가시죠.”
이번에는 대귀족들이 퇴장했다.
국왕의 알몸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국왕의 친척뻘인 프린스 뒤 생이 다가와 슈미즈를 건네주었고, 의상을 관리하는 마스터가 그 위에 걸칠 로브를 입혀주었다.
그동안 촛대를 담당한 듀라스 백작은 조명을 제공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전하.”
국왕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는, 촛대를 든 자만이 말을 걸 수 있다. 오늘은 이 영광이 듀라스 백작에게 주어졌다.
“전하의 용맹함에 온 유럽이 경탄할 것입니다. 제가 프랑스 국민인 게 자랑스럽습니다.”
“….”
국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쁜 얼굴도, 그렇다고 기분이 상한 얼굴도 아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네.’
듀라스 백작을 포함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베르사유 내 귀족들 사이에서 국왕의 이미지는 그랬으니까.
외모로만 봤을 때, 루이 15세는 유럽에서 매우 귀한 존재. 잘생긴 국왕이었다.
움직임에는 품격이 느껴졌으며, 표정은 항상 점잖았고, 대체로 선한 성정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절대 본심을 보이지 않았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의 눈에는 따분함이 가득했다.
마치 이 모든 과정이 지겹다는 듯이.
할 수만 있다면, 이 의식을 통으로 생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모든 귀족이 반발하고 나설 테니 말이다.
국왕의 쿠셰는 베르사유 귀족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방에 입장하는 순서, 방을 퇴장하는 순서.
누가 셔츠를 건네는지, 누가 촛대를 드는지.
이 모든 행동이 귀족들의 서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가실 분은 나가시죠.”
발레의 목소리에 프린스 뒤 생도 퇴장했다.
마지막까지 남는 자들은 국왕과 친분이 있는 프레미에르 젠틸옴므, 그리고 촛대 담당자. 오직 이들만이 국왕이 침대에 눕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
그들이 보는 앞에 루이는 침대에 올라가 누웠고, 시종들이 침대의 커튼을 내려주었다.
그제야 국왕의 공식적인 하루가 막을 내렸다.
#
“전하, 모두 떠났습니다.”
시종의 목소리에 루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커튼을 걷어내니, 촛대를 든 시종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지.”
루이는 조용히 침실을 나섰다.
루이는 공식 침실에서 잠들지 않았다. 국왕의 공식 침실은 베르사유에서 가장 화려한 침실이었지만, 외풍이 너무 심하고 건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셰를 치룬 후에는 조금 더 편한 방으로 이동했고, 기상 시간에 맞춰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이는 베르사유에 있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즉, 이 의식 자체가 모두가 알고 참여하는 연극이었다.
‘드디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루이는, 방 한구석에 자리한 계단을 본는 순간 미소를 지었다.
저 계단은 퐁파두르의 방과 연결되어 있다. 그녀를 만날 생각만으로 맑은 산소를 한 모금 들이마신 것처럼, 청량감이 폐를 가득 채웠다.
“올라가겠네.”
“네, 다녀오십시오.”
미리 언질을 줄 수 있겠지만, 그녀를 놀라게 할 생각으로 루이는 조용히 계단을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니, 퐁파두르는 등을 돌리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뭐가 그리 바쁘지?”
살짝 말을 걸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루이!”
쪼르르 달려와 그의 품에 안기려는 찰나, 그녀는 돌연 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왕비 전하께도 인사를 드렸나요?”
“갔다 왔지.”
“잘하셨어요!”
그제야 그녀는 기나긴 포옹을 허락해주었다.
굉장히 그리운 품이었다.
“몸은, 상하신 데는 없고요?”
“보다시피 멀쩡하지.”
“마음은요?”
“마음?”
“전쟁터라는 곳은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곳이니까요. 그걸 눈앞에서 직접 보셨으니, 혹여 마음의 상처를 입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어서…”
이래서 그녀를 아낄 수밖에 없었다.
루이는 평화주의자였다.
전쟁의 필요성은 인지했으나,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멀쩡할 정도로 승리나 영광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루이는 전투에서 승리한 날, 승전고를 울리지 못하게 하였다. 비록 적군이어도, 그 죽음을 축하하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왕은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나약한 국왕으로 보일 테니까.
그 누구도 적군의 죽음을 슬퍼하는 국왕 따위, 보고 싶지 않아 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마음속에 그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계시면 건강을 해쳐요. 저에게라도 털어놓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들어드리는 것밖에 없지만요.”
그렇게 그녀는 몇 시간이나 루이의 손을 잡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하는 진심을 모두 쏟아내니, 마치 고해성사를 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제야 루이는 평범한 대화로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대는 어떻게 지냈지?”
“저야 늘 똑같죠.”
“듣자 하니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던데?”
“어머! 그건 또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다 듣는 수가 있지.”
그녀는 쑥스러운지, 한동안 말없이 웃기만 했다.
“루이가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는데, 제가 여기서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왕비 전하의 심부름도 할 겸, 파리 근교의 수도원들을 찾아다녔죠.”
그녀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이미 튈르리 궁에서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파리 시민들이 왜 그녀의 이름을 외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수도원에 왕비의 기부품을 전달했고, 특이한 요리를 만들어 배고픈 자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으며, 사비를 들여 몇몇 수도원들의 보수공사까지 진행했다고 들었다.
‘참 신기한 여자야.’
처음에는 그녀 역시 그를 이용하는 게 아닐까 하고 경계했지만. 그녀는 왕비와도 사이좋게 지냈고, 정치나 권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피곤하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일이 없었다. ‘해달라’고 조르는 게 아니라, 기꺼이 ‘해주겠다’고 말하는 여인이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만난 후로, 루이는 난생처음으로 평온함을 느꼈다.
“아, 그러고 보니! 루이, 제가 재밌는 편지를 받았는데요!”
“편지는 나중에 봐도 되지 않나?”
“하지만 목이 빠지게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걸요. 그들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요.”
퐁파두르는 손님이 많았다. 국왕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녀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것 역시 루이의 삶이 편해진 이유 중 하나였다.
귀찮은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녀가 대신 만나주었으며, 불편한 거절도 그녀가 대신해주었으니까.
퐁파두르는 루이보다도 책을 많이 읽을 정도로 박식했으며, 영리해서 어떤 일에 루이의 관심이 필요한지, 스스로 알아서 걸러내 주기까지 했다.
즉, 그녀는 매우 유능한 비서였다.
심지어 루이에게만 충성심을 보여주는 비서.
“흐음.. 분명 여기 어딘가 있었는데…”
그녀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종이를 헤집자, 가장 가장자리에 놓인 종이 한 무더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다가가서 주워주려는 찰나,
“루이! 그건 보지 마세요!”
퐁파두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루이는 발밑의 종이를 주워서 읽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읽은 루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퐁파두르를 희대의 창부, 국왕을 희대의 멍청이라고 부르는 글. 두 사람이 침실에서 벌이는 일을 조롱하는 글.
푸아소나드였다.
“이건 뭐지?”
“말씀드려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익명으로 파리 시내에 뿌려지는 글이에요. 저도 작성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무리였어요. 미안해요, 루이.”
그녀의 작은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루이가 봐도 한순간에 머리에 피가 쏠릴 정도로 끔찍한 내용이 가득한데, 그녀는 오죽할까.
하지만 퐁파두르는 자신의 슬픔이나 아픔을 남에게 짊어지우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슬픈 눈으로, 애써 환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이런 건 금방 지나갈 거예요, 루이. 그것보다 즐거운 일을 생각해요. 이건 듀라스 백작이 보낸 편지인데요…”
편지의 내용은 별 게 없었다. 국왕이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는 뻔하디 뻔한 내용. 그런데…
‘뭐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 정체는,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 읽은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특이하게 휘어진 ‘d.’
반원처럼 유난히 동그란 ‘f.’
루이는 서둘러 방금 전에 읽었던 끔찍한 종이를 펼쳐서 편지와 비교해 보았다.
‘비슷해.’
끔찍한 시를 만든 자는, 인쇄소를 이용하지 않았다. 직접 손글씨로 글을 적었으며, 어린아이의 글씨와도 같은 어설픈 필체를 썼다. 하지만 평소에 몸에 밴 세세한 습관까지 버릴 수는 없다.
분명했다.
이 끔찍한 시를 쓴 작성한 이는 듀라스 백작이었다. 그리고 듀라스라면, 방금 전까지 자신의 촛대를 들어주던 이가 아니었나.
“루이, 왜 그래요?”
퐁파두르가 그의 옆에 다가왔고, 그녀도 이내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럴 수가… 듀라스 백작이 그럴 리가…”
퐁파두르는 똑똑한 여인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지나치게 순진했다. 자신이 도와주려 했던 사람이, 뒤에서 이런 끔찍한 시를 작성해서 배포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
“잔느!”
하늘이 무너진 표정을 하던 그녀는, 결국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루이는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힌 후, 다시 책상으로 다가갔다.
푸아소나드는 수십장에 달했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에는…
수백 장의 편지가 있었다.
국왕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마디로, 이 책상에는 베르사유는 물론, 파리에 있는 모든 귀족의 필체 샘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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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두르 후작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너무 무리한 탓에 몸이 약해져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베르사유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퐁타뉴 백작이 추방당한 거 알고 계세요?”
“그래요? 듀라스 백작도 그러시더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수십 명의 귀족이 하루아침에 궁에서 쫓겨난 것.
국왕은 그들을 반역죄로 처리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면 법정을 거쳐야 했고, 푸아소나드가 공식 증거가 되어 기록에 남았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추방만으로도 가혹한 형이었다.
프랑스 권력의 중심, 패션과 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나 시골에 있는 영지로 돌아가라는 명이었으니까.
이는 사실상 유배나 다름이 없었다.
“저는 가장 놀라운 게 모레파 백작과 리슐리에 공작이더라고요.”
“그러게 말이에요. 전하께서 그렇게 아끼시던 분들이신데…”
심지어 추방당한 이들 중에는, 국왕이 가장 아끼던 두 신하까지 있었다.
추방당한 이들의 자리는 금방 채워졌다.
그리고 새로이 임명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퐁파두르와 친분이 짙은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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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두르 후작이 수프가 필요하시대요. 음식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셔서…”
시녀의 부탁을 받고, 한길은 수프를 끓여서 퐁파두르의 방으로 향했다.
베르사유 방식대로 손톱으로 방문을 긁었지만, 안에서는 답이 없었다. 음식이 식을까 걱정이 되어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침대에 엎드려서 뒹구는 한 여인이 시야에 비쳤다.
그녀는 두 장의 종이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두 장의 종이 중 하나는 푸아소나드.
또 다른 한 장은 평범한 편지로 보였다.
“수프 갖고 왔습니다.”
한길이 입을 열자, 그녀가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마르셀? 왜 니콜라가 안 오고 마르셀이 왔어요?”
“니콜라는 신발이 망가져서 수선해야 한다고 파리에 갔습니다.”
“그, 그렇구나…”
“아프시다고 들었는데, 멀쩡하시네요.”
“제 병은 마음의 병이거든요. 이래 봬도 상심이 꽤 크답니다.”
지난 2주간, 퐁파두르는 몸이 좋지 않다며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끔 니콜라가 식사를 가져다주었지만, 그 외에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국왕조차도.
그 모든 게 꾀병이었던 것이다.
“따뜻할 때 드시죠.”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한길이 테이블 위에 수프를 내려놓았다. 메뉴는 퐁파두르가 가장 좋아하는 완두콩 수프였다.
“어? 그런데 왜 수프만 있고 칩은 없어요?”
“어느 누가 목구멍으로 음식물이 전혀 안 넘어간다고 들어서요.”
“… 마르셀.”
“왜요?”
“지금 삐졌어요?”
“유치하게 누가 삐졌다는 겁니까.”
“얼굴만 봐도 생각이 보이는데?”
퐁파두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수프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아프다던 사람이, 얄미울 정도로 잘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수프를 절반이나 비운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지금 당장 살롱을 열어도 모자랄 판에, 2주나 방에서 노닥거리고 있냐, 이 여자야!’ 대충 이런 생각 하는 거, 맞죠?”
“….”
솔직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녀에게 그녀 나름의 목표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궁전 내에서 그녀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굳이 2주나 필요했을까?
차라리 그 2주 동안 수도원 투어를 다니거나 국왕을 만났더라면,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방에 틀어박혀서 2주간 꾀병을 부렸다.
한길이 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퐁파두르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마르셀, 제가 인생 선배로서 하나만 충고해도 될까요?”
이것도 황당했다.
마르셀의 몸은 어리지만, 그 안에 빙의한 한길은 그녀보다 여덟 살이나 연상이었으니 말이다.
“문을 여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에요.”
“….”
“그러니까,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문이 있다고 쳐요. 사람마다 그 문을 여는 방법이 다르거든요.”
“그렇겠죠.”
“예를 들면, 무슈 무티에르라면 문지기에게 정중하게 부탁할 거예요. 거절당해도 매일 찾아가서 종일 그 앞에 서 있을 테고, 그걸 몇 년간 반복하다 보면 감명받은 문지기가 틈을 봐서 문을 열어주겠죠.”
적절한 비유였다.
무티에르의 올곧으면서도 고집스러운 성격을 잘 표현했으니까.
“반면, 니콜라 같은 사람도 있죠. 니콜라라면, 누군가와 팀을 맺고 찾아갈 거예요. 한 명이 문지기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안 몰래 통과하겠죠.”
“저는요?”
“궁금해요?”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말을 꺼낸 거잖아요?”
퐁파두르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마르셀은… 무조건 밀고 가요. 문지기가 두 명이 있든, 세 명이 있든. 소매를 붙잡든 팔을 옭아매든, 붙잡히면 붙잡히는 대로, 붙잡는 사람까지 끌고 힘으로 그냥 돌진하죠. 어떻게 보면 가장 무식한 방법이에요.”
“그 정도로 요령이 없지는 않습니다.”
“알아요. 비유잖아요, 비유.”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래 봐야 그녀가 더 즐길 것 같아서 한길은 말을 아꼈다.
“그러면 퐁파두르 후작은 어떻습니까.”
“저요?”
그녀의 눈꼬리가 길게 휘어졌고, 입술이 매끄러운 호선을 그렸다. 니콜라가 ‘흑막의 미소’라고 부르는 미소였다.
“저는 제가 도착하기 전에 문지기를 치워버려요. 두 문이 활짝 열려 있을 때 들어가는 게 더 편하잖아요?”
“….”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지름길일 때가 있다는 거죠.”
“후우… 그냥 용건만 말씀하시죠.”
가끔 퐁파두르는 이런 식으로 본론을 꺼내지 않고 돌고 도는 화법을 고집했다. 대개의 경우는 참아주었지만,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었다.
“살롱은 열흘 후에 열 거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5분은 절약했겠네요.”
“마르셀, 문지기 이야기 다시 해줘요?”
“…. 하지만 아직 국왕 전하도 초청하지 못했잖아요?”
꾀병을 부리는 2주간, 그녀는 국왕도 만나지 않았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날짜를 발표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문지기도 다 치웠고, 거절 못 할 초청장을 준비해두었으니까요.”
“비유 없이 그냥 말해주시면 안 되나요.”
한길의 말에 퐁파두르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살롱의 주제를 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