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5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51화(251/325)
251. 돼지 먹이를 먹여라
국왕을 살롱에 초청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이건 예전부터 퐁파두르가 해 온 말이었고, 지금은 한길도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베르사유는 국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베르사유의 예법을 최초로 만든 루이 14세가 괜히 태양왕으로 불린 게 아니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수많은 행성이 공전하듯, 이 궁전 안에서는 국왕을 중심으로 수많은 귀족의 삶이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이곳에서는 국왕과 같은 공간 안에 있고, 국왕과 말을 주고받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특혜였다.
그런 국왕이 ‘그랑 쿠베르(grand couvert: 대중에게 공개된 식사)’를 건너뛰고 살롱에 참석하려면,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퐁파두르라면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처음 베르사유에 들어왔을 때와 달리, 퐁파두르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
솔직히 그녀가 국왕에게 살롱에 제발 와달라고 조른다면, 선뜻 와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또 ‘돌진하지 말라’며 놀릴 게 뻔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마르셀.”
“아무 생각 안 했는데요?”
“저는 정석대로 할 거예요. 제대로 된 주제를 정해서, 그 누구도 반박 못 하는 살롱을 열 거라고요. 나중에 뒤돌아보면, 그게 지름길이 될 거거든요.”
“그래서, 살롱 주제가 뭐죠?”
한길의 질문에 퐁파두르가 갑자기 쓴웃음을 지었다. 복잡한 감정이 겹겹이 겹쳐진 그런 웃음이었다.
“마르셀, 그거 알아요? 이번에 저희가 유행 시킨 푸아송 빵과 푸아송 케이크… 귀족들은 먹어보지 않았어요.”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현대로 치면, 재벌이 붕어빵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니까.
“그게 왜요?”
“마르셀은 안 억울해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니까요? 맛도 보지 않고, 서민 요리는 당연히 먹을 게 못 된다고 판단을 내린 거라고요.”
“뭐, 처음부터 그 사람들을 노린 메뉴도 아니었잖아요.”
“그래도… 저는 그런 편견이 마음에 안 들어요.”
퐁파두르는 첫 만남 때도 ‘편견’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었다.
평민 출신인 데다가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그녀에게는, 저 단어의 무게가 다르겠지. 아마 오랜 상처를 건드리는…
“그래서 먹이려고요.”
“네?”
“그 사람들에게, 귀족들에게, 서민 요리를 먹일 거라고요.”
“….”
“저렇게까지 먹기 싫어하면, 어떻게든 먹이고 싶어지잖아요. 안 그래요?”
조금 전까지 보인 복잡한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그녀는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편, 한길은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번 살롱의 주제는, 국왕 전하와 귀족을 앉혀놓고 서민 요리를 차리라는 말씀이신가요?”
귀족들은 서민 요리를 싫어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서민 요리를 차리는 살롱이라니…
“명분은 어디로 갔죠?”
“제가 바보도 아니고, ‘여러분, 서민 요리 드시러 오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죠, 당연히.”
“그러면요?”
“이렇게 말해야죠.”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순진무구한 눈빛을 가진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이번에 서민들을 만나보고, 그들이 얼마나 혹독한 삶을 사는지 알게 되었어요. 하루에 벌어들인 돈의 절반 이상을 빵 사는 데 쓴다는 거, 전하도 알고 계셨나요?”
태생이 여배우라고 해야 하나.
국왕과 나눌 대화를 상황극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퐁파두르는 한길을 빤히 보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극에 참여하라는 것처럼. 국왕의 대사를 읊어달라는 것처럼.
한길이 그 눈빛을 꿋꿋하게 무시하자, 퐁파두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홀로 연기를 이어갔다.
“하루 벌어서 하루 살아가는데, 갑자기 빵값이 오르면 굶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빵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 고기나 채소를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굶어 죽을 바에는 뭐라도 하자 싶어서 죽자살자로 움직이는 거고, 그래서 폭동이 일어나는 거죠.”
내용을 듣자 하니, 프랑스 혁명 이전에도 빵값이 올라서 폭동이 일어나는 일은 간혹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저를 찾아온 한 학자가, 재밌는 해결책을 알려주더라고요! 미대륙에서 건너온 작물이 있는데, 한번 심으면 80일 만에 자란대요. 키우는데 손도 거의 안 가고, 저렴하고, 빵보다 훨씬 든든하게 속을 채워주고, 오랜 기간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다고 해요! 어때요? 이건,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작물이 아닐까요?”
한마디로 구황작물이었다.
‘괜찮네.’
퐁파두르는 최근 몇 달 사이, 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귀족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서민들을 굶주림에서 구원해줄 구황작물을 개발해서 알린다면?
그녀의 새로운 이미지에 딱 맞는 살롱 주제였다.
게다가, 평소에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국왕이나 귀족이라 할지라도, 폭동을 막을 구황작물이 있다고 하면 관심을 보일 거다.
“나쁘지 않네요.”
“그렇죠?”
“그래서, 그게 무슨 작물인가요?”
한길의 질문에 퐁파두르가 갑자기 시선을 회피했다.
“그게… 맛이 없다고 천대받는 작물이래요. 하도 맛이 없어서 농민들도 평소에는 먹지 않고 돼지 먹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조금 곤란한데.’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재료 본연의 맛이 끔찍하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
이번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은 국왕의 인정을 받는 것.
국왕을 살롱에 초청하는 것에 멈추면 안 된다. 뛰어난 요리를 선보여야 하고, 맛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재료가 형편없어서야…
“그래서 그 작물이 대체 뭐라고요?”
한길이 인상을 쓰며 묻자, 퐁파두르가 웃으며 답했다.
“우선, 꼭 그 작물을 이용해주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열흘 안에, 그 작물을 이용한 만찬을 차리는 거예요. 재료 바꾸기는 허용할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정말이죠? 약속했어요?”
“알았으니까 뜸 들이지 말고 그냥 말해주세요.”
그제야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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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퐁파두르는 호언장담한 대로 국왕을 무사히 살롱에 초청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니콜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정말 국왕 전하께서 괜찮다고 하셨나요? 감자 요리를 만드는데 괜찮다고요?”
“네. 오히려 좋아하시던데요?”
“감자가 뭔지 모르시는 거 아닐까요?”
“아니, 저는 말씀드렸어요. 농민들도 안 먹는 ‘돼지 먹이’로 살롱 요리를 차릴 거라고요.”
“그런데도 괜찮다고 하셨다고요?”
“솔직히… 저도 조금 놀랐어요. 설득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전하께서 자진해서 오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얼마나 크게 웃으시던지… 루이가 그렇게 큰소리로 웃는 건 처음 봤어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국왕은 귀족들에게 ‘돼지 먹이’를 먹이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본인도 기꺼이 감자를 먹겠다는 입장이었고.
“그… 전하께서는 유머 감각이 조금 남다른 분이라서요. 어쨌든, 가장 큰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나머지는 여러분에게 달려있어요.”
“맡겨만 주세요! 우리 편에는 이 복덩이가 있잖아요?”
“무슈 파르멘티에에게는 연락을 해두었으니 바로 가시면 될 거예요.”
오늘, 한길은 니콜라와 함께 파르멘티에(Parmentier)라는 남자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는 퐁파두르에게 제발 감자를 홍보해달라고 부탁한 한 인물로, 감자 연구를 하는 학자였다.
파리에서는 감자를 구하기 힘들었다.
시장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 재료였으니까.
하지만 파르멘티에는 연구를 위해 개인 소유의 땅에 감자를 수확하고 있었고, 살롱에서 사용하는 감자는 얼마든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들었다.
“그분이 조금 별난 분이긴 하지만, 너무 나쁘게 보진 말아주세요.”
퐁파두르는 생긋 웃으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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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멘티에는 한길과 니콜라를 지나치리만큼 반겼다.
“베르사유에서 이 먼 길을 와주시다니! 정말 감격입니다! 어서 오시죠!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그는 상당히 소란스러운 인물이었다. 마치 오랜만에 귀가한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말을 꺼내기 바빴고.
“우선 제 연구 자료부터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감자밭부터? 아니, 오신다고 해서 감자 요리도 몇 개 만들어봤는데 그것부터 보시렵니까?”
“연구 자료부터 봐도 될까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러면 제 서재로 가시죠, 하하하!”
서재로 걸어가는 길에도, 남자는 한순간도 조용히 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니콜라가 이런 소란스러운 인물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환영해주시니 기분이 좋은데요?”
“그럼 환영해야죠! 지원군이 와서 얼마나 든든한지 아십니까? 그동안 제가 얼마나 외로웠는데요.”
“뭐가 그리 외로우셨는데요?”
“사람들이 이게 얼마나 좋은 작물인지, 알아주지를 않으니까요!”
“맞아요, 그러면 서럽죠. 그런데 선생님은 감자를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파리에서는 보기 힘들 텐데…”
“사실은 제가 독일 여행을 하다가 잠깐 일이 있어서 감옥에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죄수용 음식으로 감자죽을 주더라고요. 파리에 돌아온 후로도 그 맛이 계속 생각이 나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죠.”
“… 죄수용 음식이 생각났다고요?”
“이게 생각보다 정말 맛있거든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길은 조용히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왜 감자가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거지?’
이곳에서는 감자가 천한 재료로 취급받고 있었다.
가축 먹이로나 사용하는 재료. 가난한 농민들조차 굶어 죽을 때가 되어서야 먹는 재료. 죄수들에게나 주는 재료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감자는 맛이 그렇게 끔찍한 재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둘.
하나, 이 시대 감자는 품종 개량이 되지 않아 맛이 끔찍하거나. 둘, 이 시대 사람들의 입맛에는 감자가 맛이 없는 거다.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야 국왕에게 인정받을 감자 요리를 낼 수 있다. 그러려면 일단은 정보부터 취합해야 하고.
“여기 있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진행한 연구의 요약본이죠. 2만 자나 되어서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만…”
“괜찮습니다.”
한길은 남자가 내민 종이를 빠르게 읽어내렸다.
그 안에는 감자에 대한 각종 정보가 들어있었다.
감자가 프랑스에 처음 소개된 것은 1500년대. 약 200여 년 전이다.
영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감자를 받아들였지만, 프랑스만 유독 감자를 혐오했다.
땅속에서 자라는 음식이니 악마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음식이니 먹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고. 심지어 감자를 먹으면 문둥병이 생긴다는 헛소문도 돌고 있었다.
이렇게 이미지가 안 좋다 보니, 그 누구도 감자를 심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소문이 도는 겁니까?”
“신대륙에서 넘어온 재료니까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거죠.”
“하지만 신대륙에서 넘어온 재료를 다 이상하게 보는 건 아니잖아요?”
이 시대에는 신대륙에서 건너온 콩이나 옥수수를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유독 감자만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
“콩이나 옥수수는 원래 저희가 먹던 식재료랑 비슷하니까요. 그나마 친숙한 재료인 데 비해, 감자는 솔직히 너무 다르잖아요?”
“다른 걸로 치면 커피랑 초콜릿도 다르죠.”
“바로 그겁니다!”
“네?”
“커피랑 초콜릿도 모두 귀족분들이 먼저 드셨으니까 받아들여진 거죠! 베르사유 분들이 감자도 인정해 주신다면, 전 국민이 바로 밭으로 달려 나가 감자를 심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퐁파두르 후작을 찾아간 것이었죠.”
“일단 알겠습니다. 다음은 주방으로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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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파르멘티에는 제법 부유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별도의 주방이 갖추어진 집에 살고 있었으니까.
“당신들이 온다고 해서 감자 요리도 몇 개 만들어봤습니다! 한번 드셔 보시지요!”
주방에는 갓 삶은 따끈따끈한 감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한길이 아는 감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데?’
맛도 한길이 아는 감자와 크게 다른 맛은 아니었다. 소금을 뿌리지 않아 조금 싱거웠고, 감자 특유의 목 막히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냥 삶은 감자이니 어쩔 수 없다.
아까 세운 첫 번째 가설은 기각.
품종 개량하지 않은 감자가 맛이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설이 유력해진다.
이 시대 입맛에는 맞지 않다는 건데…
“어때요?”
한길은 옆에서 함께 감자를 시식하는 니콜라에게 물어봤다. 떫은 표정을 보니, 두 번째 가설에 힘이 더욱 실린다.
“엄청나게 건조하네. 너무 밍밍하고, 뭔 맛인지 모르겠는데? 식감도 그렇고, 풍미도 그렇고… 그냥… 이걸 굳이 먹어야 하나?”
이곳 사람들은 모든 재료에 소스를 뿌렸고, 심지어 소스를 만들 때는 진하게 우려낸 육수를 사용했다. 진한 풍미를 즐긴다는 말이었다.
가벼운 맛을 자랑하는 누벨 퀴진도, 향이 강한 재료를 주로 사용했다.
그런 요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감자는 그렇게 매력적인 재료는 아닌 거다. 자체적인 풍미도 많지 않고, 건조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이건 그냥 맛만 보시라고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삶은 겁니다! 요리로 만든 것도 있는데,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파르멘티에는 바로 달려가서 미리 준비해둔 요리를 들고 왔다.
감자 수프였다.
“맛이 어떠십니까?”
“…..”
“….”
“별로입니까?”
“….”
“….”
파르멘티에는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을 요구했고, 한참 후에야 한길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수프에 덩어리가 씹히는데요.”
“네?”
“감자 덩어리가 있네요.”
“아… 그게 으깬다고 으깼는데, 가끔 눈으로 봤을 때는 으깬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 덜 으깬 부분들도 있더라고요, 하하하. 그런데 그걸 제외하고, 맛은 어떻습니까?”
“식감을 제외하고 맛을 보라고요?”
한길과 니콜라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냐는 눈빛으로 파르멘티에를 노려봤지만, 그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결국 참다못한 한길이 다시 말했다.
“재료를 으깰 때는 체에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균등한 크기와 질감의 입자가 나오고, 입안에서 균일한 질감을 주죠.”
“그렇군요!”
“그리고 우유를 더할 때는…”
사실, 지적할 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요리였으니까.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하아… 아닙니다. 맛은 충분히 봤으니 그냥 재고를 보여주시죠.”
”다른 요리도 3개나 준비해두었는데…“
”안타깝게도 먹을 시간이 없군요.“
한길의 태도는 싸늘했다.
안 그래도 감자는 돼지 먹이라는 편견을 가진 재료였는데, 감자를 홍보하겠답시고 나선 사람이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니.
저런 형편없는 음식을 들이밀면서, 왜 감자를 안 먹느냐고 불평해봐야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잠시 후, 파르멘티에가 감자가 가득 담긴 상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우선 지금 당장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이게 전부입니까?”
“밭에 아직 더 있으니까, 더 필요하시면 수확할 수도 있죠.”
“앞으로 수확할 물량 전부, 저희에게 보내주세요.”
“네, 물론이죠!”
“그리고 당신은… 후우….”
한길은 문장 중간에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마터면 조금 거친 말이 튀어나올 뻔했으니까.
“당신은 앞으로 절대 감자 요리를 하지 마세요. 정 하고 싶다면, 나중에 저희가 레시피를 드리겠습니다. 그전에는 감자를 조리하는 것도, 먹는 것도 금지입니다.”
“하지만…”
“약속해 주지 않으시면, 저희는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모든 감자를 압수하고, 앞으로 한동안 감자 요리를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린 것이었다.
“왜요?”
파르멘티에는 갑작스러운 금지령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제가 무슈를 대신해서 논문을 쓴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야… 이게 보기에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래 봬도 제가 몇 년이나 이 분야를 조사하고 알아봤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아하하하하… 아, 네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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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로 돌아가는 길.
마차 안에서 니콜라는 열을 올리고 있었다.
“와, 진짜 끔찍하네. 나, 그렇게 끔찍한 수프는 처음 먹어봤다니까? 감자는 기분 나쁘게 질척이고, 그 위로 우유가 맴돌고 있고. 감자는 우유를 제대로 흡수 못 하는 거 아냐?”
“저 사람에게 맡기면, 물을 끓여도 이상한 맛이 날 거예요. 그걸로 판단하지 말죠.”
“하긴, 그래!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하지! 우리 마르셀이랑 마스터가 잘 연구해서 개발하겠지, 안 그래?”
레시피 개발은 한길과 무티에르가 주로 도맡아서 했다. 그동안 니콜라는 재료 구매나 행정적인 업무를 도와주었고.
“그나저나, 저거랑 어울리는 재료는 뭐가 있으려나? 시간도 그렇게 넉넉한 건 아니니까 재료도 미리 구비해두면 좋을 텐데… 뭐가 필요해?”
“생각을 정리해 보고 내일 알려드릴게요.”
“흐음… 그래. 그래도 최대한 빨리 말해주는 게 좋아. 이제부터 우리도 베르사유 텃밭을 쓸 수 있잖아? 절차가 까다로울지 모르니까 여유롭게 진행하는 게 좋지.”
“뭐라고요?”
“베르사유 텃밭을 쓴다고. 왜, 뭐 원하는 재료 있어?”
베르사유에는 직접 농작물을 가꾸는 텃밭 정원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난 재료들은 모두 궁중 요리사들이 사용했다.
어차피 퐁파두르는 대부분의 끼니를 국왕과 함께했으니, 굳이 자신의 요리사들에게 텃밭 사용권을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한길은 몇 달 전, 가면무도회에서 맛보았던 과일과 채소를 떠올렸다. 시장에서 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맛을 자랑하는 재료들을.
퀘스트가 마무리되기 전, 그 비밀을 알아가서 나쁠 것 없었다.
“니콜라.”
“왜?”
“텃밭에 가실 때,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