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5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55화(255/325)
255. 10점짜리 재료
“너 혼자서도 괜찮겠어?”
“애도 아니고, 괜찮지 않겠어요?”
“그럼 난 이만 간다? 오늘 중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거든.”
니콜라는 한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정원사를 찾으러 갔던 관리가 돌아왔다.
처음 보는 남자와 함께.
“이놈이 정원사 피에르입니다. 이쪽은 퐁파두르 후작께서 보내신 분, 인사드려.”
“안녕하십니까.”
정원사는 생각보다 젊었다.
니콜라와 비슷한 나이 정도 되려나.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도, 건장한 체격도, 허스키한 목소리도. 한길이 기억하는 정원사의 모습과 제법 닮아 있었다.
“저는 업무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부터는 피에르가 안내를 맡아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피에르, 퐁파두르 후작께서 보낸 분이시니 신경 써서 잘 모셔. 알겠지?”
“네.”
관리가 떠나자, 정원사는 잔뜩 경직된 얼굴로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떤 안내를 해드리면 되련지요.”
한길이 어지간히 불편한 모양이었다.
현재 베르사유 최고 권력자인 퐁파두르가 보낸 사람이라는 말 때문이겠지.
정원사는 한길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가면무도회로부터 벌써 몇 달이나 지난 데다가, 당시에 두 사람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 서로의 얼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모르는 척 할까?’
이대로 시치미를 뚝 떼고 초면인 척해도 될 것 같았지만, 연신 손을 꼼지락거리는 정원사를 보며 생각을 달리했다.
한길이 정원사를 부른 이유는 단 하나.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베르사유의 작물은 맛이 월등히 뛰어났다. 같은 당근이라도, 시장에서 구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한길은 앞으로 열 3호점에서 직접 수확한 작물을 사용하고 싶었다.
뛰어난 작물을 재배하는 팁이 있다면, 단서라도 얻어가는 게 좋다. 그러려면 일단 정원사가 입을 열게 만들어야 하고.
정보 캐내기에 특화된 니콜라가 있었다면 더 좋을 뻔했지만, 설령 없다 해도 별 상관은 없다. 니콜라의 요령은 알고 있으니까.
니콜라의 정보 캐내기 요령은 한 문장으로 요약되었다.
‘형님, 정말 대단하시군요!’
상대보다 낮은 곳에서, 상대를 치켜세우며 아부를 떠는 거다.
그러려면 일단, 상대에게 만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베르사유 실세의 요리사가 아니라, 조금 더 편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한길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네? 저를… 아십니까?”
“드디어 찾았네요.”
한길의 말에 정원사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하지만 한길의 얼굴을 본 후에도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베르사유에서 숨바꼭질해도 찾아낼 자신이 있다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지금 나랑 어울려 줄래, 아니면 내일부터 베르사유에서 숨바꼭질할까?
이는 한길이 무도회에서 정원사를 협박할 때 했던 말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정원사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서, 서, 설마! 그때 그 망나니?”
“오랜만이네요.”
“뭐야! 당신… 요리사였어?”
정원사는 삿대질하듯 한길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크게 뜬 눈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피해자의 얼굴이었다.
그에 대고 한길은 해맑게 웃어 보였다.
“소개가 늦었네요. 퐁파두르 후작의 주방에서 일하는 견습생, 마르셀입니다.”
“뭐? 심지어 견습생? 당신, 분명 귀족이라고 했잖아?”
“제가 언제요?”
“분명…”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귀족을 사칭했다가 들통나면 무슨 벌을 받을지 어떻게 알고요. 저는 그렇게 간 큰 놈이 아닙니다.”
한길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입으로 ‘나는 귀족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귀족처럼 거만하게 행동해서 오해를 유도했을 뿐.
“아, 아니! 네놈이 분명!!!”
“제가 술만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어서, 혹여나 실수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네요. 만약 제가 그날 실례되는 행동을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뭐 이런 새끼가… 참나!”
정중하게 사과까지 하자, 정원사는 어이가 없는지 입만 뻐끔거렸다. 그동안 한길은 하늘을 올려다본 후, 다시 정원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시간 정도면 해가 질 것 같네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도 될까요?”
“뭐를?”
“텃밭을 안내해 주기로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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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살구나무 맞나요?”
“보면 모르나?”
“나무보다는 덩굴 같아 보여서요.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죠?”
한길은 벽돌벽 앞에 심어진 살구나무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무는 나무이되,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벽을 타고 자라는 덩굴식물처럼, 벽에 착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3D인 나무를 납작하게 눌러서 2D로 만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꽃을 납작하게 눌러서 만든 책갈피와도 비슷했다.
“에스팔리에(espalier) 기법이야. 일부러 벽을 타고 자라게 가꾸는 거지.”
“왜요?”
“그래야 안정적으로 과일을 수확할 수 있으니까. 가지가 제멋대로 자라면 그늘이 생겨서 안쪽에 있는 과일은 늦게 익잖아? 저러면 햇빛을 골고루 받아서 동시에 익어. 공간 활용성도 좋고.”
정원사는 입이 댓 발 나와 있었다. 눈빛만 봐도 그가 한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거짓말과 허풍을 달고 사는 쓰레기쯤 되려나.
하지만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퐁파두르가 보낸 사람을 홀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인지, 질문에는 나름 성실하게 답해주고 있었다.
“왜 이쪽 밭은 거름을 뿌렸는데 이쪽은 안 뿌렸죠?”
“거름은 열기를 더하니까. 열기가 필요한 멜론이랑 오이에는 거름을 주고, 겨울 작물은 안 줘.”
‘역시 이 사람을 부르기를 잘했네.’
한길이 이 정원사를 지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 만남에서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라고 느꼈으니까.
그래서인지, 확실히 설명도 잘했다.
“그게 맛의 비결인가요?”
“뭐가?”
“베르사유 작물들은 시장에서 난 것보다 맛이 좋더라고요. 그 이유가 궁금해서요.”
“기본에만 충실하면 맛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 농사는 정직하게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어떤 정성을 들인 건데요?”
“그건 너 같은 놈한테 말해봐야 이해하지도 못해.”
태도가 조금 삐딱하긴 했지만…
뭐, 그건 충분히 이해했다.
정보만 준다면 태도 따위는 어떻든 상관없었고.
한길은 과일나무가 심어진 미니정원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채소 텃밭 쪽으로 향했다. 텃밭에는 야들야들한 이파리의 상추가 여러 종류 심겨 있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 먹었던 양배추는 없나요?”
“어떤 거?”
“블론드(blonds) 양배추라고 불렀던 거요.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잎이 적당히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단맛이 감도는 게 상당히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제법 견고해서 브레이징 조리법에도 조직감을 잃지 않을 테고.
“그게 몇 달 전인데, 지금 있을 리 없잖아?”
“왜요?”
“겨울 양배추니까. 그놈은 일부러 서리를 맞도록 시기를 맞춰서 심은 놈이야. 그래서 단맛이 올라온 거지.”
한길이 정원사를 처음 만난 건 2월경.
지금은 어느새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면 겨울이 되기 전에는 다시 못 먹나요?”
“프리뫼르(primeur: 제철이 아닐 때 키우는 작물)가 있긴 하지만, 너무 밍밍해서 추천하지는 않아. 서리를 안 맞으면 맛이 전혀 다르거든.”
“상추 말고 양배추는 없고요?”
“하아…”
정원사는 한길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그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부루퉁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거, 완전 애송이 아냐? 제철이 뭔지도 모르나?”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물론, 한길도 제철 재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다만 프랑스의 제철 재료는 알지 못할 뿐.
또한, 양배추나 상추 같은 채소는 제철 재료로 인식하고 있지도 않았다. 현대에서는 마트에 가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니 말이다.
“프랑스 토종 양배추는 겨울에 수확해. 이런저런 기술을 적용해서 어떻게든 철을 늘릴 수 있지만, 그것도 3월까지야. 그래서 3, 4월에는 양배추 대신 콜리플라워랑 콜라비, 브로콜리를 수확하지. 5월부터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상추로 갈아타고 여름 내내 남쪽 품종을 써.”
“그러면 콜리플라워도 없어요?”
“콜리플라워는 저번 주가 끝물이었지. 대신, 이번 주부터는 프리세 상추랑 판칼리에 상추가 나와.”
“일정이 있군요.”
“당연하지. 요리사라면서 그런 기본도 모르나?”
“네, 몰랐어요.”
한길이 순순히 인정하자, 정원사가 기나긴 설명을 시작했다. 말투가 어딘가 불량 학생을 훈계하는 듯한 말투였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인간이 제철 재료도 모르다니. 그러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겠네. 베르사유에서는 1년 내내 작물을 수확해. 1-2월의 강추위 속에서도 말이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거름을 주거나 유리병을 씌워서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기후에서 자라는 품종을 골라오는 거지.”
“굉장히 전문적이네요?”
“당연하지, 베르사유잖아? 여기에서는 배나무만 해도 총 47종이 있어. 9종은 여름, 10종은 가을, 28종은 겨울에 과일을 얻을 수 있는데, 덕분에 2주마다 안정적으로 배를 수확하고 있지. 전 유럽을 돌아다녀도 이게 가능한 건 여기뿐일걸?”
“대단하네요. 정원사의 진짜 실력은 그런 계획성까지 포함하는 거였군요. 몰랐어요.”
“어, 어쨌든! 크흠!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라는 거지.”
한길의 칭찬에 정원사가 내심 기쁜 얼굴을 했다. 역시 니콜라의 ‘형님 참 대단하시네요’ 전략은 웬만한 사람에게는 먹히는 것 같았다.
‘수확 일정을 꽤 세세하게 관리하네.’
정원사의 말에 한길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한길에게 제철 재료는 계절별 재료였다.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로만 나누어서 보았지, 저렇게 세분화해서 주 단위로 제철을 고려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저런 방식으로 재료를 관리하던 사람을 한 명 만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꽤 오래전 기억이 되었지만, 페르난도의 주방에서 재료를 담당하던 파코가 그러했다.
파코는 시장에서 상인들에게 다음 주, 다음다음 주에 나올 재료를 물어보고 한길에게 그 일정을 기록하게 했었다. 연예인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 같다는 생각했던 기억도 있다.
“그게 비결인가?”
한길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자, 정원사의 한쪽 눈썹이 갈고리처럼 휘어졌다.
“뭐가?”
“재료가 최상 컨디션을 유지하는 시기를 세밀하게 관리하니까 그렇게 맛있나 해서요.”
“그것도 있긴 하지.”
“그런데 왜 파리의 시장에 나온 작물이랑 다른 거죠? 그쪽도 제철 재료일 텐데…..”
한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게 당연하잖아? 여기는 당일 수확한 재료를 쓰고, 그쪽은 파리 외곽에서 난 재료를 운반하는데 며칠은 걸리니까. 그리고 재료는 신선할수록 맛있지.”
“그게 다예요?”
“말했잖아?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고.”
재료는 신선할수록 맛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뭐야, 그게 다라고?’
솔직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맛의 비밀이 당일 수확한 제철 작물이라니.
한길의 얼굴에 떠오른 허탈감을 감지한 정원사가 다시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애송이라는 거지. 파리 요리사들은 다 그렇더군. 겉만 번지르르 해서는.”
“파리 요리사가 왜요?”
“맨날 기술로만 잘난척하잖아? 기본을 잊고 있어, 기본을. 베르사유 요리사들은 기술은 뒤떨어질지언정 기본은 지키고 있고.”
“그 기본이 뭔데요?”
“당일 수확한 재료를 우습게 보지 않는 거지.”
“우습게 보는 건 아닙니다. 다만, 파리에서는 바로 옆에 텃밭이 없으니까 그런 재료를 못 구할 뿐이죠.”
“참나, 아직도 모르는군.”
대체 뭘 아직도 모른다는 건지.
한길이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자, 정원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베르사유 요리사들은 요리하는 순서가 달라. 우리가 수확한 재료를 먼저 보고 나서 움직여. 하지만 파리의 요리사들은 요리를 먼저 정하고 장을 보잖아?”
“그건…”
“우선순위가 다른 거지. 본인의 기술이 먼저고, 재료는 그다음이야.”
“….”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한길도 메뉴를 구상할 때는 요리부터 정하고 필요한 재료를 골랐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퐁파두르에게 처음 완두콩 수프를 선보일 당시만 해도 완두콩은 제철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구할 수는 있었지만, 남쪽 지방에서 들여온 만큼 신선도는 떨어졌고 향이 약했다.
그래도 한길은 그 완두콩을 썼다.
완두콩 수프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제철 재료가 10점 만점의 품질이라고 가정한다면, 처음부터 7점짜리 재료를 사용한 거다. 만들고 싶은 메뉴가 있었으니 재료의 품질을 타협한 셈이었다.
물론, 제철 재료를 주재료로 정할 때도 있었지만… 부재료까지 일일이 제철인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사유 요리사들은 모든 요리에 오로지 10점짜리 재료만 사용했다. 필요한 재료가 있어도, 10점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지금 시기에 셀러리는 아직 10점짜리 재료가 아니니 사용하지 못할 거다.
‘미션 같은 건가?’
현대로 치면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재료 바구니를 던져주고, 그 안에 들어있는 재료만 요리를 만들라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렇게 요리한 적이 있었나?’
비슷한 경험이 있기는 했다.
오래전, 로마의 주방에서 점심시간마다 아피키우스가 재료를 던져주며 신메뉴를 만들어보라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아피키우스의 재료는 100% 제철 재료가 아니었다. 가장 희귀하고 귀하다는 재료, 머나먼 이국땅에서 건너온 재료도 많았으니까.
생각해 보니, 오로지 제철 재료만 이용해서 요리하는 경험은 없는 것 같았다.
“피에르, 지금 당장 수확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는 뭐가 있죠?”
“왜?”
“저도 기본에 충실한 요리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서요.”
“인제 와서 무슨…”
정원사는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일개 정원사가 퐁파두르의 요리사를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
정원사는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텃밭 이곳저곳을 누비며 재료를 긁어모은 후, 한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지금 가장 맛있는 재료들이지. 맛이 밍밍한 프리뫼르는 전부 제외했어.”
바구니 속 내용물은 보기만 해도 싱싱했다.
각종 샐러드용 잎채소는 생동감이 넘치다 못해 형광처럼 빛나는 듯 했고, 허브는 향수처럼 여기까지 향을 퍼트리고 있었다.
살구는 보기만 해도 침이 절로 나왔고, 하얀 아스파라거스는 지금껏 본 그 어느 것보다 실했다.
재료를 하나하나 살피는 한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전부 최상품이다.
이런 품질의 재료를 보고 설레지 않으면, 요리사라고 불릴 자격도 없었다.
“진짜… 최고네요. 자부심을 느낄 만 해요.”
그런 한길을 보며 정원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보면 완전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한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원사가 솥뚜껑 같은 거대한 손을 한길의 어깨 위에 올렸다.
“너 말이야. 앞으로 술은 절대 마시지 말아라.”
“네?”
“평소에 멀쩡한 인간이,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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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왔는가.”
한길이 갓 수확한 작물을 한 아름 안고 주방으로 들어오자, 무티에르가 바로 다가왔다.
“호오.. 엄청나군.”
무티에르 역시 베르사유의 당일 수확한 재료는 처음 본다. 그리고 그의 반응은 한길과 별다르지 않았다.
“엄청나군. 여기서는 매일 이런 걸 쓰는 건가.”
“그렇다더라고요.”
“케일은 없었나?”
“있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안 갖고 왔지?”
“10점짜리 재료가 아니라서요.”
“10점짜리 재료?”
무티에르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날이 갑자기 따뜻해지는 바람에 케일에서 쓴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 잎만 써야 하는데, 아직은 요리에 사용할 크기로 자라지 않아서 1-2주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답니다.”
“그렇군.”
“오늘은 여기에 있는 이 재료들만 사용해서 요리해봐도 되겠습니까?”
바구니 속에는 정원사가 선별한 10점짜리 재료만 들어 있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이 미션 바구니의 재료만 써서 요리해보고 싶었다.
그 말을 꺼내려는 찰나, 무티에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파리 사람이 다 되어서 이걸 잊고 있었군. 아직 자네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게 하나 있지.”
“그게 뭡니까.”
“전원 요리이네 (délices de campagne). 전원생활 할 때의 요리는, 도시의 요리와는 다르니까.”
무티에르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전원생활을 하는 귀족들은 자신의 땅에서 수확한 재료만 이용해서 요리하지. 시장에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자급자족하는 걸 가장 으뜸으로 여기 거든.”
“왜요?”
“제대로 된 텃밭을 가꾸려면 큰돈이 들어가니, 나름 부의 상징 같은 거지. 전문 정원사도 상시 고용해야 하고, 비싼 품종도 구입해가며 관리해야 하니까.”
“그렇군요.”
“전원 요리는 나도 오랜만이군.”
무티에르는 어린 시절, 귀족의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다고 들었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꽤 괜찮은 텃밭을 가진 귀족의 집이었던 것 같고.
“원하는 재료를 시장에서 마음껏 구해와서 요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자연이 주는 한정된 재료로 최고의 맛을 끌어내는 건 일류 요리사만 할 수 있네.”
무티에르는 소매를 마저 걷어붙이고 묵직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일류 요리사의 요리 방식을 가르쳐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