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5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59화(259/325)
259. 한 편의 드라마
다음 요리가 도착하고 뚜껑이 열리자, 퐁파두르가 간략하게 메뉴 소개를 했다.
“송로버섯을 곁들인 감자 수프입니다.”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번 요리가 앞서 나온 요리들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감자 구슬과 비트 장미는 하나하나가 작품이었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품격이 느껴지는 예술품.
그런데 눈앞의 감자 수프는…
기묘했다.
수프를 담은 그릇은 비교적 평범했다.
손바닥의 절반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크기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런데 그 그릇의 한쪽 가장자리를 쇠꼬챙이가 관통하고 있었다. 꼬챙이로 그릇을 꿰뚫은 기이한 담음새.
그 꼬챙이에는 여러 도형이 꽂혀 있었다.
손톱 크기의 정사각형은 치즈와 버터.
길쭉한 이파리는 차이브 (chive: 유럽의 부추).
알밤 크기의 구체는 감자.
그리고 감자 위에 얹어진 얇은 모자는 송로버섯.
기하학적 도형들의 집합.
그것은 아름답기보다는 이상했다.
마치 다른 별에서 온 물건인 것처럼.
몇몇 사람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꼬챙이를 잡고 살살 돌려보았지만, 고개를 더욱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건 왜 이렇게 만든 건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건지.
수수께끼와도 같은 요리였다.
무엇보다…
“하인들이 실수로 스푼을 내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이러면 어찌 먹으라는 건지…”
이 수프를 먹기 위해 필요한 식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말없이 조용히 미소짓던 퐁파두르가 입을 열었다.
“이건 스푼으로 떠먹는 수프가 아닙니다. 먹는 방법이 조금 특이한데, 제가 한 번 보여드릴 테니 그대로 따라 하시면 되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작은 수프 그릇을 왼쪽 손바닥 위에 사뿐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쇠꼬챙이를 움켜쥐며 천천히 잡아당겼다.
스르륵.
꼬챙이는 접시에 뚫려 있는 좁디좁은 구멍을 쉽사리 통과했지만, 꼬챙이에 꿰어 있던 다른 도형들은 그러지 못했다.
퐁당! 퐁당!
송로버섯을 쓴 감자, 차이브, 버터, 치즈가 순차적으로 수프 안에 빠졌다.
“너무 오래 기다리시면 안 됩니다. 이대로…”
퐁파두르는 접시를 입가에 갖다 대고 그대로 목을 뒤로 젖혔다. 그러자 접시 안의 내용물들이 미끄러지듯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뜨거웠다.
꼬챙이에 꿰어 있던 감자는 정제 버터에서 튀기듯이 익혀낸 감자. 호호 불어먹어야 할 정도로 뜨거웠으니까.
그런데 또 차가웠다.
감자와 함께 흘러들어온 감자 수프는 온기가 전혀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서늘했으니까.
뜨거운 감자와 차가운 수프.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덮쳐와 혓바닥이 찌릿찌릿했다.
감자를 깨물자, 그 안에 갇혀있던 열기가 탈출했다. 보통이라면 입을 벌려서 차가운 공기를 빨아들여 식혀야겠지만, 이 요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감자를 에워싸는 수프가 순식간에 열기를 식혀주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송로버섯의 풍미가 코안으로 세차게 파고들었다. 입속 가득 송로버섯의 숨결이 퍼지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중간중간 버터와 치즈가 각자의 개성을 터트렸으며, 온화한 맛의 감자 수프가 부드럽고 끈적하게 감겨왔다.
이 요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는 그런 요리였으니까.
퐁파두르는 간신히 정신을 붙들어 매고 루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하도 한번 드셔…”
그러나 그녀는 말을 멈춰야 했다.
루이의 목은 이미 뒤로 꺾여 있었으니까.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권할 때까지 기다릴 정도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모두의 고개가 원위치로 돌아오자, 한꺼번에 소리가 터졌다.
“이것 참 짜릿하군요!”
“기발합니다!”
“입안에 폭죽이 터진 것 같습니다! 황홀한 맛들이 팡팡 터지는 게 예술이군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그 누구도 서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목소리가 겹겹이 포개지고 실타래처럼 엉키고 설켰지만, 그것을 가지런하게 풀고 정리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하하, 재밌지 않습니까!”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군요. 이 나이가 되어서 이렇게 설렐 수 있다니!”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입을 여는 게 아니었다. 넘치는 흥분을 차마 가두지 못해 입을 열고 배출할 뿐.
이 감자 수프는 그만큼 자극적이었다.
기이한 비주얼이 시각을 자극했고, 송로버섯의 풍미가 후각을 장악했다. 감자 수프의 크리미함과 치즈, 버터의 향이 미각을 간지럽혔고, 온기와 냉기가 짜릿함을 남겼다.
거기에 하나 더.
재미가 있었다.
손님의 손으로 직접 꼬챙이를 당긴 후에야 활성화되는 맛. 먹는 사람이 완성하는 요리였으니까.
“정말 새로운 시도이지 않습니까!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연극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폭죽에 불을 직접 붙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에브로 백작마저도 들뜬 목소리로 바쁘게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가 퐁파두르가 여는 살롱이라는 사실도, 심지어 국왕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
자발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고 맛의 노예가 된 거다. 에브로 백작뿐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대단하네.’
휘몰아친다는 마르셀의 전략은 적중했다.
단 세 개의 요리로 그는 모두의 머리를 백지화하고 그들을 식탐의 노예로 만들었으니까.
정신없이 떠드는 와중에도, 손님들은 다이닝룸의 문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대화 예절을 차릴 의식은 없지만, 본능을 따를 의식은 있는 거다.
그들은 문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다. ‘빨리 다음을 달라’고.
그 요구에 응답하듯, 다음 요리가 도착했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와 소렐 소스입니다.”
“어?”
이번에도 예상을 깨는 요리였다.
전혀 다른 의미로.
접시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하얀 아스파라거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주위로 연둣빛 소스가 흩뿌려져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담음새.
손님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다양한 각도에서 아스파라거스를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 안에 이미 새로운 선입견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일 리가 없어.’
‘퐁파두르의 요리인데… 절대 평범할 리가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님들은 아스파라거스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입안에 담았다. 그리고,
“허!”
“이게…아스파라거스?”
“이것 참, 또 숨은 보석을 발견했군요!”
이번 요리에는 숨겨진 비밀도, 연출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아스파라거스와 소스만 차렸을 뿐이다.
그런데…
겉모습은 수수한데, 혀에 감지되는 맛은 절로 탄성을 터트리게 했다.
무려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손수 버터 목욕을 시켜준 아스파라거스는, 그 결 하나하나에 풍미를 가득 품고 있었다.
식감은 또 어떻고!
입안에서 스러지듯이 녹아내리며 혓바닥에 스며든다.
화려함은 없다.
조용하고 섬세하지만, 어딘가 기품이 넘치는 우아한 맛이었다.
거기에 상큼한 소렐 소스가 더해지자, 맛이 한결 깔끔해지고 각 재료가 가진 고유의 멋이 더욱 도드라졌다.
전혀 힘을 들이지 않은 요리.
그런데도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그래서 더욱 품격이 느껴졌다.
“정말 기본이 다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마치 그것 같지 않습니까. 감자 구슬과 비트 장미가 예복이라면, 감자 수프는 가면무도회 의상, 그리고 이 아스파라거스는 일상복인 거죠. 정말 빼어난 멋쟁이는 오히려 일상복을 입었을 때 더 도드라지는 법이지요.”
“그것참 적절한 비유군요.”
“역시 퐁파두르 후작입니다. 돌멩이로 보석을 만들다니!”
“그러게요, 원석을 알아보는 눈이야말로 진정한 안목 아니겠습니까!”
“그 원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재가공할 실력도 있어야지요!”
“이 아스파라거스도 돌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붭니까.”
이제는 제법 질서가 돌아왔다.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걸 대화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다. 퐁파두르가 했던 말을 거듭 반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 모습이 마치…
‘앵무새 같네.’
아이러니했다.
평생을 앵무새라고 불려온 이는 다름 아닌 퐁파두르였으니 말이다.
앵무새란, 귀족 태생이 아니면서 귀족의 삶을 사는 이들을 비하하는 단어였다. 부르주아들은 예술의, 문화의, 교양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면서, 무식하게 귀족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귀족들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퐁파두르가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퐁파두르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다음 먹이를 내밀었다.
“다음은 감자 벽돌입니다.”
감자를 네모난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구워낸 요리가 등장했다.
물론, 단순하게 네모나게 모양을 빚어서 구운 요리는 아니었다. 마르셀의 요리인데 아무렴.
“이것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죠. 종잇장 두께로 얇게 썰어낸 감자를 크림과 함께 겹겹이 겹쳐서 오븐에서 구워낸 후, 무게추를 위에 올려놓은 상태로 꾹꾹 눌러 담아서 벽돌 모양으로 굳힌 겁니다. 그걸 다시 팬에서 노릇노릇하게 튀겨내듯이 구운 거죠.”
얇디얇은 감자 수십 장을 층층이 겹쳐서 감자 벽돌로 굳히고. 그걸 다시 튀기듯이 구워냈다.
간략한 설명을 마치자, 사람들은 바로 포크를 들고 감자를 공략했다.
먹는 순간만큼은 모든 대화가 끊기고 다이닝룸이 고요해졌다.
입을 여는 것조차 아깝다. 그랬다가 입안에 있는 맛이 달아나면 어쩌려고.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의지보다, 먹겠다는 의지가 앞선 것이다.
감자 벽돌은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샛노란 색과 짙은 갈색.
크림에 파묻혀 오븐에서 구워낸 감자의 속살은 환하디환한 노란색이었다. 마르지 않는 촉촉함. 은혜로울 정도로 크리미한 감자의 맛이었다.
반면, 짙은 갈색을 띠는 부위는 선명하고 강렬한 맛이었다. 귓가에 소리가 울릴 정도의 크리스피한 바삭함. 그리고 터질 듯한 고소함이 있었다.
“이거, 감자 수프와 감자 구슬을 합한 것 같지 않습니까?”
“에이, 감자 구슬이랑은 다르죠. 그건 단순히 바삭하기만 했는데, 이건 고소하지 않습니까!”
접시가 텅 빈 후에야 사람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이 방금 감지한 맛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다이닝룸의 문이 열리자,
“….”
“….”
“….”
거짓말처럼 침묵이 찾아왔다.
약속이라도 하듯 모든 대화가 일시에 뚝 하고 끊겼다.
“이번에는 지중해풍 샐러드입니다. 지중해 인근에서 많이 먹는 형식이라고 해요.”
샐러드는 조금 독특한 용기에 담겨 있었다.
그릇이 아닌 와인잔에 들어있었으니까.
원뿔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와인잔에는 자잘한 크기로 깍둑썰기를 한 각종 채소가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파슬리, 민트, 양파, 오이, 상추, 래디시, 펜넬, 민트. 상큼한 제철 채소들이 입안에서 통통 뛰었다.
아삭하게 수분을 터트리는 채소도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하게 입천장을 간지럽히는 채소도 있었다. 시트러스 계열의 드레싱이 상큼하면서도 발랄하게 이 모든 맛을 감싸고 있었다.
”하하, 이것도 재밌군요. 수프는 그릇째로 그냥 마시는데, 샐러드는 와인잔 안에 있는 것을 스푼으로 떠먹다니. 순서가 반대 아닙니까.“
”재치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뭔가 앙증맞으면서 귀엽군요. 다음에는 뭐가 나올지 또 궁금합니다.“
손님들의 반응을 듣고 퐁파두르는 새삼 무언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살롱을 운영하면서. 그녀의 요리를 맛본 손님들은 대개 얼빠진 얼굴로 감탄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이렇게 느긋하게, 감상하듯이 즐기는 반응은 뭔가 익숙지 않았다.
‘마르셀도 달라졌구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샌가 마르셀의 요리는 달라져 있었다.
처음 살롱을 열었을 때만 해도, 마르셀은 모든 접시에 힘을 주었다.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는 듯이, 접시마다 화려함을, 자극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데 지금은 심플하게 기술만 선보이는 요리도, 소소하게 웃음을 주는 재치 있는 요리도 있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성숙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완급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전과는 다른 자신감이 느껴졌다.
색채가, 음색이 훨씬 다채로워졌다.
강하게 몰아치는 구간에서는 웅장함을 뽐냈고, 부드러움이 필요한 구간에서는 감미로운 화음을 선보였으며, 중간중간 장난스러운 멜로디도 넣어주었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기만 하던 과거의 마르셀이 아니었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느긋하게. 음률을 갖고 놀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알 수는 없지만, 어느샌가 감정의 폭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고 넓어졌다.
단숨에 사람들을 압도하는 요리.
반전이 있는 요리.
잔잔한 감동이 있는 요리.
스며들 듯이 조금씩 마음을 적시는 요리.
예전에는 화려한 쇼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한 편의 드라마를 엮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이제 마지막 장에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