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6화(26/325)
< 26. 치킨과 찰떡궁합 >
그 후로 일주일.
한정 판매의 효과는 좋았다.
하루에 200개만 판매한다는 희소성 때문인지, 버거 손님들은 더욱 이른 시간부터 몰려왔다. 저녁에 오면 완판될 확률이 높았으니까.
실제로, 치킨버거는 연일 브레이크타임이 되기 전에 완판을 기록했다.
버거가 다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은 손님 중에는, 아쉬움을 삼키며 나가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가게의 다른 메뉴를 시도해 보는 이들도 있었다.
덕분에 수란 샌드위치와 프라이드치킨 판매량이 늘었다. 그리고 차츰, 샌드위치와 치킨만 찾으러 오는 손님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한스키친의 수란 샌드위치와 프라이드치킨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맛이었다. 치킨버거에 가려져서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
여전히 버거 판매량이 압도적이었지만, 나머지 메뉴들도 조금씩 선방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살만하네.’
무엇보다 한길의 입장에서 고마운 건, 여유가 생겼다는 것.
버거는 회전율이 빠른 메뉴다.
빨리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회전율이 빨라서 좋은 건, 그 주문을 소화할 수 있을 때의 얘기다.
한스키친 주방에는 한길 혼자뿐이었다.
안 그래도 쉴 틈 없이 들어오는 주문 때문에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던 참이었다.
공장 컨베이어벨트처럼 정신없이 버거만 만들던 때와 비교하면, 이제는 시간이 넉넉해졌다. 저녁 시간대에는 주방 밖을 나와서 손님을 살펴볼 여유까지 생겼다.
그러면서 수입은 오히려 더 늘었다.
프라이드치킨과 더불어 주류 판매량도 늘고 있었으니까.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브레이크타임이 한가해졌다는 것.
지금까지는 무제한으로 팔리는 버거를 위해 브레이크타임만 되면 타르타르 소스를 만들어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200인분의 소스만 만들면 되니, 할 일이 없어졌다. 쫓기듯이 소스를 만들던 때와 달리, 전체 메뉴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김에 빵을 어떻게 해볼까?’
한길은 주방 한켠에 쌓여 있는 빵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우리사케스의 사우어도우빵.
매일 150개씩 배달되는 빵 때문에 최근 곤란하던 참이었다. 샌드위치 판매량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식전 빵으로 나눠주고, 가끔 단골들 손에도 하나둘 쥐여주고, 퇴근할 때 한길과 슬아도 빵 몇 덩이를 들고 갔지만.
그렇게 처리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150개의 빵이 새로 배달되었다.
빵은 하루만 지나도 딱딱하게 굳어온다.
먹는 데는 아무 지장 없지만, 손님에게 대접할 샌드위치와 식전 빵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하루 정도 지난 굳은 빵이 필요한 요리도 있다.
크루통 (crouton).
샐러드나 수프에 곁들여 나오는 빵 튀김의 일종으로, 조금 굳은 빵을 허브와 올리브유에 버무려서 구워낸 요리다.
크루통은 모든 빵으로 만들 수 있지만, 공기구멍이 많은 빵을 사용할수록 좋다. 식빵처럼 결이 촘촘한 빵은, 토스트나 쿠키처럼 딱딱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한길은 우선 소스 팬에 올리브유를 듬뿍 부어준 후, 잘게 썰어놓은 마늘을 넣었다.
지글지글!
올리브유에 빠진 마늘은 옆에 작은 방울을 터트리며 하얀색에 가까운 밝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갔다.
공기 중에는 구운 마늘 특유의 맛있는 향이 퍼졌다.
이때 중요한 건, 마늘이 너무 빨리 타지 않도록 약한 불에서 익혀줄 것. 그리고 아직 황금색을 유지할 때 꺼내야 한다.
마늘이 갈색으로 변하면, 올리브유에 씁쓸한 맛과 탄 맛이 입혀지기 때문이다.
마늘을 건져낸 후, 불을 끄고 올리브유에 바질, 파슬리 등의 허브를 잘게 썰어 넣었다.
그리고 보올에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둔 빵조각을 넣고, 소금 후추 간을 한 후, 올리브유를 부었다.
연한 베이지색 빵조각들이 어여쁜 노란 코트를 입을 때까지. 기름을 넉넉히 둘러서 충분히 코팅해주었다.
이대로 오븐에 구워주기만 하면 끝이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 딱딱해지기 때문에 190도에 맞춰서 10분간 구워내자, 크루통이 완성되었다.
구워진 크루통은 두 가지 색을 입고 있었다.
모서리와 크러스트가 있던 부분은 토스트와 같은 진한 갈색.
빵의 속살이 있던 부분은 황금색.
손으로 잡으면 단단하되, 조금만 힘을 주면 파삭!하고 바스러지는 게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와, 사장님. 이건 뭐예요?”
“크루통.”
“한번 먹어봐도 돼요?”
슬아에게 별도로 크루통 몇 개를 작은 접시에 담아 주자, 하나를 먹은 후 연달아 주워 먹기 시작했다.
“와, 사장님. 이거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요? 바삭한데 너무 바삭하지 않는 마늘빵같아요! 과자 같은데 불량식품이 아니라 건강한 과자 같기도 하고.”
“앞으로 저녁 타임에는 한 그릇씩 테이블마다 놔둬.”
“네.”
크루통은 만드는데 손이 그리 많이 가지 않고, 밀봉하면 2주까지도 보관이 가능하다.
게다가 샐러드에 넣어주면 씹히는 식감과 잘 구워진 빵의 든든함까지 더해줘서 더 맛이 좋을 거다.
남는 식재료를 활용하기에 딱 좋고.
‘빵은 이 정도면 됐고….’
남은 빵을 전부 크루통으로 만들었는데도 시간이 남자, 한길의 관심이 또 다른 메뉴로 향했다.
프라이드치킨.
밤에 치킨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자주 듣는 소리가 있었다.
“치킨은 프라이드치킨 하나밖에 없어요?”
두 명씩 오는 손님들은 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세 명에서 다섯 명 단위의 단체 손님들은 꼭 하는 말이었다.
똑같은 치킨 메뉴를 두 개 시키는 걸 꺼리는 분위기였다. 이왕이면 다양하게 나눠 먹고 싶으니까.
그래서 치킨 메뉴를 하나 추가하고 싶었다.
‘원래라면 양념치킨을 하고 싶지만……’
한스키친의 치킨은 병아리콩 가루를 반죽으로 사용해서 그 바삭함이 돋보이는 게 장점이었다. 그런데 찐득한 양념 소스를 입히면 그 식감이 가려진다. 튀김옷이 눅눅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바삭함은 살리고 매콤한 향만 추가하기로 했다.
간장에 마늘과 생강을 넣은 양념장에 치킨을 재워두고, 반죽에는 고춧가루와 카레 가루, 레몬즙을 넣었다.
카레 가루는 카레 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만, 약간의 톡 쏘는 맛만 날 정도로만 사용했다.
불그스름한 반죽에 치킨을 퐁당 빠트리고 튀겨내자,
차그르르르르르!
하며 익혀진 치킨은 붉은 갑옷을 두르고 나왔다. 겉보기에는 프라이드치킨과 튀김옷에 별 차이 없어 보였다.
색깔이 빨간 걸 제외하면.
바사사삭!
손으로 치킨을 뜯어 반으로 갈라보자, 튀김옷의 바삭함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촉촉한 육즙이 흐르는 속살도 동일했고.
“….!”
맛을 본 한길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오르자, 옆에서 관찰하던 슬아도 다가오며 혓바닥으로 입술을 적시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도….”
“안돼.”
“왜요?”
“브레이크타임 끝났잖아?”
#
“생각보다도 가게가 작네.”
“이건 완전 골목식당인데?”
“그러게. 사장님 마스크는 나쁘지 않은데 이래서는…..”
테이블에 자리 잡고 속삭이듯 수군거리는 네 명의 손님.
pbs 방송국의 제작진이었다.
회식 겸 염탐 겸 아이디어 회의 차원에서 한스키친을 찾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의외네요. 부장님이 케이를 오케이할 줄이야.”
이들끼리 정해둔 암호.
케이는 물론 카키를 뜻했다.
“저렇게 고생 하나 안 한 젊은 애가 식당에서 뻘뻘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케이는 단칸방 생활만 10년 넘게 해온 거로 아는데….”
“뭐, 어쨌든 의외성이 있어서 그림은 좋으니까.”
이들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네 명의 연예인으로 구성된 팀이 두 개.
각 팀이 메뉴 구상부터 요리, 서빙까지 하며 식당을 임시 운영하는 기획이었다.
실제 손님에게 제공할 음식이기에 각 팀에 요리 자문을 해줄 사람도 필요했다.
그런데…..
“케이도 별나지? 꼭 저 사람이 아니면 안 하겠다고 하고.”
“대체 왜?”
“걔는 솔직히 방송이나 광고로 돈을 버는 게 아니잖아요? 주수입이 음원 판매랑 공연이니까….. 그래서 방송 출연 귀찮아해요. 자기가 재밌겠다 싶은 것만 골라서 한다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당 주인은 좀…..”
메인작가인 이채은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원래 기획 상에는 요리 자문을 전문 셰프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최근 들어서 식당 관계자들이 방송 출연하는데 예민한 분위기였으니까.
‘맛집 프로그램에 나오는 집 갔는데 더럽게 맛없더라. 요즘 돈 내면 개나 소나 방송 나간다던데 딱 그런 케이스인 듯’ 하는 글들이 시청자 게시판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경력이 오래된 셰프는 전문가로 초청하는 것이니 안전했지만, 공중파 방송에서 이런 골목식당의 주인이 전문가로 나오면 분명 딴지가 걸린다.
“케이를 설득해봐야지….. 어째 쉬운 일이 하나도 없냐. 그동안 셰프 목록도 뽑아놓자.”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오며 속이 막혀왔다. 답답할 때는?
“사장님, 여기 생맥 네 개만 갖다주세요!”
잠시 후, 투명한 유리잔에 하얀 거품을 얹은 보리 빛 맥주가 나왔다.
유리잔 표면에 송골 송골 방울이 맺혀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일단 건배부터 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파이팅!”
서둘러 건배를 하고 바로 맥주를 들이켜 마시니, 차갑게 목을 타고 흐르는 탄산이 답답한 속을 씻겨주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빈속에 술을 마시니 속을 긁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무의식중에 그릇에 담긴 빵조각을 주워서 입안에 넣자,
파사삭!
비스킷처럼 생긴 빵 튀김이 이빨이 닿자마자 잘게 부스러졌다.
마늘 빵 같은 맛이었지만, 딱딱하게 메마른 빵이 아니라, 먹자마자 입안에서 흩어지는 식감이었다.
“와, 이거 엄청 맛있네!”
연달아 빵 튀김 세 조각을 넣어 씹으니, 입안에 까끌까끌한 빵 부스러기가 돌아다니며 다시 목이 막혀왔다.
그걸 다시 한 번 맥주로 씻어내는 맛이 일품이었다.
‘배가 고프네….’
입안에 마늘향이 감돌자, 갑자기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왔다. 그 타이밍에,
킁킁.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드는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치킨에서만 나는 그 특유의 담백하면서 기름진 향이.
“지중해 프라이드치킨 하나, 매콤 치킨 하나, 지중해 샐러드 하나 나왔습니다.”
갓 튀겨낸 치킨은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튀김옷이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모양새가 특이하기도 했고.
“날개는 내꺼!”
“나는 다리!”
“저는 가슴살!”
“이 팀 정말 잘 짠 것 같지 않아? 어떻게 좋아하는 부위가 다 다르냐.”
그 말과 함께 채은은 프라이드치킨의 날개 부위를 집게로 집어서 개인 접시에 옮겼다.
그리고 적당히 입으로 불어 식힌 후, 두 손으로 치킨을 들어 올렸다.
포크와 나이프도 있었지만, 치킨은 맨손으로 뜯어먹는 게 제맛. 뼈가 많아 포크 나이프로 분해하기 까다로운 날개 부위는 더더욱 그렇다.
날개봉의 양 끝을 손에 고정하고 바로 뜯어내자,
바사삭!
확성기라도 쓴 것처럼, 부서지는 튀김옷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바삭한 튀김옷 아래에는 허브향이 솔솔 나는 촉촉한 치킨이 있었다.
채은이 날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닭고기 특유의 퍽퍽함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이곳의 닭고기는 촉촉하다 못해 물 폭탄을 맞은 것처럼 탱탱하게, 수분이 가득 차 있었다.
담백한 닭고기 육즙이 아낌없이 나와서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위에 떠다니는 바삭한 튀김옷. 거기에 쫀득쫀득한 날개살까지! 완벽한 궁합이었다.
허겁지겁 날개를 씹어 삼키고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니, 다시 입가심이 되었다.
다음은 매콤 치킨.
붉은 튀김옷을 두르고 있는 빨간 치킨은, 간장 양념 특유의, 입에 착 달라붙는 짭조름함이 살아 있었다. 여기에 무슨 후추라도 넣은 것처럼 톡 쏘는 향이 있었다.
불타는 매운맛은 아니었지만, 다 먹고 난 후에 입술이 살짝 얼얼해졌다.
맥주를 또 한입 들이키자, 얼얼한 입술에 얼음찜질을 해주는 것 같았다.
“크으! 역시 치킨은 치맥이지!”
그렇게 몇 번을 프맥-매맥 조합을 반복하다가 이번에는 샐러드에 눈이 갔다.
상추나 로메인 상추만 쓰는 샐러드와 달리, 조금 짙푸르고 모양이 다른 채소들이 가득 담긴 샐러드……
‘아, 루콜라!’
특유의 향을 마구 뽐내는 허브들이 향긋한 올리브 드레싱에 버무려져 있었다.
방금 정원에서 뜯어온 듯 한 신선함.
묵직한 올리브 향.
부드럽게 이 모든 맛을 감싸는 올리브유까지.
샐러드는 치킨과도 찰떡궁합이었다.
샐러드를 먹고 나면 치킨의 육향이 그리워졌고, 치킨을 먹고 나면 샐러드의 산뜻함이 그리워졌다.
마치 상추쌈을 먹어야 고기가 무한대로 들어가듯이.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이끄는 그런 맛이었다.
새삼 인류가 잡식동물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이 두 가지 맛을 다 즐길 수 있으니까.
‘이게 얼마만이지?’
한동안 정신없이 먹기만 하던 채은은, 새삼 놀라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빠져들게 하는 요리.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15년 동안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을 겪어 왔다.
일반 맛집 프로부터, 셰프들과 함께하는 쿡방, 그리고 요리 다큐까지.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요리를 먹어왔지만, 이렇게 흡입력을 가진 요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보면 고작 치킨이랑 샐러드인데…..’
이제야 정신을 차린 채은이 고개를 들어보니, 팀원들 모두 허겁지겁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참 동안 대화가 뚝 끊어져 있었다. 대화가 끊어졌다는 사실도 이제야 인지했지만.
채은의 앞에 앉은 팀장은, 게걸스럽게 후릅후릅하고 닭 다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뒤늦게 채은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 채자, 팀장은 민망한지 닭다리를 내려놓았다. 아쉬운 눈빛을 하며.
“크흠, 그래서…. 뭐, 셰프 더 섭외하자고 말을 하고 있었나?”
간신히 마지막 대화지점을 기억해내서 입을 열었지만, 팀장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시선이 이상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눈빛이었다.
< 26. 치킨과 찰떡궁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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