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6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63화(263/325)
263. 단어는 외우면 그만
[체험 스테이지를…] [스테이지의 세부…] [스테이지 완료로…]한길은 우후죽순으로 떠오르는 창을 읽지도 않고 모두 닫아버렸다. 그리고 서둘러 시스템의 [스테이지/퀘스트] 탭을 확인했다.
+
Stage 1 [20 AD]
– [로마 (완료)] ★★★★★
– 재진입까지 [80%]
Stage 2 [1536 AD]
– [영국 (완료)] ★★★★★
– [이탈리아 (완료)] ★★★★★
– 재진입까지 [89%]
Stage 3 [???]
– [???] ☆☆☆☆☆
– 진입까지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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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탭은 그동안 한길이 진입한 모든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와 재진입에 필요한 대기 시간을 보여준다. 하지만…
‘없네.’
프랑스는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혹시 추가 페이지가 있는 건 아닌지, 로딩에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닌지 싶어서 한참을 기다려보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프랑스는 체험 스테이지.
재진입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예상은 했었다.
그래서 퐁파두르나 무티에르, 니콜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마르셀의 몸을 이탈리아로 보낸 것이었고.
하지만.
못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인지하는 것과 확인사살을 하는 건 달랐다.
‘어쩔 수 없지.’
한길은 속으로 여러 번 되뇌며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한길은 우정을 쌓기 위해 스테이지에 진입한 게 아니다. 스테이지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들이었고, 다시 못 만나는 게 당연하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입안에서 쓴맛이 감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허공을 바라보던 한길은, 한참 후에야 시야의 하단에서 깜빡이는 창들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은 [스테이지/퀘스트] 탭부터 다시 열어보았다. 아까 지나가면서 조금 신경 쓰이는 수치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두 번째가 더 빠르지?’
분명 로마 스테이지를 먼저 클리어했는데, 두 번째 스테이지인 이탈리아 쪽의 쿨타임이 더 많이 채워져 있었다.
먼저 클리어했다고 해서 먼저 재진입하는 건 아닌 모양. 이런 건 시스템이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왠지 느긋하게 걸어가는 아피키우스를 스카피가 밀쳐서 넘어트리고, ‘실례’하며 앞지르는 느낌이 들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길은 서둘러 탭을 닫았다.
그다음으로 확인할 것은…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으로 ‘이한길’ 플레이어의 분석에 들어갑니다.] [분석 중 40%… 45%… 50%…]스테이지 완료 시에 실시하는 중간 평가다.
‘어떻게 나오려나?’
한길은 마른침을 삼키며 결과를 기다렸다.
이번 스테이지를 겪으면서, 자신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것은 체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했다.
과연 시스템의 객관적인 평가는 어떨지…
[플레이어 ‘이한길’의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름: 이한길
미각: 11 [+1][+1]
기술: 10 [+2][+1] ↑
창의력: 8 [+2][+1][+1]↑
요리 경험치: 10 [+2][+2][+1]↑
세계 랭킹: 9,098 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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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레벨이 올랐습니다] [장인(craftsman) → 아티스트(artist)] [‘창의력’ 레벨이 올랐습니다] [장인(craftsman) → 아티스트(artist)] [‘요리 경험치’ 레벨이 올랐습니다] [장인(craftsman) → 아티스트(artist)]이 레벨업 창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두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 미각의 레벨이 올랐다는 안내가 떴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각뿐 아니라 다른 항목들도 레벨이 올라 있었다. ‘장인’에서 ‘아티스트’로.
이제는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티에르는 장인, 스카피는 아티스트다.
무티에르는 몇십 년을 오로지 요리에만 전념했고, 그로 인해 그 분야의 최고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어떤 붓을, 어떤 물감을 가져다주어도 명화를 그려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스터였다.
요리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요리사로서의 명예를 목숨보다 중히 여겼으며, 그 결과 ‘파리 제일의 요리사’라는 타이틀도 얻을 수 있었다.
한길은 그런 무티에르를 존경했지만…
무티에르는 스카피가 될 수 없었다.
스카피는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였으니까.
스카피는 요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었다. 그의 생각과 사상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몇백 년 동안 수많은 요리사에게 영향을 미쳤다. 인성과는 별개로, 스카피는 요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다.
모든 요리사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
그게 아티스트였다.
그리고 시스템은 모든 항목에서 한길을 아티스트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후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제 갓 레벨업 했으니 아직 병아리지만, 적어도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랐다는 말이 되니까.
‘이것도 다 마스터 덕분이겠지.’
고작 반년 만에 한길에게 필요한 기본기를 알려주었으니까. 덕분에 이전에는 직관에만 의존했다면, 이제는 체계적으로 요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길은 속으로 무티에르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 후, 다음 창을 확인해 보았다.
[스테이지의 세부 평가 결과가 나왔습니다.]+
상세 내역:
– 희대의 미식가(퐁파두르, 볼테르, 루이 15세)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 당신의 요리가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습니다.
– 당신의 요리가 새로운 산업을 창조했습니다.
– 프랑스 조리 기술을 마스터했습니다.
– 유러피안 파인다이닝의 기본을 터득했습니다.
– 제철 요리의 진정한 의미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 안정적으로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
시스템이 퐁파두르를 희대의 미식가로 부른 것은 의외였지만, 동시에 납득이 가기도 했다. 요리에 있어서 그녀의 안목은 일반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으니 말이다.
+
총점: ★★★★★
총평: ‘이한길’은 체험 스테이지를 최고 점수로 완료했습니다. 요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 요리를 만들었으며, 주방을 벗어나 사회의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
시스템의 총평 역시 흥미로웠다.
분명 과거에는 자신만의 색을 ’찾지 못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보여주지 않았다’고 평하고 있었다.
‘꽤 예리하네.’
한길은 이미 자신의 색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어떤 요리를 만들고 싶은지도.
하지만 아직 그것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건 남들을 위해 만드는 요리가 아니니까.
‘이제 남은 건 보상인가?’
어느 순간부터 보상은 큰 의미가 없었다. 스테이지 내에서 얻는 경험이야말로 가장 값진 보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준다는데 굳이 안 받을 이유도 없다.
한길이 [보상] 탭을 열자, 상단에 이번 퀘스트에서 새로이 얻은 보상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
▶ [NEW!] 언어 구사권 (1장):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습니다.
▶ [NEW!] 정보 열람권 (5장)
미공개 정보를 추가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 [NEW!] 스테이지 체험권 (1장):
퀘스트 (1)회로 구성된 스테이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 [NEW!] 스테이지 지정 체험권 (1장):
체험 스테이지의 지역(도시)과 시대(연도)를 지정하고 진입할 수 있습니다.
+
한길은 프랑스어 언어 구사권을 먼저 적용한 후, 나머지 보상 목록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정보 열람권은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
이전에 딱 한 번, 실피움의 재배법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사용했지만… 아직은 크게 활용하는 단계가 아니었다.
스테이지 체험권은 유용했지만, 이제 겨우 현대로 돌아왔는데 당장 쓸 생각은 들지 않았고.
하지만…
마지막 항목은 달랐다.
+
▶ [NEW!] 스테이지 지정 체험권 (1장):
체험 스테이지의 지역(도시)과 시대(연도)를 지정하고 진입할 수 있습니다.
+
일반적인 체험권은 시스템이 임의로 시대와 장소를 정해준다. 하지만 이 체험권으로는 한길이 직접 지역과 시대를 지정할 수 있다. 요컨대, 1746년 파리로 진입한다고 한다면…
한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같은 곳으로 가는 거겠지?’
아마도 그럴 거다.
아니, 절대 그럴 거다.
근거는 없지만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제야 한길은 미소를 지으며 반투명 창을 모두 닫았다.
#
창밖에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한길과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 두 명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스테이지에 처음 진입한 날짜 그대로였다. 한길에게는 반년이 흘렀지만, 이곳의 시간이 멈춰 있었으니까.
한길은 침대에 놓인 두꺼운 책을 쳐다봤다.
<프랑스 요리 레파토리>라는 제목의 책으로, 한길의 룸메이트가 빌려주었던 프랑스 요리 백과사전이었다.
‘조금 달라 보이려나?’
한길은 호기심에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후루룩 넘겨보았다. 영문으로 된 책이라 프랑스어 패치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거 재밌네?’
예전부터 알던 단어들의 뜻이 전혀 다르게 와닿았다.
예를 들면 ‘미장플라스 (mise en place).’
이는 주방에서 사전에 준비해둔 재료들, 즉 밑 작업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의미가 다르게 이해되었다. ‘mise’는 ‘놓다.’ ‘en place’는 ‘자리에.’ 즉, 자리에 미리 가져다 놓으라는 의미였다.
“뭐야, 이것도 이런 의미였어?”
‘소테(sauté)’라는 단어를 본 순간, 한길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 단어는 니콜라와 함께했던 댄스 레슨에서도 나온 용어였기 때문이다.
제자리에서 살짝 뛰었다가 착지하는 동작을 ‘소테’라고 불렀다. ‘소테’는 ‘점프하다’의 뜻이었고.
지금까지는 ‘소테’를 ‘살짝 볶는다’로 알고 있었는데, 미묘하게 달랐다. 손잡이를 잡고 팬을 흔들면서 볶아야 한다. 팬 안에 담긴 재료들이 ‘소테’를 하도록.
그 외에도 흥미로운 단어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카나페(canapé)는 ‘소파’라는 의미였다. 빵이나 비스킷 등을 소파처럼 사용하고, 그 위에 재료를 얹으라는 뜻이었다.
데미글라스(demi-glace) 소스의 ‘데미’는 ‘절반’이라는 뜻이다. ‘에스파놀 소스‘와 육수를 1:1 비율로 절반씩 섞은 후, 또다시 그 소스가 절반이 될 때까지 졸인다.
그 외에도 조금 신기한 점이 있었다.
’육수가 19개 밖에 없네? 소스는 121개?‘
무티에르의 주방에서 사용하는 기본 퐁은 마흔 종류가 넘었다. 소스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웠고. 그에 비하면 상당히 단출해 보였다.
한길은 레시피를 하나하나, 자세히 읽어내렸다. 개중에는 익숙한 것도 있는가 하면,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었다.
당연하다.
한길이 다녀온 곳은 현대 프랑스가 아니라 18세기 프랑스니까. 275년이 흐르는 사이에 요리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한길이 모르는 내용임에도…
이해가 되었다.
예를 들면 소스.
백과사전에 의하면, 프랑스에는 다섯 종류의 기본 소스가 있고 이를 ’모체 소스(mother sauce)‘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체 소스에 다른 재료를 넣어주면, 새로운 소스가 탄생한다.
어떻게 보면 수학 공식과도 같았다.
모체 소스 베샤멜 x 땀을 뺀 양파 = 수비즈 소스 (Soubise sauce).
모체 소스 홀랜다이즈 x 졸인 오렌즈 주스 = 말테이즈 소스 (Maltaise sauce).
모체 소스 베어네이즈 x 데미글라스 = 포요트 소스 (Foyot sauce).
무티에르의 주방에는 모체 소스라는 개념이 없었다. 백과사전에 수록된 소스 대부분은 낯선 이름이었고.
그런데도…
한길은 모든 소스의 조리법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소스와 소스를 혼합하고, 마치 레고처럼 다양한 퐁과 소스를 조립하는 조리법. 이는 무티에르의 주방에서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각 소스의 이름은 모른다.
그 안에 들어가는 상세한 재료도 모르고.
하지만…
’문법을 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언어로 치면, 단어는 부족하지만, 기본적인 문법과 독해력을 갖추게 된 셈이었다.
단어는 외우면 그만이다.
어차피 암기에는 자신도 있었고.
한길은 생각이 난 김에 신이 나서 공책을 펼치고, 그 안에 암기해야 할 사항들을 열심히 필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벌써 일어났냐, 행크?”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들자. 창백한 금발의 남자가 하품하고 있었다. 한길의 룸메이트이자, 이 책을 선물했던 크리스토프였다.
“뭐야, 밤새 공부한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초반부터 그렇게 무리하지 마. 어차피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크리스토프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한길이 열심히 필사하고 있던 공책 쪽으로.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동정심과 곤란함이 반반 섞인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레드제피가 그러는데, 하비에르는 잔소리도 심하고 엄격하지만 그만큼 배우는 건 많다더라. 어차피 배우려고 온 거잖아?”
순간적으로 하비에르가 누구냐고 물어볼 뻔했지만, 뒤늦게 생각이 났다.
페르난도의 오른팔이자 크리에이티브 파트의 파트장. 그리고 한길에게 기본기가 없다고 했던 인물.
’기본을 다져야 창의도 할 수 있다고 했던가?‘
분명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기본이 있어야 말이 통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크리스토프는 그 침묵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가 안타까운 눈빛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뭐, 어쨌든. 칭찬받으러 온 게 아니라 배우러 온 거니까… 너무 그렇게 기죽지 말라고.”
“괜찮아, 멀쩡하니까. 그보다, 이제 슬슬 출근 준비해야지?”
“벌써? 아직 2시간은 남은 것 같은데?”
“미리 가서 나쁠 것 없지.”
오늘은 일찍 출근하고 싶었다.
이렇게 출근이 기대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