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6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65화(265/325)
265. 존재감이 달라
“왔나?”
“오이도.”
한길이 주방에 도착하자, 하비에르가 차가운 얼굴로 한길을 맞이했다. 눈빛만 봐도 한길을 마뜩잖게 여기는 게 느껴졌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시험관은 엄격할수록 좋다.
그래야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으니까.
“워크인에서 레몬을 가져와 껍질만 시포나드(chiffonade: 길쭉하게 썰어내는 컷)하도록.”
“오이도!”
“양파와 당근도 브뤼누아즈(brunoise: 작은 주사위 모양의 컷)로 다듬고.”
“오이도!”
한길에게 주어진 일은 밑 작업 혹은 잡일. 조리 업무는 없었다.
‘당연한 건가.’
주방은 27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말단 직원들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주방의 흐름부터 익히고, 실력을 인정받은 후에야 한 단계씩 올라간다.
그리고 이 주방에서는 한길이 말단이었다.
크리에이티브 파트에 소속된 실습생들은 전부 세계적인 명성의 레스토랑 출신. 모두 한길보다 서양식 파인 다이닝 경험이 많았으니까.
적어도, 어제까지는 말이다.
“엔다이브를 씻어오도록.”
“오이도!”
“파피요트(papillote: 종이 호일)가 떨어졌군. 더 가져오도록.”
“오이도!”
한길은 명령이 주어질 때마다 활기차게 대답하며 움직였다.
언짢은 표정은 짓지 않았다.
실제로도 불만은 느끼지 못했으니까.
‘배달이 아닌 게 어디냐.’
파리에서는 밑바닥 시절, 30인분의 수프가 담긴 거대한 냄비를 짊어지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파리 골목길을 누벼야 했다.
그에 비하면 복도 끝에 있는 워크인 냉장고를 왕복하는 것쯤이야. 감사하다고 여겨질 지경이었다.
물론, 한길은 잡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회는 곧 올 테니까.
“새우를 포칭(poaching)할 버터를 가져오도록.”
하비에르의 다음 지시에 한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하비에르는 덫을 설치하고 있었다. 각종 조리 용어를 섞어가며 지시를 내리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이런 기본도 모르냐’며 주의를 주려는 속셈이 빤히 보였다.
하지만 실수는 나오지 않았고, 하비에르는 난이도를 높이기로 한 거다. 말하자면, 초급 시험은 통과했고 중급으로 넘어간 셈이다.
이번 문제는 포칭에 사용할 버터를 가져올 것.
포칭(poaching)은 재료를 데치듯이 삶는 기술. 하지만 버터는 열기에 노출되면 지방과 유고형분으로 분리된다. 포칭을 하려면, 특수한 버터를 사용해야 한다.
“정제 버터를 갖고 올까요? 아니면 뵈르 몽테(beurre monté)를 만들까요?”
한길의 질문에 하비에르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 뵈르 몽테를 만들도록.”
“오이도!”
한길은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움직였다.
작은 소스 팬 안에 물을 네 스푼 정도 넣고 불을 최대한 높였다. 물이 끓어오르면서 탄산수처럼 자글자글한 거품이 생겼을 때 불을 낮추고. 잘게 썰어놓은 버터를 한 덩어리씩 넣으며 거품기로 휘저어 주었다.
버터가 녹으면서 멀건 수프 같은 연노란색 액체가 되었다. 그 액체의 농도와 유화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버터를 추가하자, 로션과도 같은 윤기 넘치는 버터 액체가 완성되었다.
“다 됐습니다. 크리스토프에게 갖다줄까요?”
하비에르가 잠시 흠칫하는 게 보였다.
담당자에게 필요한 재료를 전달하겠다는 말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놀란 눈치였다.
한길이 버터를 전달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하비에르는 또 다른 실습생인 앤서니 옆에 서 있었다. 앤서니는 고령토를 이용한 감자 요리 담당이다.
“너무 식욕을 떨어트리는 색이군. 천연 색소를 이용해서 더 짙게 만들어주는 게 낫겠어.”
“오이도.”
“그것보다 문제인 건 질감인데… 이번에는 너무 물을 많이 섞은 것 같군. 너무 질펀하고 덩어리도 많이 져서 엉성해 보여.”
아무래도 고령토를 처음 사용하는 모양. 생소한 재료이다 보니, 여러 실험을 하며 적합한 조리법을 찾아내는 중이었다.
하비에르는 고령토에 몰두하느라 일순 한길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한길이 다가가자, 짜증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지?”
“오징어 먹물 가루입니다. 필요하시다고 들어서요.”
하비에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후, 등을 돌려 앤서니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음 지시는 내리지 않은 상태로.
하지만 한길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건 줄곧 기다려온 기회니까.
한길은 바로 라엘라 쪽으로 다가갔다.
“도와줄까?”
“아씨, 깜짝이야! 뭐야, 언제 온 거야?”
“올리브유 캐비어 필요하지? 만들어줄까?”
“뭐?”
“구체화 기법은 다 같이 배웠잖아?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닌데, 내가 대신해줄까 해서. 왜, 필요 없어?”
“아니, 필요하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
한길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들렸으니까.”
조리 업무를 맡은 실습생들은 자신의 요리에만 집중하기 바빴다. 반면, 단순 밑 작업을 하는 한길은 다른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필 여유가 있었다.
누가 어떤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지, 각 요리에 어떤 구성품들이 들어가는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말단 업무를 맡기는 건, 이런 흐름을 파악하기 위함이니까.
한길은 서둘러 구체화 기법으로 올리브유 캐비어를 만들어 라엘라에게 건네준 후, 미리 삶아둔 호두를 들고 가서 클레어라는 이름의 실습생에게 전달했다.
“뭐야?”
“삶은 호두, 필요한 거 아니었어?”
“어? 어,… ”
“바빠 보이는데, 헤이즐넛 크림은 내가 만들어줄까?”
클레어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걸 한길에게 맡겨도 되는 걸까, 망설이는 모습. 그녀는 하비에르 쪽을 힐끔거렸지만, 하비에르는 고령토에 빠져 있어 그녀를 상대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믹서기에 구운 헤이즐넛, 헤이즐넛 오일, 가루 설탕을 조금 넣어서 갈아볼까 하는데. 왜, 다른 방법으로 만들려고 했어?”
“그건 아니고…”
“네 옆에서 만들게. 분량 맞출 때는 물어볼 테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그래? 고마워…”
결국, 그녀는 수락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길은 보조 업무를 자처했고, 옆에서 모든 과정을 일일이 확인받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실습생들은, 한길이 실수 없이 완벽하게 손발이 되어주자 조금씩 한길을 의존하기 시작했다.
“행크, 이거 맛 한번 봐줄래? 어때?”
“고소함이 조금 과해서 쓴맛이 올라오는 것 같은데?”
“역시 그런가…”
“크림을 조금 더 넣어보는 건 어떨까?”
“행크, 다 끝났으면 이쪽도 잠깐 와 줄래?”
한길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실습생들의 보조 역할을 해주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 밑 작업이 아니라 조금 더 메뉴에 관여한다는 점. 심지어 상당히 난해한 조리 업무까지 도와주고 있었다.
“행크.”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하비에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주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길이 만든 각종 크림과 소스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한 소리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할 말은 없을 거다.
‘이런 거였나?’
조금 뜬금없지만, 언젠가 퐁파두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문을 통과하는 방법에 대한 얘기였나.
그녀는 한길이 무대뽀 성향이라고 했었다. 경비병이 지키든 말든 무조건 돌진하는 성향이라고. 그에 반해, 퐁파두르는 경비병을 미리 제거하고 이동하는 타입이라고 했었나.
‘옮은 건가?’
하도 오래 지켜보다 보니, 아무래도 그녀의 성향이 조금은 옮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예전의 한길이었다면 정면승부를 걸었을 거다. 하비에르가 등을 돌리는 사이에 멋대로 다음 요리를 만들고, 맛을 보게 하며 강제로 인정을 받았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한길은 어디까지나 보조라는 신분 내에서 움직였으니까.
앞으로 저녁 7시까지, 3개의 요리를 더 만들어야 한다. 다른 실습생들은 모두 작업 중이고, 한길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밑 작업을 모두 마쳤다. 심지어 조리 업무도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고.
바쁜 와중 가장 한가한 인력에게, 그것도 조리 실력을 증명한 인력에게, 어떤 업무를 시킬 텐가.
한길은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뭘 할까요?”
“… 토끼 그레이비를 만들 수 있나.”
사전에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자, 문이 알아서 열렸다. 한길은 절로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분명…
이때 그녀는…
한길은 퐁파두르의 미소를 떠올리며 최대한 공손하게 웃었다.
”오이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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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는 동양인 실습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가 딱히 잘못한 일도 없었다.
다만, 저런 실습생들이 상징하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
‘저런 놈들 때문에 페르난도가 욕먹는 거지.’
하비에르는 평생을 페르난도 밑에서 일해왔다. 19살에 그의 주방에 처음 들어온 이래, 27년을 함께 했다.
페르난도가 전설로 진화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페르난도의 업적이 된 레스토랑의 주요 기둥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하비에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단어가 있었다.
분자 요리.
미디어와 학자들이 제멋대로 페르난도의 요리를 그렇게 규정했고, 그 단어를 사용했다.
페르난도 본인은 그 표현을 지극히 싫어했지만,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페르난도는 ‘분자 요리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페르난도는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했고, 그 조리법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혼자 독점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요리의 발전을 위해 개발한 기술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전 세계 모든 레스토랑에서 거품, 구슬, 젤리화된 요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페르난도의 조리법을 사용하는 건 상관없다. 그렇게 하라고 공개한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페르난도의 요리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기본도 없는 인간들이 겉핥기식으로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기본도 없는 요리사들은, 독특한 재료로 젤리 스파게티를 만들고, 특이한 재료로 거품을 만들어 얹으며 ‘이게 요즘 유행하는 분자요리’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기술을 뽐내기 위한 난해한 요리.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모조품.
그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실망했고, ‘분자 요리’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허세가 가득하고 가식적인 요리.
겉멋만 들고 막상 맛은 없는 요리.
특이함을 위해 맛을 희생한 요리라고.
그리고 이 모든 비난의 화살은 ‘분자 요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페르난도에게로 향했다.
단 한 번도 페르난도의 요리를 맛본 적 없는 이들이, 페르난도의 요리를 멋대로 ‘분자 요리’라고 규정하고, 남들이 만든 말도 안 되는 ‘분자 요리’를 토대로 페르난도를 헐뜯었다.
페르난도 본인은 이 일을 애써 웃어넘겼다.
유명세를 치르는 게 세상의 이치라며.
하지만 하비에르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하비에르에게 이상한 집착이 생긴 것은.
기본기도 없는 사람들이, 감히 페르난도의 요리를 모방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앞에서는 그 꼴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 파트에 들어오는 실습생들은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뽑았다. 여러 주방을 겪고, 기본이 탄탄한 실습생들로만 구성했다. 그런데…
‘망할 놈의 파코.’
올해는 파코의 변덕으로 미운 오리 새끼 한 마리가 들어오게 된 거다.
크리에이티브 파트는 페르난도의 창의 요리가 탄생하는 곳.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그런 곳에…
기본도 모르는 실습생이 들어오다니!
그래서 제대로 일깨워주고 싶었다.
페르난도의 요리는 생각 없이 이것저것 조합해서 만드는 낙서가 아니라는 것을. 기본을 지킨 상태에서, 여러 생각과 구상을 거쳐 가며 만든 예술품이라는 것을.
그럴 생각이었는데…
‘뭐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문제의 실습생은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지시를 내리면 잠시 멈춰서서 그게 뭔지 고민했고, 몰래 핸드폰을 훔쳐보며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실수가 단 하나도 없었다.
“정제 버터를 가져올까요, 뵈르 몽테를 만들까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저 기묘했다.
심지어 잠시 등을 돌린 사이, 건방진 실습생은 허락도 하지 않은 조리 업무까지 하고 있었다.
한마디 하려 했지만…
모든 스테이션에 완벽하게 세팅된 미즈앙 플라스를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조리한 소스와 크림은 완벽했다.
“다음은 뭘 만들까요?”
저 눈빛은 하비에르를 압박하고 있었다.
빨리 자신에게 요리를 시키라고.
“… 토끼 그레이비를 만들 수 있나.”
“오이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본기 없는 실습생들은, 대개 이런 지시를 내리면 레시피부터 물었다. 그러면 하비에르는 ‘창의 요리를 하면서 레시피를 물어보냐’고 호통을 쳤고.
그런데…
문제의 실습생은 질문 하나 없이 작업하기 시작했다.
일단 토끼 고기를 한 조각 구워서 먹어보는 게 보였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토끼 고기는 야생의 향이 강해서 상당히 까다로운데, 그걸 알고 있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는 실습생은, 펜넬과 샬럿 등의 채소를 조합해서 굽기 시작했다. 그걸 덜어낸 후, 팬 안에 고기를 굽고. 뒤늦게 채소를 섞어주고, 베르무트를 이용해서 팬 아래에 쌓인 풍미 덩어리를 디글레이징했다.
중간중간 맛을 보아가며 와인 식초를 더 했고, 버터를 조금씩 섞어가며 소스의 농도를 맞추었으며, 완성된 소스는 여러 번 체에 내려서 질감까지 완벽하게 다듬었다.
“맛은 어떤가요?”
소스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문제의 실습생은, 향이 강한 토끼고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과한 향은 제거하면서, 톡톡 튀는 개성은 살리고 있었으니까.
조금 기름진 향이 강했지만…
이 소스는 블랙베리와 함께 내놓을 소스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블랙베리의 산미가 이 기름진 소스 사이를 가로지르면, 상당히 맛있을 거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여올 정도로 완벽한 조합. 처음부터 블랙베리와의 조합을 염두에 두고 만든 소스였다.
초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기본기가 없는 요리사가…
“어떻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하비에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문제의 실습생은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분명 겸손한 표정인데, 어딘가 가증스러워 보였다.
“어제 하비에르가 한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해봤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요리는 기본이 중요한 것 같아서 배워왔습니다.”
“기본을 배워왔다고?”
“네.”
“하루 만에?”
“열심히 해봤습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하루아침에 능숙하게 영어를 해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각 지역의 사투리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열심히 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다음은 뭘 할까요?”
실습생이 환하게 웃으며 질문했다.
어딘가 섬뜩한 웃음이었다.
빚쟁이가 닦달하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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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하비에르! 네가 웬일이냐, 여기에?”
“너, 뭔 짓을 한 거냐?”
갑자기 사무실 안으로 뛰쳐 들어온 하비에르를 보며, 파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이 뭔 소린데? 얼굴은 또 왜 그러고.”
“얼굴?”
“귀신에 홀린 얼굴이라서.”
“그건 됐고, 뭔 짓을 한 건데?”
“뭐가.”
“그 실습생한테 뭘 가르쳐준 거냐고!”
파코는 하비에르와 함께 20여 년을 함께 일해온 동료였다. 하비에르가 어떤 시험을 낼지 알고 준비를 시킨 게 분명했다.
물론, 그걸로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많았지만… 그게 가장 상식적인 설명이었다.
하비에르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쏟아부으며 파코를 의심하자, 파코가 미친 듯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야, 내가 그렇게 대단한 스승이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어디 가서 요리 학교 하나 차렸지.”
“….”
“크크크크, 더 놀라운 거 알려줄까?”
“….”
“그 자식, 어제 나한테 클래식 훈련이 뭐냐고 물어보던데?”
하비에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클래식 훈련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 하루아침에 기본을 그렇게 완벽하게 익혀온다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벙찐 얼굴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파코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우리 내기, 수정하는 게 어때?”
“갑자기 또 무슨 소리냐?”
“난 행크에게 걸겠어. 무슨 말 하는지, 너도 알잖아?”
알긴 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그런 거지.
올해, 더 불독은 예년보다 많은 실습생을 뽑았다. 평소에는 잘 뽑지 않는 단기 실습생들도 뽑았고, 몇 달 후면 몇몇 유명 레스토랑의 수셰프까지 찾아올 예정이었다.
유망 인재들을 불러들이는 거다.
그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고.
“아직 시즌은 시작하지도 않았잖아? 애당초 3년에 걸쳐서 알아보기로 한 거고.”
“시작하기 전에 발견하다니, 운이 좋은 거지.”
“그게 무슨…”
“너도 알잖아? 그놈은 존재 자체가 달라. 난 그렇게 존재감이 다른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알지 못하거든?”
“그럴 리가 없잖아?”
하비에르는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자기 암시를 걸듯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제2의 페르난도가… 존재할 리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