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6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67화(267/325)
267. 이것이 탑셰프
숙소의 주방은 평범했다.
가정용 오븐, 4구 가스레인지, 그리고 조리대와 식탁을 겸하는 아일랜드가 하나.
8명은 족히 앉을 정도로 아일랜드가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다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으니까.”
크리스토프가 준비하는 동안, 한길은 아일랜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오픈키친을 감상하는 손님처럼, 편안한 자세로 크리스토프의 행동을 관찰했다.
굳이 도와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길은 주방의 일원으로서 요리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일류 레스토랑을 찾아간 손님의 입장을 체험해보고 싶었던 거지.
‘별거 없네?’
재료는 이색적인 재료를 사용하지만, 준비 과정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건초를 씻고, 허브를 씻고, 감자 칩을 만들고, 돌판을 불에 올리고…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어떤 요리가 나올지…
이윽고 크리스토프가 그릇 하나를 들고 와 한길의 앞에 내려놓았다.
“다 됐어.”
“벌써?”
“어.”
그릇 위에는 새 둥지와 비슷한 모양으로 뭉쳐 놓은 건초더미가 있었다. 그 둥지의 한쪽에는 오리알과 감자 칩이 사뿐히 놓여 있었고.
“잠깐, 더 있어.”
추가 재료가 등장했다.
해안가에서 채집한 잡초가 담긴 허브 박스, 시장에서 구매한 허브 버터, 시금치, 램프 등등.
그 어느 것도 조리는 되어 있지 않았다. 세척만 해서 그릇에 담았을 뿐.
“메뉴명은 암탉과 계란(hen and the egg)이야. 이 요리는 손님이 직접 만들어.”
“손님이 만든다고?”
“뭐, 일단 보기나 해.”
크리스토프는 속눈썹까지 하얀 북유럽계의 외모였는데, 표정과 태도는 빙하처럼 차가웠다. 거기에 틱틱거리는 말투까지 더해지니, 레스토랑 느낌이 전혀 살지 않았다.
“서비스가 엉망이네.”
“시끄러워.”
한길이 뭐라고 하든, 크리스토프는 무심한 얼굴로 제 할 일을 하기 바빴다.
치익! 치익!
우선은 분무기를 이용해 건초더미에 물을 뿌리고, 미리 달궈놓은 돌판을 그 위에 올렸다. 돌판은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에서 사용할 법한, 비교적 평범한 돌판이었다.
촉촉하게 적신 건초 위에 돌판을 올리자, 건초의 향이 화악 하고 올라왔다. 잔디와 비슷한 자연의 향이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질였다.
크리스토프는 돌판 위에 기름을 뿌린 후, 타이머를 세팅했다.
“방금 뿌린 건 건초 기름이야. 계란을 굽고, 타이머가 울리면 허브 버터를 올리고 이 채소들을 구워.”
“내가 구우라고?”
“말했잖아? 손님이 만드는 요리라고.”
정말 특이한 요리였다.
손님에게 계란후라이를 대접하는 것으로 모자라,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자글자글!
계란을 깨서 돌판 위에 올리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란이 익기 시작했다. 모양새만 보면, 튀기듯이 구워낸 계란후라이였다.
띠띠띠띠!
타이머가 울리자, 한길은 허브 버터를 돌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버터가 녹은 후에는 시금치와 램프(ramp)를 넣었다.
아일랜드 너머로 크리스토프가 분주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한길이 버터를 올리는 순간, 무언가를 조리하기 시작한 거다.
빳빳하던 채소의 숨이 죽을 때 즈음, 크리스토프가 다가와 돌판 위에 녹색 액체를 끼얹었다.
“램슨(ramson) 소스야. 이제 마지막으로, 옆에 있는 감자 칩이랑 허브 박스의 내용물을 올려서 먹어.”
돌판 위에 계란과 채소를 굽고, 감자 칩과 잡초를 올려 먹는 요리. 굉장히 심플한 요리였다.
그 맛은…
독특했다.
오리알은 일반 달걀보다 향이 더 진했고, 노른자 역시 더 진득한 느낌이었다.
그 주위를 램슨(ramson) 소스가 부드럽게 에워쌌다.
램슨은 한길도 처음 들어보는 채소였는데, 맛이 조금 특이했다. 마늘과 완두콩을 반반 섞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마늘의 고소함과 완두콩의 풋풋함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거기에 은은한 단맛까지 더해져 상당히 싱그러웠다.
버터에 볶은 채소도 맛있었다.
시금치는 익숙한 맛이었지만, 램프는 생소했다. 명이나물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맛도 양파와 마늘을 반반 섞은 듯한 맛이었다. 덕분에 녹색 채소만 구웠는데도 양파와 마늘을 넣은 것처럼 풍족한 맛이 났다.
‘잡초도 맛있네?’
크리스토프의 잡초를 보며 북유럽식 나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맛도 어딘가 비슷했다.
향긋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맛.
미나리, 냉이, 달래, 두릅 등의 봄나물이 그러하듯, 잡초는 각자 고유의 향을 아낌없이 뽐내고 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혀에 감지되는 맛 이상의 매력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풀을 뜯어서 소꿉놀이하는 것 같았다. 건초랑 돌판 때문인지, 캠핑 감성이 느껴지기도 했고.
게다가…
어딘가 도발적이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 요리를 구상한 의도가 선명하게 와닿았다.
― 재료가 정말 좋으면, 발로 만들어도 맛있다.
이 요리는, 전문 요리사의 손을 거의 거치지 않은 요리였다. 소스를 제외하면, 손님의 어설픈 솜씨로 조리했으니까.
그런데도 맛이 뛰어났다.
재료가 뛰어났으니까.
모든 관심을 재료에만 집중시키는 요리.
극단적인 자연주의와 재료 찬양이 도드라지는 요리였다.
만든 이의 철학이 담겨 있었지만, 어렵지 않았다. 가식적이거나 억지스러운 느낌도 없었고. 소꿉장난을 치듯 재밌게, 편안하게, 가볍게 메시지가 스며들었다.
“대단하네.”
“그렇지?”
“이게 진짜 탑셰프구나…”
한길의 말에, 크리스토프는 마치 자기가 칭찬을 받은 마냥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 최대한 흉내 내긴 했지만, 노마에서 먹는 건 맛이 전혀 달라. 기후가 다르니까 향도 더 진하거든. 원래는 야생 꽃도 곁들여야 하는데, 여기에는 없더라고.”
“그런 재료들은 어디서 구해?”
“직접 채집한 사람들이 찾아와. 이런 재료는 시장에는 거의 안 나오니까.”
분명 대단한 요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생겼다.
“그러면 문제가 되지 않아?”
“뭐가?”
“이 요리는 해안가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거잖아? 그것도 노마에서만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레드제피는 다른 곳에 지점을 낼 생각이 없는 건가?”
유명 셰프들은 세계 각지에 레스토랑을 열면서 확장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요리는 새로운 지점에서 만들 수 없다. 굳이 확장 가능성이 없는 요리를 만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해외 지점? 몇 번 냈잖아? 정식 지점은 아니지만.”
“정식 지점이 아닌 건 뭔데?”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크리스토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솔직히, 한길은 남의 레스토랑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레드제피와 노마라는 이름도, 룸메이트인 크리스토프가 앵무새처럼 계속 반복하니 알게 된 거다. 그런데 크리스토프는 마치 이 모든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하는 상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꼭 알아야 하는 거야?”
“파인다이닝 업계의 주요 이슈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점이 아닌 지점은 뭔데?”
“예전에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동안, 레스토랑 문을 닫은 적이 있어. 그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었고.”
“팝업 레스토랑?”
팝업 레스토랑은 처음 들어봤지만, 아마 팝업스토어와 비슷하지 않을까.
팝업 스토어는 임시 매장이다. 정식으로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 고객 반응을 살피거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운영하는 임시 매장.
“임시 레스토랑을 연 거야?”
“뭐, 그런 거지. 동경에서 2달, 호주에서 2달, 그리고 멕시코에서 2달 운영했어. 심지어 멕시코에서는 정글 한가운데에 움막 같은 곳을 고쳐서 레스토랑을 차렸었지.”
“그때 너도 같이 갔었고?”
“당연하지.”
크리스토프의 얼굴에 보기 드문 미소가 번졌다.
“멕시코에 멜론 조개(melon clam)라는 게 있는 거 알아? 이건 진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이거든. 아, 호주에는 꿀개미라는 것도 있는데, 무슨 사탕처럼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개미야. 그런데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꿀맛이 나! 살짝 새콤한 꿀을 반건조시킨 맛이라고 해야 하나? 아, 멕시코 얘기가 나오니까 거기에서만 먹는 초콜릿이 있는데…”
크리스토프는 답지 않게 들뜬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듯, 때로는 아련한 표정을 짓고, 때로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
“재밌었겠네.”
“인생 경험이었지.”
“워크샵 같은 건가?”
“뭐, 그렇게 봐도 되겠지? 노마만의 워크샵! ‘우리는 세계 어디를 가도 노마다’라는 느낌이 있었거든.”
2년 동안, 레스토랑 식구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는 장기 워크샵.
각 지역에 있는 현지 재료를 발굴하고, 그 재료로 메뉴를 개발하고, 임시 레스토랑까지 운영하는 워크샵이라니…
상상만 해도 심장이 떨렸다.
한길은 공책에 ‘식구들과 함께 세계 투어하기 + 팝업 레스토랑 차리기’라고 기록한 후, 밑줄을 세 번 긋고 그 주위에 별을 다섯 개 그려 넣었다.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던 그때,
“뭐냐? 치사하게 니들끼리만 먹고 있냐?”
한길의 또 다른 룸메이트인 매튜가 눈을 비비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요리에만 정신이 팔려 신경을 미처 못 쓰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있었는데…
“어서 와.”
한길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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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처럼의 쉬는 날이라 그런지, 실습생들은 모두 늦잠을 즐기고 있었다. 한길이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집안이 쥐죽은 듯이 고요했으니까.
하지만 요리를 맛보는 사이, 제법 많은 사람이 일어나서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주방은 거실과 연결되어 있으니, 크리스토프와 한길이 무엇을 하는지 보였을 거다.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렸지만, 한길과 시선이 마주치자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외국인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근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곳 실습생들은 달랐다. 서로를 잠재적 라이벌로 보는 분위기였으니까.
한길은 거실에 있는 실습생들의 이름과 출신을 기억해보려 했지만… 솔직히 무리였다. 같은 파트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반년 전에 스쳐 가듯 들었던 이름을 기억할 리 없다.
‘뭐, 그래도 이 정도 인원이 모여 있으면 쓸만한 사람도 있겠지.’
한길은 오래전에 세워둔 계획을 떠올리며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크리스토프와 라엘라의 요리만 맛보고 떠날 생각은 없었다.
여기에 있는 실습생들 전원의 요리.
특히, 일류 주방에서 일하다 온 이들의 요리는 모두 맛봐야 했다.
‘이건 매튜의 힘을 빌리는 게 낫겠지?’
한길은 일부러 큰소리로 매튜를 불렀다.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와서 너도 먹어.”
“뭐야? 계란후라이?”
“그냥 계란후라이는 아니고, 레드제피의 계란 후라이. 크리스토프, 하나 더 만들어줄래?”
“내가 왜?”
한길은 크리스토프의 말을 못 들은 척, 등을 돌리며 매튜를 바라보았다.
“한번 먹어봐. 지금까지 먹어본 계란후라이랑은 차원이 다를걸? ‘이래서 세계 1위구나’ 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 계란 하나로 이런 요리를 만든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래?”
“어차피 재료도 많아서 아직 10인분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한길이 다시 몸을 돌리자, 크리스토프가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길의 칭찬이 내심 기분 좋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아 간신히 억누르는 모습.
“10인분이나 더 만들 수 있다고?”
“아마도?”
“그래? 케이트, 폴! 니들도 오는 게 어때?”
예상대로 매튜는 오지랖을 부리며 거실에 있는 인원들을 불러 모았고,
“뭐, 배가 고프기는 하네…”
“나가기도 귀찮고…”
그들은 못이기는 척하면서 다가왔다.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한길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뒷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아, 그러고 보니… 크리스토프. 이거!”
한길이 꺼내 든 것은 지갑.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갑 안에 들어있던 빳빳한 100유로 지폐였다. 오전에 장을 보러 갔을 때, ATM에 들러서 뽑아온 지폐였다.
“뭐냐?”
“수고비.”
“수고비?”
“귀한 인력이 귀한 시간을 내서 귀한 요리를 대접해줬는데, 당연히 수고비를 줘야지.”
크리스토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걸 받아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서비스는 형편없어서 팁은 없어.”
“지랄하네.”
“다음 주에도 부탁해도 될까?”
“너 하는 거 봐서.”
한길이 장난을 섞어가며 말하자, 그제야 크리스토프는 뚱한 얼굴로 지폐를 낚아챘다. 그 뒤로, 몇몇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보였다.
이곳에 온 실습생들은 대개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안 그래도 요리사는 임금이 그리 높지 않은데, 더 불독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무급으로 일해야 했으니까.
그런 이들 앞에서, 한길은 지금 꿀알바를 제안하고 있었다. 시그니처 요리 한 번 만들면 100유로를 벌 수 있는 꿀알바를.
혹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한길에게는 매튜가 있었으니까.
매튜는 타고난 바람잡이였다.
“요리 하나에 100유로? 행크! 너, 그렇게 부자였냐?”
“그건 아니고. 유럽까지 온 김에 유명 레스토랑 미식 투어를 하려고 모아둔 돈이었거든. 일정이 빠듯해서 미식 투어는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크리스토프가 만들어준다고 하더라고. 같은 요리를 100유로로 맛볼 수 있으면 내 입장에서는 싸게 먹히는 거지.”
“그럼 나는 안 되는 건가?”
“미안, 유명 레스토랑 미식 투어를 위해 저축한 돈이라서.”
“아~ 아까비!!!”
매튜는 큰소리로 한탄하더니, 옆에 앉은 갈색 머리의 여자를 팔꿈치로 찔렀다.
“케이트, 네가 해보는 건 어때? 넌 팻 덕 출신이잖아?”
“팻 덕?”
“몰라? 블루먼솔 셰프가 운영하는 미슐랭 레스토랑인데, 모더니스트 요리로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거든.”
합격이다.
한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만들어주기만 하면 나야 고맙지. 어때, 케이트?”
“뭐, 다음 주라면 가능해.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좋네. 다음 주에는 라엘라도 뭔가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그때 하자.”
일단 한 명은 예약을 잡아놨는데…
의외로 다른 사람들은 아직 머뭇거리고 있었다.
‘조금 부족한가?’
한길은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달력 앱을 연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아쉽네. 쉬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니까… 이제 4번 남은 건가? 아니, 오늘은 이미 지나갔으니 3번이네.”
“3번?”
“나는 단기 실습생이라 5주만 있다 떠나거든. 이미 일주일이 지났으니 이제 한 달만 남은 거고.”
시간이 얼마 없음을 강조하면서 압박을 가하는 전략.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바람잡이가 열심히 활약하기 시작했으니까.
“야, 브렌트! 너도 해봐! 행크, 앨리니아는 어때?”
“앨리니아?”
“시카고에 있는 아방가르드 레스토랑인데, 아카츠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거든. 아카츠는 페르난도 밑에서 수련하기도 했고.”
“알랭 뒤카스는 어때?”
두어 명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봇물 터지듯이 문의가 이어졌다. 처음에 주저하던 실습생들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자 경쟁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도미니크 크렌의 ‘바다’라는 요리가 있는데, 이게 진짜 바다를 형상화한 요리거든? 시적인 감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카츠의 헬륨 풍선도 한번 먹어봐야지! 진짜 동심을 표현한 요리로는 이걸 따라갈 게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블루먼솔의 베이컨과 계란 아이스크림은 한번은 먹어봐야지 않겠어?”
어느새 실습생들은 한길을 빙 둘러싸며 자신이 만들 수 있는 메뉴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한길은 그중에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 하비에르? 이곳에는 어쩐 일이세요?”
크리스토프의 목소리에 한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한길을 빙 둘러싸고 있는 실습생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었고.
주방 입구에는 크리에이티브 파트의 파트장인 하비에르가 서 있었다. 귀신이라도 본 듯, 창백한 얼굴로.
하비에르는 한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한길을 에워싸고 있는 실습생들을 보며 입을 벌렸다.
“하비에르?”
“그, 안토니오를 찾고 있는데… 이곳에 없나?”
안토니오는 실습생을 담당하는 상임 직원이다.
가끔 숙소에 들르는 경우가 있지만, 오늘은 올 일이 없다.
“집에 계신 것 아닐까요? 쉬는 날이니까요.”
“아, 그.. 그렇지.”
“전화를 해보시는 게 어때요?”
“전화는 이미.. 그래, 전화를…”
하비에르는 말을 더듬거리면서 뒷걸음을 치더니,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사라졌다.
“왜 저래?”
“몰라.”
“뭔가 일 터진 거 아냐? 저 사람, 페르난도의 오른팔이잖아?”
하비에르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는 이는, 한길만이 아닌 모양. 실습생들은 하비에르가 떠난 후에도 한동안 이런저런 추측을 이어나갔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거 아닐까?”
“문제? 오프닝을 이틀 앞두고?”
“아무리 봐도 표정이 심상치 않았잖아? 그리고 계속 ‘리더십이 없어’라고 중얼거리던데? 설마 페르난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진짜 문제가 있다면 전원 소집했겠지. 쉬쉬하면서 넘어갈 리 없잖아?”
“그러게. 이틀 남았는데….”
그러고 보니.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이틀 후는 더 불독의 오프닝 날이다.
한번 문을 닫았던 전설의 레스토랑이, 10년 만에 다시 문을 열게 된다.
‘그 자리에 내가 서게 되는 건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오늘, 크리스토프가 만든 레드제피의 요리만으로도 한길은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요리나 레시피가 아니라…
세계적인 셰프는 요리 철학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식도 흥미로웠으니까.
레드제피의 직원인 크리스토프를 통해 간접 체험한 것도 이렇게 충격적인데… 페르난도는 레드제피의 스승이다. 레드제피는 페르난도 밑에서 스타주 생활을 했다고 들었으니까.
그리고 이틀 후면…
한길은 페르난도가 직접 지휘하는 현장에 서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