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6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68화(268/325)
268. 후계자
크리스토프의 계란후라이는 대단한 요리였지만,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실습생들은 냉장고를 털어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식사 후에는 거실에 빙 둘러앉아 후식까지 챙겨 먹었고.
“….”
“….”
하지만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모두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기 바빴으니까.
[전설의 귀환! 페르난도가 돌아온다!] [미식계를 뒤엎을 페르난도의 두 번째 혁명!] [더 불독 1846은 레스토랑이 아니다! 전 세계 창의 중심지다!]더 불독의 오프닝까지 앞으로 이틀.
페르난도의 복귀 소식에 전 세계 언론이 떠들썩했다. 열심히 집중해서 기사를 읽던 실습생들은, 한참 후에야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레스토랑이라고 안 부르고 창의 센터라고 부르는 걸까?”
“연구소도 동시에 운영하고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연구소가 있어도 레스토랑은 레스토랑이지.”
기사에 의하면, 페르난도는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을 레스토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실습생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은 여느 레스토랑처럼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뭔가 다른 계획이 있는데 우리한테는 말 안 하는 거 아냐?”
“왜 숨기는 건데?”
“숨기는 게 아니라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우리는 말단이니까…”
‘하긴.’
한길 역시 3호점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그 계획을 알고 있는 이는 최셰프 뿐이었다. 다른 요리사들에게는 모든 게 결정된 후에야 알려줄 생각이었고.
그들이 말단이라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알려주면 괜히 동요할까 봐 그런 거였는데… 막상 실습생의 입장이 되어 보니, 아무 말을 안 해주는 편이 오히려 더 동요하는 것 같았다.
“대체 페르난도는 뭘 하려는 걸까?”
“솔직히… 나는 페르난도가 왜 더 불독의 문을 닫았던 건지도 모르겠어. 자타공인 세계 1위 레스토랑이었잖아? 왜 그걸 버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잖아. 현역에서 활동하다가 다음 세대 셰프들에게 밀리느니, 스스로 물러나는 게 덜 초라하지.”
“그러면 왜 10년이나 지나서야 돌아온 건데?”
“그건… 음… 글쎄?”
모든 게 의문이었다.
전설의 셰프가 왜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건지. 그리고 왜 10년이나 지나서 복귀하기로 한 건지…
그 와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소문? 무슨 소문?”
“페르난도가 지난 10년간 해온 일들을 보면, 조금 이상하잖아? 하버드에서 강의하지 않나, MIT의 전 총장과도 사이가 각별하다고 하고.”
“그게 왜?”
“심지어 레스토랑 문을 닫은 후에는 여러 기업과 계속 손을 잡았잖아? 텔리포니카라든지, 에스트롤라라든지, 라바짜라든지.”
실습생들에 의하면, 텔리포니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통신 기업 중 하나였다. 에스트롤라는 스페인의 대표 맥주 브랜드, 라바짜는 이탈리아의 커피 제조업체.
“그래서?”
“더 불독을 기업화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더라고. 하버드나 MIT 인재들을 데려와서 세계적인 요리 기업을 세우려는 거 아니냐고.”
“에이, 설마~”
“못 믿겠으면 한번 찾아봐. 구글이나 HP 같은 기업이랑 교류한다는 기사도 있어. 그래서 일부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요리계의 구글을 차리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고…”
‘신기하네.’
한길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그저 신기했다.
페르난도가 여러 대기업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도, 실습생들이 이런 정보를 꿰뚫고 있다는 사실도.
‘나도 더 노력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한길은 작은 치즈 조각을 입안에 넣었다.
아침에 크리스토프와 장을 보러 갈 때 사 온 만체고(Manchego) 치즈였는데, 스페인의 명물이라고 들었다.
과연 그 명성대로라고 해야 하나.
부드러운 질감에 견과류처럼 고소한 맛이 으뜸이었다. 톡 쏘는 듯한 끝 맛이 특히나 인상 깊었고.
중간중간 결정체가 씹히는 게 상당히 매력적이었는데, 이 식감은 아마 열기에 닿으면 사라질 거다.
그래서 이 치즈는 생으로 먹는 편이 더 맛있다. 하지만… 조리하면서 이 결정체를 살리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한다면…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실습생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소문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혹시 그 소문은 들은 적 있어?”
“무슨 소문?”
“페르난도가 더 불독의 후계자를 찾고 있다는 소문.”
“후계자?”
“나만 들은 건가? 그래서 올해는 실습생들을 유난히 많이 뽑았다고 하더라고.”
“….”
“….”
일순 정적이 흘렀다.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그리고 약 3초 후, 실습생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한꺼번에 떠들기 시작했다.
“실습생 중에서 후계자를 뽑는다고?”
“페르난도도 이제 내일모레면 예순이잖아? 슬슬 그런 준비를 할 나이가 됐지. 자녀가 있으면 물려줄 텐데, 자녀도 없고.”
“자녀가 없으면 상임 직원 중 누구한테 물려주겠지, 왜 실습생을 후계자 삼는데?”
“상임 직원들은 페르난도랑 비슷한 나이니까. 게다가 레스토랑이 아니라 요리 기업을 세우려는 거면, 젊은 피가 필요하지 않겠어? 요즘 기업은 젊은 소비자들 취향에 맞추려고 하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해봐! 올해 스타주는 뭔가 이상하잖아? 단기 실습생도 많고… 심지어 평소에는 시즌이 6개월인데 올해는 4개월이라고.”
“그래서?”
“남은 2개월은 유력 후보를 선별하는 것 아닐까?”
“후계자 자리를 걸고 서바이벌이라도 하고 있다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소문을 믿지 않는 실습생들도, 얼굴에는 광채가 서려 있었다.
한길은 오르차타(horchata)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차타는 스페인의 전통 음료인데, 이 역시 오늘 아침에 시장에서 구매해온 것이었다. 타이거 넛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견과류를 갈아서 만든 음료로, 아몬드와 헤이즐넛을 섞은 듯한 독특한 고소함이 매력적이었다. 질감은 두유랑 유사하려나…
여기에 파르톤(farton)이라고 불리는 길쭉한 빵을 담가서 먹는 게 전통이란다. 폭신폭신한 빵 안에 스며든 아몬드 우유 같은 오르차타. 씹을 때마다 고소한 액체가 뿜어져 나오면서 촉촉하게 입안을 적시는 게 정말 일품…
“넌 관심 없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한길이 고개를 돌리자, 매튜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뭐가?”
“페르난도의 후계자 얘기.”
“관심 있지. 그래서 열심히 듣고 있잖아?”
“아무리 봐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여서. 이 얘기의 주인공이 네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한길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럴 일은 없지, 나는 한 달 후에 떠나니까.”
“스타주 생활 더 연장할 수 있는지 한번 물어봐!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더 불독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면 내 레스토랑은?”
“지금 그게 문제냐? 더 불독이라고! 다른 곳도 아니고 더 불독! 네 레스토랑이 세계 1위 레스토랑은 아니잖아!”
한길은 오르차타를 쭉 들이켜 마시며 입안에 있는 파르톤을 마저 씻어내렸다.
물론, 한길의 레스토랑은 더 불독에 견주지 못한다. 더 불독은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여러 번 거머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꺼잖아.”
#
후계자 얘기가 나온 후, 실습생들 사이에서 다시금 묘한 기류가 흘렀다.
모두가 자신의 노트를 다시 읽으며 필사적으로 복습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레시피도 다시 공부하는 모습은, 마치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과도 같았다.
‘하긴.’
이들은 처음부터 더 불독의 상임 직원 자리를 노리며 경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종 보상이 상임 직원이 아니라 페르난도의 후계자 자리라면?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통화는 방에서 하는 게 나으려나?’
여기서 전화를 했다가는 모두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게 뻔했다.
결국, 한길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당연히 최셰프였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 인가요? 이틀 전에도 통화한 것 같은데…”
“그랬었나요?”
“셰프,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아뇨. 왜요?”
“너무 환하게 웃고 계셔서요.”
현대로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지만, 시차 때문에 어제는 전화를 못 했었다. 즉, 한길은 반년 만에 최셰프를 보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모양.
“진짜 별일 없으신 겁니까? 이 시간에 전화를 다 주시고…”
“오늘은 쉬는 날이어서요.”
“쉬는 날이군요…”
최셰프는 어딘가 아련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닙니다. 너무 잘 돼서 걱정이죠. 오늘 아침에 메일을 보내드렸는데, 못 받으셨나요?”
“아니, 읽었습니다.”
시차 때문에 통화는 어려웠지만, 하루에 한 번 최셰프와 유셰프가 보내는 메일은 이미 읽어보았다.
한국에서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1호점과 2호점은 모두 맞춤형 고객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식품 박람회에서 슬아가 찾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건데, 고객이 최근에 언제 방문했는지, 이전 방문에는 어떤 요리를 주문했는지 확인 가능하다고 한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신메뉴를 추천하고 있다고 했더랬지.
그뿐 아니라, 1호점은 슬아가 세계대회에서 배웠던 크레프 마드모아젤을 신메뉴로 론칭했다.
크레프 마드모아젤은 즉석에서 크레프와 질소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는 메뉴. 이색적인 메뉴여서 그런지, 벌써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한편, 2호점은 이탈리아 대사관으로부터 의뢰받은 케이터링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때 나간 메뉴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이탈리아 업체들도 케이터링 문의를 했다고 하고.
추가 수입도 추가 수입이지만. 현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는 인식까지 심어주게 되었다.
‘엄청나네.’
솔직히 뿌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빨리 돌아가서 프랑스 스테이지에서 얻은 깨달음을 적용하고, 한길만의 공급망도 만들고, 3호점의 진행 상황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돌아갈 수는 없다.
이곳에 온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한길은 더 불독에 놀러 온 게 아니었다.
세계 일류 레스토랑의 시스템을 배워가기 위해 온 거였지.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할 거니까.’
골목 식당을 운영할 때는, 생계 걱정이 전부였다. 1호점을 오픈할 당시에는 대로변에 가게를 연다는 생각만으로 들떠 있었고. 2호점은 파인 다이닝에 도전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았으니 말이다.
3호점은 단순하게 뛰어난 레스토랑이어서는 안된다. 국내에서 알아주는 레스토랑이어서도 안 된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전 세계 요리사들이 명문 레스토랑이라고 인정할 레스토랑을 차릴 예정이었다.
그러려면 더 불독의 비법을 모두 배워가야 한다.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페르난도로부터 가르침도 받아야 하고. 문제는…
‘아직 1대1로 대화도 못 나눠봤지.’
이곳에서 페르난도는 연예인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상임 직원들이 있었고, 그들은 실습생들이 페르난도에게 접근하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베르사유와 유사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페르난도는 국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한길은 다르다.
꽤 오래전, 이미 페르난도와의 1:1 시간을 확보해두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부탁했던 그거, 도착 예정일이 언제일지 알 수 있을까요?”
“아직 안 도착했습니까? 오늘내일일 것 같은데…”
“레스토랑으로 보낸 것 맞죠?”
“네, 어차피 숙소에는 낮에 아무도 안 계신다고 해서…”
한길은 꽤 오래전, 최셰프에게 한국의 식자재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것을 계기로 페르난도와 가까워질 생각이었으니까.
“만에 하나 오늘 도착하면,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라 받을 사람이 없겠군요.”
“반송되는 건 아니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사람이 없으면 내일 다시 가겠죠.”
최셰프의 말이니 확실하다.
아무렴, 국제 택배인데 한번 부재중이라고 반송시키진 않겠지.
그건 알지만…
통화를 마친 한길은 바로 택시를 불렀다.
#
더 불독에 도착한 한길은,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보며 내심 놀랐다. 오늘은 상임 직원들도 쉬는 날인데…
‘다행이네.’
레스토랑 문이 닫혀 있으면 테라스에 앉아서 무작정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실내에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이 보였다. 상임 직원들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나온 듯했다. 심지어 이 레스토랑에서 제일 느긋한 파코까지도 출근해 있었으니까.
“여, 행크! 넌 여기 웬일이냐?”
“파코야말로…”
“아, 그, 중요한 날이니까. 10년 만의 오프닝이잖아? 쉬려야 쉴 수가 있나.”
이들에게, 이 레스토랑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오늘은 그게 훨씬 더 선명하게 와닿았다. 모두가 자진해서 쉬는 날을 반납하고 나온 거다.
‘하긴, 녀석들도 비슷한가?’
생각해 보면, 한길의 레스토랑 역시 그랬다.
한길의 요리사들은, 퇴근 후에도 한길의 집에 모여서 요리했다. 쉬는 날에도 한길의 집에서 죽치고 있었고.
쉬는 날에는 가끔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길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나저나, 너한테 이게 왔더라?”
파코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바닥에 커다란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도착했군요.”
“뭔데?”
“고향에서 온 선물이요. 한번 보실래요?”
한길이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상자로 다가가자, 파코가 갑자기 솥뚜껑만 한 손으로 한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안에 상하는 재료라도 있나?”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면 이 김에 시설 구경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옆에 있는 전시관, 공사도 끝나고 세팅도 거의 완료되었거든. 내일은 바빠서 제대로 구경도 못 할 테니 보려면 오늘이 기회지.”
레스토랑 바로 옆 건물에는 전시관이 있었다. 더 불독이 그동안 밟아온 길을 보여주는 전시관이라고 했었나.
확실히, 그걸 보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레스토랑이 오픈하면 한가하게 전시를 구경할 시간은 없을 테니까.
“좋습니다.”
한길이 흔쾌히 답하자, 파코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음, 옷걸이가 좋네. 셔츠만 입었는데도 옷 태가 사는걸?”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데요?”
“다려서 입은 건가? 단정해서 좋군.”
파코는 한길의 셔츠 옷깃을 한번 잡아당기더니,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단정한 게 좋고말고. 그럼 빨리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