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6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69화(269/325)
269. 창의력에도 공식이 있다
파코는 흐뭇한 얼굴로 전시관 입구에 세워진 판넬을 바라보았다. <요리, 예술이 되다: 창의력에 대한 고찰>이라고 적힌 판넬이었다.
“행크, 이런 전시를 본 적이 있나?”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요?”
“아하하하, 그렇지? 미안, 미안! 긴장돼서… 우리의 지난 35년을 낱낱이 공개하는 거거든.”
조금 특이한 전시였다.
더 불독에서 지금까지 만든 1,846개의 요리를 보여주는 전시였으니까.
전시장은 연도별로 나뉘어 있었고, 각 연도가 표시된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음식 모형이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태블릿에서는 해당 요리와 관련된 자료가 흘러나왔다.
요리에 들어간 재료, 페르난도의 수기 메모, 초기 플레이팅 스케치, 수정사항, 그리고 미식 평론가와 미디어의 반응까지.
한길은 그 내용을 하나하나 열심히 읽어내렸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평범했구나.’
더 불독의 초창기 요리는 지금처럼 파격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랍스터 가스파초(gazpacho).
이는 스페인의 전통 요리 중 하나로, 토마토와 각종 채소로 만든 차가운 수프다.
페르난도는 평범하게 수프를 내는 대신, 빈 접시에 가니쉬만 올린 후, 손님들 앞에서 수프를 따르는 방식으로 서빙했다.
지금은 너무 흔한 서빙 방식이라 별 감흥이 없지만, 1980년대에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 후로도 페르난도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채소를 원형 그대로 내는 대신, 크림이나 소르베로 만들기도 했고. 카레를 덩어리로 굳힌 요리에 닭가슴살 소스를 곁들이는 역발상 치킨 커리를 만들기도 했다.
신선한 시도이긴 했지만, 혁신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그의 요리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것처럼 급속도로 변했다.
탄산수를 만들 때 사용하는 사이펀을 이용해 거품을 만들고, 알긴산 나트륨을 이용해 작은 구슬을 만들고, 유리잔 안에 훈제한 거품을 담아서 연기를 내기도 했다.
페르난도의 요리는 갈수록 마술처럼 변했고. 심지어 그런 요리를 1년에 100개도 넘게,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어 냈다.
‘언제부터 변한 거지?’
전시장을 한 바퀴 돈 한길이 다시 입구로 돌아가려는 순간,
“하비에르!”
“파코… 왔나?”
출구 쪽에 서 있는 하비에르와 마주쳤다. 하비에르는 굉장히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왜 여기에…”
“내가 불렀지. 혼자 있기에는 심심해서 말야.”
“….”
“그나저나, 이 녀석에게 ‘그것’ 좀 보여줘도 될까?”
“나중에. 에러가 있는지, 해설이 안 뜨더라. 해설이 없으면 어차피 이해 못 할 테고.”
“뭐 어때? 구경만 하는 건데. 가자고, 행크!”
“어디를요?”
“이 옆에도 전시장이 있거든. 우리 레스토랑의 하이라이트지!”
하비에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길을 막아서지는 않았다. 조용히 한길과 파코의 뒤를 따라올 뿐.
두 번째 전시장은 첫 번째 전시장과는 또 달랐다. 요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스크린이 벽면을 가득 채웠고, 그 스크린 안에는 각종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과, 브로콜리, 토마토…
건축물, 자동차, 비행기…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사물들은 무수히 많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크린.
그 스크린 아래에 한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역시 있었네.’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파코의 태도만 봐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으니까.
페르난도였다.
#
“파코, 왔나?”
“네.”
“실습생도 함께 왔군.”
“아, 예. 제 보조이자 크리에이티브 파트의 보조도 맡은 녀석이죠.”
“알고 있네. ‘도롭’ 아닌가?”
도롭은 언젠가 한길이 페르난도에게 알려준 한국의 식재료였다. 아주 오래전, 페르난도가 실습생들에게 돌아가며 질문할 때의 일이다.
‘내 이름을 모르나 보네.’
한길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페르난도와 얼굴을 마주했다. 아침에는 시식을 준비하고, 저녁에는 신재료로 만든 메뉴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페르난도는 한길의 이름을 몰랐다.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으니까.
‘역시, 이 사람도 그 부류구나.’
이번에 퐁파두르를 만난 후, 확신할 수 있었다.
아피키우스, 스카피, 그리고 퐁파두르.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이들만이 가진 눈빛이 있다. 바로 옆에 서 있는데 그들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위화감이 드는 그런 눈빛이.
페르난도의 눈빛 역시 그러했다.
두근.
갑자기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지금까지 만난 역사적인 인물들은 가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했다. 시스템의 힘을 빌려서 체험하는 퀘스트 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처음으로 만나는,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이었다.
페르난도의 눈에 한길이 보이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산책하는 인간은 지나가는 개미의 표정을 읽지 못하니까.
‘나물 얘기를 꺼낼까?’
최셰프가 보내준 나물을 언급하면, 페르난도는 한길에게 관심을 보일 거다. 페르난도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나물을 보여줘봤자, 한길을 ‘도롭’ 대신 ‘나물’로 부를 뿐이다.
재료로 유혹해서는 안 된다.
재료가 아닌, 자신을 보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가?”
페르난도가 벽면을 가리키며 한길에게 질문했다.
페르난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표정이었다. 저 나이의 외국인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분명…
‘미켈란젤로인가.’
언젠가 퀘스트 속에서 만난 미켈란젤로가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님프 얼음조각상을 완성한 직후였나. 자신의 걸작을 바라보는 조물주의 표정이다.
“터치스크린이네. 아직 해설 문구는 나오지 않지만, 한번 봐보게.”
페르난도의 말을 들은 한길은 벽면에 다가가 토마토 그림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토마토 주위로 거미줄이 쳐지면서 수많은 작은 그림과 글자가 튀어나왔다.
토마토:
▷ 기후 → [email protected]##$(%*
▷ 캐러벨 (신대륙 항해에 사용된 범선)
▷ [email protected]##$(%*
▷ 백랍 접시 → “독 사과”
▷ 만드레이크 → 최음제 → 종교
▷ 미국 이민 → 피자 유행
▷ [email protected]##$(%*
토마토와 관련된 각종 상식.
에러가 있다고 했던가.
설명이 곁들어진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잠깐, 이건…’
한길이 유심히 화면을 살피자, 등 뒤에서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해설이 수정되면 다시 와서 한번 보게. 꽤 재밌을 거야.”
잠깐 고개를 돌리니, 페르난도는 이미 출구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용건이 모두 끝났다는 태도로.
하지만 한길은 페르난도를 붙잡는 대신, 고개를 돌려 다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페르난도는 오늘도, 내일도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방금 토마토를 보면서 스친 생각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토마토는 신대륙에서 넘어왔다. 빠른 항해를 가능케한 범선이 발명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럽에 넘어온 토마토는 기피 대상이었다. 귀족들이 자주 사용하는 백랍 접시 위에 토마토를 담으면, 납 중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스크린을 토대로 보면, 심지어 토마토는 최음제로 여겨졌던 모양. 기독교인들이 피하는 재료였다.
도자기가 발명되고, 식물학이 발전하면서 겨우 위험하지 않은 재료라는 게 알려졌고. 이탈리아에서 피자 재료로 사용되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세계에 명성을 알리게 되었다.
이 화면은, 토마토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가속화된 지점을 찾고 계시는군요.”
어느 시점에서, 토마토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가 개발되었다. 수많은 요소가 우연처럼 겹치고 겹친 후에야 그런 가속이 이루어졌고.
조금 전의 전시를 보고 와서 그런가.
토마토의 성장이 페르난도의 요리와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이 갑자기 힘을 발휘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한길도 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에 다녀온 프랑스 스테이지만 해도 그랬으니까.
다양한 퐁을 만들고, 플레이팅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를 만들고, 살롱에서 계몽주의자들에게 어필할 요리를 만들고, 정원사를 만나고…
그런 일을 하나둘 겪는 사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다. 그것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성장을 마친 후였고.
“주방에서 벗어날 때인가? 주방에서 매일 같이 새로운 요리를 만들지만, 외부 요소가 들어오는 순간….”
한길의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수많은 선이 머릿속에서 연결되고 있었다. 그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단어를 입 밖으로 흘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오늘 아침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10년 전, 페르난도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명문대학에서 강의했고, 여러 다국적 기업들과 교류했다.
주방에서 창의 흐름을 연구하던 페르난도가, 갑자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만난다. 어쩌면…
“창의력에도 공식이 있는 건가?”
“야… 너… 어떻게…”
갑자기 어깨에 감촉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파코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하비에르는 창백한 얼굴로, 초점 잃은 눈을 하고 있었고.
한길은 그들 뒤에 서 있는 페르난도를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굉장히 후련한 미소였다.
“이것 때문이었군요, 10년 전에 은퇴를 선언한 이유… 요리를 떠난 게 아니라, 요리를 초월하는 프로젝트를 발견하신 거네요.”
페르난도는 자신의 창의력을 요리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창의력의 흐름과 과정을 분석하고, 그것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었다.
아피키우스도 스카피도…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들이었지만, 그들의 시야는 요리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페르난도는…
“인류의 창의력을 위한 방정식을 만들고 있군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요리사가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으니까.
‘역시 오길 잘했네.’
역시 세상은 넓었다.
한길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때,
“더… 더 말해주겠나.”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페르난도가 입을 열었다.
#
페르난도는 자신의 업적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10년을 일해왔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밤 8시까지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절반까지 올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앞으로 최소 10년.
그게 두려웠다.
‘인간의 수명은 너무 짧아.’
몇 년 전, 자신과 30년 넘게 더 불독을 이끌어온 파트너가 세상을 떠났다.
페르난도는 건강하지만, 어느덧 나이도 제법 먹었다. 게다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갑자기 불어닥치는 사고를 피할 길은 없고.
그게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만약에 자신이 사라진다면…
이 프로젝트는 누가 이어갈까?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지.’
이 알고리즘을 발견한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페르난도는 이례적으로 많은 창의 요리를 개발한 요리사였다. 모두가 공장이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페르난도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왜 젤리는 차갑게 먹어야 하는 걸까?
뜨겁게 먹을 수는 없을까?
왜 수프는 액체여야 하지?
질문은 끝이 없었고, 페르난도는 그 질문을 하나하나 따라갈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말라버렸다.
연료가 바닥난 것처럼, 동력을 잃어버렸다.
불씨가 꺼져가던 그때, 페르난도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왜 질문이 바닥나는 걸까?
요리에는 한계가 있는 걸까?
이것이 우리의 한계인가?
창의력도 소멸하는 건가?
페르난도는 힘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발자취를 다시 더듬어 보았다. 지난 몇십 년간, 더 불독의 창의력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 거다.
그러다가 이 원리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저 기뻤다.
창의력에도 공식이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인가!
하비에르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열심히 설명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 음… 조금 어렵군요. 하지만 페르난도가 가는 길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들은 페르난도를 신뢰했고 맹렬하게 따랐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했으며, 평생을 함께할 각오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페르난도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답답함을 느낀 페르난도는 결국, 다른 셰프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스타주로 있었던 이들. 지금의 아방가르드 요리를 이끄는 세계 제일의 셰프들에게.
― 네네, 그런 기분 있죠. 그런데 이게… 뭐랄까, 조금 추상적이네요.
― 페르난도는 항상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다니까요? 아직은 어슴푸레한데, 나중에 보여주시면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완성되면 알려주시죠!
그들은 페르난도의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했지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때, 때마침 하버드에서 강의 요청이 왔고. 페르난도는 주저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페르난도는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평생 요리만 했으며, 학자들에게 그의 말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보일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 대단한 걸 발견하셨군요. 이건, 인류 역사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이걸 알고리즘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한번 팀을 모아보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페르난도는 자신의 창의 과정을 지도처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도 페르난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은 통했다.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소통했고, 그 덕분에 10년 만에 겨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데,
“가속화된 지점을 찾고 계시는군요.”
이름 모르는 실습생이, 해설도 첨부되지 않는 도면을 보고, 5분 만에 한 말이었다.
순간 페르난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세계 내로라하는 석학들에게, 몇 주간 입이 닳도록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했던 부분이니까.
“주방에서 벗어날 때인가? 주방에서 매일 같이 새로운 요리를 만들지만, 외부 요소가 들어오는 순간….”
어쩌면…
눈앞의 실습생도 요리사이기에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페르난도는 창의 과정을 요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왜 다른 요리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걸까?
“창의력에도 공식이 있는 건가?”
숨이 멎었다.
오랜 세월 타지에서 지내다가, 같은 고향에서 온 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것 때문이었군요, 10년 전에 은퇴를 선언한 이유… 요리를 떠난 게 아니라, 요리를 초월하는 프로젝트를 발견하신 거네요.”
구구절절 말로 하지 않아도, 이 실습생은 페르난도가 겪어온 지난 10년을 단번에 이해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 순간, 페르난도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난 10년간, 말로 할 수 없는 고독과 싸우고 있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음을.
“더… 더 말해주겠나.”
아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일단은 이 자를 놓치면 안 된다.
“자네… 이름이 뭐지?”
건조한 목소리가 목구멍을 비집고 간신히 나왔다.
“이한길입니다.”
“이한길?”
“여기서는 발음하기 힘들다고 행크라고 부르시지만요.”
이한길.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긴 했지만, 음악과도 같은 음률이 느껴졌다.
“어디서 왔다고 했지?”
“한국입니다.”
남자가 갑자기 눈부시도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 참.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고향 음식이 없으면 1주일도 못 버틴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그랬지.”
“때마침 1주일이 지나서 고향에서 선물이 왔습니다. 한번 보러 가시겠습니까?”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지금 당장 지옥에 가자고 해도 따라갔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