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7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73화(273/325)
273. 단서
영화는 더 불독의 13년 전 모습을 담고 있었다.
‘지금이랑은 조금 다르네.’
본관 옆의 웅장한 전시관도, 입구에 걸려 있는 거대한 간판도 없다.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레스토랑이 아닌 평범한 주택으로 보일 정도로, 세계 1위 레스토랑 치고는 소박한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
한 중년 남자가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배우처럼 잘생긴 이목구비. 자막에 의하면 남자의 이름은 줄리 솔리에르. 더 불독의 홀 디렉터이자 공동 오너였다.
‘의외네.’
페르난도에게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파트너가 홀 매니저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고. 한길의 레스토랑으로 비유하면, 슬아가 사업 파트너인 셈이었다.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이곳에서는 매일 저녁, 모든 직원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그래서 설령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얼굴은 알아볼 텐데… 저 중년 남자는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굿 모닝!
오전 10시.
요리사들이 출근했다.
그 후로는 익숙한 풍경.
참치 등뼈를 깨서 골수를 빼내고, 장미잎을 데쳤다가 찬물에 헹궈서 말리고, 두유를 끓여서 얇은 커튼처럼 생긴 유바를 만들고…
한길이 이곳 주방에 처음 합류했을 때 했던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굿 애프터눈!
―오늘 날씨가 정말 좋네요!
오후 2시.
홀 직원들이 출근했고, 다이닝 룸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면서 페르난도와 그의 파트너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머리가 짙은 갈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페르난도는 지금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점심 장사는 안 하세요?”
감독의 질문에 페르난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런치 서비스는 7년 전에 중단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저희 목표는, 모든 손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보다 창조를 우선시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요리 개발보다는 재생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더군요. 그래서 없애기로 했죠.”
“페르난도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다음 질문은 페르난도의 파트너에게로 향했다. 줄리라는 이름의 남자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솔직히 막막했죠. 안 그래도 1년 중 6개월만 영업하는데, 이번에는 점심 장사까지 안 하겠다고 하니까요. 수익이 1/4로 줄어든 셈이었죠.”
“말리지 않으셨나요?”
“말린다고요? 페르난도를? 하하하!”
폭소가 쏟아졌다.
“페르난도를 설득하느니, 제 강아지를 메트로 디 대회에서 우승시키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뭐, 그래서 오히려 편할 때도 있지만요.”
“편하다고요?”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필요가 없거든요. 어떻게든 해내야죠.”
저녁 7시 반.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고 중년 부부가 입장했다. 첫 번째 손님이었다.
“페르난도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시카고에서 왔어요. 3년을 도전해서 겨우 예약에 성공할 수 있었죠.”
“3년이나요?”
“더 불독에서 식사하는 게 교황 성하의 옆자리에 앉는 것보다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손님들은 주방으로 먼저 안내되었다.
주방의 아일랜드 조리대 앞에서 페르난도가 팔짱을 끼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페르난도 셰프! 팬이에요. 혹시 사진 촬영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악수와 사진 촬영, 사인 요청까지… 누가 봐도 셰프보다는 연예인을 만나는 듯한 태도였다.
손님들이 떠난 후, 페르난도가 주방을 향해 첫 번째 주문을 외쳤다.
“사탕수수, 진 거품 2개씩.”
“오이도!”
“오이도!”
“셰프? 손님입니다.”
답변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다음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4인 가족. 페르난도는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주문을 외쳤다.
“딸기 얼음 2개, 모히토 사과 2개.”
“오이도!”
“오이도!”
더 불독에는 메뉴가 없다. 그래도 사전에 준비해둔 테이스팅 메뉴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즉석에서 메뉴를 정하는 건가?’
알코올을 먹지 못하는 미성년자를 위해 대체 메뉴를 지시하는 것은 물론, 테이블마다 나가는 메뉴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었다.
주문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주방은 분주해졌다.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
냄비가 부딪치는 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마치 음향 기기라도 사용한 것처럼, 모든 소리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크게 들려왔지만. 말소리는 없었다.
영상 속 요리사들의 손길, 시선 하나하나에서 엄청난 집중력이 느껴졌다. 그들이 느끼는 극도의 긴장감도.
페르난도는 그런 요리사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요리사는 스포츠 선수와 비슷합니다. 기술을 갈고 닦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이 녹슬지 않게 평소에 훈련을 계속해야죠. 하지만 실전에서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죠?”
“순발력과 집중력. 제아무리 열심히 훈련해도, 경기를 망치면 말짱 헛일이 되어버리니까요. 저희는 매일 저녁, 경기를 치르고 있죠.”
화면이 갑자기 전환되면서 손님들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손님들은 식당 내부가 아닌,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로 안내되었다. 황홀한 해안가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웨이터가 등장했다.
“웰컴 드링크입니다.”
더 불독의 메뉴는 웰컴 드링크부터 남달랐다.
작은 얼음 산에 사탕수수가 여럿 꽂혀 있었다. 증류주와 럼주에 절여둔 사탕수수로, 씹으면 알코올이 나온다고 했다. 마시는 칵테일이 아니라, 씹어먹는 칵테일이었다.
레몬과 진을 갈아서 얼린 스무디도 있었다. 보기에는 평범한 노란 스무디 같지만, 그 위에는 뜨거운 레몬 거품이 올라가 있었다.
“생각보다 알코올이 센데? 방심하고 먹다가는 취하겠는걸?”
“이것도, 평범한 스무디인 줄 알고 먹다가 깜짝 놀랐잖아!”
손님들은 놀이동산에 온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신나게 떠들었다. 조금 더 격식 있는 레스토랑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해가 질 무렵, 손님들은 식당 내부로 안내되었고. 곧이어 메인 요리가 등장했다.
질소를 이용해 굳힌 고르곤졸라 풍선.
장미 꽃잎을 겹쳐서 만든 아티초크 로즈.
입에 넣으면 녹아내리는 사라지는 라비올리.
한길에게 익숙한 요리도 있는가 하면, 처음 보는 것도 있었다.
“파르미지아노 거품 박스입니다.”
스티로폼 박스 안에 담긴 요리.
손님들이 직접 뚜껑을 열자, 웨이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파르미지아노 치즈의 맛을 최대한 살린 거품입니다. 우선 거품만 먼저 드셔보세요.”
“어머! 뭐야, 치즈에서 고기 맛이 나는 것 같지 않아?”
“감칠맛이 장난 아닌데?”
손님들의 반응 확인한 웨이터는, 스티로폼 상자와 함께 나온 작은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그 안에 말린 라즈베리, 로즈메리, 사과가 들어있습니다. 거품 위에 뿌려서 같이 드셔보세요. 너무 많이 뿌리면 무게 때문에 거품이 가라앉으니, 딱 먹을 만큼만 뿌리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건과일을 뿌리면, 과일의 당도와 대조되어 파르미지아노 치즈의 맛이 더욱 부각될 거다. 과일과 치즈를 함께 곁들여 내는 치즈 플레이트를, 건과일과 거품으로 형태를 바꿔 만든 요리였다.
스티로폼 상자의 가장 밑바닥에는 파르미지아노 치즈로 만든 얼음이 있었다.
파르미지아노 거품과 파르미지아노 아이스크림. 같은 재료로 만든 두 가지 밀도와 온도의 맛. 그런 면에서 한길이 예전에 만든 5가지 맛의 파르미지아노와 조금 닮아 있었다.
“이거, 내가 태어나서 먹은 요리 중 제일 맛있는 거 같은데?”
“과일이랑 같이 먹을 때, 정말 맛있지 않았어? 달달하니까 치즈 향이 더 올라오고.”
손님들은 탄성을 터트리며 각자의 감상을 나누기 바빴다.
하지만.
모든 요리가 이런 반응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토끼 귀 튀김입니다.”
“뭐라고요?”
“토끼의 귀만 잘라서 튀겨낸 튀김입니다.”
패닉에 빠진 얼굴.
손님들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표정이었다.
3년을 기다려서 겨우 예약을 잡은 레스토랑인데, 전설의 셰프가 내는 요리가 하필이면…
‘그래도 먹기는 먹네.’
벌레를 먹는 듯이 한껏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손님들은 토끼 귀를 입안에 넣었다.
“의외로 맛있네.”
“그래도… 이건 못 먹겠어… 맛을 떠나서 먹기 영 거북해…”
토끼 귀 튀김의 절반은, 반쯤 먹다 남은 상태로 돌아왔다.
“이 메뉴를 싫어하는 손님이 많나 보군요.”
감독의 말에 페르난도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겠죠. 요리사들도 이 메뉴를 듣고서는 ‘그걸 먹는다고요?’하고 반문할 정도였으니까요.”
“손님이 싫어할 요리를 왜 만드신 거죠?”“우리 목표는 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게 아니니까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요리사의 입에서, 그것도 세계 1위 요리사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발언.
페르난도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토끼 귀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이건 요리사라면 누구나 갖는 호기심입니다.”
“하지만 손님들이 싫어하잖아요?”
“어쩔 수 없죠.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손님을 위한 레스토랑이 아니니까요. 더 불독이 손님들에게 사랑을 받는 건 엄청난 행운입니다. 저희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으니 말이죠.”
페르난도는 화면을 똑바로 주시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손님을 위해 존재하는 레스토랑은, 손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리스크를 꺼리게 되고, 새로운 시도 대신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죠.”
“….”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그런 레스토랑을 애용하고 있고,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셰프들을 존경하고 있죠. 다만, 이 세상에 그런 레스토랑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페르난도는 하얀 치아가 다 보이도록 활짝 웃었다.
“단 하나쯤은, 요리사를 위한 레스토랑이 있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
“물론, 맛이 없는 요리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혀에 느껴지는 맛과 별개로, 우리가 가진 편견이 음식을 맛없게 만들 때도 있죠. 처음 하신 질문으로 돌아가서, 토끼 귀 튀김은 그래서 만든 겁니다.”
더 불독의 디너타임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한 테이블당 적게는 30개, 많게는 50개의 요리가 나갔기 때문이다.
감독은 토끼 귀를 보며 울상을 짓던 손님을 붙잡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곳에 다시 오실 겁니까?”
“물론이죠. 예약만 잡을 수 있다면요.”
“싫어하는 요리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아하하하… 그건 그렇죠. 아까도 토끼 귀가 나온 후로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식사가 아니라 롤러코스터 같더라니까요?”
“그런데 왜 다시 올 생각을 하시는 거죠?”
손님은 환한 웃음으로, 주저 없이 답했다.
“저는 롤러코스터를 좋아하거든요. 솔직히, 살면서 이렇게 심장 떨리는 경험을 할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화면이 바뀌면서 깐깐하게 생긴 남자가 등장했다. 자막에 의하면, 저명한 음식 평론가였다.
“처음에 페르난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벌거 벗은 황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솔직히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잖아요? 1년의 반만 문을 여는데 손님들이 제발 자리를 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희소성을 미끼로 가격을 올리는 곳이라고 확신했죠. 사기꾼의 정체를 낱낱이 까발리겠다는 목적으로 방문했고요.”
“페르난도의 요리는 어땠습니까?”
“계시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죠.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페르난도가 돈을 노리고 장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고요.”
평론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레스토랑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가격을 5배로 올려도, 기꺼이 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 테니까요. 하지만 더 불독의 가격은 여느 3 스타 레스토랑과 비슷합니다.”
더 불독의 가격은 인당 250유로. 한화로 치면 약 33만 원이다. 비싼 가격이지만, 일반적인 미슐랭 3스타 가격보다 더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페르난도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두바이나 상하이, 뉴욕, 런던에 분점을 냈겠죠. 그만한 수요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오로지 이곳에서만 요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요리를 먹다 보면… 무슨 사명을 갖고 요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이건 말로는 설명 못 하고, 직접 드셔봐야 압니다. 이곳이 미식가들 사이에서 성지순례 장소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죠.”
마지막 장면은 어두운 사무실.
페르난도는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빛바랜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요리사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지금까지 더 불독을 거쳐 간 요리사들입니다. 더 불독은 이들을 위해 존재하고, 이들에 의해 운영됩니다.”
페르난도는 특유의 매서운 눈매로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실습생들, 그리고 이 먼 길을 찾아와주시는 손님들까지.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탄 동료입니다.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맛을 찾기 위해, 미식의 지평선을 넓히기 위해, 더 불독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중이죠.”
그렇게 영화가 막을 내렸다.
“….”
“….”
불이 다시 켜졌지만, 주방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깨고 페르난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귀한 청춘을 바쳐서 이곳에 오는 것도, 몇 달이나 무보수로 일하는 것도,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죠.”
페르난도는 주방을 둘러보며, 실습생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쳤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페르난도의 모습은, 수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장군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것은, 전투에 앞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장군의 연설이었다.
“이곳에서는 여러분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더 불독에서 중요한 건 페르난도도, 상임 직원들도, 레시피도 아닙니다. 요리를 향한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심. 그 정신이야말로 더 불독입니다. 여러분이 더 불독입니다.”
실습생들은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페르난도는 외쳤다.
“여러분은 역사의 일부입니다.”
#
오프닝 전날인 만큼, 오늘은 컨디션 관리를 위해 모두가 일찍 퇴근했다.
숙소로 돌아온 실습생들은, 하나같이 노트를 펼치며 그 안에 적힌 내용을 복기하기 바빴다. 마치 수능을 앞둔 수험생처럼.
한길에게 다가와 귀찮게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페르난도의 후계자에 대한 소문이나 한길의 수상한 승진을 궁금해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한길은 거실에 머무는 대신, 홀로 침실로 향했다.
“후우…”
복잡한 심경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뻤다. 더 불독은 한길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이었으니까. 한길이 구상한 3호점과 가장 비슷한 곳이기도 했고. 하지만,
‘나도 할 수 있으려나?’
만약에 한길이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토끼 귀 튀김을 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했다.
한길이 못 하는 것을, 페르난도는 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명성이 있었으니까. 세계 제일의 셰프라는 명성이 있기에 손님들은 꺼리는 음식도 맛보았고, 싫어하는 요리가 나와도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한길에게는 명성이 없다.
‘결국 시간이 답인가?’
페르난도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 건, 헤드 셰프가 되고 약 10년 후라고 들었다. 시간을 들여 조금씩 명성을 쌓아야…
―자네가 이기면 더 불독의 가속화 지점들을 숨김없이 알려주도록 하지.
불현듯 페르난도와의 내기 조건이 떠올랐다.
‘가속화’ 지점을 알아내면,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무조건 이겨야 해.’
내기에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설령 이기지 못하더라도, 저것만큼은 알아가야 한다.
한길은 공책을 펼치고, 빈 장에 또박또박한 글씨로 필기를 시작했다.
「더 불독의 가속화 지점 : 단서」
페르난도가 답을 알려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방금 본 영화에서 몇 가지 실마리도 있었으니까.